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시 : 2024.08.07 수요일
목적지 : Rifugio Sennes - Rifugio Fanes
Alta Via 1 2일 째 아침이 밝았다.
그동안 잠재워졌던 뭉클함이 조금이나마 찾아온 돌로미테
비교 대상이 되지 않지만 나름 여러 곳을 자녀왔고 앞으로도 많은 곳을 걸으려 하지만 아이슬랜드 원정 이후 설레임이 찾아오기는 처음인 듯 했다.
T.B.B를 계획하고 10여년 전 부터 꿈의 트레일로 가고 싶었던 파타고니아를 다녀올 때만 해도 이상하게도 들뜨거나 설레임이 그리 많지 않았다. 끌려 간 것은 아니지만 무덤덤하기는 마찬가지 였다.
물론 가서 보고 걸으면 그렇게 좋을 수 없지만 막상 출발 하기 전까지는 그랬었다.
그런데 2023년 T.M.B이후 노르웨이를 계획했던 마음이 바뀌어 돌로미테로 변경하면서 조금씩 생기가 돌았다.
아직 뭔가 남아있는 듯 늘 허전한 마음이 없진 않지만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다.
돌로미테가 특별해서가 아닌 안정과 위안이 하나로 만나면서였다.
둘 째 날 걸을 거리는 9.2KM
계획을 하면서 산장과 산장의 거리에 대해 민감해하지만 많은 하이커들이 이야기하는 거리는 적지 않은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어느 정도의 기본 거리를 중심으로 되어있기에 하루에 10KM의 적당한 거리를 걸으며 체력과 보며 걷는 일정으로 만들었다.
그래도 먼 거리가 아닌 적당한 거리였음에도 힘이 들기는 마찬가지였다.
Edelweiss
고산 지대의 바위 틈에서 자라는 Edelweiss는 산악인의 꽃으로 불리운다.
꼭 높다고 해서 자라는 것도 아닌 적당한 높이에 날씨 바위등의 조건이 붙어야 비로소 꽃을 피우는데 한국에는 설악산에 유일하게 피어있다.
어렸을 때 설악에서 구해 온 에델바이스를 말린 후 코팅해 지갑에 넣어 다녔는데 이때만해도 자연에 대한 소중함이 덜해 뿌듯함이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 귀한 에델바이스가 산장에서 꽃 피우고 가게에서 정성껏 키워 파는 것도 보았다.
미국에 가져올 수 있었으면 한 송이 품에 안을 수 있었지만 그럴 수 없기에 눈으로 담고 말았다.
사진이 겹쳐 세네스인지 파네스인지 구분이 가지 않지만 어쨋던 우리가 머물렀던 산장의 풍경은 맞다.
아침은 뷰페식으로
관광객들의 자동차가 아닌 산장에서 필요한 식자재및 장비를 위해 만든 도로를 통해 올라오지만 맛깔스럽게 준비한 아침이 마음에 들었다.
금액을 떠나 힘들게 걸은 후 만난 산장에서 하루를 쉬며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것은 하이커들에게 축복이 아닐 수 없다.
Fanes 로 떠나기 전 단체 사진
위 사진과 같은 것 같지만 헬로님의 모습이 달라 덧 붙인다.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처음 본 순간 일부 사람들이 외계인이 만든 활주로라 주장하는 페루의 나스카 라인(Nazca lines)이 떠올랐다.
오늘은 나스카 활주로에서 이륙하면서 시작 된다.
하루에 패스 하나는 넘어야 만나는 목적지
비단 유럽 뿐이 아닌 하이킹 루트가 그렇다.
다만 돌로미테는 조금 달랐다. 대부분의 산행이 올라갔다 내려오는 방법이라면 돌로미테는 내려갔다 올라가는 식이 많았다.
그만큼 하루를 묶는 산장이 높은 고지에 있었고 뷰 또한 일품이었다.
출발은 막힘없이 온 사방이 열린 하늘과 맞닿은 초원이 반긴다.
하루 잘 쉬고 맛있게 먹고..
살아가면서 마지막이라는 단어는 늘 깨지기 마련이어서 마지막이라는 말 대신 언제 또 돌아올지 모르는 페데스를 한 번 더 담아 본다.
유렵은 소와 말 양들의 천국이다.
방목을 하기 위한 푸른 초원이 만들어진 까닭이리라.
왼쪽은 Col de Lasta Picio - Colle di Lasta Piccolo
원정을 계획할 때 일정을 짜면서 산장 근처의 오름도 생각을 많이 했다.
하지만 이젠 나이들이 들었는지 꽤가 나는지 일찍 산장에 도착해도 다시 등산화를 신고 나서고픈 산우님들이 없었던 것 같다.
내 스스로 "갑시다" 했으면 몇 몇 산우님들과 같이 걸었을 수도 있지만 누구보다 제일 귀찮음과 힘들어하는 자신이 나서기엔 역부족이었다.
고개를 넘기 전에 아쉬운 듯 한 번 돌아보는 부자님
도로에서 벗어나 트레일로 접어들면서 부터는 내리막길이 이어진다.
2610M의 Ciamin을 중심으로 멋진 바위 연봉을 보며 걷는다.
어디 한 곳 빼놓을 수 없는 풍광이다.
우리가 걸은 7일 동안 매일 바뀌는 산세에 감탄을 했다.
매일매일이 아니다. 걷는 순간에도 시시각각 변하고 또 변했다.
이른 아침이지만 태양의 열기는 대단하다.
그럼에도 나무 그늘에 들어서면 오싹 한기를 느낄지경이다.
낮 기온 65-70도 밤 기운 45-55도
이 정도면 츶 가을이나 초 겨울 나씨겠지만 이 곳의 온도와 날씨는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에서 벗어나는데 2000M 이상의 고 지대를 감안한다 해도 그런 것 같다.
Rifugio Fodara Vedla에 도착하기 전까지 도로와 트레일을 번갈아 걷는다
우리가 걷는 도로의 능선 뒤로 기회가 되면 걸어보고 싶은 132KM의 Cortina Dolomiti Ultra Trekking이 있는데 우리가 머물렀던 코르티나 담페초에서 루프를 그리는 트레일로 가장 최근인 2020년에 완성되었다.
그 루트 중에는 다시 한 번 가도 좋을 Cinque Torri와 Tre Cime가 포함되어 있다.
누군가 물었다
"다시 한 번 오고 싶은 마음이 있나요?"
솔직하게 말한다면 다시 한 번 그냥 스치고 지난 인연들 다시 헤아려 보며 걷고 싶은 마음이 충분히 있다.
하지만 그러기엔 가고 싶은 곳이 너무 많기에 시간이 부족한 것이 아닌가 싶다.
대부분 한 번 다녀오면 또 다시 찾아갔지만 그러기엔 시간이나 체력이 버텨줄지도 의문이다.
그래서일까?
남 보기에 원정을 못 가서 안달 난 사람처럼 보이기도 하겠지만 조금이라도 힘이 있고 걸을 수 있을 때 걷고픈 마음이 정답이다.
힘빠지면 걷는 것도 보는 것도 먹는 것도 한창일 때와는 완연하게 다르기에 아무리 좋은 곳을 다녀도 지금처럼의 느낌이나 감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좋은 자식 두어 휄체어 타고 다니면서 관광해는 사람들도 보았지만 글세 그렇게 다니고 싶은 마음은 아직 추호도 없다.
다만 편안한 쿠르즈 같은 여행이라면 나설 수도 있겠지 싶다.
역시 결론은 하나다.
아직 걸을 수 있고 싸울 수 있고 아무 것이나 질겅질겅 깨물 수 있을 때 다니자.
Rifugio Fodara Vedla
"어저씨! 그 쪽이 아니라 오른쪽입니다"
산장에서 오른쪽으로 꺽어 오르자 발 아래 운무가 반긴다.
오~~~
좀 더 가까이 발 및까지 닿았더라면 환장하게 좋았겠지만 만약 그렇었다면 발걸음 멈추고 주구장창 머물러 운행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에 다행이지 싶다고 위안을 삼았다.
트레킹을 하면서 아쉬움 아닌 아쉬움이 있었다면 짙게 깔린 운해와 별이 총총 떨어지는 은하수를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물론 어느 정도 게으름은 인정해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구름바다에 생기가 돈 크리스님.
구름 바다를 지나자 끝없이 내리막길이 시작되었다.
하루 이틀이 아닌 오랜 시간의 트레킹의 묘미는 산세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 않은 것이 산우애다.
함께 걸으며 느끼는 감정들은 동질감을 갖게 만든다.
이야기를 나누지 않아도 보이지 않는 길을 걸어도 하루를 시작하며 끝내며 느끼는 것은 매번 같이 다가온다.
혼자가 아닌 함께하는 이유다.
나이가 들어 점점 고착화되는 시점에 함께한다는 것이 사실 어렵지만 조금만 내려 놓는다면 시기와 나이를 불문하고 좋은 인연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알 것 같으면서도 아리송한 것이 마음이다.
스스로 내 모습을 볼 수 없는데 어찌 남을 평가할 수 있을까. 그것은 다만 사회적 통념에서 비롯된 것이니 순간 순간의 시점에서는 부질없는 것이다.
이런 생각 한 번이라도 해 보신 산우님들이 있지 않을까?
스스로 내 얼굴, 내 모습을 안다고 하지만 그것은 직접 보지 못하고 거울이나 사진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을..
트레일에서 굽이굽이 10고비를 내리막길이 이어지는데 경사가 장난이 아니다.
경사만이 아니다.
깍아지른 각각의 바위덩어리가 벽을 만들어 고개를 들어 바라보는 것으로 중압감을 느낄 정도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도로가 아닌 트레일었다면..
하여간 자연과 공존한 인위적인 도로에서 느낀 풍광은 왠만한 렌트로 다 담을 수 없이 대단했다.
해모수님의 허리 꺽기 기술이 무한정 펼쳐진 곳이기도 하다.
허걱!
다 내려가지 않았지만 딱 봐도 우리가 올라가야 트레일인데 올라간다고 생각하니 일단 겁부터 난다.
감탄한 경사와 스위치백도 내일 만나게 되는 Forcela dl Lech 고개에는 명함도 내리지 못하리라.
파스텔 톤의 암벽이 겹치면서 정말 멋진 풍광을 만들어 주었다.
Rifugio Pederü
포장된 Strada Val dai Tamersc, 15 도로를 따라 올 수 있는 Rifugio Pederü는 자동차와 버스를 이용한 관광객과 하이커들로 가득했다.
이틀 동안 걸으면서 가장 많은 사람들을 보고 만난 산장이다.
산장에 도착해 기다리는데 허리꺽기에서 아예 주저 앉기까지 하면 아직도 이러고 있다.
초록과 미묘한 바위가 만나 풍광이 죽음이다.
걸어야 할 길
"신이시여! 저 길을 쉽게 올라갈 수 있게 도와주소서"
"신이시여! 뭔지 모르지만 쉘리님의 기도와 쌤쌤입니다"
족탕식까지 개운하게 마친 후 꼭 통과해야 할 관문처럼 이어지는 맥주와 콜라 한 잔.
"이 맛이지"
맞다. 옳은 말이다.
걷다 만나는 산장에서는 무조건 쉬고 마셔야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
늘어지게 쉬다 베냉을 멘다.
도로만 없다면 하룻 밤 자고 싶도록 예쁜 산장.
점점 멀어져 간다.
멀어지는 만큼 오르막이 거칠어 진다.
사진과 달리 지난 토요 산행 때 만난 크리스님에게서 뭔가 사라지고 없는게 있다.
정답은?
정답을 맞추는 산우님께 틴틴 과자 1박스 + 홍삼 캔디 1봉지 선물합니다.
말로만 듣던 돌로미테, 이틀 째 그 속에 안겨 있다.
모르는 뭔가 있었나보다.
상처라기 보다는 아쉬움.
웃으면서도 늘 목에 가시처럼 찔려 온 것이 돌로미테 한 모금에 싹 가시는 듯 했다.
적지 않은 시간을 그렇게 목메여했는데 이제야 비로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