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테의 돈으로 세상 읽기 64
상식으로 돌아가라
대통령의 언어는 가치 중심이어야 한다. 정당정치를 통해 선출되기에 그렇다. 대통령의 언어는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국정의 방향을 결정하는 자리기에 그렇다. 대통령의 언어는 법 안에 있어야 한다. 대통령중심제의 국가시스템에서는 더욱 그렇다.
최근 대통령실에서 나오는 메시지는 중심을 잃었다. 어제까지 자유를 주문처럼 외치더니 가치보다 민생이 먼저라고 한다. 자유의 확장 없이 윤택한 민생이 성립될 수 있는지 궁금하다. 국민은 무조건 옳다는 말도 틀렸다. 국민의 뜻이 바르기만 하다면 나치에 열광했던 독일을 설명할 수 없고 베네수엘라 같은 나라가 있을 수 없다. 대중의 귀는 종이보다 얇으며 눈앞의 이익을 좇아 변덕을 부릴 뿐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8월 국민통합위원회에서 한 발언을 되새겨 본다. 새는 좌우 날개로 난다. 하지만 오른쪽 날개는 앞으로 가려고 하는데 왼쪽 날개가 뒤로 가려 하면 날 수 없다며 국가의 정향을 언급했다. 시대착오적인 투쟁과 혁명, 사기적 이념에 굴복하거나 휩쓸리는 건 진보가 아니라고도 했다. 부연하면 국민통합은 자유와 평등, 인권과 법치라는 민주사회의 보편적 가치에 충실할 때만 가능하다는 의미였다. 상식 안의 이야기다.
법과 상식은 다르다. 하지만 법은 최소한의 도덕률이며 도덕은 상식 안에 있다. 아무리 치밀한 법리라 하더라도 일반의 상식에 벗어나면 수용하기 어렵다. 우리가 도덕과 상식의 사회를 지향하는 데는 입법 만능주의의 폐해를 우려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상식 안에 사는 사람들은 입법 건수에 따라 의정활동을 평가하는 우매함에 헛웃음을 짓는다.
서울 강서구청장 선거 결과를 두고 정치권이 소란이다. 여당은 어김없이 혁신위원회를 만들고 제1야당은 당 대표가 면죄부라도 받은 양 의기양양하다. 곧 있을 총선 민심의 바로미터라고 생각해서일 테다. 이젠 혁신위라는 것도 지겹고 야당의 어깨춤도 꼴불견이다.
대통령과 여당 대표는 법률가다. 강서구청장 선거는 법치를 무시했다. 더 정확히는 상식을 저버렸다. 여당 후보자에 대한 사면은 대통령의 권한이니 탓할 수 없다. 다만 보궐선거 귀책에 대한 이해는 비상식이다. 더불어민주당이 부산시장과 서울시장 후보를 냈을 때 자신들이 했던 말을 상기하면 될 일이다.
국민의힘은 강서구청장 후보를 내지 말았어야 했다. 그것이 보수가 지향하는 법치의 상식이다. 설사 불의에 맞선 내부고발자였다 하더라도 보궐선거의 귀책인 사람을 다시 공천한 일은 납득하기 어렵다. 만약 여당이 후보를 내지 않았다면 시민들은 달라진 우파정당의 희망을 봤을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이십년 집권을 장담했다. 그러나 그들이 단막극으로 종영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먼저는 경제 실정이고 다른 하나는 도덕적 타락이다. 좌파정당이 평등사회를 지향하는 것은 목적이고 당위다. 그렇기에 경제가 좋아지리라는 기대는 없었다. 다만 자신들이 내세운 도덕의 순혈성만은 지켜지길 바랐다.
충남도지사에서 시작한 추문은 끝내 서울시장에서 비극으로 연출됐다. 대통령 후보는 형수와 여배우의 얼룩을 말끔히 지우지 못했다. 조국 사태로 내로남불이란 신조어가 보태졌다. 보다 못한 양심적 좌파지식인의 상당수가 등을 돌렸다. 혁명적 개혁을 꿈꿔온 이들조차 일련의 사건을 상식의 범위에서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정당은 이념의 결사체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당원을 일러 동지라고 부르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념 정당을 지양해야 한다는 주장은 상수도와 하수도를 구분하지 말자는 것과 다름없으며 보수는 보수다워야 하고 진보는 진보다워야 한다. 얼마 전 여당 대표가 몇몇 좌파인물들을 영입하겠다는 보도가 있었다. 자신들이 몸담았던 진보세력에 환멸을 느낀 사람들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왼쪽 날개를 잘라 오른쪽에 붙였다는 전향의 고백은 없다. 마구잡이 영입은 좋은 말로 외연 확장지만 정당정치의 본질을 허무는 일이다.
같은 정당 구성원이라고 정치이념이 하나의 눈금일 수는 없다. 사회주의의 스펙트럼이 너무 넓어서 어디에서부터 좌파이고 우파인지 기계적 판단이 불가하다. 그럼에도 보수와 진보를 자유와 평등으로 재단하는 것은 그것들이 정치이념의 골격을 이루는 핵심가치이기 때문이다. 이 양립 불가능한 두 개의 화살이 하나의 활시위에 물려야 하는 모순은 민주제의 숙명이며,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정 목표가 달라지는 이념의 진동도 어쩔 수 없다.
유독 정치권이 어지러운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한국의 정치지형은 왜곡된 이념에 지역주의가 얹어있다. 붉은 입술로 파란 옷을 입고, 파란 눈으로 머리털을 붉게 염색한 이가 적지 않다. 수박감별사가 생기고 분탕 미꾸라지를 잡겠다고 흙탕물이 인다. 개흙이 칠갑인데 가짜가 뒤엉켜 서로 가짜란다.
여의도는 지금 세계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알 바 아니다. 국가의 안녕과 번영도 관심이 없다. 민생을 외치지만 부자의 주머니를 털어 나눠 먹거나 미래세대의 몫을 빼앗는 일은 선수다. 국가 경쟁력을 약화하는 대중영합적 졸속입법은 서로 앞장선다. 한술 더 떠 거짓 선동과 국론 분열의 망동을 영웅담으로 치환한다. 사법부의 법의 정의에 대한 신뢰도 바닥이다. 모두 상식 밖이다.
많은 이들이 여당은 전략이 없다고 한다. 반쯤 맞고 반쯤 틀린 말이다. 전략이 없는 것은 무가치 무정견의 집단이 되어버린 탓이다. 당연, 옳은 전략이 있을 수 없고 치열한 이념 투쟁도 없다. 오직 의원 배지에 목매는 부류들만 모여 거품을 낸다.
평등의 가치도 자유만큼 소중하다. 진보정당은 먼저 잃어버린 도덕성을 회복해야 한다. 여당 대표가 영입 운운한 인사들이야말로 진성 좌파의 푯대다. 그런 양심적 인물들이 중앙 정치 무대에서 연극을 해야 시민이 표를 산다.
여의도의 탁류는 정화할 때가 되었다. 운동권세력은 수구가 되었고 기회주의자들은 세비만 축낸다. 여야 모두 글로벌 마인드를 가진 신진 세력에게 문을 열어줘야 한다. 국가의 번영과 민생을 위해서다. 그게 양식 있는 시민의 시대적 요구이고 상식이다.
첫댓글 겨우 겨우 찾아 왔습니다.
돈테의 돈으로 세상읽기 64편 감명깊게 열공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