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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에서 하나님의 나라로
평생을 국가를 위해 수고한 동기생 여러분! 대단하고 자랑스럽습니다. 인생은 한 번 사는 것인데 그 귀한 인생을 조국을 위해서 바쳤다는 것은 온 국민의 뜨거운 찬사를 죽을 때까지 받아도 부족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인생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옛날 이스라엘의 지혜로운 왕 솔로몬은 그 일생을 통하여 온갖 영화를 다 누리고 마음에 원하는 것을 다 해보며 갖은 즐거움을 다 맛보았으나 결국에 가서는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전 1:2-4)라고 탄식하였습니다. 솔로몬 왕이 영화와 부귀를 한껏 누리고도 끝내는 인생의 허무를 느낀 것처럼 사람들은 인생의 덧없음과 허무함을 느끼는 것입니다.
인간이란 빈부 귀천을 막론하고 태어나면서부터 울며 고생하다가 늙고 병들어 결국 죽고 맙니다. 이것이 인간이 면하지 못하는 운명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이 인간의 허무하고 속절없는 운명을 해결해 줄까요? 과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인간의 마음 속에 있는 번민과 죽음의 문제는 해결해 주지 못합니다. 그것은 인간이상의 능력이 아니고서는 해결될 수 없습니다. 이에 비로소 종교의 필요성이 생기는 것입니다.
종교란 으뜸되는 가르침, 근본적인 교훈이라고 풀이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으로서 마땅히 알아야 할 근본적인 문제 즉 현실 이상의 영원한 문제를 가르쳐 주는 것이 곧 종교입니다. 사람은 종교 없이 살 수 없습니다. 동서고금을 통하여 사람이 사는 곳에는 반드시 종교가 있습니다. 프랑스의 한 심리학자는 “사람은 종교적 동물이다”라고 말하였는데 그것은 사람만이 신앙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 아무리 무신론을 주장하는 사람이라도 위급한 경우를 만나면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류를 창조하실 때 그분을 사모하고 신뢰할 수 있는 본능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종교도 많고 종파도 많습니다. 그렇다고 아무 종교나 믿기만 하면 될까요? 비록 길이 다를지라도 결국 도달하는 목적지는 모두 같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혹은 종교는 사회 교화를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한 것이지 거기에 천국이나 영생이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가 단순히 그러한 것에 불과하다면 그것은 참된 의미로서의 종교가 아니라 교화의 참된 효과도 나타내지 못할 것입니다. 현실 이상의 만족과 희망을 주지 못하고 영원으로 통하는 길을 제시하지 못하는 종교는 참 종교일 수 없습니다.
종교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자연 종교라고 해서 천연물이나 금이나 은, 나무나 돌로 만든 우상을 섬기는 원시종교요 둘째는 계시종교라고 해서 신의 계시를 받아 이루어진 경전을 가진 종교입니다. 그리고 섬기는 신에 따라서 범신교, 다신교, 일신교로 구분하기도 하고 그 분포 범위에 따라 민족종교, 국민종교, 세계종교로 구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 민족만 신앙하는 종교보다는 세계적인 종교가 우수한 종교요, 여러 종류의 신을 섬기는 범신교나 다신교보다는 천지 만물의 창조주이신 인격적인 하나님을 신앙하는 종교가 가장 우수하고 발달한 종교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교는 이 모든 우수한 조건을 구비한 종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하나님의 계시로 된 신,구약 성경을 가진 것은 이 종교를 가장 권위있게 만들었습니다.
우리 인생은 마치 캄캄하고 어두운 밤에 등불도 없이 더듬어 나아가는 것 같이 알 수 없는 운명을 향하여 매일 매일 더듬어 나아가다가 돌에 부딪히기도 하고 구렁텅이에 빠지기도 하며 고통과실망과 번민을 당하는 예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의 길을 환하게 비추는 등불이 필요한데 그 등불은 무엇일까요? 옛날 이스라엘의 한 시인은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 119:105)고 노래했습니다. 여기서 주의 말씀이란 곧 성경을 말하는데 그리스도교의 성경 바이블이 우리 앞길에 빛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우드로우 윌슨(Woodrow Wilson)은 말하기를 “성경을 읽으면 그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알게 될 것이니 이는 그대의 마음, 그대의 행복, 그대의 의무의 열쇠가 이것임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으며 또 “나는 대통령으로서의 나의 앞에 놓인 문제들을 내가 성경을 얼마나 충실히 연구하는지 그 비례에 따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뿐 아니라 미국 FBI 국장이었던 J. 에드가 후버씨는 “성경은 사람에게 완전한 인생을 지시해 주는 확실한 인도자이다. 그것은 영적 양식의 근원이요 선량한 생활로 인도하는 영감이다”라고 하였으며 아브라함 링컨은 “성경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내리신 최상의 선물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상과 같이 우리보다 먼저 산 위대한 인물들이 그들의 경험을 통해서 성경의 가치를 그렇게 높이 인정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들도 성경을 그렇게 가치있게 인정하고 그 내용을 검토하고 그 진리를 연구한다면 우리 인생길을 아주 안전하고 명랑하게 걸어갈 수 있으리라고 확신합니다.
시대는 가고 세대는 바뀝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모든 것이 변합니다. 오늘의 진리가 내일은 오류가 됩니다. 사람들의 지식이나 사상은 시대를 따라 무가치해집니다. 한 때 인기있던 서적도 얼마 안 가서 그 인기가 떨어집니다. 그러나 성경의 교훈과 진리는 영원히 빛납니다.
사도 베드로는 말하기를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벧전 1:24,25)라고 하였습니다. 인간의 영화와 인간의 권세는 꽃과 같이 시들어 떨어집니다. 애굽의 피라미드를 보십시요. 바벨론의 폐허를 보십시요. 로마의 콜로세움(원형극장, 그리스도교인을 박해하던 곳)을 보십시요. 이스라엘을 박해하고 그리스도교를 박해하던 권력들은 저렇듯 처량한 유적들만 남겼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는 전세계에 퍼졌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들어가지 않은 나라는 없습니다. 그리고 성경의 위대한 감화력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프랑스의 무신론자 볼테르는 “성경은 내버린 책이다”라고 말했으며 미국의 회의주의자 잉거솔은 “이제 10년만 지나면 성경을 읽을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이다”라며 장담했지만 프랑스 혁명 당시 그렇듯 학대하고 불살라버렸던 그 성경은 4년이 채 되기도 전에 다시 해방되어 프랑스 사회의 무질서를 바로잡는데 큰 힘이 되었습니다. 또 영국 농촌의 피폐가 극도에 달하고 사회의 불안이 날로 극심해져 갈 때 그것을 바로잡아 혁명없이 사회 개조에 성공한 것은 존 웨슬리의 ‘메더디스트’(Methodist) 운동, 곧 성경 말씀을 가지고 방방곡곡으로 다니며 복음을 전파한 결과라는 것은 온 세상이 잘 아는 사실입니다.
또한 아프리카나 태평양 섬 중의 식인종들이 사람고기를 먹던 악습을 버리고 선량한 백성으로 변화된 것은 정치나 교육의 힘이 아니라 오직 종교의 감화였으며 성경 말씀의 능력이었다는 것은 과연 주목할 만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벧전 1:23)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히 4:12)
성경은 실로 생명력이 있는 말씀이요 우리의 심령을 찔러 쪼개는 능력을 말씀입니다. 사람이 성경 말씀의 감화를 입을 때 새 사람이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경 말씀을 통하여 무한히 달고 아름다운 맛을 느끼게 됩니다 옛날의 한 성경 연구자는 그 감상을 시로 노래하기를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시 119:103)라고 하였습니다.
성경 말씀은 읽으면 읽을수록 연구하면 연구할수록 더욱 흥미를 느끼게 되고 그 깊고 오묘한 뜻을 깨달아 감격하게 됩니다.
세상이 어떻게 생겨났으며 그 가운데 있는 동물과 식물들은 어떻게 생겨났으며 또 사람은 어떻게생겨났는가 하는 문제는 옛날부터 많은 사람들의 관심거리요 흥미로운 문제들이 되어 왔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히 사람들의 호기심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올바른 인생관과 세계관을 가지게 하는데 있어서도 중요한 기초가 됩니다. 이 문제점에 관하여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은 대개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그것을 연구해 보겠습니다.
첫째는 토마스 헨리 헉스레이가 말한 불가지론입니다. 이것은 먼 옛날의 일을 사람들이 어떻게 알 수 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찰스 다윈이 주장한 진화론의 사상인데 어떤 단순한 형태 혹은 혼돈 상태가 진화의 과정을 밟아서 오늘과 같은 복잡한 세계를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창조론인데 성경 말씀과 하나님께서 세계를 창조하셨다는 것을 믿는 사상입니다. 그런데 이 문제를 자연과학적 방법으로 해결하려 함에는 난처한 점이 있습니다. 자연과학은 가상적 이론을 용납하지 않고 오직 실증만을 요구하는데 이 세계가 생겨난 것을 어떻게 실증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구약 성경 욥기에는 하나님께서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욥 38:4)고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이 생기기도 전에 있었던 일을 사람이 어떤 과학적 방법으로 실증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과학자가 실험실 안에서 시험관을 가지고 실험함으로 증명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 문제는 결과에서 원인을 추리하는 귀납적 방법을 쓰거나 어떤 가정 아래 그것을 풀어내는 연역적 방법을 쓸 수밖에 없는데 그런 추리나 풀이가 반드시 정확한 결론을 가져올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찰스 다윈이 주장한 진화론을 가르치고 있는데 진화론적 사상은 옛날 헬라 시대에도 주장한 이가 있었으나 근대의 진화론은 지금으로부터 약 100여년 전에 영국의 찰스 다윈이 [종의 기원]이라는 책을 저술함으로 온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진화론은 순전히 가정을 기초로 한 것으로서 자연도태와 적자생존의 원리 즉 자연계에 있어서 그 생활 조건에 적응하는 생물은 생존하고 그렇지 못한 생물은 저절로 사라지게 된다는 이론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완성된 과학이 아니라 일종의 학설에 불과한 것입니다. 진화론이 잘못되었다는 근거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진화의 중간단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원숭이가 사람으로 진화하려면 그 중간 단계가 있어야 합니다. 갓난 아기가 할머니가 되는 것도 진화인데 그 중간단계인 어린이, 여청년, 장년, 중년이 있고 실제로 존재하여 누구나 다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원숭이가 사람이 되는 중간단계의 존재들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것은 진화론을 통해서 만족할 만한 결론을 얻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세계의 기원이라는 문제에 있어서 우리는 불가지론은 상고할 필요조차 없고 진화론에서도 만족할만한 결론을 얻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세번째 주장인 성경의 창조설을 검토하는 것이 당연한 순서일 것입니다. 우리가 과학으로 찾을 수 없는 진리를 철학이나 종교로 찾는 것은 차라리 당연한 태도라 하겠습니다.
구약성경의 첫번째 책인 창세기 1장 1절에 기록하기를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매우 단순하고 명료하고 확실성 있는 어조입니다. 또 시편 기자는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을 그의 입 기운으로 이루었도다”(시 33:6)고 하였습니다. 여기에는 무슨 이론이 없습니다. 다만 사실을 사실로 인정했을 뿐입니다.
하나님이 계신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첫째 인간의 양심이 스스로 신의 존재를 인정합니다. 신약성경은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롬 1:19)고 하였습니다. 인간의 생애에는 비록 눈으로 볼 수는 없으나 마음으로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기이한 경험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경험들을 통하여 사람들은 누구나 신의 존재를 스스로 인식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는 우리가 만물을 봄으로 조물주가 계신 것을 인정할 수 있습니다. 한번은 ‘로버트 잉거솔’이라는 미국의 한 불가지론자가 ‘헨리 와드’라는 유명한 설교자의 집을 찾아간 일이 있었습니다. 응접실에 들어가니 거기에는 하늘 성좌들을 그려서 만든 훌륭한 천구의가 있었습니다. 그가 주인을 향해 “이것 참 훌륭한 데요. 누가 만든 것입니까?” 하고 물으니 주인은 서슴지 않고 만들긴 누가 만들어요. 저절로 그렇게 되었지요.”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물론 잉거솔이 그 대답에 만족할 리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 스스로 한 대답임에 틀림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아름답고 기묘하며 너무도 질서정연하고 조직적인 천연계를 바라볼 때 이것이 저절로 우연히 생겼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반드시 어떤 전능한 지혜가 만들어 낸 결과라고 보는 것이 더욱 자연스럽고 타당한 생각입니다.
셋째로는 성경말씀이 확증합니다. 구약 성경 서두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는 아주 확실하고 장중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신약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딤후 3:15,16,17)
솔로몬은 그의 책 전도서에서 이렇게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전 12:13)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것이 사람의 본분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으로 사셔서 가장 행복한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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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박재일 동기님, 긴 글 쓰시느라 수고 많았습니다.
성경을 잘 해석해 주셨습니다. 어디 흠잡을 데가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 동기님들께서도 이 글을 읽고 성경을 이해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Hi, Albuquerquean 반갑습니다.
해박한 성경지식입니다. 존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