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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야담의 희작화 경향에 대하여
머리말
문자 오용의 해학
목적성 해학
희학성 해학
야담의 희작화 의미
마무리
머리말
이는 표현된 문자 가운데 음역이나 의역을 통해 유희가 발생되는 것을 말한다. 작가는 문면의 특정 부분에 유희가 담긴 한자어를 숨겨 두어 독자가 이를 발견하고 지적 유희를 얻도록 배려한다. 이러한 양상을 문자를 잘못 구사하여 유희를 발생시키거나 해학에 목적을 둔 문자 유희, 음역이나 의역을 통한 문자 유희로 나누어 검토한다.
이는 표현된 문자 가운데 음역이나 의역을 통해 유희가 발생되는 것을 말한다. 작가는 문면의 특정 부분에 유희가 담긴 한자어를 숨겨 두어 독자가 이를 발견하고 지적 유희를 얻도록 유도한다. 이러한 양상을 문자를 잘못 구사하여 유희를 발생시키거나 특정한 목적을 둔 문자 유희, 희학성 문자 유희로 나누어 검토하기로 한다.
문자 오용의 해학
이는 문자를 잘못 사용함으로써 해학이 발생되는 경우다. 서당의 습자 풍경을 보기로 한다. 한 학동이 서당에서 훈장에게 신령 령 자 쓰는 법을 학습하면서, 입구 자를 가로로 나란히 쓰게 되어 그 모양이 촛대 령 자가 되고 말았다.
한 학동이 신령 령 자[靈] 쓰는 법을 스승에게 물었더니, 스승이 가르쳐 주었다. 비우자 밑에 입구자 세 개를 쓰고, 그 밑에다 무당무 자[巫]를 쓰면 되지, 뭐.그는 스승의 가르침을 따라 차례대로 써 내려갔다. 그런데 입구자 세 개를 차례로 써 내려가니, 글자 모양새가 몹시도 괴상하였다. 그가 쓴 글씨를 들고 스승에게 여쭈었다. 이건, 촛대 령 자[촛대처럼 생긴 한자]가 아닌 감유?
자획이 복잡한 신령 령 자를 쓰는 과정에서 발생된 에피소드다. 스승의 자획 쓰는 방법은 제대로 지도가 되었지만, 이를 잘못 인식한 제자에게 문제가 있다. 입구 자의 위치가 변형됨으로써 글자 모양이 촛대처럼 되어 버렸다. 학동이 이를 스승에게 진지하게 묻는 데서 해학이 드러난다. 순진한 서생은 기상천외하게 촛대 령 자를 써서 스승에게 보여 주었는데, 이를 지켜 본 스승에게 한바탕 웃음거리를 제공한다. 형방의 아전도 이와 비슷한 경우이다.
형방의 아전이 백성들의 소송 건을 고하였다. 소송 문건 중에 관(串)자가 있었는데 쓸 도리가 없어 붓을 요리조리 돌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원님이 글씨 쓰는 법을 슬쩍 가르쳐 주었다. 입구 자 두 개 쓰고, 한 획을 위에서 쭉 내리 그으면 되잖아!아전은 원님이 가르쳐 준대로 글씨를 썼지만 글자 모양새가 매우 괴상하였다. 원님이 글씨 모양을 보고는 박장대소하였다. 내 팔도 수령을 두루 거쳤지만, 이런 한자는 처음 봤네!쇤네도 팔 대 째 형방 노릇을 해오고 있지만 이처럼 괴상한 글자는 난생 처음 봤습니다요.
동헌의 풍경이다. 고을의 소송 건으로 인해 문건을 작성하는 도중에 팔 대째 형방 노릇을 하고 있는 아전이 꿸 관 자[串]를 쓰지 못해 얼떨떨해한다. 그는 원님의 친절한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게 눈알처럼 양쪽에 입구 자를 쓴 쓰고 가운데 획을 내리그은 괴상한 모양의 글자를 쓰고 말았다. 그러나 막상 글자를 써놓고 보니, 둘 다 해독할 수 없는 한자가 되었다. 이 역시 정상 자형의 법도를 벗어난 해학이다. 다음은 친구의 양친을 암수로 부르는 것인데, 애당초 부모에 대한 존경의 마음이 무시된 문자 유희다.
세 사람이 함께 어울려 놀았더니, 그 중 한 사람이 며칠 지나서 나타났다. 두 사람이 의아해서 이유를 물었다. 무슨 연유로 며칠 동안 오지 않았는감?그 위인 문자로 대꾸를 했다. 수컷 어버이가 병이 들어서 그랬네.두 사람 배를 움켜쥐고 웃으며 답했다. 에구, 이 무식꾼아! 수컷 어버이라니 그 무슨 말이냐?그 위인은 무안해하며 대꾸를 했다. 모친을 자친(雌親)이라 하는 터에, 부친을 웅친(雄親)이라고 부르는 게 흉 될게 뭐람?두 사람은 웅친의 설명을 듣고, 점점 우스워서 허리가 끊어질 지경이었다. 그 위인은 부끄러워하며 가버렸다. 며칠 뒤에 그가 다시 나타났는데, 조롱하고 비웃을까 두려워 들어가지도 못한 채, 뜰에서 어정거리고 있었다. 마침, 두 사람이 마루에 앉아 있다가 그가 오는 것을 보고는 무릎을 치고 껄껄 웃으며 그를 가리키며 잽싸게 말하는 것이었다. 암 어버이가 오셨나, 수컷 어버이가 오셨나?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몇 일만에 나타난다. 두 친구가 그 이유를 물었는데, 그 위인이 찾아오지 못했던 사실을 해명하는 데서 해학이 드러난다. 그는 보통 모친을 자친(慈親)이라 하는 점을 익히 알기 때문에 문자를 써서 부친을 수컷 어버이[雄親]로 답하고 말았다. 무식꾼의 문자 오용으로 인해 웃음이 드러난다. 반면에 유식한 두 친구의 소행 역시 맹랑하기 짝이 없다. 예의와 염치에 구속을 받지 않는 해학의 생산이다. 동일한 문자 유희를 살펴보기로 한다.
길손이 말곁에 서 있었더니, 주인이 문자를 써서 주의를 시켰다. 그 말이 차요[寒].길손 역시 문자로 대꾸하였다. 주인 나리 문자는 혹스럽군요[或].
아주 짤막한 대화에 무식꾼의 문자 오용에 따른 해학이 담겨 있다. 말이 찬다[蹴]는 것이 말이 춥다[寒]는 것으로 잘못 전달되었다. 그런데 이를 받아치는 길손의 문자 구사도 이와 다를 바 없다. 문자가 의혹스럽군요[惑]라고 해야 옳을 것을 문자가 혹스럽군요[或]로 표현했다. 모두 무식한 소치를 드러낸다. 이어 무식꾼 새 신랑의 혼란스런 답변을 보기로 한다.
옛날에 어떤 아비가 장가드는 아들에게 경계하기를, “처가에서 말을 늘어놓다가 만약 문자를 쓸 것 같으면, 처가 식구들이 너를 업신여기지 못할게다. 처가에 도착하여 그들이 앉으라고 권하거들랑 ‘춥지도 덥지도 않은 좋은 시절에 어딘들 못 앉으리?’ 라고 답하고, 달밤이 되거들랑 ‘달 밝은 창가 너무 고와 잠 못 이루네’라고 답하고, 오동나무를 볼 것 같으면, ‘거문고 만들 재목이로세’라고 답하면, 네 처가댁 식솔들이 필시 너를 유식한 사람으로 인정할게다.”라고 했다. 그러고는 곧장 처가에 당도했는데, 과연 그네들이 앉으라고 자리를 권했으나, 이 신랑 도무지 부친의 가르침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다가 어렴풋이 생각들이 뒤섞여서 “불쑥불쑥[不速不速] 어딘들 못 앉으리?” 라고 대답했으며, 때마침 오동나무를 보고는 “허, 그놈 아래위를 썩 잘라 내고 작도판을 만들었음 좋겠다.”고 했다. 밤이 되어 달이 휘영청 밝자, 창문을 열어제치고 “달 밝은 창가의 애매모(愛梅母)!”라고 했다. 마침 그 아내의 이름이 애매(愛梅)였는데, 장모가 뜰에 있다가 듣고는 황급히 피신했다.
무식꾼 새 신랑이 유식한 척 하다가 도리어 처가 식구들에게 낭패를 당한다. 새 신랑은 부친의 꼼꼼한 개인 교습에 의해 제대로 학습되지 못한 채 혼란스러운 답변을 하여 웃음 거리가 된다. 무식이 드러난 것이다. 그의 답변 불쑥불쑥과 작도판은 그의 본질 성향을 드러내 준다. 법도에 구애받지 않고 살아온 촌놈의 행각이다. 문자로 그의 촌티 나는 행각을 포장하려 해도 잘 되지 않아 더욱 촌티가 드러난다. 위의 불쑥불쑥[不速不速]은 난데없이 여기저기 나타난다는 의미의 의태어다. 그리고 한자의 음만을 빌려서 이처럼 불쑥불쑥으로 표현했다.
이처럼 작중 인물이 문자를 잘못 구사하는 과정에서 유희가 발생된다. 이 과정에서 문자 구사자나 관람자는 일정한 식견을 갖추어야 이 유희에 동참할 수 있다. 상식을 바탕으로 하는 문자 유희라 할 수 있다.
목적성 해학
이는 예의와 염치를 무시한 행동 가운데 교묘한 문자로 상대를 우롱하거나 업신여기는 것을 말하는데, 이 과정에서 웃음이 유발된다. 영악한 소년이 윗사람에게 문자를 써서 골탕을 먹인다.
농담 잘하는 소년이 왔다. 우 별감이 그에게 농담을 걸었다.내게도 마땅히 절하고 가야지.소년은 웃으며 넙죽 절을 올렸다. 등뒤의 양 도감도 소년에게 농담을 걸었다.우 별감에겐 절하고, 왜 내겐 하지 않는가?소년은 즉각 몸을 돌려 일어나 절하며 문자를 써서 용서를 빌었다. 소는 보았지만, 양은 못 봐서 그렇게 되었습니다.
농담을 즐기는 소년이 우 별감과 양 별감을 만난다. 우 별감이 인사를 하지 않는다고 다그치자 소년은 그에게 인사를 올린다. 이즈음 소년은 약이 오른다. 그런데 양 별감 역시 인사 결례를 나무란다. 이에 소년은 즉시 맹자의 문구를 이용해 반격한다. 소년은 양은 보고 소는 보지 못해서 그랬다고 해명한다. 이는 맹자에서 양 혜왕과 맹자의 문답에서 맹자가 양 혜왕에게 왕도 정치를 시행하라고 설명하는 과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소년은 여기서 양 별감과 우 별감을 동시에 우롱한다. 그들을 소와 양으로 취급하여 이처럼 표현했다. 다음 작품은 나졸이 문자를 알지 못하는 상전을 문자를 써서 우롱하는 경우다.
나졸 가운데 우두머리가 늦게 왔다. 한 나졸 놈이 그에게 다가가더니 절을 올리고 문자를 써서 응하였다. 행수께선 어찌하여 이리 늦으셨습니까[晩到]?그 자가 발끈하였다.이놈, 네 놈이 어찌 감히 나를 잡탕으로 부른단 말이냐?나졸이 깜짝 놀라며 변명하였다.이 어인 말씀인가요?만두가 잡탕인줄 몰라? 만두가 잡탕이 아니고 무엇이냐?곁에 있던 나졸 한 놈이 듣고는 웃음을 참아 가며 문자를 써서 해명하였다.참으로 소귀에 경 읽는 형상일세.그는 성내길 멈추며 피식 웃었다.그러면 그렇지.
나졸과 행수의 만남이다. 나졸이 먼저 문자를 쓴다. 행수께서 늦게 오셨느냐며 묻는다[晩到]. 그런데 무식한 행수는 만도(晩到)를 만두(饅頭)로 잘못 알아듣고 발끈한다. 자기를 왜 잡탕인 만두로 부르느냐는 것이다. 이는 다른 나졸의 해명을 거쳐 오해가 풀려진다. 이로써 무식한 행수만 곤란하게 된다. 다음 역시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우롱하는 작품이다.
좌랑이 산 속의 절간에서 병 요양을 했는데, 마음씨가 교만하고 성격마저 패려했다. 절간 중을 위협해 고담을 해달라고 졸라 모두들 괴로웠다. 한 중이 대꾸를 했다. 한달치 고담이 이젠 정말 바닥났구만요.그러자 좌랑이 발끈했다.어, 이놈, 귀를 비틀어 버릴까보다.그럼, 말씀 올리는 가운데 설령 망발이 튀어 나와도 꾸짖지 않으실런지요?여부가 없지.이렇게 되어, 중이 고담을 늘어놓는 것이었다.우물 안 파리 정승이요, 좋은 작두 판 호조판서일세. 함께 떨어질 병조판서요, 병들어 죽을 병사로다. 썩어 죽을 부사요, 물방울 수령일세. 달린 방울 현령이요. 앉은 불알 좌랑이로되, 중놈 불알은 어디 쓸거나?
양반이 절간에서 요양을 하다가 스님에게 고담을 해달라고 졸라 스님은 고통스럽기만 하다. 그래서 그는 갑자기 기지를 발휘하여 이 좌랑을 욕 먹이기로 작정한다. 즉, 벼슬을 설명하면서 앞에 적절하게 붙인 칭호가 기발하다. 우물 안 파리 정승[井蠅政丞]․좋은 작두 판 호조판서[好板戶判]․함께 떨어질 병조판서[幷判兵判]․병들어 죽을 병사[病死兵使]․썩어 죽을 부사[腐死府使]․물방울 수령[水鈴守令]․달린 방울 현령[懸鈴縣令]․앉은 불알 좌랑[坐閬佐郞]이 희작이다. 스님은 좌랑에게 앉은 불알 좌랑이라고 망발함으로써 그에게 받은 수모를 돌려준다. 다음은 각박한 인정세태 묘사와 문자 유희가 복합된 작품이다.
어떤 자의 집이 찢어지게 가난하였는데 처남 녀석은 살림이 넉넉하였지만 매부의 집을 전혀 돌보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꾀를 부려 처남에게 서찰을 보내었다. 서찰의 내용은 이러하다.누이가 우연히 병을 얻어 보름이 되어가니 살아서는 못 볼 터, 죽어서 볼 것일세.그랬더니 이 처남이 그 서찰을 보고 한바탕 엉엉 목 놓아 우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서 널과 제반 장례 물품을 갖추어 누이 집에 당도해 보니, 이게 웬걸, 누이는 말짱하지 않는가. 그는 분하고 놀란 감정을 억누르지 못한 채 매부에게 발끈 화를 내었다.매부, 산 사람을 두고 죽었다고 공갈을 쳐도 되어요?처남, 그게 무슨 소린가?접때 보낸 서찰에누이가 우연히 병을 얻어 15일 되어간다로 쓰여 있는데, 이는 갑자기 죽었다는 이야기가 아니고 무어예요?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또살아서는 보지 못할 게고 죽어야 보리라고 한 것도 생전에 보지 못할 터, 죽은 뒤에 라야 볼 수 있다는 뜻이잖아요?그제야 매부가 껄껄 웃으며 해명하였다. 그게 아닐세, 자네 단단히 오해를 했구만.15일 죽었다[十五日化去]로 착각을 한 것은 병을 얻은 지 보름이 되어 간다[爲去]는 의미일세. 그리고살아서는 보지 못하고 죽어야 보리라[生不見死見]는 것은 도무지 살아 날 가망이 없어 필경 죽으리라는 뜻일세. 그건 그렇고 이미 가져온 장례 물품일랑 두고 가시게!
가난하게 사는 매부와 부유한 처남의 이야기다. 문제는 처남이 부유하게 살면서도 가난한 매부를 전혀 돌보지 않는 데서 비롯된다. 그래서 매부는 문자를 교묘하게 써서 처남에게 보낸다. 매부가 보낸 서찰 가운데 문자 유희가 드러난다. 매부는 처남이 누이가 죽은 지 보름이 되었다는 식으로 착각하게 문자를 써서 보낸다. 매부가 처남에게 보낸 문제의 문구는 화거(化去)이다. 이는 다른 것으로 변하여 간다는 것으로, 죽음을 의미한다. 그렇지만 매부의 해석은 그것이 아니다. 누이가 아픈 지 보름이 되어 간다[爲去]라는 의미이다. 여기서 되다[爲․化]와 간다[去]가 합성되어 이러한 유희를 발생한다. 이로써 매부는 처남이 가져 온 장례 물품을 몽땅 얻는다. 다음 작품 역시 이러한 의미를 담고 있는데, 학동의 재치가 돋보인다.
학동들이 문장 짓는 공부를 했는데 때마침 엉터리 말 좋아하는 자가 왔다. 학동들이 웃으며 놈에게 수작을 걸었다.지금, 농학을 할 수 있겠소?오패가 앉아 계시는데 제가 어떻게 농담을 할 수 있나요?무엇을 오패라는 것이요?힘써 연구하려 들지 않고 제목만 어렵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제나라 환공이지요. 글 제목도 알지 못한 채 묻고 또 묻는 자는 진나라 문공이지요. 정신을 집중하여 눈을 부릅뜨고 책을 읽는 이는 진나라 목공이요, 전적으로 남의 손에 맡겨 글짓기를 일삼으며 세월만 보내는 이는 송나라 양공입니다. 그리고 원고를 감춰두고 곁 사람에게도 보여 주지 않는 이는 초나라 장왕이니, 이것이 오패가 아닌가요?
춘추 전국 시대에 패업을 이룩한 오패에 대한 표현이다. 엉터리 이야기하는 자가 다섯 학동을 우롱하는 재치 있는 해학이 담겨 있다. 이를 차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제목을 달기가 어렵다고 근심한다는 의미[思題難]는 제나라 환공을 의미한다[齊桓公]. 묻기만 하는 학동이라는 의미[進問公]는 진나라 문공을 의미한다[晉文公]. 눈을 부릅뜨고 책을 읽는 학동이라는 의미[瞋目公]는 진나라 목공이다[秦穆公]. 그리고 세월만 보내는 학동이라는 의미[送陽公]는 송나라 양공을 가리킨다[宋襄公]. 마지막으로, 원고를 남에게 보여 주기 부끄러워 감추기만 하는 학동이라는 의미[草藏王]는 초나라 장왕을 말한다[楚莊王].
이 다섯 학동의 행동을 오패에 비겨 영악하게 표현했다. 그러나 이 말 가운데에는 학문에 열중하지 못한 채 결점을 안고 있는 다섯 명의 선비를 우롱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다음은 문자를 너무 구사하다가 낭패를 당하는 경우인데, 상황 분별이 없는 문자 구사는 독자에게 웃음을 제공한다. 무과 급제 출신자의 문자 구사에 따른 문자 유희다.
무과 급제 출신자가 천자문을 꽤 많이 알았다. 하루는 병조판서를 찾아뵈었는데, 병판은 족자를 걸어두고 지켜보고 있었다. 놈이 그 광경을 지켜보다가 곧 문자를 써서 말했다. “판서 나리! 이 족자에 새와 짐승을 그렸으면 좋을 것 합니다.”병판이 발끈 성을 내었다. “네 이놈! 이 족자는 신선들의 신령스러운 모습을 그릴 물품인데 어찌 네 놈이 새나 짐승을 그려 넣으라고 주둥일 지껄여?” 그래서 그는 쫓겨났다. 그는 쫓겨나 담 모퉁이에 우두커니 서있었다. 그 때 비가 부슬부슬 내렸는데 병판이 볼 일 보러 나가다가 놈을 보고 빙긋이 웃으며 물었다.넌, 무슨 일로 거기 서 있는 게냐?그는 즉각 문자를 써서 답하였다. 신선들의 신령한 모습을 그려야 할 족자에 새나 짐승을 그려 넣으라고 했다가 구름 피어올라 비 오는 가운데 담에 귀를 대고 서 있습니다요!
무변의 천자문 구사 솜씨가 드러난다. 무변이 병판 댁을 찾아갔더니, 마침 병조판서가 족자를 걸어 두고 지켜보고 있다. 무변은 천자문 가운데 4자씩 대를 맞춘 55번째 구절인 새와 짐승을 그렸으면 좋겠다고 한다[圖寫禽獸]. 이에 병판은 천자문 55번째 구절인 신령스러운 신선을 그린다고 응수한다[畵采仙靈]. 발끈한 병판은 놈이 못마땅하여 대문 밖으로 내쫓아 버렸다. 그래도 무변은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 담 모퉁이에 서 있었는데 보슬비마저 내린다. 병판이 출타하는 길에 왜 거기 서 있느냐고 묻는다. 무변은 신선을 그릴 족자에 새나 짐승을 그리려고 거들었다가[圖寫禽獸 畵采仙靈], 구름 오르고 비 내리는 가운데[雲騰致雨], 담장에 귀를 대고 서 있다고 답한다[屬耳垣墻]. 운등치우(雲騰致雨)는 천자문의 5번째 구절이며, 속이원장(屬耳垣墻)은천자문의 100번째 구절이다.
무변의 고집도 보통이 아니다. 병판에게 핀잔을 들었으면, 물러갈 것이지 그는 끝내 담장에 붙어 섰다가 문자를 써서 대꾸한 것이다. 따지고 보면, 그의 문자 구사는 아주 적절한 때 잘 구사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도 이면에는 윗사람에 대한 모종의 거역 심리가 담겨 있음을 알게 된다. 자기를 굽히지 않는 무변의 형상을 읽을 수 있다. 문자 유희를 통한 보복 심리가 담겨 있다. 다음은 청구야담의 것인데, 내용을 개략적으로 정리하고, 해당 부분만 원문을 제시한다. 무변이 병조 판서와의 면담을 방해하는 동료 무변을 내쫓기 위해 기발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한 재담꾼이 있었는데, 병조판서와 그 휘하의 세 무변 출신자를 앉혀 놓고 고담을 들려주었다】
① 이씨 성을 가진 조대가 부인과 뜻이 맞지 않아 나이 사십이 되도록 자식이 없었다.
② 어느 날 밤, 내실에 찾을 물건이 있어 건너가니, 부인이 알몸으로 이를 잡고 있기에
조대는 정이 동했고, 그 날로부터 부부의 정분이 좋아져 아이도 낳았다.
③ 그런데 태어난 아기를 이 잡은 덕에 낳았다고 하여 이 문덕이라 했다.
④ 세 무변 출신 중, 이 문덕(李文德)이란 자가 화를 내며 나갔다.
여기서 재간이 있는 무명의 강담사를 만난다. 병조판서 휘하에는 세 명의 무변 출신자들이 늘 그와 함께 있기 때문에 이 위인은 판서에게 미관 말직을 청탁할 수 없다. 그래서 그는 고담을 들려주어 병조판서를 포복절도케 하는데, 작중 주인공의 이름을 세 무변 출신자로 변용시켜 그들을 불쾌하게 해서 내쫓는다는 이야기다.
위의 내용으로 돌아가 보면, 조대는 부부 사이에 정이 소원해졌다. 우연히 그가 내실에 건너갔더니 부인이 알몸으로 이를 잡는 광경을 목격한다. 조대는 정욕이 일어나, 부인의 알몸을 보고 현장에서 동침한다. 이후, 소원해졌던 부부의 금슬이 좋아졌을 뿐만 아니라, 덕분에 아이를 생산하게 되어 이름을 이문덕이라고 지었다. 그의 이름을 세분해 보면, 이[虱]」+깨물다[吻] +덕[德]이다. 이들을 조합하면, 이가 부인의 몸을 물어뜯은 덕이 된다[虱吻德 : 李文德].이어 두 번째 이야기를 보기로 한다.
① 가난한 부부는 정분이 매우 좋아 관계했다 하면 아이가 생겼다.
② 어미는 맏이에게 차례로 태어난 동생을 업게 하여 키우는 고생을 덜었다.
③ 아비가 타처에 갔다가 근 한 달 만에 돌아왔는데, 밤에 부부가 방사(房事)를 벌이는데,
맏이 놈이 무심결에업힐 놈 또 튀어 나온다고 고함을 질러댔다.
④ 세 무변 출신 중, 어필수(魚必遂)가 화를 내며 나갔다.
(…)
【이에 재담꾼은 세 무변을 다 내쫓고 병판에게 청탁해 말직을 얻었다】
위 작품은 부부 사이의 정분이 지나치게 좋았다. 부부가 관계를 가지면, 아이를 생산하게 되는 데서 위 작품과 상반된다. 이들 부부의 친밀한 금슬이 맏이에게는 두통거리로 작용된다. 아이가 태어나면, 자기에게 업어 키우는 책임이 넘겨지기 때문이다. 어미가 자식의 보육을 전적으로 맏이 놈에게 맡기는 데서 이런 문제가 발생된다. 그래서 맏이는 부모가 관계를 가지는 것이 두통 그 자체이다.
이제 그 맏이의 고충이 해명되었으니, 그가 무심결에 내뱉은 말을 세분해보면, 지다․업다[負]+놈․자식[手]의 관계로, 동사+접미사의 형식이다. 이는 기수(騎手)혹은 사수(射手)와 같은 관계다. 그런데 아이는 아직 태어난 상태가 아니므로, 미래형으로 전용시켜 업힐 놈으로 보면 타당하다. 그래서 업힐 놈이 된다[負手 : 魚必遂]. 여기서 [업다]와 [놈]의 두 관계는 모두 의역되었다. 맏이 놈은 평소 억울한 마음이 쌓인 터에 자기도 모르게 이런 망발을 하게 된 것이다.그래서 어필수는 그 자리를 떠나가게 된다. 무변은 말재간을 이용하여 두 무변을 불쾌하게 하여 그 자리를 뜨게 한 것이다.
전체의 내용이 장황하므로, 일부러 줄거리만 제시했다. 원문에는 동일한 한 가지의 이야기가 더 있으나, 본 논지와는 다소 미흡하여 소개하지 않았다. 다음 명엽지해(蓂葉志諧)의 내용은 재담꾼이 고담을 길게 들려주고 부자 영감의 사위가 된다는 것이다.
옛날에 긴 고담 듣기를 즐기는 영감이 살았는데, 집은 매우 부유했다. 외동딸의 혼기가 차자, 영감은 필경 길게 고담할 수 있는 자를 사위로 삼기로 작정했다. 사람들마다 그 소문을 듣고는 시도를 해보았으나, 길게 이야기하지 못해 저마다 퇴짜를 맞았다. 한 꾀 많은 놈이 영감을 속이고자 작정을 하고는 찾아가서제가 고담을 제법 알아 그 길이는 무궁한데, 영감님, 한 번 들어 볼라우.라고 말했다. 영감은내 애당초부터 이걸로 사위를 구했었지. 자네가 참으로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식언할 까닭이 없지.라고 답했다. 객이그럼, 이야기가 며칠 계속되더라도 마다하지 않겠수?라고 다짐을 받았더니, 영감은길면 길수록 좋은 게지, 다만 자네 이야기 밑천이 바닥날까 염려되지 뭐.라고 답했다.……드디어 쥐 한 놈을 뽑아 대장으로 삼고, 조선 팔도 모든 굴속의 쥐에게 격문을 돌려 기한에 맞추어 일제히 모이게 했습죠. 회집 기한이 되자, 수많은 쥐가 모조리 모였기에 대장 쥐가 단상에 올라서서,많은 군사들은 각각 차례대로 들어와 점호를 받고, 단상의 물고 소리를 들어라, 뒤에 있는 쥐는 앞에 있는 쥐꼬리를 물고 전진하라.고 명령을 내렸더니, 그 놈들이 일제히 응했습니다요. 그제야 대장 쥐가 물고물고를 외쳤답니다요.물고 소리가 그의 입에서 끊이지 않았는데, 아침부터 밤중까지 오직 물고만 되풀이하는 것이었다. 오육 일이 되도록 그 소리가 그치지 않자, 영감은 은근히 듣기가 역겨워이제 몇 놈 남았는고?하고 물었더니, 그는지금까지 당도한 쥐는 겨우 몇 군(郡)에서 온 것 뿐입죠. 한 도(道)의 쥐가 모두 당도하자면, 아직도 멀었는데, 팔도의 무수한 쥐야 더욱 그렇겠지요.라고 답했다. 그제야 영감은길고도 긴 이야기일세, 이는 참으로 장편일세.라고 답했다.
재담꾼이 부자 영감에게 가상적인 오랑캐 100만 정예병의 침공을 방어하기 위해 조선 팔도의 쥐를 소집하는 과정에서 쥐가 꼬리를 물고물고를 5~6일 들려주어 약속대로 그의 사위가 된다는 이야기다. 여기서도 당대 재치 있는 이야기꾼과 이를 즐기는 영감을 만난다. 이 재담꾼은 고도의 트릭을 써서 그 누구도 해낼 수 없었던 영감의 고담벽을 누르고 목적했던 바를 이룬다.이후로 그는 영감이 다시 고담을 들려달라고 조를 때면, 그는 조선 팔도에서 채 소집되지 못한 쥐가 꼬리를 물고물고를 다시 이야기하여 그의 버릇을 완전히 고친다.여기서 물고물고(勿古勿古)는 음역을 해서 쥐가 앞뒤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물고 이동하는 것을 표현한 희작이다. 다음은 부엉이 울음을 내어 환곡 독촉을 면해 보려는 빈민의 형상을 담은 것이다.
현곡(玄谷) 정백창(鄭百昌)이 연안 고을 원이 되었더니, 그 때 한 빈민이 환곡을 많이 빌려 먹고는 가을이 되어 수납 독촉을 받자, 몹시도 근심했다. 그래서 한 향소(鄕所)에게 가서 대책을 물었더니, 항임(鄕任)이우리 고을엔 부엉이가 관아 뒤에서 울면, 고을 원님이 필경 바뀌거든. 그러니 자네가 도롱이를 걸치고 관아 뒤의 나무에 올라가 부엉이 소리를 내면, 원님이 듣고 필시 상스럽지 못하다고 여겨 관직을 버려두고 갈 것이고, 자네는 그 독촉을 면케 되겠지.라고 일러줬다. 그는 그의 말대로 나무에 올라가 몇 번 부엉부엉 외쳤다.…현곡은 새가 그렇게 한 짓이 아니라 사람이 한 짓인 줄 알아차렸다. 그래서 일부러 고성(高聲)으로심한 재해와 폐해가 있으려고 이 새가 흉한 소식을 알려주니, 난 사직하고 돌아가야 겠구나.라고 중얼거렸다. 그는 원님이 속은 줄로 알고 기뻐 다음날 밤에도 또 그렇게 했다. 현곡은 드디어 큰 활에 화살을 재워 나무 아래에 가서 위를 쳐다보며,부엉아, 부엉아, 죽기 싫거들랑 얼른얼른 내려오너라.고 했다. 그는 부득불 내려와 땅에 엎드려 죄를 빌었다.
여기서도 재치가 있는 향임을 만난다. 환곡 독촉을 받아 불안해하는 가난한 백성에게 그가 지시한 바는 더욱 그를 골탕을 먹이는 짓이다. 철저한 향임의 속임수에 말려든 빈민이 연이은 낭패를 당한다. 물론 이 빈민의 아둔한 행동 이면에는 부황이란 단어의 원래 의미가 제시된다. 즉 오래 굶주린 터에 살가죽이 붓고 들떠서 누렇게 된 빈민의 형상이 그러하다. 환곡 문제를 구심화해서 아둔한 빈민과 약삭빠른 향임과 원님을 대치시켜 빈민을 곤란하게 한다. 이로써 당대 환곡과 빈민의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여기서 빈민이 연기한 부엉이 울음소리가 희작이다. 부황부황(浮黃浮黃)에서 부는 음만 빌려왔고, 황에서는 황을 엉으로 전용시켜 부엉부엉[浮黃浮黃]하는 부엉이 울음소리를 형용했다. 빈민의 어리석은 수작 못지않게 이를 점잖게 수용하고 있는 원님의 형상 역시 돋보인다. 이어 기녀의 재치 있는 문자 유희를 보기로 한다.
나의 외숙부 정상공(鄭相公)께서 평안감사로 계실 때, 때마침 경성의 사신들이 평양에 당도하자, 외숙께서 사신들을 위해 주연을 베풀어 그들을 위로하셨다. 그런데 기생들이 자리에 죽 둘러앉아 술시중을 들었는데, 한 기생의 얼굴에 원래부터 기미가 빽빽하게 끼여 있었다. 세간에서 기미를 주근깨라고 한다. 서장관(書將官) 이모(李某)가 그녀를 두고 희롱하기를, “네 얼굴의 주근깨[死荏]를 짜서 기름을 낸다면, 두어 되는 될게다.”라고 했다. 그런데 서장관은 심한 곰보딱지였다. 이에 그 기녀가 받아치기를, “서장관 사또 나리 얼굴의 벌통에서 꿀을 딸 것 같으면, 몇 섬은 되겠죠?”라고 하니, 서장관은 말문이 막혔다. 숙부께서 그녀의 재치 있는 대답을 기이하게 여겨 후한 상을 내렸다고 한다.
서장관이 술자리에서 주근깨가 다닥다닥 붙은 기녀를 놀리자, 기녀가 얼굴이 몹시 얽은 그를 반격한다. 그녀는 서장관의 농담 섞인 말투 못지않게 재치가 있다. 기녀의 얼굴에 다닥다닥 붙은 주근깨를 짜서 참기름을 낸다는 의미와 곰보딱지인 서장관의 얼굴, 곧 그 곰보가 벌통같이 생겼으므로, 벌통에서 꿀을 따낸다는 것이다. 여기서 주근깨를 살펴보면, 죽다[死]와 깨[荏]로 되는데, 앞뒤가 모두 의역되었다. 즉, 죽다[死]에서 죽은[주근]과 깨[荏]를 합쳐 주근깨[死荏]로 합성했다.
자신을 우롱하는 상전을 멋진 언어 구사로 반격한 기녀의 재치 있는 말솜씨가 해학적이다. 일개 기녀가 재치 있는 말솜씨로 서장관을 압제한다. 그 말 가운데 의역 처리된 문자 유희가 들어 있다. 목적성을 구비한 문자 유희이다. 다음은 차림새가 초라하다고 해서 무시하던 기생에게 선비가 지어준 시 가운데 드러난 문자 유희다.
시를 잘하는 기생의 마음이 간교했는데 너덜너덜한 옷 입은 가난뱅이 선비를 보고는 시를 지을 수 있느냐고 비아냥대었다. 선비는 입을 열었다. “묘한 제목만 내시오!” “지필연묵이 문방사우이니, 이것으로 시제를 삼는 게 어때요?” 선비는 그렇게 하겠다하고 곧 붓을 들어 시를 써 주었다.
맛난 술 보면 먹고
미인 만나면 붙인다
평생 이런 일 별렀더니
오늘 과연 좋구나
美酒見仍墨 佳娥逢則筆
平生此事硯 今日果然紙
기생이 초라한 선비를 무시한다. 그녀는 그가 시를 짓지 못하는 인물이 아니냐고 비아냥댄다. 이에 선비는 운자만 내라고 한다. 그러자 기생은 문방사우를 운자로 제시한다. 선비는 이 문방사우를 운자로 하여 교묘한 시를 짓는다. 이를 세분해 살펴보면, 묵은 먹 묵에서 유추하여 먹는다는 의미로 전용한 것이다[墨]. 술을 마신다는 의미이다. 붓은 붓 필에서 유추해 붙인다라는 의미 곧, 남녀의 성교로 전용한 것이다[筆]. 남녀의 성적 결합을 뜻한다. 그리고 벼루는 벼루 연에서 유추하여 벼른다는 의미로 전용했다[硯]. 마음으로 벼른다는 의미다. 종이는 종이 지에서 유추하여 좋다는 의미로 전용한 것이다[紙]. 좋다는 뜻이다.
선비는 이처럼 완벽한 시를 지어 기생의 업신여기는 행동을 제압한다. 그는 이 시구에서 성 해학까지 덧붙인다. 이즈음 기생은 선비의 시 짓는 솜씨에 기가 죽는다. 이처럼 야담에서는 문자 구사를 통해 해학을 발생시키기도 하며, 때로 상대를 우롱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문자 구사자는 이루고자 했던 목적을 이룬다.
희학성 해학
다음은 음역이나 의역을 통해 유희가 발생되는 야담을 검토한 것이다. 이는 한자어의 음역이나 의역을 통해 교묘한 문자 유희를 발생시키는 경우를 말한다. 먼저 학동에 의해 구사되는 문자 유희를 보기로 한다.
아이가 막 수인씨에 대한 글을 배웠다. 훈장이 글의 뜻을 풀이해 주었다.수인씨 이전에는 불이 없었단다. 수인씨에 이르러 비로소 불을 일으켜 사람들에게 불로 음식을 익혀 먹는 법을 가르쳤단다.그건 거짓말이어요!헛말이 아니란다.의혹이 심해요. 책도 다 믿을 수 없어요.무슨 말이냐?아이가 손으로 지황씨의 글을 가리키며 대꾸하였다.지황씨는 수인씨 이전의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화덕 왕이라고 부르는데, 이 불은 어디서 나온 불인가요?
위의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수인씨(燧人氏)와 지황씨에 대한 기본 지식이 있어야 문자유희에 동참할 수 있다. 문자 유희는 문자를 구사하는 쪽이나 이를 수용하는 측의 그 문자 구사의 기본적인 상식을 바탕으로 해서 이루어진다. 지적 수준이 어느 정도 갖추어져야 이 유희가 가능하다는 말이다.
수인씨는 중국 고대의 전설에 나오는 삼황씨(三皇氏)의 한 사람이다. 십팔사략에의하면, 수인씨가 나타나 임금이 되어 비로소 나무에 구멍을 뚫고 나무로 마찰을 시켜 불을 일으키는 방법을 알았다.그리고 지황씨(地皇氏)는 중국 상고 시대의 제왕으로, 천황씨를 계승했다. 그는 천황씨의 형제 뒤를 이어 오행(五行)가운데 네 번째에 해당하는 불의 기운을 얻어 왕이 되었으며, 그 이후 형제 열 한 사람 역시 각각 일만 팔천 년씩 임금 노릇을 했다.
서당의 풍경이다. 한 학동이 훈장에게 수인씨에 관한 글을 배운다. 훈장은 수인씨에게 이르러 불을 사용하게 되었다고 가르친다. 문제는 수인씨 이전에 생존했던 지황씨를 화덕 왕이라 부르기 때문에 수인씨 이전에 이미 불을 사용했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훈장은 영악한 아이의 날카로운 질문에 말문이 막힌다. 여기서 문자 유희는 지황씨를 화덕 왕이라 부르는 데에 있다. 불의 기운을 얻어 왕이 되었다는 표현인 화덕왕(火德王)이 그러하다. 불의 덕이라는 음역의 표현에 유희가 담겨 있으며, 이를 이용해 날카롭게 지적하는 학동에 의해 유희가 드러난다. 다음 작품 역시 이러한 논리가 전개되는 작품이다.
서당에 글 배우러 온 아이가 훈장과 마주하여 글을 읽다가 훈장 팔뚝에 난 털을 보고 맥이 빠진 채 책을 주섬주섬 챙겨 돌아가려고 하였다. 훈장은 놈의 행동이 괴상하였다.왜 벌써 가려고?제가 애당초 천자문을 잘못 배워 글자의 음에 대한 풀이가 서툴러 천자문을 다시 공부하고 찾아뵙겠습니다.무슨 글자를 잘못 배웠지? 저는 애당초 사람의 몸에 난 털을 터럭 발 자[毛足]라고 배웠는데, 이제 선생님 팔뚝의 털을 보니, 분명 털 손 자[毛手]입니다요!
「터럭 발 자 풀이」라는 제목의 작품이다. 서당 풍경으로 맹랑한 학동의 재치 있는 질문에 웃음이 담겨 있다. 서당에서 글을 배우던 학동이 훈장의 팔에 털이 난 것을 보고 실망을 한다. 책을 주섬주섬 챙겨 돌아가려고 한다. 훈장이 의아해 하면서 그 이유를 묻는다. 학동은 사람의 몸에 난 털을 터럭[毛]발[足]자라고 배웠는데, 훈장 팔에 난 털을 보니 털[毛]손[手]자 라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기초 한자를 익혀 오겠다는 말이다.
여기서 터럭 발 자는 앞부분과 뒷부분이 모두 의역[털 : 毛 - 발 : 足]처리된 문자 유희이다. 그리고 털[毛]손[手]자 역시 앞뒤로 의역[털 : 毛 - 손 : 手] 처리되어 문자 유희를 발생시킨다. 편찬자도 평어에서 시골에서 등 배 자를 등 복[背腹]이라 하고, 눈 목 자를 눈 목[眼項]이라는 데서도 문자 유희가 발생된다고 거든다.다음 작품은 개구리와 제비의 울음소리를 경서 읽는 것에 빗댄 문자 유희다.
동쪽 이웃에 말솜씨가 뛰어난 자가 서쪽 동네에 사는 자를 보고 자랑하였다.우리 집 우물 속의 개구리는 맹자를 읽을 수 있다네.개구리가 어떻게 책을 읽는단 말이오?우리 집 개구리는독락독락여인락여인락숙락이라 울기 때문이라네.그러자 서쪽 동네의 위인이 대꾸하였다.우리 집 처마의 제비도 논어를 읽을 수 있다오.허! 참, 제비가 어떻게 논어를 읽는담?우리 집 제비는지지위지지부지위부지라고 쫑알거린다오.두 사람이 서로 마주 보고 웃으며 걸맞다고 하였다.
동쪽에 사는 사람이 서쪽 동네 사는 사람을 보고 자기 집 개구리는 맹자의 구절 읽는 것처럼 독락독락 한다고 자랑한다[獨樂獨樂].개구리의 울음소리가 맹자의 구절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이에 서쪽 마을에 사는 사람 역시 자기 집 제비는 논어를 왼다고 한다. 역시 제비의 지지배배 라는 울음소리가 논어의 한 구절과 같다고 한다[知之謂知之不知爲不知]. 이에 대해 편찬자는 평어에서 미물도 이처럼 경서를 외우는데 사람으로 경서를 읽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한다.재치 있는 문자 유희다. 다음 작품은 이름 때문에 죄 없이 매달린 위인이다.
양의달(楊義達)이란 자가 병조 판서 댁에 이르러 뵙기를 청했더니, 청지기가 판서에게 아뢰었다. 양의달이가 대문에 당도했습니다요. 판서가 답했다. 매어 달아 놓아라. 얼마 후에 판서는 입조(入朝)하는 길에 그가 거꾸로 매달려있음을 보고 물었다. 네 놈은 무슨 연고로 매달려 있나?아까 판서 어른께서 매달아 놓으라고 분부하셨습죠.그제야 판서는 크게 웃고 풀어주라고 하면서 해명했다.난 양고기 다리인 줄 알았지 뭐냐.
판서 댁에 문안 온 양의달이 공교롭게 양의 다리로 잘못 이해되어 거꾸로 매달린다. 여기서 판서가 잘못 인식한 양의 다리는 그의 이름 양의달(楊義達)에서 음만 빌려와 양의 다리[羊脚]로 잘못 판단해 희작이 된다. 그런데 편찬자는 평어에서 한 술 더 떠서 만약 판서가 삶으라고 하명했더라면, 영락없이 삶겼을 것이라고 하여 해학에 동참한다. 웃기기에 편찬자가 끼어 든 것이다.다음은 볼기 맞은 사람에게 농을 잘 하는 위인이 엉터리 처방을 내린다.
볼기짝을 맞은 위인이 지팡이를 짚고 글방에 나타나자, 농을 잘 하는 자가 위로하는 것이었다. 상처는 어떻소?별다른 상처는 없지만, 두 다리의 힘줄이 뻣뻣해서 굽히고 펴기가 수월하진 못하오.내게 신통한 약이 있소이다.무슨 약이 그리 신통하오.왼쪽 볼기에 개가죽을 붙이고, 오른쪽 볼기엔 돼지 가죽을 붙이고 곧 일어서면, 두 가죽이야 저절로 떨어지겠지만 즉각 평소처럼 굽히고 펴게 될게요.왜 그렇게 되나요?그것을 문자로 풀어 말하자면, 굽히랴 접히랴 이기 때문입니다.
위의 예문에 그가 볼기를 맞게 된 이유는 설명되어 있지 않지만, 볼기짝에 붙이는 처방이 매우 해학적이다. 볼기 맞은 엉덩이에 개가죽과 돼지가죽을 좌우에 붙이면 위축된 근육이 풀려 예전처럼 된다는 말이다. 좌우 엉덩이에 부치는 가죽이 희작이다. 구피락(狗皮落)에서 굽히를 유추했고, 락에서 랴를 따와 굽히랴[狗皮落]로 표현했다. 이처럼 저피락(猪皮落) 역시 접히랴[猪皮落]라는 의미로 희작된다. 이는 결국 다리를 굽히고 접는다는 의미가 되며, 뻣뻣하게 마비된 다리가 굽히고 펴지는 상태를 묘사한 것이 된다. 수십 년 만에 만난 친구와의 대화에서도 언어유희가 드러난다.
옛 친구가 수십 년 후에 서로 만나 정회를 풀었는데, 객이 주인에게 물었다.옛날에는 자식을 못 낳아 염려하더니, 근래 몇 명의 남아를 낳았는가?그 당시에 해마다 아들놈을 낳아 그 놈들이 집안에 그득하여 도리어 즐거운 게 아니라, 근심거리가 되었다네.…큰놈은 밥 다구․옷 다구하고 작은 놈은 엿 다구․젖 다구 하는데, 이 놈들이 저마다 이것 다구․저것 다구 해서 온 집안에 다구 소리로 시끌시끌하다네.
수십 년 만에 만난 친구와의 정회는 사뭇 정겹다. 길손 친구가 주인댁 친구에게 사내 아이 기르는 재미를 물었더니, 주인 친구의 대답에 짜증이 섞인다. 큰 놈 작은 놈 할 것 없이 모두 달라고 조르는 바람에 머리가 아프다고 한다. 여기서 밥 다구[食多求]․옷 다구[衣多求]․엿 다구[餌多求]․젖 다구[乳多求]․이것 다구[此多求]․저것 다구[彼多求]는 아들 녀석들이 요구하는 해당 물품을 의역한 뒤에 다구와 합성한 희작 표현이다. 이는 새 신부의 임기응변에서도 잘 드러난다.
옛날에 한 신부가 시부모 면전에서 방귀를 뀌었더니, 시어머니는 며느리의 부끄러움을 가려 주려고 웃으며, “예전에 나도 그랬단다. 그때의 부끄러움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겠어? 그래도 아들딸 쑥쑥 낳고 이렇게 잘 살잖아? 그러고 보면 우리 새 아가도 나처럼 복을 많이 받으려고 그런 게지 뭐.” 라고 하니, 신부가 뒤로 물러서서 키득키득 웃더니 변명했다. “그렇게 되려고 그런가 봐요. 폐백 받던 날부터 가는 방귀가 뿔뿔[拂拂] 자꾸만 터져 나왔어요.”
예의와 법도의 가식이 없는 시어머니와 며느리간의 서민 풍속도다. 시어머니는 새 신부의 생리 현상을 덮어주려고 새 신부의 꾸밈없는 행동도 수용한다. 새 신부의 치환 해석은 더욱 돋보인다. 신부는 폐백 받는 날부터 이미 가는 방귀가 뿔뿔 터져 나왔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녀는 시집 온 첫날부터 이미 행복한 징조가 나타났다는 은근하게 과시한다. 여기에서 방귀 소리를 묘사한 불불(拂拂)은 곧, 방귀 소리 뿔뿔[拂拂]의 의성어다. 갓 시집온 새 신부가 긴장한 탓에 소화 불량증으로 그러한 생리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방귀 소리를 한자음을 빌어 재치 있게 표현했다.
잡기고담(雜記古談)의 「망인(妄人)」에서 고씨 성을 가진 유생이 안면이 있는 재상에게 벼슬 한 자리를 얻게 해 달라고 매번 조른다. 이에 재상이 그에게 엉터리 벼슬을 내렸더니, 그는 그것이 진짜인 줄 알고, 무위도식하며 거드름을 피우다가 굶어 죽었다는 이야기다. 여기서 재상이 내린 엉터리 벼슬이 곧 희작이다.의역의 희작 표현이다.
재상은 그가 어리석고 둔하여 벼슬길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설명해 줄 도리가 없음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한 바탕 웃음거리로 삼으려는 심산으로 곧 흔쾌히 그의 청을 들어주고서는 “이를 시키는 대로 따라서 시행해야 할 게다.” 라고 했다. 이에 서리를 시켜 그럴듯한 직함을 쓰게 했는데, ‘아무개를 어찌 있을꼬 군[烏有郡]의 절도사 겸 지지리도 못났군[愚極郡]의 순사로 임명하노라’ 하고는 인끈을 화려하게 채워주고 풍악을 크게 울려 당일에 발행케 했다.
오유군에서 오유(烏有)는 어찌 있을까의 의역이며, 우극군(愚極郡)에서 우극은 지지리도 못났군 이라는 의미의 의역 표현이다. 즉 어찌 있을꼬군[烏有郡]․지지리도 못났군[愚極郡]이 된다. 그런데 그것이 진짜 벼슬인 것으로 착각한 그 바보의 행각이 매우 우습다. 이는 벼슬을 지나치게 가벼이 여기고 부러워함에 대한 경종이라고도 볼 수 있다. 다음은 서당의 학동에 의해 문자 유희가 드러난다. 이불 속의 벼룩을 두고 시를 지은 것이다.
서당에 벼룩이 많아 도무지 잠을 잘 수 없었다. 한 학동이 이불을 안고 나가 두세 번 훌훌 털고 들어왔다. 한 놈이 능청을 떨었다. “이불을 털면, 벼룩이 더욱 많아진다는 이야기가 옛 시에 있다네.” “어느 시에 그런 게 있는감?”
두자미의 시에
이불 소리 비록 즐겁다 한들
털어도 벼룩은 도리어 많아진다네
衾聲雖云樂 拂餘蚤還加
(금성이 비록 즐겁다 한들 일찍 집에 돌아가는 것만 못하네[錦城雖云樂 不如早還家]).
라는 것이 있지요. 한 놈이 대구했다.
강한 벼룩은
털어도 어찌 할 수 없다네
蚤强之處拂何當
(함께 고생한 아내는 내쫓을 수 없다[糟糠之妻不下堂]).
학동의 문자 구사하는 솜씨가 매우 기발하다. 첫 번 째 시구는 중국 성당(盛唐)때의 시인인 두보(杜甫)를 말한다. 학동이 지은 시에서 이불 터는 소리 비록 즐겁다 하지만[衾聲雖云樂]은 두보의 시 금성이 비록 즐겁다 한들[錦城雖云樂]에서 음만 빌려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털어도 벼룩은 여전히 붙어 있네[拂餘蚤還加]는 두보의 시 일찍 집에 돌아가는 것만 못하네[不如早還家]에서 음만 빌려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벼룩이 강해 털어도 어찌 할 수 없다네[蚤强之處拂何當]는 함께 고생한 아내는 버릴 수 없다[糟糠之妻不下堂]에서 음을 빌려 표현한 것이다. 시구와 문구의 음을 빌려 와서 현 상황에 맞게 적절히 표현한 작품이다. 다음은 오성의 유년 시절 독서할 때의 희작이다.
오성(鰲城)이 어렸을 때, 절에 가서 독서를 했었다. 하루는 반찬이 없어서 중을 불러 밥상 곁에 앉히고 밥 한 숟가락에 깨소금을 한번씩 외치게 했다. 중은 그 말대로 한 숟가락에 한번씩 외쳤다. 그런데 대여섯 숟가락이 될 무렵에 실수로 연이어깨소금 깨소금했더니, 오성이 급히 그치게 하고는,너무 짜다, 너무 짜. 낭비하지 마라, 낭비하지 마라고 말했다.
오성의 재치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절간이라 반찬이 넉넉하지 못하다. 오성은 반찬 대신 스님에게 양념으로 깨소금을 외치게 하여 식사를 하려고 한다. 오성의 임기응변적인 재치를 잘 드러내 준다. 해염(蟹鹽)을 깨소금으로 희작 표현했는데, 해(蟹)의 뜻 부분 게를 깨로 전용시켰고, 염(鹽)에서는 의역한 뒤, 깨소금[蟹鹽]으로 합성했다.
이처럼 야담에는 문자의 음역이나 의역을 거쳐 유희가 발생되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야담에서 언어유희나 음역 의역의 문자 구사 작품은 염치와 예의를 벗어난 채 해학의 강도를 높인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야담의 문자 유희도 야담 서사 구조의 한 특징이 아닐까 한다.이어 위에서 정리한 언어유희와 문자유희를 통한 야담의 희작이 갖는 의미를 정리하고자 한다.
야담의 희작화 의미
이로써 조선 후기 여러 야담집에 드러나는 희작 경향의 작품을 정리했다. 이외에 이러한 사례는 추가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현상은 기존 정통 한문의 형식에서는 허용하지 않는 표현이었다. 그러나 이는 야담 서사 구조에서 당대 이 땅에 살던 서민의 사고와 생활 모습을 부담 없이 담아 사용했던 한 양식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느낄 수 있는 것은 생기발랄하고 건강한 웃음이다. 중요한 것은 이런 희작화에 의한 대중적․통속적 지향은, 한문학 전통에 있어 이질적․이단적인 발전이며, 문학을 민중에 결합시킨 면에서 주목된다.정통 한문에서 이러한 유희적 표현이나 언어유희는 실제 용납되지 않았다. 이러한 점도 야담 서사의 한 양상으로 평가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야담은 그 내용면에서 이미 민중성을 획득했을 뿐만 아니라 형식에 있어 정통 한문식의 틀을 벗어나 일상의 모습을 자유분방하게 묘사하려는 데서 이런 희작 표현이 이루어진 것이다. 말하자면, 그들은 당대 그들 취향에 맞는 표현 기법을 이러한 생활 언어와 희작 표현에서 찾았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이런 희작의 표현이 발생되었을 것이다. 이 세미한 시도를 간과할 수는 없다고 본다. 왜냐하면, 이는 단순 언어유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는 뚜렷한 작가 의식이 투영되어 야담의 문학성을 드높여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온존한 중세의 권위와 구태를 거부하려는 조선 후기의 다원적 몸부림 가운데 일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작품의 핵심은 웃음 유발이다. 왜 웃음을 작품 서사의 중심 구도로 설정했을까? 인간은 즐겁기 때문에 웃기도 하지만 사정이 매우 딱하여 이를 극복하기 위해 웃음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긴박한 현실 위기의 극복 방안으로 웃음이 절실하다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이러한 웃음은 긴장 이완을 위한 여유 있는 웃음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고 본다. 긴박한 상황의 웃음은 웃음을 통해 문제 해결을 시도하거나 현실 위기의 한계를 알고 아예 체념하며 자학하는 의미가 담기기 때문이다.
본고에서 다룬 작품은 현실 위기나 문제 해결을 웃음을 통해 해결하려는 의미가 더 강하다고 본다. 언어유희 가운데 직접 말하지 못하는 현실 문제를 우회적으로 표현했는데, 당대의 사회 문제가 이러한 언어 통로를 거쳐 표출되었다. 특히, 남녀의 성 문제를 우회적으로 표현하면서 당대 억압된 성문화와 남성 위주의 성문화에 대해 항변을 시도했다.
이와 함께 조선 후기에 양산된 지식인의 불만 의식도 담고 있다. 도둑놈이 행인의 양심 불량을 외치는 데서 당대 비양심적 계층에 대한 불만이 토로되었다. 도둑은 자기 주체를 망각한 인간 전형이다. 이들은 제도권에서 소외된 지식인층의 수용을 거부하는 부류이다. 때문에 도둑의 뻔뻔스러운 행각을 통해 자기 계층의 소외 의식은 저절로 표현되었다. 귀먹고 말 못하는 아이는 이러한 인간 유형을 형상한 것이다. 자기를 수용하지 않는 세상에 대한 강한 불만의 표현이다.
그리고 이러한 희작의 작품에서 시종 예의나 연령의 서열은 무시된다. 질서와 규범의 파탈이다. 예의와 법도를 무시하는 유희의 표현은 기존 제도나 체제에 대한 불만과 야유의 한 표현이다. 이 역시 일련 지식인의 세상에 대한 희롱 의식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그들은 과격한 표현을 지양하고 교묘한 문자를 써서 재치 있게 표현했다. 작품에서 우롱을 당하는 쪽은 늘 연장자나 신분상 상위 계층의 인물이다. 이런 데서 그들은 대리 만족을 얻었다. 이 과정에서 문자의 음역이나 의역을 통해 웃음을 생산한다. 이로써 상대를 우롱하고 곤경에 처하게 한다. 이에 대한 다양한 발굴과 이를 뒷받침할 만한 이론의 객관성이 확보될 때, 그 의의는 더욱 견실해 질 것이다.
마무리
조선 후기 우리 문학의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던 시기의 야담에 드러난 희작 경향에 대해 검토했다. 이러한 야담의 희작 양상은 이미 초창기 야담집에서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러한 전통이 이 시기에 집약된 것이다.
문자 가운데 음역이나 의역을 통해 지적 유희가 발생되는 문자 유희를 검토했다. 문자를 잘못 구사해 유희가 발생된 경우와 소기한 목적을 이루기 위한 유희, 희학을 위한 문자 유희로 나누어 검토했다. 이런 유희 과정에서 연령․신분․예의가 전혀 무시되었다. 아예 체제나 규범의 순종을 무시한 것은 결국 기존 사회 체제나 규범의 순종을 거부한 불만의 표출이라고 보았다. 이와 함께 생활 일상어가 음역 의역되어 구어체로 구사되고 있음을 확인했다. 당대 생활을 묘사하면서 한자음을 빌려 생활 감정을 진솔하게 표현했다. 이는 우리 고유의 언어와 정서에 밀착된 표현이었다. 이 역시 야담의 서사 양식의 하나로 지적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야담의 희작화 의미를 정리했다. 이는 단순 유희로 마무리되지 않고 작가 의식이 투영과 함께 야담의 문학성을 고양하는 기제로 작용된다고 보았다. 언어유희에서 당대 억압된 성문화와 남성 위주의 성문화에 대해 항변을 시도했다. 그리고 조선 후기에 양산된 체제 밖 지식인의 불만 의식도 표출되었다. 예의와 법도를 무시한 표현에서 일련 지식인의 세상에 대한 희롱 의식이 반영되어 있었다.
앞으로 이에 대한 다양한 발굴과 이를 뒷받침할 만한 이론의 객관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동시대 타 장르의 희작 경향과 야담의 희작 경향과의 연계성도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출처 : 이원걸/조선후기 야담의 희작화 경향에 대하여.[漢文學報](第11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