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증법적 유물론
머리말 : 시대의 정신적 정화
- 마르크스주의철학
우리의 사회주의조국은 10년동란을 종말지은 후 혼란상태를 바로잡으며 전인들의 위업을 계승하고 미래를 개척하는 중요한 역사적 시기에 처해있다. 우리는 사회주의적 현대화건설에서 고도의 물질적 문명을 건설하여야 할 뿐만 아니라 고도의 정신적 문명도 건설하여야 한다. 이 위대한 목표를 실현하는 과업은 이미 역사적으로 우리의 청년세대의 어깨에 놓여졌다.
사고하는 세대
병진년 청명날 천안문광장에서 영웅적 업적을 세운 청년세대에 대하여 사람들은 여러가지로 말하고 있으며 청년들 자신은 흔히 사고하는 세대라고 자랑하고 있다. 이 청년세대는 찬란한 5성붉은기 밑에서 태어나 동란 속에서 자라났다. 문화대혁명 기간에 임표 반혁명집단과 강청 반혁명집단은 당의 화신으로 자처하였다. 그자들은 마르크스-레닌주의, 모택동사상을 임의로 분할하고 뜯어고치면서 사회주의의 원칙을 자본주의적인 것이라고 하였으며 저들이 탈취한 그 부분의 무산계급독재의 기구를 이용하여 인민들을 탄압하였다. 냉혹한 현실과 스승, 부형들의 교시에 존재하는 첨예한 모순을 보고 청년들은 사고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현실생활은 사람들의 의지를 단련시켰으며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기도 하였다. 일부 청년들은 ≪속세를 간파하였다≫고 하며 맥을 버리고 있지만 더욱 많은 청년들은 중화를 진흥시키는 것을 자기의 책임으로 삼고 사회주의적 현대화건설에서 자기의 빛과 열을 뿜고 있다.
당중앙위원회 제11기 제3차 전원회의는 우리 당의 역사에서 심원한 의의를 가지는 위대한 전환점으로 된다. 새로운 시기에 있어서의 당의 노선과 방침, 정책은 우리 나라와 사회에 거대하고도 기꺼운 변화가 일어나게 하였다. 청년들은 여러가지 새로운 희망과 요구를 가지고 새로운 역사적 시기에 들어섰다. 오늘은 그들의 아름다운 염원이 실현될 가능성이 있다. 물론 현실생활은 장미꽃의 아름다운 색깔로 그려진 것이 아니기에 아직도 그리 완미하지는 못하다. 다년간에 걸쳐 형성된 좌적 오류의 영향이 매우 깊어 사람들의 사상을 속박하고 민주주의를 압제하는 일부 현상들이 의연히 존재하고 있으며 10년내란 속에서 자라난 그릇된 기풍이 아직도 무리 사회의 유기체를 엄중하게 침식하고 있으며 특권사상과 관료주의작풍이 아직도 완전히 극복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나라의 대문을 활짝 열고 국제적 내왕을 발전시키고 있는 데서 외부세계의 각종 소식과 여러가지 생활양식 및 사유방식이 따라 들어오게 되었는데 이러한 것들에 대하여도 청년들은 진일보 대비하고 사고하게된다. 여러 사람들은 가정의 일, 나라의 일, 세상의 일에 관심을 돌리고 있으며 인생의 보람과 의의를 적극적으로 탐구하고 있다. 사고해 볼만한 이 한토막의 역사에 대하여 청년들은 역사적으로 사고해보려 한다.
과감히 탐구하고 부지런히 사고하며 이상적인 미래를 추구하는 것은 청년들의 특점이며 우점이다. 그렇지만 사고는 우리 청년세대만 가지고 있는 특점인 것은 아니다. 사고를 거쳐 얻어낸 결론은 전혀 다를 수도 있으며 꼭 진리에 맞는 것이라고 할 수도 없다. 역사적으로 사고하자면 중국청년들이 반세기 남짓한 동안에 걸쳐 사고하여온 그 역사를 거울로 삼을 필요가 있다.
우리 청년세대의 할아버지세대는 자기들의 혈기와 정력이 한창 왕성하던 5·4운동 시기에 갖은 능욕을 다 받으며 고난 속에서 허덕이던 중화민족의 전도에 대해 참답게 사고해 보았던 것이다. 사고한 결과 적지 않은 민족의 영재들은 무산계급의 세계관을 접수하고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인도 하에 나라와 인민을 구원하는 길로 나아갔다. 그런데 신문화운동에서 한때 이름을 날리던 호적(1891∼1962년)이 나아간 길은 다른 한 갈래의 길이었다. 사고하자면 이러저러한 철학적 사고방법을 운용하여야 한다. 당시의 중국청년들이 마르크스, 레닌, 스탈린에게 끌려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호적은 ≪나젊은 벗들은 자기 몸을 보호하는 기능을 좀 배워야 하며 남의 꾀임수에 넘어가지 않는 사람으로 되도록 힘써야 한다≫고 하였으며 ≪남의 꾀임수에 넘어가지 않는 방법을 배워주≫려 하였다. 그가 나젊은 벗들에게 팔아먹은 것은 바로 그가 제국주의시기의 미국에서 사들여온 시정배철학, 즉 실용주의였다. 그는 조그마한 개량을 주장하면서 ≪주의를 적게 운운하고, 문제를 많이 연구하라≫고 하였으며 마르크스-레닌주의로 나라의 운명을 관찰하는 것을 반대하고 혁명을 반대하였다. 그러나 역사의 발전은 호적의 의사에 의하여 좌우되지 않았다. 역사의 발전은 철같은 사실로 진리는 마르크스-레닌주의길로 나아가는 청년들쪽에 있다는 것, 자키의 운명을 장개석 왕조와 한데 긴밀히 연결시킨 호적은 절망 속에 흐느껴우는 가련한 인간으로 되었다는 것을 똑똑히 판명하였다.
소설 ≪청춘의 노래≫에서 묘사한 청년세대는 대체로 지금의 청년세대의 아버지뻘에 해당된다. ≪넓고 넓은 화북땅에 책상 하나 편안히 놓고 공부할 곳이 없는≫ 조건에서 그들은 중화민족을 멸망의 위험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하여 항일구국의 진리를 사고하고 탐구하였다. 그들 가운데는 당이 인도하는 혁명의 길로 나아간 임도정과 같은 청년이 있었는가 하면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제쳐놓고 호적선생의 뒤꽁무니를 바싹 따르는 여영택과 같은 인물도 있었다. 역사는 이런 두 가지 선택의 옳고 그름에 대하여도 마찬가지로 엄정하게 판명하였다.
우리의 청년세대들이 사고하고 있는 문제는 그들의 할아버지세대나 아버지세대들이 청년시대에 사고하고 있던 문제들과는 다르다. 사회주의 조국의 전도, 제국주의와 패권주의의 동향, 인권과 민주주의의 의의, 개인의 사업과 생활, 과학기술혁명의 성과, 미래세계의 전망 등은 다 우리 청년들이 흥미를 가지는 문제들이다. 선배들과 서로 다른 역사적 단계에 처하여 있는 우리들은 사고하는 문제들도 좀 다르다. 그렇지만 각이한 세계관과 각이한 사유방법은 각이한 결론을 도출하여 사람들을 각이한 인생의 길로 이끌게 된다는 이 점 만은 공통한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문제를 사고할 때에 정확한 세계관, 정확한 사상방법, 정확한 철학을 지침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마르크스는 ≪진정한 철학은 모두 자기 시대의 정신적 정화이다. 인민의 가장 정교하고 가장 고귀하고 그야말로 눈에 보이지 않는 정수는 모두 철학사상속에 집중되어 있다.≫(≪쾰른 신문≫ 제179호의 사설, ≪마르크스 엥겔스 선집≫, 한문판, 제1권, 121쪽, 120쪽)라고 말하였다. 마르크스주의철학은 바로 우리의 시대적 정신의 정화이며 유일한 과학적 세계관과 과학적 방법론이다.
세계관과 철학
사람들은 누구나 다 이러저러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그 누구를 막론하고 이 세상에서 살고 있는 이상 어쨌든 주위의 사람이나 일들과 접촉하게 되며 실천을 통하여 그리고 여러 면의 사상영향과 사회영향을 받아 점차 여러가지 사물을 인식하고 여러가지 관점을 형성하여 자기들의 행동을 지도하게 된다. 예를 들면 사람들이 자연, 사회, 국가, 인생, 도덕, 연애, 혼인, 고락, 미추, 생사에 대한 견해를 가지게 되면 그것은 바로 그들에게 자연관, 사회관, 국가관, 인생관, 도덕관, 연애관, 혼인관, 고락관, 심미관, 생사관 등이 섰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것은 모두 세계의 어느 한 측면의 사물이나 문제에 대한 견해인 것이다. 우리들이 더 자세히 탐구하여 본다면 사람들의 이러한 관점들 가운데서도 여러가지 사물에 대한 사람들의 견해와 행동을 좌우하는, 세상사물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견해, 모든 것에 관통되면서 지배적 역할을 하는 가장 기본적인 관점이 형성되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늘 말하는 세계관이다.
예를 들어 설명해 보자.
70여세가 되는 할머니 한 분이 눈보라를 무릅쓰고 해발 1,000여미터에 달하는 높은 산에 올라가 앓고 있는 작은 손자에게 복을 내려주기 바라며 80여세가 되는 자기 영감이 백년장수하도록 하여주기 바란다고 신명에게 빌었다고 한다. 산에서 내려올 때 그 할머니는 돈 100원을 꺼내놓으며 이 돈으로 ≪사원을 세워 신상을 모셔달라≫고 재삼 부탁하였다고 한다. 그러면 이 할머니는 어찌하여 그처럼 많은 나이에 눈보라를 무릅쓰고 높은 산꼭대기까지 올라가게 되었는가? 그것은 그가 마음속으로 신명이 자기 집식구들의 운명을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중국공산당의 우수한 당원 방지민열사는 적의 감옥에서 ≪사랑스러운 중국≫이란 책을 썼다. 거기에는 이런 말이 있다.
≪계급과 민족의 해방을 위하여, 당사업의 성공을 위하여 나는 초라하고 습기찬 오막살이에서 살망정 화려한 고충건물을 탐내지 않으며 잘 넘어가지 않는 옥수수떡이나 맛없는 채소뿌리를 먹을망정 맛좋은 서양요리를 탐내지 않으며 개나 돼지우리 같은 곳에서 잘망정 푹신푹신한 스프링침대를 탐내지 않는다.…≫
방지민열사는 어찌하여 이러한 고락관이 있게 되었는가? 그것은 그가 공산주의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알 수 있는 바 세계관은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데 다만 그것이 의식적인 것인가 아니면 무의식적인 것인가 하는 구별이 있을 따름이다. 높은 산에 올라갔던 그 할머니는 세계관이란 말을 들어 본적도 없을 수 있으며 자기가 그 어떤 세계관의 지배를 받고있다는 것도 의식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방지민 열사는 의식적인 공산주의 전사이다. 그가 써놓은 비장한 글들과 그가 나타낸 영용불굴한 행동은 그의 공산주의적 세계관의 의식적인 구현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다 세계관을 가지고 있으며 누구나 다 그 어떤 세계관의 제약을 받는 이상 문제는 세계관의 필요여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세계관이 필요되는가 하는데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세계관이 다름에 따라 사상면모와 행위표현에도 커다란 차이가 있게 된다. 이는 정확한 세계관을 확립하는 것이 우리의 인생에 대하여 얼마나 중요한 의의가 있는가 하는 것을 보여준다! 정확한 세계관을 확립하고 또 그것을 의식적으로 운용하여 자기의 행동을 지도하자면 철학을 잘 배워야 한다.
철학이란 이 단어는 고대희랍어에서 온 것이다. 이것은 사랑과 지혜라는 두 개의 단어로 구성되었는데 ≪지혜를 사랑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그 글자의 뜻을 해석한 것이다. 그렇다면 모든 철학이다 사람들에 게 지혜를 가져다 줄 수 있는가? 물론 그럴 수 없다. 오직 정확한 철학사상만이 사람들에게 지혜를 가져다 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철학의 과학적 함의는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니다. 철학이란 바로 체계화하고 이론화한 세계관이다.
철학과 종교는 같지 않다. 종교도 일종 세계관으로서 세계의 본질, 본원에 대하여 자기의 견해를 제기하고 세계는 초자연적인 힘에 의하여 지배되며 신에 의하여 창조되었다고 인정한다. 그러나 종교는 이론화한 세계관이 아니다. 이론적 논증에 입각하고 있는 철학은 일련의 이론적 관점이 있으며 이론을 따지는 방법으로 다른 사람들이 자기의 관점을 접수하게 한다. 종교는 신의 존재를 공공연히 설교한다. 종교가 요구하는 것은 내심의 신앙이며 초자연적인 힘에 대한 보잘것 없는 개인의 숭배이다. 철학은 깊은 사색을 거친 정밀한 이성으로 호소한다고 하면 종교는 열광적인 초라한 감정에 사로잡히게 한다.
철학은 자연과학이나 사회과학의 여러 분과와도 다르다. 어떠한 과학분과를 물론하고 그것은 다 이론적인 논증을 요구한다는 것은 의심할 바 없지만 그것은 어느 한 특정적인 영역에 불과하며 그 영역의 특수한 법칙을 연구하는데 그친다. 이와는 달리 철학이 대답을 주려는 문제는 세계의 본질과 본원에 관한 문제이며 자연과 사회와 사유에 관한 가장 보편적이고 가장 일반적인 문제이다. 세계는 물질적인 세계인가 아니면 정신적인 세계인가? 세상만물은 고립되어 있는가 아니면 서로 연결되어 있는가? 영원불변하는가 아니면 변화발전하는가? 세상만물이 변화발전하는 원인은 무엇인가? 사물이 변화발전하는데는 법칙이 있는가 없는가? 가장 보편적인 법칙은 무엇인가? 사람은 세계를 인식하고 개조할 수 있는가 없는가? 어떻게 해야 세계를 인식하고 개조할 수 있는가? 이러한 문제들을 탐구하여 체계적이고 이론적인 설명을 주는 가운데서 여러가지 부동한 철학이 형성되게 되었다.
매개 시대의 철학은 언제나 그 당시의 실천경험과 여러 과학분과에서 이룩한 과학성과를 개괄한 기초 위에서 상술한 문제들에 각이한 대답을 주게 된다. 때문에 철학의 발전은 실천과 과학의 발전의 제약을 받게 된다. 다른 한편 한 시대의 과학연구는 또 언제나 그 시대의 철학사상의 영향과 지배를 받게 된다.
철학연구에서 제기되는 많은 문제들 가운데서 어떤 것이 기본적인 문제로 되는가? 철학의 연구는 사람과 사람의 실천적 요구를 떠날 수 없다. 철학이 대답하려는 중심문제는 사람과 주위환경과의 관계여하문제이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철학은 총적인 면으로부터 자연계 사물들사이의 관계여하문제를 연구하며 사람과 사람들 사이의 관계여하문제를 연구하는 것이다. 동물도 주위환경과 일정한 관계 속에 있으나 동물은 의식이 없기 때문에 의식과 주위환경과의 관계여하문제가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은 의식이 있기 때문에 실천가운데서 자기와 환경을 의식적으로 구별할 수 있다. 이리하여 필연적으로 의식과 주위환경과의 관계여하문제가 생기게 되며 의식과 물질과의 관계여하문제가 생기게 된다. 이 문제가 바로 철학에서 가장 기본적인 문제로 된다. 엥겔스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전체 철학, 특히 근대철학의 중대한 기본문제는 사유와 존재와의 관계여하문제이다.≫(≪루드비히 포이에르바하와 독일고전철학의 종말≫,≪마르크스 엥겔스선집≫, 한문판, 제4권, 219쪽)
이 것은 또한 정신(의식)과 물질과의 관계여하문제이기도 하다.
세계의 모든 현상은 복잡다난하지만 그것을 귀납하면 두 가지,즉 물질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자연계의 사물, 자연계의 상태, 노동대상, 생산도구, 생산관계, 사업환경, 생활조건등은 모두 물질적 현상이고 사상, 감정, 이론, 노선, 방침, 정책, 의견, 계획 등은 모두 정신적 현상이다. 정신과 물질과의 관계여하는 기타 철학문제를 대답하는 출발점으로 된다. 다른 일련의 철학문제는 모두 이 문제에 의존하며 이 문제를 해결한 기초 위에서 전개되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의 여하에 의하여 철학의 노선과 방향이 결정된다.
철학의 기본문제에는 두 개 측면이 있다. 그 첫째 측면은 사유와 존재 중 어느 것이 선차적이고 어느 것이 후차적인가, 어느 것이 본원이고 어느 것이 본원에서 파생된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다시 말하면 어느 것이 일차적이고 어느 것이 이차적인가 하는 문제이다.
그 둘째 측면은 사유가 존재를 인식 할 수 있는가 없는가, 다시 말하면 세계를 인식할 수 있는가 없는가 또 어떻게 인식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이 두 개 측면 가운데서도 첫째 측면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첫째측면의 문제에 대한 대답의 여하에 따라 그 철학이 관념론인가 아니면 유물론인가 하는 것이 결정된다. 물질이 일차적이고 정신이 이차적이라고 주장한다면, 다시 말하여 물질은 세계의 본원으로서 정신을 산생, 결정하며 정신은 물질에서 파생된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바로 유물론이다. 정신이 일차적이고 물질이 이차적이라고 주장한다면, 다시 말하여 정신은 세계의 본원으로서 물질을 산생, 결정하며 물질은 정신에서 파생된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바로 관념론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물질과 정신 중 어느 것이 일차적인가 하는데 대한 부동한 대답은 유물론과 관념론을 구별하는 유일한 규준으로 된다. 바로 이 문제에 대한 부동한 대답으로 하여 철학자들은 유물론과 관념론이란 2대파벌로 갈라지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일차적이고 이차적이고 하는 문제는 철학자들의 일이니 우리와는 별로 관계가 없다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은 옳지 못한 것이다. 물질과 정신의 관계여하문제는 철학자만이 아니라 그 어떠한 사람도 회피할 수 없는 것이다. 그저 철학자는 철학적 언어로써 이런 관계를 정식화하고 일반사람들은 흔히 그의 일상적인 언행으로써 이런 문제를 구현할 따름이다. 예를 들어 의사라면 병세와 처방과의 관계를 잘 처리하여야 할 것이다. 여기서병세는 일차적이고 처방은 이차적이다. 만약 의사가 그 관계를 거꾸로 놓고 관념론적으로 병을 치료하게 된다면 환자가 견뎌낼 수 있겠는가?
또 예를 들어 법관이라면 사건의 정상과 판결과의 관계를 잘 처리하여야 한다. 여기서 사건의 정상은 일차적이고 판결은 이차적이다. 만약 법관이 이런 원칙에 근거하지 않고 주관적 억측에 의하여 사건을 처리한다면 잘못 처리된 사건, 억울하게 처리된 사건, 꾸며낸 사건이 나타나게 되어 결국에 가서는 다시 시정하지 않으면 안되게 된다. 실제생활 가운데서 잘 처리된 일들은 모두가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간에 물질이 일차적이고 정신이 이차적이라는 이 원칙을 지킨 결과이며 모든 실착은 결국 이 양자의 관계를 전도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찌 이것을 다만 철학자의 일이라고만 볼 수 있겠는가?
유물론과 관념론은 철학에서의 두 갈래 기본노선이다. 철학의 이기본문제를 둘러싸고 전개된 유물론과 관념론간의 투쟁은 전반 철학발전사에 일관되어 있다. 철학의 유파는 다종다양하지만 이 두갈래 노선을 벗어날 수 없다. 그것들은 유물론에 속하지 않으면 관념론에 속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철학에서의 두 개의 큰 진영이며두 개의 기본적인 파벌이다.
유물론의 맹아는 벌써 원시사회때에 이미 나타났다. 사람들은 실천활동 가운데서 외계의 사물과 접촉하면서 소박한 신념을 가지게되었으며 외계의 사물은 사람의 정신에 의존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다소나마 의식하게 되었다. 계급사회에 들어선뒤 유물론적 사상가들은 이런 소박한 신념을 체계화하고 이론화하여 유물론적 철학을 형성하였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유물론적 철학의 산생과 발전은 진보적이고 혁명적인 계급, 집단과 서로 연결되는 것이다. 그것은 그들의 이익이 이 철학문제를 해결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관념론의 맹아도 역시 원시사회때에 이미 나타났다. 그러나 한개 철학체계로서의 관념론도 마찬가지로 노예사회에서 형성되었다.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분리 특히 착취제도의 존재는 관념론이 산생하고 발전한 사회계급적 근원으로 된다. 계급사회에서 착취계급의 사상가들은 육체노동에서 이탈하여 생산실천과 동떨어져 있기 때문에 정신의 역할을 과대하면서 관념론적 관점을 가지기 쉽다.
지배적 지위에 있는 착취계급들도 일반적으로는 관념론을 이용하여 사상적으로 대중을 마비시킬 필요성을 느낀다. 특히 몰락되어가는 계급과 반동적인 계급들은 거의 무너져가는 저들의 지배를 유지하기 위하여 백방으로 관념론을 부식하고 제창한다. 관념론의 산생에는 사회계급적 근원을 제외하고도 인식론적 근원이 있는 것이다. 사람의 인식은 복잡하고 모순으로 충만된 발전과정이다. 만약 인식과정의 어느 한 측면을, 이를테면 감각이나 사유를 일면적으로 과대하면서 그것이 물질을 떠나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고 본다면 관념론에 빠지게 되며 지배계급은 저들의 계급적 이익을 수호하기 위해 그것을 공고화하게 된다.
체계화, 이론화한 세계관으로서의 철학은 기본문제를 해결하고 세계의 본원은 무엇인가, 사유는 존재를 인식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대답할 뿐만 아니라 세계는 발전하는가, 어떻게 발전하는가하는 문제도 대답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이 바로 발전관 문제이다. 변증법과 형이상학은 바로 대립되는 두 가지 발전관이다. 변증법이란 이 단어는 고대희랍문에서 나왔는데 서로 이야기하고 논전한다는 뜻이다. 그때에 있어서 변증법이란 바로 변론할 때 상대방의 논점에 존재하는 모순을 폭로하는 것을 통해 진리를 탐구하는 방법을 가리킨다. 지금 우리가 말하는 변증법이란 연관적이며 운동적이며 전면적인 관점에서 세계를 관찰하면서 세상의 온갖 사물은 서로 연관되고 변화하고 발전한다고 인정하며, 변화하고 발전하는 근본원인은 사물의 내적 모순에 있다고 인정하는 것을 가리킨다.
형이상학이라는 이 단어가 가지는 고대희랍문에서의 뜻은 ≪물리학의 뒤≫라는 것이다. 고대희랍에서 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4∼기원전 322년)의 저작을 편찬할 때 어떤 사람은 유형물체를 논술한 저작을 앞에 놓고 이름을 물리학이라고 지었으며 철학문제를 연구한 저작을 뒤에 놓고 이름을 물리학의 뒤라고 하였던 것이다. 한어에서 형이상학이란 말은 고대의 ≪역 계사(易·系辭)에 있는 ≪형이상(形而上)은 도(道)이고 형이하(形而下)는 기(器)이다.1) ≪1) 형이상이란 형태가 없어 보고 지각할 수 없는 것을 가리키고 형이하란 형태가 있어 보고 지각할 수 있는 것을 가리킨다. -역자주≫라는 구절에서 온 것이다. 그리하여 학자들은 물리학의 뒤를 형이상학이라고 번역한 것이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철학에서 말하는 형이상학은 흔히 이와 다른 의미로, 즉 변증법과 서로 대립되는 세계관과 방법론이란 의미로 쓰이고 있다. 형이상학은 고립적으로, 정지적으로, 일면적으로 세계를 관찰한다. 변증법과 형이상학간의 투쟁도 철학사 전반에 일관되어 있다. 이 투쟁은 유물론과 관념론간의 투쟁과 교착되어 있으며 또 유물론과 관념론간의 투쟁에 종속되어 있다.
객관적 세계의 본래의 면모를 본다면 그것은 물질적인 것이며 또한 변화하고 발전하는 것이다. 유물론과 변증법은 응당 유기적으로 결합되어야 한다. 고대의 철학사상에서는 이 양자가 일정하게 결합되어 있었으나 과학적 기초 위에서 유기적으로 결합된 것은 아니다. 근대에 와서는 사회역사적 정황의 복잡성으로 하여 철학체계 속에는 유물론과 형이상학이 같이 있거나 관념론과 변증법이 연결되어 있는 현상이 흔히 나타났던 것이다. 예를 들면 근대의 자산계급적 유물론은 바로 형이상학적 유물론이고 독일고전철학의 변증법은 바로 관념론적 변증법이다. 그뿐만 아니라 유물론적 철학을 망라한 이전의 모든 철학은 사회역사적 현상을 해석할 때 관념론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가고가도 산과 물이어서 길이 없는가 했더니 녹음이 우거지고 꽃이 활짝 핀 마을이 또 나타났다.≫ 세계의 무대에는 완전히 새로운 철학이 끝내 나타났다. 이로부터 체계화되고 이론화된 진정으로 과학적인 세계관의 빛발이 세상을 환히 비추기 시작하였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시대적 정신의 정화이며 인류지혜의 진품인 마르크스주의철학이다.
마르크스주의철학은 과학적이며 혁명적인 철학이다
마르크스주의철학은 17세기 중엽에 산생하였다. 그것은 무산계급의 성장과 과학의 발전의 필연적 결과이며 무산계급의 과학적 세계관이다. 무산계급은 19세기 30년대로부터 독립적인 정치역량으로 역사무대에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무산계급은 자산계급의 통치를 뒤엎고 전 인류를 해방하는 역사적 과업을 종국적으로 완수하자면 세계를 인식하고 개조하여야 하며 그러자면 자기의 철학무기가 있어야 한다. 마르크스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철학이 무산계급을 자기의 물질적 무기로 인정하는 것처럼 무산계급은 철학을 자기의 정신적 무기로 인정한다.≫(≪헤겔법철학비판≫ 서론, ≪마르크스 엥겔스 선집≫, 제1권, 20쪽)
마르크스주의철학은 바로 이렇게 때에 맞게 산생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마르크스주의철학이 산생된 사회적, 계급적 조건이다.
마르크스주의철학을 창시하는 이 과업은 마르크스, 엥겔스에 의해 완수되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무산계급의 혁명실천에 친히 참가하여 혁명투쟁의 경험을 총화하였으며 그 당시의 자연과학의 최신 성과와 이전의 인류의 온갖 우수한 사상성과를 충분히 연구하고 섭취하였다.
19세기 상반엽에 자연과학의 거대한 발전, 특히 세포학설, 에너지 보존과 전환의 법칙 및 다윈의 진화론 등 3대발견은 자연계의사물의 보편적 연관과 발전법칙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보다 깊어지게 하였다. 이는 과학적 철학의 산생에 필요한 자연과학면에서의 조건을 마련해 주었다.
마르크스주의철학의 산생은 또한 철학사상의 발전을 전제로 하였다. 마르크스주의철학 이론의 직접적 내원은 헤겔(1770∼1831년)의 변증법과 포이에르바하(1804∼1872년)의 유물론이다. 헤겔은 변증법은 관념론적 변증법이며 포이에르바하의 유물론은 형이상학적유물론인데 역사관면에서는 이왕의 모든 유물론과 마찬가지로 역시 관념론이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헤겔의 관념론적 체계를 포기하고 그의 변증법의 합리적 알맹이를 비판적으로 섭취하였으며 포이에르바하의 형이상학과 그의 역사관의 관념론을 포기하고 그의 유물론적 기본사상을 비판적으로 섭취하였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또한 영국의 고전경제학의 적극적인 성과 특히는 그 노동가치설을 비판적으로 섭취하였으며 자본주의를 비판한 영국, 프랑스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의 성과와 그리고 미래사회에 대한 그들의 추측 및 계급투쟁의 역사적 역할에 대한 프랑스복귀시기의 역사학자들의 논술 등을 비판적으로 섭취하였다. 레닌은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마르크스의 전체 천재성은 그가 인류의 선진사상이 이미 제기한 문제들에 대하여 해답을 주었다는 바로 그 점에 있다. 그의 학설은 철학, 정치경제학 및 사회주의의 가장 위대한 대표자들의 학설의 직접적인 계승으로서 발생하였다.≫(≪마르크스주의의 세 가지 원천과 세 가지 구성부분≫,≪레닌선집≫, 제2권, 560쪽)
따라서 이왕의 인류사상의 가장 우수한 성과를 개괄하는데서 산생된 마르크스주의철학은 우리 시대의 정신적 정화로 되었으며 전 인류를 해방하기 위한 무산계급의 사상적 무기로 되었다.
마르크스주의철학의 산생은 철학발전의 내용, 성격 및 사명에 모두 혁명적인 변혁이 일어나게 하였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과학적 기초위에서 유물론과 변증법을 유기적으로 결합시켰으며 또 처음으로 유물론을 사회역사분야에 관철시켜 마르크스주의철학, 즉 변증법적 유물론과 역사적 유물론을 창시하였다. 이는 철저하고 완전한 유물론이며 유물론 발전사에 있어서의 최고형태이다. 마르크스주의철학의 산생은 인류의 인식사에 있어서 전례없는 대혁명이다. 마르크스주의철학은 전체 마르크스주의학설의 철학적 기초이다. 이 기초 위에서 마르크스주의학설체계의 유기적 통일이 형성되었다.
마르크스주의철학의 산생은 철학의 성격에도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나게 하여 철학을 그냥 ≪과학의 과학≫으로 되지 않고 과학적인 철학으로 되게 하였으며 과학적인 세계관과 방법론으로 되게 하였다.
고대에는 구체적인 과학이 아직 형성되지 않았고 철학은 흔히 여러가지 지식과 억측의 종합으로 되었다. 15세기 후반기로부터 18세기에 이르는 기간에 구체적 과학은 발전을 가져왔으며 따라서 점차 철학에서 분화되어 나와 독립적인 과학으로 되었다. 그러나 철학자들은 의연히 삼라만상의 지식체계를 구성하기에 열중하면서 자기의 철학을 구체적 과학을 능가하는, 그것들을 대체할 수 있는 과학의 과학으로 보았다. 이러한 체계는 터무니 없는 것들을 많이 포함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과학적인 세계관과 방법론으로 될 수 없었던 것이다. 구체적 과학이 새로운 발전을 가져온 역사적 조건하에서 창시된 마르크스주의철학은 인류가 쌓은 과학지식의 튼튼한 기초에 입각하여 실천의 검증을 존중하므로 사실의 성격을 왜곡하거나 주관적으로 억측하는 성분이 포함되지 않는다. 마르크스주의철학은 구체적 과학의 성과를 개괄한 것이지만 모든 지식을 종합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사물의 일반적 법칙을 연구하고 특수한 법칙은 구체적 과학이 연구하도록 한다. 그것은 구체적 과학을 지도하지만 그것을 대체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마르크스주의철학은 과학적인 세계관이기도 하고 실천활동과 과학연구를 효과적으로 지도할 수 있는 과학적 방법론이기도 하다.
마르크스주의철학은 또한 철저한 혁명적 철학이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은 가장 뚜렷한 두 개 특성, 즉 계급성과 실천성을 가지고 있다. 철학은 어느 것이나 다 자기의 계급성을 갖고 있지만 마르크스주의철학만이 자기의 계급성을 과감히 승인하고 무산계급을 위해 복무하는 철학이란 것을 떳떳이 언명한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은 무산계급의 철학이며 무산계급이 자본주의 제도를 뒤엎고 사회주의사회와 공산주의사회를 건립하기 위한 사상적 무기이다. 마르크스주의철학은 선명한 실천성을 가지고 있다. 마르크스주의철학은 실천에 대한 이론의 의존관계, 즉 이론의 기초는 실천이며 이론은 다시 실천을 위해 복무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마르크스주의철학은 책방속의 철학이나 앉아서 공담만 하는 철학이 아니라 실천을 지도하는 철학이다. 이왕의 철학은 그저 각이한 방식으로 세계를 해석하기만 하였지만 마르크스주의철학은 세계를 해석할 뿐만 아니라 더욱 중요하게는 세계를 개조한다. 마르크스주의철학은 세계를 개조하는 무산계급의 실천을 지도하는 가운데서 무산계급에게 정확한 강령, 노선, 전략, 책략을 제정하고 과학적인 영도방법과 사업방법을 제정하기 위한 이론적 기초를 마련해 주었다.
마르크스주의철학의 생활력은 그것이 고정불변하는 죽은 교조가 아니라는데 있다. 마르크스주의철학은 끊임없는 실천과 과학의 발전에 따라 끊임없이 자기의 내용을 충실하게 한다.
레닌은 새로운 역사적 조건 하에서 마르크스주의철학을 새로운 단계로 발전시켰단. 모택동동지는 마르크스주의철학의 기본원리를 적용하여 중국의 정치, 경제, 군사, 문화 및 당건설 등 여러 방면의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마르크스주의철학을 새롭게 발전시켰다.
모택동동지가 쓴 ≪실천론≫, ≪모순론≫, ≪지구전에 대하여≫와 같은 일련의 노작들은 마르크스주의철학의 보물고를 풍부히 하였다.
엥겔스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자연과학의 영역에 있어서 조차 획기적 발견이 있을 때마다 유물론도 불가피하게 자기의 형태를 변경하지 않으면 안되었다.≫(≪루드비히 포이에르바하와 독일고전철학의 종말≫, ≪마르크스 엥겔스 선집≫, 한문판, 제4권, 224쪽)
마르크스주의철학도 예외가 아니다. 마르크스주의철학도 현대과학의 새로운 성과를 개괄하는 과정에서 필연코 진일보의 발전을 가져오게 될 것이다. 사상이 경화되어 마르크스주의철학을 고정불변하는 것으로 보는 것은 그 과학적 본성과 어울리지 않는다.
마르크스주의철학을 학습하는 의의
마르크스주의철학은 무산계급의 세계관이며 전반 마르크스주의학설의 철학적 기초이며 무산계급이 세계를 인식하고 개조하는데 있어서의 강대한 사상적 무기이며 무산계급정당이 정확한 사상노선을 제정하는데 있어서의 이론적 근거이다.
우리가 마르크스주의철학을 학습하는 것은 의식적으로 과학적세계관을 수립하기 위한 것이다. 이 세계관으로 사물을 관찰하고 문제를 연구하고 행동을 지도한다면 그것은 곧 방법론으로 되며 우리의 사상방법, 사업방법, 연구방법으로 된다. 마르크스주의철학올 학습하는 주요한 목적은 문제를 관찰하고 해결하는 정확한 입장, 관점, 방법을 장악하는데 있다.
지난날 혁명전쟁년대에 우리가 마르크스주의철학을 학습한 목적은 중국인민의 머리를 내려누르던 세 개의 큰 산을 뒤엎기 위한 것이었다. 마르크스주의철학은 늙은 세대의 무산계급혁명가들을 무장하였다. 새로운 역사시기에 있어서 우리들이 마르크스주의철학을 학습하는 목적은 사회주의를 건설하며 우리 나라를 번영부강하고 고도로 민주주의화하고 문명하고 현대화한 사회주의강국으로 건설하며 사회주의를 건설할 뿐만 아니라 공산주의를 위해 분투하는 새세대를 양성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말하여 우리의 청년들은 마르크스주의철학을 학습하는 의의를 어떤 면으로부터 인식하여야 하는가?
첫째, 마르크스주의철학을 학습하면 과학적 세계관을 국가의 운명을 관찰하는 도구로 삼고 사회발전의 법칙을 더 잘 인식하며 역사의 전진방향을 더 잘 파악하도록 도움을 줄 수 있다. 사회주의 길을 견지하며 인민민주주의 독재, 즉 무산계급독재를 견지하며 중국공산당의 영도를 견지하며 마르크스-레닌주의, 모택동 사상을 견지하여야 한다는 이 네 가지 기본원칙은 중국인민이 장기적인 혁명투쟁 가운데서 유혈과 희생으로 바꾸어온 진리이며 무수한 성공과 실패를 거치면서 총화해낸 과학적 결론이다. 우리는 마르크스주의철학을 진지하게 학습하여야만 네가지 기본원칙의 중요성을 참답게 인식할 수 있으며 남의 풍에 놀지 않을 수 있으며 이론상에서 인식을 심화시키고 행동상에서 의식적으로 견지할 수 있다. 이 네가지 기본원칙을 견지하여야만 우리의 조국에 찬란한 미래가 있을수 있으며 우리의 조국을 현대화한 사회주의강국으로 건설할 수 있으며 우리의 청년시대의 더욱 아름다운 미래가 있도록 할 수 있다.
마르크스주의철학은 무산계급정당이 자기의 노선, 방침, 정책을 제정하는 철학적 기초이다. 마르크스주의철학을 배우면 당의 노선, 방침, 정책의 정당성을 깊이 이해할 수 있다. 당중앙위워회 제11기제3차 전원회의에서는 모든 것은 실제로부터 출발하며 이론을 실제와 연계시키며 실사구시할데 대한 우리 당의 사상노선, 즉 변증법적 유물론과 역사적 유물론의 사상노선을 회복하였다. 당중앙위원회는 제3차 전원회의 이래에 일련의 정확한 노선, 방침 정책을 제정하면 좌적 오류를 청산하며 혼란 상태를 바로잡음으로써 커다란 성과를 달성하였다.
10년내란 속에서 억압과 손상을 받은 우리 나라 인민과 청년들은 이에 대하여 기뻐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사실이 증명하는 바와 같이 관념론과 형이상학과 유심사관의 악렬한 영향을 제거하지 않았다면, 유물론과 변증법과 유물사관에 따라 처사하지 않았다면 제3차 전원회의의 노선, 방침, 정책이 형성될 수 없으며 제6차 전원회의에서 만장일치로 채택한 ≪건국이래 당의 약간한 역사문제에 관한 결의≫와 같은 위대한 역사적 문헌이 나을 수 없으며 오늘과 같은 아주 좋은 국면도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철학을 진지하게 학습하여 이런 노선, 방침, 정책의 이론적 근거를 요해하고 자기의 힘이 자라는 범위 내에서 그것을 의식적으로 선전하고 관철하는 것은 우리들의 신성한 직책이다. 우리의 청년세대가 과학적 세계관을 견지할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은 우리의 사업에 후계자가 있는가 없는가에 관계되며 우리의 사회주의적 현대화 건설이 성공하는가 실패하는가에 관계되는 근본적인 문제이다. 때문에 마르크스주의철학은 학습해도 되고 학습하지 않아도 되는 문제가 절대 아니다.
둘째, 마르크스주의철학을 학습하여 과학적 세계관의 지도 밑에서 정확한 인생관과 도덕관과 심미관 등을 확립하도록 우리에게 도움을 줄 수 있으며 생활 속에서 참된 것과 착한 것과 아름다운 것을 찾도록 우리를 인도할 수 있다.
청년들은 인생의 보람을 탐구하기 좋아하는데 이것은 주목할만한 과제이다. 고금중외로 인생철학을 취급한 책들이 아주 많다. 그 가운데는 교양적 의의가 있어 귀감으로 삼을 만한 사상이나 격언들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총체적으로 말한다면 그것들은 과학적 인생관을 수립하는 문제를 참답게 해결할 수 있도록 청년들을 도와줄 수 없는 것이다. 어째서 그런가? 그것은 인간이란 추상적인 인간이 아니라 사회적인 인간이기 때문이다.
이왕의 모든 학설이나 이론은 모두다 개인과 사회와의 본질적 관계를 과학적으로 제시하지 못하였다. 이런 관계를 떠나서 인생의 보람을 운운하여서는 정확한 결론을 얻어낼 수 없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철학만이 개인과 사회와의 관계를 진정으로 제시하였으며 사회발전의 객관적 법칙과 역사의 전진방향을 진정으로 제시하였다. 사회역사는 전진한다. 비록 굴곡이 있고 장애가 있지만 사회발전의 총적 추세는 개변될 수 없다. 자본주의는 사회주의에 의하여 교체될 것이며 사회주의는 공산주의로 이행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역사의 필연이며 객관적 진리이다. 인간은 사회발전법clr의 요구대로 역사적 조류에 순응하여야만 그 생활이 보람있게 된다. 이런 과학적 세계관은 공산주의자들에게 진리를 위해 투쟁하려는 굳은 신념을 안겨 주며 자기의 운명과 일상적 사업을 사회주의, 공산주의의 위대한 사업과 한데 연결시키도록 그들을 인도한다. 오직 이렇게 하는 데서만 인생의 의의와 인생의 보람을 진정으로 찾을 수 있다.
청년들은 참된 것과 착한 것과 아름다운 것을 이야기하기 좋아한다. 이것도 마르크스주의철학과 관련되는가? 관련될 뿐만아니라 마르크스주의철학에 의해서만 참된 것과 착한 것과 아름다운 것에 관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진짜와 가짜, 진리와 오류는 인간의 인식과 관련되는 문제이다. 마르크스주의 인신론은 진리를 인식하도록 우리를 도와준다. 착한 것과 악한 것은 사회생활에서의 도덕과 관련되는 문제이다. 마르크스주의철학은 사람과 사람과의 본질적 관계를 제시하고 우리들에게 착한 것과 악한 것을 구별하는 예리한 무기를 제공하여 주었다. 아름다운 것과 더러운 것은 심미와 관련되는 문제이다. 마르크스주의철학은 아름다운 것과 더러운 것의 본질을 제시하여 정확한 심미관을 수립하도록 우리를 도와주고 있다. 현실생활 가운데는 참된 것과 착한 것과 아름다운 것이 있을뿐만 아니라 허위적인 것과 악한 것과 더러운 것도 있다. 이것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들이다. 착취제도를 소멸한 사회주의사회에도 의연히 이런 문제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과학적 세계관이 없다면 진정한 것과 허위적인 것, 선한 것과 악한 것, 아름다운 것과 더러운 것을 똑똑히 분간할 수 없다. 10년내란기간에 어떤 청년들은 남의 꼬임수에 넘어갔다. 뿐만 아니라 지금도 우리의 주위를 살펴보면 일부 청년들은 허위적인 것을 진정한 것으로, 악한 것을 선한 것으로, 더러운 것을 아름다운 것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들은 우리들이 과학적 세계관을 자기의 사상과 행동의 지침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을 설명하여 주고 있다.
셋째, 마르크스주의철학은 우리들에게 과학적 방법론을 제공하여 우리들이 자기의 사업을 잘하고 사회주의 건설을 위하여 많은 기여를 하게 한다. 여러가지 사업이나 과학분과는 각각 자기의 구체적인 사업방법과 연구방법이 있지만 모두 다 철학적 방법론의 지도를 받아야 한다. 10억 인구 중에 8억 농민이 있는 우리 나라에서 현대화건설을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전례없는 위대한 사업이며 간고하고 복잡한 사업이다. 우리는 지난날의 경험과 교훈을 총화하고 섭취하여야 하며 사회주의에 대한 인식을 부단히 심화하여야하여 우리의 정치, 경제제도를 부단히 완전하게 하여야 하며 끊임없이 나타나고 있는 새로운 정황, 새로운 문제를 연구하고 해결하여야 한다.
마르크스주의철학을 제외한 그 어떤 다른 세계관이나 방법론도 우리를 도와줄 수 없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철학만이 우리에게 정확한 입장, 관점, 방법을 제공할 수 있으며 문제를 유물론적이면서도 변증법적으로 보도록 우리를 지도할 수 있으며 실제사업 가운데서 관료주의와 일면적인 사상방법을 극복하도록 우리를 도와줄 수 있으며 우리가 정치, 경제, 생산, 생활, 교육, 문학예술 등 여러 분야의 사업에서 될수록 오류를 적게 범하게 하거나 오류를 범하였다 하더라도 비교적 빨리 시정할 수 있게 한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은 만능적인 처방은 아니지만 우리가 자연과 사회를 인식함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될 망원경과 현미경이며 사회주의적 현대화건설을 진행함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될 사상적 무기이다.
어떤 사람은 ≪4개 현대화건설에서 급선무로 나서는 것은 문화지식과 과학기술을 더 많이 장악하는 것인데 어찌 시간을 낭비하면서 철학을 배우겠는가≫고 생각한다. 문화과학지식을 힘써 학습하는 것은 완전히 옳은 것이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철학학습과 대립시켜서는 안된다. 엥겔스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과학의 고봉에 올라서려는 민족으로서는 한시도 이론적 사유가 없어서는 안되는 것이다.≫(≪자연변증법≫, ≪마르크스 엥겔스 선집≫, 한문판, 제3권, 467쪽)
마르크스주의철학이라는 이 과학적 세계관과 방법론은 우리에게 가장 필요되는 이론적 사유방법이다. 마르크스주의철학은 우리에게 유물론적 교양을 주어 사실을 절대적으로 존중하고 사물의 본래 면모대로 세계를 인식할 줄 알게 할 뿐만 아니라 또한 우리에게 변증법적 인식과 과학적 사유방법을 준다. 과학연구에서 유물론을 떠나게 되면 옳지 못한 길에 들어서게 되며 변증법을 멸시하게 되면 기필코 징벌을 받게 된다. 때문에 철학을 학습하는 것은 문화과학지식을 학습하는 우리의 시간을 낭비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와는 반대로 시간을 더 많이 짜내어 과학지식을 더 빨리 장악하도록 우리를 도와준다.
요컨대 우리가 마르크스주의철학을 학습하고 장악하는 것은 고도의 물질문명을 건설하기 위한 것이며 또한 고도의 정신문명을 건설하기 위한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철학은 우리들에게 세계를 인식하고 개조하는 사상적 무기를 제공하였을 뿐만 아니라 세계를 인식하고 개조하는 투쟁 속에서 우리들이 가장 훌륭한 정신상태로 생기발랄하고 영용완강하게 우리의 목적지로 내달리게 한다.
당중앙위워회 제11기 제6차 전원회의에서는 ≪건국이래 당의 약간의 역사문제에 관한 결의≫를 채택하여 일련의 중대한 문제들에서 전당과 전국인민의 인식을 통일하였다. 지난날의 경험과 교훈을 정확히 총화하는 것은 미래를 향해 승리적으로 전진하기 위한 것이다. 북국에 꽃향기 풍기는데 강남은 푸른 단장하였네, 찬란한 미래를 내다보니 우리는 신심이 더욱 커지고 열의가 더욱 충천한다. 우리의 위대한 조국은 꼭 더욱 아름답게 건설될 것이다.
* * *
10년내란으로 하여 우리의 청년세대는 마르크스주의철학을 체계적으로 학습하지 못하였다. 특히 임표 반혁명집단과 강청 반혁명집단은 마르크스-레닌주의, 모택동사상을 뜯어고치어 마르크스주의철학을 형편없이 만들어 놓음으로써 많은 청년들이 과학적 세계관을 요해하고 장악하는데 엄중한 치장을 주었다. 오늘에 와서는 정황이 달라졌다. 진리를 추구하려고 갈망하는 모든 사람들은 틀림없이 마르크스주의철학을 더욱 더 고심히 연찬하여 거기서 지혜와 힘을 얻게 될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철학은 학습하자면 방법에 주의를 돌려야한다. 그 기본적 방법은 바로 이론을 실제와 결부시키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철학은 무산계급과 광범한 인민대중의 실천에서 오며 또 이 실천을 위해 복무하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철학의 기본원리가 일단 실제와 결부되며 구체화되기만 하면 사람들은 그것을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학습하는 가운데서 우리는 4개 현대화건설의 실제와 결부시키고 우리의 사상, 사업, 생활과 결부시키는데 주의를 돌려야 하며 또 원리를 운용하여 새로운 정황을 분석하고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는데 주의를 돌려야 한다. 마르크스주의철학은 완전하고 엄밀한 과학적 체계이므로 우리들이 그것을 학습할 때에도 물론 그 기본원리를 완전하고 정확하게 장악하여야 한다. 그저 몇 단락의 철학어록을 압송하는데 그쳐서는 안된다. 한마디로 말하여 마르크스주의철학을 학습함에 있어서 우리는 실제와 결부시켜 의식적으로 세계관을 개조하고 인식능력을 제고해야 한다. 이것은 학습목적이기도 하고 학습방법이기도 하다.
이 책은 마르크스주의철학의 여러 측면을 전개하여 논술한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이해에 근거하여 청년벗들에게 마르크스주의철학의 일부 기본지식을 소개한데 불과하다. 이것이 조국을 사랑하고 4개 현대화건설에 헌신하는 청년들의 정신적 식량이 되어주기를 우리는 바라마지 않는다. 마르크스주의철학에 관한 통속독물을 우리가 쓰게 된 것은 한 차례의 시험에 불과하다. 우리는 보다 훌륭한 책이 나오기를 바라면서 미숙한 것이나마 이 책을 철학진리의 탐구에 지향을 두고 있는 청년벗들에게 드리는 바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