34. 良心과 聖神 롬八章十六 又九章一節. 鏡朝
人之良心 各有本然之善 能責備不惡 喜愛良善也. 神造人肖己之形, 自人罪惡日深 其形毁壞. 只留一点小心是尙, 是神之形也. 是良心 㝡近乎神 故人雖如罪惡所別 而惟良心 在內与神往來. 由是視之 神贖人之則 由良心爲始 聖神必先感良心, 使之承認罪惡 又賜重生. 認罪之後 良心尤明, 此時之良心 被聖神之敎育 一層聖潔.
服從良心 卽服從聖神也. 到此地 深信之工 不必, 努力不勉 而有何也? 良心与聖神 幷力以行. 良心如琉窓 神之光透入. 我之靈魂 居此屋中 墻垣爲神之律法 外盜不能投入矣. 如窓外自明 窓內卽若琉窓塵汚 光不能透入. 墻垣又破 外盜亂入 如目失明 後患更大矣. 神之感良心 有三觸.
一. 良心塵汚 不能覺. 犯罪已深 良心痲痹 如燔肉, 如人關向壁 坐定平安. 一日雷電閃爗 方驚怯裡 忽聞聖話 良心乃動, 又惟神之刑. 盜燈紳士測話, 是神能使感之也.
二. 感神之愛. 而凡是日 厭世人之墮落. 又惡罪惡之於梁. 無他脫出 而一入聖會 如春風之動 万花爛發, 自然洗滌 吾得之罪. 如入寺則 願爲僧侶者. 主爲罪人 代贖, 我何人則一生敗人乎? 悔心爾.
三. 更覺 我肉弱. 不能行律法 而乃依主之力 而信心生焉. 我無得救之能 神不視人 乃視主之功 而赦之. 於是良心与神 同爲用力 每日省察良心 無所受責者 是聖神 在內之故也. 敎友信心之弱 擧由良心不潔 心与神 共證, 無欠 是乃信之功也. 保羅 托提摩曰 無欠之良心. 是眞丈夫 眞信者也.
34. 양심과 성신 / 로마서 8:16, 9:1. 경성교회 주일아침
사람의 양심은 저마다 본디의 선함이 있어서 능히 악을 책망하며 사랑하고 착하게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자기 형상으로 지으셨는데, 인간의 죄악이 날로 심해지면서부터 그 형상이 무너졌습니다. 다만 한 점의 작은 마음만은 아직도 남아 있으니, 이것이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이 양심이 하나님께 가장 가깝기 때문에 사람이 죄악으로 떠났을지라도 양심만은 속에서 하나님과 왕래를 합니다. 이로 말미암아 보건대 하나님께서 인간을 속죄할 때 양심으로 말미암아 시작하여서 성신은 반드시 양심에 먼저 느끼게 하십니다, 양심이 죄악을 승인하게 하시고 또 중생을 주십니다. 죄를 인정한 후에 양심은 더욱 밝아집니다, 이때에 양심은 성신의 교육을 받아서 일층 성결하게 됩니다.
양심에 복종함은 곧 성신께 복종함입니다. 이 경지에 이르러서는 깊은 신앙의 노력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노력하여 힘쓰지 않았는데 무엇이 있습니까? 양심과 성신이 함께 이행하려고 힘씁니다. 양심은 마치 유리창과 같아서 하나님의 빛이 뚫고 들어옵니다. 나의 영혼이 이 집 가운데 사니 담장은 하나님의 율법이 되어서 밖의 도적이 들어올 수 없습니다. 창밖은 밝으나 창안은 유리에 때가 덮여서 빛이 들어올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담장이 부서져 바깥에서 도적이 들어왔고 눈이 먼 것처럼 후에 환란이 다시 커졌습니다. 양심에 하나님의 감동이 접촉하는 것은 세 가지입니다.
1. 양심이 더러워져서 깨닫지 못합니다. 범죄가 이미 깊어 양심이 마비되었으니 마치 삶은 고기처럼 사람이 벽을 향하여 평안히 앉아있는 것과 같습니다. 어느 날 우레 번개가 치면 갑자기 놀라서 거룩한 말씀을 들으니 양심이 이에 움직이고, 또한 하나님의 형벌을 생각합니다. 전기를 훔쳐서 사용하던 신사(紳士)가 전기가 번쩍하는 어느 순간에 그런 경고의 말씀을 헤아린 것과 같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양심을 감동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2. 양신이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게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세상을 비관하는 사람들의 타락하고, 또한 마룻대 위의 도둑처럼 죄악을 미워하게도 합니다. 달리 죄를 벗어날 길이 없지만 한 번 거룩한 모임에 들어오면 봄바람에 동화되어 온갖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는 것과 같으니, 자연히 나의 지은 죄를 다 씻어냅니다. 마치 절에 들어가면 승려(僧侶)가 되기를 원하는 것과 같습니다. 주님께서 죄인을 위하여 대신 속죄하셨는데, 내가 어떤 사람이기에 일생 실패하는 사람이겠습니까? 뉘우치는 마음이 있을 뿐입니다.
3. 양심은 다시 깨닫게 합니다. 내 육신이 약하여 율법을 준행할 능력이 없으나 주님의 능력을 의지하니 믿음의 마음이 생겨납니다. 나는 구원의 능력이 없으나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보시지 않으시고 예수님의 공로를 보시고 용서하십니다. 이에 양심이 성신과 함께 힘을 써서 매일 양심을 살펴 책망 받을 일이 없으면 이는 성신이 그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교우의 신앙심이 약해지면 그 이유는 양심이 깨끗하지 못함을 마음과 성신이 공동으로 증거 합니다, 흠이 없으면 이는 믿음의 공로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부탁하기를 흠 없는 양심을 가지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대장부요 참된 믿음의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