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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성주사 불성회 원문보기 글쓴이: 푸대화상
중노전
하노전 구역을 지나 불이문을 들어서면 석탑을 지나 멀리 대웅전 건물과 중노전 구역의 일부인 관음전이 눈에 들어온다. 불이문에서 보면 관음전은 중노전 구역에서 불쑥 튀어나온 듯하다. 관음전 뒤로는 세존비각ㆍ개산조당ㆍ해장보각ㆍ용화전ㆍ장경각ㆍ전향각이 남향하여 배치되어 있는데, 맨 뒤의 대광명전만 서쪽으로 약간 틀어 앉았음을 눈치 챌 수 있다. 그리고 용화전 앞에는 장차 용화수 아래서 성불하여 중생을 제도하게 될 미륵불의 출현을 기다린다는 의미로 세운 봉발탑이 특이한 모습으로 서 있다. 또한 스님들이 경을 공부하는 강원건물인 황화각과 3동의 요사가 있고, 황화각 뒤로 통도사의 역대 고승들의 진영을 봉안한 영각이 있다. 이외에도 작은 객실과 원주실, 공양간, 후원 등이 있다.
대광명전(大光明殿) - 조선(1758년), 경남 유형문화재 제94호
대광명전은 중로전(中爐殿)의 중심건물이다. 대웅전(大雄殿) 서북쪽에 위치(位置)하며 건물의 규모나 목재 또는 가구수법(架構手法)이 대웅전 다음가는 우수한 건물이라 하겠다. 대광명전 앞에는 전향각(篆香閣), 장경각(藏經閣), 개산조당(開山祖堂), 세존비각(世尊碑閣) 등이 있고 이들 건물 앞에 5층석탑이 있다.
통도사성보박물관에 보관 중인 <대광명전삼성공필후현판(大光明殿三成功畢後懸板)>에 따르면, 1756년 10월 화재로 전소 된 것을 1758년 9월 중건하였다고 한다. 내부에는 대광명전 불상 뒤편에 조성된 삼신불탱은 현재 원본은 박물관으로 이전되었으나, 조선후기 통도사를 기점으로 활동하였던 임한비구에 의해 조성되었으며, 현존하는 삼신탱화 중에서 그 화격이 최고로 높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대광명전(大光明殿) 사전(寺傳)에 의하면 1725년 영조 원년에 축환대사(竺環大師)가 중수하였다고 하나 실제 건립연대가 언제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이 건물은 정면 5칸 특면 3칸의 다포식(多包式) 팔작(八作)집으로 내부에는 뒤쪽에 고주(高柱)가 세워져 있으며 ??화엄경??의 주불인 비로자나(vairocana)부처를 모시고 있다. 비로자나는 광명의 빛을 두루 비춘다는 광명편조(光明遍照)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즉 법계의 진리와 일치하는 부처이며, 우주의 본체를 상징하는 법신불(法身佛)이다. 비로자나불을 안치하고 있다. 비로자나(vairocana)는 광명변조(光明變造)라는 뜻을 지니고 있으므로 이 불전을 대광명전이라 했다. 법계의 진리와 일치하는 이불(理佛)로서 우주의 본체를 상징하는 법신불(法身佛)이다. 비로자나불상의 뒤편에는 삼신후불탱화 3폭이 있었으나 좌우의 탱화는 박물관으로 이전되었고 중앙의 법신탱만 걸려 있다. 탱화는 화기(畵記)에 의하면 “건융이십기묘 칠월일 양산북취서산 통도사 대광명전법신탱(乾隆二十己卯 七月日 梁山鷲栖山 通度寺 大光明殿法身幀).....”이라 하였으므로 그 조성이 영조(英祖) 35(1759)임을 알 수 있다. 흔히 비로자나불을 모셨을 때 비로전(毘盧殿)이라 편액하기도 한다.
건물은 비교적 견실(堅實)하며 조선 중기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막돌을 바른 층쌓기 하고 상부에 장대석으로 갑석(甲石)을 만든 기단(基壇) 위에 막돌초석을 놓고 약한 내흘림이 있는 두리기둥을 세웠다. 기둥 윗몸은 창방(昌枋)으로 결구(結構)하고 이 위에 기둥사이에도 놓은 다포식(多包式)을 이루고 있다. 다포식 공포의 짜임은 외삼출목(外三出目), 내사출목(內四出目)으로 제공(諸貢)위에 놓이는 살미첨자의 끝은 강직한 앙서로 되어 있고, 내부에서는 판형(板形)으로 연꽃봉오리를 조각하여 장식하였다. 정면(正面) 어간(御間) 양측의 기둥머리에 용머리(龍頭)를 조각하여 꽂아놓은 것은 내공포(內公包)의 판형(板形)이나, 연꽃봉오리 조각의 장식성 등이 조선 중기 이후의 감각을 잘 보여주고 있는 수법이다. 가구(架構)는 후면 내진(內陣)에 세운 고주(高柱)와 전면 평주(平柱)에 대들보[大樑]를 걸고 이 위에 동자기둥을 세워 종보[宗梁]를 걸었으며 우물 천정을 가설하여 천정 속을 가리고 있다. 정면의 각 주간(柱間)에는 아름다운 빗살창호를 달고 측면에는 정자살창호를 두 짝 달았다.
대광명전 내부에는 외부와 달리 단청(丹靑)과 벽화가 잘 보존되어 산수화풍(山水畵風)으로 전개된 그림을 위시하여 건물의 불벽(佛壁)사이에도 승상(僧像)과 동자상(童子像) 등 인물상을 등장시켜 불경과 관계되는 도화적(道話的) 내용을 그림으로 나타내고 있다. 법당 내부의 굴도리 상부도서(上部東西) 2개소에는 다음과 같은 묵화가 있어 주목된다.
吾家有一客(오가유일객) 定是海中人(정시해중인)
口呑天藏水(구타천장수) 能殺火精神(능살화정신)
이는 건물의 화재를 방지하기 위한 일종의 방화부적(防火符籍)으로 생각된다. 법당 내외에 조각된 목조비룡(木造飛龍)의 모습이 사실적인데 이는 조선시대에 발달된 목조공예의 수법을 여실히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라 할 것이다.
대광명전 삼신불탱화 - 보물 제1042호 조선(1759年), 마본채색(麻本彩色)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한 근본불교는 점차 교리가 발달함에 따라기중생들의 요구에 응하여 다불관사상(多佛觀思想)이 발달하게 된다. 바로 과거·현재·미래의 삼세불(三世佛)이나 법신(法身)·보신(報身)·화신(化身)의 삼신불사상(三身佛思想) 등이 출현하게 되는 것이다.
화엄종(華嚴宗)의 삼신사상(三身思想)에서 유래된 삼신탱은 대적광전(大寂光殿)이나 대광명전(大光明殿)에 모신다. 중앙의 법신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왼쪽에 보신 노사나불, 오른쪽에 화신 석가모니불을 모시는 것이 통례지만, 사찰에 따라서 보신불로 아미타불을 모시거나 비로자나불 좌우에 약사불과 아미타불을 모시는 경우도 있다.
삼신탱은 비로자나불·노사나불·석가모니불을 한 폭에 함께 그리기도 하고 이 작품처럼 세 폭으로 나누어 그리기도 한다. 세 폭으로 나누어 그릴 때는 좌우대칭의 효과를 주기 위해 통상적으로 등장하는 사천왕을 좌우 폭에 각각 2구씩 나누어 배치하는 등 이 밖에도 보살과 제자상, 신중상들을 나누어 배치하여 좌우대칭의 효과를 주고 있다. 이 삼신불탱은 색채와 무늬가 화려하고 정교하며 구도 역시 좌우대칭의 효과를 잘 살린 훌륭한 불화로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불화이다.
석가모니후불탱
화신(化身)인 석가모니불탱은 화면 중앙 상단의 본존불을 중심으로 2분신불, 5보살, 제석천, 2제자, 북방 다문천왕과 서방 광목천왕의 2천왕, 2신중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키 모양 광배에 결가부좌한 채 앉아 지권인을 짓고 있는 본존불은 이목구비가 단정하며 넓은 무릎을 하여 안정감이 있다. 머리에는 중앙계주와 정상계주가 큼직하고 기다란 귀를 갖추었으며, 다자색 법의의 깃을 따라 연둣빛과 분홍빛깔의 보상화문이 장식되어 다소나마 생기를 불어넣어 준다.
불교에서는 불(佛)을 법신불(法身佛)ㆍ보신불(報身佛)ㆍ화신불(化身佛)의 삼신불(三身佛)로 나누고 있다. 초기불교에서의 불신(佛身)은 하나의 의미를 갖고 있었으나 점차 교리가 발달하면서 삼신설(三身說)이 보편화된 것이다. 이러한 교리체계를 기본으로 하여 가로 3.15m, 세로 4.6m의 비단에 채색하여 삼신불(三身佛)을 세 폭에 각각 그린 이 삼신불탱은 원래 대광명전에 봉안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현재는 대광명전에는 이를 모사하여 봉안하고 성보박물관으로 옮겨 관리하고 있다. 주존인 비로자나불은 양 어깨를 감싼 통견을 입고, 부처와 중생이 하나라는 의미의 손모양인 지권인을 하고 있다. 비로자나불처럼 통견을 입은 노사나불은 양손을 위로 한 설법하는 모습의 손 모양을 하고 있으며, 머리에는 보관을 쓰고 있다. 주존의 오른쪽에 위치한 석가여래는 왼쪽 어깨에만 옷을 걸쳤고, 마귀를 물리치는 의미를 가진 항마촉지인의 손모양을 하고 있다.
노사나불과 석가여래의 아래에는 각각 2위(位)의 천왕이 있어 전체적으로 사천왕이 삼신불을 호위하는 구도를 보여주고 있다. 이 삼신불탱은 1759년(영조 35)에 임한(任閑), 하윤(夏閏), 옥상(玉尙), 수성(守性), 보관(普寬), 성익(成益), 상심(尙心), 약붕(若朋), 평인(平仁), 태일(太一) 등이 그린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주로 석가ㆍ아미타ㆍ약사여래를 삼신불로 표현하였는데 비해 이 삼신불도에서는 비로자나불ㆍ노사나불ㆍ석가여래로 삼신불을 표현한 드문 예로서 미술사적으로나 불교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작품이다. 현재 보물 제1042호로 지정되어 있다.
화신(化身) 석가모니불은 중생을 구제하고자 중생들의 요구에 응하여 그들과 같은 모습으로 세상에 화현(化現)해서 출가수행 끝에 성도하셨기 때문에 응신(應身)이라고도 한다. 또한 중생들의 근기(根氣)에 따라 제각기 수많은 형상으로 나타날 수도 있기 때문에 ‘천백억화신 석가모니불’ 이라고도 하는 것이다. 석가모니불의 수인은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으로 보리수 아래 금강보좌 위에 앉아 마군(魔軍)들을 항복시키고 성도하시는 순간을 나타내고 있다.
비로자나불화의 오른쪽에 배치되는 이 불화의 인물배치와 구도는 노사나불화와 좌우 대칭으로 구성된다. 중앙의 연화대좌 위에는 항마촉지인을 짓고 있는 석가모니부처님을 대개 우견편단의 모습으로 묘사한다. 그 좌우로 6위의 협시보살들을 배치하고 있는데, 주로 문수, 보현보살이나 미륵, 제화갈라보살이 자리한다. 그 앞에는 각각 용과 보탑을 든 서방 광목천왕과 북방 다문천왕이 배치되며 그 밖에 다른 인물의 배치는 노사나불화와 동일하다.
오늘날 전하는 삼신불탱화는 1759년(영조35)에 제작된 통도사 대광명전의 삼신불탱이 유명한데 구도와 표현, 채색기법, 선묘의 솜씨 등에서 조선후기불화를 대표할 만한 수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비로자나후불탱
법신(法身) 비로자나불은 진리 그 자체를 인격화해서 표현한 부처님이다. 진리는 마치 광명과 같아서 특별한 형상이 있을 수 없고 온 우주에 두루 편재(偏在)해 있는 청정무구 그 자체이므로 이 부처님을 ‘청정법신 비로자나불’ 이라고도 한다. 비로자나불은 왼손의 검지를 세우고 오른손으로 감싸 쥔 지권인(智拳印)을 취하는데, 이는 이(理)가 지(智)를 감싼 형태로 이(理)와 지(智)가 하나 됨을 의미한다. 통도사 대광명전의 삼신불은 가운데 다른 두 폭에 비해 큰 그림이 본존인 비로자나불을 주불로 하여 14보살, 10대제자, 8부중, 용왕, 용녀 및 14분의 타방불을 그려 십방제불(十方諸佛)로 구성되어 있는 비로자나후불탱이다.비로자나후불도는 진리 당체인 청정법신의 비가식적인 세계를 가시적인 대경으로 표현된 것이라 이해하면 좋겠다.
이들 보살이외에 좌우로 제 보살들이 추가로 배치되는데, 이 보살은 『화엄경』에서 설하고 있는 법혜(法慧)·공덕림(功德林)·금강당(金剛幢)보살 등의 설주보살들로 추정되고 있다.
이 밖에도 비로자나불화에는 상단부에 성문들이 가득히 묘사되지만 외호중인 사천왕과 팔부중은 배치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대일경소(大日經疏)에 “문수는 커다란 지혜이다. 가장 뛰어난 공(空)의 지혜로 보리심을 청정하게 하고 반야의 검(劍)으로 번뇌를 근원부터 자른다.”고 하였다. 이렇게 문수보살은 법왕자로서 현실세계에서 실천해 나가면서 법신의 깨달음을 추구하며 중생을 인도한다. 보현보살(3)은 비로자나불의 덕을 상징하는데 보리심이 신(身)·구(口)·의(意)에 걸쳐 전개된다고 하였다. 관자재보살(4)은 무애자재하게 일체를 관찰하고 중생의 고뇌를 자재하게 꿰뚫어 보아 구제하신다. 『법화경』「보문품」에 “고뇌하는 무량한 중생들이 있어 일심으로 명호를 부르면 그 소리를 관하여 구제한다.”고 하여 관세음보살이라고도 불린다. 대세지보살과 함께 아미타여래의 협시이다. 대세지보살(5)의 존명은 「커다란 세력을 얻은 자」라는 의미로 중생에게 보리심의 종자를 뿌리고 또한 능히 수호한다. 제장애보살(6)은 일체의 어려움을 조복시키며, 금강장보살(金剛藏菩薩,7)은 인과 이덕 (因果 二德)과 사지(四智)의 지혜를 구족하신 분이다. 미륵보살(8)은 자씨(慈氏)라 의역하며 장래에 반드시 성불할 것을 약속받고 있으므로 당래불·미래불이라고도 한다. 묘음보살(9)은 대자비심으로부터 묘한 법음을 가지고 중생에게 설법하고 인도한다.
금강장보살(金剛將菩薩, 10)은 법신불의 금강불괴(金剛不壞)의 지혜를 구체적으로 펼치시는 분이다. 허공장보살(11)은 허공처럼 광대한 지덕(智德)과 복덕(福德)을 갖추고 계신 분이며 보처보살(寶處菩薩, 12)은 온갖 소원을 구족시키는 여의보주를 삼매의 경지에서 산출하시는 분이다. 시무외보살(13)은 두려움 없는 법미(法味)를 베풀어 악취(惡趣)를 파하게 한다. 일광보살(14)은 번뇌의 먹구름을 제거하고 널리 중생에게 광명을 가져다주며 월광보살(15)은 일광보살과 함께 약사여래의 협시보살이다. 수행 중의 지혜를 상징하는 분으로 중생을 인도하는 모습을 반월(半月)이 차츰 차가는 모양의 지물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그 뒤로 좌우에 부처님의 십대제자(가섭존자(16), 아난존자(17) ), 라훌라(18), 목련존자(19), 사리불존자(20), 수보리존자(21), 부루나(22), 가전연(23), 아나율(24), 우팔리(25)가 시립해 있고 법신불의 두광 좌우에 수호존인 용왕(26)과 용녀(27)가 있으며 역시 그 좌우에 팔금강(청제재금강(28), 백정수금강(29), 적성금강(30), 정제재금강(31), 벽독금강(32), 황수구금강(33), 자람금강(34), 대신금강(35) )이 외호(外護)를 하고 있다. 그 위로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법신불의 지혜와 위덕이 항상함을 증명하는 십사화불(十四化佛)-(36), (37)이 현현해 있다.
거의 모든 불화가 다 그러하기도 하지만 비로자나후불도는 특히 밀교적 요소가 강하게 배어 있다. 청정법계와 현상계, 즉 진리당체와 중생의 성불 가능성의 표현을 만다라적으로 장엄하게 구성하고 질서화하여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노사나 후불탱
보신(報身) 노사나불은 과보(報)의 몸(身)이란 뜻으로 원만무궁한 복덕(福德)을 상징한다. 부처님은 한량없는 세월동안 지어온 수 많은 행과 원으로 이루어진 결과이기 때문에 이 부처님을 ‘원만보신 노사나불’ 이라고도 한다. 보신불의 대표격으로는 서원(誓願)을 세우고 정각(正覺)을 이룬 불로서 아무런 고통이 없고 아름답기 그지없는 극락세계를 이룩한 아미타불과 약사불을 들 수 있지만, 도상(圖像)으로 나타나는 상은 보관을 쓴 보살형의 노사나불이다. 노사나불의 수인은 두 손을 들어올려 설법인을 취하는데, 이는 중생들의 설법교화에 그 뜻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이 불화에는 보관을 쓴 채 양 손을 어깨 위로 들어올려 석가세존의 최초 설법인을 짓고 있는 노사나불을 중앙의 연화대좌 위에 크게 묘사한다.
그리고 좌우 협시보살로는 비로자나불화와 마찬가지로 『화엄경』에 등장하는 문수, 보현, 법혜, 공덕림 등의 설주보살일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하부 전면에는 각각 비파와 보검을 든 동방 지국천왕과 남방 증장천왕을 배치한다.
대광명전신중탱
신중도 조선(1804年), 絹本彩色, 148 × 238cm, 경남유형문화재 제279호
신중(神衆)이란 고대 인도 신화 속에 등장하는 토속신이었으나 불교에 흡수되면서 불법을 옹호하는 수호신의 역할을 맡게 되었다. 신중탱은 대개 대웅전과 같은 주요 불전(佛殿)의 측벽(側壁)에 봉안되며, 신중을 모신 단을 신중단(神衆壇)이라고 한다.
신중탱은 종류가 다양하며 주로 무복(武服)을 입은 무사(武士)나 장사(壯士)의 형상으로 표현된다. 엄격한 도상(圖像)을 지켜야하는 불보살탱(佛菩薩幀)과는 달리 화사(畵師)의 의지에 따라 표정이나 자세가 달라진다. 따라서 신중탱은 불화를 그리는 사람의 기교와 감성이 가장 잘 표현되는 소재라고 할 수 있다.
좌측의 그림은 화면을 좌우로 구획하여, 각각 합장하고 있는 제석천(帝釋天)과 동진보살(童眞菩薩)을 중심으로 권속들이 배치되고 있다. 전반적으로 녹색과 붉은 색을 많이 썼으며, 곳곳에 당초와 연꽃 무늬를 세밀하게 그려 넣고 있다.
우측은 합장하고 서있는 4명의 천신(天神)과 팔금강(八金剛)이 상하 2단으로 배치되어 있다. 불꽃형태의 두광을 지닌 팔금강의 활달하고 해학적인 표정을 통해 작가의 능숙한 필력을 엿볼 수 있다. 길이 238㎝, 폭 183㎝ 크기의 탱화로 8금강(金剛)과 8보살(菩薩) 등의 신중을 그린 것이다. 화면은 윗부분 왼쪽에 3금강이 묘사되어 있는데 가운데 있는 금강은 합장을 하고 있고, 나머지 두 금강은 검과 삼지창을 들고 있다. 4보살(천신)은 얼굴을 풍만하게 그려 넣어 원만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도식적인 묘사에 그치고 있고, 다만 보관의 모양과 색깔을 차별하여 약간 다르게 표현하였다. 이 탱화는 원래 통도사 대광명전의 신중단에 봉안되었던 것인데 현재는 모사를 하여 봉안하고 성보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다. 1804년(순조 4) 화사인 계한(戒閑) 성인(性仁) 등이 그렸으며, 현재 경남유형문화재 제279호로 지정되어 있다.
용화전(龍華殿) - 조선(1725년), 경남 유형문화재 제204호
용화전은 대광명전과 관음전 사이에 위치하며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집으로 1369년(공민왕 18)에 초창되었으나 당시 창건주는 알 수 없으며 현재의 건물은 1725년(영조 元年)에 청성대사(淸性大師)에 의해 중건되었다고 한다. 건물 안에는 약 2미터 정도의 미륵불좌상을 봉안하였으며, 미륵불은 석가모니 다음에 출현하실 미래불(未來佛)이다. 그 부처님의 탄생하실 곳이 용화수(龍華樹) 아래이고 또 설법회상(說法會上)을 용화회상(龍華會上)이라 하므로 법당의 명칭을 용화전이라 하였다.
석가모니의 설법회상을 영산회상(靈山會上)이라 함에 비하여 이는 미래불의 용화회상을 뜻하는 법당임을 알게 한다. 즉 미륵불로서 출현하기 전까지는 미륵보살이란 칭호를 받는 석가모니의 일생보처(一生補處)로서 석가모니의 출현으로부터 56억 7천만년이란 장구한 세월이 흐르고 나서 이 세상에 출현하실 부처님이다
이 용화전 앞에는 약 2미터 높이의 발우(鉢盂)모양의 석조봉발(石造奉鉢)이 있다. 이를 봉발탑(보물 제471호)이지만, 이는 탑이 아니고 발우이다. 석조 봉발은 “석가모니의 발우(鉢盂)를 미래세(未來世)에 출현하실 미륵불에게 드리기 위해 부처님의 상수제자(上首弟子)인 가섭존자(伽葉尊者)가 발우와 함께 가사(袈裟)를 가지고 인도의 계족산(鷄足山)에서 멸진정(滅盡定)에 들어 기다리고 있다”는 불경의 내용에서 유래된 것으로 본다.
용화전미륵후불탱
용화전 조선(1798年), 견본채색(絹本彩色), 183 × 172cm, 경남유형문화재 제420호
석가모니 부처님에게서 미래에 부처님이 될 것이라는 수기(授記)를 받아 앞으로 출현하실 분을 미륵불(彌勒佛)이라고 한다. 미륵불이 출현하는 시기는 석가모니불이 열반하고 나서 56억 7천만년이 지난 후이며, 이때까지 도솔천(兜率天)의 보살로 머물면서 중생을 교화하고 있다. 따라서 미륵을 보살이라고도 하고 부처님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미륵불이 하생(下生)하실 곳은 용화수(龍華樹)아래 이므로 미륵불을 모신 법당을 용화전(龍華殿) 또는 미륵전(彌勒殿)이라고 한다. 불화로 표현될 때는 미륵보살이 도솔천궁에서 설법하고 있는 장면을 그린 미륵정토변상(彌勒淨土變相)과 용화수 아래서 미륵불이 되어 중생을 제도하는 모습의 미륵하생도(彌勒下生圖) 그리고 보관을 쓴 미륵보살이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미륵내영도(彌勒來迎圖) 등 세 가지 형식이 있다. 통도사 용화전의 불화는 바로 위의 두 번째 형식이지만 화면에는 미륵불만이 묘사되어 매우 간략한 구도를 보이고 있으며, 조선시대 불화 중 미륵불이 불전(佛殿) 후불탱으로 모셔지는 예가 매우 귀하여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현재 통도사 성보박물관에 모셔져 있다.
봉발탑(보물 제471호)
봉발탑은 용화전 앞에 서있는 것으로 무슨 용도인지는 알 수 없으나, 석가세존의 옷과 밥그릇을 미륵보살이 이어받을 것을 상징한 조형물인 것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명칭을 탑이라고 한 것은 문제가 있어, 유물의 성격상 ‘석조발우(石造鉢盂)’라고 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본다. 기본형태는 받침부분 위에 뚜껑 있는 큰 밥그릇을 얹은 듯한 희귀한 모습이다. 받침부분의 돌은 아래ㆍ가운데ㆍ윗부분으로 구성되며 장고를 세워 놓은 듯한 모양이다. 받침돌 위에는 뚜껑과 높은 굽 받침이 있는 그릇 모양의 석조물이 있다. 만들어진 연대는 연꽃조각과 받침부분의 기둥양식으로 보아 고려시대로 추정되지만, 받침부분과 그릇 모양의 조각물과는 품격의 차이가 느껴지므로 동시대의 작품인지 의문을 갖게 한다. 전체 높이는 약 230cm이고, 현재 보물 제471호로 지정되어 있다.
약 2미터 높이의 발우(鉢盂)모양의 석조봉발(石造奉鉢)인데, 이를 봉발탑(보물 제471호)이라고 하며 이는 탑이 아니고 발우이다.
이 석조물은 지대석(地臺石) 위에 하대석(下臺石)을 놓고 그 위에 부등형(不等形) 8각 간석(竿石)을 세우고 간석 위에 상대석(上臺石)을 놓았으며 그 위에 뚜껑을 갖춘 발(鉢)을 올려놓았다. 얼핏 보기에는 석등(石燈)과 같은 형식을 취하고 있으나 석등의 화사석(火舍石) 위치에 발이 놓여 있어 특이하다. 이 석조 봉발은 “석가모니의 발우(鉢盂)를 미래세(未來世)에 출현하실 미륵불에게 드리기 위해 부처님의 상수제자(上首弟子)인 가섭존자(伽葉尊者)가 발우와 함께 가사(袈裟)를 가지고 인도의 계족산(鷄足山)에서 멸진정(滅盡定)에 들어 기다리고 있다”는 불경의 내용에서 유래된 것으로 본다.
이와 같이 석조 발우는 꼭 같지는 않지만 보은(報恩)의 법주사(法主寺)경내의 희견보살상(喜見菩薩像)이 머리에 이고 있는 석조발과 같은 형식이 아닌가 생각된다. 법주사의 봉발도 원래는 용화전 앞에 놓여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관음전 조선(1725년), 경남 유형문화재 제251호
관음전은 용화전 앞에 위치한다. 곧 중로전의 중심법당인 대광명전, 용화전 관음전의 세 법당이 남북으로 나란히 놓인 가운데 제일 남쪽에 위치하는 법당이다. 관음전은 영조 원년(1725)에 용암대사(龍岩大師)에 의하여 초창되었고, 그 이후의 중수 사실은 알지 못하며 근래에 기와를 개수(改修)한 법당이다.
이렇게 창건이 늦은 법당이지만 그 전방에는 연대를 법당보다 올려야 할 석등(石燈) 1기(基)가 있다. 석등의 총고는 약 300㎝로서 그 조성수법은 용화전 앞의 석조봉발(石造奉鉢)과 비슷하다. 한 장의 넓은 지대석(地臺石) 위에 놓인 하대석(下臺石)의 시문(施紋)이 닮아 있고 무엇보다도 중간의 간석(竿石)은 부등변(不等邊) 8각으로 중간에 마디를 설치한 수법은 동일한 형식이다. 상대석 위에 놓인 화사(火舍)는 장방형(長方形) 4면에 화창(火窓)을 커다랗게 내었는데 그 형식이 신라 이래의 8각과는 다르다. 다만 상부의 옥개(屋蓋)와 보주(寶珠)는 착실하게 고식(古式)을 따르고 있다. 따라서 이 석등의 조성연대는 석조봉발의 형식을 추종한 조각수법이 나타나고 있는 점 등으로 보아 관음전보다는 앞선 조각양식으로 보아야겠다. 그러므로 이 석등은 어쩌면 용화전 앞에 본래부터 건립돼 있었으나 이후 관음전의 신축과 함께 이곳으로 옮겨 왔을 가능성이 짙은 중요한 유물이라 하겠다.
관음전 내에는 관세음보살상(觀世音菩薩像)을 봉안하였으며, 본래는 사찰의 중요한 유물이 이곳에 보관 전시되어 있었으나 현재는 모두 박물관으로 옮겨졌다. 관음신앙은 삼국시대부터 크게 유행하여 조선시대에 이르러 중생의 괴로움과 어려움을 구원하기 위하여 시방 모든 국토에 몸을 나투시는 대비보살(大悲菩薩)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관음전은 전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八作)지붕 형태로서 내벽(內壁)에는 보타락가산(補陀洛迦山)에 계신 관음의 모습과 남순동자(南巡童子)의 형상을 나타내기도 하였고 32응신(應身)을 상징하는 여러 형태의 관음상을 표현하기도 하였다. 관음보살상은 화려한 화관(花冠)을 쓰고 있으며 두 손으로는 기다란 연꽃과 같이 처염상정(處染常淨)함을 나타내는 것이고, 나아가 중생의 모든 번뇌를 감로(甘露)의 법수(法水)로써 씻어주는 대자대비(大慈大悲)의 상징으로 나아가 십일면관음(十一面觀音) 또는 천수천안관세음보살(千手千眼觀世音菩薩)을 말하는 것은 중생의 괴로움과 어려움을 구원하기 위하여 시방 모든 국토에 몸을 나투시는 대비보살(大悲菩薩)의 기능적인 면을 나타낸 것이다. 관음전은 전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八作)지붕 형태로서 내벽(內壁)에는 보타락가산(補陀洛迦山)에 계신 관음의 모습과 남순동자(南巡童子)의 형상을 나타내기도 하였고 32응신(應身)을 상징하는 여러 형태의 관음상을 표현하기도 하였다. 내벽 대들보의 사자문 단청이라든지 하늘을 나르는 비천상(飛天像)의 불화(佛畵)등은 특색있는 작품이다.
관음전후불탱 관음보살도
일체 존재의 상태를 관찰함에 자유자재한 지혜를 갖추고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중생을 구제하시는 분이 관세음보살이시다. 이러한 관세음보살을 모신 사찰의 전각을 관음전(觀音殿)·원통전(圓通殿)·보타전(補陀殿 또는 寶陀殿) 등으로 부르고 있다. 관세음보살을 모신 전각이 사찰 전체에서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때는 관음전이라 하고, 관세음보살을 모신 전각이 사찰의 중심 법당(法堂)이 될 때 원통전, 또는 보타전이라 한다. 원통전은 관세음보살이 모든 곳에 두루하는 원융통(周圓融通)을 갖추고 중생의 고뇌를 씻어주기 때문에 그 권능과 구제의 측면을 강조한 명칭이며, 보타전은 관세음보살의 상주처인 보타락가산(補陀落迦山)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나라의 관음신앙은 주로 『화엄경(華嚴經)』 『법화경(法華經)』 『아미타경(阿彌陀經)』 『능엄경(楞嚴經)』을 중심으로 하여 전개되었다.
『화엄경』에 의하면 관세음보살은 광명의 행을 성취하여 일체 중생을 교화하고 성숙케 하며 아울러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가난에 대한 공포, 얽매임의 공포, 쟁송(諍訟)의 공포, 어리석음의 공포, 살해의 공포, 악도(惡道)의 공포, 윤회의 공포 등을 비롯한 모든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한다고 설해져 있다. 또한 『법화경』에 의하면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마음에 간직하고 염불하면 큰 불도 능히 태우지 못하고, 홍수에도 떠내려가지 않으며, 모든 악귀도 괴롭힐 수 없다. 칼과 몽둥이는 부러지고 수갑과 족쇄는 끊어지고 깨어진다. 또 중생의 마음속에 있는 불안과 두려움을 제거하고 삼독(三毒)을 여의게 하며, 아들이나 딸을 바라는 이에게는 뜻에 따라 자식을 얻게 한다.
그리고 방편의 힘으로 33응신을 나타내어 중생을 이익케 하고 제도하신다. 『아미타경』에서는 아미타불의 왼쪽 보처(補處)로서 아미타불의 원을 받들어 중생을 보살피고 도와줄 뿐 아니라, 극락정토에 왕생하는 자들을 인도한다. 『능엄경』의 경우도 관세음보살의 현세이익과 중생구제의 내용은 『법화경』과 거의 같이 설해져 있다. 즉, 모든 경전에 나타난 관세음보살의 공통점은 부처님의 절대적 자비심인 무연대비(無緣大悲)를 중생에게 베풀어서 모든 속박으로부터 벗어나고 어떠한 고난이나 재액에서도 관세음보살을 칭념하면 반드시 해탈을 얻게 된다는 것인데, 그 칭념을 통해서 관세음보살과 중생은 일체감을 형성하고 그 일체감 속에서 자비로운 원력이 작용하여 소원을 성취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관세음보살에 대한 신앙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 관세음보살도인데 일본에 있는 고려시대의 작품들을 제외하면 현재 우리나라 사찰에 있는 관세음탱화는 대부분 17세기 이후에 조성된 것이다.
도판인 통도사 관음전의 후불탱화도 1858년에 조성된 것으로, 본존인 관세음보살에 비해 양협시인 남순동자(南巡童子, 또는 善財童子)와 해상용왕(海上龍王)은 작게 그려져 관세음보살님의 위의가 한껏 강조되어 있다.
해안고절처에 기암괴석과 반석을 배경으로 왼쪽 무릎을 세우고 백의(白衣)를 걸친 관세음보살①의 머리에 쓴 보관(寶冠)에는 부처님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이 부처님은 관세음보살이 본사(本師)로 삼고 항상 모신다고 한 아미타 부처님이다. 백의는 대비의 공덕을 모두 갖추고 널리 중생을 교화함을 상징한다.
오른쪽 아래에 합장하고 서 있는 남순동자②는 『화엄경』의 입법계품에 근거하여 묘사한 것이며, 왼쪽에 시립해 있는 해상용왕③은 관세음보살의 자비심이 바다와 같이 깊고 넓음을 증명하고 있다. 정병④에는 불사(不死)의 감로수가 들어 있고 버들가지는 어리석음과 번뇌, 미망(迷妄)을 제거하고 중생의 마음에 뿌린 보리심의 종자가 지닌 각종의 공덕을 상징한다. 청죽⑤은 화엄 초조 의상대사에서 연유한다. 따라서 청죽의 표현은 다른 나라의 관음탱화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우리만의 모습이기도 하다. 관세음보살의 우측상단에는 채운(彩雲)과 함께 관음조(⑥, 觀音鳥)가 날고 있으며 바다로부터 솟아오른 기암고절처는 정교한 준법에 청록산수로 표현되어 전체적으로 회화적 분위기가 넘쳐흐르고 있다.
관음탱화는 이와 같은 도상형식을 통하여 대비삼매에 머무르며 천수천안(千手千眼)으로 중생의 고통을 살피고 자비의 손길로 인도하시는 관세음보살님의 서원을 시각적으로 구현하고 있다.
통도사 석등(경남유형문화재 제70호
관음전 전방에는 석등(石燈)이 있는데, 높이는 약 300㎝로서 그 조성수법은 용화전 앞의 석조봉발(石造奉鉢)과 비슷하여 고려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상부의 옥개(屋蓋)와 보주(寶珠)는 착실하게 고식(古式)을 따르고 있다. 등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을 중심으로, 아래에는 8각의 받침돌을 3단으로 쌓고 위로는 지붕돌과 머리장식을 얹었다. 아래받침돌의 옆면에는 안상(眼象)을 얕게 새겼고, 윗면에는 엎어놓은 연꽃무늬를 조각했으며, 가운데기둥은 중앙에 3줄의 테를 둘렀다. 윗 받침돌에는 위로 솟은 연꽃무늬를 장식하고, 4각의 화사석은 각 면에 네모난 창을 크게 뚫어 불빛이 퍼져 나오게 하였다. 지붕돌은 귀퉁이마다 꽃장식을 달았으며 꼭대기에는 노반(露盤)과 보주(寶珠)를 놓아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여러 가지 양식뿐만 아니라 화문(花紋)의 조식(彫飾)으로 보아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짐작된다. 전체 높이는 약 350cm이고, 현재 경남유형문화재 제70호로 지정되어 있다
개산조당(開山祖堂)
개산조당은 용화전 옆 서쪽에 위치한다. 통도사의 창건주 자장율사의 영정을 봉안한 아담한 전각이다. 전각 정면에 개산조당이라는 현판이 붙은 솟을문은 해장보각의 조사문으로서 ‘솟을삼문’형식이며 해장보궁(海藏寶宮)으로 통하는 문의 3칸 건물인데 중앙 칸이 양 측면 칸보다 높게 솟아 ‘솟을삼문’이라고도 한다. 3칸 모두 두 쪽의 널문을 달아 여닫을 수 있도록 하였으며 건물형식은 조선시대 말기의 수법으로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사당(祠堂)의 솟을삼문과 같다.
해장보각(海藏寶閣)
이 건물의 창건은 영조 3년(1727)이고 그 후 고종 4년(1900)에 고산대사(古山大師)가 중수하였다. 자장율사의 영정을 봉안한 해장보각은 정면 3칸, 특면 2칸의 맞배집으로 앞쪽에 툇간을 달은 형식을 취하고 있어 내부 앞쪽에 내진(內陣 : 안두리)기둥이 배치되어 있다.
이 집을 해장보각이라고 한 것은 불경의 보관처를 용궁(龍宮)에 두기도 하고 또 대장경(大藏經)진리의 내용이 바다 속의 수많은 보배에 비유되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즉 용궁보각(龍宮寶閣)에서 유래된 것으로 짐작된다. 따라서 자장스님의 영정을 봉안한 전각을 해장보각(海藏寶閣)이라고 한 것은 『삼국유사』에 이미 기록된 바와 같이 자장스님이 중국으로부터 가지고 온 대장경을 통도사에 봉안하였다는 사실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즉 “정관(貞觀) 17년(643)에는 자장율사가 삼장(三藏 : 經藏, 律藏, 論藏) 400여 상자를 싣고 돌아와서 통도사가 국내 최초의 대장경 봉안하였다.”(삼국유사(『삼국유사』전후소장사리조)고 한 내용은 이미 삼국시대에 통도사가 국내 최초의 대장경 봉안(奉安) 사찰이 되었음을 뜻하는 것이며, 나아가 이 대장경이 다른 사람 아닌 창건주(創建主) 자장율사에 의하여 봉안되었던 사실을 감안하여 그 영각(影閣)에 들어오는 문을 개산조당이라 하였고, 영각 자체를 해장보각이라고 한 것으로 생각된다. 현재 해장보각 내부에는 자장율사 진영 주변에 고려대장경(高麗大藏經) 1,234권을 봉안해 놓았다.
자장율사의 영정은 길이 170㎝에 폭100㎝로서 그 제작은 순조(純祖) 4년(1804)이다. 전체적인 배경은 청록색(靑綠色)에 홍색(紅色) 등받이를 한 의자에 앉은 모습으로 나타냈다. 의자의 형태는 단조롭고 통견(通肩)의 법의(法衣) 속에 가부좌한 것으로 보인다. 의좌에 정좌(正坐)하여 전방을 주시하는 모습이 매우 자애로우면서도 수행자의 독특한 의지를 여실히 나타내는 모습이다. 그림의 상부에는 별도로 목조운각(木造雲閣)을 단조롭게 처리하여 좌우에 청룡(靑龍), 황룡(黃龍)을 조각하였다.
자장율사 진영(조선朝鮮1804년 견본채색絹本彩色147.5×96.5 경남유형문화재 제276호
해장보각에 봉안되었던 통도사의 개산조開山祖인 자장율사의 진영이다.
좌팔분면左八分面의 의자상이나 가부좌한 자세이며, 왼손에는 불자拂子를 잡고 오른손으로는 불자의 술을 만지고 있는 모습이다.
배경은 크게 2단 구성을 보여 준다. 상단은 짙은 녹색이고 하단은 돗자리를 묘사하고 있는데, 백색이 어서 강한 색채대비를 준다.
이 진영의 봉안처인 개산조당開山祖堂이 1727년(영조 3)에 건립되었으나, 진영의 조성연대는 1804년이므로 이 진영에 앞서는 자장율사의 진영이 봉안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홍색 가사와 녹색 장삼이 강렬한 색채대비를 보여주나, 같은 농염의 채색을 반복해 사용하고 있고, 음영이 표현된 필선은 힘이 빠져 조성연대가 조선후기임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안면顔面에서 풍기는 인상은 고승의 위엄을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다. 화사畵師는 성인成仁과 계한戒閑비구이다.
37조도품탑(助道品)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수행하는 37가지의 방법을 말합니다.
즉 4염처(念處), 4정근(正勤), 4여의족(如意足), 5근(根), 5역(力), 7지(覺支), 8정도(正道) 등을 모두 합한 것입니다.
37보리도법(菩提道法)이라고도 하는데, 이러한 수행 방법을 통해서 깨달음을 성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념처에 대한 경전의 말씀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한때 부처는 <우루벨라>촌 <나이란자라>강 곁에 있는 보리수 밑에 계셨는데, 부처되신지 오래지 않으셨다. 그 때 세존은 홀로 고요히 선정 속에 들어 계시다 이렇게 생각하셨다.
일승(一乘)의 도가 있어서 능히 뭇 삶들을 깨끗이 하고 온갖 근심과 슬픔을 제도하고 고통과 번뇌를 없애 진여(眞如)의 법을 얻게 하나니 이른바 네 가지 곳을 생각함[四念處]이다. 네 가지 살필 곳이란 무엇일까. 몸이 살피어 생각할 곳이요, 느낌[受] ? 마음[心] ? 법[法] 등이 살피어 생각할 곳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네 곳 생각하기를 즐겨하지 않으면 성스러운 법을 즐겨하지 않는 것이요, 성스러운 법을 즐겨하지 않으면 감로법을 즐겨하지 않는 것이요, 감로법을 즐겨하지 않으면 태어남 ? 늙음 ? 병 ?죽음과 근심 ? 슬픔 ? 괴로움 ? 번민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만일 네 곳 생각하기를 즐겨 닦으면 성스러운 법을 즐겨 닦는 것이요, 성스러운 법을 즐겨 닦으면 감로법을 즐겨 하는 것이요, 감로법을 즐겨하면 태어남 ? 늙음 ? 병 ? 죽음과 근심 ? 슬픔 ? 괴로움 ? 번민을 벗어나게 될 것이다.
사념처 각 지분의 개념
① 신념처(身念處)
수행을 함에 있어서 자신의 몸을 잘 관찰하라는 뜻이다. 내 몸이 탐욕을 일으키는 근원처가 되기 때문에 몸을 잘 관찰하여 탐욕이 일어나지 않도록 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몸을 탐욕을 일으키는 원인으로 보는 것은 부정관(不淨觀)에 의한 수행법이다.
② 수념처(受念處)
마음의 감수성에 해당하는 수심소(受心所)는 우리가 하나하나의 대상을 받아들일 때 고통스럽게 받아들이기도 하고(苦受), 즐겁게(樂受 )또는 기쁘게(喜受), 근심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憂受). 또 하나는 고락이나 희수가 아닌 평등한 마음으로 평온하게 받아들이는 사수(捨受)가 있다. 우리의 우매한 마음은 진리를 망각하고 모든 것을 다 괴로움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우리가 마주치는 대상을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의 마음 작용이다. 이와 같은 원리를 관하여 괴로움이 생기게 되는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 수행이다.
③ 심념처(心念處)
내 마음이 물질을 집착한 것이기 때문에 집착의 원인은 내 마음에 있다고 본 것이다. 그렇게 집착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를 알게 되면 집착하는 마음을 제거할 수 있다.
④ 법념처(法念處)
대상과 자아의 실체가 없고 내 소유도 없다고 관하는 관법무아[觀法無我] 존재 자체를 실체화시키는 생각을 끊게 하는 것. 법(法)은 자주(自主)하거나 자재(自在)한 성품이 없으므로 무아라고 관하는 것. 제법의 실상이 공함을 자각할 때 제법실상의 체성을 보게 된다.
사정단
4정근이라고도 하며 모든 악을 끊고 선(善)을 키우기 위해서 정진하는 것입니다.
사정단에 대한 경전의 말씀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한 때에 붇다는 <수라바스티>국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장자의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수행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내 가지 바른 끊음이 있으니 첫째는 끊을 것을 끊음[斷斷]이요, 둘째는 몸가짐을 잘 가져 끊음[律儀斷]이요, 셋째는 생각을 지키어 끊음[隨護斷]이요, 넷째는 닦아 끊음[修斷]이다.
끊을 것을 끊음이란 무엇인가. 수행자가 이미 일어난 악한 법을 끊으려는 마음을 내어 방편으로 꾸준히 힘써 거두어들이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악한 법은 일어나지 않게 하려는 마음을 내어 방편으로 힘써 거두어들이며, 아직 생기지 않은 착한 법은 일어나게 하려는 마음을 내어 방편으로 힘써 거두어들이고, 이미 생긴 착한 법은 더욱 닦아 익히려는 마음을 내어 방편으로 꾸준히 힘써 거두어들이면 이것을 끊을 것을 끊음이라 한다.
무엇이 몸가짐을 잘 가져 끊음인가. 만일 수행자가 눈을 잘 단속하여 은밀히 조복하고 나아가고, 이와 같이 귀, 코, 혀, 몸, 뜻을 은밀히 조복하여 나아가면 이것을 몸가짐을 잘 가져 끊음이라 한다.
무엇이 생각을 지키어 끊음인가. 수행자가 여러 진실한 삼매를 잘 지키는 것이니 사람이 죽으면 그 몸이 파랗게 썩는다는 생각, 문드러진다는 생각 등 부정관(不淨觀)을 닦아 익히 물러가거나 사라지지 않게 하면 이것을 생각을 지키어 끊음이라 한다.
무엇이 닦아 끊음인가. 만일 수행자가 네 가지 곳 생각함[四念處]을 닦으면 이것을 닦아 끊음이라 한다.
사정단 각 지분의 개념
①단 단(斷 斷)
일어나는 악법을 끊고 또 끊는 것. 끊을 것을 끊음. 이미 생긴 악을 끊기 위해서 힘쓰는 것입니다.
②율의단(律儀斷)
계율을 견지하고 위의를 신수(愼守)하여 악이 일어나지 못하게 함. 몸가짐을 잘 가져 끊음. 아직 생기지 않은 악을 끊기 위하여 힘쓰는 것입니다.
③수호단(隨護斷)
무루(無漏)의 정도(正道)를 따라 수호하여 악법이 일어나지 못하게 함. 생각을 지키어 끊음. 아직 나타나지 않은 선을 나타내기 위하여 힘쓰는 것입니다. 즉 부처님의 정도(正道)를 보호하여 악법(惡法)이 일어나지 않게 하여 선이 생기도록 힘쓰는 것을 말합니다.
④수 단(修 斷)
능히 닦음으로 정도를 지으며 그것을 생장하도록 하여 모든 악을 단제(斷除)함 . 닦아 끊음. 사념처관을 하여 닦아 끊음. 이미 생긴 선을 잘 키우는 것을 말합니다.
사여의족
4신족(神足)이라고도 한다. 노력하지 않아도 수행이 뜻과 같이 잘되는 것을 말합니다.
사여의족에 대한 경전의 말씀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한 때에 붇다는 <코삼비>국 <고시카라마> 동산에 계시었고 존자 아난다도 거기 있었다. 그 때 어떤 바라문이 존자 아난다에게 나아가 인사한 뒤 한쪽에 앉아 아난다에게 물었다.
존자여 무엇 때문에 사문 고오타마 밑에서 범행(梵行)을 닦습니까?
탐욕과 애착을 끊기 위해서입니다.
존자 아난다님, 무엇을 의지해서 탐욕과 애착을 끊을 수 있습니까?
바라문이여, 하고자 함[欲]을 의지해 탐욕과 애착을 끊습니다.
존자 아난다님, 그렇다면 그 하고자 함은 끝이 없는 것이 아닙니까?
바라문이여, 그것은 끝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존자 아난다님, 어떻게 해서 끝이 없는 것이 아닙니까 ?
바라문이여, 비유로써 내가 물어볼 테니 마음 먹은 대로 대답해 보시오. 바라문이여, 그대는 어떤 하고자 함이 있어서 이 정사(精舍)에 온 것이 아닙니까 ?
그렇습니다. 아난다님.
그렇다면 바라문이여, 이미 정사에 왔으니 그 하고자 함은 쉬지 않았습니까 ?
그렇습니다. 존자 아난다님.
정사에 오기 위해 노력하고 준비하고 계획해서 결국 이 정사에 이르렀으니까 그 계획 등을 쉰 것입니다. 존자 아난다는 그 바라문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바라문이여, 여래 등정각께서 알고 보시는 것도 이와 같으니 여래는 네 가지 여의족[四如意足]을 말씀하시어 일승의 도로써 중생을 깨끗이 하고 괴로움을 없애주며 근심과 슬픔을 끊어줍니다. 그 넷이란 하고자 함[欲]으로 선정을 얻어 번뇌를 끊고 성취하는 여의족과, 힘써 나아감[精進],마음[心]의 휴식, 사유[思惟]의 휴식으로 선정을 얻어 번뇌를 끊고 성취하는 여의족입니다. 이와 같이 성스러운 제자는 하고자 함으로 선정을 닦아 여의족을 얻음으로써 떠남과 욕심 없음과 벗어남과 없어짐으로 그 하고자 함도 또한 쉽니다. 또한 힘써 나아감, 마음의 휴식, 사유의 휴식으로 선정을 닦아 여의족을 얻음으로써 평등[捨]을 향하고 마침내는 힘써 나아간다는 생각과 선정을 닦는다는 그 사유까지 쉽니다. 바라문이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것이 곧 끝이 아닙니까?
바라문은 말하였다.
존자 아난다님, 그것은 곧 끝이요, 끝 아님이 아닙니다.
그 때 바라문은 존자 아난다의 말을 듣고 기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갔다.
사여의족 각 지분의 개념
①욕여의족(欲如意足)
수승한 선정을 얻으려고 간절하게 원하는 것. 도심(求道心)이 강렬하여 하고자 하는 대로 수행이 잘 되는 것입니다.
②염여의족(念如意足)
정념(正念)이 한결같이 지속되는 것입니다.
③진여의족(進如意足)
쉬지 않고 한결같이 나아가는 것 , 정진여의족 정진신족(精進神足)이란 정진이 저절로 잘 되는 것입니다.
④사유여의족(思惟如意足)
사유하여 저 이치의 마음에 해태하여 흩어지지 아니하는 것. 선정(禪定)이 한결같이 잘 진행되는 것입니다.
오근
불법 가운데 도의 뿌리를 깊이 내려 세속법에 흔들리지 않도록 하는 수행법을 말합니다.
오근에 대한 경전의 말씀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한 때에 붇다는 <슈라바스티>국 <제타> 숲 <외로운 이 돕는 장자의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수행자들에계 말씀하셨다. 우리를 동요 없는 자기 확신의 땅에 이르게 하는 다섯가지 근본[五根]이 있다.
그것은 곧 믿음[信根], 정진[精進根], 살펴 생각함[念根], 선정[定根], 지혜[慧根]다. 어떤 것이 믿음인가. 성인의 예지는 여래에 대해 믿는 마음을 일으키되, 그 근본이 견고하여 모든 하늘, 악마, 바라문과 세간법으로는 무너뜨릴 수없는 것이니 이것을 믿음이라 한다. 이른바 네 가지 곳 생각함이다. 어떤 것이 선정인가. 네 가지 선정의 실천이다. 어떤 것이 지혜인가. 이른바 네가지 거룩한 진리이다.
이 여러가지 공덕은 다 지혜를 그 으뜸으로 하나니 마치 집을 마룻대를 으뜸으로 하는것과 같다.붇다께서 이 가르침을 말씀하시자 여러 수행자들은 붇다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오근 각 지분의 개념
① 신근(信根)
불법승 삼보와 고집멸도 사성제의 이치를 관하는 것. 삼보와 사제를 믿는 것. 삼보와 사제법의 진리야 말로 나를 완벽한 행복으로 인도한다는 확고한 믿음, 신념이 도법에 굳게 뿌리를 내리는 것입니다.
② 진근(進根)
용맹하게 선법(善法)을 닦는 것, 정진근. 의심이나 갈등없이 번뇌와 망상없이 노력하게 하는 마음 정진근(精進根)이란 정진함에 있어서 물러섬이 없는 것입니다.
③ 염근(念根)
대경(對境)을 마음에 머물러 두고 있지 않는 작용. 정법을 억념(憶念)하는 것. 경계의 끄달림을 끊고 오로지 념념상속(念念相續) 하는 것. 불법을 항상 생각하는 데 뿌리를 내리는 것입니다.
④ 정근(定根)
마음을 일경(一境)에 주지(住止)시켜 흩어지지 않게 하는 것. 선근공덕 발생의 근원밖으로 경계에 매이지 않고 안으로 어지럽지 않은 것. 선정에 뿌리를 내리는 것입니다.
⑤ 혜근(慧根)
진리를 생각하는 것. 진리를 깨닫게 하는 수승한 능력. 제법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되는 것. 불법의 진리를 여실히 아는 바른 지혜에 뿌리를 내리는 것입니다.
오력
열반을 증득하기 위한 수행 방법으로서 뛰어난 작용을 하는 다섯 가지 힘을 말합니다.
오력에 대한 경전의 말씀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한 때에 붇다는<슈라바스티>국 <제타> 숲 <외로운 이 돕는 장자의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수행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우리를 진리 안에 굳건히 세워두는 다섯가지 힘이 있다. 그것은 곧 믿음의 힘, 정진의 힘, 생각의 힘, 지헤의 힘이다. 믿음의 힘이란 네 가지 무너지지 않는 깨끗한 믿음[四不壞淨]이요, 정진의 힘이란 네가지 곳 생각함[四念處]이요, 선정의 힘이란 네가지 선정[四禪]이며, 지혜의 힘이란 네가지 거룩한 진리[四聖諦]임을 알아야 한다.”
붇다께서 이 가르침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붇다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오력 각 지분의 개념
① 신력(信力)
신근을 증장시켜 사신(邪信)을 파하는 것. 불법을 믿고 다른 것을 믿지 않는 것
②진력(進力)
진근을 증장시켜 해태(懈怠)를 파하는 것. 선법을 짓고 악을 폐하기에 부지런한 것
③염력(念力)
염근을 증장시켜 사념(邪念)을 파하는 것. 사상을 바로 갖고 삿된 생각을 버리는 것
④정력(定力)
정근을 증장시켜 난상(亂想)을 파하는 것. 선정을 닦아 어지러운 생각을 없애는 것
⑤혜력(慧力)
혜근을 증장시켜 제혹(諸惑)을 파하는 것. 지혜를 닦아 사성제를 깨닫는 것
칠각지
깨달음으로 이끌어 주며, 깨달음에 도움이 되는 일곱 가지의 수행 방법을 말합니다. 범어로는 bdjjhanga (보장가)로 불려지며, 7각분, 7보리분법 으로 한역되기도 한다. 7각지는 지혜의 요소라고도 표현되며 깨달음을 얻기 위해 유용한 7가지 상황으로 마음의 상태에 따라 존재를 관찰함에 있어서의 주의, 방법을 7가지로 정리한 것이다.
칠각분에 대한 경전의 말씀
이와같이 내가 들었다.
한 때에 붇다는<슈라바스티>국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장자의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수행자들에계 말씀하셨다.
일곱가지 깨달음에 이르는 길[七覺支]을 닦아야 한다. 어떤 것이 일곱인가. 곧 바른 생각[念覺分]과 나아가서는 버림[捨覺分]이다. 만일 수행자가 바른 생각[念]을 닦으면 멀리 떠남과 욕심 없음과 번뇌 사라짐에 의햐여 열반으로 나아가게 된다. 이와감이 존재를 바르게 가림[擇法], 힘써 나아감[精進], 기뻐함[喜], 쉼[倚], 선정[定]을 닦으면 떠남과 욕심 없음과 번뇌 사라짐에 의하여 열반으로 나아가게 된다.
붇다께서 이 가르침을 말씀하시자 여러 제자들은 그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칠각분 각 지분의 개념
① 택법각분(擇法覺分)
택법이란 간택, 분별하는 지혜를 의미한다. 수행자가 가르침 가운데에서 진실된 것을 선택하고 거짓된 것을 버리는 것으로 선택하는 항상 반야도리에 비추어 보아야 한다. 공부를 해나갈 때에도 부질없이 상대유한적인 문제로 의심하면 참다운 반야지혜가 되지 못한다. 또한 어떤 법이 자기한테 맞는가 간택하는 것이다 자기의 성질, 원래품성을 잘 헤아려서 택법을 하도록 해야 한다.
② 정진각분(精進覺分)
택법을 잘한 뒤에는 그것을 끝까지 밀고 나갈 수 있는 정진력이 있어야한다. 굳은 신념과 무서운 의지력을 가지고 부지런히 애쓰는 것이 또한 깨달음의 조건이다.
③ 희각분(喜覺分)
진실의 가르침을 실행하여 얻어지는 기쁨이다. 마음에 좋은 법을 얻어서 깨달음으로 가면 기쁨이 있다. 기쁨을 느끼면 수행에 진전이 있게 된다. 이 때에는 얻는 법에 확신이 생기고, 자기가 걸어가는 길에 자신이 생기게 된다. 이때의 기쁨은 상대적이고 세속적인 기쁨이 아니고 삼매에서 얻어진 기쁨이기 때문에 절대적인 기쁨이다.
④ 제각분(除覺分)
거칠고 무거운 번뇌를 제거하므로 몸도 마음도 가벼워지고 편안하게 되는 것이다. 몸과 마음에서 긴장, 불안, 초조가 사라지고 몸이 가벼워지고 마음은 더욱더 맑아지고 적적해진 상태이다. 이런 상태를 경험하면 이에 마음을 두어 관찰하면서 그것을 계속 지속시키려고 노력해야한다. 또한 마음과 몸이 평안하게 되고 마음이 가라앉으면 삼매의 세계로 들어가서 깨달음을 얻게 된다.
⑤ 사각분(捨覺分)
우리의 마음에 괴로움을 주는 일은 물론이거니와 즐거움을 주는 대상도 마음을 움직여 공부에 장애가 되므로 내려놓아야 한다. 무엇이 좀 안되면 그것 생각하느라고 공부가 안되고 또 잘되면 잘되었다고 생각하느라 공부 못하니 어떠한 일도 법성자리에서는 중요한 일이 아니므로 공부할 때는 다 내려놓아야 한다.
⑥ 정각분(定覺分)
모든 일에 마음이 집중되어 그것과 하나가 되면 망상이 들어올 틈이 없어져서 외부의 자극도 받지 않고, 안으로는 망상도 일어나지 않게 되니, 이때 고요하고 순일한 상태에 다다르게 된다. 이와 같은 삼매 의 깊은 체험은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깨달음이 솟아나는 샘이다.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수행인은 반드시 이러한 세계를 경험해야 한다. 이런 경지에 도달하면 번뇌와 망상이 끊어지고,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이 지혜와 자비로움 그 자체로 나타나고, 과거의 망상이 깨달음으로 바뀐다. 그러나 이 단계에서 깨달음을 다시 관찰하는 힘을 얻어야한다. 이 단계가 수행의 마지막이 아니라 참수행의 시작이다.
⑦ 염각분(念覺分)
한결같은 생각으로 깨달음의 길을 가는 것이다. 마음은 있다가도 없어지고, 없다가도 생기는 법이니, 일어난 마음이 한결같은 삼학의 길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마음을 관찰하여 한결같이 머물러야한다. 그러면 마음을 일으키기도 하고 더욱 증진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팔정도
멸성제(滅聖諦)를 성취하는 수행 방법을 말합니다. 정견(正見) 즉 바른 견해, 정사(正思) 즉 바른 사유, 정정진(正精進) 즉 바른 노력, 정념(正念) 즉 바른 명심, 정어(正語) 즉 바른 말, 정업(正業) 즉 바른 행위, 정명(正命) 즉 바른 생활, 정정(正定) 즉 바른 명상 등 여덟 가지는 열반으로 이끌어 주는 최선의 길입니다.
팔정도에 대한 경전의 말씀
이와같이 내가 들었다.
한 때에 붇다는 <슈라바스티>국 <제타> 숲 <외로운 이 돕는 장자의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수행자들에계 말씀하셨다.
“삿됨과 바름이 있느니 자세히 잘듣고 잘 생각하여야 한다. 이제 너희들을 위해 설명하겠다. 어떤 것이 삿됨인가. 삿된 견해와 나아가서는 삿된 선정이다. 어떤 것이 바름인가. 바른 견해와 나아가서는 바른 선정이다.
<![endif]> 그 가운데 바른 견해란 무엇인가. 자기 자립성을 가지고 있되[不斷] 관계를 통해 변해가는[不常] 현실에 대한 바른 견해란 타인에 대한 보시가 있고 여래의 교설과 제(諦)가 있고 선한 행위 악한 행위와 그 행위의 과보가 있고, 이 세상과 다른 세상이 있고 부모가 있고 중생의 태어남[生]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유위인과에 대한 정견). 그리고 (현실법은 연기된 것이므로 자성이 없는 것이니) 현실의 질곡속에 묶임이 없이 아라한이 열반으로 잘 향하고 잘 이르러, 이 세상과 다른 세상에서 존재의 실상을 스스로 알고 깨치는 것이다.
그는 존재의 실상을 바르게 깨침으로써 나의 태어남[生]은 이미 다하고[我生已盡] 깨끗한 행은 이미 정립되고[梵行已立] 해야 할 일을 빠뜨림 없이 모두 마쳐[所作已作]이 다음의 집착된 생존을 다시는 받지 않음[不受後有]을 스스로 알게 되는 것이다.
어떤 것이 바른 사유인가. 탐욕을 벗어난 뜻, 성냄이 없는 뜻, 남을 해치지 않는 뜻이다.
어떤 것이 바른 말인가. 거짓말,두 말,나쁜 말,번지르르하게 꾸미는 말을 떠남이다.
어떤 것이 바른 행위인가. 살생과 도둑질과 사음을 떠남이다.
어떤 것이 바른 생활인가. 의복, 음식, 잠자리, 의약품을 구해 쓰고, 법답지 않게 구하지 않음이다.
어떤 것이 바른 방편인가. 해내고자 하는 열망[欲]과 정진(精進)의 방편이니 번뇌를 떠나며, 부지런하고 조심하여 항상 물러섬이 없이 실천해 나가는 것이다.
어떤 것이 바른 생각인가. 존재의 실상을 그대로 따르는 생각이나 헛되고 망녕되이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어떤 것이 바른 선정인가. 마음을 어지럽지 않은데 머물러 두고 굳게 거두어 가져, 고요히 삼매(三昧)에 든 한 마음[一心]이다.
붇다께서 이 가르침을 말씀하시자 여러 수행자들은 그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팔정도 각 지분의 개념
① 정견(正見)
정견은 ‘바로 봄’을 뜻한다. 곧 올바른 견해이다. 이 정견은 유무(有無)의 편견을 벗어난 정중(正中)의 견해이다. 곧 사(邪)와 정(正)을 분별하는 견해이고 바른 견해로 편견없이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 여실지견(如實知見)이라고도 한다. 바로 보는 것이 바른 삶의 시작이다. 즉 사제(四諦), 십이연기, 삼법인의 진리를 바로 보는 것을 가리킨다. 이러한 진리의 통찰과 함께 참된 깨달음으로 우주와 인생에 대한 바른 사고 방식을 수립하는 것이다.
② 정사유(正思惟)
정사유는 올바른 생각이다. 다시 말하면 자신의 입장을 바르게 생각하는 것을 말하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고 이치에 맞게 생각하는 것이다. 또한 ‘바르게 사유한다. 바르게 마음 먹는다’는 뜻으로 ‘생각 할 바’와 ‘생각 안할 바’를 바르게 잘 분간하는 것이다.
③ 정업(正業)
올바른 행위, 살생이나 도둑질 따위의 악한 행위를 하지 않고 선한 행위를 하는 행동이고 바른 생각과 바른 이치에 맞는 행동을 하는 것이다. 이것도 역시 ‘바른 견해’의 적극적 실천인 것이다.
④ 정어(正語)
올바른 말, 곧 온갖 망령된 허망한 말[妄語], 삿된 말[邪語] 등을 하지 않는 말이 정어이다. 올바른 생각에 의해 하는 말이고 항상 바른 생각과 바른 말을 하여 구업을 짓지 말고 상대방을 존중하는 부드러운 말을 해야 한다. 이는 ‘진실되고 올바른 언어생활’을 말한다. 즉 거짓말, 꾸며대는 말, 서로 이간시키는 말, 남을 성나게 하는 말 등을 하지 않는 것으로 ‘바른 견해’의 적극적 실천이다.
⑤ 정명(正命)
‘올바른 생활 수단’을 말하는 것으로 바른 견해에 입각한 전체적인 생활에 있어 바른 몸가짐과 마음가짐을 실천하는 것이다. 이는 곧 정당한 방법으로 의식주(衣食住)를 구하는 것으로 남과 나를 다같이 이롭게 하는 바른 직업을 갖는 것도 그 뜻의 하나이다.
⑥ 정정진(正精進)
올바른 노력, 한 마음으로 노력해 나가는 것을 뜻한다. 이는 곧 노력으로 인하여 아직 발생하지 않은 악을 일어나지 못하게 하며, 일어나지 아니한 선을 발생하게 하는 일이며, 옳은 일에는 물러섬이 없이 밀고 나가는 정열과 용기를 뜻하기도 한다. 이는 바로 불자의 구도 자세라 할 수 있다.
⑦ 정념(正念)
올바른 정신과 생각, 사념(邪念)을 버리고 항상 향상을 위하여 정신을 집중시키는 것을 말하며, 바른 생각을 말한다. 또한 ‘바르게 기억 하는 것’으로 생각할 바에 따라 잊지 않는 것이다. 참된 진리를 항상 명심하고 기억하여 다른 잡념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은 정사유와 함께 내면적인 마음의 기초를 확고하게 다지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그 마음 속에 정견(正見)이 가득 차고 항상하도록 하는 것이다.
⑧ 정정(正定)
‘바르게 집중(集中)한다’는 말로서, 마음을 한 곳에 모으는 것인데 ‘삼매(三昧)’라는 음역어(音譯語)를 통해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수행법이다. 이는 정념이 더욱 깊어진 상태로서, 정념의 성취로 몸과 마음의 조화가 이루어지고, 지극히 잘 조화되고 통일된 마음에 온갖 번뇌와 어지 러운 대상이 모두 쉬게 되면서 마치 가을 하늘에 지혜의 달이 뚜렷이 빛나는 경지를 뜻한다.
장경각조선(18세기 이후), 문화재자료 제144호
장경각은 절에 내려오는 경전과 목판을 봉안할 목적으로 건립되었다.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의 주심포 맞배지붕 건물로 초창 및 중수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주변 건물들과 비교해 18세기 이후의 건물로 생각된다. 장경각은 통도사에 전해지는 혹은 외부에서 유입된 경판(經板)들을 보관하는 곳이다. 현재 박물관으로 이전된 장경각의 목판은 정시한(1625~1707)이 저술한 산중일기에도 등장하는 17세 초반 활동한 대 각수 연희가 발원하여 직접 제작한 목판들로서, 통도사에서 약 10km 떨어진 울산 운흥사(雲興寺)가 조선말기에 폐사될 때 옮겨온 중요한 경판들이 보관되어 있다.
건물 안에는 목판(木版)장경을 봉안하였는데, 이들 목판 대장경을 강원(講院)의 교과과정에 들어 있는 중요 경전들로『능엄경』,『기신론현수소(起信論賢首疏)』,『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법수(法數)』,『사집(四集)』등 15종의 경판이 있다. 따라서 통도사는 사찰의 교육기관인 강원을 통해 교육에 노력을 기울였음을 알 수 있다
세존비각(世尊碑閣) - 조선(1706년)
이 비각(碑閣)은 1706(숙종 32) 계파대사(桂坡大師)가 금강계단(金剛戒壇)을 중수(重修)하고 석가여래의 영골사리비(靈骨舍利碑)를 세우면서 건립(建立)한 것으로 비석(碑石)에는 불사리의 행적을 소상히 밝히고 있다. 곧 자장율사가 중국에서 사리를 모셔온 일과 임진왜란 당시 사명대사(泗溟大師)가 불사리(佛舍利)를 왜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크고 작은 2개의 함에 봉안하여 보관하였다. 그 후 한 개의 함은 문수대성(文殊大聖)께서 자장스님께 부촉하신 승지(勝地)이므로 통도사 금강계단에 다시 봉안토록 하였고, 또 다른 한 개의 함은 태백산(太白山) 갈반사에 봉안되었음을 석비(石碑) 전면(前面)에 기록(記錄)을 통해 알 수 있다.
비문은 수사간(守司諫) 채팽윤(蔡彭胤 1669~1731)이 짓고 글씨는 승정원(承政院) , 도승지(都承旨) 이진휴(李震休)가 썼다. 석비 뒷면의 비음(碑陰)은 성능대사(性能大師)가 짓고 보윤대사(普允大師)가 썼는데, 이곳에서는 석가모니의 행적(行蹟)과 함께 각지(各地)의 시주(施主)내용을 적고 있어 참고된다. 석비의 건립은 숙종(肅宗) 32년(1706)이며 높이는 2.5m, 폭 1m이다.
이 비각(碑閣)은 1706(숙종 32) 계파대사(桂坡大師)가 금강계단(金剛戒壇)을 중수(重修)하고 석가여래의 영골사리비(靈骨舍利碑)를 세우면서 건립(建立)한 것으로 비석(碑石)에는 불사리의 행적을 소상히 밝히고 있다. 곧 자장율사가 중국에서 사리를 모셔온 일과 임진왜란 당시 사명대사(泗溟大師)가 불사리(佛舍利)를 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크고 작은 2개의 함에 문수대성(文殊大聖)께서 자장스님께 부촉하신 승지(勝地)이므로 이곳에 다시 봉안토록 하셨고 한 개의 함은 태백산(太白山 : 영변 묘향산)으로, 다른 한 개는 현재의 계단에 봉안토록 하였던 사실들을 석비(石碑) 전면(前面)에 기록(記錄)하고 있다.
영각(影閣)
이 건물은 역대(歷代) 주지(住持) 및 큰스님들의 영정 85폭을 봉안한 건물로 정면 8칸 측면 3칸의 긴 장방형(長方形) 평면(平面)으로 된 팔작집이다. 초창연대는 분명치 않으며 현재의 건물은 1704년(숙종 30)에 지었다고 전한다. 처음에는 영자각(影子閣)이라 불리다가 여러 차례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석가모니의 설법회상을 영산회상(靈山會上)이라 함에 비하여 이는 미래불의 용화회상을 뜻하는 법당임을 알게 한다. 즉 미륵불로서 출현하기 전까지는 미륵보살이란 칭호를 받는 석가모니의 일생보처(一生補處)로서 석가모니의 출현으로부터 56억 7천만년이란 장구한 세월이 흐르고 나서 이 세상에 출현하실 부처님이다 이 용화전 앞에는 약 2미터 높이의 발우(鉢盂)모양의 석조봉발(石造奉鉢)이 있다. 이를 봉발탑(보물 제471호)이지만, 이는 탑이 아니고 발우이다. 석조 봉발은 “석가모니의 발우(鉢盂)를 미래세(未來世)에 출현하실 미륵불에게 드리기 위해 부처님의 상수제자(上首弟子)인 가섭존자(伽葉尊者)가 발우와 함께 가사(袈裟)를 가지고 인도의 계족산(鷄足山)에서 멸진정(滅盡定)에 들어 기다리고 있다”는 불경의 내용에서 유래된 것으로 본다.
불이문(不二門) - 조선(18세기 이후), 경남 유형문화재 제252호
이 문은 대웅전으로 들어가는 경내의 마지막 문으로 일명 해탈문(解脫門)이라고도 한다. 즉 동구(洞口)밖의 산문(山門)과 일주문, 천왕문(天王門)을 거쳐 들어온 마지막 문이다. 이 문은 1305년(충렬왕 31) 처음 지었으나 현재의 건물은 언제 중건되었는지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세부수법으로 보아 조선 주익 이후의 것으로 생각된다.
이 문은 동쪽 하로전(下爐殿)의 지반보다 약 1.5m가 높아지면서 축대를 내었고 건물의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이며 다포식 팔작집으로 동향한 전면(前面) 3칸에 판문(板門)을 달아 출입하게 하였으며 대들보 위에 얹은 가구재가 다른 건물에 비해 특징적이라 할 수 있다. 내부는 매우 단조롭게 처리되어 종래 수법(手法)과는 달리 중앙의 대들보를 코끼리와 호랑이가 이마로써 받쳐 이고 있는 형태를 취하였다. 이 역시 코끼리와 호랑이가 건물의 하중(荷重)이마에 서로 의지해 있는 것이 바로 불이(不二)의 도리(道理)를 나타내는 것이라 한다. 대들보위에 두터운 솟을 합장태를 삼각형으로 짜 그 부재 위에 장혀[長舌]를 걸쳐 중도리(中道理), 하중도리(下重道理), 종도리(宗道理)를 얹어 서까래를 받도록 하였다. 이는 고식(古式)의 가구법(架構法)으로 흔히 볼 수 없는 형식이다.
불이문의 현판 글씨는 송(宋)나라 미불(米? : 號는 元章)의 필이다.
불이(不二)의 뜻은 법계의 실상(實相)이 여여평등(如如平等)하여 피차(彼此)의 차별이 없는 것을 ‘불이(不二)’라 하며 이 법계불이(法界不二)의 진리가 불법의 궤범(軌範)이므로 ‘불이법(不二法)’이라 하고 일체 성인이 모두 이 불이(不二)의 법위 의하여 진리에 취입(趣入)하므로 불이법문이라 한다. 따라서 여기서부터 청정한 불법도량의 중심부가 되며 불이(不二)의 진리로써 세속의 모든 번뇌를 벗어난다는 뜻에서 해탈문 이라고도 한다.
황화각(皇華閣)
황화각은 통도사의 스님들이 경(經)을 공부하는 강원건물로 천자각이라고도 한다. 초창은 1317년(충숙왕 4)에 이루어졌으며, 1647년(인조 27) 탄변화상(坦卞和尙)이 중건하고 1988년 성해화상(聖海和尙)이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정면 7칸, 측면 2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이며 ㄴ자 평면으로 두 개의 건물을 합친 큰방이다. 이곳은 강원과 학승(學僧)들이 거처하는 기능을 갖고 있는 건물이다. 동서로 자리 잡은 평면은 강당과 부엌, 툇마루로 구성되었고 남북 방향의 평면에는 학승이 거처실로 되고 서쪽에 쪽마루를 달았다. 그리고 이들 건물은 일반 신도와 격리되도록 북쪽의 서쪽에서 출입하도록 되어 있어 경학을 공부하는 공간답게 처리하였다.
원통방(圓通房), 감로당(甘露堂)
원통방과 감로당은 화엄전, 황화각과 함께 중로전의 대방(大房)이다.감로당은 사중 대중스님들의 일상생활에 따른 후원(後院)이고 원통방과 화엄전은 대회시 대중을 수용하는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황화각은 현재 강원으로 이용되는 중요한 건물이다.
감로당은 고려 충혜왕 원년(1340)에 건립되었으나 조선 고종19년(1882)에 화엄전, 원통방과 함께 소실되었고, 잇따른 화재로 1887년 덕명(德溟)대사가 중건했다고 한다.「통도사사적비」에 따르면 고종 19년(1882) 화엄전에서 실화하여 원통방과 감로당이 소실(燒失)되었으나 다음 해에 중건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불과 4년 만에 다시 감로당에서 실화하여 명부전과 함께 원통방, 화엄전까지 소실되었고 그 다음해인 1887년 덕명대사(德溟大師)가 중건했다고 한다. 이 건물은 정면 7칸, 측면 2칸 건물로 강원의 학인 대중방으로 쓰이고 있으며 이 건물과 동, 서 그리고 남쪽에 객실 3채가 있어 口자형 평면으로 구성되어 중앙에 중정(中庭)이 생겨 주택의 평면형과 같은 구조이다. 감로당을 비롯한 口자형 건물들은 약 86칸으로 거실, 마루, 부엌, 창고, 식당 등으로 이용되고 있다.
원통방과 감로당은 원래 口字형 건물이었으나 2009년 원통방과 공양간 중창으로 지금은 다소 변화되었다. 감로당 동쪽 측면에 위치한다. 초창은 1341년(충혜왕 복위 2)이지만 영조 때에 탄해대사(坦亥大師)가 중건하였고 1886년 감로당과 함께 소실되고 다음해에 매예대사(每藝大師)에 의해 중건되었다. 원통방의 ‘원통’ 의미는 ‘관음보살 이근원통(耳根圓通)’에서 유래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