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repentance)는 히브리어로 shub(의지 반영), naham(감정 반영), 헬라어로 metanoeo(소극적 의미), epistrepho(회심과정 전체, 만물이 구원자에게 다시 돌아옴), metanoeo(정신적 변화, 감정적 변화, 의지적 변화)로써, ‘돌이키다’(return)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따라서 회개는 “자신의 죄에 대해 거룩한 근심을 가지고 그것으로부터 돌아설 결단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단순한 후회나 고백과 다르다. 참된 회개에는 참된 변화가 뒤따른다. 단지 자신의 죄를 깨닫는다고 해서 온전한 회개가 되는 것은 아니다. 회개에는 통회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고, 죄로부터 돌아서고자 하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허셀 홉스는 “죄의 깨달음은 구원과 같은 것이 아니다. 깨닫고 나서도 사람은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더 깊은 죄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한 월터 카너는 회개를 마음의 변화라고 전제한 뒤, 진정한 회개는 죄를 깨닫고(지성의 작용), 조심하며(감정의 작용), 죄를 폐기하는 것(의지의 작용)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회개는 한 번으로 족한가, 아니면 끊임없이 계속 되어야 하는가? 스티븐스는 “사람이 죄를 범할 때마다 회개가 필요하며, 그리고 그가 회개할 때마다 그는 하나님의 죄사함에 대한 기쁨을 느낀다”고 설명했고, 멀린스도 회개로 인한 변화는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죄에 대한 영혼의 항구적인 태도”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회개는 매일 꾸준히 계속되는 영구한 도덕적 과정이다. 하지만 이런 설명은 회개의 진면목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 회개를 정확하게 설명하기 위해서는 회개의 일용성과 계속성을 ‘대문자’ 회개(Repentance)와 ‘소문자’ 회개(repentance)로 구분하는 것이 좋다. 일회성 회개는 구속사적 관점에서 일어나는 구원의 조건을 말하는 것이고, 계속성 회개는 성화의 조건으로 그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러므로 회심 단계에서 말하는 회개는 일회성 회개로 의미제한이 필요하다. 이 일회성 회개에는 두 국면이 수반된다. 하나는 단절이고 다른 하나는 새로운 만남이다. 단순한 종교체험이나 기적 체험을 회심이라고 말할 수 없다. 회심은 “근본적인 단절”과 “인생을 변화시키는 만남”을 전제한다. 무디의 설명에 따르면,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는 두 가지 기본적인 관계를 가진다. 하나는 하나님을 향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죄로부터 떠나는 것이다. 회개가 죄를 향하는 것으로 해석될 때, 그 결과는 후회와 영적인 죽음이다. 그러나 그것이 죄로부터 떠나고 하나님을 향할 때, 구원의 길은 시작된다(막 1:1-4).”
계속성 회개는 성화를 위해 자범죄를 반성하고 회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회개의 이중적 의미를 구분하지 않게 되면 종종 자범죄를 회개하지 않아 지옥에 간다는 그릇된 주장이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자범죄를 회개하지 않았다고 해서 구원이 상실되는 것은 아니다.
[회중주체적 조직신학], 440-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