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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난의 길과 해방운동
1971.09.19 (일), 한국 전본부교회
[기 도]
이달에 있어서 세번째 맞는 안식일 아침에 당신의 자녀들이 이 자리에 모였사오니, 이날이 복되게 하여 주시옵고 이 시간이 복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의 처지와 사정은 각각 다를지라도 당신을 바라보는 마음만은 같아야 되겠습니다. 당신을 위해서 당신이 분부하신 사명을 맡아 수행하고자 하오니, 그 사명 앞에 책임을 다하려 하는 각자의 결의만은 틀림없어야 되겠사옵니다.
개체 개체가 합하여 하나의 결속체를 이루어 당신이 원하는 나라의 백성이 되고, 세계를 거느릴 수 있는 대표자들이 되어야 할 것을 저희는 알고 있사옵니다. 전체적인 섭리의 뜻 앞에 있어서 보잘것없는 모습이지만 그 사명을 절감하고 스스로를 다짐하는 이 시간이 되어야겠사오니, 아버지. 이 자리에 부복한 자녀들을 긍휼히 보아 주시옵소서.
사람은 어차피 한번 왔다가 한번 가는 것이옵니다. 그 과정에 있어서 자기 자신의 이익을 취하는 길을 가는 사람보다도 공적인 동시에 하늘을 위주한 이익을 추구하며 싸우다가 가는 사람이 이 땅 위에 남아질 수 있는 인간이요, 수많은 인류역사 가운데 빛나는 공적을 세운 사람들인 것을 저희들이 알고 있사옵니다. 하늘을 사랑하는 만큼 인류를 사랑해야 되겠사옵고. 인류를 사랑하는 만큼 자기 나라와 자기 가정과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할 것이 본래 하나님께서 목적하셨던 인간 본연의 자세요, 본연의 생활이념이었사옵니다.
그러나 타락한 이후에는 자기를 먼저 사랑하고 가정을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는 반대의 행로를 거쳐 역사는 흘러왔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흘러가는 역사를 다시 한 번 가로막고 하늘을 먼저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하고 종족과 가정과 개인을 사랑할 수 있는 공적인 노정이 저희 통일교회를 통하여서 증거되고 개척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런 길을 가기 위해서는 수난의 길을 퍼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사 옵니다. 개인이 개인의 노정을 개척함에 있어서도 수난이 있거니와 세계와 하늘의 노정을 개척해야 할 사명을 절감하는 자리에 서서 그 길을 책임지고 나선다고 하게 될 때에는 그보다 더한 희생과 곤욕의 노정이 저희의 앞길에 가로놓여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옵니다. 하오나 그 길은 반드시 넘어가야 할 운명길이요, 아니 갈 수 없는 길임을 알고 있는 당신의 어린 자녀들 위에 강하고 담대한 마음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하늘을 사랑하는 마음이 불붙듯 일어나게 하여 주시옵고. 당신 앞에 충효의 절개를 지키기 위하여 온갖 원수들 앞에 졸렬하지 않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지금까지 걸어온 수난과 역경의 길 가운데서도 당신이 지켜 주신 것을 고맙게 생각하옵니다. 하지만 그것이 역사적 사실로 남아져 가지고 저희의 생활권내에서 그것을 그리워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오늘 이 시간도 그 이상의 치열한 전투의 노정이 남아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그 싸움터를 직시하면서 그 싸움터를 지키기 위해서 지난날보다도더 책임을 지는 용사의 모습이 될 것을 스스로 다짐할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의 싸움터를 준비함과 동시에 내일의 세계와 하늘땅을 걸어 놓고 사탄과 판가리하여야 할 그 싸움을 위하여, 오늘 스스로의 자세를 연마해 나갈 줄 아는 당신의 사랑받는 아들딸인 동시에, 하늘의 정병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이날 당신의 사랑하시는 자녀들을 굽어보시옵소서. 개개인의 심령을 살피시어서 하늘 앞에 옳지 못한 악의 쓴 뿌리가 그 마음속에 침투해 있거든, 아버지, 제거시키시옵소서. 당신의 불꽃같은 눈과 능력의 손길로써 이것을 낱낱이 갈라 내시어서, 하늘 것과 선한 것은 남기시고 그 외의 것은 일체 용납치 마시옵고 제거시키시사, 이들을 당신의 아들 딸이요, 당신의 무리로서 굽어살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전국에 널려 이곳을 바라보면서 충성을 다짐하는 자녀들, 더우기 일선에 나가 있는 당신의 어린 딸들 위에 긍휼과 사랑의 손길을 늘 펴시옵소서. 최후에 민족 앞에 해야 할 사명을, 여인으로서 감당해야 할 세계사적인 책임을 짊어지고 어려운 수난의 도상에서 개척자의 행각의 노정을 가기를 다짐하는 자리 자리마다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혹은 외로워 눈물짓는 자리에서 한 많은 아버지의 심정을 동정하면서 아버지의 괴로우심을 염려하는 딸들이 있거들랑, 늘 아버지께서 보호하여 주시옵시고, 같은 심정의 인연을 따라 환경을 개척하는 데 있어서 하늘의 동조와 동정을 받을 수 있는 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들이 나타나는 곳곳마다 하늘을 흠모할 수 있는 자극이 일어나게 하여 주시옵고, 하늘의 심정이 싹터서 수많은 인류를 아버지 앞에 연결시킬 수 있도록 그들을 새생명의 원천으로 삼아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이곳을 향하여 경배하는 곳곳마다 당신이 굽어살피시옵소서. 그뿐만 아니라 만방에 널려 있는 당신의 외로운 자녀들, 한 나라를 책임지고 외로운 자리에 서서 당신을 부여잡고 새 생명을 그들 앞에 옮겨 주기 위하여 싸우고 있는 자녀들이 많사오니, 그들에게 당신의 사랑과 은사를 베푸시어 살아 계신 아버지의 권한을 드러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모시고 가는 사람은 뭔가 다르다는 것을 보여 주시옵고 증거시키시어서 환경을 당신 앞에 부복시키고 굴복시킬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이 한날이 아버지께서 허락하신 은사의 날로서 만민 앞에 복을 나눠줄 수 있는 거룩한 날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날 수많은 동포들과 수많은 교회들이 당신 앞에 경배하는 곳곳마다 넘치는 사랑과 은사를 갖고 찾아 주시옵소서.
아버지, 서로서로 반목질시하는 시대적 환경을 제거해야 되겠습니다. 하나의 목적을 중심삼고 하나의 방향을 가려 가는 수많은 종교들이 서로 형제지감(兄弟之感)을 가지고 서로 동정하고 위할 수 있는 무리가 되어, 하나의 민족을 이루고 하나의 세계를 이루기 위하여 규합해 가지고 복귀 천국을 개척하는 데 있어서 선봉에 설 수 있는 종교가 되게 하여 주시옵 고, 믿는 사람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러나 그들이 갈 길을 모르거든 오늘 저희들이 그들 앞에 책임해야 할 노정을 확실히 제시해 주고, 민족을 위하여 가는 길이 이렇고 하늘을 위하여 가는 길이 이렇다는 것을 보여 줄 줄 아는 통일의 무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도 아버지의 긍휼의 사랑과 자비의 은사와 크신 은덕을 바라는 마음으로 부복하였사오니 일체를 분부하심으로써 찾아 주시옵고, 안위와 평화가 저희의 마음에 깃들게 하여 주시옵고, 당신의 소망 앞에 부끄러움이 없는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빌고 원하옵니다. 이날의 모든 전체가 아버지의 좋아하심이 되고 아버지의 즐거우심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참부모님의 이름으로써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오늘은 '수난의 길과 해방 운동'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잠깐 말씀드리겠습니다.
수난의 길을 거쳐 해방받지 않으면 안 될 우리
본래 우리 인류에게는 수난의 길이 있어서는 안 되는데 그런 길이 생겨난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수난의 길을 거쳐 가지고 다시 해방받지 않으면 안 될 운명에 놓여 있다는 것도 알고 있는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에 해방을 주장하는 것은 사회제도상 사회 전체가 환영하는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말은 반드시 그 사회와 반대되는 입장에서 새로운 길을 중심해 가지고 새로운 목적을 제시하여 그 목적 앞에 새로운 사회와 국가를 형성할 것을 요구할 때에 쓰여지는 말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 해방을 위한 길을 찾아 나오고 있는데 그것이 구원 섭리의 길이요. 하나님의 섭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해방시켜야 하는 것이요, 인간은 하나님을 따라가는 것보다도 하나님을 해방시켜야 할 입장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일반 기독교 신자 들은 인간이 하나님 앞에 해방을 받아야 된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인간이 하나님을 해방시켜 드려야 된다는 것은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타락과 사탄의 정체를 알아야 완전히 해방될 수 있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인간이 사탄권에 구속당하게 되었는데, 어떠한 수난길도 거치지 않고 인간이 그 구속에서 벗어날 수 없겠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생각하게 될 때에, 그 타락이란 것이 어떠한 것이냐 하는 것을 확실히 제시하지 않고는 해방을 하는 데 있어서도 완전한 해방을 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우리편이 있고 반대편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늘편이 있는가 하면 그 반대되는 악편, 즉 사탄편이 있는 것입니다. 사탄편은 본래부터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또, 우리 인간을 구속하고 우리 인간이 해방의 요건을 요구할 수 있는 입장에 서게 만든 그 주체가 바로 사탄이라는 것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사탄이 된 동기가 무엇이냐? 그것은 물질적인 것, 즉 외적인 것 때문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내적인 문제 때문입니다. 내적인 문제 가운데서도 무엇을 중심삼고 되어졌느냐? 내적인 어떤 사정을 중심삼고 되어진 것도 아니요, 내적인 어떤 소망을 중심삼고 되어진 것도 아닙니다. 내적인 정서적 문제를 중심삼고 되어진 것입니다. 정적인 문제를 중심삼고 되어졌다는 것입니다. 즉, 내적인 정적 문제를 중심삼아 가지고 타락이 벌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해방을 받기 위해서는 어디까지 찾아들어가야 되느냐? 외적인 자리에서 해방을 받았다고 해서 완전한 해방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적인 정서적 문제까지 찾아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타락의 동기를 일으킨 그 주체 되는 사탄은 대관절 하나님 앞에 있어서나 우리 인간 앞에 있어서 어떠한 존재냐? 원수는 원수인데 어떠한 원수냐? 이것이 문제되는 것입니다. 혈통적으로 아무런 인연이 없는 원수라면 원수를 갚으면 그것으로 끝날는지 모르지만 원수를 갚고 나서도 그 환경을 벗어날 수 없는 혈통적 인연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 선 것이 오늘날 우리들의 입장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탄은 어느 정도까지 우리 앞에 원수의 길을 제시해 놓았느냐 하면 우리의 핏줄까지 관여할 수 있는 정도까지 원수의 길을 제시해 놓았습니다. 우리의 몸뿐만 아니라 우리의 생명까지, 생명을 넘어서 생명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랑 문제까지 주관할 수 있는 주체가 되어 있습니다.
이 사탄 원수를 굴복시키기 위해서는 어떠한 길을 가야 되느냐? 인간에 있어서 외적인 돈 문제라든가 사정 문제라든가 소망 문제를 중심삼고 원수를 갚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사탄을 굴복시킬 수 있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최후의 문제는 생명을 부정할 수 있는 자리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것이고, 나중에는 자기들의 사랑까지도 부정할 수 있는 자리까지 올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사탄을 완전 굴복시킬 수 있는 길을 발견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사탄이란 어떠한 존재냐?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을 어떤 분이냐 하고 묻게 되면 '절대자요, 유일무이하며, 전지전능하신 분이다'라고 합니다. 그러면 그러한 분과 인간과의 관계는 어떠한 관계냐? 오늘날 기독교에서는 '하나님 아버지'라고 말은 합니다만 그 아버지란 말이 어떤 의미에서 부르는 아버지냐? 다만 명사를 존중시하기 위해서 부르는 막연한 아버지냐, 아니면 정말 그러한 내용을 가진 아버지냐? 그 내용은 어떠한 것이냐 하는 문제는 생각지도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버지면 어떤 아버지냐? 오늘날 우리가 육(肉)을 통해 태어난 부모를 중심삼고 볼 때 그 부모와 하나님과는 어떠한 관계냐? 이게 막연하다는 거예요.
여러분 가운데 신비스러운 체험을 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우주의 근본을 찾아들어가서 우주의 근본이 뭐냐 하고 궁금증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제시하고 우주의 근본을 찾아들어가게 될 때에, 우주의 근본은 이 만상의 세계를 대신해 있는 사람이다, 인간이다. 그러면 인간의 근본은 무엇이냐? 인간의 근본은 생명이다. 그러면 생명의 근본은 무엇이냐? 사랑이다. 사랑이 없으면 생명이 생겨나지 않는다. 사랑의 근본이 무엇이냐 하게 될 때 여기서 인간 이상의 것으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런 분이 하나님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이라는 명사를 들고 나오게 될 때에, 그 사랑이라는 명사는 혼자 있어 가지고는 성립될 수 없는 말입니다. 사랑은 반드시 상대적 관계를 가질 때에 쓸 수 있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사랑'이라는 말을 하게 될 때에 하나님 자신이 자신을 사랑한다고 해서 그것이 사랑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상대가 있어 가지고 그 상대와 절대적인 사랑의 관계를 가질 수 있는 상대적 여건을 마련한 입장에 서지 않고는 사랑이라는 말은 성립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데는 상대적 여건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거예요.
그러면 그 상대가 누구냐? 그 상대가 동물 중의, 혹은 만물 중의 어떤 것이 될 수 있느냐? 그건 사람 이외에는 딴 것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어떤 동물이든지 하늘을 추앙하고 혹은 하늘을 숭배하는 종교의 형식을 가진 그런 동물은 없습니다. 인간만이 고차적인 하늘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두고 볼 때, 하나님이 사랑의 근원지라면 그 사랑에 상대될 수 있는 자격을 갖고 나타날 수 있는 존재는 인간밖에 없다는 답은 저절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랑의 닻을 어디에 내리려고 할 것이냐, 사랑의 뿌리를 어디에 내릴 것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나를 사랑한다고 해서 그 사랑 자체가 동기가 될 수는 없습니다. 사랑하려면 어떤 격위(格位)의 자리에서 사랑하려고 하느냐? 주종관계 (主從關係)의 자리에서 사랑하려고 하느냐? 그거 원하는 사람이 있어요? 절대적인 사랑의 주체라면 절대적인 사랑의 상대를 가져야 됩니다. 그런 입장에서 사랑해야 절대적인 사랑이 성립될 수 있는 것입니다.
종이라는 입장은 반드시 거리가 있는 것입니다. 안팎이 하나되어 가지고 신경이 한 방향을 통해서 투입되고 주입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라 모든 일이 딴 목적을 중심삼고 관계되어 있는 입장에 있는 것이 종의 자리 입니다. 이것은 사랑의 흐름에 있어서 그 동기를 같이할 수 없는 것이요, 바라는 최고의 상대적 여건을 같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외적 여건을 관계지을 수 있는 자리가 종의 자리입니다.
그러면 인간을 종의 자리에 두고 하나님이 사랑하려고 했느냐? 그렇다면 그것은 참다운 사랑이 아닙니다. 어디까지 올라가느냐? 양자로 사랑하려고 했느냐? 로마서 8장을 보게 되면, '아마 아버지'라고 부르며 양자를 추구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양자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양자로 두고 사랑하기를 바라느냐? 그거 원하는 사람이 있느냐?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양자 이상입니다. 양자 이상이예요.
사랑이라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사랑은 정서적인 내용을 제시했는데 그 사랑이 중심으로 설 수 있는 그 핵은 무엇이냐? 이것을 찾아들어가게 될 때 자연적인 결론으로서 하나님은 우리 인류의 아버지가 되어야 할 것이고. 우리 인간은 그의 아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이외의 길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이라는 명사를 들고 나온 하나님을 우리가 추구하게 될 때, 그 추구하는 기준이라는 것은 주종관계의 어떤 종이 아니라 어떠한 상대-그 상대는 내용 없는 상대가 아니라 절대적인 내용을 같이하고, 운명을 같이하고, 목적을 같이하고, 환경을 같이할 수 있는 입장에선 상대-적 관계를 중심삼은 사랑 관계를 중심삼고 태어난 존재가 아닐 수 없다는 것을 결론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가 어디냐? 하나님은 아버지가 되고 우리는 아들이 되는 자리입니다. 만일에 그 이상의 자리가 있다면, 인간의 욕망이라는 것은 또 그 자리를 원하는 거예요. 인간의 욕망은 최고를 원하기 때문에 만일 그 이상의 것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을 우리 인간에게 주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인간과 관계를 맺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응당히 하나님은 인류의 아버지가 되어야 되고, 인간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자리는 어떠한 권위를 가진 자리냐
그러면 그 아들의 자리는 어떠한 권위를 가진 자리냐? 그 아들이 어떠한 권위를 갖고 나오기를 바라느냐? 오늘날 여러분이 알고 있는 한 가정의 가주(家主)로서 몇 사람의 어버이가 된 아버지, 거기에서도 좋은 아버지가 됐느니 못 됐느니 하는 비판받는 그런 아버지를 원하느냐? 아닌 것입니다. 인간 세상의 자녀들로 하여금 비판받는 그런 아버지를 하나님의 아들로서 원치 않을 것입니다. 그는 어떠한 사람일 것이냐? 어떠한 종족의 대표자이기를 원치 않을 것입니다. 어떤 한 나라를 중심삼은 대표자이기를 원치 않을 것입니다. 절대자이니만큼 절대자의 자리에 선 아들, 그런 아들의 권위를 가진 아들을 원할 것입니다. 그 아들이란 권위를 가진 자리는 어떠한 자리냐 하면 국가적인 기준도 아니라구요. 이것은 세계적이어야 됩니다. 더 넘어서 오늘 통일교회 술어를 빌려 얘기하면 천주적이어야 됩니다.
우리 타락한 인간도 어느누구를 막론하고 전부 다 세계를 자기 손아귀에 넣고 싶은 것입니다. 그런 마음은 어린아이들에게도 다 있다구요. 남자뿐만 아니라 여자들에게도 그런 마음이 다 있다구요. 세계를 내 것 만들면 좋겠다. 가령 세계를 자기 것 만들었다 하면 말이예요. 그것을 자기것 만든 후에 다시 어떤 더 높은 분이 있으면 그분도 자기 것 만들고 싶다고 하는 거예요. 그거 그렇게 되는 거예요. 그분을 자기 것 만들었는데 그분 앞에 더 좋은 것이 있다고 한다면 '고것 난 싫소' 하겠어요? 그분을 내 것 만들었으면 그 다음엔 그 이상의 것을 원하는 거예요. 그 이상의 것이 뭐냐? 하나님을 내 것 만들어도 만족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나는 영원히 뗄래야 뗄 수 없고 아무리 가를래야 가를 수 없는 인연으로 하나되어 가지고 '그자 나요 나자 그'라고 할 수 있는 자리를 원할 것입니다. 그 자리가 무슨 자리냐? 사랑의 자리입니다. 그런 사랑을 중심삼고야 영원한 사랑이 인간세상에 관계를 맺지, 하나님이 영원한 사랑의 주체라면 우리 인간이 그분과 그러한 관계를 맺어 가지고 사랑의 일치점을 찾지 못하고는 인간 세상에는 영원한 사랑을 중심삼은 이상세계는 있을 수 없습니다.
이상세계라는 것은 어떠한 소망만을 중심삼아 가지고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평화의 기원이요, 행복의 기원이기 때문에 정서적인 분야를 절대시한 터전 위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세계에서 권력을 가진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그가 아무리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혼자서 행복한 사람이 될 수가 있어요?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라구요. 상대적 여건을 중심삼고 깊고 넓고 높게 세계 이상의 가치를 다짐할 수 있는 심정의 터전을 갖고 서게 될 때 그 앞에 외적으로 갖추어진 그 권위가 내적으로도 빛나는 것이지, 내적 기준이 갖추어지지 않을 때는 아무리 외적 기준을 갖추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도리어 불행을 자초하는 조건밖에 못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과 하나님과는 부자의 관계인데 어떻게 해서 그런 관계가 맺어진 것이냐? 이런 근본 문제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신비스러운 경지에 들어가 가지고 기도하게 될 때, 인간은 피조세계의 중심인데 이 우주의 중심은 뭐냐고 묻게 되면 부자지관계(父子之關係)라는 답을 가끔 얻게 됩니다. 우주의 중심이 뭐냐? 한마디로 딱 결론을 지어 주는데 부자의 관계라는 것입니다.
이거 보통 사람들은 자기를 낳아 준 어머니 아버지를 말하는 줄 알고 있다는 거예요. 부자의 관계라고 하는 것을 보통 생각하는 자기 어머니 아버지, 즉 인륜도덕을 중심삼은 부자의 인연을 말하는 줄 알고 있다구요. 그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입체적인 입장에서 보게 되면, 하나님과 인간이 부자관계의 정(情)을 중심삼고 하나되어 있는 그 자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결론이 나온다는 거예요.
하나님은 아담 해와를 왜 지으셨느냐
그러면 어떻게 해서 그것이 부자의 관계냐 하는 것이 문제돼요. 그러면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왜 지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수난의 근본을 파고들어가는 거예요. 왜 지었느냐? 슬퍼하기 위해 아담 해와를 지은 것이 아니라구요. 기뻐하기 위해서 지었습니다. 기뻐하려면 어느 정도로 기뻐하려고? 최고로. 그럴 게 아니예요? 최고로 기뻐하려고 지었지 최하로 기뻐하려고 지었다면 그건 말이 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러면 최고로 기뻐하는 자리는 어떤 자리냐? 여러분, 기쁜 친구를 만나게 되면 악수를 해도 힘을 주어 가지고 서로 붙안고 그러잖아요? 그러면 사람하고 하나님이 악수하면서 붙안고 좋아하는 것이 최고예요?
여러분 말예요. 제일 귀한 보물, 예를 들어 몇 캐럿짜리 다이아몬드 반지를 끼고 다니는 아주머니가 있다면, 그 아주머니뿐만 아니라 동네에 있는 아주머니들까지 전부 다 그 아주머니에게 보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아무네 집 아줌마는 손에 반지를 끼고 다니는데, 그게 몇백만 원짜리래' 하는 소문이 나서 다 안다는 거예요. 이렇게 되면, 사람들이 모를 때에는 그것을 버젓이 끼고 다닐 수 있다구요. 그것이 가짜인지 진짜인지 누가 아나요? 그렇지만 아는 사람이 많으면 끼고도 감춘다구요. 끼고 나가더라도 감추고 다니고 싶지, 그래 '난 모르겠어요' 그럴 것 같아요? 그렇다는 거예요. 사람이 볼까봐서도 아는 환경에서 감추려고 하는데 그걸 서로 갖고 싶어서 따라오면서 갖겠다고 한다면 어떻게 하겠어 요? 그런 사람이 있어서 그걸 감추려고 한다면 어디에 감출 것 같아요? 단스(장롱)? 철궤?
여러분, 영화 같은 거 보지요? 거 몇 겹씩 채워 놓은 철궤도 전부 다 뜯어내어 보물을 훔쳐가는 세상인데 아무리 철궤를 단단하게 채워 놓으면 뭘해요? 뭐 철궤는 안 뜯는 줄 알아요? 빼앗아 가는 거예요. 그러면 안심할 곳이 어디냐? 감춰 두어도 안심할 수 있는 곳이 어디냐? 그것을 연구해 보면 '내 눈에만 보이고 남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곳에 감춰 뒀으면 좋겠다' 하는 결론이 나오는 거예요. 여러분, 안 그렇겠어요? 내 눈에만 보이고, 나만 알고, 세상 사람 눈에는 안 보이고 모르는 곳에 감춰 두고 싶다는 거예요.
그러면 과연 이 세상에 내 눈에만 보이고 나만 알고 세상 사람 눈에는 안 보이고 모를 수 있는 자리가 어디 있느냐? 이렇게 찾아 보게 되면 성경에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 6:21)"고 했습니다. 마음이 있는 곳에 보물이 있지 않고, 까꾸로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보물을 따라다녀요. 오늘날 타락한 세상에 있어서 그런 말은 가당한 거예요.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보물이 마음을 따라 다니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
인간의 마음과 사랑의 인연
그러면 그 마음에 보물을 채워 넣기 위해서는 마음이 작아 가지고 되겠어요? '마음이 얼마나 크냐' 할 때 '마음이 바늘 눈만큼 크지' 그래요? '마음이 얼마나 작으냐' 할 때 '모래만큼 작지' 그래요? 여러분의 마음은 큽니까, 작습니까? 세계를 천 개 만 개 집어넣고도 더 넣으려고 한다구요. 그건 자기 소유물로 만들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을 자기 것 만들었다 하더라도 세계를 자기 것 만들고 싶다는 거예요. 세계를 자기 것 만들었으면 그 다음에는 우주를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거 무엇이 그렇게 하려고 하느냐? 마음이 그렇게 하려고 그러는 거라구요. 그 마음이 얼마나 크냐? 하늘땅보다 더 크다. 그러면 하나님과 견주어 볼 때 그 마음이 하나님 속에 들어가고 싶겠느냐, 하나님도 마음속에 집어넣고 싶겠느냐? 어때요? 욕심 많은 인간을 두고 보면 하나님도 자기 마음의 울타리에 가두어 놓고 자물쇠를 딱 잠가 버리고 싶지. 여러분은 안 그래요? 난 그래요.
만일 하나님을 원수가 잡아가서 그 원수의 마음속에 집어넣고 자물쇠를 딱 채워 놓게 된다면 어떻겠어요? 하나님도 그것은 질색이라구요. 그렇지만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사람한테 싹 모셔다 그 사람의 마음속에 집어넣고 자물쇠를 딱 잠갔다면 어떻겠어요? 하나님이 그저 박차고 나오려 하겠어요, 마음속으로 더 파고들어가려고 하겠어요? 그게 문제라구요. 사랑하는 사람은 마음속에 두고 싶은 것입니다. 마음속에 있는 것입니다.
타락한 이 땅 위의 부모들을 중심삼고 보더라도 자기가 사랑하는 아들이 외국에 가 있다면 그 부모는 언제나 외국 간 아들을 마음에 두고 있어요, 안 두고 있어요?「두고 있습니다」 아들이 외국 가 있는데 마음에 두고 있어요? 이런 말 자체가 전부 다 종교적인 술어예요. 아들이 외국에 가 있는데 마음에 두고 있단 말이예요. 그걸 보면 마음은 거리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얼마만큼 마음에 두고 싶으냐? 자기 아들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 얼마만큼 사랑하고 싶겠어요? 자기 아들을 사랑하는데 요만큼 사랑하고 싶겠어요? '그거야 박씨 성을 가진 여자로서 내가 김 아무개한테 시집을 왔는데 그 김 아무개라는 영감의 됨됨이가 열 냥쯤밖에 안 되니 자식이 아무리 훌륭했댔자 그보다 나을 수 있나? 그러니까 아홉 냥쯤 정도로 사랑하자' 그래요? 아버지는 꼬락서니가 뭐 꼴뚜기 새끼처럼 형편없는데도 불구하고 자식은 어느만큼 크게 생각하려고 그래요? 하늘땅보다 더 크게 생각하려고 그래요. 이게 다 모순이라는 거예요. 헤치고 들어가면 문제가 많다는 거예요. 아무리 작은 존재라도 그것이 마음속에 두고 싶은 진정한 사랑의 인연을 맺게 될 때에는 큰 존재로 모시고 싶은 것이 우리 인간의 마음입니다.
사랑의 순서
통일교회의 원리를 중심삼고 보게 되면, 오늘날 타락한 인간은 낳자마자 지옥행이라구요. 그렇지 않아요? 낳자마자 지옥에 입적하는 거예요. 틀림없다구요. 그것 가지고도 어머니 아버지들을 보게 되면, 자식 사랑하는 것이 뭐라고 하는 말도 있지만 말이예요, 보기에는 기왓골에 올려 놓은 호박통 같은 그런 애를 턱 업고 앉아 가지고 둥둥둥둥 하면서 '이렇게 생겼으니 더 구수한 맛이 있다구'하며 자랑을 한다는 거예요. 그래도 조금도 어색하지 않거든요. 여기 애기를 가진 부모들도 잘 할 거라. 얼굴은 그저 독수리와 싸우다가 긁힌 것 같은 상판대기를 한 부모요, 그 아들은 부모보다 더 험하게 생겼는데도 불구하고, 부모는 그 아들을 껴안고 '어화 등등 내 사랑아'한다는 거예요.
여러분, 세상으로 말하면 귀한 것 중에서 제일 귀한 것이 뭐예요? 세상으로 보면, 뭐 하나님은 있는지 없는지 모르니까 제쳐 놓고, 세상에서 제일 귀한 게 뭐예요? 귀한 게 뭔지 찾아 보라구요. 「자녑니다」 자녀. 그다음에는? 자기 신랑 자기 신부지요. 상대 아니예요. 그 다음에는 뭐예요? 부모. 그 이상 귀한 게 없다구요. 그것을 귀하게 여기지 못하는 사람은 세상만사가 다 귀찮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청소년 문제가 세계적인 문제가 되어 있습니다. 윤리관을 중심삼고 문제가 되어 있는데, 그게 왜 자꾸 세상에 전개되느냐? 참다운 부모의 사랑에 도취할 수 있는 자리, 또 서로 안 보면 못 견디겠다고 하는 형제의 사랑에 도취할 수 있는 자리에 섰다면 그렇게 되겠어요? 그렇게 되라고 제사를 지내 보라구요. 그렇게 되는가, 안 되는가. 요러한 근본적인 귀한 가치의 기준과 접근하지 못하기 때문에, 다시 말해서 상대적 세계의 가치를 찾으려고 하는데 안 찾아지니까 그렇게 되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인간 세상에서 제일 귀한 것은 자녀입니다. 그 다음에 부부 입니다. 그 다음에 부모입니다.
인간 세상의 슬픔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판서하심) 그것은 간단한 문제입니다. 물적인 조건과 정적인 조건 이외에는 없습니다. 찾아 보라구요. 물적 조건, 그 다음에 정서적 조건 외에는 없습니다. '아이구, 난 속상해서 못 살겠다. 아이구, 난 어려워서 못 살겠다'는 말을 하면 그것이 슬픔의 조건에 걸리는 거예요. 우리들도 그래요. 어떤 목적을 바라보고 나가는 것이 전부 다 여기에 걸린다구요. 물적 조건을 중심삼아 가지고는 우리가 생명 이상의 사랑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건 유동적인 것입니다. 사람을 중심삼아 가지고 사랑할 수 있는 최후의 자리는 자녀의 자리, 부부의 자리, 부모의 자리 이상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부모의 마음에는 사랑하는 사람이 누가 먼저 있어야 되느냐? 누가 먼저 있어야 돼요? 어머니를 중심삼고 볼 때, 자식이 먼저 있어야 돼요, 영감이 먼저 있어야 돼요? 세상에서는 어떻게 돼 있어요? 사랑하는 어머니가 있게 되면 그 어머니 마음 가운데 먼저 있어야 할 사람이 누구냐? 자식이예요, 누구예요? 남편이예요? 이것이 문제되는 거예요. 이것을 왜 물어 보느냐 하면, 내가 물어 보고 나서 이제부터 얘기하려고 그래요.
자식이예요, 남편이예요? 대답하라구요. 「자식요」 똑똑히 대답해요. 이 아주머니들은 자식이라고 생각할는지 모르겠구만, 그런 사람은 남편한테 천대받고 구박받고 수모받고 다니는 사람일 거라구요. 누가 먼저예요? 자식 사랑하듯이 남편을 사랑해야 되느냐, 남편 사랑하듯이 자식을 사랑해야 되느냐? 여러분, 이걸 다 결정짓고 넘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대답해 봐요. 모르겠지요? 자식 사랑하듯이 남편을 사랑해야 되겠느냐, 남편 사랑하듯이 자식을 사랑해야 되겠느냐? 아주머니들, 한번 대답해 봐요. 그러면 자식이 죽으면 좋겠어요, 남편이 죽으면 좋겠어요? (웃음) 대답해 봐요. 그렇게 되면 남편이 죽는 게 낫지요. (웃음)
자식을 중심삼고 볼 때 내가 자식이 되었으면 그 위에는 부모가 있습니다. 그렇게 되는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나를 중심삼고 얘기하게 되면 부자관계요 부부 관계지만, 위를 생각하면 누가 있어요? 부모가 있습니다, 부모. 이렇게 되는 거예요. 자, 그러면 부부가 먼저냐, 부모가 먼저냐? 「부모가 먼저입니다」 자식은 나중입니다. 부부 이후라구요. 그러면 부모가 먼저면 얼마만큼 먼저냐? 정서적인 기원에 있어서는 첫출발입니다. 부모가 먼저입니다. 부모가 있어 가지고 자식을 낳아 키우게 되면 그 다음에 상대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식을 가진 어머니는 남편과 자식 중에 누구를 죽음의 자리에 내놓겠느냐고 묻게 되면, 그 어머니가 진짜 자식을 사랑한다면 남편을 죽음의 자리에 내놓으면 내놓았지 자식은 안 내놓겠다고 하는 거예요. 남편들이 들으면 섭섭할는지 모르지요. 요즘 세상 같으면 '그거 뭐 자식이야 죽으면 또 낳으면 되지 않느냐?'고 하지만 그것은 부가조건이고, 원칙을 따지고 들어가 순서가 어떻게 돼 있느냐 하면, 부부라는 것은 맨 나중에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사랑의 역사가 그렇다구요. 사랑의 역사가.
인간은 하나님을 자기의 몸 이상으로 사랑해야
그러면 인간세상에 있어서 사랑은 무엇에서부터 생겨났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우리 인류의 조상 아담 해와는 부부가 아니냐? 그러면 부부에서 사랑이 출발했지'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인간세상에 있어서는 그렇게 말할 수 있지만 인간과 인간 이상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어떻게 되느냐? 그게 부자의 관계 외에는 있을 수 없다는 거예요. 안 그래요? 사랑을 찾아들어가게 되면 부자의 관계 외에는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은 어디서부터냐? 어버이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창조하는 데는 장난으로 창조한 것이 아니라구요. 무엇으로? 이상적 절대자 앞에 상대적 절대자, 이거 어려운 말입니다. 상대적 절대자로서 사랑할 수 있는 사람, 사랑을 중심 삼고 부모 앞에 상대적인 절대자로서 세워 놓은 존재가 누구냐 하면 자식이라구요. 그것은 자기 생명을 받아 가지고 나타나는 거라구요, 그러면 하나님이 인간을 얼마나 사랑했느냐 하는 문제가 나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얼마나 사랑했느냐? 하나님은 영원한 생명의 주체이지만 하나님의 생명을 투입하더라도 사랑 안 하고는 못 견디겠다, 하나님의 생명을 끊더라도 사랑한다고 하게 되면 좀 어폐가 있지만, 하나님의 생명을 투입해서라도 사랑 안 하고는 못 배기겠다…. 그러면 하나님이 자식을 위해서 죽어야 할 자리에 있게 되면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절대자가 성큼 망하면 되나요? 그 자리를 넘어설 것이냐, 그 자리에서 버티고 나갈 것이냐? 대답해 봐요.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사랑의 주체인 절대적인 하나님이 절대적인 아들을 보았는데 그 아들을 위하여 죽을 자리에 있게 되면, '난 싫어. 난 이리로 가야지' 그러겠어요, 죽을 자리를 대신해서 가겠어요?「죽을 자리를 대신해서 갑니다」 그것은 무엇을 봐서? 우리 인간을 봐서. 인간의 사랑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위해서 죽는다구요. 그렇게까지 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해야 되느냐? 자기의 몸 이상으로 사랑해야 됩니다.
인간에게 가장 귀한 것은 사랑
그러면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귀한 것이 무엇이냐? 다이아몬드예요? 여자들 가운데는 남편보다 다이아몬드를 더 사랑하는 사람이 있을는지 모르지만 말이예요. 남편이 귀하냐, 다이아몬드가 귀하냐 할 때 다이아몬드는, 런던 박물관에 가 보면 517캐럿이나 되는 세계 최고의 다이아몬드가 있어요. 그런 반지를 열 손가락에 떡 끼고 앉았다고 가정합시다. 오, 거룩하신 다이아몬드님들이여! (웃음) 그걸 보기만 해도 천지가 다 내 품에서 놀아나는 것 같다구요.
그건 세계 최고의 희망봉으로 있다는 거라구요. 그걸 열 손가락에 끼고 앉아 있으면 '자. 이것이면 그만이다' 그래요? 여기에 앉아 있는 우리 인텔리 여성들에게 물어 보자구요. 그런 다이아몬드 반지를 열 손가락에 끼고 앉아 가지고 '이것이면 다다. 남편이야 맘대로 놀아나도 좋다'는 여자는 손들어 봐요. 그런 여자는 때려죽이라구요. (웃음) 때려죽이라고 해도 그런 여자가 없기 때문에 걸리지 않는다구요. (웃음) 그런 사람 있어요? 없지요.
이걸 보게 되면 실감이 나는 거예요. 야, 요거 사랑이 무엇이냐? 밑도 끝도 없는 것 같은데 그런 작용을 하더라는 거예요. 이 말에는 이의 없지요? 남자들은 어때요? 이의 있어요?「없습니다」 돈을 위해서는 자기 모가지도 내놓고, 자기 여편네도 팔아먹겠다고 그런다면, 그 말이 성립되 겠어요? 그것은 가짜 남편이기 때문에 그렇지, 진정한 사랑을 가진 사나 이가 아니기 때문에 그렇지…. 그거에 이의 없지요? 전부 입을 벌리고 '허허' 하는 것을 보니 이의가 없는 것 같구만요. 사랑은 다 좋아한다는 거예요. 여기에 있는 사람 중에서 '사랑은 난 싫어' 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내가 예를 하나 들지요. 우리가 집에서 기르고 있는 고양이 새끼도 주인이 천대하는 것을 좋아합니까? 그래요, 안 그래요?「안 그렇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을 좋아해요?「사랑하는 거요」 사랑하는 것도 뭐 자기 상대와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그저 가까이하려고 하고, 쓰다듬어 주고, 가다오다가 한번씩 간섭해 주고. 그러면 좋아하는 거예요. 고양이 새끼도 그런데 강아지는 더하다는 거예요. 요건 그저 쫄쫄 따라다닙니다. 주인이 어디 나갔다 들어오게 되면 기뻐서 들어오는지 슬퍼서 들어오는지도 모르고 자기를 사랑해 주던 주인을 중심삼고 꼬리를 흔들며 달려듭니다. 그러다가 배때기를 차인다 이거예요. (웃음) 하기야 먹고 잠만 자는 강아지가 뭐 슬플 게 있어요? 그런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우주에서 가장 귀한 하나님을 모시고 다닐 수 있는 것은 마음
자, 그러면 사랑이 어디서 오느냐 할 패 하나님까지 올라갔어요, 하나님. 하나님은 귀한 분인데 이 귀한 분을…. 여러분, 귀한 보물이 있으면 어떻게 합니까? 할 수 없어서 집에 두고 다니지요? 그것을 집에 두고 다니면 마음이 놓여요? 안 놓이지요? 그래서 될 수 있는 대로 자기 몸에 지니고 다니려고 한다구요.
어떤 사람들은 옛날에 첫사랑을 할 때 장래를 약속하며 주고받은 애인의 물건을 가지고 다닙니다. 누더기같이 되어 날아가던 파리도 안 붙을 만큼 형편없는 것이라도 싸고 또 싸 가지고 차고 다니고 이렇게 끼고 다니는 사람을 내가 보았습니다. 그것을 몇 년 동안 가지고 다녔느냐고 물으니까 수십년 동안 가지고 다녔다고 하는 거예요. 그것이 무엇이길래 그러느냐? 그 사람은 그것을 제일 귀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자기의 살 속에 넣어 가지고 다니고 싶고, 그것을 만약 훔쳐가겠으면 살을 째고 그 속에 넣어 꿰매어 두고, 그래도 밤에 잘 때 누가 살을 째고 훔쳐갈지 모른다고 생각되면, 뼈에 구멍을 뚫고 넣어 두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럴 게 아니예요?
우주에 하나밖에 없는 귀한 것을 어디에다 감출 것이냐, 어디에 두고 다닐 것이냐? 우주에서 제일 귀한 분을 여러분은 그냥 집에 두고 다니고 싶어요, 항상 갖고 다니고 싶어요? 도둑놈이 많은 세상이라 두고 다니면 큰일나는 거라구요. 이렇게 생각해 보게 될 때 자기 몸에 그것을 갖고 다닐 수 있는 장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느냐 이거예요.
그 장치가 뭐냐? 하나님을 모시고 다닐 수 있는 그 장치가 뭐냐? 그게 마음이예요, 마음. 이것은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마음을 빼앗아 갈 수 있어요? 이것은 절대적이라구요. 이 마음속에 감추어 두면 말이예요. 조그만 고무통 같은 데 큰 것을 갖다 집어넣으면 큰 야단이지만…. 마음이 얼마나 크냐? 하나님 열 분이 들어와 있더라도, 하나님보다 더 큰 것이 있더라도 훌쩍 삼켜 버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이 하나님을 모셔 낼 수 있을 것 같소, 없을 것 같소? 하나님이 우리 인간과 관계를 맺는다면 어디에 맺을 것이냐? 틀림없이 마음입니다.
귀한 것은 남이 보는 거 싫다구요. 남이 들여다보고 '야! 고거 내가 가지고 싶다'고 하면서 도둑질해 가는 거 싫다구요. 여러분, 마음을 볼 수 있어요? 마음이 있기는 있는데 볼 수 없다구요. 그걸 나는 알아요, 몰라요?「압니다」 나만이 안다구요. 나만이 알고 감춰둘 수 있는 곳을 우주 가운데서 찾다 찾다 보니 먼 데가 아닌 마음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야! 그놈을 마음속에 다 감추면 그 이상 없겠다' 그렇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은 우주에서 제일 귀한 분이시니 그분을 어디다가 감추어 모시고 싶으냐? 마음 가예요, 깊은 골짜기예요?「깊은 골짜기요」 깊은 골짜기에 모셔 놓고는 어떻게 하려구요? 하나님을 굶겨 죽이려구요? 그건 안 된다구요. 깊은 골짜기에 숨겨 두더라도 하나님이 좋아할 수 있는 길만 있다면 틀림없습니다. 마음속 깊이 꽁꽁꽁꽁 감춰 두어도 하나님이 좋아하실 수 있는 길이 뭐냐? 무슨 장사하기 위해서? 그렇다면 하나님이 불편하실 겁니다. 그렇지만 꽁꽁 감춰 두고 '하나님과 나는 끊을수 없는 사랑의 인연이 있기 때문에 나가지 말고 나와 꽁꽁 묶어져서 하나됩시다' 하면 하나님이 싫어하겠어요, 좋아하겠어요?
자, 우리 나이 많은 양반들, 여기 전도관에서 오신 양반, 나이 많은 사람한테 물으면 틀림없겠지요? 어때요? 꽁꽁 묶어 가지고 사랑을 중심삼고 그 사람의 맨 밑창에 깊이 들어가서 하나되고 싶소, 그저 적당히 가다가 중턱에서 하나되고 싶소? 중턱에서요? 밑창에서요?「밑창에서요」 밑창도 어느 밑창? 맨 밑창 골짜기지요? 요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길을 찾아보게 될 때 그길을 돌파하고 들어갈 수 있는 길은 무슨 길밖에 없다구요? 사랑의 길밖에 없습니다. 어머니가 귀여운 아들딸에게 사랑의 표시를 할 때는 어떻게 합디까? '아이고 곱다' 그래요? 그저 품에다 안고 얼굴을 비비고 하는 것입니다. 난 뭐 그럴 것 같은데 여러분들은 어때요? 아주머니들은 실감이 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그렇게 사랑할 수 있는 자리는 어디일 것이냐? 그 자리를 찾게 될 때, 그건 아들의 자리 외에는 없습니다. 아들의 자리 외에는 없어요. 그 다음에는 상대적 관계 외에는 없습니다. 결론이 나왔어요.
그러면 '나'라는 존재를 두고 볼 때, '나'라는 존재는 위로 부모로부터 사랑을 상속받아 가지고 그 부모를 몽땅 자기 마음에 모시면 그 부모가 불만스러워해요, 행복스러워해요? 몽땅 자기 마음에 그 부모를 모셔 두고 사랑한다고 할 때, 어머니 아버지가 좋아하겠어요, 싫어하겠어요?「좋아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아담 해와를 중심삼고 볼 때, 아담 해와가 부모인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몽땅 받고 '하나님, 죽더라도 못 나갑니다. 사랑이 부족하면 모르지만, 사랑이 부족하지 않는 한 못 나갑니다' 할 때 하나님은 어떻게 하겠어요? 하나님도 '그러고 말고' 그러겠어요, 안 그러겠어요? 그렇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과 나와는 어떤 관계냐? 안팎관계가 되고 싶다. 그렇지 않아요? 안팎관계인데 무엇을 중심삼고 맺어 놓고 하나 만들고 싶으냐?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라는 건 사랑을 안 가지고는 안 되는 겁니다. '우리 집은 하나되어 있어' 그럴 때는 돈 가지고 하나가 되었다고 합니까? '어머니 아버지가 언제나 하나되어 있어' 그런 말 하지요? '우리 형제끼리는 의가 좋아', '우리 집은 다 평화로와', '우리 집은 너나할것없이 하나 되어 있어' 이런 말을 하게 될 때 그건 무엇을 기반으로 하는 말이예요? 돈을 가지고요? 어머니 서열, 장자 서열, 차자 서열 가지고요? 아니라구요. 이것은 정서적인 문제를 가지고 말하고 있는 거예요. 그것은 여러분이 잘 알 거라구요. 하나님과 인간이 안팎관계로서 하나되어 가지고 이것을 묶는 데는 무엇을 가지고 묶느냐? '너자 나요. 나자 너'라는 경지에 까지 가야 하는 거예요.
절대적인 하나님도 상대가 없으면 기쁨을 못 느껴
자, 이제 여기서부터 결론을 짓고 들어갑시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어떻게 되느냐?(판서하시면서 설명하심 ) 하나님은 내적이고, 사람은 외적입니다. 안팎의 관계입니다. 이 하나님과 인간은 서로 떨어져서는 안 되고 같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주의 중심은 하나님과 인간이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혼자 있으면 우주가 형성됩니까? 그 우주에서 뭘해요? 버티고 그저 바라만 봐요? 사랑이라는 개념을 들고 나오게 될 때에는 혼자 안 돼요. 하나만 가지고 안 된다 이거예요. 안 그래요? 아무리 훌륭한 미남이 있어도 혼자 버티고 있어 보라는 거예요. 상대가 없게 될 때는 그미남의 마음이 기쁠 수 있어요? 사랑이라는 개념을 중심삼고 볼 때, 하나님만 가지고 안 됩니다. 또 사람만 가지고도 안 됩니다. 사람과 하나님이 합해야 됩니다. 이게 원칙이라구요. 최제우 같은 양반은 인내천 주의 -이것이 횡적 관계냐 종적 관계냐 하는 것을 가려 놓지 못해서 막연합니다만-를 중심삼아 가지고 놀라운 말을 한 것입니다.
우주의 중심이 뭐라구요? 하나님은 하나님이지만 하나님만 가지고는 안 된다구요. 하나님과 인간을 합한 것입니다. 그러면 그 우주의 중심이 어떻게 우주와 관계를 맺어 나가느냐? 여기에 있어서는 사랑의 관계를 중심삼아 가지고 나가는 겁니다. 여러분 가운데 영계에 대해 체험이 있는 사람은 대번에 아는 것입니다. 영계에 척 들어가게 되면 말이예요. 영계의 공기는 뭐냐? 사랑이예요. 오늘날 이 땅 위의 생명의 요소는 공기지요? 물고기로 말하면 물이 생명의 요소지요? 마찬가지로 영계의 생명의 요소는 사랑이라는 거예요. 차원이 달라요. 호흡기관이 크면 호흡량이 많은 것과 마찬가지로 사랑의 대소에 따라 그 사람의 영생도에 대한 장단이 벌어지는 거예요.
자, 이렇게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느냐? 보라구요. 하나님은 누구를 위해서 인간을 지었느냐? 누굴 위해 지었어요? 인간을 위해 지었어요, 자기를 위해 지었어요? 자기를 위해 지었어요? 인간은 무엇 때문에 지음을 받았느냐? 인간 때문이예요? 하나님 때문에 지음받았다구요. 이렇게 되는 거예요. 우리 인간은 하나님 때문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인간을 지은 목적은 어디에 있느냐? 그 창조의 목적, 지은 뜻은 어디 있느냐? 아담 해와를 보기 위해서 지었어요? 여러분, 그걸 알아야 해요. 지은 목적이 어디 있느냐? 좋기 위해서. 좋은 데는 그냥 좋은가? 사랑함으로써 좋은 것이다. 그 창조의 출발은 사랑 때문입니다. 모든 존재의 기원은 사랑 없이는 생겨나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인간 뿐만 아니라 모든 동물도 전부 다 사랑의 근거를 통해서 생겨납니다. 생물이 생명을 이어받게 되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사랑 때문에 이어받는다구요. 요렇게 되는 거예요.
인간이 하나님을 대해 가지고 짝자꿍도 할 수 있고 맞장구도 칠 수 있는 무엇이 없어 가지고 어떻게 절대적인 하나님의 상대가 되느냐 이거예요. 이렇게 볼 때 사람은 하나님도 점령하려고 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거예요. 가능하겠어요, 가능하지 않겠어요? 여러분은 전부 다 세계를 내 것 만들겠다고 해야 합니다. 세계를 내 것 못 만들겠다고 하는 패가 하나님을 내 것 만들겠다고 그러겠어요? 그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여기에서 당연한 결론이 나옵니다. '아하,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는 전부 다 그분 것이지만 내 것이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이쯤 되면 하나님과 우리 인간이 가까와졌어요, 안 가까와졌어요?
요즘 기성교회에서는 '하나님 아버지는 거룩하신 분이고 우리는 죄인 중의 죄인이다'라고 합니다. 그 죄는 죄 중에서 어떤 죄냐? 사형대에서 죽어야 할 죄냐, 그저 닭 한 마리 훔쳐 먹은 죄냐? 시궁창에 빠져 가지고 죄를 지었느냐? 어떤 죄를 지었느냐? 그저 하나님은 거룩하고 나는 죄인이예요? 덮어놓고 죄인이라고 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무슨 죄를 지었느냐 이거예요. 죽어야 할 죄를 지었다면 죽이는 데도 어떻게 죽여야 할 죄냐? 시궁창에다 처넣고 죽일 것이냐, 갈래갈래 각(脚)을 떠서 죽일 것이냐? 여러 가지 입장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고 우리는 죄인'이라며 떡 갈라 놓고 야단하고 있다구요. 거 안된다는 거예요. 근본을 여러분이 알아야 돼요. 이렇게 이야기하다가는 한이 없겠군요.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나긴 했지만 이왕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들어 두면 나쁘지는 않을 거예요.
하나님은 내적 하나님, 인간은 외적 하나님
자, 본론으로 돌아갑시다. 하나님과 아들의 관계를 보면 상하 관계지요? 아버지가 높으냐, 아들이 높으냐 할 때 누가 높아요?「아버지요」 그것을 물으면 어느누구를 막론하고 아버지가 높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면 아들은? 아버지가 높다고 했으니 아들은 낮은 게 아니예요? 그러면 높은 자하고 낮은 자하고는 사랑할 수 없다고 하게 되면 하나님을 인간하고 사랑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지만, 사랑할 수 있다고 하게 되면 하나님은 인간하고 사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높은 분이고, 인간은 낮은 존재라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아들보다도 높고 아들은 낮다는 거예요. 아들이 월 알아요? 금방 낳아 놓으면 핏덩이인데…. 갓낳았을 때에는 원숭이 새끼가 도리어 더 곱다구요. 그런데 아무것도 모르는 핏덩이를 중심삼아 가지고 어머니도 '흐흥', 아버지도 '흐흥' 한다는 거예요.
자, 높은 사람하고 낮은 사람하고 하나될 수 있어요, 없어요? 주종관계가 될 때에는, 상하관계가 될 때에는 보라구요. 사람의 욕심은 아래를 좋아해요, 꼭대기를 좋아해요?「꼭대기요」 꼭대기를 좋아하는 버릇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상투 끝까지라도 올라가겠다는 거라구요. 하나님은 그것을 염려했던 거예요. 사람의 욕망을 이토록 높이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타락하지 않았어요? '하나님과 같이 되어야 할 텐데…. '하나님보다 더 높을 수 있으면…' 거기서 타락한 거예요. 그러다가 하나님의 상투 끝까지, 상투는 없지만, 꼭대기까지 올라가려고 하는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은 어떠냐? 하나님보다도 자식이 더 높아지겠다고 할 때 하나님이 '야! 이 녀석아. 그런 법이 어디 있어? 이놈의 자식아' 이랬다 가는 하나님 가정에도 싸움이 벌어지는 거예요. 안 그래요? 하나님 가정에도 하나님하고 아들하고 싸움이 벌어집니다. '언제나 아버지는 위이고 난 아래면 싫소' 한다면 어떻게 하겠어요? 이렇게 되면 하나님도 곤란할 거라구요. 그러나 하나님은 그 이상까지 생각해 가지고 인간을 지었다는 거예요. 자신의 창조성과 이상성까지 완전히 투입했기 때문에 인간이 불평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많다는 것을 아시고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대해서 무엇까지 생각했느냐 하면 내외 관계까지, 좌우 관계까지 생각했다는 거예요. '얘야, 내가 위도 아니고 네가 아래도 아니다. 너하고 안팎 관계다' 알겠어요? 여기까치 생각했다는 거예요. 상하 관계가 아니라 안팎 관계라구요.
그러면 무엇을 중심삼고 그렇게 했느냐? 안팎 관계, 상하 관계로서 모순, 상충이 없이 언제나 원만하게 계속 유지시킬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 할 때 사랑 외에는 없더라는 것입니다. 권력 가지고는 안 됩니다. 권위 가지고는 안 돼요. 그것은 대번에 깨진다는 거예요. 인간을 어느 정도까지 생각하느냐? 너는 밖이고 나는 안이라는 거예요. 그 말은 무슨 뜻이냐?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내적 하나님이요, 사람은 보이는 외적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기분 좋지요? 생각해 보세요. '인간은 보이는 외적 하나님이다' 한번 그래 봤어요? 통일교회 문선생 말을 빌려 얘기하게 된다면 '하나님, 높으신 당신도 내가 없으면 높다고 못 하오리다. 나는 외적인 하나님이다' 한번 그래 봤어요?
기성교회 목사들을 보게 되면, 언제나 주눅이 들어 가지고 '어이쿠 하나님 ! 저희는 죄인이옵니다' 하고 기도합니다. 그저 죄인, 종…. 거 기성 교회 목사였던 사람이 있다면 기분이 나빠도 할 수 없습니다. 사실이 그런걸. 종, 종…. 거 무슨 뗑그렁뗑그렁하는 종(鐘)이예요? (웃음) 그래, 일생 동안 허리가 구부러지고 늙어 죽도록 믿어 나오면서 겨우 종이 되기를 바라요? 되든 안 되든 아들이 되기를 한번 바라 보지요
인간의 가치
그런 의미에서 통일교회 문선생은 예수에 대한 인격비판을 무자비하게 했어요. 그러면 그보다 나아야 되겠어요, 못해야 되겠어요? 낫지 않으면안 된다는 결론이 나온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단의 괴수라는 팻말이 붙더라도 지금 버티고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 진짜인가 두고 보자구요. 크고 작은 것은 대봐야 압니다. 그것은 누가 대보느냐? 하나님이 대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대보는 것이 아니라구요. 하나님이 대봐 가지고 작은 녀석은 집어 던지고 큰 녀석은 갖는 거라구요. 그렇지 않아요? 내용이 같다면 작은 것을 가지겠어요, 큰 것을 가지겠어요?
그래, 통일교회 사상하고 기성교회 사상 중에 어느 것이 커요? 그것은 이제 겨우 유치원 들어가려고 말 배우는 어린이한테 물어 보더라도 '통일교회의 사상이 더 크지요' 하고 서슴지 않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큰 걸 좋아해요, 작은 걸 좋아해요?「큰 걸 좋아합니다」 사람은?「사람도 큰 걸 좋아합니다」 큰 걸 좋아하기 때문에 기성교회 문만 열어 놓으라는 거예요. 그러면 한꺼번에 설복당한다는 거라구요. 뭐 반년도 안 간다구요, 내게 맡기면….
이렇게 전부 다 하나 만들어 가지고 그걸 내가 탕진해 먹겠다는 것이 아니라 복받게 해주려고 지금까지 이러는데 그게 원수로구만. 여기에도 그저 반대하던 녀석들이 많이 왔을 거예요. '반대한 분들' 하게 되면 서로가 기분이 좋지 않다구요. (웃음)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탕감원리를 배웠기 때문에 '반대하던 녀석'이라고 해야 탕감이 되지…. 거기까지 올라갔습니다.
그래, 사람의 가치가 얼마나 크냐? 하나님이 지팡이를 짚고 천년 만년 그리워할 수 있는 존재가 사람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 가만히 보니까 요것이 우주의 근본이더라는 거예요. 이것이 안팎 관계가 됐으니 종횡의 사랑의 세계관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상하관계와 좌우관 계가 되니까 종횡의 사랑의 세계관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 중심에는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마음의 깊은 골짜기의 자리에 하나로써 단단히 묶어 줄 수 있는 자리가 무엇이냐 하면 그 자리는 종횡의 중심 자리입니다. 그렇지요? 요걸 묶어 놓지 않으면 종횡의 기준이 사랑의 이상형으로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종적인 것이 아무리 있다 하더라도 횡적인 것은 나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이렇게 안 지을 수 없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어요.
이런 것을 두고 볼 때, 하나님을 우리의 마음속에 집어넣겠다는 것이 불경죄예요, 정당한 거예요?「정당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우리 마음속에 집어넣겠으면 얼마만큼 집어넣겠어요? 모셔 놓겠다는 것보다 요즈음처럼 싸우는 세상에 집어넣어야지 모셔 놓게 되어 있나요? 그렇지 않아요?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마음속에 모시고 산다면, 여러분, 웃고 살겠어요, 울고 살겠어요?「웃고 살겠습니다」 남자로 말하면 세계에서 제일 가는 미인을 얻었다면 그 남자는 그녀를 보기만 해도 울겠소, 웃겠소? 웃는다는 것입니다. 또, 여자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세계에 하나밖에 없는 미남자를 모시게 되면 그를 보기만 해도 울겠소, 웃겠소? 웃는다는 것입니다. 거 웃으며 살고 싶다는 것은 뭐냐 하면, 세계 최고의 미남자는 아직 안 나왔다는 것입니다. 세계 최고의 미남자는 하나님도 홀딱 반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럴 것 아니예요? 하나님도 홀딱 반해요. 반하는 데에는 바깥도 반하지만 속도 홀딱 반하는 거라구요. 그러한 아들이라는 겁니다.
기독교가 세계적인 종교가 될 수 있었던 본질
오늘날 기독교가 세계적 종교가 될 수 있었던 그 본질이 어디에 있는냐? 그 본질을 찾게 되면 여기에서 이론적으로 하나님이 다 나와요. 예수님은 '나는 하나님의 독생자'라고 하셨습니다. 그거 보면 예수님은 욕심이 대단히 많다구요. 내가 어렸을 때에 '예수님은 욕심이 나보다도 더 많구만' 하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독생자라고 하게 되면, 차생자(次生子)는 안 나오게요? (웃음) 그런 욕심장이가 어디 있어요? 하나님은 외아들만 사랑하게 되어 있구만? 거 안 그럴 것 같은데…
그러면 맏아들을 더 사랑하시겠어요, 작은아들을 더 사랑하시겠어요? 세상으로 보게 되면 부모들이 맏아들보다 작은아들을 더 사랑하는데…. 첫번째 사랑은 아무래도 어색하거든요. 세상 사람들이 밤을 따게 될 때, 외알밤을 좋아합디까, 세 알밤을 좋아합디까? 외알밤이 좋다는 사람은 덜 된 녀석이라구요. (웃음) 우리 인간도 그런데 하나님도 외아들들을 좋아하시겠어요? 이러한 모든 것이 근본적인 요인이 되는 거예요. 왜 하나님은 외아들을 좋아해야 되느냐? 왜 예수는 자신에게 독생자라는 말을 붙여야 되느냐? 그 요인이 어디 있느냐? 그것은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타락한 세상에서 하나님이 바라고 있는 것은 부활되는 것입니다. 하나에서부터 찾기 때문에 이런 모든 문제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 가운데 놀라운 것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고 하나님은 아버지라고 한 말입니다. 이렇게 2천년 전에 그러한 사실을 해명해 뒀는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그저 '우리는 종이다' 하고 있습니다. 하기야 아들을 믿고 있으니까 종밖에 더 되겠나? 아들을 믿어 가지고 접붙인다는 것을 모르거든요. 접붙인다는 것입니다. 접붙임을 해서 아들이 될 수 있는데 왜 종이라고 그래요?
그래서 선생님은 통일교회 패들이 종이라는 말을 하면 '이놈의 자식, 네가 종이야? 종새끼 될래?' 하고 기합을 준다는 거예요. 그래도 아들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면 종새끼는 면하지 않느냐 이거예요. 아무리 병신 아들이라도 그렇잖아요? 아들 가운데에도 쫓겨나는 아들도 많다구요. 탕자도 많구요. 그런 의미에서 통일교인은 식구라는 자리까지 올라가야 돼요. 식구, 아버님을 모시고 사는 한 가정의 식구라구요. 그런 의미에서 고차적인 술어를 갖다 붙여 놓은 거예요.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교인이라고 안 해요. 식구라구.
통일교회의 중생론
아담이 뭐냐? 해와가 뭐냐? (판서하심) 여러분. 아담이라면 '아, 담이 생겨서 아담이구나'하고 생각하라구요. 타락했기 때문에 담이 생겼다구요. 아담이 담 생긴 것을 다시 찾아와야 되겠으니, 일을 해서 다시 찾아와야 되겠으니 '해 - 와'(웃음) 타락 관념이 잘 정립되지 않는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라구요. 그렇지 않아요? 아담이니까 아, 담이 생기지 않았어요? 그러니 복귀는 누가 해 오나요? 아담이 해 오는 것이 아니예요. 여자가 해 와야 돼요, 여자. 그래서 성신은 여자의 신입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성부 성자 성신이란 무엇이냐? 성부는 하나님이요, 성자는 아들이요, 성신은 딸이라는 것입니다. 딸의 신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는 하늘을 상징하는 것이요, 평면적으로 볼 때 위를 상징하기 때문에 횡적으로 보면 남자가 중심입니다. 여자는 대상이기 때문에 (판서하시면서 설명하심) 여기에서 요렇게 되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요렇게 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평면선상으로 진전하기 위해서 왔는데도 불구하고 그럴 수 있는 기반이 없기 때문에 이게 벌떡 서 버렸어요. 올라갔다는 것은 섰다는 말이 아니예요? 그렇지요? 서 버렸다는 것입니다. 올라갔다는 거예요. 평면적으로 안팎이 되어야 할 예수의 뜻이 그 기반을 못 가졌기 때문에 올라 갔다는 거예요. 벌떡 서 버렸으니 평면적 기반이 있어요. 없어요? 몽땅 잃어버렸다는 거예요.
그러니 상대 기준은 어디에 세워야 되느냐? 할 수 없이 땅 위에 세워야 되는 것입니다. (판서하시면서 설명하심) 요건 올라갔으니까 하늘이예요. 하늘은 남자를 상징하고 땅은 여자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땅에 오려면 누가 와야 되느냐 할 때에 예수가 올라가고 성신이 여기에 실체로서 온다고 하는 거예요. 이게 무슨 장난이냐 이거예요. 근본 문제를 타진하게 될 때에는 전부 다 미궁에 빠져 춤을 추고 있고 오락가락하고 있다구요. 그걸 덮어놓고 믿자고 하고 있다구요. 그래, 지금 암에 걸려 가지고 몸이 썩어 들어가서 고름이 나고 냄새가 나는데 덮어놓고 믿는다고 해서 그 병이 낫겠어요? 나을 게 뭐예요. 죽었지 별수 있어요?
그래서 땅에 누가 온다구요? 천지(天地)라고 하지요? 지천(地天)이 아니라구요. 남녀(男女)라고 하지 여남(女男)이라고 해요? 성신이 땅에 왔기 때문에 예수님의 상대적인 신입니다. 예수님의 상대적인 신이 뭐예요? 어머니 신이예요, 어머니 신. 성신을 받지 않으면 중생하지 못하는 거예요. 다시 나는 데는 아버지 몸을 통해서 다시 나요?
그건 앉아서 조금만 생각하면 전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독교에서는 지금까지 수천년 동안 믿고 있는 걸 보면 머리가 된장통이라고 생각돼요. 이건 앉아 가지고 사흘만 생각하면 전부 다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중생하려면, 성신받지 못하면 중생하지 못한다고 소리를 지르고 야단하고 있으니…. 중생은 다시 나는 것인데. 아버지를 통해서 다시 나요? 어머니를 통해서 나야지. 그러니 성신은 어머니 신입니다. 이것은 이론적으로 거부할 턱이 없다구요. 이것을 똑똑히 알아야 돼요.
성신이 무슨 신이라구요?「어머니 신이요」 어머니 신이라구, 어머니 신. 어머니 신 앞에 예수는 누구라구요?「아버지 신이요」 구두가 아니라구요. 신는 구두가 아니라 구주(敎主)라는 거예요. 구주는 무슨 구주? 인간을 진짜 사랑하는 하나님이라면 구주 가운데 어떤 구주를 보내겠느냐? 아버지 구주라는 거예요. 종 구주로서 인간을 구해 주면 인간도 기분 나쁘다는 거예요. 만일 사랑하는 아들딸이 물에 빠졌다면 어머니 아버지가 '야! 이 종 녀석아. 우리 아들딸이 빠졌으니 빨리 들어가서 건져 오지 않을래? 이놈의 자식 ? 그래요? 사랑하는 아들딸이 물에 빠졌다면 누가 제일 먼저 뛰어들어가요? 형제가 뛰어들어가요, 부모가 뛰어들어가요?「부모요」 부모가 뛰어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주 중에서 무슨 구주로 오느냐? 형제 구주도 원치 않아요. 부모 구주라구요, 부모 구주.
통일교회에서는 예수 이름으로 기도 안 해요. 시시하게 안 하는 거라구요. 부모를 찾아가는 거라구요. 그래서 부모도 참부모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다 뜯어고쳐야 되는 것입니다. 뜯어고쳐야 되는 걸 전부 다 모르고 있으니까 주춧돌을 바로잡으라는 것입니다. 이걸 떡 비뚤게 해 놓고 거기에 들어가서 살자고…. 태풍이 이쪽에서 불면 살 수 있지만 저쪽에서 불었다간 옥살박살이 난다구요. 알겠지요? 예수 믿는 양반들, 여기에 앉은 머리 하얀 아저씨, 알겠어요? 그래야 된다구요.
여러분, 승천이 좋아요? 승천이 좋은 거예요, 나쁜 거예요? 기독교에서는 예수님이 승천했다고 야단하지만 지극히 슬픈 놀음이라구요. 왔던 분이 뜻을 이루지 못하고 가다니…. 다시 와야 된다니…. 출장갔던 사람이 사무 처리를 다 했는데 또 가야 되겠다고 한다면 그는 미친 녀석이라구요. 인간이 이런 등등의 문제를 미지의 사실들을 내포시켜 가지고 믿을 수 있는 시대는 지나갔다는 거예요.
하나님을 중심한 아담(남자) 해와(여자)의 관계
요렇게 보게 된다면 대관절 아담 해와는 어떤 입장이냐? 아담은 무엇이라구요? 외적인 뭐라구요? (판서하시면서) 외적인 하나님. 해와는요? 해와는 뭐예요?「어머니요」 무슨 어머니라구요? 외적인 하나님인 아담의 상대지. 그렇게 되는 거라구요. 아담의 부인이지 뭐야? 외적인 하나님의 아내다 그 말이예요. 그렇지요?「예」 여기 기성교회 목사나 장로 요 고집통들이 왔으면 똑똑히 알아 두라는 거예요. '아이고, 통일교회에서는 문선생이 나와 가지고 해와가 외적인 하나님의 아내래' 요것만 듣고 가서는 '아이고, 그런 이단이 어디 있어? 할지 모르지만 그렇게 주먹구구식이 아니라구요. 설명은 다 잊어버리고 이 한마디에 눈이 번쩍 뜨여서 '요것 봐라. 이단 찾으러 왔다가 찾았구만' (웃음) 그렇게 자기들만큼 생각 안 했겠어요?
여기서 말하는 사람이 얼마만큼 생각했겠나? 얼마만큼 생각을 많이 하고 얼마만큼 기도를 많이 하고 파고들고 헤치고 들었겠어요? 세계 30억 인류를 대해서 당당코 이런 말을 하게까지 되었는데, 이런 깃발을 들고 나올 때까지 앉아 가지고…. 임자네들, 여기 통일교회를 알아보러 온 그런 순간적인 생각 가지고 판단할 수 있는 사나이가 아니라구요.
그래 가지고 세계를 요리해서, 기름까지 묻혀서 판에 딱 찍어 가지고 싹 집어먹는 것입니다. 집어먹는 데도 거추장스럽지 않게 한번 집어먹자는 거라구요. 임자네들,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섭섭해도 할수없다구요. 통일교회한테 잡아먹혔다구요. 여기 들어온 사람들은…. 그래요, 안 그래요? 먹혔어요, 안 먹혔어요? 안 먹혔어요?(웃음) 안 먹히면 그건 망조(亡兆)라구요, 망조.
통일교회가 여러분을 찾아 나가서 하나가 되었어요, 여러분이 찾아들어와서 하나되었어요?「찾아들어와서 하나됐습니다」 그것이 먹힌 거 아니예요. 먹히는 중이면 통일교인이 아직까지 안 된 거예요. 먹혔다 할 때에는 통일교인이 되었다 그 말이라구요. 그래, 통일교회 교인이 되면 먹힌 거예요. 안 먹힌 거예요?「먹힌 것입니다」 누구한테? 통일교회 문선생 말고 통일교회한테. 통일교회 문선생 빼고 하나님한테. 이렇게 되면 좋지요? 여러분이 놀라 자빠질까봐 내가 이렇게 얘기하는 거예요.
자, 해와는 누구라구요? 아담의 부인, 상대, 좀더 속되고도 실감나게 이야기하면 여편네. (웃음)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말이예요. 사람은 자극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냥 '나는 너를 사랑하지' 하는 것하고 표정을 지으면서 '나는 너를 사랑해-' (웃음) 하는 것하고 어떤 것이 좋아요? 자극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표정도 필요하고, 해와는 아담의 아내입니다.
그러면 아담 속에는 누가 들어와 있어요?「하나님이요」 큰일날 소리입니다. 잘 대답하세요. 난 대답한 것이 아니예요. 여러분이 대답하니까 나도 따라가는 거예요. (웃음) 아담 속에 누가 들어와 있다구요?「하나님이요」 하나님하고 아담하고는 어떤 관계라구요? 안팎관계입니다. 영원히 모순과 상충이 없는 평화의 관계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은 영원한 사랑을 중심삼고 상충이 있어서는 안 되겠기 때문에 내가 위로가고 싶다고 하면 '오냐' 하는 것입니다. 안팎이 하나되게 될 때는, 주고받으면 돌아가지요? 「예」 돌아가기 때문에 위는 아래가 되고 아래는 위가 되어 다 마찬가지다 이거예요.
따라서 남자와 여자는 절대 같습니까, 다릅니까?「같습니다」 남자하고 여자하고 절대 같아요?(웃음) 남자하고 여자는 절대 다르지만 사랑을 중심삼고는? 일체라는 말이 나오지요? 그래서 사랑은 둘이 하나될 수 있는 근본이기 때문에 둘 다 좋아하는 거예요. 그러므로 하나님이 아담을 좋아해야 되겠어요, 안 좋아해야 되겠어요?「좋아해야 됩니다」 무엇을 중심삼고?「사랑을 중심삼고요」
사랑을 중심삼고 아담을 키울 때, '야, 아담아! 얼른 커라' 했겠어요, '크지 마라' 했겠어요?「크라고 했겠습니다」 크라고 해서 무엇 되게? 청소년 시대에서 사춘기가 되라고 했겠어요, 안 했겠어요? 그건 여러분이 대답하는 거라구요. 어서 빨리 커서 사춘기가 되기를 바랐겠어요, 안 바랐겠어요?「바랐겠습니다」 사춘기가 되었다면 '이제 너만을 생각하지 마라. 너만 생각하게 되면 미욱한 녀석이다. 상대를 생각해라'고 하나님이 했겠어요. 안 했겠어요?「했겠습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대로 하는 거라구요. 그래 하나님이 원하는 대로 되어 완전히 성숙한 후에는 '야야, 그냥 있지 말고 서로서로 사랑할 수 있는 길을 찾아라' 하고 원했겠어요, 안 원했겠어요?「원했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문제를 중심삼고 사랑이 악이냐 선이냐 하는 것이 문제되는 것입니다. 사랑이 악이냐. 선이냐? 가장 귀하게도 여기면서 가장 천하게도 여기는 것이 사랑이더라는 것입니다. 사랑이 귀하면 귀한 것이지 왜 천하게 됐느냐? 질서에 상반된 일로 말미암아 그런 결과가 될 수 있더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사랑으로 하나님과 인간이 하나되면 가를 수 없어
그러면 아담하고 하나님하고 하나된다면, (판서하시면서) 내외간에 하나되어 서로서로 사랑이 넘치게 될 때에는 아담이 하나님 될 수 있어요, 없어요? 대답해 봐요. 아담이 하나님 될 수 있어요, 없어요? 오늘날 기성교회 신앙은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와 비교 못 한다고 합니다. 그것은 사랑과 이상을 모르는 사람들의 수작이라구요. 따라서 아담이 사랑을 중심 삼고 하나님과 완전히 하나된다면 그때에는 하나님이 아담에게 거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 고린도전서 3장 16절에 보면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했습니다. 우리의 성전이라는 거예요. 하나님이 거하시는 집을 말하면서 그 집이 어떤 집이냐 하는 것은 분석을 안 하려고 한다구요. 그 집이 무슨 집이냐? 종의 집이예요? 무슨 집이예요?
만일에 아담이 결혼식을 한다 할 때 그것은 아담의 결혼식인 동시에 누구의 결혼식이예요?「하나님요」 정말 그래요? 나도 모르겠는데…. (웃음) 아담의 결혼식인 동시에 누구의 결혼식이예요?「하나님요」 하나님의 결혼식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남자 같아요, 여자 같아요? 대답해 보세요. 저기 있는 목사님, 하나님이 남자예요, 여자예요?「남자요」 남자예요? 남자 같지요? 대칭으로 보면 여자 같고 꼭대기로 보면 남자 같다는 거예요. 그거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안팎을 갖추었다는 거예요. 하나님은 안팎을 갖춘 분이라는 거예요. 그게 통일교회 원리입니다.
문선생이 그 자리까지 나간 것은 그냥 주먹구구식으로 뭐 '하나님은 이성성상의 중화적 주체다' 한 줄 알아요? 밀가루로 떡을 빚어 놓고서 마음대로 '이것이 하나님이다' 한 줄 알아요? 실험 결과예요, 실험 결과. (웃음) 그래서 권위가 있다구요. 아무리 뭐라고 그래도 내 말을 못 믿겠으면 죽어 보라구요. 배때기를 째고 당장에 죽어 보라구요, 내가 거짓말 했나. 그런 의미에서는 뭐 '같을 것이다'가 아니라 '그렇다'는 것입니다. 못 믿겠거든 시험해 보라구요. 목을 찔러서 죽어 보라구요, 내가 거짓말 했나. 거짓말 했거든 내 목을 영계에 가서 자르라고.
뭐, 기성교회 목사들도 생명을 죽인다고 하는데 '통일교회 사탄 마귀 괴수야. 인간들을 전부 다 죽여 버리기 위해서 그런 말은 서슴지 않고할 소질이 있는 패들이군' 할지 모르지만 좋습니다. 좋아요. 이제 10년만 두고 보라구요. 고목은…. 20년만 두고 보라구요, 누가 맞나? 동산에 나무를 심어 보게 되면 큰 나무는 10년 이내에 다 가려집니다. 그렇지요? 싸리나무는 암만 커야 싸리나무밖에 못 되는 것입니다. 버드나무는 암만 커야 버드나무밖에 못 되는 거예요. 그러나 잣나무는 다른 거라구요. 그렇지요? 다르다는 거예요.
해와는 누구의 부인이라구요? 아담의 부인이지요? 아담을 제일 좋아하는 분이 누구라구요?「하나님요」 얼마만큼 좋아한다구요? 생명을 걸고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갈라져 있으면서 좋아하겠다는 거예요? 아닙니다. 딱 붙어서 좋아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누구라구요? 하나님이라는 거예요. 어디까지 딱 붙느냐? 사랑하는 그 마음속에까지 파고들어 가서 같이 붙는다는 거예요. 거기에 뭐 이의가 있어요? 이의가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아담 속에도 들어갈 수 있고, 해와 속에도 들어갈 수 있어요, 없어요?「있습니다」 들어갈 수 있다구요.
여러분, 전기가 말이예요. (판서하시면서) 플러스가 있으면 마이너스가 여기에 반응을 일으키면 어떻게 돼요? 요렇게 돼지요? 요것을 중심삼고 이것이 결합되어 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주체와 대상이 이렇게 운동을 해야 번식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운동을 해야 영존(永存)이 벌어집니다. 운동이 없으면 영존이 벌어지지 않는 거예요. 그렇게 되려면 서로 반응할 수 있는 극(極)과 같은 것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혼자 있기 싫어합니다. 하나님이 내적 성상이라면 외적 형상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래야 이상권(理想圈)이 벌어집니다. 그래야 중심이 생겨납니다.
삼각형에서는 이상이 안 나옵니다. 삼각형 이상에서 이상이 나온다는 거예요. 작용하는 모든 것은 중심을 통하지 않고서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주의 중심이다, 생명의 요인이 될 수 있다, 이러한 논법으로서 우주를 전부 다 결정지어야 된다는 거예요.
해와는 아담의 부인인 동시에?「하나님 부인입니다」 그게 어떻게 그렇게 돼요? 사람에게는 몸뚱이가 있어요, 없어요?「있습니다」 마음이 있어요, 없어요?「있습니다」 자기 아내라면 말이예요, 몸뚱이의 아내예요, 마음의 아내예요? 몸 마음이 맞아야 아내가 되는 것입니다.
'당신 나를 사랑하오? 부부끼리 그런 얘기를 곧잘 하지요? 얌전하게 생긴 사내일수록 더 잘한다구요. 믿지를 못하기 때문에…. 또 여기 부인들도 그렇다구요. 시집가서 한 반년만 되게 되면 남편에게 '당신이 나를 진짜 사랑하오?' 하고 묻는다구요. 남편이 '사랑하고, 말구'하면 '마음은 딴 데 두고 말로만 사랑하지요?' 하고 묻는다는 거예요. 그러면 '아니야, 아니야' 하게 될 텐데 '아니야' 하는 데 있어서도 조금만 '아니야'했다간 기분 나빠합니다. '절대로 아니야'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진짜 마음을 몽땅 다 주고 사랑해? 천년 만년 사랑해?' 그렇게 묻고 싶은 것이 여자의 마음이라구요.
이 아주머니들, 처음 보는 아주머니들은 어땠어요? 아주머니는 안 그래 봤어요, 실례지만?(웃음) 뭐 웃는 것을 보니까 그렇게 돼 있다구요.
몸 마음을 합해서 일체가 돼 가지고 사랑받기를 원해요, 따로따로 사랑받기를 원해요? 일체가 돼 가지고 사랑받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음은 얼마나 크냐? 하나님을 친구로 삼고 싶다는 거라구요. 그런 의미에서 가능한 내용인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해와는 아담의 부인도 될 수 있는 동시에?「하나님의 부인도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해와가 '아담이여, 당신의 몸뚱이는 나를 사랑하고 마음은 거룩하신 하나님을 동참시켜서는 안 돼' 그러겠어요? 마음의 중심이 하나님이니까 이것이 한꺼번에 하나되어야 됩니다. 이랬더라면 몸과 마음이, 아담과 이것이 완전히 하나되고. 이것도 완전히 하나되어 가지고 들어갑니다. 이렇게 하나되면 이것을 가를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젊은 남녀들도 첫사랑의 인연을 중심삼아 가지고 생명을 끊고 죽는다 산다 야단하지 않아요? 타락한 인간의 사랑도 그런데 하나님하고 인간이 완전히 딱 하나되어 가지고 인연맺는 놀음이 벌어지면 하나님이 움직이지 않는 한 그게 옮겨지겠어요? 절대적이라는 거예요.
여기에서부터 태어난 자녀가 있다면 그 자녀는 누구의 자녀이겠어요? 「하나님이요」 하나님의 자녀인 동시에, 아담 해와의 자녀인 동시에 참부모의 자녀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참부모가 나옵니다. (판서하시면서) 참부모는 하나님을 빼놓고는, 하나님 어디 갔나?(웃음) 하나님을 빼 놓고는 안 나오는 거예요.
여러분 부모들이 하나님을 중심삼고 생겨났어요? 무엇을 중심삼고 생겨났어요? 하나님을 중심삼고 생겨나지 않았지요? 「예」 하나님을 중심삼고 생겨나지 않았으면 무엇을 중심삼고 생겨났을까요? 「사탄이요」 그거 대번에 사탄 갖다 붙이면 기분 나쁘지. 무엇 중심삼기는 무엇 중심삼아? 둘이 맨 처음에 만나게 될 때 이상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만난 것이 아니고 인간적 사랑을 중심삼고 만난 것이지. 거기에는 돈이 걸려 있든가, 권력이 걸려 있든가…. 시시하다는 거예요. 어떻게 어떻게 사랑해서 이렇게 이렇게 생겨난 것이 여러분들을 낳아 놓은 부모들의 사랑의 동기더라. 그래요, 안 그래요? 그런 동기 원해요? 여러분은 그런 동기에 의해 태어났기 때문에 참자녀라고 할 자신이 있어요. 없어요? 참자녀라고 못 한다는 것입니다. 참부모가 안 나오게 되면 참자녀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형성됐어야 할 이 세계
그러면 (판서하시면서) 여기에서 태어난 자녀가 참자녀예요, 거짓 자녀예요?「참자녀입니다」 참자녀가 나오니 참다운 가정이 나오지요?「예」 요걸 중심삼고 참다운 씨족이 나오지요? 참다운 민족이 나오고 참다운 국가가 나오지요? 참다운 세계가 나오지요? 이 세계를 하나님이 주관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핏줄을 받아 가지고 태어날 수 있는 거라구요. 문선생이라는 사람이 아주 뼛골이 녹아 지도록 별의별 놀음을 해 가면서 찾아들어가 보니 요게 골자더라는 것입니다.
요걸 중심삼고 타락이 벌어졌기 때문에 어떻게 되었느냐? 하나님이 먼저냐, 사탄이 먼저냐? 이런 문제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무엇을 중심삼고 관계되었느냐? 사람을 중심삼고? 하나님이 그걸(사탄을) 만들어 놓겠어요? 고통받으려고? 그것은 논리적으로 모순이 되는 것입니다.
(판서하시면서) 이것이 천사이고, 이것이 아담과 해와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주를 지은 것은 결국 무엇이냐? 보고 놀겠다는 거냐? 하나님이 살림살이를 시작한 것입니다. 여러분, 시집 장가를 가서 아들딸을 낳고 사는 것을 뭐라고 그래요? 살림살이를 하는 것이지요?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것은 무엇이냐? 하나님이 살림살이를 시작하신 것입니다. 살림살이를 시작해서 어떻게 할 것이냐? 자기의 족속을 중심삼고 사랑의 동산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계는 뭐냐 하면 하나님이 살림살이할 이용물로서, 정원이요, 사용 비품인 것입니다. 근사하다는 거예요.
이것을 사탄에게 주기 위해서 만들었겠어요? 그러면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실 때 노라리가락으로 만들었겠어요? 정성에 정성을 다해서 만들었지. 그런 최고의 걸작품인데 그 걸작품을 전부 다 그저 깨뜨려 버리기 위하여 만들었겠어요? 정성을 들여 만들었기 때문에 행여나 다칠세라, 흠이 갈세라 염려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 인간이 타락을 했다는 것입니다. 뭐 세밀한 얘기는 다 못 하겠어요. 타락에 관해서는 여러분이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니까.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어떻게 되었느냐? 꺼꿀잡이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기성교회에서는 해와가 뱀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따먹고 아담에게도 따먹게 하여 타락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걸 보면 기독교인들이 참 어수룩하다는 겁니다. 그걸 믿고 앉아 가지고 덮어놓고 천당 가겠다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데도 갈래길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신호등의 불빛을 보지 않고 그냥 마구 달린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아마 절반도 가지 못하고 곤드레만드레가 될 것입니다. 천국이 가까운 줄 알아요? 세상에서 제일 가기 힘든 곳이 천국인데 덮어놓고 가요? 인사도 없이. 세상에 있어서 어느 집을 방문하는 데도 대문을 두드려 주인한테 승낙을 받고 가야 되는데, 하물며 친국을 덮어놓고 가겠다구요? 맹랑한 자식들. 그래 가지고 천국갈 것 같으면 내가 통일교회 욕먹는 놀음 안했어요. 나도 기성교회 신앙을 다 해본 사람이라구요. 뭐 내가 자기들보다 못나서 이 놀음을 하는 것이 아니라구요.
사랑의 문제로 타락했으므로 사탄을 용서해 줄 수 없다
그러면 어떻게 타락이 됐느냐? 사탄이 무엇이냐? 하나님을 중심삼고 보면 뭐예요? (판서하시면서) 간부(姦夫)입니다. 여기에 있는 목사님도 박장로교회의 간부였지?「그 간 자 아니예요」 그건 무슨 간 자예요? 다른 간 자예요?(웃음) 거 실감나라고 내가 이런 거 '묻는 거예요. 주의하라는 거예요. 자칫 잘못하면 하나님 앞에 간부(姦夫)가 된다는 거예요. 오늘날 기성교회 목사들 전부 다 책임도 하지 않고 촐랑대다간 하나님 앞에 전부 다 간부가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겁탈하는 제2의 사탄이 되고 마는 거예요.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는 사람은 그런 면은 철두철미하다는 것입니다. 자, 이제 알겠어요?
성경을 보게 되면 하나님은 사랑이신데, 예수님이 와 가지고 말이야, 제자들이 묻게 될 때 죄인을 얼마만큼 용서해 주라고 했어요?「일흔 번씩 일곱 번이요」 일흔 번씩 일곱 번 용서해 주라고 했습니다. 그만하면 용서하기를 퍽이나 좋아하는 분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그러면 예수 님은, '사탄을 용서해 줘도 되겠소? 하고 한마디로 물었다면 어떻게 대답할까요? 그렇게 용서하기를 좋아하는 아량이 있으니 '사탄을 용서해 주소' 할 수 있어요, 없어요?「없습니다」 역설적으로 성경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사랑이라는 걸 하고 끝날에는 심판해요?
세상의 부모도 자기 아들딸이 죄를 지어 교수형에 처해지게 된다면 자식이 죽기를 원하는 부모가 없다구요. 자기 마음대로 자식을 살려줄 수 있으면 백번 천번 살려주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 아니냐? 어머니 마음이 더 그렇지요? 타락한 세계의 여인의 마음도 그런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대관절 무엇 때문에 끝날에 가서 심판을 해 버려야 되느냐? 하나님이 왜 용서를 안 해주느냐? 왜 용서를 못 하느냐 이거예요. 하나님은 얼마만큼 사랑하느냐? 예수가 일흔 번씩 일곱 번을 용서한다면 하나님은 일흔 번씩 칠천 번 이상 용서해야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그렇다는 겁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사탄을 한번 용서해 줘 보시지요' 하고 기도 한번 해봤어요? 그러면 하나님이 기분을 대번에 캐치(catch)할 수 있어요. 목사님들, 그렇게 해 봤어요? 이러한 사랑을 모르면 천지는 두 집 살림을 하는 것입니다. 한 집안에 사랑이 두 갈래의 길이 생기게 될 때는 그 집은 파탄이 벌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주 자체가 파탄될 것입니다. 평화의 본궁(本官)이 생겨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사랑은 절대적입니다. 사랑의 주인을 둘을 개재시켜 가지고 지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기가 사랑하는 여편네가 딴 남자에게 곁눈질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요? 있어요, 없어요? 우리 목사님들, 어디 목사쯤 되면 그만한 것쯤 양해해야지요? (웃음) 어때요? 양해해야 되겠어요, 안 해야 되겠어요? 양해해 줄 때는 천지가 다 무너지는 거라구요. 딴 죄는 용서하더라도 사랑은 절대적이기 때문에 이것을 양보하는 날에는….
사랑으로 말미암아 생명이 시작되고, 사랑으로 말미암아 주관권이 벌어지고, 사랑으로 통치이념을 바라 가지고 창조이상권을 실시하여 그 원리적 기준을 세운 하나님 앞에 이것을 재범(再犯)하게 된다면 천지는 어떻게 되겠느냐 이거예요. 하나님이 행복하겠어요? 하나님이 행복할 때가 있을 것 같아요? 가슴에 뚫어진 구멍을 메우고 다닌다는 거예요. 그래서 통일교회에는 복귀라는 말이 나온 것입니다. 증명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도 6천년 동안, 몇천년이예요? 6천년만 됐나? 몇십만 년씩 됐지. 기독교인들은 성경역사를 6천년에서 한 시간을 양보 안 해요. 축자영감설(逐字靈感設)이 뭐 어떻고 어떻고 해 가지고…. 그렇게 안 되어 있다구요.
자, 요거 알겠어요? 사탄이 뭐라구요?「간부요」 이걸 용서할 법이 있겠느냐? 여러분, 사탄이 하나님의 간부인 줄 몰랐지요? 오늘날 통일교회 문선생이 나와서 비로소 그것을 구체적으로 세계에 선포하는 거예요. 이 사상이 국가적 기준 정도만 자리를 잡아 보라구요. 몇 개월 이내에 세계화되는 거라구요. 안 되면 내가 지금 만들기 위해서 준비하고 있다구요. 여러분이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닌 사나이인 것 같지만.
인간은 타락함으로써 사탄의 혈통을 받게 되었다
자, 그러면 어떻게 되어 있느냐? 여러분이 태어나기는 태어났지. 그런데 선조의 장난이 어떻게 됐는지 알아요? 모르고 태어났다구요. 사랑하게 되어 사랑의 관계를 맺으면 핏줄을 받는 거지요. 그렇지요? 핏줄을 받는 것입니다. 핏줄이 왔다갔다하는 거예요. 아가씨가 이 남자도 사귀고저 남자도 사귀다가 결국 한 남자를 택해 가지고 그 핏줄을 받는 거라구요. 그렇지요? 왔다갔다할 수 있는 거라구요. 이 여자가 요 놀음 했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더 큰사랑, 더 자극적인 사랑을 가지고 나타나게 될 때에 하나님이 타락할 기미가 있는 것을 아시고 절대적으로 '따 먹으면 죽는다'고 하신 것입니다. 건드렸다가는 큰일난다는 겁니다.
그 당시 아담은 더벅머리 총각 아니예요? 아담이 총각 때니까 사랑이라는 것을 모르는 거라구요. 그저 '오빠', '해와야' 하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뛰어다니며 굴러다니는 자갈이 반갑고 풀포기가 반가왔지, 아담이 해와 보고 반갑고 해와가 아담보고 반갑게 안 되어 있다구요. 그거 알지요? 우리 아가씨들은 다 그럴 때가 됐지요? 뭐 이성이니 하는 것을 생각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아무것도 모르는데 천사장은 정서적으로 나온 거라구요. 천사장은 하나님이 만물 지은 것을 알기에 설명을 잘 해준다구요. '해와야, 하나님이 사람을 지을 때에는 이렇게 이렇게 짓고, 산을 지을 때는 요렇게 요렇게 지었고…' 하면서 모든 것을 설명하는 거예요. 그런데 천사장은 나이 많은 종새끼이고 아담 해와는 주인의 나이 어린 아들딸이라구요. 이렇게 되어 있다구요. 능수능란하게 천지창조의 역사를 얘기해 주니 해와는 재미가 쏙쏙 나는 거예요. 그때는 동화를 좋아하는 때지요? 그렇지요? 아이들이 열두 살쯤 되면 얘기만 해주면 그저 밥도 안 먹고 듣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슬픈 대목이 나오면 눈물을 죽죽 흘리며 통곡하는 거예요. 그때에는 정서적인 모든 것을 전부 다 받아들여요. 그건 창조본성 이라구요. 그래야 앞으로 이상상대 (理想相對)를 찾아간다 이거예요.
그럴 수 있는 때이기 때문에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며 해와를 데리고 다녔던 거라구요. 또 그런 것이 자유스럽게 됐다구요. 이래서 나중에는 어디까지 갔느냐? 겁탈했다는 거예요. 그것이 타락이라는 거예요. 해와가 좋아한 게 아니라구요. 이러고 보니 결국은 천지가 엇갈렸다는 것입니다. 그거 왜 못 간섭했느냐? 그것은 통일교회 원리에 자세히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그건 내가 지금 얘기할 시간이 없어요.
이래 가지고 보니 본남편은 천사장이 아니고 아담이라는 것을 알았다는 거예요. 알았기 때문에 해와는 '이제 내가 살 길은 그 길밖에 없다. 이제라도 살 길을 찾으려니 아담을 붙들어 가지고 따먹으라고 강요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따먹어라' 하는 말은 무엇이냐? 사랑하자는 말이예요. 오늘날 세상에서 깡패들도 '아무개 여자를 따먹었다'는 말을 하지요? 말로도 딱 그렇게 표현한다구요. 그런 말 하지요. 세상에서도? 이래 가지고 사랑의 인연을 맺었습니다. 그 핏줄을 받아 가지고 태어난 것이 오늘날 세계의 인간입니다. 이렇게 된 거예요. 이만큼 왔어요.
인간의 구원은 재창조의 원칙에 의해서
자, 이제 수난길과 해방이라는 골짜기를 찾아들어가자구요. 이렇게 됐기 때문에 길을 잘 들었어요, 잘못 들었어요?「잘못 들었습니다」 얼마나 잘못 들었어요? 큰 야단 났다구요. 이 피가 핏줄을 통해서 내려오는데 하나님은 그 핏줄을 끊고 싶겠어요, 안 끊고 싶겠어요? 핏줄을 끊는다 해도 모가지를 비틀어 가지고 탁 끊어 놓으면 어떻게 되겠어요? 이 인류가 전부 다 멸망하지요? 그렇기 때문에 재차 창조한다는 것입니다. 재창조의 법도를 중심삼아 가지고, 구원이니까, 병난 사람은 병나기 전의 원리원칙을 따라 가지고 해야 됩니다. 그러니 여기에서 이것이 문제가 돼요.
예를 들어 본래의 어머니 아버지가 재미있게 살고 있다고 합시다. 그때 어머니 뱃속에는 본래 아버지의 아들딸로 태어날 수 있는 오누이 쌍동이가 들어 있었다고 합시다. 그런데 난데없이 간부(姦夫)가 나타나서 본래의 자기 아버지를 죽여 버리고 어머니를 강제로 빼앗아 갔다, 어머 니가 좋아서 따라간 것이 아니라 강제로 빼앗아 갔습니다, 그래 가지고 강제로 같이 살면서 오누이 쌍동이를 낳았는데 그 아들딸이 오늘날의 우리 인류의 조상이다….
그런데 그 아들딸이 그러한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 가짜 애비를 죽여야 되겠어요. 안 죽여야 되겠어요? 본래의 자기 아버지를 죽인 가짜 애비를 죽여 버리면 어머니는 어떻게 돼요? 어머니를 생각하게 되면 남자가 그밖에 없으니까…. 여자들, 대답해 보라구요. 그 아들딸이 떡 보니 요놈은 어머니하고 붙들고 살고 있는데 모를 때는 모르니까 아버지로서 순응하면서 따라갈는지 모르지만 가짜 아버지인 것을 알았다 할 때는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그 가짜 아버지를 죽여야 되겠어요. 안 죽여야 되겠어요?「죽여야 됩니다」 용서해야 되겠어요, 처단해야 되겠어요? 여기 목사님이 한번 대답해 보시지요. (웃음) 죽여야 되겠어요, 놔 두어야 되겠어요?「죽여야 됩니다」 죽여야 좋다는군요. (웃음) 이것이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 혹은 아버지의 마음은 여편네하고 둘이 짝자꿍이 돼서 도망갔다면 간부(姦夫)도 찔러 버리고 여편네도 찔러 버리고 싶을 것입니다. 그럴 거 아니야? 자기 아버지는 그런 마음인데, 여러분, 효자라는 것은 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하는 사람이 효자예요, 원하는 대로 하지 않는 사람이 효자예요?「원하는 대로 하는 사람이 효자입니다」 나는 그 아버지의 아들이기 때문에, 그 아버지의 소원대로 해야 되기 때문에 그 가짜 애비도 찔러 죽여야 되고, 그 다음엔? 「…」이게 문제라는 거예요. 애비는 물론 한칼에 찔러 버려야 되고, 에미는? 세상의 법이 어떻게 돼있어서 여기에서 정의를 가릴 수 있느냐? 이런 모든 법철학 기원을 잃어 가지고는 큰일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전부 다 가려 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되느냐? 여자를 찔러야 됩니다, 어머니를 죽여야 된다 그 말이라구요. 만일 죽여 놓으면 여자가 있어요, 없어요?「없습니다」 여자가 없으면 누이동생이 있지요? 안 그래요? 누이 동생이 있으면 거기에서부터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어요? 그러면 그 출발은 타락의 혈통을 받은 조상이예요, 타락의 혈통을 안 받은 조상이예요?「타락의 혈통을안 받은 조상입니다」 그렇게 되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아버지하고 어머니가 첫사랑의 인연을 맺어서 태어난 아들딸이 있으면 하나님은 대번에 잘라 버릴 수 있다는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자기 아들이라도 때려 죽이고 싶다구요. 그렇지만 그 뱃속에 들떠 있는 애기도 전부 다 그 아들딸이다 할 때는 그 아들딸도 잘라야 되겠어요, 안 잘라야 되겠어요? 잘라야 되는 거예요. 멸종돼 버리는 거라구요. 그러니까 칠 수 없는 거라구요. 안 그래요? 그렇지요? 처음같이 됐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타락한 것을 그때 선뜻 잘라 버리려고 손을 댔다가는 어떻게 되겠어요? 인간의 근본은 씨알머리 없이 되는 거라구요.
그래서 하나님은 누구를 미워하고 누구를 사랑해야 되느냐? 기왕지사 포기하는 것은 무엇이고 독려할 것은 무엇이냐 하는 문제를 생각할 때, 그 미움의 대상은 바로 남자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남자가 미움의 대상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미움의 대상인 그 자식이 자기 어머니 아버지의 핏줄을 받은 그런 아들딸로 태어나 가지고 천도(天道)를 배반한 사랑을 하여 가정을 가지는 것을 보고 싶겠어요, 안 보고 싶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도의 길에서는 독신생활을 강조했던 것입니다. 거 왜 도 믿는 사람들은 혼자 살잖아요, 불교나 기독교나.
가인 아벨 분립섭리
그러면 여자는 어떻게 되느냐? 본래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남자를 짓고 그 남자를 본따서 여자를 지었습니다. 찾는 데 있어서는 아담을 창조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재창조의 법도를 거쳐야 되기 때문에 제2의 사랑의 소망, 즉 첫째번 사랑의 소망이 아니라 둘째번 사랑의 소망을 하나님은 간섭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 역사에 장자는 축복을 못 받고, 차자가 축복받은 원인이 여기에 있어요. 보라구요. 성경 66권을 보라구요.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 땅에서 나오게 될 때에 맏것은 그저 사람새끼서부터 동물새끼까지 전부 때려잡는 거라구요. 둘째번은 하늘편에 속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심판의 대상은 사탄이요 소망의 대상은 하늘을 찾아오는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둘째번 아들을 통해 가지고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가르는 놀음이 벌어집니다. 사람도 가르는 거라구요. 본래는 아담 해와를 갈라야 되는데 가르면 죽어 버리기 때문에 가를 수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조금만 머리가 좋은 사람이 있으면 말이예요, 가만히 앉아 가지고 근본 문제를 파고들어갈 수 있는 거예요.
본래 주인은 하나님이요, 가짜 주인은 사탄인데, 이 둘이 사람을 놓고 하나는 오른손, 하나는 왼손을 잡고 서로 갖기 내기 싸움을 한다고 쭉갈라 놓으면 어떻게 되겠어요? 사람이 망하지요. 하나님도 망하고 사탄도 망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예」
본래의 창조원칙은 사람을 망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둘이 서로 나누어 가집시다' 해 가지고 맏것은 사탄이, 나중 것은 하나님이 가진 것입니다. 맏것도 원리원칙에 따라 가지고 하늘을 섬기고 섬기게 해 가지고, 막을 수 없는 원칙을 세워 가지고 제물의 조건을 중심삼고 갖기 내기 운동을 해 나온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복귀섭리, 즉 구원섭리입니다.
그러면 사람을 찾는 데 있어서 구약시대는 뭐 하는 시대냐? 물건을 중심삼고 제물을 드리는 때입니다. 하나님 앞에 완전히 제물이 되려면 피를 보지 않고는 안 됩니다. 성경역사가 그렇게 돼 있지요? 사탄의 피를 빼야 된다는 거예요. 인간의 잘못으로 말미암아 만물까지 잃어버렸기 때문에 인간을 찾는 데 있어서는 만물을 통해서 인간을 재창조해야 됩니다. 그래서 만물을 통하여 희생의 제물을 드려 가지고 인간을 재창조했다는 조건을 세우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제물을 드려 나오는 것입니다.
유대민족의 불신으로 대신 제물이 된 예수
그래서 예수가, 세밀히 이야기하려면 한정이 없지만, 제물적인 이상실체, 다시 말하면 찾아진 에덴 동산에서 죄짓지 않고 타락하지 않은 본연의 남성격 대표자로서 이 땅 위에 오신 것입니다. 그 예수님이 오기 위해서 무엇을 만들었어요? 양자권(養子國)을 만들었습니다. 양자권이 무엇이냐 하면 천사세계에 해당하는 거라구요. 에덴 동산에 아담이 있었고 해와가 있었고 천사장이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양자권적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예수를 모실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놓았는데도 불구하고 예수를 중심삼아 가지고 모실 수 있는 입장이 못 됐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원칙을 두고 보면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들을 죽이는 법이 없습니다. 알겠어요? 만일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의 입장에서 죽인다면 창조원칙에 위반되는 거라구요. 본래 창조원칙에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을 죽이는 법이 세상 천지에 어디 있느냐 이거예요?
그러면 예수는 어떠한 사람이냐? 아들의 사명을 하기 위해서 온 사람 입니다.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단은 양자라구요, 양자. 핏줄이 다른 아들이라는 거예요. 그게 사탄과 나눠 가진 양자의 입장에 있는 이스라엘 민족권에 하나님의 직계 아들인 예수님을 중심삼아 가지고 완전히 하나 되게끔 준비해 놓은 거라구요. 그래 가지고 나중에 접붙여 가지고 하나 만들려고 한 것입니다.
이걸 접붙이려면 싹 될 수 있는 참감람나무가 있어야지. 돌감람나무이니까 말이야. 이것이 죽지 않고 꽃이 피고 감람나무가 되어 가지고 세계적으로 눈접하든가 가지접하든가…. 여기 여러분들, 전부 다 돌감람나무를 잘라 버리고 접붙여야 할 그 예수 하나가 접붙일 수 있는 책임을 못했습니다. 났다가 꽃도 못 피우고…. 예수가 열매맺어 봤어요? 열매도 못맺어 보고 이스라엘 땅에 왔다가 그냥 돌아갔다구요, 따라지 모양으로. 목수의 아들로 죽었다구요. 장가도 한번 못 가 봤다 이거예요. 그러니 씨를 받을 수가 있어요?
예수가 장가를 갔더라면 어떻게 되었겠어요? 여기 목사님, 아들이 있겠지요? 그러면 그 아들 앞에 아버지 예수가 되었겠지요? 그 아들이 장가가서 아들을 낳으면 손자가 되지요? 할아버지 예수가 되었겠지요? 예수 자신이 말이야, 아버지 예수도 난 싫고. 할아버지 예수도 난 싫고, 족장 예수도 난 싫고, 나라 예수도 난 싫고, 세계 예수도 난 싫고, 이렇게 되면 말 되느냐구요? 자기가 제일 사랑하는 태자를 통해서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만왕의 왕이 되려 하니 아버지 예수의 자리에서부터 출발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할아버지 예수, 족장 예수, 민족장 예수, 나라의 예수, 세계의 예수가 되었으면 얼마나 좋겠나? 그걸 못 했다는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는 어떤 자리에 있느냐? 베드로, 요한, 야고보, 열두 제자, 70문도. 이들이 책임 못 하고 전부 다 반대했기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이 양자의 책임도 못 한 입장에 있다 이거예요. 그 발판이 와장창 깨져 나갔다 이거예요. 그러니 예수가 아들로 왔지만 할 수 없이 아들의 자리에서 양자의 신세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죽는 데는 어떻게 되어 죽느냐? 아들의 입장을 가지고 양자의 대표로서 맞는 거예요. 누가 죄를 지었느냐? 예수가 죄지었어요? 하나님 앞에 있어서는 유대교가 죄를 지은 거예요. 왜 예수를 믿지 않았느냐? 이스라엘 나라가 죄지은 거예요, 예수를 믿지 않아서. 그러니 누가 맞아야 돼요? 양자들이 한 구덩이에 들어가 두들겨 맞아야 돼요. 그런 것을 대신 들어가 맞는 거예요. 아들이 맞았다면 천지가 깨져 나가는 거라구요.
그러면 예수님은 어떤 사랑의 자리에 갔느냐? 양자 수습하는 사랑의 책임을 지고 십자가를 지고 돌아갔기 때문에, 아들로서 사랑받지 못하고 갔기 때문에, 사랑받은 아들이 되었으면 하늘나라에 들어가서 마음대로 행세하며 살 수 있는데, 못 들어가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낙원에 간거예요, 낙원. 낙원에 간 거예요, 낙원. 그렇기 때문에 다시 와야 되는데 다시 오는 데는 무엇으로 와야 되느냐? 아들로 와야 됩니다. 아들로 와 가지고 인류의 아버지 자리까지 들어가야 되는 이중의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전부 세계를 풀어 보면 이런 등등의 난문제에 세계가 다 걸려 있다는 것입니다.
천주의 해방을 중심삼고 본 기독교의 입장과 책임
그럼 사탄이 자랑하는 것은 무엇이냐? 사탄과 하나님이 싸우는 데 있어서 하나님은 왜 사탄한테 번번이 져 가지고 이 놀음을 하느냐? 문제가 여기 있어요. 사탄은 하나님 앞에 교만한 마음을 들고 나와서 '이 세계는 내 것이다' 하며 자랑합니다. 몽땅 빼앗아 가지고 그 놀음 하고 있다구요. 사랑으로, 하나님의 참사랑으로 주관할 것이었지만, '동기야 어떻든간에 당신이 사랑하는 아들이 나한테 왔으니 할수없잖소' 하며 세계를 가지고 자랑하는 거예요. 사탄이 자랑하는 것이 무엇이냐? 물질을 중심삼고 '이 모든 만물은 내 것이야' 그 다음에는 '사람은 내 것이야', 그 다음에는 '가정은 내 것이야. 나라는 내 것이야. 세계는 내 것이야' 하고 자랑하는 것입니다.
이걸 대항하는 하나님의 섭리는 '너를 대하는 그것을 자르겠다' 이겁니다. 자르지 않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돼요. 여기서부터 수난의 노정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하나님이 바로 어떤 입장이냐 하면 망명한 입장이예요. 나라를 가졌고, 가정을 가졌고, 아들을 가졌던 사람이 나라를 빼앗기고, 가정을 빼앗기고, 아들을 빼앗긴 망명객과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지금 사탄은 하나님의 나라를 빼앗고 하나님의 가정을 빼앗고 하나님의 아들딸을 빼앗아 가지고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마치 망명객과 마찬가지의 입장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여기에서 이 원수 세계에 원동력을 어떻게 제시하느냐? 어떻게 혁명의 요건. 다시 말하면 해방운동을 제시하느냐? 그게 문제예요. 알겠어요? '망명객이 되기 직전에 원수의 손아귀에 붙들려 간 여편네와 자식이 있다. 그 여편네는 남편을 사랑했고 자식들은 아버지를 알고 있다. 틀림없이 그렇다. 또 백성이 자기들의 군왕을 누구든지 다 안다' 그런 입장에 서 있다면 혁명을 제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입장에 있는 것이 기독교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세계의 기독교가 하나되어 가지고 사탄세계와 대판 씨름을 해 가지고….
그러면 여기에서 어떻게 해야 저 원수의 적진 중에 혁명을 일으키느냐? 문제의 중심이 어디에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예요. 그러려면 누가 먼저 기수가 되어야 되느냐? 사랑하는 여편네가 원수를 대적해서 싸우는 겁니다. '이놈! 천지가 변하더라도 내 절개는 변할 수 없다. 내가 현재 사랑하는 이 마음은 변할 수 없다' 갈라 놓은 그 원한이 크면 클수록 거기에 대한 사랑의 흠모의 힘이 강해야 되고, 원수에 대한 적개심이 강해야 된다구요. 이래 가지고 부딪쳐 가지고 생명을 위협받더라도 '이 자식아! 천지가 갈라질지라도 나는 변함이 없다. 죽여라! 그렇게 해서 나오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 외에는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내가 적진에서 생명을 걸고 원수와 투쟁하는 것입니다. 생명을 걸고라도 양보하지 않고 있는 거예요. 만약 사탄이 목을 자르게 되면 거기서부터 관망하고 있던 그 아들딸이 불이 붙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희생함으로 말미암아 그와 관계되어 있는 정서적인 터전 위에서 아들이 열 있으면 열이 '이놈, 당장에 목을 자르겠다. 우리 원수를 갚아야 되겠다'고 하게 되는 거예요. 이러한 정의에 입각한 정서적인 무대에서 '생명을 내놓는 한이 있더라도 투쟁합시다' 해 가지고 원수 앞에 모가지가 잘렸다 하게 되면, 사탄에게 모가지 잘린 것이 나쁜 게 아닙니다. 그 가정이 몰살됐다 해도 그 민족은 영원한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 백성들이 '이놈의 자식' 하면서 들고 나오는 것입니다. 이런 운동은 피를 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탄의 아들딸들을 하나하나 빼앗아 가지고 뽑아 버리는 운동을 하라는 것입니다. 단결해 가지고는 뽑아 버리는 운동을 하라 이거예요. 이것이 기독교가 해야 될 책임이라는 것입니다. 사탄세계를 뽑아 내야 됩니다. 뽑아 내려면 제물이 필요합니다. 사탄 것을 그냥 놔둘 수 없다구요. 정당하게 갈라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물이예요, 제물. 소유를 결정하기 위한 것이 제물입니다. 이렇게 물질로부터 갈라 내기를 해야 합니다. 아들로서 양자의 입장을 대신하여 제물이 되었으니 그 한을 풀기 위해서는 아들의 자리까지 가야 되는 거예요. 아들이 못 되었거든.
여러분, 사랑하는 외아들이 장가도 못 가고 17,8세에 죽었다면, 그 어머니 아버지 어떻겠어요? '야, 이 자식아! 장가라도 한번 가 보고 죽지' 그런 한이 있지요?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아들로 오셨던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사명의 터전인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를 통합시켜 가지고 로마제국에 대항하여 당당할 수 있는 한 주권자로서, 대표자로서 하늘의 권세를 가지고 행차해야 할 그 걸음이, 몰리고 몰려 가지고 양자의 신세를 대신 가누기 위해서 죽었으니, 얼마나 한이 많겠어요? 아들로서의 한을 품고, 한 가정의 주인으로서 한을 품고, 양자의 설움을 가지고 죽었기 때문에 이 땅에 오셔서 그 한을 풀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니 다시 오셔야 된다는 거예요.
물질적으로 개인으로부터 세계 기준까지 찾아 나오기 위해 제물의 노정을 거치면서 4천년 동안 준비한 기독교인 것입니다. 이 기독교를 중심 삼고 아들을 이어받을 수 있는 소망의 기준이 메시아입니다. 즉,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들입니다. 그 아들까지도 둘로 나눴다구요. 몸뚱이는 양자가 되고 마음은 하나님의 아들인데 사랑받는 아들의 입장이 아니예요. 그렇기 때문에 낙원에 갔어요. 천국 못 들어간다구요. 그 한을 풀기 위해서 다시 오시는 겁니다. 요것은 영적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나라라는 나라에, 땅에 하늘나라의 기준이 없어지고 영적인 기독교, 구름에 떠다니는 기독교가 된 거라구요. 죽어서 천당가겠다구? 살아서 천국생활 해 가지고 천당갈 생각은 안 하고 몸뚱이를 부정하고, 세상을 부정하고, 영적인 것을 위주로 하고 있는 사상적인 기준이 기독교라는 거예요. 땅을 중심삼고 재림해 가지고 4천년 동안 수고해서 만들었던 주권을 다시 찾기 위해 세운 제2 이스라엘권이 민주 세계요, 제2 유대교와 같은 것이 기독교입니다. 유대교 시대에는 국가적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메시아를 보냈지만 지금은 세계적 기준을 중심 삼아 가지고 다시 요것을 해결짓기 위해서 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부모를 찾아야 됩니다. 이러한 역사과정을 거쳐 나온 것입니다.
하늘나라를 찾기 위해 나선 무리는 어떤 전통을 이어받아야 하는가
자, 그러면 여기에서 어떻게 해야 되느냐? 수난의 길과 해방운동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이 사탄세계에 있어서 봉화를 일으키고, 하늘나라로 새로운 주권을 세우기 위한 무리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어떠한 전통을 이어받아야 되느냐? 원수세계에 잡혀 와 가지고 자기 부모가 찢기고, 자기 형제가 찢기고, 자기 나라가 찢기고, 자기 세계가 지금까지 밟혀 온 원한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 길을 이어받지 않고는 안 되는 거예요. 역사적인 실패를 했으니 실패한 그것이 한의 고비가 되는 거라구요. 열 번 실패했으면 열 번 한의 고비가 되는 거라구요. 그 한의 고비를 이어받을 수 있는 수난길에 들어가지 않고는 해방의 기수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탄세계는 무엇을 중심삼고 자랑하느냐? 물질을 중심삼고 자랑합니다. 그 다음에는 백성을 중심삼고 자랑하고, 나라를 중심삼고 자랑하는 거예요. 세계에는 수많은 국가가 있지만 그 국가 가운데 사탄이 제일 자랑하는 나라는 하나입니다. 하나님 앞에 '이것이 내 나라다' 하고 자랑할 수 있는 나라는 하나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한 나라를 표준합니다.
이 사탄나라한테 지는 하늘나라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사탄을 신봉하고 사탄에게 충성하고 사탄을 위해서 생명을 다 바쳐 가며 따르는 국가가 있다면, 그 국가 이상의 국가를 이 땅 위에 세워서 '네 나라의 백성과 내 나라의 백성, 네 주권과 내 주권, 네 땅과 내 땅을 비교하여 볼 때에, 네 백성과 네 주권과 네 땅은 더럽혀졌기 때문에 갈라 내야 할, 통째로 가질 수 없는 나라지만, 내 백성과 내 주권과 내 땅은 어느누구도 제2의 참소를 할 수 없고, 제2의 침범을 할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이다' 하고 자랑할 수 있는 나라를 가져야 합니다. 그런 나라를 갖지 않고는 하나님이 온 천지간에 주체성을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사탄의 사랑보다도 높은 사랑을 가지고 백성을 사랑해야 되고, 사탄의 사랑보다도 높은 사랑을 가지고 땅을 주관하는 주권자의 입장에 서지 않고는 하나님이 사탄세계의 악한 것을 정복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오시는 주님은 하늘나라를 찾기 위해서 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총칼을 가지고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사탄세계의 사랑. 사탄세계의 백성을 뽑아 오는 데는, 그것을 갈라 내는 데는 무엇 갖고? 총칼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을 가지고, 더 높은 사랑을 가지고 하는 것입니다. 열만한 사랑을 하거든 백만한 사랑을 해 가지고 사랑으로써 점령 작전을 해서 개인으로 가정, 가정으로 종족, 종족으로 민족, 민족으로 국가, 이렇게 이어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전통적 인연을 이어받으려면, 사랑하는 마음을 중심삼아 가지고 사랑하던 여인이 지키던 길이요, 아들딸이 지키던 길이요, 백성이 지키던 길을 내가 길이 빛낼 수 있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그 나라를 내가 책임지고, 그 가정을 내가 책임지고, 그 아들을 내가 책임지고, 그 아내를 내가 책임지고, 그 군왕을 내가 책임지겠다고 하는 입장에 서서 자신을 가지고 백방으로 몰려오는 모든 화살을 기쁜 마음으로 자기 일신에 맞겠다고 각오하고 나서야 합니다. 이런 수난길을 가겠다고 다짐하고 나서지 않고는 해방운동을 제시할 역군이 될 수 없는것입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가야 되느냐? 그것은 잃었던 백성을 살리기 위한 것이요, 원한과 설움에 사무쳐 죽어가는 아들딸의 해원성사를 하기 위한 것이요, 아내의 해원성사와 군왕의 해원성사를 하기 위한 것이 우리 백성으로서 응당히 자랑할 길이 아니냐. 수난길 가는 것을 의무로 알고, 그 나라를 위해 그들의 생명보다 천한 내 생명을 몇백 번 바쳐도 감사한 마음을 갖고, 생명을 걸고 새로운 주권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을 추앙하는 마음을 가지고 가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군왕을 추앙하는 망명객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일체가 되어 일편단심 절개를 세워 나오던 도리의 길을 전체를 대신해서 상속받고 나설 수 있는 자리를 갖지 않고는 안 됩니다. 아직까지 그 나라가 오지 않았고 그때가 오지 않았거든, 그 나라와 그때를 갖지 못한 섭리의 뜻 앞에는 필시 이런 길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라를 살리기 위한 애국자는 자기 아내와 처자를 사랑하기 전에 나라를 사랑해야 되고, 자기 가정을 사랑하기 전에 백성을 사랑해야 되고, 자기 생명을 사랑하기 전에 주권을 사랑해야 됩니다. 그런 자리에서 가는 것이 충신이 가야 할 정도(正道)입니다. 거기에 있어서는 이율배반적인 상충의 행각의 노정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수난의 자리에서 승리한 사람으로 남아지자
예를 들어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볼 때에, 통일교회 교인들이 가고자 하는 데 있어서는 나라를 위해서는 가정을 버려야 된다는 거예요. 나라와 가정을 둘 다 찾으면 좋겠지만 그렇게 안 되었다 할 때에는 보다 큰 것을 위하여 작은 것을 희생해야 되기 때문에, 이러한 비운의 운명에 사는 것입니다. 만약 하늘나라의 주권이 피해를 입었고, 그 나라의 권위가 멀고, 이 땅이 황폐해 버리고, 그 백성이 온데간데없는 입장에 서게 되어 그것을 다시 찾아 나서야 할 애국자라 할진대는, 그러한 천륜의 심정을 본받아 가지고 생명을 몇 번이라도 희생해 가면서 그 백성이 맞은 것은 내가 맞은 것이요, 그 백성이 희생했던 아픔은 내 아픔이요, 그 일가가 비참하였던 것은 내가 몇백 년 막아야 될 책임을 못 했기 때문이라는 분한 심정을 갖고 그 한을 풀겠다고 현실 생활에서 다짐해야 합니다. 그러한 자기 주체성을 갖고 나오지 않고는 그 나라를 맞이할 수 있는 길은 영영 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 이상의 투지력을 가지고 그 이상 단결하여서 그럴 수 있는 실력을 연마하기 전에는 하늘나라를 복귀하고 그 나라를 복귀해서 새로운 이상적인 나라, 새로운 소망적인 나라의 주권을 가질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마치 그와 같은 입장이 하나님의 입장입니다. 아들도 죽였고, 성신도 지금까지 희생시켜 나왔습니다. 지금까지 역사시대를 거쳐오면서 개인이 죽어 나가자빠지는 것을 보았고, 가정이 망해 들어가는 것을 보았고, 종족이 망해 들어가는 것을 보았고, 나라가 망해 들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아들딸이 얼마나 사자밥이 되고 기름 가마에 튀겨 죽고 처박혀 죽었는지 잘 보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그 보았던 사실들을 그저 흘러간 사실로 넘겨 버릴 것이 아니라 보았던 내 일신에 그 전통을 이어받아 가지고 오늘 산 부활의 실체가 되어, 원한의 상대를 전부 다 일소해 버릴 수 있는 하나의 대표적인 개인이 되고 기수가 되어, 천만 번 죽음을 가려 가는 한이 있더라도 '나는 일편단심 한번 정한 심정의 자세는 일보도 양보하지 않겠다'는 충절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 나오지 않고는 하늘나라의 복권운동(復權運動)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만세의 주인이 되고 만군의 주인이 되어야 할 그가 설 수 있는 땅이 어디 있으며, 그가 거느릴 수 있는 백성이 어디 있으며, 그가 다스릴 수 있는 주권이 어디 있느냐 할 때, 그 주권 대신 남아질 수 있는 한 사람, 국토 대신 남아질 수 있는 한 사람을 바라서 보냈던 예수 그리스도를 잡아죽이는 그 순간은 나라가 쓰러지는 순간이요, 국토가 깨져 나가는 순간이요, 백성이 망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쓰러진 이스라엘 주권은 어디 갔으며 백성은 어떻게 됐느뇨? 사자밥이 되었고, 혹은 각 시대 시대 민족 앞에 말발굽에 짓밟혀 가지고 쓰러진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걸 바라볼 때, 애국애족해야 할, 천륜의 도리를 찾아야 할 하나의 주권을 모색하는 인류, 온 세계 국가군(國家群)을 바라볼 때 수많은 주위의 국경선이 가로막혀 있는데, 이 국경선은 누가 막아 놓고 주권은 누가 세워 놓았느냐! 그것은 원수의 조작으로 만들어진 주권이요, 원수의 조작으로 만들어진 국경선입니다. 하나님을 대신한 신념을 가지고 그것을 타파하고 갈 수 있는 무리, 원수 사탄의 땅을 처치해 버릴 것을 각오하고 결속해 가지고 나설 수 있는 무리는 어디 있느냐? 그 무리는 오늘날의 기독교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통일교회는 자중한 자리에서 자각하고, 자각한 자리에서 내일의 소망을 재차 다짐하면서, 오늘 스스로 준비를 완벽하게 해 가지고 전진적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철옹성 같은 조직을 갖춰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행차하는 데 다시 수습이 필요 없는 생활과 더불어 전통의 길을 가려 나가지 않고는 사탄권내에서 승리의 한날을 맞을 수 없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사탄의 참소를 도피하는 방법은 어떤 것이며 이것을 가려 가지고 피해갈 수 있는 길은 어떤 길이냐? 그것은 죽음길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알게 되면 열 사람이 따라오다가도…. (잠시 녹음이 중단되었음) 말은 좋고 내용은 좋고 가는 길은 좋다고 하지만 따라올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결의한 패들은 네 발이 찢기거든 내 발이 찢긴 이상의 아픔을 느끼고, 네 집이 망하거든 내 집이 망한 이상의 아픔을 느끼면서, 네 아픔을 내가 당하고 내 아픔을 네가 당해야 할 공동 목표를 중심삼은 하나의 주체와 같은 입장에서 결속해야 되겠습니다.
동네방네 울려오는 통일교회 반대의 소문을 들을 적마다 우리의 피는 끓고 우리의 가슴은 불타 가지고, 그것을 그저 흘러가는 자극과 원한의 조건으로 받아들여 내 일신을 어려움의 자리에 세우는 것이 아니라, 그 어려움을 미래의 자극의 터전으로, 내일의 승리를 다짐할 수 있는 기초로 소화 흡수할 수 있는 자주력을 가지고 병난 세계에서 병나지 아니한, 면역을 갖춘 사람으로 남아지자 하는 것이 오늘 이 사망권내에서 싸워 나가는 통일교회의 입장인 걸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수난을 각오하지 않고는 해방의 기수가 될 수 없어
그러면 우리는 어떠해야 되겠느냐? 사탄이 주관하던 만물권, 사탄이 주관하던 사람, 사탄이 주관하던 주권, 그 주권자보다도 강해야 되겠습니다. 그 백성의 아들딸보다 그와 연결된 그 누구보다도 강해야 되겠습니다. 내 소유는 비록 하나의 손수건일망정 세계보다도 귀한 것으로 제물 드릴 수 있는 신념을 가지고, 물건과 아들과 나 자체를 하나님 앞에 세계를 대신해서 제물 드릴 수 있는 권한을 고이 상속받겠다는 신념을 갖지 않고는, 그런 수난길을 다짐하지 않고는 완전 해방의 기수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라를 찾기 위하여 나선 사람은 개인을 희생하고 나서야 되고, 가정을 희생하고 나서야 되고, 종족을 회생하고 나서야 되고, 그런 민족이나마 안 되게 될 때는 민족을 버리고 하나의 주권을 따라 가지고 고립된 길까지도 갈 수 있어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민족까지도 버려야 됩니다.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 위하여 모든 것을 다 저버리고 홀로의 몸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 나라의 군왕이 남긴 유업과 더불어, 그가 제시한 방향과 더불어, 그가 바라는 이상의 나라와 더불어, 나는 홀로이지만 서 있다 할 수 있는 그 사람이 이 땅위에 보내심을 입었던 메시아였다는 것입니다. 메시아 사상은 그거 아니면 안 됩니다.
민족을 살리기 위해 낮은 자리로 내려가자
하나님 앞에 한 나라의 땅을 들어 '이 땅은 당신이 사탄이 사랑하는 것보다 더 사랑할 수 있는 땅입니다', 한 백성을 들어 '이 백성은 당신이 사탄이 백성을 사랑한 몇십배 몇천배 사랑할 수 있는 백성입니다', 주권을 들어 '이 주권은 당신이 소원한 주권입니다' 하며 일시에 그 국토와 백성과 주권을 봉헌하기 위해 왔던 것이 예수 그리스도였는데, 이것을 잃어버리고 간 예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누울 수 있는 한 조각의 땅도 없었습니다. 토기장이에게 빌린 땅에 묻혀야 했습니다. 황천길을 가는 데 있어서 하나의 친척이 없었습니다. 원수의 비소와 더불어 가야 했습니다.
그가 찾던 나라와 백성과 땅은 어디 갔느냐? 다 잃고 가는 비참이 극한 자리, 낙망이 극한 자리에서 이 땅에 자신의 소신을 다 펴지 못하고 갔기 때문에, 미래에도 남기지 않으면 안 될 생명을 가졌던 사나이이기 때문에, 망하는 나라를 바라보며 원수의 일가와 종족들에게 축복을 중심삼은 미래의 나라를 남겨야 되겠기 때문에, 억울한 사정을 갖고 갔던 예수님이라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나라를 이어받아야 할 것이 기독교의 사명이요, 그 나라를 위해 천륜의 도리를 밝혀야 할 것이 기독교의 사명인데, 사리사욕을 위해 당파 싸움을 하고, 자기의 권위와 이익을 위해서는 나라와 뜻이 어떻게 되는지, 천도는 어떻게 되는지 생각지 않는 이 무리를 그냥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밤이 오거든 낮으로 맞고, 낮이 오거든 더 빛날수 있는 낮으로 맞으면서 불철주야 걸어온 행각의 노정에서, 몰아치는 시련이 아무리 크다 해도, 몰아치는 폭풍우가 아무리 거세다 해도 사나이 가는 절개를 꺾을소냐? 사나이 가는 용기와 기백을 꺾을소냐? 원수를 한칼에 치지 못한 한을 못 푼 사나이는 죽을래야 죽을 수 없다'는 결의를 가지고 준비해 나가는 걸음걸이를 가야 할 것이 기독교의 사명인 것입니다. 이걸 못 했기 때문에 그 짐이 오늘날 통일교회에게 남아진 것입니다. 그렇게 된 거예요.
민족을 살리는 데는 어디서 살릴 것이냐? 고루거각(高樓巨閣)의 높은 권위의 자리에서 살릴 것이냐? 죽는 자리는 떨어지는 자리이기 때문에 떨어지는 자리에서는 죽을 사람을 살릴 수 없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내려가는 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내려가자! 먹을 자리를 피해 가자. 입을 자리를 피해 가자. 내가 좋아하는 자리는 사탄이 좋아하는 자리 아니냐? 여기에 물들지 않기 위해서는 격리된 자리에 가자' 하는 것이 통일 교회가 가는 길이예요.
여러분, 우리가 먹고 입고 하는 것들을 중심삼고 성별하기 위해 성염을 쓰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있어 가지고 이 땅에서 수확한 것을 성염으로 성별하지 않고 먹을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이 어디 있고, 자유로운 판도는 어디에 있으며, 이 백성이 서로서로가 딛고 사는 대지를 찾아갈 적마다 성별하지 않고 살 수 있는 땅은 어디에 있느냐? 여러분이 성별의식을 할 때, 성염을 쓸 적마다 '이놈 사탄' 하며 이를 갈아야 됩니다.
삼천리 반도가 하나님 앞에 품길 수 있는 날, 삼천만 민중, 이 나라 이 민족이 앞으로 오시는 주님의 이름을 대신하여 세계 만국을 대신해서 설 수 있는 민족이 되어 가지고 하나님 앞에 일시에 바쳐질 수 있는 민족이 되거든 이 민족은 세계의 조국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망하더라도 이 나라를 망하게 해서는 안 돼
그렇기 때문에 수난길을 피해 가지 말고 수난길 앞에 정도를 어떻게 세우느냐, 거기에 어떻게 전통적인 기초를 다짐하고, 전통적인 한 기원을 어떻게 발굴시키느냐 하는 문제를 중심삼고 싸워 가야 하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수난길과 해방운동이라는 문제를 부르짖어 오는 거라구요. 우리는 해방운동을 하는 거라구요.
우리는 철갑같이 꽉꽉 구속되었던 몸들이라구요. 담이 하나뿐만이 아닙니다. 개인을 막고 있는 담은 개인이 넘을 수 있지만, 그 높이는 가정을 위해 친 담은 더 높았고, 종족을 위해 친 담은 더 높았고, 나라를 위해 친 담은 더 높았고, 남북을 갈라놓은 삼팔선의 담은 세계적인 담이 되어 있기 때문에, 이것을 헤치고 가야 할 사명을 짊어진 사람들이 통일교회 교인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에게 있어서 세계적인 십자가를 지고 비틀거려면서도 쓰러지면 안 됩니다. 쓰러지더라도, 담을 넘고 나서 머리를 꺼꾸로 처박고 죽더라도 넘은 그 가정의 터전 위에서 죽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사상입니다. 가정은 죽더라도 거기에서 가족을 데리고 종족의 울타리를 넘어야 되고, 종족은 망하더라도, 통일의 일가 망하더라도 민족의 울타리를 넘어야 되는 것입니다. 민족의 거름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모든 화살을 다 받고 모든 억울함을 다 당하더라도 그 비참한 화살은 하늘의 영광이 다짐될 수 있는 것이요, 악의 무리 원수의 주권하에 있는 백성이 그러한 사정을 극복하고 나서게 될 때에는, 하나님이 자랑할 수 있는 백성의 전통을 세우고 사탄세계에 승리의 왕국을 세울 수 있는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굶주린 배를 붙안고 눈앞의 원수가 있는 적진을 응시하면서 한 걸음 두 걸음 비틀거리면서 걸어온 통일교회예요. 통일교회는 망하더라도 통일교회가 찾아가는 이 나라는 망해서는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을 무자비하게 수난길로 몰아내야 할 불쌍한 사나이가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는 거예요. 가는 길에 눈물이 엇갈리고, 오는 길에 눈물이 엇갈리고, 설움이 엇갈리는 그 순간을 통해서 우리의 소망의 나라의 절개를 다짐할 수 있는 그 길을 다리 놓지 않고는 이 나라를 구할 수 있는 길이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절박한 국제정세를 놓고 우리는 담판기도를 해야 되겠습니다.
민족을 대신하여 수난길을 누가 책임질 것이며, 남북의 가름길을 갈라 내는 책임을 누가 질 것이냐? 현재 이 나라의 부패한 위정자들에게 그것을 바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런 의미에서 이 민족의 수난길을 다짐해야 되겠습니다. 다짐하는 데 있어서는 이 민족만의 수난길을 짊어지겠다고 다짐해 가지고는 안 되겠습니다. 아시아를 붙들고 이 민족의 수난길을 책임져야 되겠고, 세계를 붙들고 이 민족의 수난 길을 책임져야 되겠습니다. 더 높은 시련의 고개를 넘는 것이 내가 응당히 가야 될 책임으로 알고 그곳을 향하여 가야 되겠습니다. 오늘의 싸움을 내일의 싸움의 훈련으로 알고, 세계적 수난길을 상속받기 위한 훈련 도상의 국가적 국내적인 시련으로 알고 갈 수 있는 마음을 갖지 않는 사람은 가다가 꺾일 것입니다. 그 담을 못 넘는다면 나라가 넘어야 할 고개보다도 세계가 넘어야 할 고개의 담이 막혀 있을 때 그 담을 못 넘을 것이 아니냐?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 있는 선생님은 가정을 버렸던 사람입니다. 부모와 처자를 버린 사람입니다. 버리고 통일교회 여러분들을 더 사랑한 사람입니다. 틀림없이 여러분이 알 것입니다. 전통적 사상은…. 대한민국을 거쳐서 세계를 사랑하려니 편안한 길이 아니라구요. 사랑의 길은 편안한 길이 아니예요. 수난의 길이예요. 수난길과 해방운동…. 그렇게 가다 보니, 우리 통일교회가 이렇게 올라오기 위한 것이 아니예요. 가다 보니 죽을 자리에 몰아넣었지만 죽으라고 한 사람은 죽지 않고 죽이겠다고 하던 사람은 죽었습니다. 그게 이상하다구요. 망하라고 한 통일교회는 망하지 않고 망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던 기성교회는 망해 떨어졌습니다.
통일사상으로 이 나라를 통일시키자
우리는 하나님의 보호를 입고 어려운 길을 넘어왔지만 반대하던 무리가 그 길을 그대로 따라오고 있다는 거예요. 기성교회 목사들이 통일교회가 걸어온 길을 그대로 밟다가 밥목사가 되는 거라구요. 그대로 딱 되는 거라구요. 이렇게 볼 때에 우리는 하늘의 협조를 받고 넘어가지만 뒤에 따라오는 패들은 하늘의 협조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누가 협조해 줄 것이냐? 통일교회가 협조해야 된다구요. 기가 막힌다구요.
우리가 앞에서 저들을 끌고 가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이여! 저들을 버리지 마시옵고 저들을 데리고 가야 될 것이 아니옵니까? 하는 놀음을 해야 합니다. 누가 그 놀음을 해야 되느냐? 요셉이 해야 된다구요. 야곱의 열두 아들 중에 요셉과 같이 하늘이 보호하는 사람이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저들에게서 하나님은 이미 떠났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가 저들을 데리고 가야 되기 때문에, 그들의 복을 빌어 줘야 하기 때문에 별의별 놀음을 다 하고 있는 거라구요, 별의별 놀음을.
내가 청년 시절에는 용서 못 하는 성격이었다구요. 옛날에도 누구한테 한 대 맞아 본 사람이 아니라구요. 그렇지만 맞기도 많이 맞고 원수도 많지만 그게 원수가 아니라구요. 그래도 내가 없을 때는 하나님이 외로울 때 효성의 도리를 다짐했던 무리들이 아니냐? 형님들이 아니냐? 딱 요셉과 마찬가지라구요. 그러니까 그들을 위해서 우리는 축복을 해주고 길을 닦아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민족을 위해서 죽을 수 있는 자로 우리가 나서야 되고, 기독교가 나서야 되는 거라구요. 공산당의 원수는 기독교가 아니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선두에서 승공활동을 중심삼아 가지고 승공사상을 들고 나올 때에는…. 반공연맹도 이제는 때가 지났다구요. 실력 대결에서 우리한테 무릎을 꿇어 가지고 이러한 실적권에 들어온 것을 볼 때, 이제야 우리의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6천년 동안 하나님이 고대하고 바라던 때가….
그 한 나라의 주권을 중심삼고 천주를 대신해서 하나님 앞에 영광의 찬양을 드릴 수 있는 하나의 백성과 더불어 삼천리 반도를 찾아 나섰는데 이 땅이 둘로 갈라졌다는 것입니다. 원리를 중심삼고 보면 안 갈라질 수 없는 거라구요.
이래가지고 개인에서 가정, 가정에서 종족, 종족에서 민족, 민족에서 국가, 국가에서 세계…. 여기에는 개인적 가인, 가정적 가인, 종족적 가인, 민족적 가인, 국가적 가인, 이렇게 두 갈래로 갈라져 있는 이 나라를 무엇으로 통일시키느냐? 통일사상으로 통일시켜야 합니다. 통일사상을 갖지 않고는 이 나라를 해방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북괴가 김일성 사상을 가지고 통일을 꿈꾸고 있는데, 이것이 문제예요. 만약 통일사상만 집어넣어 보라는 것입니다. 김일성이 문제가 아니라는 거예요.
이런데도 불구하고 천대를 받고…. 여러분, 생각해 보라구요. 한이 많다는 것입니다. 벌써 12년 전에 대전 형무소를 중심삼고 간첩교화 문제를 들고 나와서 법무부에 건의했지만 통일교회는 이단 어쩌고 하면서 거절했습니다. 이제 10여 년의 세월이 흘러 너무 때가 늦었다구요. 그렇다고해서 우리가 속수무책으로 있을 수는 없으니 이제는 결정적인 판가름을 해야 할 시대가 온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금년에 들어와서 내가 이렇게 바쁜 거라구요. (녹음이 잠시 중단되었음)
통일사상의 상속자가 되라
남한이 종교 사상을 중심삼고 제1, 제2해방을 했으면 제3해방을 해야 할 텐데, 남북한 제3해방을 누가 할 것이냐? 그것을 누가 할 것이냐? 기독교? 유교? 누가 해야 할 것이냐? 공산당이 하는 거예요? 공산당이 하면 망하는 거라구요. 종교인들을 그저 몽땅 없애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전체 종교를 대표해서 우리가 하자는 거예요. 우리가 기수가 되자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후의 작전은 우리가 맡아야 되겠습니다. 아시겠어요?「예」
우리는 수난의 길과 해방운동의 기수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 전통적 절개와 사상을 이어받고, 그 군왕이 아팠던 그 가슴을, 그 가정의 아들딸이 아팠던, 그 국민이 아팠던 격분심을 가지고, 원수 앞에 지배받던, 하나님의 원수요 우리의 역사적인 원수를 갚기 위해 원수의 본거지를 향하여 총공격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이러한 사명이 선두에 선 통일교회 식구 여러분에게 있다는 것을 알고, 밤이나 낮이나 그곳을 향하여 우리는 달리고, 승리로써 이 나라를 이끌어 놓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안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난길과 해방운동이란 것은 뗄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수난이 크면 클수록 그것이 끊어지는 것이 아니라 더 보람있는 전통이 되고, 천년 만년 살아서 수많은 하늘나라의 백성을 한꺼번에 끌고 다니는 원동력이 되고, 재료가 되고, 누룩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 근세의 해방뿐만이 아니라 역사적 해방까지도 여기에서만이 가능하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고, 이제 그러한 결의를 가지고 앞으로 통일사상의 상속자들이 되기를 바라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기 도
이 자리에 서 있는 자식을 당신이 사랑하시거들랑, 이 자식이 가야 할 길을 더 사랑하여 주시옵소서. 이 자식이 생각하는 사상이 있거들랑 그 사상이 당신의 마음에 그릴 수 있는 사상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 모든 귀일점은 사탄이 자랑하던 나라와 사랑하는 백성과 사랑하는 주권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님을 중심삼고 그 이상 사랑할 수 있는 그러한 백성과 땅과 주권으로 만들어야 할 당신의 거룩한 선의 주권을 향하여 출발한 행보였기 때문에, 가는 길이 아무리 치열한 노정이라 하더라도 저희들은 그 길을 가기를 결심했사옵니다.
수많은 사람의 비난과 비소도 받아 보았고, 원수들에게 저주도 받아 봤고, 아픈 가슴, 쓰라린 가슴을 다 숨겨 가면서 그런 자리에 세워진 것은 세상의 돈을 위한 것이 아니요, 그 나라의 권위를 위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당신의 아들의 권위가 그러하기 때문에, 당신이 걸어가신 걸음을 따라가야 할 길인 것을 알았기 때문에, 아니 갈 수 없는 심정적 일로를 남겨야 할 전통적인 행각의 노정인 것을 알았기 때문에 오늘까지 죽지 않고 남아진 것만을 감사드립니다.
그런 행로에서 몇천 번 죽기를 다짐할 적마다 아버지께서는 살려 주어 지금까지 남겨 주신 뜻이 있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오늘 저 자신이 살아 있는 것은 내일의 큰 소망, 지난날보다도 더 다짐해야 할 소망이 앞에 남아 있는 것을 알게 될 때, 해가 가고 날이 가는 것이 원통스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혈기 충천하여 하나님을 위한 의분에 불타고 그 의분과 기백에 세포 세포가 약동하던 젊은 지대를 보내고, 반세기의 행각의 노정을 지내고 나서 그때 이상의 정열을 가지고 하나님의 섭리를 위하여 싸워야 할 당신의 뜻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오늘날 이 한을 풀 수 있는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을, 아버지,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대학가에서는 원리연구회가 여러가지 문제를 중심삼고 싸워 왔습니다. 이 나라 이 백성을 치리하고 있는, 이 나라의 주권을 다스리고 있는 수많은 정책 수행자들을 들이치고 감동시켜야 할 책임, 혹은 교수들을 중심삼고 공청회를 듣게 하면서 지금까지 해 나왔습니다.
그 나라뿐만 아니라 기독교를 살려줘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에 반대를 받으면서도 저희들은 굶주림을 각오하고, 헐벗으면서도 때로는 개밥을 먹고 피를 팔아 전도하고, 피를 팔아 모은 돈까지 긁어모아서라도 목사들을 살려주기 위해서 눈물 흘려 나왔습니다. 내가 한푼을 아껴 갈라 쓰고 한푼을 쪼개 쓰는 자리에 서더라도 남아진 푼푼을 모아 이들을 살리기 위해 쓰는 그것이 당신의 가는 길이요, 하늘나라와 세계를 해방시킬 수 있는 요인이 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저희가 그러지 않고서는 안 되겠기에 지금까지 안간힘을 다해 나오는 것이옵니다.
우리는 몇 열 종대로 아버지 앞에 가는 것이 아니라 일렬 종대로 아버지 앞에 가는 외로운 무리이옵니다, 선두에 선 자가 쓰러지걸랑 그 다음에 선 자가 선두를 대신해야 되겠고, 그 다음에 선 자, 그 다음에 선 자, 이렇게 말단의 어린 소녀까지 책임해야 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우리는 단 한 줄을 통하여 이 길을 닦아 오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때, 때로는 기가 막히고, 때로는 어이가 없사옵니다. 오히려 당신께서 이런 길에 서고 이와 같은 환경에서 왔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천만 비운을 넘고 당신을 부여안고 통곡을 하고 싶은 심정이 엇갈릴 적마다 당신은 위로해 주고, 당신은 일깨워 주셨습니다. 당신이 가야 할 세계의 길이 어떻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자식들이 가야 할 수난길이 아직까지 미급한 것을 깨닫고, 눈물로 회개를 다짐하는 걸음걸이를 다져 온 것이 누구도 알지 못하는 통일가의 전통적인 역사가 되었다는 사실, 이것은 당신만이 알고 계시옵니다.
오늘 통일교회 무리들이 당신을 위하여 죽음을 각오하고 뜻이라 하면 미친 자가 되겠다고 맹세하고 있습니다. 생명을 잃는 길도 기쁨으로 가겠다고 맹세하고 있습니다. 저희의 주위에는 동지가 없는 것을 느끼오나 그 가운데 동지가 한 사람 두 사람이 있어 그 한 사람 두 사람 가는 것을 보고 서러워할 수 없는 입장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그야말로 비참하고 그야말로 원통하옵니다.
그렇지만 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통일교회 문 아무개는 망할지라도 통일교회가 가는 길은 망하지 않을 것을 내가 알고 있습니다. 통일교회를 반대하는 이 나라는 망하게 될지라도 이 길은 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내가 알고 있습니다. 부디 당신이 세우신 목적지가 있거든 이끄시사, 승리자와 더불어 만국을 대표하여 사탄권의 이 나라를 짓밟고 선주권(善主權)을 당신이 세우시옵소서. 그리하여 당신께서 만자녀의 수고를 칭찬하고, 하늘나라와 땅나라의 모든 상속을 이어주기에 서슴지 않는 미래를 맞을 수 있는 날이, 제3시대의 평화가 어서 속히 오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우리는 해방의 역군이옵니다. 제2해방, 제3해방, 세계를 대해서는 제4해방이 남아 있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이 길을 다 가기 전에 지쳐서는 안 될 것이요, 죽어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최후의 결승전까지 싸워서 승리의 영광의 자리에 동참자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사랑하지 않을 수 없고, 사랑받지 않을 수 없는, 승리한 아들딸들이 되어 영광의 천국 앞에 부끄러움이 없이 당신의 이끄심을 받아 들어갈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전체를 축복하여 주시옵고, 지켜 주시옵고,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리면서.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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