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보의 변천
음악에 대한 표상이 달라지는 것처럼 음악을 기록하는 방식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합니다. 그런데 음악과 기보의 관계는 어딘지 모르게 닭과 달걀의 관계와 많이 닮아 있습니다. 일단 새로운 기보가 존재해야 새로운 종류의 음악을 만들 수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새로운 종류의 음악이 먼저 생긴 다음에 이를 기록하는 새로운 기보가 고안되는 것일까요? 한쪽이 옳다고 단정 짖기는 어렵습니다.
유럽에서 음악을 기록하기 시작한 첫 단계의 기보는 중세 이탈리아의 귀도 다레초(Guido d’Arezzo, 992~1050)가 창안한 ‘네우마(neuma)’입니다. 악보가 없어 구전으로 부르던 그레고리오 성가를 손바닥에 4선으로 그려 성가를 익히기 쉽게 한 것입니다. 명확한 음높이를 알기는 어렵고,리듬이나 박자에 대한 정보는 전혀 주어지지 읺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네우마’는 다성음악을 기록할 수 없는 기보입니다.
9세기에 이르러 악보로 기록된 다성음악은 오르가눔(organum)이라는 원시적 형태로 처음 나타났다. 그레고리오 성가에 바탕을 둔 정선율이 상성(上聲)에 놓이며, 대성부가 병행4도를 중심으로 1음표 대 1음표로 상대해 간다.
13세기가 되면서 오르가눔은 노트르담악파의 레오냉이나 페로탱 등에 의해 작곡되어 3~4성부를 위한 작품도 나왔으나, 점차 정량 리듬에 의한 규제로 오르가눔은 소멸하게 된다.
정량음악(mensural)은 음의 리듬이 엄격하게 규정된 음악으로 세로줄(마디)가 나타나기 이전인 13~16세기의 폴리포니 음악을 말한다. 정량음악은 1250년경 쾰른의 프랑코에 의해사 기초를 이루었는데, 검은 표에 의한 ‘정량기법(mensuural notation)’이 계속되다가 1450년경부터 흰표로 바뀌었으며, 그 이론은 더욱 완성되어 1600년경까지 계속되었다.
넓은 의미로 근대의 음악도 정량음악이라고 할 수 있으나, 악센트의 추가적인 반복의 의미는 포함되지 않으므로 정량음악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기보법이 에전의 기보법보다 우수하다고 할 수 있을까?
아닙니다. 다를 뿐이지 더 나은 것은 아닙니다. 17세기부터 마딧줄이 등장하기 시작하고,그로 인해 각 성부는 다른 성부에 얽매이지 않고 독자적으로 리듬과 박을 구성할 수 있게 됩니다. 음악은 더욱 어렵고 복잡해지며, 그 규모도 훨씬 커집니다. 하지만 현재의 기보가 예전의 기보법으로 기록할 수 있던 모든 것을 담아내지는 못합니다.
예컨대, 르네상스 음악에서 볼 수 있는 트로푸스(tropus)처럼 리듬 구획을 중간에 끼워 넣는 방법이나, 마지막에 덧 붙이는 시퀀스(sequence)의 기법도 포기해야 합니다.
한 마디로 음악사는 진보의 역사가 아니라 변화의 역사라 말 할수 있겠습니다.
<출처:쾰른음대,‘클래식음악에 관한 101가지 질문’, 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