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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8장> 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
<마귀로 인해 금식하는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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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4장> 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2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
여기에서 예수는 40일동안 금식을 하였는데 이는 마귀에게 시험을 받고 있었기 때문으로 마귀의 시험이 곧 금식이였습니다. 참고로 이는 추측입니다. 예수가 활동을 하기 시작한 것은 세례요한이 잡히기 몇일 전일까요? 40일이라고 하면 안됩니다. 최소한 140일에서 280일 사이입니다. 왜냐하면 당시에 금식을 일주일에 두번 할 정도로 먹을 것이 귀한 힘든 시기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세례요한이 잡히기전 5개월에서 10개월 사이에 예수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고 예수교가 시작된 것입니다.
<요한의 제자에게 금식하라는 말을 듣는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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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9장> 14 그 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우리와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
위의 내용에서 요한은 금식을 주장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의 제자들이 바래새인과 함께 금식을 하고 있었습니다. 바리새인이 금식을 하게 된 이유도 세례요한의 영향이 컸을 것입니다. 예수는 세례요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금식을 해야했습니다. 예수에게는 세례요한이 마귀였고 금식하는 율법이 마귀였습니다.
<요한이 붙잡히자 마귀를 이기는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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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4장> 11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12 예수께서 요한의 잡힘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가셨다가 |
예수가 금식에서 해방되는 때가 마귀가 떠나는 때 입니다. 그리고 마귀의 곁에서 떠나 천사들로 부터 수종을 받는 때가 요한이 잡히고 나서입니다. 그 때 비로서 예수는 거지같은 누룩을 버리고 기름진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세례요한은 다른 선지자와 같이 마귀였으며 율법이였던 것 입니다. 이제 음식을 먹고 금식하는 차이를 여러분은 분명하게 이해해야 하며 예수가 세례요한을 저주한 아래의 내용이 진짜임을 다시 한번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요한에 대한 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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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1장> 12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
따라서 예수교도들이 요한을 칭송한 것은 예수를 요한보다 높이기 위함이였뿐이고 요한이 예수를 하늘의 아들로 알았다는 것은 완전한 거짓이며 예수교도들이 요한을 붙잡기 위해 5개월에서 10개월이라는 많은 시간을 보냈음을 추측 할 수 있는데 그 만큼 요한을 붙잡는 것이 힘들었고 노력했음을 짐작 할 수 있습니다.
제8장을 읽기 전에 먼저 두가지 결론을 이야기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헷갈릴수 있기 때문에 헷갈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첫번째로 음식에 관한 비유가 헷갈리는 이유는 음식을 예수와 사도들이 먹었을 때와 유대인과 갈릴리사람들이 먹었을 때의 의미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걱정 할 필요가 없으니 이 차이점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예수교도들의 말과 같습니다. 이제 그 표현을 말하면 '포도주는 유대인의 피이며 음식은 유대인의 살이다'입니다. 이는 '예수'라는 단어를 '유대인'으로 바꾸었을 뿐 입니다. 이제 이를 해석하면 예수의 제자들이 먹는 음식은 유대인의 피와 살이고 유대인이 먹는 음식은 자신들이 자신의 살과 피를 먹는 것이므로 유대인의 죽음을 의미 합니다. 이것은 당시에 이루어 지던 유대인들의 현실이고 이미 제5장을 통해 베드로와 사도들이 유대인을 죽이고 핍박하여 그들의 재산으로 떡을 떼며 노는 모습을 우리는 확인하였습니다.
두번째로 금식과 음식에 관한 비유입니다. 금식은 유대인의 의식이였으며 예수가 존재하던 시대의 율법이였습니다. 왜냐하면 세례요한과 바리새인들이 금식을 주장했고 일주일에 두번씩이나 금식을 하였으니 그 시대가 긴박한 시대였음을 의미합니다. 그 전의 시대에는 금식이 중요한 율법이 아니였고 구약에서도 금식은 많지 않았습니다. 참고로 이들이 이 시대에 금식을 한 것은 전쟁 준비를 위한것이라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예수는 금식을 율법과 같은것으로 보았고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은 유대인으로 보았으며 음식을 먹음으로서 유대인을 배신하고 예수의 뜻을 따르는 사람으로 보았습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이제 첫번째 설명과 두번째 설명으로 인해 여러분은 헷갈릴 수 있는데 유대인이 음식을 먹는 것이 예수를 따르는 것이라면 유대인이 음식을 먹는 것이 유대인의 죽음인가? 하는 것 입니다. 이는 아주 간단히 설명 할 수 있습니다. 예수에게 유대인은 전부 사라져야 할 사람이였 뿐이고 유대인을 배신한 사람들은 기존에 이미 유대민족을 배신한 세리들 뿐이였습니다. 새로 들어온 유대인이 있다고 해도 소수일것으로 생각되며 그들 조차도 예수와 사도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아니 사실은 그들도 필요에 따라 받아 들였을 뿐입니다. 이 모든 것을 아래에서 신약성경을 통해서 증거할 것 입니다. 이미 성경을 완벽히 읽은 사람들이라면 제 말에 반박하지 못할 것 입니다.
위와 같은 음식과 금식의 비유가 한가지였다면 우연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또 다른 많은 증거가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유대민족을 배반하고 예수교도들과 한 패가 되기로 결심하는 사도행전의 내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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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9장> 8 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9 사흘 동안을 보지 못하고 식음을 전폐하니라 18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19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새 20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
위에서 사울은 사도바울을 의미합니다. 이는 많은 예수교도들에게 문의해 보시면 같은 사람이라고 솔직히 이야기 해 줄 것 입니다. 사도바울이 음식을 먹지 못했다고 적고 있는데 이는 금식은 아니지만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금식을 할 때에는 힘이 없어지는 것을 몰랐지만 음식을 먹음으로서 힘이 생겨 세례를 받고 예수교인과 함께하는 사람으로 바뀌게 됩니다. 다시말해서 금식을 조롱하는 것이며 금식을 하지 않고 음식을 먹어야 진정한 예수교인이 되는 것입니다.
물론 사도바울이 금식을 하지 않고 율법을 따르지 않는다고 해서 사도들이 바울을 믿은 것은 아닙니다. 사도바울은 스스로 사도로 칭하는 사람이지 사도들이 인정한 사도가 아님을 분명히 인식해야 하며 사도바울도 스스로 사도된 사람이라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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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0장> 41 모든 백성에게 하신 것이 아니요 ... (예수를 모시고) 음식을 먹은 우리에게 하신 것이라 <사도행전 14장> 17 ... 너희에게 하늘로서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시는 선한 일을 하사 음식과 기쁨으로 너희 마음에 만족케 하셨느니라 하고 <사도행전 16장> 34 ...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 주고 저와 온 집이 하나님을 믿었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 <사도행전 2장> 46 ...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누가복음 24장> 30 저희와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매 |
위의 사도행전 10장을 보면 '모든 백성이 아니라 예수를 모시고 음식을 먹는 우리에게'라는 것을 통해 음식을 먹는 것이 모든 백성이 아님을 이해해야 하며 또한 음식을 먹는 행위가 어떤 의식임을 이야기 해 주고 있으며 그리고 사도행전 14장과 16장을 통해 신이 음식과 기쁨을 주었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보입니다. 아직은 그 의미를 잘 모르겠지만 그것은 구원을 의미 합니다. 구원에 대한 설명은 아래에서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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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1장> 18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저희가 말하기를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19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
마태복음 11장 18절을 통해 예수는 분명하게 이야기 합니다. 먹지도 마시지도 않는다는 것은 금식을 의미하고 요한이 금식을 하니 귀신이 들렸다고 이야기 합니다. 이는 유대인들이 세례요한에게 한 말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세례요한과 함께 금식을 했기에 요한에게 귀신들렸다고 말 할 수 없습니다. 마귀에게 붙잡혀 금식을 했던 사람은 예수 입니다. 따라서 세례요한이 귀신들렸다고 말하는 사람은 예수 입니다. 그런데 자신이 한 말을 유대인들이 한 것 처럼이야기 하고 있으니 예수를 어찌 표현해야 할지 참으로 답답합니다. 금식하는 사람을 귀신들린 사람으로 예수는 취급하고 있음을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19절에서 인자가 와서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인자는 예수를 의미합니다. 예수는 스스로 유대인의 살과 피를 즐기는 사람이라고 말 하는 것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고 이야기 하는 것 입니다. 그것이 예수에게는 지혜였던 것이고 그것이 옳았던 것 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금식의 의미는 제일 위에서 설명했습니다. 유대인들은 금식을 통해서 음식을 아꼈고 이것들을 이용하여 유대민족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나누어 주었습니다. 이러한 행위를 한 사람들이 바로 세례요한과 바리새인들 그리고 서기관등의 유대 지도자들이였습니다.
<유대인의 금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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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6장> 1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 3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4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
예수는 금식하여 유대민족을 생각하는 바리새인들이 못마땅 했습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이 금식하여 모은 음식을 유대민족에게 나누어 주는 구제활동을 하지 못하게 방해하였고 이를 알리지 못하게 설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구제활동의 최선은 금식이였던 것 입니다. 절박한 유대민족이 보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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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 1장> 11 이에 다윗이 자기 옷을 잡아 찢으매 함께 있는 모든 사람도 그리하고 12 사울과 그 아들 요나단과 여호와의 백성과 이스라엘 족속이 칼에 죽음을 인하여 저녁때까지 슬퍼하여 울며 금식하니라 |
여기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구약의 성경 구절을 인용하겠습니다. 위에서 보면 금식을 하게 되는 이유가 나오는데 전쟁에서 죽은 영웅을 기리기 위해 슬퍼하며 금식을 합니다. 유대인의 금식은 이러한 것이였습니다. 유대인에게 금식은 나라와 민족을 하나로 만드는 중요한 역활을 하고 있었고 이는 다른 구약의 금식에 대한 내용을 통해서도 이해 할 수 있으며 현대에도 금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없이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금식은 쟁취하고자 하는 인류의 본능이였고 예수는 이를 철저히 막았으며 예수교도들에게는 슬퍼하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던 것 입니다. 따라서 예수는 금식을 통해 구제에 신경쓰던 유대인들의 지도자들을 막았고 따라서 유대인들이 가난에 찌들어 굶어 죽도록 놔두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절대 아니라고 고개를 저으신다면 이 문서를 계속 읽고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진정한 회개는 잘못한 양 만큼 의를 행하여 타인으로 부터 용서를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며 그것이 세례요한의 죄 사함이였음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물론 세례요한의 의는 로마와 헤롯에 대항하는 의였고 예수와 같은 의를 행하여 죽는 죽음이였지만 예수의 죽음과는 완전히 다른 것 입니다.
지금까지의 설명은 유대인의 금식을 설명한 것이지만 예수가 말한 진짜 의미는 이것 입니다. 위에서 말하는 구제는 재물을 나누는 것을 의미하고 나누는 것은 빼앗아 예수에게 바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을 제6장에서 보았습니다. 그리고 제5장에서 베드로가 유대인을 어떻게 죽이고 재물을 빼앗는지 살펴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러한 모든 행위를 아무도 모르게 하라는 것 입니다. 이를 알면 갈릴리인들과 유대인들이 가만 있지 않을 테니까요. 그러나 유대인들에게는 들키고 말았지만 헤롯과 빌라도의 연관성은 유대인들도 몰랐던 것 같습니다. 혹은 더 훗날 깨닳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어쩔 수 없이 독립전쟁을 66년에 일으키게 됩니다.
따라서 마태복음 6장의 1절부터 4절까지는 유대인들이 서기관과 바리새인을 따르는 것을 막고 한 편으로는 예수교를 보호하는 설교로 예수에게는 정말 멋진 설교였을 것 입니다. 그러나 현대는 이 의미가 완전히 다르게 사용되었고 더욱 사악한 설교가 되었습니다.
형식적으로 금식을 하는 종교인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실된 사람들은 금식이 슬픈 일임을 잘 알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는 금식하는 사람들을 이해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는 그들이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한 것이라며 비난했습니다.
그러나 제발 조금만 생각해 보세요. 얼굴에 눈물을 머금고 슬퍼하며 금식을 누군가에게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은 슬퍼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슬퍼하는 사람이 유대인임은 분명한 사실 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는 슬퍼하는 유대인에게 잘 보이기 위함이라고 비난했던 것 입니다. 그렇다면 슬퍼하는 유대인들 앞에서 슬퍼하지 말고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어 환하게 웃으라고 주장하는 것은 명백하게 슬퍼하는 유대인을 희롱하고 유대인을 멸시하는 행위입니다. 이것을 아니다라며 부정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러한 사람은 백성을 생각하는 지도자가 아니며 이웃을 생각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한 비정상적인 선지자이며 지도자가 바로 예수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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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6장> 16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내지 말라 저희는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17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18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
모두 읽어 보셨습니까? 마태복음 6장 16절 이후의 내용이 명백한 유대인을 비웃으며 희롱하는 내용임을 확인하셨습니까? 그리고 18절에 보면 중요한 내용이 나옵니다. 금식을 하는 사람들에게 아버지가 갚는다고 합니다. 이는 영원한 옥에 쳐 넣는 것을 의미하며 죽음입니다.
아래의 마태복음 9장 14절에 분명히 금식일임을 밝히고 있으며 그 날에 혼인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내용은 마태, 마가, 누가복음 모두에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함정이 있으니 제발 조금만 생각해 봅시다. 금식일날 유대인들이 혼인을 할까요? 그 날은 금식을 하는 날이니 혼인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날에 혼인을 한다는 것은 방문객을 받지 않거나 유대인은 받지 않겠다고 이야기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 날은 유대인들에게 슬픈 날이기 때문에 그 날의 혼인하는 그 자체가 유대인을 비웃고 희롱하는 것입니다. '봐라 우리는 즐겁게 잘 먹고 논다 너희는 구경만해라'라고 말하는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의 핑계가 더 황당합니다. 신랑이 빼앗기게 되리니 그 날에는 금식을 한다고 합니다. 아마도 유대인들 처럼 슬픈 날이기 때문에 금식할 거라고 말하는 것이지만 이미 금식일이 슬픈 경건한 날이였기 때문에 혼인을 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됩니다. 예수에게는 예수교도들의 슬픈 날에는 금식할 것이지만 유대인들의 슬픈 날에는 혼인해도 상관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 차이점을 이해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금식일에 혼인하는 예수교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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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9장> 14 그 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우리와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15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뇨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마가복음 2장> 20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누가복음 5장> 35 그러나 그 날에 이르러 저희가 신랑을 빼앗기리니 그 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
그렇다면 예수교도들은 정말 신랑이 죽는 날에 금식하고 슬퍼했을까요? 아닙니다. 이들은 부모가 죽어 장사지내는 날에도 일했습니다. 예수교도들은 부모가 죽어도 장사를 지내어서는 안되었습니다.
<부모가 죽어도 일하는 예수교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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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8장> 21 제자 중에 또 하나가 가로되 주여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22 예수께서 가라사대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 하시니라 |
위의 이야기의 실제로 있었던 일이며 예수교도들에게는 비유가 아니지만 비유입니다. 이 이야기의 속 뜻은 다른 것이지만 여기서는 예수교도들이 슬퍼하지 않고 예수를 따라 다니며 일 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는 사람이 죽어도 결단코 슬퍼하지 않았으니 위의 신랑이 빼앗기는 날에 금식하지 않았음이 당연합니다.
아래의 마태복음 22장의 비유는 실제로 일어난 일을 비유로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허구의 비유는 제자들이 이해 할 수 없기 때문에 존재하는 일을 비유로 설명하는 것입니다. 우선 비유를 보면 금식일 날 혼인 잔치하는 집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도 유대인들은 참여하지 않고 음식을 먹지 않습니다. 당연한 이야기 입니다. 이 당연한 것을 유대왕이며 신이라는 예수는 이해해 주지 않았습니다.
아래 내용은 혼인식에 참여하지 않는 유대인을 천국의 임금이 딱 한번 용서를 합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잔치에 참석 할 것을 요청하는 종을 보내는데 이때 6절을 보면 그 종을 죽였다는 장면을 통해 첫번째 보낸 종은 세례요한이고 두번째 종은 예수를 의미함을 알 수 있는데 세례요한은 금식을 주장했으니 어이없는 비유입니다. 문제는 이에 임금이 화가나서 악한자든지 선한자든지 상관없이 잔치집에 초대를 했다는 것으로 여기에서 악한자는 세리와 백부장인 로마병사 등을 의미합니다. 이는 예수가 잔치날에 유대인을 부르지 않는 것에 대한 변명입니다. 너희는 초대했지만 안와서 우리는 세리와 백부장들과 함께 음식을 먹고 포도주를 마시는 것이다 라고 말이죠. 다시말해서 그냥 핑계입니다.
그리고 혼인잔치에 참석한 사람들 중에서도 예복을 차려 입지 않으면 결박하여 어두움에 던진다고 되어 있습니다. 예복을 차려 입지 않는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그들은 혼인잔치에 참석해서 음식을 먹었음에도 죽임을 당하는 사람들이며 예복은 헤롯과 로마의 법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를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설명도 차후 다시 합니다. 그리고 예수가 천국에 대한 설명을 하는데 그 비유를 혼인 잔치에 빗대어 하고 있습니다. (예수는 혼인을 금지했는데 이에 대한 설명은 차후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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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2장> 2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3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 4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 5 저희가 돌아보지도 않고 하나는 자기 밭으로, 하나는 자기 상업차로 가고 6 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능욕하고 죽이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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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2장> 7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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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2장> 8 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예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치 아니하니 9 사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너라 한대 10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자리에 손이 가득한지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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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2장> 11 임금이 손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12 가로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저가 유구무언이어늘 13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14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
결국 위의 이야기는 금식하지 말고 혼인식에 참석해서 음식을 먹으라는 이야기하며 계속 참석하지 않고 금식을 고집하면 위의 7절과 같이 군대를 보내어 그 동네를 불사르는 협박입니다. 이제 금식과 음식을 먹는 차이를 분명하게 이해 하셨을 것 입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은 예수를 죽이려고 결의한 것 임을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이제 금식이 무엇인지 답을 적어 보겠습니다. 금식은 율법이며 유대인들의 슬픔을 의미하고 그 슬픔의 원인을 제공하는 헤롯과 로마에 대항하고자 하는 모임이며 결의이며 민란이고 반란이고 66년에 일어나는 유대인의 독립전쟁을 위한 준비였습니다. 그렇다면 유대인이 음식을 먹었다는 것은 유대인이 유대인을 배신하여 예수를 따르거나 더 이상 유대 독립을 할 수 없도록 그들을 죽였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유대인의 독립전쟁에 불을 당긴 것은 헤롯일당과 세리들 그리고 그들을 위해 움직이는 사도들의 만행이 그 원인이였습니다.
위의 마태복음 22장의 비유를 통해 금식과 음식을 먹는 차이를 이해 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교인들이 오해하는 부분이 있어서 따로 [10번]을 만들어 설명 합니다. 위의 이야기는 혼인에 참석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이는 위의 마태복음 22장 12절 이하의 음식을 통해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혼인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였고 그곳에서 음식을 먹어야 하고 유대인의 예법이 아니라 로마와 헤롯의 법에 따르는 예복을 입어야 하는 것이 중요한 것 입니다.
제가 이 말을 하는 것은 예수와 사도들에게 여자들의 혼인은 하지 말아야 하는 방침이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위의 혼인의 비유는 오해의 소지가 있습니다. 다만 예수가 저 비유를 든 것은 혼인식날에 음식이 가장 많기 때문이며 그 날이 슬픈 날이 아니고 기쁜 날이기 때문에 예수교도들에게는 좋은 핑계였습니다. 너희는 금식을 그만 두고 슬퍼하지 말라는 것이죠.
이 비유를 오해하는 예수교도들이 있는데 예수교도들이 혼인하는 신부와 같이 예수를 기다리게 하는 원동력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는 위와 같이 잘못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예수와 바울은 혼인 하지 말것을 주장했고 이는 다른 장에서 설명합니다. 그렇다면 예수가 말하는 신랑을 기다리는 비유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진실을 잠깐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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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5장> 1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2 그 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지라 3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 (잠자던 처녀들은 신랑을 못 만난다는 이야기) ... 13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14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제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
위의 내용은 예수가 깨어있으라고 경고하고 방심하지 말라는 것으로 천국에 가지 못한다는 비유라고 예수교도들은 주장합니다. 저것이 그러한 비유라면 예수교도들은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요? 알 수 없죠? 당연히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교도들은 무조건 예수를 믿으라고 이야기하고 재산을 바치라는 말 밖에 할 수 없습니다. 이 두가지가 예수에게 전부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마태복음 25장 14절까지 신랑을 기다리는 열처녀의 이야기를 하면서 15절 이후에 또 다시 재물과 관련된 설교를 합니다. 이제 그 내용을 보겠습니다. 예수가 하고 싶은 말은 항상 재물을 모으라는 것이며 이 이야기는 앞에서 살펴본 이야기와 유사합니다만 다른 이야기이고 다만 예수가 같은 설교를 여러 비슷한 비유로 반복해서 설명하는 것 입니다. 따라서 저도 반복해서 예수의 모든 설교를 보여 드리는 것 입니다. 그래서 예수의 모든 설교가 항상 재물을 바치라는 것 뿐임을 여러분께 깨닳게 하기 위함입니다. 다시말해서 아래 내용은 처음 여기서 기술하는 것 입니다. 글을 쓰는 저에게 '왜 반복해서 똑같은 이야기만 하는거야?' 라고 말하는 것은 예수에게 말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점은 위의 신랑을 기다리는 곳이 천국과 같다고 1절에서 설명했기 때문에 아래의 내용도 천국과 같은 것 입니다. 이 점을 인식하시고 읽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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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5장> 14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제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15 각각 그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16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17 두 달란트를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18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19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저희와 회계(이익을 계산)할새 |
읽어 보셨습니까? 전에 보았던 내용과 많이 유사합니다. 두 명은 장사를 잘해서 두배의 재산을 만들었지만 한 명은 재산을 불리지 못했습니다. 이미 유사한 내용을 보았기 때문에 안 봐도 이해 할 것 입니다. 두배를 번 사람은 칭찬을 얻고 아무것도 번것이 없는 사람은 내쫗김을 당한다는 이야기 입니다. 그곳이 천국이였습니다. 그런데 마태복음 25장의 비유는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그 부분을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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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5장> 24 한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25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
24절을 보면 '주여'라고 분명하게 적고 있기 때문에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분명하게 천국에 있는 임금에게 이야기하는 것 입니다. 그 사람이 한 달란트를 땅에 감춘 이유가 주는 굳은 사람이기 때문에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는 데서 모으는 줄을 알았기 때문 입니다. 심지 않은 데서 거두는 것은 빚을 주지 않았음에도 빚을 받는 것 입니다. 헤치지 않는 데서 모으는 것은 거짓이면서 진실 입니다. 왜냐하면 남자는 죽이고 여자와 아이들은 팔리기 때문에 헤치지 않는 것이죠. 따라서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사채 장사를 할 생각이 아예 없었던 것이고 그는 의로운 사람이였던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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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5장> 26 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27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두었다가 나로 돌아와서 내 본전과 변리를 받게 할 것이니라 하고 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
그런데 주라고 칭함을 받는 천국의 주인이 그 종에게 26절과 같이 '게이른 종'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러면서 작은 이익을 위해 본전과 변리를 받았을 것이라며 이익이 없는 종을 영원한 옥에 쫗아 낸다는 이야기 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는 왜 이토록 어려운 비유로 이야기했을까요? 그것은 여러분의 착각입니다. 지금까지 설명한 모든 비유는 비유가 아니라 현실이였습니다. 다시말해서 위에서 말하는 신랑을 기다리는 처자도 현실이지 비유가 아닙니다. 여기에서 이 이야기를 하면 '이 자식 억지 해석을 하는군' 할 것 입니다. 지금은 억지 해석으로 보일 수 있지만 억지해석이라 생각하시고 읽어 보시기 바라고 제9장에서 다른 증거들을 이야기 하겠습니다.
전 적었습니다. 신랑을 기다리는 처자도 현실이지 비유가 아닙니다. 이 말은 예수의 모든 비유가 현실이라는 것 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위에서 말한 신랑을 기다리는 10명의 처녀도 현실이라는 것 입니다. 생각해 봅시다. 10명의 처녀가 예수교도이기 때문에 예수에게 재물을 바쳐야 합니다. 10명의 처녀는 이를 위해 신랑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신랑은 손님이였고 돈벌이의 대상이였습니다. 그렇습니다. 10명의 처녀는 창기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준비하지 않은 5명의 처녀는 돈을 벌 수 없고 준비한 5명의 처녀는 돈을 벌어 예수에게 재물을 바칠 수 있었던 것 입니다. 너무나 간단한 비유 입니다. 그래서 예수는 아래와 같이 세리들이 창기와 함께 천국에 먼저 간다고 한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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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1장> 31 ... 세리들과 창기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
아직은 억지해석이라며 믿지 못하시겠지만 이는 제9장을 보면 이해하게 될 것이고 우선은 위에서 말한 10명의 신부들이 창기들을 의미한다고 보았을 때에 위에서 예수교도들이 금식일날에 혼인 잔치를 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진짜 혼인 잔치가 아니라 창기들과 놀러 오라고 광고하는 것이였습니다. 그곳에 세리들과 백부장들이 있었고 그래서 세리와 창기가 천국에 먼저가는 것이고 천국은 예수교도들이 운영하는 창기촌이였던 것 입니다. 창기들이 구원을 받아 간 곳은 창기촌이였던 것이고 신부들이 구원을 받아 간곳도 창기촌이며 여자들이 팔려간 곳이 창기촌 입니다. 따라서 세리들과 사도들이 돈을 벌어 예수에게 바쳤고 창기는 예수의 선물이였을 가능성이 높지만 아마도 돈은 따로 받았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왜냐하면 창기들은 빚으로 팔려온 여자들이기 때문에 그 만큼의 돈을 벌어야 했습니다.
신혼 잔치집이 창기촌임을 이해했다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신혼 잔치집에 가지 않았는 이유가 명백해 졌습니다. 그들은 그 만큼 청렴하고 창기를 분명하게 가까이 하지 않았음을 의미합니다. 이들은 여기에 멈추지 않고 이러한 예수교도들을 비판하고 이들과 가까이 하지 말라고 설교를 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예수교도들은 더욱 광분하여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죽이고자 했던 것입니다.
아래의 사도행전 27장 내용은 사도바울이 로마에 재판을 받으러 가는 중에 생긴 이야기로 금식과 직접 관련된 내용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14일 동안 사공들이 아무것도 먹지 못했는데 음식이 없어서가 아니며 금식일도 아니였습니다. 다만 사도바울과 백부장이 사공들에게 음식을 강제로 먹이려 했다는 내용을 보고 음식을 먹고 안먹고의 차이를 설명하기 위함입니다.
아래 내용에서 사공들이 살기위해 도망가려 했고 사도바울과 백부장은 이들을 가두었습니다. 그런데 사공들이 음식 먹기를 거부했습니다. 제발 조금만 생각해 봅시다 살려고 도망가려던 사람들이 14일 동안 음식을 거부할 일이 있습니까? 오히려 금식일도 아니기 때문에 살기 위해 음식을 먹어야 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사공들은 어떤 이유로 갇혀 지냈던 것이며 사도와 바울은 음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14일 동안 강제로 음식을 주지 않은 것으로 사공을 핍박한 것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이 굶고 있었던 것이죠. 그리고 사공들이 14일 후에 음식을 먹게 되는데 음식을 먹기 위해서는 입을 열어야 합니다. 음식을 먹었다는 것은 입을 열어 사도들이 원하는 것을 토설했다는 것이고 그래서 음식을 주었던 것이죠. 그렇다면 무엇을 원한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재물이였을 것은 분명하며 이는 마치 물고기가 입을 열어 베드로에게 돈을 주는 것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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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7장> 9 여러 날이 걸려 금식하는 절기가 이미 지났으므로 행선하기가 위태한지라 바울이 저희를 권하여 10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행선이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가 있으리라 하되 11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라 |
사도바울이 로마로 재판을 받으러 가는 모습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금식일이 지나 걱정하는 바울의 모습이 보입니다. 이 의미가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다만 10절에 보면 사도바울이 배에 있는 하물과 배 그리고 자신들의 생명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이때 백부장이 사도바울의 말을 믿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를 100% 믿으면 바보입니다. 이제 다음을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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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7장> 30 사공들이 도망하고자 하여 ... 31 바울이 백부장과 군사들에게 이르되 이 사람들이 배에 있지 아니하면 너희가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하니 32 이에 군사들이 거룻줄을 끊어 떼어 버리니라 33 날이 새어가매 바울이 여러 사람을 음식 먹으라 권하여 가로되 너희가 기다리고 기다리며 먹지 못하고 주린 지가 오늘까지 열 나흘인즉 34 음식 먹으라 권하노니 이것이 너희 구원을 위하는 것이요 너희 중 머리터럭 하나라도 잃을 자가 없느니라 하고 35 떡을 가져다가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께 축사하고 떼어 먹기를 시작하매 36 저희도 다 안심하고 받아 먹으니 37 배에 있는 우리의 수는 전부 이백칠십육 인이러라 38 배부르게 먹고 밀을 바다에 버려 배를 가볍게 하였더니 |
위 [4번]에서 설명한 사도바울이 4일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은 것과 비슷한 이야기 입니다. 사도바울도 음식을 먹어 예수교도가 되었고 사공들도 음식을 먹어 구원 받았다고 적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도 금식에서 벗어나 비로서 활동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중요한 것을 말 하겠습니다. 첫째로 음식을 먹은 사람들이 전부 남자라는 사실과 그 수가 270명임을 기억해 주시길 바랍니다. 2000년전에 270명이니 배가 하나였다면 정말 큰 배였을 것 입니다. 두번째로 사공들에게 사도바울은 음식이 있음에도 14일동안 주지 않았음을 기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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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마귀가 존재하기는 한 것 입니까..., 마귀라 함은 종교인들이 자신의 주장을 강론하기 위한 방편이 아니었던가요? 마귀를 보여주시죠. 어디에 삽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