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년 스승의 날을 맞이하면서 전국의 각 교육청에서 추천한 일선 교사들중에 우수한 교사를 뽑아 교육관련 훈장을 시상한다고 합니다.
이번 스승의 날에 옥조근정훈장을 수상하게 된 홍순규 충청북도 교육청 학교정책과장의 인터뷰기사가 일간지에 실린 것을 보았습니다.
약 36년간 충청북도의 일선 교육기관에서 열심히 교사직을 잘 감당했다는 평가와 함께 이번 스승의 날에 훈장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분은 지난 1975년 3월 1일 청원 현도중에서 교편을 잡은 이후 청주고와 사대부고, 진천고 등에서 진학지도를 주로 담당하며 학생들의 대학진학을 위해 학습지도는 물론 학생의 적성과 능력에 적합한 진로지도를 위해 노력했다고 합니다. 특히 1990년에는 자체적으로 대학진학 분석 프로그램을 개발해 더욱 많은 학생들이 희망하는 대학과 학과에 진학할 수 있는 데이터를 구축하는 등 선진적인 사고로 진학지도에 임해 남다른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 같은 진학지도 성과가 높게 평가된 홍 과장은 1997년 9월 1일부터 전문직으로 교육청 근무를 하면서도 장학지도를 주 업무로 맡아 오고 있습니다. 2009년 3월 1일에 도교육청에 신설된 학교정책과의 과장으로 부임하면서 그는 개정교육과정의 현장 안착과 교과교실제 확산, 수준별 이동수업의 활성화, 학교자율화의 지속적 추진, 다문화·탈북학생 교육지원, 사교육 없는 학교 운영 등의 업무를 총 관장하고 있습니다.
인터뷰에서 이 분은 이분 자신이 이렇게 열심히 학교 교육발전을 위해 부던히 노력하는 계기가 되는데에 크게 역할을 한 사람을 회고하고 있습니다.
홍순규 선생님은 스승의 날을 맞아 큰 상을 받게 되었지만 자신에게 잊지 못할 선생님을 늘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인터뷰 마지막에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진천 삼수초에 다닐 때 김병균 선생님은 우리에게 늘 ‘자신을 잃지 말아라’라고 강조했습니다. 이 땅의 모든 교원들이 누군가에게 영원히 기억될 수 있는 스승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선생님의 노고에 감사하며 우리를 위해 부던히 노력하는 선생님의 사랑에 감사하는 교사주일을 지키고 있습니다.
교사주일은 학교의 교육뿐 아니라 주일학교와 영적훈련의 교사로 수고하시는 분에 대한 감사를 표현하는 주일입니다.
홍순규 선생님에게 큰 영향력을 끼치며 자랑스러운 한 명의 선생님을 키워낸 김병균선생님의 삶은 얼마나 복된 삶이고 자신의 직업에 대해 얼마나 자랑스러웠을까요?
이것이야말로 교사로서의 자부심이며 직업에 대한 기쁨의 결과가 아니겠습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 선생님의 역할이 우리의 인생에 얼마나 중요한지 살펴보고 우리도 인생에 있어 참 좋은 인생의 선배요 스승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하며 믿음의 후배들을 잘 키워낼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잠언의 저자인 솔로몬은 인생을 돌이켜보며 잘못된 길을 걷게된 가장 큰 원인이 선생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살았던 것이라고 회고하였습니다. 인생의 많은 경험속에서 솔로몬은 지혜의 왕으로 이름을 올렸던 사람입니다.
그런 솔로몬이기에 인생의 말에 그가 인생의 모든 경험을 기록한 잠언과 전도서의 지침들이야말로 참된 인생의 도움이 되는 명언들일 것입니다.
우리는 인생에 있어 어떤 스승이 되어야 하고 어떤 학생이 되어야 할까요?
참 좋은 선생님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첫째로 훈계를 잘 해야 합니다.
12절 말씀입니다.
“말하기를 내가 어찌하여 훈계를 싫어하며 내 마음이 꾸지람을 가벼이 여기고”
솔로몬은 소시적에 자신이 자기 맘대로 살았던 삶의 모습의 이면에 있는 심리적 상태는 바로 선생님의 훈계와 꾸지람을 가볍게 여겼던 상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솔로몬뿐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훈계와 꾸지람이 필요성과 소중함을 깨닫기까지 시간이 대단히 오래 걸립니다. 사실 이 사실을 깨달을 쯤이면 자신에게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훈계와 꾸지람을 주셨던 분들이 모두 사라진 다음인 경우가 많습니다.
어릴 적 부모님의 꾸지람과 훈계가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라고 생각할 쯤이면 부모님께서 연로하셔서 전혀 움직이지 못하거나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고 저 세상에 계신 경우가 많습니다.
어릴 때 선생님의 혹독했던 훈련이 바로 나를 사랑해서 그런 훈련을 시켰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선생님을 찾기에 힘이든 상태가 되어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훈계와 꾸지람속에서 우리의 잘못을 깨닫고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바꾸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요즘은 훈계와 꾸지람을 받고도 오히려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바꾸기보다 오히려 훈계와 꾸지람을 하는 선생님에게 대들며 선생님을 가르치려고 하는 학교의 모습을 언론에서 접하게 됩니다.
지난달 충남 천안에 있는 어느 고등학교에서 젊은 이모 여선생님은 수업 시간에 문자메시지를 보낸 학생을 적발해 벌점 2점을 부여했다가 학생으로부터 “선생님 다시 한 번 생각하시죠.” 라는 말을 듣고 주의만 주었다고 합니다. 이 교사는 “그 학생의 휴대전화를 1주일간 압수 조치 할 수 있었지만, 학생들의 눈치를 보느라 차마 그러지 못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요즘은 “학생들이 교원능력개발평가제를 통해 선생님을 평가할 수 있다는 점을 알고 교사들에게 종종 협박 아닌 협박을 하기도 한다”고 말했습니다. 서울 관악구의 한 초등학교 김모 선생님도 “교원평가제가 마음에 걸려 학생들이 간식이나 준비물을 사 달라고 요구하면 개인 비용으로라도 사 줄 수밖에 없는 형편”이라고 말했습니다. “학교장 평가의 잣대인 국가 수준 학업성취도평가에서 성적을 올리라는 학교장의 ‘엄명’으로 교사들이 받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라면서 “이 때문에 학생들에 대한 인성교육은 항상 뒷전”이라고 전했습니다. 경기 의정부의 한 중학교 교사는 “체벌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다 보니 학생들은 걸핏하면 ‘인권 침해’를 들어 교사에게 대들기 일쑤”라고 말했습니다.
사랑의 매는 고사하고 이제 말로 학생들을 타이르거나 잘못된 행동을 지적하는 것이 불가능한 학교 교육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선생님들은 그냥 조용히 지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며 잠자는 아이, 떠드는 아이, 딴 짓 하는 아이에 대해 별 간섭을 하지 않고 지낸다고 합니다.
이런 학교 교육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 시대는 진정한 사랑의 훈계와 사랑의 꾸지람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진정성을 가진 꾸지람과 진정성을 가진 훈계는 인간다운 인간을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진정성을 가진 꾸지람과 진정성을 가진 훈계를 듣는 학생이야말로 나중에 큰 인물이 될 사람이 될 것입니다.
잠언 13장 1절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의 훈계를 들으나 거만한 자는 꾸지람을 즐겨 듣지 아니하느니라”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일차적으로 우리의 자녀들의 선생님입니다. 그리고 우리 주위의 많은 사람들속에 그들에게 인간다운 삶을 가르쳐줄 선생님입니다. 무엇보다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에게 참 신앙의 모습을 보여줘야할 신앙의 선생님입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진정성을 가진 훈계와 꾸지람을 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는 인생에 있어 어떤 스승이 되어야 하고 어떤 학생이 되어야 할까요?
참 좋은 선생님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둘째로 바른 지식을 가르쳐줘야 합니다.
13절 말씀을 보십시오. 함께 읽겠습니다.
“내 선생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하며 나를 가르치는 이에게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였던고”
솔로몬은 훈계의 말외에도 항상 선생님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 말씀대로 살아야하는데 그렇게 살지 않았던 것에 후회를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선생님은 대체적으로 학생들보다 인생의 경험이 많은 분입니다. 또한 학교에서 선생님으로 수고하시는 분들은 그 학문분야에 있어 전문적인 교육을 받고 전문적인 학식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선생님들의 특징은 바로 그 분야의 전문가입니다.
선생님의 수업을 들으며 그 수업에 집중하게 될 때 우리는 그 학문에 대한 지식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자신의 아는 것을 학생들에게 가르쳐주고 학생들은 그 말씀을 잘 들으므로 선생님의 지식을 자기의 지식으로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요즘은 선생님의 말을 듣는 것을 거부하는 경우가 많을 뿐 아니라 아예 선생님이라는 존재에 대한 존경심이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지난 해 10월 지방의 어느 교사는 중3 수업 시간에 맨 뒷자리에서 소설을 읽는 학생을 나무라다가 학생에게 머리채를 잡혀 교실 밖으로 끌려 나갔다고 합니다. 그날 그 선생님은 다른 교사들이 몰려와 말릴 때까지 학생에게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을 들으며 폭행을 당했다고 합니다. 결국 그 학생은 전학을 갔지만 이 과정에서 학부모로부터 "교사가 지도를 잘못해 아이가 학교를 떠나게 됐으니 당신도 교사 못 할 것"이라는 협박까지 들었습니다. 이 선생님은 아직까지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고 수많은 학생이 보는 앞에서 당한 그날의 수치와 모욕의 상처를 씻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2010년 교권 회복 및 교직 상담 활동 실적'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발생한 교권 침해 사례는 모두 260건이었으며, 이 중 학생·학부모의 폭언·폭행·협박이 98건으로 전체의 37.7%를 차지했습니다. 특히 학생·학부모의 부당 행위는 2000년 초반에만 해도 연간 10건에 불과했지만, 해마다 수가 늘어 2007년에는 79건으로 급증했고 지난해는 무려 100건에 육박했다고 합니다.
학교 안전 사고 같은 교내 사고는 줄어드는 추세지만 학생과 학부모의 폭언·폭행으로 시작된 고발이나 손해배상 소송 같은 외부 갈등은 크게 늘어나는 실정이라고 합니다.
솔로몬은 선생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선생님의 지시대로 살아가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있습니다. 선생님과 친밀하고 선생님의 말씀을 잘 듣게 될 때 우리는 학업의 진보가 있을 수 있는 것을 종종 경험합니다.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중고등학교때 제가 존경하고 인간적인 관계가 잘된 선생님의 과목은 좋은 성적이 나왔지만 제의 마음가운데 존경하지 않고 함께 있는 것 자체가 싫은 선생님의 과목은 거의 바닥점수였습니다.
선생님을 잘 따르면 말도 잘 이해가 되었는데 선생님에 대한 불편한 마음이 있으면 쉽게 설명을 해주는 선생님의 설명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가 참 바른 지식가운데 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바른 지식을 가지고 좋은 관계를 갖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주위의 사람들과 서로 좋은 관계를 형성하고 올바른 것으로 그들에게 가르쳐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비록 선생님이란 호칭은 우리가 받을 수 없지만 항상 바른 가치관과 좋은 생각으로 사람들에게 선생님같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는 인생에 있어 어떤 스승이 되어야 하고 어떤 학생이 되어야 할까요?
참 좋은 선생님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셋째로 영적인 부분에까지 만져줘야 합니다.
14절 말씀을 보십시오.
“많은 무리들이 모인 중에서 큰 악에 빠지게 되었노라 하게 될까 염려하노라”
솔로몬의 후회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것은 올바른 훈계와 꾸지람속에서 자기가 바르게 자라지 못해서 혹시나 죄를 짓고 살아가지나 않을까라는 걱정이었습니다.
결국... 모든 교육의 목적은 인간성의 회복입니다.
인간답게 살아가는 것이 이 세상의 교육의 핵심입니다.
한국 교원단체 총연합회는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교육의 본질 회복을 위한 선언문 ’을 발표하면서 선언문에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교육의 본질은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을 높이는 전인교육을 통해 건전한 시민을 양성하는 데 있다. 교육의 목적과 기능이 시류에 따라, 혹은 이념이나 권력의 취향에 따라 바뀌어서는 안 된다”
인간의 가치와 인간의 존엄성이 강조된 것이 세상의 교육이라면 이것보다 더 깊이 있는 신앙의 교육은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으로 서로에게 복된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의 모든 인간은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악에서 건져내어져야할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영적인 죄가 우리를 어떻게 만드는 지를 가르쳐주고 영적인 문제의 해결책을 가르쳐줘야할 영적 스승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영적 스승의 모범을 보여주기 위해 우리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셨습니다.
마태복음 9장 12절,13절을 찾아서 함께 읽어보시겠습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선생님이 필요한 사람들은 선생님이 아는 지식을 잘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서 왜 세리들과 죄인들을 찾아다니시며 그들과 함께 식사는 하냐고 질책을 했습니다.
왜 그런 질문을 했을까요? 바리새인들은 자기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 돈이 될만한 사람을 찾아다녔기 때문입니다.
선생으로서 자기에게 도움이 될 학생들만 찾아다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은 선생님이기 때문에 자기가 필요한 학생들을 찾아다녔습니다.
우리가 진정한 선생님이 되려면 학생의 입장에서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을 찾아다녀야 합니다. 우리가 선생님이 되려고 하면서 나에게 필요한 학생을 찾아다니는 것은 말도 안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영적으로 우둔하고 죄악에 빠져 허우적대는 학생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나이가 많든지 적든지 상관없이 영적으로 아직 죄악가운데 빠져나오지 못하는 영적 어린 아이들이 있습니다.
이미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모시고 천국인생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그런 의미에서 이미 선생의 역할을 감당해야할 사람들입니다.
우리를 찾는 학생들에게 다가가서 그들에게 영적 지식을 가르쳐주고 죄악에서 벗어나서 예수님안의 참 평안을 가르쳐주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교사자격증을 잘 사용하는 사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미 예수님안에 들어와서 영적인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은 모두 세상에서 죄악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사람을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 스승의 날에 세상을 향한 복된 스승으로 살아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