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건축을 이야기하면서 광장건축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광장과 그 주위로 빙 둘러선 교회, 관청 건물은 유럽 광장건축의 전형을 보여 준다. 한국건축가협회 부산건축가회와 함께 이탈리아 베니스(베네치아) 비엔날레 국제건축전에 이어 이탈리아 로마, 베네치아, 피렌체 등의 주요 광장을 둘러봤다. 부산에도 최근 광장문화가 싹트고 있는 이때, 유럽 광장건축과 문화를 통해 부산 광장문화의 나아갈 방향을 모색해 본다.
이탈리아
주변 건축 높이 광장과 어울려
차량 없어 보행자 접근성 좋아
인접 건물 1층 식당으로 활용
부산
집회 장소보다 문화 공간으로
조경·구조물 채운 공간 반성을
■이탈리아 광장의 역할과 특징
고대 그리스에서는 광장을 아고라(Agora)라고 불렀다. 아고라는 '모이다(아게이로)'라는 그리스 동사에서 나온 말로 민회, 민회가 열리는 장소 즉 시장을 뜻했다. 그리스인들은 시장에서 사람을 모으고 생각을 교환했다. 시장에 모여서 정치, 철학, 사상을 공유하고 논쟁하던 곳이 바로 광장이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광장을 중심으로 생활해 왔다. 광장은 언제나 도시와 인간을 연결해 주는 공간이었다. 종교가 중심이던 시대에는 교회 앞에 광장이 생겼고, 도시국가가 발달하면서는 시청 앞에 광장이 들어섰다. 사람들은 그 자리에 모여 정치 현안이나 도시의 중대사를 의논했다. 도시의 공식행사나 축제도 광장에서 열렸다.
이탈리아에서 광장은 과거엔 도시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 광장을 중심으로 도시 골격이 형성되고 광장을 구심점으로 해 분화돼 나갔다.
이탈리아 광장에 들어서면, 주변 건물들의 가지런한 높이와 조화로운 형태가 눈에 띈다. 여기에 정연한 가로 구획이 더해 내밀하고 밀도 높은 공간을 형성한다. 특히 멋진 팔라초 푸블리코(궁전 또는 시청으로 번역, 오늘날 대부분 시청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광장의 공간을 중심에서 잡아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광장에 들어서면, 때론 경탄의 목소리가 입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올 때도 있다. 누구나 다 아는 거장의 솜씨 때문이다. 대표적인 광장이 피렌체의 시뇨리아 광장이다. 광장 여기저기에 세워진 조각상이 이를 말해 준다.
'풀이나 꽃, 프레스코 벽화도 없다. 반들반들한 대리석이나 붉은 벽돌로 쌓은 쾌적한 건물도 없다. 고통이 씻겨 나간 영웅들의 조각상은 천재성을 부인한다 할지라도 보는 이들에게 그 예술가의 정신세계를 드러내 보였다.(중략) 어쩌면 이곳이야말로 영웅들이 그들의 고독한 숙명 속에서 여신을 만나고, 신화의 주인공들이 신을 만났던 그 장소가 아닐까?'
영국 작가 E M 포스터가 소설 '전망 좋은 방'에서 언급한 시뇨리아 광장 풍경이다. 시뇨리아는 이탈리아에서도 최고로 아름다운 광장으로 꼽힌다.
베네치아 산마르코 광장 주변 성당이나 교회 건축물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규모로도 보는 이를 압도한다.
하지만 이탈리아 광장은 우리에게 아름답고 긍정적인 장소로 기억되진 않는다. 일부는 독재자의 정치 선전 도구의 장소로 이용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 던지나
과거 우리의 광장은 주로 공터, 장터였다. 서구적 의미의 광장은 없었다. 최근 우리 주변에도 서구적 개념의 광장이 하나둘 생겨나고 있다. 이번에 동행했던 부산건축가회 회원과 건축 및 디자인 관련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우리의 광장은 좀 더 소통의 장소, 비움의 장소로 거듭나야 한다"고 꼬집었다.
부산건축가회 신호국(㈜타오종합건축사사무소 대표) 회장은 "이탈리아의 광장 주변엔 차가 다니지 않았다. 따라서 보행자들이 광장을 가는 데 있어 불편함은 물론이고 단절감을 못 느꼈다. 또 광장에 접한 건물은 1층을 레스토랑으로 사용하거나 필로티로 만들어 보행자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이고 있었다. 이게 우리와 달랐다"고 말했다.
대부분 도로로 빙 둘러싸여 있는 우리의 광장과 대비되는 대목이다. 실제 송상현광장은 도로에 둘러싸여 섬이 되어 버렸다.
이상정 전 국가건축정책위원장은 "서구에서는 집들이 폐쇄적이다. 그래서 광장 문화가 잘 발달해 있다. 우리도 생활 방식이 서구화되면서 커뮤니티 공간이 많이 요구된다. 앞으로 이탈리아 광장처럼 여유공간이나 오픈 스페이스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해양대 해양공간건축학과 오광석 교수는 "이탈리아는 광장과 건물 사이에 상가나 문화공간이 잘 형성되어 있어 사람을 모이게 하는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게 부족하다. 광장과 경계면 사이에 사람을 담아내는 콘텐츠가 약하다"고 말했다.
광장을 우리나라만의 특색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가양디자인어소시에이츠 김신혜 대표는 "유럽의 광장이 관광 문화 공간이라면, 우리의 광장은 집회 공간의 성격이 강하다. 프리마켓이나 축제 등을 통해 광장을 문화공간으로 변모시켜 나갈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광장은 비워져야 하는데, 우리는 광장이라고 하면서 구조물로 가득 채워져 있는 것을 지적하기도 했다. ㈜일신설계종합건축사사무소 김두진 대표는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의 광장 안은 시원하게 비워져 있는 경우가 다반사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가. 조경을 비롯해 너무 많은 구조물로 가득 채워져 있다. 부산역 광장을 보라. 광장의 공간성에 대한 고민과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로마=정달식 기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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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 두오모 광장. 부산건축가회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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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캄피돌리아 광장. 부산건축가회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