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 일기>
바위 아래 희끗 희끗 잔설이 남은 뒷들로 나가
진종일 매화나무 잔가지들을 쳐주고 내려오는데
그새 둥지에 들었던지 산비둘기 몇 마리
발소리에 놀라 후드득 날아갑니다
고추밭 한가운데 마른 고춧대 사이에
황토 빛 포장을 둘러쓰고 누워있던 경운기 위로
찢어진 비닐조각들도 까마귀 떼처럼
덩달아 풀풀 날아오릅니다
아무리 철이 이르기로서니
썩은 새끼줄이라도 두르고
어정거리는 사람 하나 없습니다
한 번도 와보지 않았던
유령들의 세상에나 온 것만 같습니다
산줄기가 한 눈에 바라보이는
작은 묏등에 쭈그려 앉아
건너 산을 바라보면서 중얼거려봅니다
거기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아버지도 누워 있는데
도대체 알 바 없다는 듯 말이 없습니다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습니다
예전에 마늘밭이었던지
왕겨를 덮어주지 않았는데도
언 땅을 뚫고 파란 촉들이 돋아나고 있습니다.
돌아보지 않아도 봄은 오는데
겨루어 묻힌 씨앗들을 가꾸어 줄
아수운 사람의 불빛은 어느 고샅에도 없습니다
“인자 눈이 그만 오실란갑다. 달이 붉은 것이······”
금방 내려앉을 듯한 마을 한가운데 혼자 불을 켜는
여든 다섯 내 어머니 중얼거림에
후르륵 미역국을 떠 넣다가
치밀어 오르는 슬픔에 상을 물리고
마당 귀에 나서니
음력 이월 보름달이 앞산에 올라옵니다
미친년 배만 부른다더니
속절없이 붉기만한 달이 떠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