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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는 친구를 잘못 사귀고 결혼을 잘못하고 어머니를 잘못 만나서 인생을 망친 사람들이 나온다.
본문
[대하]22:1 예루살렘 주민이 여호람의 막내 아들 아하시야에게 왕위를 계승하게 하였으니 이는 전에 아라비아 사람들과 함께 와서 진을 치던 부대가 그의 모든 형들을 죽였음이라 그러므로 유다 왕 여호람의 아들 아하시야가 왕이 되었더라
[대하]22:2 아하시야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사십이 세라 예루살렘에서 일 년 동안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아달랴요 오므리의 손녀더라
아하시야가 왕이 될 때가 42살이라는 것은 잘못된 표기이다. 열왕기를 참조하면 아하시야의 나이는 42세가 아니라 22세였다. 이것은 역대기를 지은 사람이 잘못 표기한 것이다. 아버지 여호람이 세상을 떠날 때가 40살이었는데 아들이 왕위를 이어 받을 때가 42살일 수는 없다.
[왕하]8:26 아하시야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이십이 세라 예루살렘에서 일 년을 통치하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아달랴라 이스라엘 왕 오므리의 손녀이더라
성경을 읽다보면 이렇게 틀린 부분이 발견이 된다. 이것은 성경이 인위적으로 짜맞춘 책이 아니라는 증거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영에 의해서 인간이 작성한 글이다. 하나님의 영은 완전하시나 성령을 대하는 인간은 언제라도 실수할 수 있는 존재이다.
1. 친구를 잘못 사귀면
여호사밧 왕처럼 위대한 왕이 있을까? 그는 두 번에 거쳐 종교 개혁을 완성했다. 율법을 전문적으로 백성들에게 가르쳤을 뿐아니라, 율법대로 재판하게 하여 율법을 지키며 살게 했다. 그러나 그는 친구를 잘못 사귀어서 그가 죽고 난 후에 그의 아들 여호람이 자신이 이룬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죽어서도 통탄할 일이다.
이스라엘의 비극은 경건하고 위대한 왕 여호사밧이 타락한 왕 아합과 사귐으로 시작되었다. 여호와를 섬기는 여호사밧이 바알을 섬기는 아합의 딸과 자기 아들을 결혼시킨 것이다. 며느리로 들인 아합의 딸 아달랴로 통해서 수많은 왕자와 왕손들이 죽었다.
나쁜 남자가 착한 남자보다 더 인기 있다고 한다. 나쁜 남자를 좋아하는 여자는 드라마틱한 연애가 진짜 연애라고 착각하는 사람이다. 평범한 남자들과의 연애는 재미없고 지루하다고 생각한다.
매일 사우고, 이별을 자주자주 반복하고, 서로에게 매달리는 상황을 진짜 연애라고 생각한다. 사실은 지루하다고 느낄 만큼 평범한 관계가 더 안정적인 연애이다.
이와같이 매일 반복되는 예배에는 흥미를 느끼지 못하다가 이단 집회에 한 번 가서 그게 진짜 가르침이고 획기적인 예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간혹 다른 종교들을 기웃 거리면서 외도의 짜릿함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자기는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면서도 나쁜 사람들에게 기웃거리며 그들과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이 있다. 정치가들이 그렇다고 한다. 정치가들과 깡패가 친하다는 것은 한국 정치사를 통해서 볼 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일찍이 하나님은 선지자 예후로 통해서 여호사밧에게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사람들과 사귀었으므로 하나님이 진노하셨다는 것이다.
[대하]19:1 유다 왕 여호사밧이 평안히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그의 궁으로 들어가니라
[대하]19:2 하나니의 아들 선견자 예후가 나가서 여호사밧 왕을 맞아 이르되 왕이 악한 자를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들을 사랑하는 것이 옳으니이까 그러므로 여호와께로부터 진노하심이 왕에게 임하리이다
제 버릇 개 못 주는 것이다. 여호사밧은 악한 아합 왕이 죽자 선지자의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고 그의 아들 아하시야와도 친하게 지내었다. 아합의 아들 역시 아합처럼 악한 사람이었다.
[대하]20:35 유다 왕 여호사밧이 나중에 이스라엘 왕 아하시야와 교제하였는데 아하시야는 심히 악을 행하는 자였더라
여호사밧이 아합과 얼마나 친하게 지냈는가는 그들의 아들들의 이름을 똑 같이 지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북 이스라엘 아합의 아들도 여호람이고, 남 유다의 여호사밧의 아들의 이름도 여호람이었다. 아합의 아들(여호람의 동생)과 여호사밧의 손자 이름도 똑같은 아하시야이다.
여호사밧이 아무리 훌륭한 왕이었다고 해도 하나님이 미워하는 사람들과 친하게 지낸 것이 큰 흠이었다.
여호사밧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는 그의 아들 대부터 임하기 시작해서 매우 오랜 시간 동안 임하였다.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은 왕이 되어서 아버지가 사랑하던 여섯명의 동생들을 다 죽였다. 그리고 자기는 8년 밖에 왕노릇 못하고 창자 병에 걸려 죽었다.
그의 아들이자 여호사밧의 손자 아하시야 역시 악한 아합의 아들 요람(여호람의 동생)과 어울려 다니다가 1년 만에 죽었다.
[대하]22:7 아하시야가 요람에게 가므로 해를 입었으니 이는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것이라
아하시야가 요람에게 가므로, 악한 사람과 사귐으로 해를 입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내가 아무리 선해도 악한 사람과 사귀면 해를 입는 것이다. 선으로 악을 이길 수 있다고 자만하지 말아야 한다. 악인은 피해가야 한다.
2. 결혼을 잘못하면
여호사밧은 자신의 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는 여자를 아내로 줌으로 그의 인생을 망쳤다. 여호사밧이 며느리로 들인 여자 아달랴는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아합왕의 딸이었다. 아합왕의 부인은 이세벨로 하나님이 가장 미워하시는 여자였다. 그의 딸 아달랴는 자기 어머니 이세벨보다 열 배는 더 악한 여자였다.
아달랴가 유다 왕가로 시집와서 피바람이 불었다. 남편 여호람 왕의 동생들을 다 죽였고, 남편에게 바른 소리 하는 신하들도 칼로 죽였다.
[대하]21:4 여호람이 그의 아버지의 왕국을 다스리게 되어 세력을 얻은 후에 그의 모든 아우들과 이스라엘 방백들 중 몇 사람을 칼로 죽였더라
[대하]21:5 여호람이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삼십이 세라 예루살렘에서 팔 년 동안 다스리니라
[대하]21:6 그가 이스라엘 왕들의 길로 행하여 아합의 집과 같이 하였으니 이는 아합의 딸이 그의 아내가 되었음이라 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나
그녀는 남편과 함께 동생들을 다 죽이고 신하들을 죽이더니, 남편이 고작 8년 만에 죽으니까 자기 아들을 왕으로 앉히고 섭정을 했다. 그러나 자기 아들도 왕이 된지 1년만에 죽으니까, 왕위를 이어받을 손자들을 다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되었다. 그녀는 이스라엘 역사를 통틀어 아달랴는 유일한 여왕이었다. 결국 그녀는 6년 후 대제사장의 쿠데타로 살해를 당하고 말았다.
그녀는 왕이 될 때 손자들을 모두 죽였는데 한 사람을 죽이지 못했다. 요아스라는 손자는 유모가 성전에 숨겨 6년을 숨어지내게 했다. 놀랍게도 아달랴는 그 아이를 찾지 못했다. 사실 그들의 사이는 벽하나 사이였다.
[대하]22:10 아하시야의 어머니 아달랴가 자기의 아들이 죽은 것을 보고 일어나 유다 집의 왕국의 씨를 모두 진멸하였으나
[대하]22:11 왕의 딸 여호사브앗이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를 왕자들이 죽임을 당하는 중에서 몰래 빼내어 그와 그의 유모를 침실에 숨겨 아달랴를 피하게 하였으므로 아달랴가 그를 죽이지 못하였더라 여호사브앗은 여호람 왕의 딸이요 아하시야의 누이요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내이더라
[대하]22:12 요아스가 그들과 함께 하나님의 전에 육 년을 숨어 있는 동안에 아달랴가 나라를 다스렸더라
성전과 왕궁은 구조상 담장 하나 사이였다. 그런데 왕궁에서 6년 동안이나 있으면서 바로 곁에 있는 성전에서 숨어지내고 있는 손자 요아스를 찾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달랴가 성전과 율법과 하나님의 말씀 듣는 일에 전혀 관심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 날 하나님의 말씀이 전해지는 교회가 옆에 있어도 전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 있는 것과 같다.
3. 어머니를 잘못 만나면
여호람의 아들 아하시야는 어머니를 잘못 만나서 인생을 망쳤다. 그의 어머니가 아달랴였다.
[대하]22:3 아하시야도 아합의 집 길로 행하였으니 이는 그의 어머니가 꾀어 악을 행하게 하였음이라
여기서 어머니란 꼭 육신의 어머니라고 할 것은 아니다. 어렸을 때부터 나를 가르쳐 주던 모든 존재가 어머니이다. 인간은 태어날 때 이미 모든 것을 배우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자라면서 배우며서 인간이 되어 가는 것이다.
내 옆에서 어떤 말을 해 주는 사람이 나의 어머니이다. 예수님은 누가 진짜 어머니냐를 말씀해 주셨다.
[막]3:31 그 때에 예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와서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를 부르니
[막]3:32 무리가 예수를 둘러 앉았다가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찾나이다
[막]3:33 대답하시되 누가 내 어머니이며 동생들이냐 하시고
[막]3:34 둘러 앉은 자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을 보라
[막]3:35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우리 조상들은 악한 말, 험담, 부도덕한 말 같은 말을 들었다 싶으면 곧바로 물로 귀를 씻는 풍습이 있었다.(洗耳) 더러운 말이 마음에 닿기 전에 씻어내 버리기 위함이다. 조선 21대 왕 영조는 귀에 거슬리거나 더러운 말을 들으면 곧바로 물로 귀를 씻었다고 한다. 귀만 그런 것이 아니라 눈으로 못 볼 것을 보았다 싶으면 눈씻이(洗目)를 했고, 하지 말아야 할 더러운 말을 했으며녀 입씻이(洗口)도 했다. 서당이 있던 시절에는 아이가 더러운 말을 하면 훈장이 물가에 데리고 가서 세 차례 양치질을 시켜 입을 씻어내는 벌을 주었다고 한다. 역시 우리 민족은 지혜로운 민족이다. 요즘 선거판이 시작되었는데 역시나 험하고 더러운 말들이 난무할 것 같다.
모세는 자기의 아들과 같은 여호수아에게 율법책을 손에서 놓치지 말고 항상 읽고 듣고 살라고 명령했다.
[여호수아] 1:7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왕이 세워질 때는 대제사장이 율법책을 손에 들려 주었다.
[열왕기하] 11:11
그리고서 여호야다는 무장한 모든 호위병들이 성전 주변을 삼엄하게 경비하는 가운데 왕자를 인도해 내고 그에게 왕관을 씌우며 율법책을 주고 기름을 부어 그를 왕으로 선포하였다. 그러자 모인 군중들은 박수를 치며 왕의 만세를 외쳤다.
요시아 왕은 율법책을 읽었을 때 다시 행복해졌다.
[대하]34:15 힐기야가 서기관 사반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여호와의 전에서 율법책을 발견하였노라 하고 힐기야가 그 책을 사반에게 주매
[대하]34:16 사반이 책을 가지고 왕에게 나아가서 복명하여 이르되 왕께서 종들에게 명령하신 것을 종들이 다 준행하였나이다
[대하]34:17 또 여호와의 전에서 발견한 돈을 쏟아서 감독자들과 일꾼들에게 주었나이다 하고
[대하]34:18 서기관 사반이 또 왕에게 아뢰어 이르되 제사장 힐기야가 내게 책을 주더이다 하고 사반이 왕 앞에서 그것을 읽으매
[대하]34:19 왕이 율법의 말씀을 듣자 곧 자기 옷을 찢더라
하나님의 말씀은 나에게 좋은 친구이다. 이 말씀들은 나에게 어렵지 않게 다정스럽고 친근하고 대하기 쉽게 다가와서 머문다. 그래서 목사가 필요하고 목사의 설교가 필요하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렵게 다가와서는 안 된다. 목사의 할 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편안하게 들을 수 있게 도와 주는 것이다.
이 세상을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나쁜 친구를 멀리하고 좋은 친구를 사귀며 살아야 하는데, 진짜 좋은 친구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나쁜 친구는 나를 망하게 하지만, 좋은 친구는 나에게 좋은 조언을 해 주고 나를 행복의 길로 인도한다. 기독교인이 어떻게 행복한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때문에 행복하다. 기독교인이 시시각각 다가오는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하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극복한다.
[시]4:8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이시니이다
이 말씀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고 안전하게 살게 한다. 반면에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치는 것과 다른 말을 하는 사람은 나쁜 친구이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쉽게 잘 전해주는 목사는 성도들의 좋은 친구이다.
사악한 목사도 있다. 듣기 좋은 말, 호감이 가는 말, 탐욕을 부추기거나 칭찬하는 말을 들려 주는 목사는 나쁜 목사이다. 그들의 말은 창녀와 같이 사람들을 유혹하여 망하게 만든다.
잠언 7장에는 창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 창녀는 몸을 파는 창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잘못된 가르침을 의미하는 것이다.
[잠]7:7 어리석은 자 중에, 젊은이 가운데에 한 지혜 없는 자를 보았노라
[잠]7:8 그가 거리를 지나 음녀의 골목 모퉁이로 가까이 하여 그의 집쪽으로 가는데
[잠]7:9 저물 때, 황혼 때, 깊은 밤 흑암 중에라(무엇이 옳은 말인지 틀린말인지 구분하지 못하는 때)
[잠]7:10 그 때에 기생의 옷을 입은 간교한 여인이 그를 맞으니
[잠]7:11 이 여인은 떠들며 완악하며 그의 발이 집에 머물지 아니하여
[잠]7:12 어떤 때에는 거리, 어떤 때에는 광장 또 모퉁이마다 서서 사람을 기다리는 자라
[잠]7:13 그 여인이 그를 붙잡고 그에게 입맞추며 부끄러움을 모르는 얼굴로 그에게 말하되(유혹은 말, 잘못된 가르침으로 시작된다.)
[잠]7:14 내가 화목제를 드려 서원한 것을 오늘 갚았노라(마치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 처럼 위장하고 오는 잘못된 가르침)
[잠]7:15 이러므로 내가 너를 맞으려고 나와 네 얼굴을 찾다가 너를 만났도다
[잠]7:16 내 침상에는 요와 애굽의 무늬 있는 이불을 폈고
[잠]7:17 몰약과 침향과 계피를 뿌렸노라
[잠]7:18 오라 우리가 아침까지 흡족하게 서로 사랑하며 사랑함으로 희락하자
[잠]7:19 남편은 집을 떠나 먼 길을 갔는데
[잠]7:20 은 주머니를 가졌은즉 보름 날에나 집에 돌아오리라 하여
[잠]7:21 여러 가지 고운 말로 유혹하며 입술의 호리는 말로 꾀므로(잘못된 가르침은 듣기에는 호감이 가는 내용이다.)
[잠]7:22 젊은이가 곧 그를 따랐으니 소가 도수장으로 가는 것 같고 미련한 자가 벌을 받으려고 쇠사슬에 매이러 가는 것과 같도다(잘못된 말을 들었을 때는 귀를 씻어내야 한다)
[잠]7:23 필경은 화살이 그 간을 뚫게 되리라 새가 빨리 그물로 들어가되 그의 생명을 잃어버릴 줄을 알지 못함과 같으니라
[잠]7:24 이제 아들들아 내 말을 듣고 내 입의 말에 주의하라
[잠]7:25 네 마음이 음녀의 길로 치우치지 말며 그 길에 미혹되지 말지어다
[잠]7:26 대저 그가 많은 사람을 상하여 엎드러지게 하였나니 그에게 죽은 자가 허다하니라(잘못된 가르침을 듣고 불행하게 된 사람이 수두룩하다)
[잠]7:27 그의 집은 스올의 길이라 사망의 방으로 내려가느니라
왕의 곁에 많은 신하와 백성이 있어도 왕의 진정한 친구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는 선지자였다. 역대기를 읽어보면 왕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수 많은 선지자의 이름이 나온다. 그들은 왕에게 인간적인 친구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쓴 소리, 듣기 싫은 소리를 거침없이 한다. 왕이 그들의 입을 막으면 불행해지고,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 행복해진다. 예를 들어 아사왕은 자기에게 쓴 소리하는 선지자를 감옥에 가두고 난 후 망했지만, 여호사밧은 자기에게 쓴 소리하는 선지자의 말에 귀를 기울였기 때문에 행복해졌다.
이 세상을 살다보면 경우에 따라서는 친구와의 관계도 끊는 것이 더 좋을 수 있고, 부부가 인연을 끊는 것이 더 좋을 수 있고, 심지어 부모와 자식이 인연을 끊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과의 인연을 끊으면 인생의 길을 잃게 되고 행복은 끝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