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삼부여(三扶餘)
이렇듯 군웅이 일어나 각기 나라를 세우니 송화강을 끼고 북부여가 생기고 두만강을 끼고 동부여가 생기고 압록강을 끼고 남부여 곧 졸본 부여가 생기여 북에서 속발 같이 버려있고 서로 웅을 다투었다. 나라 이름은 고쳤어도 백족들의 혼합은 그냥 남아 있고 시월 상달이면 무천악을 갖추어 하늘에 제사하고 조상 전래하여 온 종교적 신념은 그들의 생활을 지배하였고 또 환인 환웅 환왕금을 삼신이라 칭하여 제사하며 겨울에는 사냥하고 봄에는 파종함이 그 생활의 순서이고 또 습사(習射)는 무시로 하여 백성마다 활 쏘는 법을 통하여 백족들의 무용이 천하에 들렸다.
또 부여왕조에는 왕화가 내외가 없어 물론 어느 민족이던 오면 어루만져 기르기와 어질면 왕조에 벼슬도 허락하여 이웃나라들이 다 흠모하고 이때에 어진 선배가 많이 나서 동방의 문화가 자랑할 만하였다.
예를 들면 소련(小連) 대련(大連) 같은 효자가 이 땅의 사람으로 부모가 돌아가심에 읍혈(泣血) 삼년 하여 큰 효자로 세상에 이름이 들렸고 동양의 큰 성인 대순(大舜)도 이때에 나신 어른으로 만고에 큰 이름이 전하여 있고 그뿐 아니라 이때 부여 왕조에 속국으로 숙신(肅愼)이란 나라가 있으니 청석촉(靑石鏃)으로 유명하여 그 후 주(周)나라 종묘(宗廟)에 있는 것을 공자보고 이것은 숙신의 청속촉이라고 칭찬하였고 동부여에 속하였던 예(濊)라는 나라가 있으니 일명은 창해(滄海)라 한다.
창해군의 친구인 역사가 있으니 힘이 천하에 제일이라. 지라 한인 장량(張良)이 창해군을 보고 자기 원수 진시황(秦始皇)을 치려고 의론함에 창해군이 자기 사랑하는 역사를 허락하였다. 장양은 역사와 동행하여 박랑사중(博浪沙中)에서 철퇴로 진시황을 치다가 그릇되어 잡히었다. 죽어도 일의 주인을 말하지 않고 죽었으니 천고에 의인이라고 전하여졌다.
또 왕조에 속한 기자가 있으니 이는 은(殷)나라의 신하라 주무왕(周武王)이 은나라를 침에 기자가 도망하여 부여 왕조에 왔거늘 기자는 학식과 도덕이 높은 어른이다. 왕조에서 영접하여 조그만 한 고을주어 살게 하고 나라 이름을 조선이라 칭하니 지금 만주에 있는 평양이다. 부여는 진실로 문무 겸비한 나라이요 자랑할 만하다. 이때 조선이란 이름은 주권국이 가질 터인데 삼부여 중 북부여가 가장 세력이 커짐에 북부여 조선이라 칭하다가 백성들의 생활이 산을 버리고 차차 평야로 나오게 됨에 중심 세력이 또 남부여 곧 졸본 부여를 옮겨진 고로 또 남부여 조선이라 하다. 형식이 무엇으로 변하던지 조상부터 전하여 온 조선이란 정신은 변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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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혈(泣血) : 명사, 눈물을 흘리며 슬프게 욺., 표준국어대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