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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를 떠난 후에
성 중열은 경상도의 성주 사람으로 자랄 때에는 농사를 지으시는 아버지 슬하에서 중고등학교까지 다니긴 하였으나 집이 너무 가난해서 학비를 제대로 내지를 못한 때가 한두 번이 아니어서 그야말로 겨우 학교 졸업을 하였다.
땅 한 평 없던 아버지는 날마다 품팔이로 남의 일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어릴 때에는 아버지가 일하시는 곳을 자주 따라다니던 중열은 우리도 땅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늘상 하면서 자랐다.
이후 자라면서 동네에서 제일 못사는 축에 드는 자기 집이 창피하다는 것을 알고 성인이 되면 무슨 수를 쓰더라도 땅을 사서 아버지가 남의 일을 다니시지 않게 하겠다는 결심까지 하였다.
사실 아버지는 노동을 하시면서도 워낙 근실하신데다가 부지런하셔서 동네에서 무슨 일을 하려면 아버지가 제일 먼저 부름의 대상이었다.
모내기 감자 캐기 보리타작 창 깨 털기 고추밭에 김매고 논에 피뽑기 벼 타작 콩 타작 겨우살이 나무하기 등 아버지는 어느 일 한 가지도 소홀히 하시지를 않는 모범이 되시는 노동자 였다.
아버지는 노동일을 하시면서도 도지로 땅을 얻어서 농사를 지어 식구들의 밥을 굶기지는 않았으나 가정살림이 좀처럼 나아지지를 않았다.
더구나 어느 해 가뭄이 들게 되면 논에 모를 내도 벼쭉정이만 추수를 하게 되어 양식이 부족해 장리쌀을 먹을 수밖에 없었으니 그것이 빚이 되었다.
사실 아버지가 남의 땅을 얻어서 농사를 짓는 품목은 벼농사 이외에 밭에다가 콩과 들깨 참깨며 야채를 심었으나 가을에 가서 보면 벼는 어느 정도 제대로 결실이 되어서 쌀 댓가마니는 수확을 할 수가 있었으나 참께와 들깨는 밭이 좋지를 않아서 그런지 품만 내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해마다 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겨우 벼농사 한가지만은 잘 되었다는 소리를 듣긴 하지만 다른 품종이 제대로 되지를 않아서 가용으로 쓸 돈을 마련한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 살아가시는 아버지를 보면서 이렇게 앞으로 살게 된다면 백년하청이란 말처럼 가난을 벗어나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하루라도 빨리 시골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런데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에 어느 날 아버지가 아들을 불러서 하시는 말씀이 이제 고등학교까지 마쳤으니 객지에 나가서라도 혼자 살아갈 궁리를 해보라고 하셨다.
너무도 뜻밖에 아들의 장래에 대한 걱정을 하시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서 그는 졸업하자 바로 큰 도시인 대구로 가겠다고 말씀을 드렸다.
그러자 어머니는 아들을 붙잡고 생전 처음으로 엄마가 건강이 좋지 않아서 오래 살지 못할 것 같으니 대구에 가거든 마음에 드는 부자 댁 색시를 사귀어서 결혼할 생각부터 하라고 하 시더니 우리처럼 가난하고 못사는 아이는 눈 여겨 보지도 말라고 하셨다.
어머니가 가난으로 인해서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하셨으면 저런 말씀을 하실까 하는 생각을 하니 어머니가 너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의 말씀을 들은 중열은 이날 밤에 어머니 곁에서 자면서 어머니가 오래도록 사시기를 기원하였다.
사실 중열은 고등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비록 집은 가난했지만 축구선수로 활약을 하였고 더구나 학생회장까지 할 정도여서 인기가 많은데다가 매년 종합운동장에서 축구경기가 펼쳐지게 되면 이웃학교에 다니는 여학생들이 응원을 많이 해 주었다. 그중에 몇 명은 그럴 때마다 쫓아다니며 아이스크림을 사주거나 손수건을 적셔주는 등 그와 접촉시도를 하였으나 그가 하는 일이 바쁜 관계로 그들과의 만남이 이루어지지를 않자 스스로 떨어져 나갔는데 그 중에서 끈질기게 추파를 보내는 학생이 있었으니 여자고등학교 2학년에 다니는 송 애란과 윤 종희였다.
둘 다 같은 학년이지만 반이 다르고 성격 또한 애란 이는 참한데 비해서 종희는 적극적이고 샘도 많아서 친구들이 시장에서 머리핀 하나를 사도 다음 날 그보다는 더 반짝이는 핀을 사서 꽂고 다닐 정도였다.
둘 중에 애란 이는 성적이 월등한 편인데 반해서 종희의 성적은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지만 통솔력이 있어 대외행사에 나갈 때에는 악대를 앞세우고 지휘봉을 휘둘러 전교생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도록 하였으니 선생님들은 그를 항상 학교의 얼굴이라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공부를 잘 한다는 송 애란은 집이 가난하여 큰 집에서 다닌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래도 성격은 밝아서 누가 보아도 호감을 사는 편이었다.
문제는 이 두 학생이 중열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가 접촉을 꺼려했던 것은 벌써부터 여학생들을 사귀게 되면 공부에 지장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둘 중에 송 애란만은 며칠간 연락이 없으면 집까지 찾아오겠다고 으름장을 놓기까지 하여 할 수없이 일요일 낮에 학생들이 자주 드나드는 금강 빵집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중열은 약속 시간 30분 전에 빵집 구석자리에 앉아서 애란을 기다리기고 있었으나 12시가 훨씬 지났는데도 그녀는 나타나지를 않았다.
‘ 첫날부터 약속을 지키지 않는 건가.’
10분 20분 30분을 기다려도 오지를 않자 중열은 아무래도 무슨 사정이 있어서 그러리라 생각을 하고 일어서다가 창문 쪽을 바라보다가 깜짝 놀랐던 것이니 만나자던 송 애란이 아닌 윤 종희가 안으로 들어서면서 누구를 찾고 있었다.
‘이를 어쩌지.’
선뜻 그를 반겨 맞을 처지가 아니어서 잠시 딴전을 부리고 있자니 종희가 먼저 알아보고는 눈을 똥그랗게 뜨고 다가왔다.
“ 오빠. 여긴 어쩐 일이래요.”
이런 낭패가 있다니 중열은 금방 무슨 말을 할지 몰라서 우물쭈물하자 윤 종희는 닁큼 중열의 옆으로 다가서더니 천하의 행운을 잡은 얼굴로 말을 하였다.
“오빠 잘 되었네요. 나는 친구를 만나려고 여길 왔는데 약속시간을 내가 어겨서 그런지 친구가 보이지를 않아요. 그런데 그 대신 오빠를 만나게 되었으니 차라리 잘 되었어요. 사실 나는 오빠가 날마다 보고 싶어서 잠도 제대로 자지를 못한 적도 많아요. 오빠는 내가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르지요. 난 오빠 아니면 다른 어떤 남자도 상대하지 않기로 결심을 하였는데 오빠는 본체도 하지를 않았어요. 왜 그랬는지에 대해서는 추후에 따질 일이고 오늘은 오빠를 여기에서 만났으니 절대로 떨어지지 않을 것이니 그리 아셔요. 우리 어서 어디로 가요. 어서요.”
‘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다니. 참. 오늘 중열이 만나기로 한 사람은 송 애란이고 그가 와야 할 시간이 지나도 오지를 않아서 전전긍긍하고 있는 사이에 엉뚱하게도 윤 종희가 나타난 것이니 이 일을 어떻게 해야지.’
“오빠.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지금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 거지요. 혹시 그가 송 애란이 아니에요. 걔에 대해서 말을 할 것 같으면 이 학교로 전학을 오기 전에 좋아하는 남학생이 있었는데 중간에 싸우고 나서 헤어지고는 우리 학교로 전학을 왔다는 말이 있어요. 얼마나 꼬리를 치고 다니는지 남자애들이 다 좋아한다는 소문이 날 정도라니깐요.”
종희가 은근히 송 애란을 비판하며 다가서자 중열의 마음이 금방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정말 애란이 그럴까. 하긴 알 수 없는 것은 사람의 마음이긴 하지만.’
이날 종희의 성화에 따라서 중열은 그가 하는 대로 따라나서자 그는 앞장을 서면서 다짐을 받았다.
“ 오빠 오늘은요. 내가 하는 일이 좀 못마땅하다고 해도 눈 찔끔 감고 따라만 주세요. 아셨지요.”
종희는 그리고는 새끼손가락을 내밀었으니 중열은 못이기는 체 하고는 손가락을 걸었다.
“ 아이 좋아라.”
그는 앞장을 서고 중열이 뒤를 따랐는데 그가 찾아들어간 곳은 오색등이 천정에 걸려있고 붉은 깃발이 나부끼는 으리으리한 중국집이었다.
중열은 이런 집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지난 것이 한편으로는 부끄럽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학생이 출입을 해서는 안 될 것 같아서 기분은 찜찜하였다.
그런데 빈방으로 안내되자 종희는 친구들과 자주 들리는 곳이 따로 있는데 특별히 이 집으로 온 것은 음식이 맛이 있다는 소리를 들어 기왕이면 오빠하고 한번 와보았으면 하던 집이라면서 무엇을 먹겠느냐고 하였다.
“ 나는 아무거나 돼지처럼 다 잘 먹으니까 마음대로 시켜봐.”
“그럼 짜장면하고 탕수육 먹어요. 내가 제일 좋아하거든요.”
사실 종희와는 같은 학교 후배로 중학교 다닐 때에 중열은 육상부로 활약을 하였고 2년 후배인 종희는 합창 부였는데 군 체육대회가 있던 날 걸스카우트 학생들이 봉사활동을 나왔을 때에 중열 오빠에게 빵과 물을 갖다 주고 서로 사진을 찍은 것이 인연이 되어 고등학교 올라와서부터는 중열을 꽤 좋아하였다.
점심을 먹고 나자 종희는 오빠에게 아까 약속한 것을 기억하느냐고 물었다.
“무슨 약속을 하였던가.”
중열이 얼른 생각이 나질 않아서 우물쭈물하자 오빠를 한참 보던 종희는 눈물을 글썽이면서 나중에는 돌아서서 훌쩍훌쩍 찔끔거리면서 우는 것이다.
갑자기 종희가 울자 중열는 마음이 놓이지를 않아서 왜 그러냐고 물었다.
“다 고만 두어요. 금방 한 약속도 잊어버리는 것을 보면 나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지요. 그렇지요.”
종희가 토라지면서 뒤돌아 앉자 중열은 그제야 생각이 나서 그를 달래주자 지금까지 울던 종희는 다시 돌아서면서 중열에게 한여름의 매미가 나무에 매달리듯이 팔을 감아올렸다.
갑작스런 종희의 행동에 당황을 하였지만 순간 여자의 어찔한 향수 냄새에 중열은 그를 꽉 끌어안고 말았다.
황홀한 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종희는 오빠를 빤히 쳐다보더니 이번에는 본격적으로 키스를 퍼붓고 있었다.
“음 음 음.”
중열은 종희가 입술을 내리 누르는 바람에 말도 못하다가 음음 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오빠.”
이날 종희는 오빠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가겠다는 말을 하였다.
그날은 그렇게 헤어졌는데 그 무렵 중열은 아버지의 농사일을 도와드려야 하기 때문에 두 여학생을 자주 마나고 싶어도 시간을 내기가 어려워서 다음다음으로 자꾸만 미루게 되었다.
그날도 일요일이라서 중열은 아침 일찍 아버지가 하시던 일을 거들어 드리기 위해서 콩밭으로 나가서 풀을 뽑고 있는데 누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어 소리 나는 쪽을 바라보다가 중열은 너무도 깜짝 놀랐으니 그것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 여기를 어찌 알고 찾아 왔지’
거길 찾아온 사람은 다름 아닌 송 애란이었다.
아버지는 마침 낫을 갈기 위해서 대장간엘 가신 사이에 애란이가 왔으니 바로 아버지를 뵈올 수는 없었다.
“ 오빠.”
중열은 농부로 둔갑한 자신이 부끄러웠지만 그런 생각 이전에 반가워서 얼른 일어나 그가 서 있는 쪽으로 다가가자 송 애란은 양팔을 번쩍 벌리고 달려들었다.
여자의 살 냄새가 봄바람에 풍겨오는 신선한 풀 냄새처럼 코를 자극하자 얼른 팔을 벌려 그를 안았다.
송 애란은 미친 듯이 중열에게 안기면서 장마에 소나기 퍼붓듯이 키스를 하였다.
“어떻게 여기 올 생각을 하였지.”
“ 오빠를 보지 못하면 금방 죽을 것 같아서 왔어요.”
중열은 할 수없이 송 애란을 집으로 데리고 가자 제일 먼저 엄마가 반갑게 마지 하셨으니 아들 장가도 들이지 못할 것이라는 걱정을 만날 하시던 엄마에게 이게 웬 떡이냐며 반기셨다.
“ 어서 와요. 우리는 이렇게 누추하게 사는데 아가씨는 이런 시골엔 처음이지요.”
“ 아니에요. 어머니 저도 이런 시골집에 살았어요.”
엄마는 그 소리를 듣고는 속으로 움찔 하셨다.
‘ 잘사는 집의 딸을 며느리로 마지하고 싶은데 우리만도 못한 집안의 색시란 말이여. 우리 아들이 잘 난 줄 알았더니 어디서 거렁뱅이를 하나 얻어 오는 게 아니여.’
엄마는 송 애란이 시골에 산다는 말에 기분이 언짢았지만 그렇다고 싫은 내색을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쌀밥을 하고 좋아할만한 반찬을 해서 상에다가 차려 주었다.
“시골 마을이라 소가 만날 풀만 먹듯이 우리도 푸성귀로 반찬을 해서 먹기에 이렇게 밖에 대접을 하지 못해서 미안하군요.”
“ 어머니. 별 말씀을 다 하시네요. 저희 어머니도 반찬이 없을 때에는 간장에다가 깨보숭이만 넣어서 밥을 비벼 잡수시는 걸요.”
‘그것 봐. 우리보다도 더 못사는 집이 맞다니 까. 아무래도 안 되겠어.’
엄마의 표정을 살피던 중열이 한마디를 한다.
“ 엄마. 이 아가씨는 마음이 착하고 지금도 부모님께 효도를 잘 하는 딸이래요.”
“ 알았다.”
이날 중열은 송 애란으로 하여금 어머니의 일을 거들어 드리라는 말을 하였다.
그런데 아들이 생각해 보니 엄마는 아까와는 다르게 기분이 언짢은 기색이 역역하여서 고개를 숙이며 생각을 해 보았다.
중열은 모처럼 애란이 집엘 왔으니 재워 보낼 생각까지 하였다.
“ 뭐이여 .여기서 재워 보낸다구. 아이구 망측해라. 아직 머리도 올리지 않은 처녀와 한방에서 잔단 말이여. 그것은 안 될 일이여.”
‘ 어머니가 왜 저러시지. 이해를 못 하겠네. 정말 이상해.’
애란이 화장실에 갔다가 돌아올 시간인데 엄마가 잽싸게 아들의 손을 잡아끈다.
“ 야야. 너 정신 좀 차려야 하겄다. 나는 저 색시가 부자 집 딸인 줄 알았는데 우리 집 보다도 잘 살지를 못하는 것 같으니 더 이상 사귀지 않는 게 좋갔어.”
“ 엄마 그렇지 않아요. 애는 예의를 잘 아는 애란 말이에요. 이다음에 효도를 받으시려면 저런 애래야 해요.”
그렇지만 엄마는 그 소리엔 들은 체도 하질 않고 부엌으로 들어 가셨다.
중열은 할 수 없이 저녁을 먹은 후에 그를 데리고 나와서 집까지 데려다 주려 하였으나 애란이는 오늘 친구 집에 가기로 약속을 하고 집에 가지 않기로 하였다면서 아무데서나 자고 가겠다고 하였다.
“ 아무데서나 자다니 한데서 잔단 말이야 .”
“오빠가 옆에 있으면 어디서든 잘만 하지요.”
“ 뭐야.”
“ 오빠는 여자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면 잠자코 나 있어요. 나 어른이 다 됐단 말이에요.”
“ 고등학교 졸업은 해야 어른이 되는 것 아니야.”
“ 맙소사. 나 지금 솔직하게 말하면 아기도 가질 수가 있단 말이에요.”
끈질기게 오빠 옆에서 자겠다는 바람에 중열은 손을 들고 말았지만 엄마가 마음에 들어 하시지를 않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이날 중열은 시내로 나가서 한 여관을 얻어서 잠을 자기로 하였다.
애란은 이날 밤 어떤 각오를 한 듯 오빠를 가만 놔두지를 않았는데 중열이 생각을 해도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을까 하다가 깨달은 바가 있으니 그것은 중열이로 하여금 꼼짝달싹할 수 없도록 송아지처럼 그의 품안에 매 두기 위한 작전이었던 것이다.
얼마동안의 시간이 흐르자 잠을 자는 듯하던 애란이가 말을 하였다.
“ 오빠. 나 오늘 애기 가졌으면 좋겠어.”
그 소리를 들은 중열은 엄마의 얼굴을 떠올려 보았다.
‘ 부자 집에 장가를 가거라. 그래야 엄마처럼 고생을 하지 않을 테니까.’
그런 일이 있은지 얼마 되지 않아서 뜻밖에 일이 생겼으니 그것은 입영 영장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중열은 학교 졸업이후 곧 대구로 올라갈 생각을 하던 참인데 영장이 나왔으니 아무것도 할 수가 없게 되고 무엇보다도 애란 이와 종희에게 어떻게 알려 주어야 할지 고민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날짜는 일주일도 남지를 않았는데 그때 집에서는 다음날 일꾼을 얻어서 타작을 한다고 하였으니 군대 가기 전까지는 아버지를 돌봐 드려야 하기 때문에 꼼짝을 할 수가 없는 처지였다.
매년 타작을 하게 되면 일꾼들을 잘 먹여야 일을 잘 한다면서 어머니는 시장에서 돼지고기를 사다가 갖은 양념을 해서 구워 내셨다.
고기는 중열이 시장엘 가서 사왔는데 어머니는 아들이 입대한다는 것을 아시면서도 일꾼을 하나 덜 얻기 위해서 아들더러 타작을 할 때에 벼 가마니라도 나르라고 하셨다.
그렇게 집안의 일을 하다 보니 중열은 입대한다는 말을 두 여학생에게 알리지를 못하였다.
중열이 탄 열차가 논산을 향하여 출발을 하게 되니 여러 가지 못다 한 일들이 머리를 복잡하게 하는 중에도 엄마가 하신 말씀이 계속해서 마음에 걸렸다.
‘ 군대를 가게 되면 3년은 있어야 군복을 벗는다던데 내가 그때까지 살랑 가 모르겄다.’
‘ 엄마. 왜 그런 말씀을 하셔요. 며느리 보시고 손자 한번 안아 보셔야지요.’
‘ 며느리. 내 팔자에 무슨 며느리를 보겠냐. 이러다가 말지. 이제는 일도 하기 힘이 들고.’
어머니는 그 말씀을 하시더니 돌아서셔서 눈물을 짜셨다.
‘ 엄마.’
엄마의 모습을 본 중열은 엄마를 안고 어린아이처럼 엉엉 소리를 내면서 울었다.
엄마의 건강이 염려가 되기도 하지만 진작 어머니가 좋아하실 며느리를 보여드리지 못한 것이 죄를 지은 것처럼 가슴이 아팠다.
게다가 송 애란과 윤 종희에게 아무 연락도 없이 군대에 입대하게 된 것에 대해서 사과라도 하고 싶었지만 이제는 다 허사가 되었다.
‘이 다음 휴가 때나 혹은 일선으로 배치를 받은 후에 면회라도 오라고 할 수 밖에…’
마침내 논산훈련소가 가까워지자 중열은 몹시 불안한 생각이 들었으니 훈련소에서는 옛날부터 기압이 심해서 때로는 다치는 장병도 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입대하고 나서 훈련에 임하다 보니 들은 것과는 사뭇 다르게 조교들이 친절하게 전법을 가르쳐 주거나 사격 연습을 할 때에도 원칙대로 총을 다루도록 알려주었으니 안심하고 훈련을 마칠 것으로 생각을 하였다.
그런데 생각보다는 날이 갈수록 훈련이 고되고 완전 무장을 하고 야간전투훈련을 할 때는 잠이 쏟아져 죽을 지경이었다.
이렁저렁 철저하게 10주간의 훈련을 마치고 나자 중열은 바로 부대배치를 받았는데 최전방인 철원지구 GP에서 복무를 하게 되었다.
경상도 시골사람이 전방인 철원지구로 배속을 받게 되자 처음에는 다소 긴장이 되고 밤중에 보초를 설 때에는 혹여 인민군이 철책을 넘어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였으나 한 달가량을 지나고 보니 마음이 대담해지고 적이 눈앞에 있다는 생각에서 항상 정신을 바짝 차리고 보초를 선 것이다.
중열은 입대 후에 애란이나 종희 둘 중 아무에게나 연락을 하려 하였지만 일선으로 배치를 받고 거의 반년이 다 지나갔지만 아무에게서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다가 그동안 자신의 소재를 밝히지 않았던 것이 큰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여자들은 소극적인데다가 막상 군대 간 친구에게 편지라도 하고 싶지만 아직 상대방에서 아무 연락이 없으니 편지를 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또 한편으로 생각을 하니 여자의 마음이 갈대와 같다고 하였듯이 사랑하는 마음이 도를 넘는다고 하면 무슨 수를 쓰든지 간에 찾아올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미치자 역시 여자란 믿을 존재가 되지 못한다는 절망감이 머리에 쌓였다.
그러면서도 진작 입대하기 전에 만나서 그 경위를 알려주지 못한 것이 후회막급이었다.
매일 같이 고된 훈련을 마치게 되면 밥을 먹는 것 보다는 잠이나 싫건 자보았으면 하는 생각이 나다가도 문득 애란 이와 종희의 생각이 떠오르게 되면 그렇게 쏟아지던 잠은 어디로 살아지는지 정신은 오히려 말똥말똥하였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애란이 보고 싶기도 하고 어떤 때는 종희가 몹시 그립기도 하였다.
‘ 오빠를 못 보면 죽을 것 같아서 찾아 왔어요.’
언젠가 송 애란이 시골로 찾아왔다가 하던 소리가 귀에 쟁쟁 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 어떤 시간대에는 송 애란을 기다리는 중에 갑자기 윤 종희를 만나 그가 이끄는 대로 중국집에 갔다가 갑작스럽게 키스를 당한 짜릿한 순간이 떠오르기도 하였다.
그러고 보면 그때에 둘은 누구랄 것도 없이 성 중열에게 푹 빠져 있었던 것 같고 그때가 어쩌면 사춘기의 절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정열적인 시기라서 그랬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에 어느 날 갑자기 성 중열의 연락이 끊기고 나중에서야 군대에 입대를 하였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을 것이니 그때 둘은 허탈감에 빠지고 나중에는 어떤 배신감까지 갖게 되었을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을 한 성 중열의 마음은 자기의 잘못이 너무도 컸다는 사실에 스스로 놀라고 그들을 만나게 된다면 백배 사죄를 하고 싶지만 이제 그에게 남아 있는 것은 후회와 절망만이 그를 괴롭혔다.
세월은 흘러 어느 듯 그가 입대한지 거의 1년이 될 무렵 저녁 점호를 마치고 막 잠자리에 들려고 하는데 주번사령실의 전령이 부르더니 전보 한 장을 전해 주었다.
무슨 불길한 내용은 아닌가 하고 조마조마한 가운데 뜯어보다가 갑자기 목석이 된 것처럼 움직일 수가 없었으니 그 전보는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슬픈 소식이었다.
“엄마. 엄마… ”
중열은 전보를 다시 읽어 보고는 포단 속에 얼굴을 파묻고는 펑펑 울고 말았다.
‘ 군대를 가게 되면 3년은 있어야 군복을 벗는다던데 내가 그때까지 살랑 가 모르겄다.’
‘ 며느리. 내 팔자에 무슨 며느리를 보겠냐. 이러다가 말지. 이제는 일도 하기 힘이 들고.’
입대하기 전에 어머니가 하신 말씀이 유언이 되다니! 어머니의 모습이 자꾸만 떠올라 그때마다 눈물이 샘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고향집에 도착하자 아버지는 아들을 얼싸안고는 한없이 눈물을 흘리셨는데 어머니가 안 계시는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셔야 할지 아버지를 생각하니 가슴이 메어졌다.
어머니의 장례를 모시고 나서 아들은 아버지에게 제대할 때까지 건강을 잘 챙기시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서는데 발걸음이 제대로 떨어지지를 않았다.
부대로 귀대하고 난 다음날 그는 일등병으로 진급을 하였다.
그 다음날은 마침 일요일인데 대구 출신인 일등병 성 세화가 진급을 축하해 주겠다면서 외출을 나가자고 하여 철원읍으로 나갔다.
성 세화와 친하게 된 것은 부대배치를 받을 때에 함께 받았으며 한 소대에 근무를 하게 된 것도 원인이지만 알고 보니 같은 종씨인데다가 성 세화가 두 살이나 아래가 되자 그는 앞으로 형이라고 부르겠다고 하였다.
그날 저녁을 먹고 나서 맥주 집에 가서 맥주 한잔을 하던 두 사람은 여관을 일찍 찾기보다는 어디 가서 맥주 한 잔이라도 더 했으면 하던 찬 라인데 웬 아주머니가 나타나더니 좋은 데를 소개해 줄 테니 가자면서 목 다라지 송아지처럼 끌고 가는 것이니 두 병사는 술김에 그냥 따라나섰다.
그런데 가다가 보니 헌병이 딱 길을 막아서면서 외출증을 보여 달라고 하여 그것을 보여주자 밤중에 술을 먹고 다니면 위험하니 어서 귀대하라고 하였다.
둘은 그러겠다. 하고는 아주머니 뒤를 따라서 가니 어느 작은 여인숙으로 데리고 들어가는데 그곳은 다름 아닌 색시들이 몇 명 있는 곳이었다.
성 중열과 성 세화는 난생 처음으로 이곳엘 오게 되었으며 각각 색시를 소개받았는데 성 중열이 어느 방으로 들어가서 만난 색시와 얘기를 하다 보니 그는 가정이 불우하여 할 수없이 이곳에 와서 돈을 벌어보려고 하였으나 그것이 여의치 않아서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그동안에 빚이 일백만원이 넘어서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고 하였다.
성 중열은 그날 밤 이 여자를 통해서 인간의 삶이 고통의 연속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를 구해주고 싶었으나 졸병인 그에게는 돈 백 만원이 있을 수가 없었다.
그는 제대이후 무슨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돈을 벌어서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구해 주는 사람이 되겠다는 마음을 먹었으나 당장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어느 듯 군대생활이 마무리되는 해가 되자 여러모로 제대 후에 할 일을 생각하던 중에 어느 날 선임하사를 찾아가서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서 구원을 청하자 그는 좋은 수가 있다면서 대구에 친형님이 가내공업을 하고 계시니 제대 후에 거기를 가보라고 하였다,
성 중열은 제대 후에 일단은 아버지가 계시는 고향으로 내려가서 1년 동안 농사일을 해 보고 난 후에 대구로 갈 생각을 하고 집으로 가자 아버지는 그렇게 좋아하실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혼잣손에 농사일을 하시면서 살아오신 것이 그만큼 힘이 드셔서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막상 아버지를 거들어 벼농사를 곁들여 밭농사를 해보니 수익도 그렇지만 중열이가 하기에는 너무 힘이 들어서 가을걷이가 끝난 후에 아버지께 말씀을 드렸다.
아버지를 도와서 농사를 할 생각을 하였으나 1년 경험을 해보니 도저히 수지타산이 맞지를 않아서 대구로 가서 취직을 하겠다고 하였다.
그러자 아버지는 불같이 화를 내셨으니 늙은 아범을 두고 어디를 가느냐는 호령이셨다.
중열은 그러나 그날 저녁에 아버지 옆에서 자면서 선임하사의 형님 댁에서 일을 하기로 약속을 하였다는 말씀을 드리자 아버지는 더는 긍정도 부정도 하시지를 않았다.
집을 떠나면서 중열은 아버지께 장차 돈을 벌게 되면 고향으로 내려와서 아버지가 하시던 농사를 대를 이어 직접 할 것이며 아버지는 뒷짐만 지시고 다니시면 된다고 하자 아무 응답이 없으시던 아버지는 떠나가는 아들의 뒷모습을 한없이 바라보고 계셨다.
대구에 도착하여 바로 공장을 찾아갔으나 아뿔싸 지금은 정원이 차서 더 이상 직원 채용을 하지 못한다는 대답이었다.
아는 사람이라고는 한사람도 없는 그곳에서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어서 궁리 끝에 찾아간 곳이 경찰서였다.
마침 민원실에 들어가서 시골 출신 제대군인인데 어디 취직할 곳을 소개해 달라고 하던 중에 마침 경무과장이라는 분이 민원실엘 왔다가 중열의 딱한 사정을 듣고는 퇴근시간이 되면 자기에게 보내보라는 말을 하여 기다리다가 찾아가니 그는 저녁을 사주면서 어디다 전화를 한 후에 나타난 사람은 건장하게 생긴 운동선수 같은 분이었다.
알고 보니 그분은 태권도체육관을 운영하는 분으로 거기에서 일할 사람을 구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던 터라 성 중열을 소개해 주었다.
태권도장은 중앙동의 한 2층 건물 내에 위치한 체육관으로 연습생은 초중고생을 합하여 50여명으로 일요일을 제외한 일주간을 시간대 별로 운영을 하는데 성 중열이 해야 할 역할은 총무과장의 밑에서 회비 징수에서 부터 모든 관리를 하는 업무라고 하였다.
숙식은 태권도장에 있는 방 한간에서 자취를 할 수 있도록 되어 있어서 어려움은 없었으나 그 많은 업무를 두 사람이 감당하기는 쉽지를 않았다.
입사하고 나서 어느 결에 한 달이 지났는지 모르던 어느 날 일과가 끝난 후에 총무과장이 중열을 부르더니 저녁을 사겠다면서 어느 식당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중열은 아직 태권도장의 분위기나 운영에 대해서 제대로 모르는 것이 많아서 총무과장에게 자세히 물어 보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의외로 총무과장은 그가 할 일에 대해서 자세히 알려주기 보다는 태권도장에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는 말을 하면서 적당히 하라는 말만 하여 그 뜻이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 후에도 총무과장은 관장님을 도와서 열심히 교육을 하기 보다는 직장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아서 성 중열은 그것이 싫었다.
그런데 하루는 총무과장이 지금까지 얼마의 보수를 받았는지 말을 해보라는 것이니 그가 모르고 하는 소리는 아니고 어떤 의도를 가지고 한 소리 같았다.
그러니까 중열이 이 태권도장으로 들어와서 근무를 한지 어언 반년이 훨씬 지났지만 단 한 푼의 보수도 받지를 않았다는 말을 하자 총무과장은 그것은 관장님의 잘못이라면서 단단히 따져 보라고 하였다.
사실 지금까지 몇 달을 지내도 숙식에 필요한 쌀과 부식비를 제외하고는 받은 것이 없어서 총무과장의 말대로 때로는 용돈이라도 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긴 하였지만 감히 무슨 말을 하지는 못하였다.
그러다가 총무과장의 말을 들은 후에 어느 날 일과 후에 관장님에게 말씀을 드렸다.
그러자 돌아온 대답은 숙식만 해결하면 다른 보수는 필요가 없다는 말을 들었다면서 보수를받고 싶으면 다른 직장을 구하라는 따끔한 말씀을 하였다.
성 중열은 그 순간 총무과장이 해준 말을 상기하면서 한마디를 하였다.
“관장님. 사람을 부려 먹었으면 그에 상응하는 보수를 주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닙니까.”
그 소리를 들은 관장님은 금발 얼굴색이 샛노래지더니 불같이 화를 내셨다.
“굶어 죽을 놈을 밥을 주어 살려 놓았더니 뭐 돈을 달래. 이런 호래자식이 있어”
관장님은 앞에 서 있는 성중열의 하체를 순식간에 걷어 내차는 바람에 중열은 공중 잡이로 나가떨어지면서 중요한 부분을 잡고는 대굴대굴 굴렀던 것이다.
관장이란 사람이 이런저런 사정 두지 않고 힘이 있는 대로 불알을 걷어찼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한참 후에 정신을 차리고 생각을 하니 너무도 화가 나는 바람에 일어서자마자 서서 있는 관장님을 향하여 헤딩으로 이마를 가격을 하자 큰 덩치의 관장님은 등걸토막 쓰러지듯이 나곤드라지는데 코피가 터져 금방 얼굴이 피투성이가 되었다.
“지금까지 나는 최선을 다해서 맡은 바 업무를 제대로 하였는데 사람 취급을 그렇게 해도 된다는 말입니까.”
코피가 터진 관장님은 잠시 후에 일어나더니 대걸레를 집어 드는 것으로 보아 그것으로 후리칠 모양이어서 성 중열은 위급함을 느끼고는 한달음에 아래층으로 내리 뛰었다.
순간 그의 머리에 스치는 것이 있었으니 경무과장님에게 연락을 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공중전화 앞에 가서 전화를 걸려다 순간 떠오른 생각은 자신의 행동이 너무 경솔했다는 생각이 들고 잘못했다는 생각에서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그리고 생각을 하니 그냥 이 집을 나와 가지고는 어떤 누명을 쓸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서 다시 2층으로 뛰어올라갔다.
그때 관장님은 코를 막고 소파에 앉아 있다가 성 중열이 나타나자 잠시 그를 노려보는 것이어서 쭈뼛하던 중열은 아까처럼 후리칠 것 같지는 않아서 당당하게 그의 앞으로 가서는 꿇어앉았다.
“ 관장님. 죽을죄를 저질렀습니다.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너무도 의외의 망신을 당한 관장님은 그때까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가 중열이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하자 얼굴 가득히 피어올랐던 열이 차츰 식어지면서 마음이 진정이 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생각을 하니 이 말이 경무과장님에게 알려진다면 관장에게 이로울 것이 하나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인지 중열을 용서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을 것이다.
이날 밤 관장님은 중열을 따로 불러 저녁을 사주시면서 속에 있던 말을 하였다.
“ 나는 부모형제도 없이 너보다도 더 어려운 처지에서 살아 왔고 밥도 많이 굶어 보았으며 그런 어려움을 이기기 위해서 무진 애를 쓰다가 겨우 이 도장을 마련하였다. 그러다가 너를 알게 되고 너무도 불쌍하여 너를 올바른 사람으로 만들어 사회에 내보낼 생각을 하였는데 최근에 와서 내 몸에 갑자기 이상이 생겨 아무래도 이 도장의 운영을 하지 못할 것 같아서 그냥 문을 닫으려다가 네 생각이 나서 이 도장을 너에게 인도할까 하는 생각을 하는 중이었다. 한때는 총무과장에게 인계해줄 생각도 했지만 그가 나를 배신하기에 일찌감치 마음을 접었다. 그런데 너는 월급을 달라고 하여 당장 내 마음이 돌아서려는 것을 억지로 참은 것은 그게 다 총무과장의 농간인 것을 알게 되어 너를 용서해 주기로 하였다.”
그 한마디로 보아 관장님은 진심에서 울어 나온 말을 하였던 것이니 성 중열은 너무도 철도 없이 앞서 총무과장의 말에 현혹이 되었던 것을 후회하였다.
더구나 관장님의 몸에 이상이 생겼다는 말과 장차 이 도장을 자기 명의로 인도할 뜻까지 가지고 계신다는 데 대해서 무어라 송구한 말씀을 드릴 수가 없고 자기의 잘못이 얼마나 크다는 것을 뉘우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후 성 중열은 정성을 다해서 관장님을 보살펴 드리고 전보다도 더 열심히 근무를 하게 되니 도장은 새롭게 변모하는 것 같았다.
그러고 나서 얼마 후의 일이다.
항상 밝게 생활을 하던 관장님이 어느 날 부턴가 안색이 좋지 않다는 것을 감지하게 되었으니 중열의 마음은 점차 불안이 쌓이기 시작을 하였다.
그런데 그날 관장님은 너무도 뜻밖에 말씀을 하셨으니 단 둘이서 저녁을 먹자는 것이다. 중열은 관장님의 어떤 사정이 생겨서 그런가보다 하고는 관장님을 조심스럽게 따라 나섰다.
그런데 이날 관장님은 앞서 말씀을 하신대로 이행을 할 것이라는 말씀을 한 것이니 중열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이 태권도장을 너에게 양도하기로 하였다.”
그러고 나서 한 달 후에 관장님은 큰 병원에 입원을 하셨고 급성 간 경화가 깊이 진행이 되었다고 하였다.
‘관장님이 간경화라니.’
그리고 생각을 하니 관장님이 워낙 술을 좋아하시고 매일과 같이 일부 관원들과 운동을 한 후에는 맥주 집에서 어울리는 때가 연중 계속되었던 것이다.
‘그 기간이면 쇠 떡심도 녹아 내렸을 것이다. 아!’
그러는 동안에 간경화가 깊숙이 진행이 된 것을 전혀 몰랐으며 이제 와서는 수술도 할 수가 없는 단계에 와 있다는 것이니 중열에게는 너무도 커다란 충격이었다.
그가 처음으로 대구로 올라왔을 때 관장님은 경무과장님의 체면을 보아서 그에게 숙식을 제공을 해 주었는데 따지고 보면 그것이 중열을 살리는 첫 번 째의 길이었다.
그런데 너무도 짧은 생각에서 보수를 달라고 철없이 관장님에게 대들었으니 그것이 두고두고 후회가 되는 일이었는데 관장님이 회복할 수 없는 병에 시달리게 되셨으니 중열은 너무도 가슴이 아팠다.
관장님의 상태는 하루가 다르게 악화가 되었는데 그러던 어느 날 관장님은 중열을 부르시더니 중열의 손을 잡으시면서 눈물을 흘리시었다.
성 중열은 관장님이 말씀은 하시지 않았지만 사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부르신 것 같아 서 속으로 오열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고 난지 닷새가 지난 한나절 호흡을 몰아쉬던 관장님은 스르르 눈을 감으셨으니 너무도 불쌍하게 돌아가신 관장님을 붙들고 성 중열은 한없이 통곡을 하였다.
관장님의 장례를 마치고 나자 성 중열은 태권도장의 관리에 대해서 점검을 해보니 이미 도장이 성중열의 이름으로 명예변경이 되어 있었으니 관장님이 생전에 그렇게 해놓고 이승을떠나셨다.
시골에서 농사만 짓던 아버지 슬하에서 자라는 동안 어떻게 하던지 가난하게 살지는 않겠다고 결심을 한 성 중열은 경무과장님의 덕택으로 태권도장을 알게 되고 그것이 큰 인연이 되어 도장을 인수하는 행운을 얻은 것이니 그가 그만큼 열심히 맡은바 임무를 다했기 때문에 그런 행운을 얻을 수가 있었다.
관장님의 장례를 치르고 나서 한 달 후 그날 중열은 점심을 먹고 나서 잠시 눈을 감고 있자니 바람결에 관장님의 “중열아.” 하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서 얼른 눈을 떴으나 그것은 환청일 뿐이었다.
그리고 나서 하늘을 쳐다보다가 무심하게 떠가는 구름 속에서 문득 떠오르는 두 여학생의 모습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지금이라도 연락을 하게 되면 답장이 올 수 있을까.’
金 斗 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