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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쉬는 국학, 숨 쉬는 평화(4편)
- 한민족의 축소왜곡사, 일본의 식민사관과 민족정신 말살정책을 중심으로 -
개인에게는 개인의 역사가 있고 민족에게는 민족의 역사가 있습니다. 만약에 개인에게 기억이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내가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 왔는 지를 송두리째 잊어버린다면 기억상실증에 걸려서 그 사람 구실을 제대로 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또한 어떤 사람의 지나 간 기억을 누군가 왜곡시킨다면 그 사람의 두뇌는 왜곡된 정보체에 의해 큰 손상을 입게 되고 그 정보체로 인해 그 사람의 삶 전체를 왜곡시키게 됩니다. 그리고 왜곡된 정보가 그 사람의 행동을 통해 출력될 때는 자신뿐 아니라 자신이 속한 사회와 지구의 생명에 까지도 심각한 위협을 주게 됩니다. 특히 사회적으로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받거나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사람이 왜곡된 정보로 행동한다면 그것은 그 사람의 대(代)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온 나라에 해를 입히게 됩니다. 파급효과는 엄청나게 됩니다. 기억상실증이 걸린 사람이나 지나 간 기억이 왜곡된 사람은 과거의 기억만 사라지거나 왜곡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창조할 수 없게 됩니다. 어떤 개인의 역사도 이러 할뿐 아니라 민족의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우리민족의 역사를 얼마나 바르게 알고 배워왔을까요? 많은 사람들은 우리나라 역사교육이 잘 못이 많다고 합니다. 그럼 누가 어떤 목적으로 우리민족의 역사를 축소하거나 왜곡하고 또 그런 축소되고 왜곡된 역사를 가르쳤을까요?
먼저 우리민족의 역사를 누가 얼마나 축소하고 왜곡시켰는지를 알아야합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역사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2권의 사료를 근거로 만든 역사란 것은 아무도 부인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1만년의 유구한 역사와 빛나는 전통을 계승한 우리나라의 고대사가 어찌하여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2권 밖에 없었겠습니까? 우리나라 고대사가 부족한 이유는 중국과 일본이 역사문화를 침투하여 우리의 고대사를 축소하고 왜곡하고 말살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지금까지 우리는 국학의 참모습을 제대로 전승(傳承) 받지 못하였습니다. 중국과 일본의 잦은 침략과 전화(戰禍) 속에서 수많은 사서(史書)가 불타 없어져 버렸고, 또한 그들의 왜곡된 역사기록으로 인해 역사의 맥이 단절되고 뿌리가 단절되었기 때문입니다. 재야사학자와 민족사학자들은 우리나라의 역사가 왜곡된 이유로 삼독(三毒)을 들고 있습니다. 즉 사대주의사관에 의한 중독(中毒), 식민주의사관에 의한 왜독(倭毒), 그리고 지금 역사 연구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실증주의 사관에 의한 양독(洋毒)의 피해에 의해서 국학이 왜곡되었다는 것입니다.
일제의 만행은 명성황후 시해사건이나 위안부, 징용 등등으로 표현하는 것은 빙산의 일각일 뿐입니다. 진짜로 일본이 저지른 큰 죄악은 대한제국을 강제로 병합한 후 한민족의 역사와 얼(정신)을 송두리째 말살했다는 것입니다. 한민족은 유엔의 한 회원국 중의 하나의 나라가 아닙니다. 내가 살고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한민족의 위대성을 강조하는 것도 아닙니다. 한민족은 인류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고, 21세기 물질문명의 한계를 극복하고 정신문명을 열수 있는 사명이 있는 민족이기 때문입니다. 한민족에게 홍익인간 이화세계의 사명이 내려와 있습니다. 일본은 인류의 새로운 문명을 여는 한민족의 역사와 얼(정신)을 말살하였으니 그 죄상이 큰 것입니다.
그리고 일본은 광복이후에도 친일파들에게 학술적으로 지원하거나 간접적으로 지원하면서 식민사관을 미화하도록 하고, 우리 스스로 자랑스러운 우리 역사와 정신을 폄하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다음 몇 가지 사례에서 보듯이 친일사관은 우리 역사와 생활문화에 깊이 침투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식민사학의 거두인 이병도는 “조선사편수회”에서 만든 『조선사』를 중심으로 “국사대관(國史大觀)”을 편집하여 우리 국민들을 가르쳤습니다. 2008년에 출판된 대안교과서인 “한국 근현대사(교과서 포럼, 지음)”에서는 독립운동가인 김구 선생을 “항일테러활동”을 한 것으로 표기하였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 정부가 중국의 동북공정에 이론적으로 대항하기 위해 국가예산으로 설립한 기관인 ‘동북아역사재단’에서는 2008년부터 8년 동안 45억원을 들여 만든 동북아역사지도에 독도가 빠져있고, 북한 강역(한사군의은 위치를 지금의 평양으로 표시) 중국으로 넘겨주는 등 식민사관의 논리로 만든 자료가 만천하에 알려지면서 “출판 불가 판정”을 받아 폐기하였습니다. 또한 동북아역사재단은 2012년 9월 18일 경기도 교육청에서 발간한 교육 자료집에 나와 있는 “단군은 역사다”라는 내용을 지적하며 “단군은 역사 사실이 아니라 신화”라며 교육부와 외교부를 통해서 수정권고로 문제제기를 한 바 있습니다. 동북아역사재단은 일본과 중국의 관점에서 우리의 역사를 해석하고 있습니다. 중국이나 일본은 없는 역사도 만들어 자국의 국위를 드높이려고 안달인데 대한민국은 있는 역사도 없다고 오히려 우기고 있습니다. 참 황당무계한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한 우리의 민족정신이 축소되고 왜곡된 이유 중에는 종교의 역할도 크다고 생각합니다. 다시말해 고려시대에는 불교가, 조선시대에는 유교가, 현재에는 기독교가 민족정신을 축소시키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고 생각합니다.
일부 사회지도자들의 역사의식도 문제가 많습니다. 어느 국무총리 후보는 자신이 다니던 교회 강연에서 “일제의 식민 지배와 남북 분단은 하나님의 뜻이라 발언했는가 하면 우리 민족 DNA는 게으르고 자립심이 부족하다고도 했다가 낙마한 사례도 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어느 서울시장 후보의 아들은 ”세월호 가족을 두고 '미개한 국민 정서'라고 비난했고, 부인은 “국민 정서가 미개하다는 말은 바른 소리이지만 시기가 안좋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유명한 대형 교회 목사는 ”○○○ 아들 ‘미개’ 발언은 틀린 말이 아니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 시대정신' 저자이며 블로그에서 자신을 '친일파 서기석'이라고 표현한 서기석씨는 ‘위안부소녀상을 철거해야 한다’라는 글에서 “박근혜 대통령님이 결단한 위안부 협상안을 늙은 계집, 위안부 할망구들이 또 훼방을 놓고 있다”면서 위안부 할머니들을 ‘늙은 계집’ ‘위안부 할망구’로 부르는 망언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이를 접한 누리꾼들은 서기석씨에 대해 ‘이완용보다 더한 매국노’ 등의 비판을 퍼부었습니다.
최근, 국무조정실 산하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 이정호 국가기후변화적응센터장이 워크샆의 건배사로 ‘천황폐하 만세’ 삼창을 한 것이 핫이유가 되고 있습니다. 아시아경제의 보도를 보면 『<자리가 무르익을 무렵(워크숍 회식자리) 이정호 KEI 국가기후변화적응센터장이 술잔을 들었다. 이날 워크숍을 주최한 기관의 센터장으로서 인사말과 건배사를 하기 위함이었다. 이 센터장은 "나는 친일파(親日派)다" "할아버지가 일제시대에 동양척식주식회사의 마지막 사장이었다" "일본은 어머니의 나라다"라는 등의 발언을 웃으면서 늘어놨다.>』는 것입니다. 애국심으로 일을 해야 하는 고위공무원이 취중에서라도 '천황폐하 만세' 삼창을 하였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제 강점기에나 들을 수 있었던 군국주의의 망령을 광복 71년을 맞이하는 시기에 대한민국 정부의 고위 공무원의 망언을 통해 듣게 될 줄은 꿈에서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황당한 유사 사례가 대한민국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 보면, 남북한은 물론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8백만 재외동포들을 포함한 우리 민족은 한민족의 정신을 잃어버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니 역사부분에 대해서는 기억상실증에 걸려 있는 치매환자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보니 미국의 중학교 교과서에는 “한국은 전통문화가 없다. 있다면 중국, 일본 문화의 아류이고, 그래도 있다면 샤머니즘”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독립운동가이며 민족사학의 선구자인 단재 신채호(1880.12.8~1936.2.21) 선생은 『우리나라에 부처가 들어오면 한국의 부처가 되지 못하고 부처의 한국이 된다. 우리나라에 공자가 들어오면 한국을 위한 공자가 되지 못하고 공자를 위한 한국이 된다.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들어오면 한국을 위한 예수가 아니고 예수를 위한 한국이 되니, 이것이 어쩐 일이냐! 이것도 정신이라면 정신인데, 이것은 바로 노예정신이다. 자신의 나라를 사랑하려거든 역사를 바로 읽을 것이며 다른 사람에게 나라를 사랑하게 하려거든 역사를 읽혀 바로 알게 할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중국은 북한 내부에서 급변사태가 일어나거나 한반도 문제에 개입하기 위해 동북공정을 하였다면, 일본은 한반도의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식민사관이라는 역사관을 만들어서 한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축소하고 왜곡하였습니다.
그럼 식민사관을 중심으로 한민족사의 축소와 왜곡사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식민사관의 핵심은 한국은 태생부터 중국의 식민지였고, 한국인들은 미개하고 무능하며 열등하기 때문에 우수한 일본이 한국을 지배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논리입니다. 이러한 논리를 뒷받침한 것이 역사를 조작해서 한국인들의 머릿속에 심어 놓은 식민사관(植民史觀)입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기성세대들은 광복이 된 이후에도 민족에 대한 교육을 제대로 받아 보지를 못했습니다. 광복 71주년을 맞이하지만 우리는 우리민족의 시원과 강역도 모르고 우리민족의 꿈(비전, 사명)도 모르고 있습니다. 지금 젊은 세대와 어린 학생들의 역사의식은 더 심각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역사를 잃어버리고 민족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이 없다보니 통일한국의 미래를 짊어지고 가야 할 청소년들은 미래에 대한 희망은커녕 헬조선(Hell 朝鮮)이라 불리는 절망 속에서 신음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학생들의 국가관이나 민족의식은 갈수록 낮아지고 있고, 학생들에게 통일에 대한 설문조사를 해 보면 통일에 대해 무관심한 학생들이 많고 민족통일을 찬성하는 비율이 낮게 나옵니다. 이것은 당연한 것인데 사람들은 학생들에게 민족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 교육을 시킬 생각은 안하고 학생들이 통일에 대해 무관심하다며 한탄만 하고 있습니다.
기성세대나 젊은 세대나 민족에 대한 교육을 받으면 받을수록 긍지와 자부심이 생겨야 하는데 오히려 민족에 대한 피해의식과 조상을 경시하는 풍조가 생기고 있습니다. 나라 전체는 민족의 꿈을 잃어버리고 우왕좌왕 방황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문제의 근원은 꿈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개인도 꿈이 없으면 방황하듯이 민족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제부터 우리는 꿈을 잃어버린 것일까요? 우리민족은 2천 년 전 단군폐관 이후 꿈을 잃어버리기 시작하였지만 가장 최근에는 일본에 의해 완전히 말살되다 싶이 하였습니다. 우리민족은 광복 71년을 맞이하는 지금까지 일본으로부터 받은 식민지교육과 친일을 청산하지 못한 채 친일사관 교육을 계속 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일본은 우리민족에게 어떤 교육을 시켰는지를 검토해 보겠습니다. 다음은 일본 조선총독부의 대 조선 식민지교육시책입니다.
『총칼로 지배하는 것은 순간의 효과밖에 없다. 남을 지배하려면 철학, 종교, 교육, 문화를 앞장세워 정신을 지배해야 한다. 먼저 조선 사람들이 자신의 일, 역사, 전통을 알지 못하게 하라. 그럼으로써 민족혼, 민족문화를 상실하게 하고 그들의 조상과 선인들의 무위무능, 악행을 들추어내어 그것을 과장하여 후손들에게 가르쳐라. 조선인 청소년들이 그들의 부조(父祖)를 경시하고 멸시하는 감정을 일으키게 하여 하나의 기풍으로 만들라. 그러면 조선인 청소년들이 자국의 모든 인물과 사적에 대하여 부정적인 지식을 얻게 될 것이며 반드시 실망과 허무감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그때 일본의 서적, 일본의 문화, 일본의 위대한 인물들을 소개하면 동화(同化)의 효과가 지대할 것이다. 이것이 제국 일본이 조선인을 반(半)일본인으로 만드는 요결인 것이다.』
일본의 대 조선 식민지교육시책은 한국인을 친일파(親日派)로 만드는 무시무시한 기만정책이었습니다. 한국인을 친일파로 만든 일본은 군사대국이 되면서 만주를 침공하여 1931년 9월 18일부터 1945년 8월 18일까지 중국에 만주국을 수립하였고, 독일과 함께 2차 대전(1937년부터 1945년까지)을 일으켰으며, 미국과 한판 붙는 태평양 전쟁(일본은 대동아전쟁이라고 함)을 1941년 12월부터 1945년 9월까지 일으키게 됩니다. 일본의 식민지교육으로 동화되거나 친일파가 된 수많은 사람들은 전쟁에 동원되어 참으로 헛된 죽음을 하였습니다.
서울 조선총독부에서 1945년 9월 9일 항복 문서에 서명을 한 일본의 마지막 총독 ‘아베 노부유키’는 다음과 같은 독설을 하였습니다.
『우리는 패했지만 조선은 승리한 것이 아니다. 장담하건대, 조선민이 제 정신을 차리고 찬란하고 위대했던 옛 조선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100년이라는 세월이 훨씬 걸릴 것이다. 우리 일본은 조선민에게 총과 대포보다 무서운 식민교육을 심어 놓았다. 결국은 서로 이간질하며 노예적 삶을 살 것이다. 보라! 실로 조선은 위대했고 찬란했지만 현재 조선은 결국 식민교육의 노예로 전락할 것이다. 그리고 나 아베 노부유키는 다시 돌아온다.』
일본은 이렇게 철저하게 우리민족의 정신을 말살하였습니다. 그럼 현재 일본과 일본인들의 역사의식은 어떨까요? 일본의 역사의식을 알려면 “덴노(천황) 문화”를 알아야 합니다. 한국인들의 정서상에는 우리나라는 단군의 자손으로서 단일 민족이라는 민족의식이 있다면 일본인들에게는 덴노문화 즉 천황문화가 있습니다. 일본인들은 천황을 정신적 지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본인들에게 천황은 만세일계(萬世一系)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즉 천황은 권위의 상징이며 신성한 존재로서 대륙(한반도)의 피가 전혀 섞이지 않은 순수한 일본인들만의 혈통이 대대로 이어져 내려왔다는 것입니다.
또한 일본서기에 나오는 팔굉일우(八紘一宇) 사상을 빼놓고는 일본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팔굉일우라는 팔방의 세계 즉 전세계가 천황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당연히 팔굉의 중심은 천황이 사는 일본이며, 일본인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더 우월하며 결국 세계를 지배할 사명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팔굉일우는 일본 천황제 군국주의의 핵심 사상으로, 태평양 전쟁 시기에 접어든 일본 제국이 세계 정복을 위한 제국주의 침략 전쟁을 합리화하기 위해 내세운 구호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일본의 천황문화는 백제가 660년에 멸망한 후 백제인들이 일본에 건너가서 만든 문화입니다. 백제인 안만려(오오노 야스마로, 太安万侶)은 712년에 일본 고사기(古史記)을 편집하였고, 그리고 720년에는 덴무천황의 명에 의해 일본의 역사가들은 일본 역사의 정사(正史)인 일본서기(日本書紀)를 집필하였습니다. 일본서기에서 일본의 건국일을 B.C. 660년 신유년dmfh 설정하였습니다. 고사기와 일본서기에는 신라와 고구려 등 주변국에 대한 경쟁의식으로 허구에 찬 거짓이 포함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많습니다.
놀라운 것은, 2001년 12월 21일 일본 아키히토 천황은 기자회견을 통해 “나(아키히토) 자신은 칸무 천황의 어머니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고 속 일본기에 기록되어 있다.”며 기자회견을 통해 밝혔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일본 천황가의 문서인 “엥기시키(延喜式, 연희식)”에는 일본 천황궁 내에는 한국 신(神)을 모시는 사당이 있고, 한국 신을 모시는 초혼가를 부르고 있다는 것입니다.(EBS 8.15 특집, 2002. 8. 15 일본 황실 제사의 비밀 참조 )
일본을 이해하려면 일본의 역사를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일본 극우(極右) 세력들의 역사의식은 어떨까요? 일본의 극우세력들은 일본이 아시아를 해방시키기 위해 천황의 이름으로 성전(聖戰)을 수행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일본들의 근대사에 대한 역사의식도 일본은 당시 국제 정세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자위의 수단으로 한국을 '병합'하여 식민지로 만들었고, 어쩔 수 없이 중국으로 '진출'하여 만주국을 건설하였고, 어쩔 수 없이 ‘태평양 전쟁’을 통해 진주만을 공격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일본인들은 국가를 위해 싸웠고, 미국의 원폭투하는 비인도적인 차원이라는 것이 일본인들의 기본 인식인 것 같습니다.
670년 이후 역사적으로 보면, 한국과 일본은 가깝고도 먼 나라입니다. 우리는 일본으로부터 받은 수난의 역사와 왜곡된 역사는 기억하고 싶지 않지만 우리가 수난과 왜곡의 역사를 똑똑히 알고 용서할 수 있을 때 새로운 한일관계를 유지하며 코발트빛 희망을 만들 수 있습니다. 용서와 양보와 포용은 힘 있는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힘없는 사람은 용서할 수 없고, 힘없는 사람이 양보하는 것은 굴복입니다. 굴복은 힘이 없어서 굴복하는 것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갈등과 분쟁의 씨앗이 남게 됩니다. 용서는 영원한 평화를 가져 오지만 굴복은 잠시 잠복할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평화로운 한일(韓日)관계를 오래 동안 유지하기 위해서는 한일 간의 바른 역사를 알아야 합니다.
일본 왕실도서관인 서릉부의에서 1933년부터 1944년까지 근무했던 고(故) 박창화(1889~1962년) 선생의 증언에 의하면 서릉부에는 단군관련 서적들이 많이 쌓여 있었다는 것이고 그리고 일부는 본인이 정리를 하였다고 합니다. 일본이 강탈해 간 역사서를 끈질기게 찾다보면 단군조선의 역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관련 동영상은 첨부하였습니다.
다음은 일본의 치밀하고도 대대적으로 시행한 축소되고 왜곡된 우리민족의 역사 몇 가지를 알아보겠습니다.
1. 일본은 1910년 11월에 조선총독부 산하에 ‘취조국’을 두고서 서적을 일제히 수색했습니다. 조선총독부 관보를 근거로 보면, ‘51종 20여 만 권 정도를 가져갔다’ 이렇게 기록돼 있습니다. 조선총독부 취조국은 단군조선 등 한국사를 왜곡 편찬하는데 필요한 일부 서적만 남기고 모두 불태웠습니다. 일제침략기의 기록에 의하면 전국에서 수집해 경복궁에서 태운 책이 타는 냄새가 3일 동안 났다고 합니다. 1922년 12월에 ‘조선사편수회’ 즉 ‘조선사편찬위원회'를 만들어서 1938년에 〈조선사〉 35권을 만들었습니다.
2. 승 일연(一然, 1206~1289)이 편찬한 ‘삼국유사(三國遺事)’ 고조선(古朝鮮) 편에 나오는 “석유환국(昔有桓國)”을 “석유환인(昔有桓因)”으로 변조하여 환국의 국가체제를 완전히 말살한 것입니다. 변조 이전의 삼국유사를 보고 정리한 동경제대 발간 본에는 ‘인(因))자가 아닌 '국(國)'자로 분명히 기술돼 있습니다. 한민족이 단군 조선 전에 이미 '환국'이란 나라를 형성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일제가 왜곡한 것입니다.(고조선, 사라진 역사 : 성삼제 저)
3. 한인 7대 3,301년․ 한웅 18대 1,565년․ 단군 47대 2,096년의 통치의 역사를 한인, 한웅, 단군 각각 1명이 통치한 것으로 왜곡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단군이 한분이라면 어떻게 2천년을 혼자 통치할 수 있었겠습니까?
4. 삼국유사에 기록된 일웅일호(一熊一虎)를 직역하여 한 마리 곰과 한 마리 호랑이라고 하였습니다. 단군은 곰이 여자로 변해 낳은 후손으로 전락시켰습니다. 우리민족을 곰처럼 미련한 민족으로 전략시킨 것입니다. 단군의 건국 시기는 중국의 요임금 25년(동국통람 편)입니다. 중국 요임금 시대에 곰이 어떻게 사람으로 진화할 수 있었겠습니까? 식민사관은 너무나 비과학적인 발상이며 정말로 어처구니없는 발상입니다. 인간 단군을 곰의 자식으로 폄하하고 단군신화(檀君神話)로 조작하였습니다.
4. 반도(半島)사관을 주입하였습니다. 반도라는 말은 우리민족은 대륙에 붙어 있는 반동아리 섬이란 의미입니다. 일본은 태평양 바다에 있는 완전한 섬이라는 의미로 열도(列島) 또는 전도(全島)라고 하였습니다. 동양사의 주체였던 한민족의 역사를 한반도 안으로만 압축해 버린 것입니다. 너희 나라는 항상 한반도에만 국한되어 살았던 민족이다는 반도사관을 주입하는 것입니다. ‘한반도(韓半島)다’라는 말도 일제시대부터 나온 얘기입니다.
5. 한민족의 시원과 강역을 한반도로 국한하였습니다. 즉 한민족은 중국의 진・한 교체기인 B.C. 108년에 한나라가 위만조선을 침략한 후 한반도에 한4군(낙랑․임둔․진번․현도)을 설치한 것으로 왜곡하였습니다.(이는 한민족은 원래가 중국(漢)의 속국이었기 때문에 한민족보다 역사가 더 오래되고 위대한 일본(일본 건국일 B.C. 600년)이 통치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논리를 전개하기 위함입니다.)
6. 그리고 식민지 교육을 통해 한국 민족은 오늘날까지 제대로 완전한 독립을 해 본 적이 없는 주인도 없고 뿌리도 없는 유랑민으로서 무능하고 부패하고, 민족 분열을 일삼는 망국 근성의 민족인 것처럼 자타가 공인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B.C. 1천 년 전 중국의 전국시대에 유랑민들이 떠돌아 들어온 곳이 한반도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국시대에 한반도로 유랑해 온 백성들로서 무능하고 부패하고, 민족분열만 일삼는 나라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삼국시대에는 신라, 고구려, 백제로 나누어져 싸움박질만 하고, 고려시대에는 음탕한 역사가 진행되었고, 조선이라는 나라는 역성혁명에 의해 수립된 나라로서 아예 탄생되지 말아야 할 부끄러운 나라였다는 것입니다. 조선은 사색당쟁이라든가 사화라든가, 이렇게 서로를 용납하지 못하고 맨날 싸움만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스스로를 발전시킬 수 있는 추진력이 없이 살아온 미개민족이기 때문에, 대동아의 미래를 책임져야할 일본이, 당연히 합방해서 보호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하는 것이 식민사관의 목적이었습니다.
광복이후 우리민족은 좌우 이념 대립으로 나라가 남북으로 분단되었습니다. 분단된 후 남한에서는 친일사학의 거두(巨頭)인 이병도와 신석호 등에 의해 친일(親日) 강단사학자들이 양성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일제청산 작업은 뒷전으로 밀려났고, 덩달아 역사왜곡 또한 제대로 바로잡지 못한 채 71년이 되었습니다.
북한은 한민족의 정체성과 역사의식이 아예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북한은 김일성 주석 3주기인 1997년 7월 8일부터 김일성 주석의 출생년도인 1912년을 원년으로 김일성 주체연호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북한이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는 목적은 북한 정권의 독립성을 강조하기 위한 상징입니다. 북한은 현재 주최 연호와 서기를 병용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잠시 우리 민족의 역사를 돌아보면 민족의 자주권을 강조하던 시대에는 항상 독자 연호를 사용하였습니다. 그리고 중국의 영향을 받을 때는 중국의 연호를 사용하였고,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의 연호를 사용하였습니다. 우리 정부는 광복 직후 미군정 시기에는 서기(書記)를 사용하다 1948년 8월 15일 정부 수립 후 다시 '대한민국' 연호를 일시적으로 사용하였는데 9월 25일부터는 단군조선의 기원인 단기(檀紀)를 사용하였습니다. 그런 후 1962년 1월 1일부터 박정희 정권부터 개정 '대한민국 연호에 관한 법률'을 시행해 예수 탄생 시기를 원년으로 하는 서기(A.D. Anno Domini : 그리스도의 해'라는 뜻)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서기를 사용하지만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는 나라들도 여전히 많습니다. 우리 정부도 정체성과 정통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단기연호를 부활해야하며 국제적인 소통을 위해서는 서기와 병용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한반도라는 함정에 빠져 있는 사람과 일본의 식민사관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지만 사실 한국 중국 일본은 5천 년 전의 역사로 거슬러 올라가면 뿌리가 같습니다. 이것은 엄연한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세 나라는 뿌리가 같지만 오랜 세월 흘러오는 동안 중국은 영토를 독차지하였고, 일본은 천황문화를 이어받았고, 한국은 홍익철학을 이어받았습니다. 대한민국이 위대하고 거룩한 것은 동북아뿐만 아니라 전 인류까지도 살릴 수 있는 보편적인 홍익철학을 이어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한민국이 정신을 차리고 대한민국 주도로 민족통일과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넘어 인류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민족에 대한 개념을 잘 정리해서 민족교육을 제대로 해야 합니다.
민족교육을 시키지 않으면 분단은 고착화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김정은이 다음 몇 가지 사례에서 보듯이 투 코리아(Two Korea) 전략으로 나가고 있기 때문에 민족교육은 시급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첫 번째는 북한은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여 일제 잔재 청산의 명분으로 2015년 8월 15일부터 평양시간(지역표준時)를 변경하면서 독자적인 체제를 선택하였습니다. 평양시 변경 이후 북한 시간은 남한 시간보다 30분이 늦어 졌습니다.
두 번째는 휴전선을 국경선으로 기정사실화하려는 의도를 보이고 있고, 공식적인 문서에서도 남한은 대한민국 정부로 북한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로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는 2016년 5월 제7차 노동당대회를 통해 김정은 유일독재체제를 선언하였습니다. 특히 한국뿐만 아니라 유엔의 강력한 대북제재에도 불구하고 계속 미사일을 발사하며 김정은 체제의 우월성과 견고함을 과시하고 있고, 우리정부는 혼란을 초래하고 있습니다.
현재 남한에는 3만 명의 탈북민과 1백 만 명의 외국인이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중국 동북3성(지린성, 요령성, 흑룡강성) 등에는 약 2백 만 명의 조선족이 살고 있고, 전 세계적으로 8백만명의 재외동포들이 살고 있습니다.
비근한 예를 하나 들어 보겠습니다. 며칠 전에 탈북강사를 만나서 탈북민들의 고충을 들은 바 있습니다. 연세가 드신 탈북민들 중에는 남한 생활이 어려운 분들이 많습니다. 남한 생활이 어려운 연세드신 분들은 김정은은 욕을 해도 김일성에 대한 향수가 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김정은 시대에는 못 먹었지만 김일성 시대에는 잘 먹고 잘 살았던 향수가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연세 드신 탈북민들은 오랜 세월 동안 북한에 살면서 김일성 김정일 주체사상을 교육받았고 김정은한테 세뇌를 받아오다 탈북을 했는데 탈북민들이 처음 한국에 오면 국정원과 하나원에서 교육을 받습니다. 국정원에서는 사상점검을 받고 하나원에서는 한국에서 먹고 살기 위한 취업과 창업교육을 위주로 교육을 받습니다. 그렇다보니 남한에서의 힘든 상황이 발생하면 과거에 좋았던 기억을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봅니다.
탈북민과 외국인 거주자, 재외동포들은 모두 통일한국의 미래를 위해 중요한 인적자산이지만 우리 정부는 이들에게 민족교육을 어떻게 시키고 있습니까? 민족의 긍지와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교육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이상 언급한 바와 같이 한민족 수난의 역사와 왜곡된 역사는 현재도 진행형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일본이 만들어 놓은 한반도라는 함정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서 찬란한 한민족 천손민족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한민족의 사명을 이루어야 합니다. 한민족의 건국이념인 홍익인간 이화세계를 이루어야 합니다.
인지학(人智學)의 창시자이며 녹색운동의 창시자인 독일계 오스트라인 루돌프 슈타이너(Rudolf Steiner, 生沒 1861년 ~ 1925년)는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겼습니다.
『인류문명의 대전환기에는 인간의 새로운 삶의 양식을 결정할 원형(Archetype)을 제시하는 성배(聖杯)의 민족이 반드시 나타난다. 깊은 영성을 지닌 이 민족은 새로운 세계에 대한 이상을 갖고 있지만 거듭되는 외침과 폭정에 억압되고 훼손되어 그 이상을 쓰라린 내상(內傷)으로만 간직한 민족이다. 지중해 문명의 전환기에 나타난 그 민족은 이스라엘이지만 오늘날은 한국이다.』
유대민족과 우리민족의 민족교육을 비교해보면 매우 대조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정부는 외교적인 문제로 주변국들의 눈치를 보다보니 민족교육은 너무나 미약합니다. 그러나 정부가 하지 못하면 시민단체들이 나서서 민족의 긍지와 자부심 교육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또한 우리민족의 저력이기도 합니다.
다음 편에는 우리민족의 민족성과 우수성을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
KBS 역사스페설(2002년)아키히토 일본천황의 혈통고백 기자회견(2001. 12. 23)
https://www.youtube.com/watch?v=iP9-swbPTdU
일본 왕실 도서관의 비밀(MBC HD)
https://www.youtube.com/watch?v=eT3DMVsWR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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