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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지역 해양문학의 뿌리와 현재
-완도 지역 중심으로
노 창 수
(문학평론가·광주교대 강사)
Ⅰ. 들어가는 말
전남은 바다를 접한 곳이 우리나라 전체 시군의 4/5 이상을 차지할 만큼 넓고, 연안 지형은 리아스식 해안으로 일의 터전 또한 바다와 갯벌이다. 영광, 함평, 무안, 목포, 신안, 고흥, 보성, 영암, 해남, 강진, 장흥, 완도, 진도, 여천, 여수, 순천, 광양 등의 바다와 갯벌은 오래 전부터 그 자체가 삶과 이어졌다.
해양문학의 뿌리는 ‘해양 구비문학’, ‘해양 설화문학’, ‘해양 가사문학’, ‘해양 시문학’, ‘해양 수필문학’, ‘표해 문학’ 등 관련 고전문학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예로부터 섬 지방은 정치적 유배 지역으로 그들 지식인이 남긴 문학 작품이 많았던 점도 해양문학의 발달에 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해양문학을 발전시킨 직접적 동력은 무엇보다 이곳에 대대로 뿌리박고 살아온 민중들에 의해 자생적으로 구비 전승되어온 구비문학에다 연원을 두어야 할 것이다. 완도에 민중 어로요(漁撈謠)나 민중 해양설화가 수많은 적의 외침에도 사라지지 않고 그 맥을 면면히 이어온 게 자생의 이유이다.
우리의 바다는 신라 탈해왕의 출현지였으며, 죽은 후 해룡으로 변신한 문무왕의 수호정신, 그리고 그 후손이 삼한 땅에서 산 환생의 공간이었다. 또 통일신라 때 해상왕 장보고가 청해진을 중심으로 전방위적인 활약을 한 점, 임진왜란 때 남해를 호령하던 이순신 장군이 13척의 배로 대첩으로 이끈 점 등은 우리가 적극적인 해양국가임을 표징한다. 이러한 사실이 오늘날 ‘바다의 날’을 제정하게 하는 직접적 동기가 되기도 한다.1)
소설 『심청전』에 나오는 ‘인당수’는 죽은 심청이가 되살아나 아버지 눈을 뜨게 한 재생의 바다였다. 한편 『임진록』과 『난중일기』에서 보듯, 삼면이 바다로 둘러 싸여 왜적에게 시달려야 했던 바다는 고난과 죽음의 장소이기도 했다. 일제 식민지 통치를 기점으로 바다 진출이 현격히 쇠퇴했는데 이는 우리의 해양 발전을 사전에 봉쇄하고 우리 기상을 통제한 정책 때문이었다. 더구나 일본은 임진왜란 당시 해전에서 상대적 열세에 몰렸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의 해양 진출을 유별나게도 막았다. 이후 친일파들에 의해 유구한 해양문학은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고 꺾이기 시작했다. 친일학자들은 해양문학을 우리 전통 설화, 전설, 민담, 가사, 민요, 동요, 시조 등에 맥을 찾지 않고 엉뚱하게 일본을 거쳐 들어온 서구문학에 접목하여 해양문학을 살피려는 경향부터 그러했다.
우리는 세계 제2위의 해양 강국이다. 그럼에도 바다를 지키려는 정치의식적 수준은 독도 문제 등에서 보듯이 최하위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의 영해·영공 위협에 대비하여 바다와 하늘에 대한 정신적 연구가 강화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이 연구를 실현시킬 수 있는 것이 해양문학과 우주문학의 창작이다. 해양문학이야 말로, 바다 생명의 소중함과 환경의식을 높이고 생활 자세를 건강하게 만드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Ⅱ. 해양문학의 개념과 특징
1. 바다의 상징과 해양문학
바다는 우리의 삶을 지탱 유지하는데 보고(寶庫) 역할을 한다. 바슐라르(G. Bachelard)에 의하면, ‘바다란 어머니이며, 바닷물은 기적의 우유’로 상징된다.2) 그만큼 바다는 다양한 생명체를 태어나게 하고, 또 그것을 바다(젖)를 먹여 자라게 하는 자양분을 포함한다. 리챠드(J. Richard)도 바다는 ‘생명의 완성된 공간’이라고 말한 바 있다.
바다는 우리 삶과 생태적 관계를 가진 역동적·완성적 공간으로 작용한다. 자신 속의 생물을 기르는 자궁의 포태 작용, 즉 원초적 창조력을 가지는 것이 바다이다. 바닷물의 이미지는 다의적 포용적인 생동적 모습을 나타낸다.
융(C. G. Jung)도 ‘바다는 모든 생명의 근원이요, 영적 신비이며, 영원과 죽음과 재생을 나타낸다’고 하였고, 프라이(N. Frye)는 바다는 겨울, 밤, 즉 죽음과 궤를 같이 하면서3) ‘죽음의 표상’인 동시에 ‘죽음의 승화’ 과정을 거쳐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는 ‘창조적 통로’4) 라고 보았다.
바다의 생명 근원, 영적 신비 또는 영원과 죽음, 재생의 상징성 때문에 해양문학의 본질을 생명과 죽음의 양 속성을 함께 다루는 복합적 개념으로 본다.
2. 전남 해양문학의 범위와 특징
표해록류(漂海錄類)에서 보여지는 바다는 거대하고도 이채로운 공간으로 다가온다. ‘표류’라는 뜻밖의 상황에 처해서, 바다는 변화무쌍한 모습을 드러내고 이에 맞서는 생사의 싸움, 즉 삶의 결정적 공간으로 묘사되고 있다.
전남의 바다를 무대로 한 표해록(漂海錄)은 다른 해양문학 보다 생생한 체험 기술(記述)이 돋보인다. 이는, 자신에게 바로 보이는 많은 섬과 해안이 표해하는 자들의 순간적인 생명구조에 대한 기대를 진하게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표해록을 읽는 독자에게 긴박감을 더하게 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5)
전남 문학사에서 바다를 중심으로 한 작품 수는 전국 으뜸이다. 민요, 신화, 전설, 설화 등 구비문학을 비롯해 고대 소설, 표해록, 그리고 현대의 다양한 작품에 이르기까지 전남의 해양문학은 풍성하다.
Ⅲ. 우리 해양문학의 뿌리
물은 자체 내부에 창조적 힘과 파괴적 힘, 두 대립적 의미를 지니면서 순환한다. 빗물이 하강하여 대지 속으로 스며든다. 그리고 지하에 모여 지하수를 이루게 되고, 지하수는 지곡(地谷)의 균열을 타고 지표로 솟아 샘물이 된다. 샘물이 모여서 내(川)을 이루고, 이어 강을, 강은 바다를 이룬다. 모인 물은 기화 상승하면서 구름으로 바뀐다. 구름은 비가 되어 다시 대지로 돌아오고 그 물의 귀결점은 항상 바다이다.
우리의 생명은 태초에 물 한방울로부터 왔다.
일만년 전 빙하로 흘러 들어
다시 풀리는 이 물방울의 감격
그러므로 다치지 말아라!
영원 회귀(永遠回歸)
나는 지금 다시 그 곳으로 가고 있는 중이다.
-송수권(宋秀權)의 「물방울의 여행」 중에서
바다는 모든 물의 ‘영원 회귀’ 대상이 되며 또한 그 꿈이다. 그러므로 문학도 물방울들의 회귀처럼 결국 해양문학에로 귀의 작용이 이루어질 수 있다. 발생적 근거에 의해 고전과 현대 문학이 모이고, 문학의 여러 장르가 합류, 바다로 가는 해양문학은 자연의 법칙대로 모든 문학의 귀착지로 볼 수 있다.
해양문학이 바로 이러한 물의 이름(至)의 원리와 아우름(包)의 개념을 획득할 때, 진정한 문학이 성립할 수 있다.
1. 해양시
우리 해양문학의 시초는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와 「해가사(海歌詞)」를 들 수 있다. 항해 중 폭풍우를 만나 표해 체험을 기록한 「표해록(漂海歌)」에서도 생생한 해양문학의 체취를 느낄 수 있다. 그러나 해양문학의 실제적 뿌리는 오래 전부터 섬과 어촌에서 발생한 구비문학인 「어로요(漁勞謠)」 「바다요(謠)」, 그리고 바다에 대한 전설 등 오랫동안 구전되는 자료에서 그 뿌리를 찾아야 할 것이다. 민요는 후대 문학 품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현보(李賢輔)의 「어부가(漁父歌)」나 윤선도(尹善道)의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의 후렴구는 이 같은 민중 어로민요의 후창에 그 뿌리를 둔다고 볼 수 있다.
1.1.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
이 노래는 고조선의 진졸(津卒)에 사는 곽리자고(藿里子高)의 아내 여옥(麗玉)이 지었다는 노래이다. 작품은 진나라 최표(崔豹)의 『고금주(古今注)』 속에 그 배경 설화와 함께 실렸다. 내용은, 곽리자고가 새벽에 배를 끌고 가는데, 흰머리가 성성한 미친 이가 술병을 들고 사납게 파도치는 물을 건너려 했다. 그때 그의 아내가 뒤따르며 막았지만 백수광부(白首狂夫)는 말을 듣지 않고 물을 건너다가 마침내 빠져 죽었다. 그의 아내는 안타깝고도 슬픈 나머지 공무도하의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나서 그녀도 곧 바다에 몸을 던져 죽었다.
임이여 그 물을 건너지 마오
임은 그예 물을 건너시다
물에 휘말려 돌아가셨으니
임은 어쩌란 말이오.
(公無渡河 公竟渡河
墮河而死 當奈公河)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는 2세기 후반에 써진 노래로 가장 오래된 해양문학이다. 이 노래에서 바다는 죽음과 사랑을 상징하고 있다. 한 백수광부가 물에 빠져 순간적으로 죽음을 맞는 것은, 바로 그 아내까지도 죽음으로 연계한 비극을 초래한다. 원형적으로, 죽어가는 것은 생명을 주고, 살아있는 것은 죽음을 준다. 이 「공무도하가」에서는 왜 죽음으로 현시되고 있는가. 그것은 물의 이법에 순응하지 않고, 그 순리를 어겼다는 데에 있다. 물의 순리를 쫓는 것, 그것은 백수광부 아내의 말이다. 그러나 순리를 거역한 자는 백수광부이다. 이러한 순리를 모르고 죽은 남편을 따라 아내도 죽게 되는데, 발단은 백수광부가 파도치는 바다를 건너가는 무모함, 백수광부가 취했다는 것, 그러므로 죽음의 이미지는 엄밀하게 말해 술에 있지, 바다에 있지 않다고 볼 수도 있다.
1.2. 「해가사(海歌詞)」
강릉의 태수 순정공의 아내인 수로부인은 미인이었다. 태수가 그 아내와 함께 동해안을 지나다 마침 쉴 곳이 있어 ‘임해정(臨海亭)’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다. 그 때 갑자기 용이 나타나 부인을 끌고 바다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순식간에 아내를 잃은 순정공은 발버둥을 치고 안타까워했지만 구해야 할 특별한 방법이 없었다. 이때 지나가던 한 노인이 말하기를, “옛날 사람의 말에 뭇사람의 말은 쇠 같은 물건도 녹인다고 했으니, 바다 속의 용인들 어찌 사람들의 입을 두려워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발만 동동 구르지 말고, 마을 사람들을 동원하여 노래를 부르시오.” 하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따라 하였더니, 과연 용이 바다에서 나와 부인을 내려놓았다. 순정공이 바다 속에 들어간 일을 물으니, 부인은, “일곱 가지 보물로 장식한 궁전 음식은 달고 향기로우며, 인간 세상의 음식이 아니었습니다.” 라고 대답하였다. 이 때 사람들이 부른 노래가 「해가사」인데 「구지가」와 비슷하다. 다만 여기에는 수로부인이 개입되었고, ‘수로’와 ‘바다의 용’이 있기에 ‘그물’이란 소재가 첨가되어 있다.
거북아 거북아 수로(水路)를 내놓아라
남의 아내를 뺏은 죄 얼마나 크냐
네가 만일 거역하여 내놓지 않으면
그물을 넣어 잡아 구워 먹겠다.
(龜呼龜呼出水路 若人婦女罪何極
汝若傍逆不出獻 入網捕掠燔之喫)6)
「해가사(海歌詞)」는 빼앗긴 아내를 찾기 위한 주술적(呪術的) 노래이다. 아내를 다시 찾기 위한 안타까운 노래로, 「구지가(龜旨歌)」와는 동기 면에서 다르나 형식과 내용은 비슷하다.
지금도 이와 같은 바다를 향한 주술적 행사는 전승되어 오고 있다. 다만 형태가 약간씩 달라졌을 뿐 그 근간은 변하지 않고 있다. 예를 들어, 진도의 씻김굿, 완도의 용왕제 등, 모두 풍어를 약속하고 무사 귀환을 노래로써 주술 기원하는 제사란 점이다.
1.3. 전남의 어로요(漁撈謠)
완도 등 어촌에서 불리는 민요로는 어로(漁撈)의 무사 안일을 비는 「배의 축원 노래」와 「불사(不死) 굿노래」가 있고, 배를 새로 진수하며 부르는 「배치기 노래」, 선왕을 모시며 부르는 「선왕굿 노래」도 있다. 그리고 배가 출항하면서는 「닻감기 노래」, 「노젓기 노래」를 부르고, 고기잡이하며 부르는 「그물 내리는 소리」와 「그물 감기 소리」 도 있다.
출항하면서 그물을 싣는 노래인 「술비노래」와 그물을 싣고 행선고사(行船告祀)를 모신 뒤 떠나며 부르는 노래, 그물을 놓고 낙망(落網) 고사를 모실 때 부르는 노래와 그물을 당기는 소리가 있고, 만선으로 포구에 들어오는 그 기쁨을 노래하는 다음과 같은 「풍장소리」도 있다.
얼시구 좋다, 절시구 좋아, 얼시구나 좋네.
헤헤 허야허아 허어 허어허어 좋아요
칠산바다에 들어온 조구
우리배 망자(網子)로 다 들어왔다.
에헤 좋네.
들물에 천냥, 썰물에 천냥
안안팎 네물에 사오천냥 실었다.
에헤 좋아요
에헤 허야허아 허아 허아허아 좋아요.
- 「풍장소리」 중에서
완도 지방의 「고기잡이 노래」는 대부분 집단으로 불려지고 있으며, 노래 형식은 단련체나 연장체로7) 분류될 수 있다.
다음은 소안도 지방의 「멸치잡이 노래」로 단련체(單聯體) 형식이다. 주로 소리 매김과 받음의 형식, 즉 선․후창으로 되어 고기잡이를 촉진하고 있다. 또 흉어일 때 여럿의 아우른 노래로 극복하며 재기할 수 있는 힘을 돋우는 내용도 담고 있다.8)
우리네 그물에(서소야)
멸 들었네(서소야)
우리네 선원들(서소야)
입들을 벌여서(서소야)
소리를 해라(서소야)
서소야(서소야)
디가로고나(서소야)
-소안도(小安島)의 「멸치잡이 노래」 중에서
이 노래는 어로 작업 중 그물에 멸이 들어 성취 기쁨을 나누는, 힘을 합하고 어우르는 소리를 하도록 권면한다. 또 만선되어 돌아오면서, 밤새 마시고 노래하며 흥을 돋우는 데에도 이 노래를 활용한다고 한다. 특별한 언어적 세련미나 내용에 꾸밈이 없는 자연발생적 노래이다.
완도의 어로 요는 「멸치잡이 노래」가 많다. 이 노래 또한 만선이 되어 기쁨에 차 부르는 소리이다.9) 이와 같은 노래는 섬마다 있는데 그 내용과 형태가 약간씩 다르다.
좋기는 좋네. 이렇게 졸 수가(에-야 뒤여라)
바라보소. 바라보소(에-야 드려라).
앞뒤 장으로 물 넘어 든다(에-야 뒤여라)
아가디야차 듸여로다(에-야 듸여라)
-소흑산도의 「멸치잡이 노래」
또 어부들이 부르는 「만선가(滿船歌)」에서는 고기 잡는 모습이 흥미롭게 묘사되고 있고, 그물로 올라오는 고기에 대하여 호기심이 엿보이는 어부의 기대 심리를 특징적으로 노래하고 있다. 이와 같은 노래는 바다를 화수분으로 생각한 어부요(漁夫謠)라고 할 수 있다.
올라온다, 올라온다,
우리밥이 올라온다,
이 고기가 무슨 고기냐?
처자식과 우리 부모 맛 줄
고기가 올라온다
-완도의 「만선가」
「어로요(漁撈謠)」의 특징은 힘든 어로 자체를 격려하는 소박한 내용이 많다. 다음으로 어부들의 화합된 힘을 다지는 협동의 노래, 만선의 기쁨, 그리고 풍랑으로 인하여 어로가 실패했을 때 이를 극복하며 전환하는 체념의 노래, 또 훌륭한 가장(家長), 효성스러운 아들, 충성스러운 국민임을 뱃소리에 의탁한 가사 등 나름의 특징과 의미가 담겨 있다.
2. 전남 해양시조
바다를 무대로 한 해양시조는 윤선도(尹善道)의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가 대표적이다. 이 작품의 각 장은 전개방식에서 대구와 대등절의 관계를 이룬다. 「어부사시사」는 40수의 연시조이다. 이는 종래 구전하던 「어부사(漁父詞)」를 이현보가 고쳐 「어부가(漁夫歌)」로 짓고, 이를 윤선도가 다시 창작한 것으로 발전한다. 원가(原歌)와 이현보의 개작가(改作歌)는 한문 고시를 그대로 따다 토를 붙인 것에 불과하나, 윤선도는 난삽한 한시구를 순 우리말로 바꾸었다. 특히 대구법의 처리, 시간대별 바다 환경변화와 계절의 순환에 따른 바다 생태를 완벽하게 표현하고 있다.
「어부사시사」는 우리말 조탁에 의한 아름다움, 속화된 자연을 시로써 승화시킨 점이 뛰어나 해양시조의 백미라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 작품은 고려속요 후렴구의 전통을 계승하여, “ᄇᆞㅣ떠라 ᄇᆞㅣ떠라”, “ᄃᆞᆮ드러라 ᄃᆞᆮ드러라”, “돋ᄃᆞ라라 돋ᄃᆞ라라”, “이어라 이어라”, “돋ᄃᆞㅣ여라 돋ᄃᆞㅣ여라”, “ᄇᆞㅣ브텨라 ᄇᆞㅣ브텨라”, “ᄇᆞㅣ셰어라 ᄇᆞㅣ셰어라”, “ᄇᆞㅣᄆᆞㅣ여라 ᄇᆞㅣᄆᆞㅣ여라”, “지국총지국총 어ᄉᆞ와” 등을 효과적으로 살려 시조의 리듬과 규칙적 효과를 고양시키고 있는 것 또한 두드러진 특징이다. 이는 보길도 어민들에 의해서 오래 전부터 구비 전승되어 오는 「뱃노래」와 「어로요」에서 힌트를 얻어, 이를 정착시킨 예로 볼 수 있다.
「어부사시사」의 춘사(春詞) 중 첫수와 둘째수를 예로 보이면 다음과 같다.
압개에 안개 젓고 뒫뫼희 ᄒᆞㅣ비쵠다
ᄇᆞㅣ떠라 ᄇᆞㅣ떠라
밤믈은 거의 디고 낟믈이 미러온다
至지菊국悤총 至지菊국悤총 於어思ᄉᆞ臥와
江강村촌 온갖 고지 먼 빗치 더욱 됴타
날이 덥도다 믈 우희 고기 떧다
닫드러라 닫드러라
갈며기 둘식 세식 오락가락 ᄒᆞᄂᆞᆫ고야
至지菊국悤총 至지菊국悤총 於어思ᄉᆞ臥와
낫대는 쥐여 잇다 濁탁酒주ㅅ甁병 시럿ᄂᆞ냐
- 윤선도 「어부사시사」 중에서
윤선도는 1650년(효종1년) 당시 65세로 유배지인 보길도에 들어가 20여년간 부용동(芙蓉洞) 낙서재(樂書齋)를 짓고 여기에 생활하였다. 그는 보길도와 해남을 오가며 다도해 어촌의 경관과 어부의 생활을 서정적 풍류에 담은 해양시조를 창작하는 등 비롯 많은 해양문학을 남겼다.
앞의 고전시가에서도 보았듯이, 우리의 해양문학은 고대 시가, 고대 수필로서의 『표해록』과 『난중일기』, 해양가사, 해양시조, 해양시, 해양소설 등, 깊은 맥과 폭넓은 영역을 확보해 오고 있다.
우리 문학, 특히 시는 바다를 소재로 한 작품이 주요 시문학사적 전환 시기 마다 발표되어 왔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옛 가요 「공무도하가(箜篌引)」, 「해가사(海歌詞)」, 그리고 윤선도의 「어부사시사」, 이현보의 「어부사시사」, 임억령(林億齡)의 「송대장군가(宋大將軍歌)」, 개화가사인 「바다를 보라」, 최남선(崔南善)의 신체시(新體詩) 「해(海)에게서 소년(少年)에게」 등은10) 주요 문학사를 가름하는 결정적 시기에 나타났던 해양문학 작품이다. 이들은 대부분 바다처럼 넓고 기운차고 끈기 있는 것으로 그 이미지가 진취적, 긍정적이다.
3. 전남 해양 한시
해양 한시(海洋 漢詩)는 바다를 소재로 하여 삶의 모습과 생태계(生態界)의 모습, 일망 바다의 풍광 등을 노래한 작품으로 원문이 한문으로 표기된 것을 말한다. 그러나 일반 한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편수가 전하여 사조와 경향 등을 일별해 볼 수 없는 아쉬움이 있다.
현전하는 작품으로는 최치원(崔致遠)의 「범해(泛海)」와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의 한시가 전한다. 물론 고대의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나 「해가사(海歌詞)」 등도 한시라고 할 수 있겠으나 고유의 한국 한시는 위의 작품들이다. 앞으로 이 분야의 발굴이 적극 추진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3.1. 최치원의 「범해(泛海)」
전남의 바다를 주제로 하여 현전하고 있는 작품 중 한시로 가장 오래된 것은 최치원의 「범해(泛海)」이다.
돛달아 바다에 배 띄우니
오랜 바람 만리에 통하네
뗏목 탔던 한나라 사신 생각나고
불사약 찾던 진나라 애들도 생각나네
해와 달은 허공 밖에 있고
하늘과 땅은 태극 중에 있네
봉래산이 지척에 보이니
나는 또 신선을 찾겠네
(掛席浮滄海 長風萬里通
乘嗟思漢史 採藥憶秦童
日月無何外 乾坤太極中
蓬來看咫尺 吾且訪仙翁)
- 최치원 「범해」 전문
3.2. 김정희(金正喜)의 시 「바다가 막진 곳」
김정희의 『완당전집(阮堂全集)』에 실린 「바다가 막진 곳」이란 작품에서는 제주도를 향하여 가던 중 완도 바다를 보고 자신의 심경을 토로한 시 한 부분을 예로 보이면 다음과 같다.
자라 등에 성곽이 솟아 오르고
자개 입에 창문을 일으켰구려
이 바다는 바로 큰 참호인데다가
장성은 높다랗다 층층히 닫네
(중략)
옛날 구경하던 노을진 곳에
달이 다시 오를 줄 뜻했겠는가
해와 달을 내 먼저 얻었을진대
이 땅은 찌꺼기나 좀 젖었겠지
이 바다 막진 곳이 바로 내 고향
바지자락 걷으면 닿을 것 같네
요령이 사람 머릴 희게 만드니
바다가 떠받들어 돌고 구는구나
내 소원은 바닷물이 평지로 되어
토끼 뛰고 가마귀 날지 않기를.
- 김정희 「바다가 막진 곳」
특히 이 부분은 글쓴이의 개인적 느낌이 집약되어 있다. 바다에 대한 상징을 통해, 자신의 소원을 빌고 있다. 즉 “바닷물이 평지되”기를 기구하며 “토끼 뛰고 까마귀”가 “날지 않기를” 기원한다. 바다를 육지회하는 형태변화를 원치 않고, 자연 생태 그대로가 좋다는 뜻으로, 사라지지 않는 바다가 영원하기를 희망하는 마음이 구현되어 있다. 지혜 있는 선조들의 선각이 오늘날 개발 독재와 난개발에 시사점을 준다.
이 외에 한시 작품으로는 곽예(郭預)의 「감도해(感渡海)」, 박효수(朴孝修)의 「흥해송라도중관해도(興海松羅途中觀海濤)」, 정몽주(鄭夢周)의 「도발해(渡勃海)」, 권근(權近)의 「항래주해(航萊州海)」, 최유해(崔有海)의 「행주(行舟)」, 신광수(申光洙)의 「잠녀가(潛女歌)」 등이 있다.
4. 전남 표해가
바다에서 표해 후 「표해가(漂海歌)」11) 를 지은 이방익(李邦翼)은 다음과 같이 노래하여, 바다를 건넌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기는 하나 지내고 보니 호쾌한 남아의 일이라며, 체험한 바다를 찬미하고 있다. 이 「표해가」는 생사의 갈림길에 놓여 있던 극한 상황에서 살아난 작자의 강한 내면을 엿볼 수 있다. 「표해가」는 문장가인 박지원에 의해 한문본 「서이방익사(書李邦翼事)」라는 제목으로 대필된 바 있으나, 「서이방익사」보다는 작자가 직접 쓴 「표해가」가 훨씬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지낸 사실 글 만들어
호장한 표해 광경 후진에게 이르과저
천하에 위험한 일 지내놓으니 쾌하도다.
- 이방익의 「표해가」 중에서
이방익은 40세 때 정조 20년(1796), 제주도와 완도 해상에서 폭풍으로 표류하다 중국을 거쳐, 정조 21년 윤달인 6월 4일 고국으로 돌아와 그 고행담을 4․4조의 가사로 표현하여 장편가사인 이 「표해가」를 남겼다.
이 외에 가사 작품으로는 조희백(曺喜白)의 「도ᄒᆞㅣ가」, 김한홍(金漢洪)의 「해발가(海遊歌)」 등이 있다.
5. 전남 해양가사
조선의 해양가사 출현은 늦은 감이 있다. 가사에 바다가 최초로 등장한 것이 선조 때 정철(鄭澈)의 「관동별곡(關東別曲)」이다. 그리고 이후 광해군 때 조우인(曺友人,1561~1625)의 「출색곡(出塞曲)」, 「관동속별곡(關東續別曲)」, 그리고 영정시대 후 국말이 가까워서야 사실적인 바다가 가사 작품에 소개되었다. 강호의 자연미 발견 가사가 셀 수 없이 많은 것에 비하면, 바다에 관한 가사는 빈약한 편이다. 그 바다도 몸소 뛰어든 바다 보다는 관망하는 바다, 유배길에 본 한(恨)의 바다였다. 그만큼 조선에는 바다에 대하여 소극적이고 폐쇄성이 강했다. 이는 은둔사상을 강조한 당시 유학자나 사대부의 영향 때문으로 분석된다. 진취성을 약화시킨 때가 조선시대였다는 비판은 일견 설득력이 있다.
5.1. 조선의 해양가사
조선 시대, 바다를 묘사한 가사에는 격동하는 파도 등 양반 가사에 보이는 한가한 정한이나 정적 세계와는 사뭇 다른 면이 있다. 가사문학에서 뿐만 아니라, 조선 봉건 체제에서는 사회 전반 분위기가 유교사상으로 인한 정적이었고, 이 정서가 귀족문화의 한 특질을 형성해 왔다.
그러나 해양가사나 표류가사에서는 작은 배에 생사를 걸고 몇 주야(晝夜)에 걸쳐 격랑과 싸우며, 추자도행, 완도행, 그리고 동해 일출 보기 뱃길 등의 험난한 여정을 가게 된다. 가사 「정처사술회가(定處事述懷歌)」에서는 지남석 하나로 방향을 잡아 울릉도를 찾아가는 뱃길이 묘사된다. 내륙의 풍류가사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동적 불안 세계를 표출하고 있다.
5.2. 위세보(魏世甫)의 금당별곡(金塘別曲)
이 노래는 완도의 금당도(金塘島)를 소재로 하여 창작된 전남 지방의 유일한 해양가사이다. 선계를 연상하듯 황홀한 신비경을 묘사한 특징을 보인다. 대자연을 대하는 자세가 초연하고, 바다를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보며 환상적인 세계로 그려내고 있다.
청강백구(淸江白鷗)야 묻노라 가는 길이
삼신산(三神山) ᄂᆞㅣ린 활기 이리로셔 어디 멀며
도원도(桃園島) 지는 곳은 언의 물로 ᄂᆞ리는고
계도(桂棹)을 흠리져어 가는대로 노하스라
연회고(連回顧) ᄒᆞ야 곳곳지 지점(指點)할제
상운일편(祥雲一片)이 해천(海天)의 검어 이서
온적(溫籍)한 학(鶴)의 소리 십리(十里)의 들니거늘
난도(蘭棹)을 빨리 저어 시 들어가니
- 위세보의 「금당별곡」 중에서
이 부분은 장흥에서 완도까지 가는 바닷길을 묘사한 기행이다. 그러나 현실적인 서술이나 묘사 보다는 선경적인 표현이 많고 중국 지명, 고사 등이 상당히 보인다. 이 작품에서 아쉬운 표현이 바로 이 점이다. 지명뿐이 아니고 자연의 모습도 사실적 묘사가 아닌 관념적 묘사가 많음을 보인다. 다만 작자의 감성 속에 재구된 이상의 공간에 침잠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하여 작자가 소요하는 자연은 중국 지방인 “낙포”로, “광한전 요대”로, “적벽강 아미산”으로 가상된다. 이 가사에 가상적 선경 표유(漂遊)가 많은 것은 까닭이 있다. 대부분의 해양가사가 유배길이나 표해로 인하여 현실적 고난 격랑을 헤쳐 가는 고투로 써진 것에 반하여, 이 「금당별곡」은 그런 유배길이 아닌, 유람 차원의 느긋한 마음으로 완도를 답사한 시정을 드러내고 있다. 「금당별곡」은 이처럼 다른 가사와는 표현 면에서 색 다른 점이 있다. 현실 배경과 파도와의 사투를 실감나게 그려내고 있는 것이 타 해양가사의 특징이라면, 이 가사는 내륙의 전원가사 수법을 그대로 이어 쓰고 있음을 볼 수 있다.
5.3. 이진유(李進裕)의 속미인곡(續美人曲)
이진유의 「속미인곡」에는 완도와 장흥, 강진을 무대로 하여 다음과 같이 노래한 대목이 있다.
이진항구의 주즙(舟楫)을 정돈하야
동풍이 건듯 불며 쌍범을 놉히 다니
창파 묘방하여 물밖은 하날일다
고도(孤島)랄 지점하니 흑자만 계유하다
시야장반하매 광풍(狂風)이 접천(接天)하니
즁뉴 실타하야 호흡이 위태할새
장년이 속수하고 주즁이 실색하니
묘연한 이내몸이 생사야 관계하랴
- 이진유 「속미인곡」 중에서
5.4. 안조환(安造煥)의 「만언사(萬言詞)」
안조환의 「만언사」에는 완도를 거쳐 남해안을 지나며,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는데, 이 작품은 해양가사의 대표적 작품이라 할만하다.
산악(山岳)같은 높은 물결 배머리를 둘러치네
크나큰 배 조리젓듯 오장육부(五臟六腑) 다 나온다
천은(天恩) 입어 남은 목숨 마자 진(盡)계 되었구나
- 안조환의 「만언사」 중에서
조선시대에는 바다에 대한 가사화(歌辭化) 작업이 상당히 늦었다는 느낌을 준다. 바다가 가사에 최초로 등장한 것이 선조 때 정철의 「관동별곡(關東別曲)」이다. 그리고 이후 광해군 때 조우인의 「출새곡(出塞曲)」, 「관동속별곡(關東續別曲)」, 그리고 영정(英正) 이후 국말이 가까워서야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바다가 가사 작품으로 등장하였다. 명산과 강호의 자연미 발견 가사가 셀 수 없이 많은 것에 비하면, 바다 소재 가사는 빈약한 편이다. 그리고 관망하는 소극적인 바다, 유배길에 본 한의 바다가 대부분이었다.12)
이 밖에, 암태도(巖泰島)의 서태석(徐邰晳)은 “산락도군복해중서천만리벽무서(散落島群伏海中西天萬里碧無西)”의 시문으로 다도해의 망망함을 노래하였다. 또 흑산도에 유배해온 최익현(崔益鉉)은 흑산 천촌리의 손바닥바위[指掌巖]에, “기봉강산 홍무일월(箕封江山 洪武日月)”이라고 친필 글씨를 새겨 우리 나라가 오랜 옛날부터 독립된 나라임을 강조하였다.
Ⅳ. 전남 지역의 현대 해양문학
1. 해양시
현대 해양시로, 1910년 최남선(崔南善)의 「해에게서 소년에게」가 신체시의 효시라면, 한국의 신문학은 최초 바다의 노래부터 출발한 셈이다. 육당이 바다를 노래한 시편들은 이 외에도 《소년》과 《청춘》지에 발표한 상당수 작품이 있다.13) 1920년대 김억(金億)의 『해파리의 노래』도 해양시의 한 형태를 보여준다. 이 외 「배」, 「등대」, 「발자욱」 등이 있고, 김동명(金東鳴)의 「해양송가(海洋頌歌)」도 있다. 1930년대의 정지용(鄭芝溶)의 「바다1,2」, 「갈매기」, 「갑판우」, 「다시 해협」, 「해협」, 신석정의 「파도」, 「슬픈 구두」 등은 서정적 바다를 제재로 한 시이고, 김기림(金起林)의 「기상도」 등은 모더니즘의 눈으로 본 해양시의 경우이다. 1940년대 서정주의 「바다」, 박두진의 「바다의 영가」, 1950년대 조병화의 「감해교실(監海敎室)」 등 그 수가 많아졌다.
전남 시인들의 작품에 한국시사의 한 획을 그을 만한 시가 많다. 현대 전남 해양시의 최초로는 강진 출신 김영랑의 「바다로 가자」가 대표적이다.
바다로 가자 큰 바다로 가자
우리 인제 큰 하늘과 넓은 바다를 마음대로 가졌노라
하늘이 바다요 바다가 하늘이라
바다 하늘 모두 다 가졌노라
옳다 그리하여 가슴이 뻑은치야
우리 모두 다 가잤구나 큰 바다로 가잤구나
- 김영랑 「바다로 가자」 (1연)
이 시는 바다에 대하여 진취성과 당당함의 포부를 가질 것을 면려하고 있다. “가슴이 뻑은치야”, “우리는 바다 없이 살았지야 숨막히고 살았지야” 라는 전남의 고유한 언어투를 사용하고 있으며, 바다를 잊고 살아온 사람들에게 바다로 나아갈 것을 권장하는 화자를 직접 내세운 시이다. 이 외에도 바다 개펄을 중심 소재로 쓴 「뻘은 가슴을 훤히 벗고」, 바다 위를 비치는 달빛을 노래한 「황홀한 달빛」 등이 있다.
김영랑과 함께 시문학파를 형성한 광산 출신의 박용철(朴龍喆)의 시에서 바다와 관련된 작품을 들면, 배를 타고 떠나는 이를 못 잊는 마음으로 노래한 「떠나가는 배」도 있다.
전남의 바다를 소재로 해양시 창작을 본격적으로 시도한 시인과 작품을 다음에 소개한다. 필자는 앞서 제시한 기준인 전남 출신 및 전남 생활권자 시인들이 창작한 작품 가운데서 바다를 소재로 발표된 시들을 찾아보았다.
물론 이 작업에는 본의 아니게 빠뜨린 경우도 있고, 조사 중에 연구자의 안목을 벗어난 작품도 많을 것이다. 또 표집된 자료가 빈약하여 이를 객관적으로 인정하기에는 억지와 무리가 따른다는 것도 배제하지는 못한다.
전남 지역의 시인군을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바다를 소재·주제로 한 시집을 발간할 정도로 해양시 창작에 적극적인 시인과, 전자에 비하여 다소 소극적이기는 하지만 시집, 동인지, 문학지 등의 지면을 통해 해양시 몇 편을 창작 발표한 시인으로 나눌 수 있다. 여기서는 전자를 중심으로 시인과 시집을 소개하고 동인지나 문예지 등에 부분적으로 발표한 것에 대해 약술한다.14)
1.1. 김해성(金海星)의 『남해(南海)의 북소리』
나주 공산 출신의 김해성은 장편 서사시집 『남해의 북소리』(韓國詩社,1991)는 이순신 장군과 함께 한 7년 해전사를 생동감 있게 그려내고 있다. 한때 이순신은 원균(元均)의 시기를 사서 고초를 당하기도 하나, 재임용되어 명랑(鳴梁,울돌목)에서 적선 133척을 쳐부수는 승전고를 울린다.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한 대역사가 전남의 바다에서 일어났다는 것은, 우리의 생존 전략이 바로 그 바다를 통해 구체화되었음을 알게 해 준다.
역시 『남해의 북소리』와 비슷한 작품이 또 있다. 주인공을 같은 충무공으로 하여 그의 해전사(海戰史)를 쓴 김용호(金容浩)의 『남해찬가(南海讚歌)』(인간사,1957)가 그것이다. 이 『남해찬가』도 장군의 위업을 서사시로 꾸민 것이다. 이 시집은 1930년대 한국 최초의 본격 장편 해양서사시로 볼 수 있다. 총 17장으로 해전에서 용전, 전승 장면과 갖은 모해를 견디고 백의종군하며, 장렬하게 전사하는 내용이 서술되어 있다. 시적 문체는 장엄한 가락, 대담한 생략과 변화를 섞어 독자의 긴박감을 재촉한다.
이 두 해양 서사시집은 당시 해양 경비에 소홀한 실정에도 불구하고, 바다의 자연 환경을 전략적으로 이용, 큰 승리를 거둔 해전 상황을 극적 효과를 살려 그려 냈다는 점에서 문단사에 남는다.
둥, 둥, 둥
둥둥, 둥둥둥, 두웅두웅
남해의 북소리
거북선 거느리고
승전고 울려, 울려
호령하는 소리
저 수많은 선을 돌아, 돌아서
이 남해 바닷 물결 넘어, 넘어서
충무공의 호령소리 들려라.
(중략)
남해는 말이 없다.
오늘은 조용히 잔잔한 파도가 인다.
안으로 깎여온 해변암(海邊岩)의 아픔인데
어디선가
파도 소리 속에
아스므라히 들려 오는 소리
4백년 세월 감겨간 임진란 때
목숨 바쳐 싸워온 7년 전쟁
바닷바람 소리
파도 겹쳐 돌아오는 소리
그 속에 잠들어 있는 승전의 북 소리.
- 김해성 『남해의 북소리』 중에서
본격 해양시집 『남해의 북소리』는 그 규모와 내용면에서 지금까지 서사시와는 다른 점이 많다. 위에 인용한 것처럼 이 시는 남해 파도를 북 소리와 함께 해전의 비장미와 웅장미를 함께 느끼게 한다. 전남 출신 시인이 전남 지역의 바다를 무대로 한 최초의 해양 장편 서사시라는데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1.2. 이성관(李性寬)의 『우리들 가슴에도 섬 하나씩 있다』
이성관 시인도 주로 바다와 섬을 소재로 쓰고 있다. 섬의 모습을 묘사하기도 하고 주민의 소박한 바다 생할을 포근한 서정으로 담아내기도 한다. 그는 『우리들 가슴에도 섬 하나씩 있다』(외길사,1992)라는 섬 소재의 시집 외에, 「무인도」(《시와시론》,1983.3), 「섬1,2,3」(전남출신122인대표시선,1992.10), 「바다는」(《전남문학》제23집,1992.12) 등의 시와 「섬마을의 봄」(광주전남아동문학 제5호,1994.10)이란 동시, 그리고 시조 「바위섬」(한국시조시인협회연간집,1993.8) 등, 주로 섬에 대한 시와 시조, 동시 장르에 걸친 연작물을 쓰고 있다.
1.3. 최정웅(崔政雄)의 『갈매기의 노래』 외 2권
전남의 대표적인 해양 시인이라고 할 만큼 그의 시에는 대부분 바다와 섬과 갈매기 등이 등장한다. 일하는 힘찬 어부의 어로 현장, 섬의 자연 환경은 물론, 섬 주민들 생활의 애환이 꼼꼼히 담겨 있다. 그의 시집과 동시집은 한결같이 바다와 어촌을 주제로 한 작품들로 차 있다. 그의 시집에는 ‘바다를 소재로 한 시집’이라는 최초의 해양시집임을 표방하고 내놓는 등 부제를 달고 있을 만큼 바다 소재를 즐겨 다룬다. 『갈매기의 노래』(한림,1995)는 대표 해양시집이며, 여기에는 「겨울 낙월도(落月島)」, 「우이도 꽃게잡이」, 「아버지의 바다」 등 대표작이 있고, 이 외에 「섬에서」(《전남문단》 제7집,1979.12), 「바다 안개를 헤치며」(《전남문단》 제8집,1981.1), 「새벽 바다」(《전남문단 》 제14집,1986.10) 등이 있다. 시집 『갈매기의 노래』에는 바다를 제재로 한 시가, 총 111편 중 70여 편이 들어 있다. 그는 해양동시도 즐겨 쓰는데, 동시집 『어부의 노래』(아동문예사,1981) 외에 대표작으로 「슬픈 바위」(《전남문단》 제10집,1983.1), 「아빠와 함께 그물을 당기면」(《광주전남아동문학》 제5호,1994.10), 「흑산도 갈매기」, 「다도해의 아침」(《전남공무원문학》 제2집,1994.12) 등이 있다. 더불어 해양시조도 상당수 발표했는데, 「낙월도」(《전남문단》 제13집,1986.1), 「노어부」, 「섬아이」, 「바다의 마음」(《민족시》 제2호,1978.12) 등이 있다.
그의 바다 시에서는, 갈매기나 어부의 어로 묘사를 통해 삶의 건강함과 신선함을 보여 주고 있으며,15) 이를 기반으로 바다의 서정성과 서사성을 함께 연역해 내고 있다. 다음과 같은 말에서 ‘해양시인’이라는 칭호를 붙인다. 바다와 섬에 대한 애착과 힘을 작품을 통해 느낄 수 있게 하는 까닭이다.16)
푸른 바다와 그림 같은 섬들은 전남의 보고이다. 그러나 섬 사람들의 생활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낭만적인 것이 아니다. 태풍이라도 몰아오면 섬 생활은 지옥을 연상시킨다. 해난 사고로 숨지는 섬 사람들과 어부들의 슬픈 얘기를 수없이 보고 들었다.
바다는 내게 있어서 거대한 소재이다.
나의 시 소재는 대부분 바다와 어부들이다. 어부들이 푸른 바다에서 고기를 끌어 당기듯이 나는 바다에서 푸른 꿈을 끌어 당기리라.
앞으로도 섬 사람들과 어부들에 대한 뜨거운 애정을 가지고 그들의 슬픔을 어루만지며 맑고 아름다운 시를 쓰겠다.
- 최정웅, 바다를 소재로 한 제3시집 『갈매기의 노래』 자서 중에서
1.4. 박노경(朴魯慶)의 『남쪽 바다 메아리』외 1권
박노경 시인은 시조 장르에서 유일하게 해양시조를 많이 창작하고 있어서 주목된다. 시조집 『섬마을』(精文社,1976), 『남쪽 바다의 메아리』(三南敎育文化社,社,1991) 등 두 권의 섬과 바다에 관한 시조집을 발간한 바 있다.
1.5. 서오근(徐五根)의 『외딴 작은섬』
무안에 사는 서오근 시인은 동시 장르에서 해양동시를 창작하는 시인이다. 동시집 『외딴 작은섬』(할렐루야,1989)에서 보여 주고 있듯이, 섬 아이들에 대한 때묻지 않은 순박함과, 바다와 아우르며 지내는 그들의 자유분방함이 시인 특유의 간명하고도 따뜻한 서정투 기법으로 엮어내고 있다. 이 밖에도 그는 해양시 「비와 바다」(《무안문학》 제2호,1989.12), 「아기게」(《광주문학 제9호,1995.10) 등을 발표하기도 했다.
1.6. 최일환(崔日煥)의 『갯마을 노래』 외 2권
바닷가 어촌 모습의 서정적 풍경과 그 속에 사는 어민들의 서민적 생활을 노래한 『갯마을 노래』(시문학사,1978)가 있다. 특히 바다 동시와 시를 함께 써서 ‘섬마을 시인’이라는 별칭을 얻고 있다. 그만큼 그의 시에는 섬 냄새, 갯내음이 짙다. 그의 동시집 『아침은 바다에서』(아동문예사,1976)와 시집 『남쪽 섬들』(시문학사,1978)은 바로 그에게 이런 이름 붙임의 계기를 부여한 시집이다. 고도, 파도와 싸우면서도 인정 넘치는 갯마을을 무대로 하여 쓰고 있다. 이외 「홍도에서」(《전남문단》 제9집,1982.1) 등 많은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여름 한 철
보이려고
갯바람이
밤낮으로
깎아낸 바위섬
바닷물이
날마다 다시
다듬고
지면서
해님은
한 번씩 꼭
색칠해 주고
물 속의 제 모습
너무 고와서
바위섬들
흥에 겨워
흔들거린다.
- 최일환 「홍도에서」 전문
1.7. 장사도(張四道)의 『파도(波濤)』
장사도 시인은 시집 『파도』(세종출판사,1984)를 내면서 바다와 친근한 연작시를 발표하고 있고, 바다에 관한 체험 내용을 융합, 제시하는 특징을 보인다.
1.8. 박형철(朴炯喆)의 『보길도(甫吉島) 아침』
박형철 시인은 보길도 바다를 중심으로 쓴 작품들을 한데 묶어 『보길도의 아침』(朝日,1990)이라는 동시집을 발간했다. 여기서 그는 섬과 바다에 대한 서정성을 간절히 표현하고 있다. 이 시집 외에도 「보길도의 봄」(《전남문단》 제13집,1986.1), 「섬마을2」(《무안문학》 제2호,1989.12), 「섬」(《무안문학》 제3호,1990.10), 「보길도A」, 「남녘의 봄」, 「해변의 아침」(《詩流》제28집,1991.11), 「섬마을」(무안문학 제8호,1995.11) 등, 주로 보길도 섬에 관한 연작을 발표하고 있다.
위에 개괄적으로 소개한 해양시집을 발간한 시인들 외에도, 개인 시집, 문학지, 동인지 등에 발표한 해양시들은 매우 많다.
Ⅴ. 나오는 말
우리나라 사람들은 지리적으로 삼면이 바다여서 해양 진출이 용이했다. 특정 시대 해양 영웅이 활약하였는데, 장보고(張保皐), 김방경(金方慶), 이순신 등의 인물이 그렇다. 그러나 대부분 일반인들에게 있어서 바다는 죽음을 의식하는 무서운 대상으로 인식되었다. 가령 소설 「배따라기」에서, “우리는 구태여 선인이 되어 타고 다니는 것은 칠성판이요, 먹고 다니는 것은 사자밥이라, 입고 다니는 것은 매장포로다.” 라고 노래한 것만 봐도 그렇다. 이러한 사실들이 앞서 말한 해양 진출을 억제한 사대주의 이데올로기 즉 중국과 일본의 식민 통치 정책, 그리고 이를 추종한 친중․친일파들에 의해서 고착되었고, 또 그에 의해 민중의 해양관은 왜곡된 것이다. 그래서 외견상 우리 민족은 바다를 멀리한 것처럼 보인다. 그 잘못된 인식은 우리 민족성을 소극주의로 몰기 위한 통치권자들의 합리화 방책에서 비롯되곤 하였다. 삼국시대부터 왜구에게 수없이 시달려왔고, 결국 그들에 의해 두 번씩이나 나라가 초토화 되는 곤욕을 겪게 되면서, 식자들 사이에 이러한 폄하된 편견은 더욱 심해졌다. 고착된 식민사관과 함께, 이른바 ‘해양기피증’은 우리 소극성을 강조하는 근거로 지금도 남아 있다.17)
서구 해양문학이 그것을 세련시키는 데는 일익을 했겠지만, 구체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아니다. 사실상 그것은 고전문학 시대부터 우리 민족의 내면에 체질화되어 있던 바다에 대한 집단 「어로요」나 구비 전설과 설화, 민담이 투사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또 현대에 올수록 많이 발표되고 있는 해양 시, 동시, 시조, 수필, 동화, 소설, 희곡들은 과거 어로요, 섬 민요, 고기잡이요, 표해가, 해양시조, 표해록, 표해설화, 섬 전설 등, 구비문학에 힘입은 바 크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해양문학은 바다의 영원성과 생명성에 근저한 끈질긴 생명 추구 주제로 확산되고 있음을 이 글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다.
바다에 대한 정신적 노력이라 할 문학적 표현도, 현대에 올수록 다른 소재에 비해 소극적인 실정이다. 그러나 최근 환경 보존이라는 운동과 더불어 생명의 연원을 자연, 특히 바다에서 찾으려는 움직임이 있어 이 방면의 문학 작품을 의도적으로 창작하는 전남 지역의 작가나 시인들이 많은 것은 퍽 고무적이다.
더욱이 완도에서 청해진 장보고 대사의 위업을 기리는 행사 및 기리기 노래18) 를 하고 있으며, 우수영의 강강술래, 진도의 씻김굿, 여수의 진남제 등, 청소년과 군민의 문화 행사도 바다에 애정을 갖게 하는 좋은 기획들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 바다를 오염으로부터 지켜야 하고, 둘째 바다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작업으로 해양문학 작품을 많이 생산해 내야 할 일이다. 그리고 셋째 이 분야의 전문 작품집을 발간 보급하여 자라나는 세대는 물론, 국민들에게 읽도록 기관 차원의 지원 정책이 필요하다. 이러한 모든 활동은 결국 바다를 소중하게 여기는 생활 태도와 그 정신력을 기르자는 것이다. 더불어 완도 문인들은 해양 관련 문화소유를 자랑스럽게 알아 이의 자료를 다투어 발굴하고, 또 그것을 바탕으로 차원 높은 해양문학을 창작 발전시켜 나가는데 한 몫을 다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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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다의 날’은, 바다를 둘러싼 국제 환경의 급변 속에서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하다는 인식에서, 1996년 3월 제정되었다. 여기에는 1994년 11월 ‘UN해양법’ 협약이 발효되어 바다 분할 경쟁이 시작된 것이 한 촉매제로 작용했다. 우리나라가 ‘바다의 날’을 5월 31일로 정한 것은, 신라 시대 장보고가 청해진을 설치한 때인 828년 5월을 염두에 두고 그 달의 마지막 날로 한 것이다. 아울러 5월 31일이 속한 1주간은 ‘바다 주간’으로 설정하여 다채로운 행사를 전개한다. 일본은 7월 20일을 ‘바다의 날’이 법정 공휴일로 정해져 있고, 미국도 1995년에 ‘바다의 날’을 정하여 바다 관련 행사를 전개하고 있다.(조선일보, ‘바다 주간 특집’, 1996. 5. 28. 21면 참조)
2) 허미자, 『한국 시문학 연구』, 성신여자대학교출판부, 1982. p.127 참조.
3) 윤치부, 『한국 해양문학 연구』, 학문사, 1994. pp.163~164
4) N.Frye, 김상일 역, 『신화문학론』, 을유문화사, 1971. p.51
5) 최영호, 「한국문학 속에서 해양문학이 갖는 위상」 『해양문학을 찾아서』(해양문학총서1), 집문당, 1994, p.12.
6) 장덕순, 『한국 고전문학의 이해』, 일지사, 1974. pp.12~15.
7) 어로요에서 ‘단련체, 연장체’라고 쓰는 용어는 김대행이 『한국시가 구조 연구』(삼영사, 1976)에서 쓴 술어를 그대로 쓴 것으로, 강남주의 「남해 도서지방의 어로요 연구」(해양문학총서1 총론편)에서 재인용하였다.
8) 강남주, 「남해 도서지방의 어로요 연구」 『해양문학을 찾아서』(해양문학총서1), 집문당, 1994. p.231~232 참조.
10) 조선왕조의 지배이념과 행동윤리가 성리학에 근거한 것이라 할 때 그것은 바다의 속성과는 상반되는 세계일 터이다. 성리학이 형이상학적인 자연의 탐색과 아울러 엄정한 생활의 윤리와 규율을 강요했다면, 바다와 같이 반규율적이며, 모험과 도전이 충일된 세계가 예(禮)와 중용(中庸)을 본질로 하는 유학의 정신에 조화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또한 바다가 모든 생명체의 발상지라할 때, 바다가 갖는 생식기능과 생리 현상은 그 여성 상징의 구체적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그 신화적 의미에서 여성을 상징하는 바다는 유교적 금욕주의와 상치되는 세계이다. 한국의 개화란 결국 서구문화 수입을 통한 서구화를 의미하는 것이었고, 또한 서구의 문화가 매우 힘있고 역동적인 존재로 당대 사회에 걸맞는 대상으로 육당과 가사 창작자에게 이해된 것이 그들이 바다에 관심을 쏟은 또 다른 이유가 될 것이다.
(강현국, 「바다 이미지’를 통해본 한국시의 상상력 연구 -일제 시대를 중심으로」 『해양문학을 찾아서』, 집문당, 1994, pp.246~250 참조.)
11) 이방익의 「표해가」는 새 자료로서, 잡지 〈청춘〉 창간호에 전모를 보였을 뿐 별 논의의 대상이 되지 못하다, 강진섭에 의해 연구된 바 있다. 이방익은 연암 박지원의 『서이방익사』에 소개되어 있다(강진섭, 「이방익의 ‘표해가’에 대하여」 『해양문학을 찾아서』(해양문학총서1), 1994. p.142-155 참조).
12) 윤귀섭, 「가사문학에 나타난 해양과 도서」, 『해양문학을 찾아서』(해양문학총서1), 집문당, 1994. p.193~194 참조.
13) 「가난배」, 「우리의 운동장」, 「바다위의 용소년(勇少年)」, 「무제」, 「막은 물」, 「삼면환해국(三面環海國)」 등이 바다를 소재로 한 시이다.
14) 그러나 작품수준과 질적 면에서는 다소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점이 남는다. 바다를 소재로 한 시를 몇 편만 발표하였더라도 작품 수준이 좋은 경우도 있고, 다작으로 해양시집을 발간한 실적이 있지만 작품의 질은 떨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15) 광주문인협회, 『광주문학사』, 한림, 1994. pp.202~203.
16) 최정웅, 『갈매기의 노래』(바다를 소재로 한 제3시집), 한림, 1994. p.2.
17) 조규익, 「고전문학과 바다」, 『해양문학을 찾아서』(해양문학총서1), 집문당, 1994. p.56.
18) 완도군은 군민들에게 장보고 대사의 진취적 기상과 위업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장보고 노래 가사를 전국에서 공모, 이를 채택하여 부르게 하고 있다. 노래에는 당시 당나라 노예로 붙잡혀간 동포들의 인권 사상과 복리 증진에 앞장서고 동북아 해상권을 장악하여 세계 해양개척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장보고의 위업을 소개하는 한편, 그의 얼을 이어받아 완도군의 영광과 번영을 약속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노래는 이현규 작사 「그리운 장보고」와 김의헌 작사 「우리 장보고」 두 곡이다. 「그리운 장보고」는 민속악기인 장고와 가야금 반주를 도입 레게와 트로트풍을 혼합하고 KBS 관현악단 연주를 가미한 곡으로 가수 태진아가 불렀다. 그리고 「우리 장보고」는 젊은 층을 대상으로 한 활달하고 경쾌한 디스코풍 노래로 가수 이광조가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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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수고 하셨습니다 너무 고생하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