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 이야기
김상분 (제6회 작품상)
김장철이 다가온다. 마트에 들른 김에 엊그제 뉴스를 생각하며 천일염 5킬로 포장을 카트에 담는다. 그런데 가격이 놀랍다. 다시 보아도 쌀15킬로의 값과 같다. 소금값이 뛴다더니 역시 맞나보다. 비싼 장바구니물가는 어제오늘 이야기도 아니고 온 지구촌의 먹거리 문제가 점점 더 심각해진다는 소식도 여전하다. 그런데 나는 오늘 농경시대 사람처럼 쌀값이 소금값과 같다는 의미를 다시금 새겨보고 있다. 헛간 한구석에 쟁여놓고 저절로 간수가 빠지도록 묵혀서 쓰던 흔한 광물질이 아니라 귀한 식품으로 격이 높아지고 있다. 예년에 비해 세 배 이상 뛰었다고 한다. 음식에 간을 맞추고 맛을 내주는 천일염 구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 진다면 정말 유감이다. 갈수록 염전이 줄어든다고 한다. 서남 해안 신안군에는 이미 반 이상의 소금밭이 없어졌다고 한다. 고령의 어르신들이농촌을 지키듯이 염전의 일은 더욱더 어렵다. 바닷물을 가두어 햇빛과 바람에 말리고 졸여서 빛나는 천일염을 만드는 과정이 얼마나 힘들고 고될까. 농부가 쌀을 거둘 때까지 여든여덟 번을 허리 굽히며 일을 하는데 비유해서 88세를 미수(米壽)라 하듯이 염전에서의 일생은 더욱더 거칠고 각박할 것이다. 해풍과 폭염에 검붉게 타는 세월이다. 날마다 청명한 날씨도 아니어서 하늘 한 번 보고 소금밭 한 번 쓸며 늘 조바심이다. 장마가 지거나 해일이 몰려와서 가두어 놓은 소금밭을 단번에 쓸어 가기도 한다. 그래도 피땀 흘리며 오랜 세월 일구어 온 삶의 터전을 버리고 하나둘 떠난다는 소식이 마냥 안타깝기만 하다. 힘든 일을 피하여 살기 좋은 도회지로 떠나는 것만은 아니다. 젊은 일손 구하기가 힘든 데다 태양광 에너지라는 새로운 테마가 서서히 염전을 덮어가고 있다. 늙은 육신은 하루하루 더 꾸부정해지는데 비싼 세를 받고 밭을 빌려달라는 업자의 귓속말이 달콤하기만 하다. ‘징허게’ 힘들었던 소금밭을 이제는 그만 내놓아야 할까 보다. 일을 안 해도 돈이 들어온다는데….
더 큰 문제가 밀려오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에서 발생하는 오염수의 방출이다. 2011년 봄 일본 센다이지역 앞바다의 대지진과 쓰나미로 인한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에서 발생한 사고는 아직도 진행되는 대재앙이다. 당시에 침수된 발전소는 냉각시스템이 파손되고 핵연료 용융과수소폭발로 이어져서 엄청난 양의 방사성 물질이 유출되었다. 냉각수대신 뿌린 바닷물이 방사성물질을 머금은 오염수로 누출된 이 사고는 구소련의 체르노빌 사고에 버금가는 등급이라고도 한다. 이것이 어디 일본 자국만의 문제인가. 일본의 입장은 피해가 발생하지 않은 원전의 냉각기능이 회복되어 안정적이라고 해명을 하지만 태평양으로 펴져나가는 방사성 오염수 처리 및 오염된 토양의 정화는 앞으로도 수십 년이 걸린다고 한다. 바로 이웃 나라인 우리 해안으로 밀려오고 쓸려나기는 바닷물은 벌써 얼마나 많이 지구를 돌고 돌았을까. 사고 후 십 년이 흘렀다. 이제 일본은 그 무서운 후구시마 원전 오염수를 해양으로 방류할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소금 값이 올라가는 또 하나의 까닭이다.
돈 가진 사람이 돈을 더 벌게 된다던가, 이 보석 같은 소금 장사를 중국이 놓칠까. 어느새 소금의 매점매석이 공공연하다고 한다. 미곡이나 두류 등의 식량을 미국은 물론 강대국들이 앞서서 확보해두고 비싸게 되파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일이다. 미래의 먹거리 전쟁도 두렵지만 생각지도 못했던 소금값까지 뛰는 사실에 긴장하게 된다. 값싼 수입산 소금이나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정제된 화학 소금으로 살아갈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서해의 감칠맛 나는 그 맛과 질은 아닐 것이다. 중국에서 잡은 조기라도 영광 앞 바닷물에 슬쩍 담갔다만 말려도 굴비 맛이 난다는 서해가 아닌가. 광천 앞바다의 짭짤한 바닷물에 배추를 절이던 청정한 시대도 있었고 서산의 어리굴젓은 나랏님께 진상품일 정도로 쫄깃한 맛이어서 아직도 귀한 대접을 받는다. 밀물 썰물 드나드는 우리나라 서남해안의 천체의 리아스식 해안은 지구상에서도 보기 드문 특별한지형이다. 조석간만의 차이가 큰 넓은 갯벌의 바다농장에는 밀물과 썰물에 실려 오가며 숱한 해양생명이 살아가는데 더없이 좋은 환경이라고 한다. 그 바닷물로 만들어지는 짭짤하고도 달착지근한 결정체 우리 바다 서해안의 천일염이 날로 귀해진다니 참으로 안타깝다.
어느새 수입산 암염은 예쁜 유리병에 담겨 선물세트로 오가며 식탁을 장식하고 있다. 히말라야에서 온 핑크 소금에 중남미 안데스 소금도 있다. 암염의 주생산지였던 유럽이나 세계각처의 관광지에서 소금 광산을 견학하며 사 오는 작은 선물들도 많이 보인다. 우리에게 중요한 소금은 성분도 잘 모르는 턱없이 비싼 수입 소금이 아니다. 간장 된장 고추장에 김장을 담가 먹는 우리 식생활 전반에 필요한 기본 식품이다. 곡물과 야채와 과일, 생선과 고기를 먹듯이 소금은 우리 몸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미네랄 성분이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양이 지속해서 혈관을 타고 돌아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소중한 물질이다. 암염이나 정제화학소금을 많이 섭취할 때 갑상샘 호르몬 이상을 유발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니 심각한 현상이다. 현대생활에서 에너지의 필요성은 누구나 아는 항목 제일의 테마이다. 그러나 하늘이 내려주는 청정지역의 소금밭을 덮어버리는 태양광 에너지 공장은 다시 생각해 볼 일이 아닌가 싶다.
하늘이 공으로 주는 바닷물과 햇빛과 바람을 절대로 외면하지 말자. 조금만 더 합리적인 생산방식을 고안하며 천일염 산업의 쇠퇴를 막고 염전의 젊은 인력을 대를 이어가는 장인으로 키울 수는 없을까. 전북 부안군의 곰소염전은 4대째 가업으로 이어지며 70여 년을 전통방식으로 소금을 생산하여 국가 중요어업 유산으로 지정되었다는데 이를 롤 모델로 삼으면 어떨까, 오월 바람을 타고 송홧가루가 내려올 때 만들어진 소금은 ’곰소‘의 특산물이라지 않은가. 관광자원으로도 큰 수입이 되고 자라나는 세대를 위한 자연체험학습장으로도 훌륭하게 여겨진다.
보석처럼 빛나는 하얀 결정체, 신토불이의 천일염으로 우리들의 건강을 지키고 싶다. 그뿐이라. 리아스식 서남해안 청정한 신안지역의‘K-salt’를 특화시키면 전 세계로 수출되는 값비싼 독점(獨占)의 효도상품이 되지 않을까. 꿈은 이루이진다고 하는데….
첫댓글 『계간수필』 통권106호/ 2021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