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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 속의 예수원
박창수(예수원 지원 37기, 희년사회 연구위원)
저는 지난 1999년 봄에 3개월 동안 예수원 지원 37기로 예수원에서 살았습니다. 예수원은 제 마음의 고향입니다. 저는 예수원에서 하나님과 가족들로부터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또 희년 말씀을 가르치는 제 평생의 사명을 예수원에서 받았으며, 아내를 예수원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내 기억 속의 예수원’에 대한 글을 생각하다가, 그 당시에 썼던 노트를 꺼내서 다시 읽었습니다. 읽으면서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나누고 싶은 내용들이 너무 많지만, 지면의 한계 때문에 앞부분만 조금 나누고자 합니다.
1. 1999년 4월 10일(토) ‘노동과 영성’에 대한 세 분의 강의
신바나바 형제님:
- 내가 해보지 않은 일일지라도, 주님을 의지하고 기도하며 나아가면, 그리고 돈을 목적으로 하는 탐심이 없으면, 하나님이 도우시고 자신감을 주신다.
- 노동은 생각을 건강하게, 몸을 건강하게 해 준다.
- 노동에 대한 시간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면 유쾌해진다.
표룻 자매님:
- 쉼이 필요할 때는 쉼을 찾으려고 한다. 쉬지 못할 때는 하나님이 붙들어 주신다.
- 양배추는 옮길수록 더 잘 자란다. 채소 가운데 옮길수록 더 잘 자라는 것이 있듯이, 사람들 가운데도 옮길수록 더 좋은 사람도 있다.
- 농부의 딸이었음을 감사드린다.
- 가사, 손님 접대, 목장일과 농사 등 삶이 기도이다.
- 노동의 부담도 있지만 주님은 기쁨을 주신다. 감당할 시험밖에는 우리에게 주시지 않으신다.
- 성경 말씀의 배경은 목축과 농사와 고기잡이 등이다. 그래서 노동을 하면 말씀을 더 잘 이해하게 된다.
이솔로몬 형제님:
- 17살부터 공장에서 노동했다. 돈을 벌기 위해 하루 12시간 노동했다. 처절한 삶이었다. 내면의 갈등이 있었다. 공허했고 허무했다. 시간 때우기 노동이 되었다. 돈만 벌기 위한 노동은 힘들고 허무하다.
- 왜 노동은 기도이며 기도는 노동인가? 이웃을 생각하며 하는 노동은 기도이다. 기도하고 쌀 80kg을 옮길 때와 기도하지 않고 옮길 때의 차이가 있다. 기도하면 주님께서 도와주신다. 노동 중에 실존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한다. 하나님은 노동 중에 함께 하신다. 노동 중에 하나님을 만난다. 예수원의 보일러가 고장 났을 때 보일러를 붙들고 기도했다. 노동 중에 체력과 기술의 한계에 부딪혔을 때 기도했고, 기도 가운데 하나님의 실존을 체험했다.
- 대천덕 신부님의 ‘빈곤의 공부’에 의하면, 노동자는 공부된 자이며, 지식인은 공부한 자로서, 공존하며 공동체를 이룬다. 노동자와 지식인이 서로 겸손하게, 서로에게 배우면, 서로 전혀 몰랐던 사실을 이해하게 된다.
2. 1999년 4월 17일(토) ‘중보기도’에 대한 대천덕 신부님의 강의
- 기도하는 사람이 없으면, 하나님은 일하지 않으신다. 기도하는 사람과 합력하기로 하나님은 결정하셨다.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과 함께 창조하는 것이다. 우리 힘만으로 하려 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 에스겔 22장 30-31절.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서서 나로 하여금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에서 찾다가 찾지 못하였으므로 내가 내 분노를 그들 위에 쏟으며 내 진노의 불로 멸하여 그들 행위대로 그들 머리에 보응하였느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대도자가 없어서 하나님은 노하셨다. 하나님은 중보자를 찾고 계신다.
- 예수원 설립 동기는, 기도의 중요성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기도하는 생활을 위하여 산으로 들어온 것이다. 예수원은 중보기도의 집이다. 다른 어떤 사업보다도 예수원의 주된 사업은 기도이다.
- 기적은 기도를 통해 일어난다. 기도가 없을 때 힘이 없고, 기도가 있을 때 힘이 있다. 기도는 실제적이다! 사단이 우리 눈을 멀게 하여 영계와 현실계를 분리시켰다. 온 세계와 온 우주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보고 동참하려면,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은 인간과 합력하실 때 전능하신 권세를 사용하신다.
- 숙명론은 잘못된 것이다. 기도는 현실에서 도피하는 것이 아니다. 기도로 세계를 변화시킨다!
- 인도가 가장 흉한 나라이다. 하나님이 누구신지 모르고 지주제도 때문에 굶주려 죽는 사람이 너무 많다. 우리 힘으로 고치기 힘들다. 그러나 인도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토지 정의가 이루어져 가난 문제가 해결되고 복음이 전파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
- 기도하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생각하지 못해서이고, 우리와 합력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하지 못해서이다. 기도로 전능하신 하나님과 합력하라!
- 세계교회사에서 대부흥이 아홉 번 있었는데, 그 중에 일곱 번이 청년 기도를 통해 일어났다.
- YWAM에 의하면, 뉴욕에서 전도지를 돌리는 것보다, 기도를 받기 원하는 사람은 오라고 광고한 것이 더 큰 효과를 보았다. 기도를 받기 원하는 사람은 많다.
- 에베소서 3장 20절.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는 것이나 상상하는 것보다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신다. 기도할 때 기대하는 마음으로, 소망의 기도를 드리자!
- 주기도문은 먼저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하나님이 뜻이 하나님의 대표자인 우리를 통해 세계에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는 것이고, 세계를 위해 기도한 후에 우리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며, 남의 죄를 용서하면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다.
- 선지자들이 정의를 외치다가 죽고, 또 선지자들이 정의를 외치다가 죽었다. 계속해서 정의를 외치는 사람들을 하나님은 일으키실 것이다. 힙포의 어거스틴이 인간이 악하고 사회가 불의해서 사회를 고칠 수 없다고 말한 것은 악한 가르침이다. 이런 가르침 때문에 이슬람과 공산주의가 발생했다. 이 사회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사회를 고칠 가능성이 없어서 기도할 수 없다는 것은 잘못된 태도이다. 전능하신 창조주께서 하실 수 없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 예수님이 세 번 시험받으신 후에도 마귀는 계속해서 기회를 노렸다. 이처럼 우리 역시, 마귀의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해야 한다.
- Prayer for shaping the future.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사용하셔서 미래를 그리신다. 기도는 스케치이다.
-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도하라! 이를 위해 먼저 주님의 뜻을 깊이 깨달을 수 있도록 기도하라!
- 개인 대도록에서 주기도문으로 기도하고, 세계를 위하여 기도하고,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기도한다. 대부분은 세계를 위한, 남을 위한 기도이다. 나를 위해 기도할 때, 하나님이 오늘 하루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도록, 갈 길을 보여 주시도록, 하나님의 뜻대로 살 힘을 주시도록 기도한다. 매일 같은 기도를 드리는 것은 벽돌을 쌓는 것과 같다.
3. 1999년 4월 19일(월) 저녁 중보기도 시간에 떠오른 말씀과 생각
- 빌립보서 2장 3-18. 겸손하라,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게 하라.
- 예수원 식구들의 과묵한 헌신과 인내, 그리고 자기를 드러내지 않는 겸손을 배우라.
4. 1999년 4월 21일(수) 저녁 ‘하나님의 경제원리 – 광야에서 약속의 땅으로’에 대한 대천덕 신부님의 강의
- 창세기 1장 9-13절. 하나님이 창조하신 토지.
- 창세기 3장 17-19절. 인간의 범죄로 저주받은 토지. 그 토지 위에서 인간은 노동해야 함
- 레위기 25장 23-24절. 토지는 하나님의 것이라. 토지 무르기.
- 모든 경제의 기초는 토지와 노동이다. 토지 없이 노동할 수 없다. 토지는 하나님의 것이다. 우리 인간은 청지기요 소작인이다. 토지가 없으면 자유도 없다! No Land, No Liberty! 토지 가격은 위치와 자연자원에 의해 결정된다. 자본은 노동생산물의 일부이다. 자본과 노동은 차이가 없다. 그러므로 토지와 노동이 기본이다.
- 토지는 개인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이다. 하나님이 토지를 나눠주셨다. 제비뽑아 공평하게 분배해 주셨다. 각 가족에게 토지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토지 없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 소작농이 빈곤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소작농은 노예보다 더 못한 상태에 있다. 지주는 노예주보다 더 빨리 부자가 될 수 있다.
- 농촌에서 토지를 팔고 도시로 가지만, 비싼 물가 때문에 고통 받을 수밖에 없다. 그 자녀들 교육에 희망을 걸지만, 대학을 졸업해도 일자리가 없다.
- 한국의 토지 가격은 미국 전체의 토지 가격과 같다. 재벌에게 토지 소유가 집중되었다. 은행이 토지를 담보로 잡았다. IMF는 큰 부자를 더 큰 부자가 되게 했고, 노동자들을 해고하여 실업자로 만들었다.
- 헨리 조지가 살았던 미국 필라델피아는 발전하는 도시였지만 빈민굴이 공존했다. 그러나 샌프란시스코는 개척지로서, 큰 부자도 없었고 가난한 사람도 없었다. 발전하는 곳에 가난한 사람이 많고, 발전하지 못한 곳에 가난한 사람도 없다. 토지 문제 때문에 ‘진보와 빈곤’(Progress & Poverty)의 문제가 발생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해마다 토지소유자에게 토지세를 받으면 된다. 헨리 조지는 『진보와 빈곤』(Progress & Poverty)을 썼다. 300만권이 팔렸다. 그러나 세력 있는 사람들인 지주들이 반대했다. 정부로부터 대륙횡단철도 주변 토지를 거저 받은 지주들이 가만히 앉아서 불로소득을 누렸다. 지주들은 모든 대학과 신문에서 헨리 조지를 말하지 말라고 했다. 그들은 헨리 조지를 은폐했다.
- 가장 슬픈 일은 기독교인들이 헨리 조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헨리 조지는 『진보와 빈곤』에서 ‘창조주’라는 표현은 썼지만 신앙적인 언어는 사용하지 않았다.
- 토지·건물 차등세가 실시된 피츠버그의 은행가 친구에 의하면, 집을 짓는 데 집값 중 땅값은 10-25%에 불과하다. 그러나 한국은 집값 가운데 땅값이 50% 이상이다. 피츠버그에서는 모든 사람이 집을 싸게 지을 수 있다.
- 미국인의 세금부담일은 1월 1일부터 4월 4일까지이다. 세무서가 거대해졌고 복잡해졌다. 그들은 토지세를 반대하는데 그 이유는 일자리를 잃기 때문이다. 일하여 번 소득을 세금으로 크게 빼앗긴다. 연료 가격의 65%가 세금이다. 토지세를 부과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데 과세하는 것이다. 상위 5%의 지주들이 정치인들이다. 민주주의가 없다. 미디어로, 지주들이 원하는 대로 투표하게 만든다. 실업자가 발생한다.
- 교회가 아무 말도 하지 않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모른다. 구약 성경의 법은 변함없다. 예수님은 율법과 선지자를 이루기 위해 오셨다. 정의는 토지를 올바르게 하는 것이다.
- 광야에서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는 방법 두 가지: 토지법과 이자법
- 먼저, 토지세를 실행해야 한다. 토지임대료(지대)를 받고 다른 세금을 없애는 것이다. 사람이 만든 땅이 아니다. 하나님이 만들어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나누어주신 땅이다. 홍콩은 중국 황제가 영국에 빌려주었기 때문에, 홍콩은 땅을 사용자에게 빌려주고 대신 토지임대료를 받아 정부 재정으로 운영하여 발전했다. 대만은 미국보다 더 돈 많은 나라이다. 천연 자원도 없지만 부자가 된 것은 하나님의 법을 지켰기 때문이다. 공산주의는 “하나님이 없다”고 하기에 ‘윤리’도 없다. 법적으로 토지 매매가 불가함에도 불구하고, 책상 밑의 돈(뇌물)을 받고 사적으로 토지 매매를 허용했다.
- 다음으로, 신용조합을 세워야 한다. 레위기 25장 35-38절 이자법. 하나님은 약자를 보호하시는 분이다. 은행이 가난한 사람에게 이자를 받고 있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이 은행의 종이 되고 있다. 은행 이자가 15%를 넘는데, 이것은 도둑질이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은 신용조합이다. 미국에서도 돈을 조금씩 모아서 신용조합을 세웠다. 신용조합 덕분에 집이 없다가 집을 가지게 된 사람들이 많다. 가장 가난한 흑인 노동자들이 집을 가지게 되었다.
- 한국이 1950년에 농지개혁을 발표하고 1953년에 농지개혁을 실시했으므로, 50년 후인 2003년에 희년을 선포해야 하지 않을까?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토지는 하나님의 것이다. 토지를 하나님께 돌려야 한다. 토지개혁을 해야 한다. 마태복음 5장 3절. 가난한 자(‘온유한 자’로 번역)가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 오순절 후에 자원(自願)적 희년 공동체가 이루어졌다. 이는 자원(自願)의 제사였다. 국가가 제도적으로 토지개혁을 하기 전에, 교회가 먼저 자원하여 서로 사랑하고 서로 끝까지 책임지는 코이노니아 공동체를 이루어야 한다.
5. 그날 밤 묵상
- 대천덕 신부님이 그 연로한 나이에도 불구하고, 토지 정의를 외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대천덕 신부님이 하나님의 마음을 품었기 때문이다. 곧 정의와 가난한 사람들을 향한 사랑과 지주와 부자들이 무지 때문에 영벌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한 사랑을 품었기 때문이다.
- 대천덕 신부님은 강의에서, 국가의 토지개혁 전에, 서로 사랑하고 서로 책임지는 공동체의 코이노니아가 이루어져야 함을 강조하시면서 결론을 내리셨다. 나는 자문하게 된다. 토지 정의 운동을 한다고 하는 우리는 코이노니아하고 있는가? 우리는 서로 사랑하고 서로 책임지는 관계에 있는가?
- 토지 정의 운동은 교회 중심이 되어야 한다. 토지 정의를 먼저 교회에 전파해야 한다. 토지 정의를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에 포함하여 전파해야 한다. 토지 정의 운동을 복음화 운동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교회가 토지 정의 운동의 중심에 서지 못할 때, 토지 정의 운동은 처절한 패배를 당하고 유혈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교회가 토지 정의 운동의 중심에 설 때, 비폭력이 가능하다. 그리고 비폭력으로 해야 토지 정의 실현도 가능하다. 토지 정의 운동을 통해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야 한다.
- ‘온전한 복음’을 전파해야 한다. ‘온전한 복음’은 ‘전인(全人) 구원의 복음’이다.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은 ‘하나님 중심’에 확고히 서는 ‘기도’와 ‘공동체’와 ‘선교’와 ‘경세’(經世, 토지 정의 포함)이다. 한 분 성령 하나님께서 기도와 공동체와 선교와 경세의 사역을 모두 하신다. 그러므로 빌립보서 2장 3-4절 말씀처럼, 각 사역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다툼이나 허영이 아니라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다른 사람들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사역을 돌볼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사역들도 돌아보아, 온전한 복음이 전파되며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이 성취될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
조금 쓰려고 했는데 쓰다 보니 너무 길어진 것 같습니다. 남코이노니아 형제님께서 편집의 전권을 가지시고 확 줄이셔도 절대 무방합니다. 하늘의 평화가 예수원 가족 여러분께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첫댓글 올해 예수원 창립 50주년을 맞아 예수원에서 추진하고 있는 <내 기억 속의 예수원> 글 모음에 보낸 글입니다.
이런 소중한 기억들을 나누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앞부분만 조금 나누어 주셨다고 했는데, 나머지 부분도 모두 이곳이건 어디서건 꼭 나누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