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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시 | 9월 8일 오후 14시30분(일요일) |
만남 장소 | 전철 1, 4호선 창동역 #1 출구 광장 |
트레킹 코스 | 창동역 #1 출구 ⇨ 중랑천 뚝방길 ⇨서울 창포원 ⇨ 평화문화잔지 및 조선시대 다락원 터 ⇨ 도봉산역 전철 1, 7호선근처 도봉고을 식당/해산 |
트레킹 난이도 | 트레킹 약 2시간30분(휴식, 해설, 관람시간 포함) 5Km(난이도 하) |
진행자 | 김현회(010-8579-9988) 지종학(010-5233-2253) 김남선(010-5811-1188) |
길 안내자 및 해설자 | 임청아, 권오철, 명인식, 장동인, 이광우, 이길헌 |
참석방법 | 카페에 들어가서 닉네임 또는 실명/연락처/하고 싶은 말 적어주세요..^^ 댓글로 신청 |
준비물 | 식수, 트레킹복장, 트레킹화, 개인 안전장비, 썬 크림, 날씨에 따른 준비물, 간단한 간식 |
트레킹 중 안전에 대하여 | - 역사문화지리트레킹은 순수 비영리 트레킹으로 카페운영진과 트레킹진행자는 같은 회원으로 일시적으로 봉사하는 것으로 트레킹 중 일어나는 모든 사고는 참석한 회원 각자의 책임이며, 어떠한 경우에도 카페 운영진이나 진행자에게 민, 형사상의 법적, 금전적 책임을 물을 수 없습니다. - 항상 회원 여러분이 스스로 자신의 안전에 최대한 주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참석신청 자체가 위 사항을 확인한 것으로 간주합니다. - 진행 측 차원에서는 보험이 없으므로 필요시 개인적으로 여행자보험가입해주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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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 - 정시에 출발 - 회비는 없음 - 트레킹 종료 후 식사 할 경우 n/1 원칙 - 당일 트레킹 일정은 상황에 따라 변경될 수 있습니다. -트레킹 질서를 지켜 가면서 공공선을 실천합시다. -상대방에게 불쾌감이나 마음에 상처를 주는 행동이나 언행은 삼가바랍니다. -선진 문화시민으로서 자연보호와 문화재 보호에 심혈을 기울여 주시고 자기가 발생시킨 쓰레기는 수거하여 지정된 장소에 버려주시기 바랍니다. - 자세한 사항은 국제경영컨설팅 홈페이지(www.kukjec.com) 또는 카페주소(http://cafe.daum.net/trekking7)를 참고 하시기 바랍니다. |
▢중랑천 변 걷고 싶은 길: 서울시 창동운동장 근처~ 무수골 입구(노원교)/약 2.7Km
◯중랑천 뚝 방 길을 가로수가 감싸고 있으며, 바닥은 마사토로 포장해 놓아서 그늘 속을 맨발로 걷기 때문에 건강을 다지는 트레킹 코스로 잘 알려져 있다.
◯건강한 맨땅 맨발 걷기운동
대부분의 신발은 열이나 전기가 빠져나가는 것을 막는 절연체이기 때문에 지구의 전자를 받아들이는 데 방해가 되는데요. 인류가 처음 지구상에 나타났을 때처럼 맨발로 지구와 접촉하게 되었을 때 지구의 기본 주파수와 공명하는 전자를 공급받는다면, 단순히 걷기운동을 벗어나 영육 간에 전인적으로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맨발로 맨땅과 접촉한다는 어싱(Earthing)은 음전하(-)의 거대체인 지구에 몸이 직접 접촉하여 만성병과 암과 노화의 기본요소인 활성산소의 양전하(+)를 중화시키는 역을 하면서 건강을 회복시키는데요. 맨발로 지구의 피부인 대지를 접지하는 비상 걷기운동법으로 비상시에는 비상 생활이 필요하게 됩니다. 평상시에는 일 생활을 하면서 걷기를 하지만 비상 경우에는 신발을 벗은 채 맨발로 잔디밭, 자갈밭, 풀밭, 모래사장, 숲속 등을 걷는다거나 등산을 하는 비상생활 걷기가 요구되고 있습니다.
▷맨발 걷기를 하기 위해선
아스팔트, 부러진 나뭇가지가 있는 길 NO
작은 돌부리, 깨진 유리병 등이 있는 길 NO
부드러운 흙길 OK
천연 잔디 위 OK
맨발로 걷다 보면 돌부리나 나뭇가지, 유리병에 의해 발이 다칠 수 있기 때문에 도전을 하신다면 부드러운 흙이나 잔디 위에서 걸으시길 바랍니다.
맨발 걷기를 하는 시간을 조금씩 늘려가면서
맨발 걷기가 잘 맞는지, 혹은 그렇지 않은지를
확인해보시기전에 몸의 변화를 충분히 느껴보신 후
판단하셔도 좋습니다.
▷맨땅 맨발걷기의 효력
-성장기 어린이들
지난 2014년 일본의 한 유치원인 토리야마 슈퍼보육원에서 아이들을 하루 종일 맨발로 생활하며 뛰어놀게 했더니 천식이나 아토피 피부염 등을 가진 아이들이 건강을 되찾은 기적을 보였다는 내용이 보도되었습니다. 최근 대구 관천초등학교에서도 유사한 결과의 기사가 보도되었는데요. 맨발로 운동장 흙길을 매일 40분씩 걷게 하였더니 수업 집중력이 높아지는 등 시행 두달만에 마법 같은 변화가 왔다고 모두들 놀라워했습니다.
-청장년층의 맨발걷기
40대 직장인 권마산씨는 직장에서의 스트레스, 잘못된 식습관과 운동 부족 등으로 몸에 이상이 오기 시작하였습니다. 1~2년 사이 55kg의 몸무게가 갑자기 70kg으로 불어나고 혈당 수치가 135까지 올라갔고, 밤에 자다가 발에 경련이 자주 발생하다가 결국 일과성 뇌허혈 장애로 일주일 입원하기로 했지만 이후 이명과 이명 스트레스로 인한 두통도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한 계기로 맨발걷기를 시작하게 되면서 시작한지 한 달이 지나기 전에 두통이 사라지는 것을 느끼고 매일 새벽 우면산을 맨발로 오르면서 이명이 서서히 사라지는 것을 경험했는데요. 혈액순환이 잘 되어 다리에 경련이 나는 현상도 거의 없어지면서 건강을 되찾은 그는 “맨발걷기 강추입니다” 를 외치며 주위에 권하고 있습니다.
-노년기의 맨발걷기 효력
70대 황인수씨는 마음이 불편하거나 울적할 때 숲길을 맨발로 나서면 금방 마음이 환히 갠다고 말합니다. 지난 겨울 내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서오릉 주변을 맨발로 걷는 그는 71세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노년기 맨발걷기가 주는 에너지 재충전과 몸과 정신의 고양을 정확하게 증언해주고 있습니다..
-정신적 스트레스에 대한 맨발걷기
맨발걷기로 신체적 질병을 예방하고 치유하는데 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정신적 건강에도 마찬가지로 효과가 있으며, 숲길 맨발걷기는 행복한 잠으로의 초대입니다. 고즈넉한 숲길 산책은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준다. 그것은 궁극적인 긴장의 해소이고 스트레스로부터의 해방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맨발로 걷을 때 주의할 점
-맨발로 걷다 보면 발바닥의 자극이 지속되어 오히려 피로가 더 쌓일 수 있기 때문에 맨발로 30분 이상 걷는 것을 삼가 주세요! 임산부의 발뒤꿈치는 태아의 머리에 해당되는 부위이니 자극이 계속된다면 위험할 수 있어요!
-당뇨병 환자는 감각이 떨어져 발을 다칠 경우 이를 알아채지 못할 수 있게 되니 삼가해주세요!
- 발바닥 근육이 약한 노약자의 경우 찰과상이나 발목 부상 위험이 있으므로 삼가해주세요!
여성은 생리 중일 때 맨발 걷기를 하면 생리가 멈추지 않아 빈혈 증상이 생길 수 있어요!
- 평발이거나 발에 진문이 나고 갈라지는 증상이 있는 경우 꼭 피해주세요!
습관성 염좌, 발목손상, 퇴행성 관절염, 혈액순환 장애가 있다면 맨발걷기는 피해주세요!
-식사 후에는 위에 부담이 가서 소화를 방해할 수 있으니 1시간 정도 지나고 걸어주세요!
▷숲길 맨발걷기의 7가지 걸음 형태
-두꺼비처럼 걷기
온몸에 힘을 다 빼고 양어깨를 무겁게 누르고 있던 스트레스와 고뇌를 다 내려놓고 어머니 대통하여 땅속으로 조용히 소멸하여 몸이 깨끗해진다. 평소 구두나 등산화 등 신발을 신으면서 충격을 받고, 경직화되었던 온몸 관절 주변의 근육을 부드럽고 말랑말랑하게 하여 근골 격 계의 통증을 완화시켜줍니다.
-황새처럼 걷기
어깨를 쭉 펴고 바른 자세로 세상을 향해 당당히 나아가는 자신만만한 걸음 누구나 당당한 자세, 우리 인간이 창조된 그대로의 아름다운 균형미를 갖춘 걸음걸이의 모습이 되면서, 심리적으로는 자신만만하게 세상을 향해 나가가며 포효하는 걸음입니다.
-까치발 걷기
발의 뒤꿈치를 들고 발부리와 발가락 부위로만 걷는 걸음 발부리와 발가락 부위에 집중하여 자극을 주어서 발가락 부위에 지압효과가 극대화되고, 머리는 맑게, 눈과 귀는 밝게 해줍니다.
지금까지 맨발걷기의 효능에 대해서 알아보았는데요! 개개인에 따라서 효능이 적용되고, 적용되지 않을 수 있으니 맨발로 걷는 시간을 점차 늘려가면서 몸에 맞는지 확인해주는 것이 중요해요. 맨발걷기로 여러분 모두 건강해지길 바랍니다 ^^
[출처]맨발걷기의 효능 *맨발로 맨땅을 걷는 효과는 과연 무엇??*|작성자힐링슈즈 이지힐
▢서울 창포원
서울 강북의 끝자락인 도봉산과 수락산 사이에 세계 4대 꽃 중 하나로 꼽히는 붓꽃이 가득한 특수 식물원인 서울창포원은 약 1만 6천 평에 붓꽃원, 약용식물원, 습지원 등 12개 테마로 구분 조성되었다. 붓꽃원에는 노랑꽃창포, 부처 붓꽃, 타레붓꽃, 범부채 등 '붓'모양의 꽃봉오리로 된 붓꽃류 130여 종의 다양한 붓꽃 30만 본을 심어 붓꽃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다. 또한 약용식물원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약용식물의 대부분을 한자리에서 관찰할 수 있으며, 습지원에서는 각종 수생식물과 습지생물들을 관찰할 수 있도록 관찰덱이 설치되어 있다. 초화원에는 꽃 나리, 튤립 등 화려한 꽃들이 계절별로 피어난다.
▷개방시간 : 05:00 ~ 22:00
▷주소 : 서울특별시 도봉구 마들로 916(서울창포원)
▷전화 : 02-954-0031
▷면적: 총 51,470㎡
▷주요시설: 붓꽃원, 약용식물원, 수변식물원,초화원. 방문자센터 등 주요 식물
▷수 목: 낙우송, 느티나무, 스트로브잣나무, 소나무 등 39종 2,726주
▷관 목: 갯버들, 골담초, 조팝나무, 사철나무, 화살나무 등 18종 57,035주
▷초 화: 달뿌리풀, 맥문동, 터리풀, 구절초, 물억새 .꽃나리등 46종 438,512본
▷붓 꽃: 꽃창포, 노랑꽃창포, 부채붓꽃, 타래붓꽃, 범부채 등 130종 218,453
▢평화문화진지
전쟁의 상징물에서 사람과 생활을 잇는 문화 창작 공간으로 재탄생한 평화 문화 진지. 평화문화진지는 6.25 전쟁 당시 철원과 경기도를 거쳐 서울로 진입하는 길목 중 한 곳으로, 북한군의 남침을 대비하기 위해 유사시 건물을 폭파하여 적군이 통행을 차단하기 위한 목적으로 1970년에 지어졌던 옛 대전차 방호 시설을 새롭게 공간 재생사업으로 꾸민 곳이다.
이곳은 과거에 특이하게도 1층에는 군사시설을, 그리고 2층에서 4층까지는 주거시설이 갖추어진 최초의 시민 아파트였다. 하지만 2004년 건물의 노후화로 인해 시민 아파트는 안전진단 E등급을 받아서 군사시실인 1층 부분만 보존하고, 주거부분이었던 2~3층은 철거 된 뒤, 12년 동안 방치되어 왔다. 이번에 새롭게 조성된 평화문화진지는 이러한 특수한 장소성과 문화적 유산의 가치, 그리고 역사 등을 내재한 문화복합공간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북한이 남침을 할 경우를 대비해서 적군의 통행을 차단하기 위해 지어졌다고 하는데,
낮은 천장과 어두운 작은 통로는 아직도 우리나라가 휴전상태인 분단된 국가임을 충분히 알려주고 있는 느낌이다.
이러한 환경 속에 전시되어 있는 예술작품들은 작품에 더욱 집중할 수밖에 없는 독특한 분위기를 내고 있고, 장소는 전쟁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 그리고 외국인들에게 이색적인 장소이다.
▢조선시대 다락원터
원(院)은 조선 시대 수령, 공용 여행 중인 관원, 기타 일반민의 여행 등에 편의를 제공하기 위한 목적으로 주요 도로상에 설치된 일종의 숙박 시설이다. 현재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경내에는 다락원[樓院]이 설치되어 있었고 그 터가 남아 있다.
조선 시대에는 서울을 중심으로 각 지역으로 향하는 주요 도로가 있었다. 또한 각 도로는 대·중·소의 등급을 정하였고, 주요 거점에는 역(驛)을 두었다. 원은 주로 역과 역 사이에 배치되는 경우가 많았으며 공용 여행에 숙박 시설로 이용하기 위해 설치하였다. 조선 개창 후 태조 즉위년 개국공신 조준(趙浚)과 배극렴(裵克廉)의 상소를 통해 원을 설치하기 시작하였다.
공무 출장과 수령에게는 숙식이 무상으로 제공되었으나 연회 등은 금지되었다. 기본적으로는 공용 목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시설이었으나, 상인이나 민간 여행자들도 숙박 시설로 이용할 수 있었다. 다락원은 서울에서 함경도와 경기 북부 지역으로 이어지는 주요 도로의 분기점에 위치하고 있어 이 지역을 왕래하는 관원 및 상인 등에게 편의를 제공하려는 목적으로 설치되었다.
『선조실록(宣祖實錄)』 권73, 선조 29년[1596] 3월 을해조에는 “광주는 광진(廣津)으로 옮기고 양주는 누원으로 옮겨 경성(京城)을 호위하는 것이 매우 편리하며 유익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종조가 기전(畿甸)에 큰 읍을 포치한 것이 역시 이러한 연유에서입니다”라는 비변사의 건의가 기록되어 있다. 이는 누원이 서울 인근 지역에서 매우 중요한 곳에 입지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또 『선조실록』 권145 선조 35년 1월 신축조에는 “양주 누원 도로가에 거주하는 호인(胡人)들은 자기네들끼리 한 마을을 이루어 살고 있고”라 하여 누원 인근에 모여 사는 향화인(向化人)[야인(野人)·왜인(倭人)으로서 투화(投化)해 온 사람]에 대한 기사가 나타난다.
『영조실록(英祖實錄)』 권16, 영조 4년[1728] 3월 경오조에는 “양주 목사 유척기(兪拓基)에게 진어사(鎭禦使)를 겸하게 해 본 주의 군사를 거느리고 누원에 진을 치게 하였다”라는 기록이 보여 누원의 입지가 서울 방어의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곳이었음을 드러낸다.
『영조실록』 권17 영조 4년 4월 임오조에는 “서로(西路)의 검암점(黔巖店)과 동로(東路)의 누원점(樓院店)은 모두 별장(別將)이 있으니, 이제 마땅히 기포(譏捕)가 보통이 아닐 것이오며”라 하여 누원점에 별장이 배치되어 있으므로 형찰(詗察)이 매우 엄격할 것임을 말한 기사가 있다. 당시 누원점이 상업적으로 번성하고 있었고 그에 따라 별장이 배치될 정도로 중요한 곳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정조실록(正祖實錄)』 권35 16년[1792] 9월과 이후 일련의 기사에서는 광릉(光陵)을 참배하러 가는 정조가 누원을 경유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당시 이 지역의 교통로가 규모가 크고 중요한 곳이었음을 나타낸다. 그뿐만 아니라 『1872년 지방 지도』「양주 지도」에는 서울에서 이어지는 도로가 붉은색 선으로 그려져 있고, 해등촌면과 함께 누원점을 표시하고 있다.
다락원은 누원을 우리말로 쓴 것으로, 다락[樓]으로 된 원집[院宇]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누원의 설치 시기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록이 없다. 『선조실록』에 정유재란(丁酉再亂) 이후 많은 향화인들이 누원에 모여 살았음은 전술하였다. 또한 누원은 서울 동북부의 교통 요지로서 상업이 번성한 곳이었다. 조선 후기에는 특히 함경도와 경기도 북부로 이어지는 도로의 분기점에 위치하고 있어 서울로 유입되는 어물(魚物)을 이 지역의 상인들이 독점하였고 큰 규모의 장시(場市)가 형성되어 있었다. 현재 도봉산역 환승 주차장 인근에 다락원 터가 남아 있다.
다락원의 설치는 이 지역이 이미 교통의 요지이었음을 보여 주는 것이라 하겠다. 교통상의 요지에 힘입어 인근에는 큰 장시가 형성되었음을 통해 당시 도봉 지역의 상업적 번성을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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