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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성비룡>의 구성적 특징과 소설사적 위상
-<소대성전>과의 비교 검토를 통해서-
김 도 환 *
<한국어초록>
이 논문은 <낙성비룡>의 특징과 소설사적 위상을 살피는데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
우선 <소대성전>과의 비교를 통해 <낙성비룡>이 지니는 제반 특징들을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측면에서 검토하였다. 우선 갈등의 양상은 고난이 단계적으로 심화되는 데, 이
때 부각되는 것은 고난의 심각함이 아니라, 이경모에 대한 옹호와 박대가 현명함과 어
리석음의 대비로 나타난다는 데 있다. 특히 설생 부부의 등장은 양자의 대비를 강조하
기 위한 화소라고 파악하였다. 다음으로 영웅 형상의 경우 寬厚한 인품과 賢士的 기질
을 바탕으로 한다는 점에서 충동적이고 감정적인 영웅소설(소대성)의 주인공과 다른
지향을 보인다고 파악하였다. 한편 낙성비룡은 작품 말미에 이경모의 풍류적이고 여유
로운 자세로 交遊하는 모습을 한 장에 걸쳐 서술하고 있는데, 이는 조화로운 세계로의
지향을 보이고 있다고 하였다.
소설사적 위상과 관련해서 먼저 <낙성비룡>이 <소대성전>의 영향을 받아 창작되었
음을 考察하는 한편 여성층이 주된 향유층이었을 것으로 파악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기반 하에 <낙성비룡>의 미감들이 장편소설을 지향하고 있음을 검토하였다. 요컨대
<낙성비룡>은 <소대성전>의 영향을 받아 창작되었지만, 장편소설에 익숙한 향유층에
의해 유통되었으며, 이러한 면모는 소설의 유형간 교섭이 활발하던 19세기 소설사의
한 풍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주제어 : <낙성비룡>, <소대성전>, 영웅소설, 장편소설, 고난, 영웅 형상, 미감, 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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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제제기
<낙성비룡>은 1966년 낙선재에서 고전소설들이 발굴될 때 함께 발견
된 작품이다. 章回로 구성되어 있고 분량은 중편에 해당한다. <낙성비
룡>이라는 題名은 별이 떨어졌다가 다시 용이 되어 올라가는 胎夢을
꾼 후 주인공 이경모를 낳은 것에서 비롯되었다. 동시에 이 제명은 초반
에 고생하던 이경모가 뒤에 부귀공명을 누린다는 서사적 줄거리와도 일
치한다. 발굴 초기만 해도 몇 편의 연구가 진행되었으나 이후 더 이상의
논의가 나오지 않았고, 따라서 연구의 성과 또한 부진한 편이다. 연구사
의 대략적인 흐름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대략적인 특징을 검토한 이명숙1)의 논의에 이어 김일렬과 조희웅은
각각 두 차례에 걸쳐 <낙성비룡>의 특징을 검토하였다. 조희웅은 <낙성
비룡>과 <소대성전>의 서사 단락과 인물 형상을 구체적으로 비교하여
양자가 “이본 관계에 있”다고 파악하였고2), 이후 고대본을 검토하면서
<낙성비룡>이 <이문성취록>으로 연결되는 연작관계에 있음을 밝혔다.3)
김일렬은 첫 번째 논문에서 <낙성비룡>과 설화를 비교‧검토한 후4),
두 번째 논문에서 <낙성비룡>과 <소대성전>의 친소관계를 밝혔는데,
<낙성비룡>의 독자적 위상을 밝힌 중요한 논의라고 파악된다.5) 논자는
이 작품이 “<소대성전>의 소재와 줄거리를 그대로 차용하여 개작”했다
* 대진대 강사
1) 이명숙, 「<낙성비룡> 연구」, 이화여대 석사학위논문, 1971.
2) 조희웅, 「<낙성비룡>과 <소대성전>의 비교고찰」, 국학자료15, 1974.
3) 조희웅, 「<낙성비룡>과 <소대성전>의 비교 고찰」, 관악어문3집, 서울대국문과,
1979.
4) 김일렬, 「<낙성비룡> 연구」, 동양문화연구3집, 경북대 동양문학연구소, 1976.
5) 김일렬, 「영웅소설의 근대적 변모에 관한 일고찰 - <소대성전>에서 <낙성비룡>으로
이행을 중심으로 -」, 어문논총14, 경북대 국문과 1980.
<낙성비룡>의 구성적 특징과 소설사적 위상 127
고 보면서, 특히 유사성보다는 개작의 변모양상에 주목했다. 즉 <낙성비
룡>은 <소대성전>과 유사한 서사 구조를 보이면서도 서사구조에서는
군담의 축약과 처가족과의 갈등 강화가, 영웅의 형상에 있어서는 이경모
가 소대성에 비해 실질적, 현실적인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하였다. 더불
어 소설사적 위상으로 <소대성전>은 급격한 신분변동 속에서의 세태를
반영하지만, <낙성비룡>에서는 이미 몰락한 양반이 일상생활에서 겪는
고난 자체가 심각한 문제로 제시되어 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낙성
비룡>에는 기존 작품(<소대성전>)을 비판적으로 수용하여 창의력과 시
대의식을 살리는 데 충실하려는 작가의식이 담겨있다고 하였다.
이후의 논의가 없던 것은 아니지만6), 김일렬과 조희웅의 논의를 끝으
로 <낙성비룡> 연구는 근 30여 년간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다. 이처럼
연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원인은 무엇 때문일까.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으로 보인다. 첫째, <소대성전>과의 연관성을 들 수 있다. <낙
성비룡>은 연구자들의 견해를 빌린다면 “동궤의 작품”에 해당할 정도로
<소대성전>과 전체적인 구성이 흡사하다. 이 점은 당시의 연구자들이
<낙성비룡>에 주목하게 된 원인이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소대성전>과
의 관련성 - 유사성이든 차이점이든 - 에 지나치게 견인됨으로써 <낙성비
룡>의 독자적 면모를 살피는 데 제약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7)
<낙성비룡>의 국적 문제 및 여기에서 파생되는 소설사의 위치 설정
6) 예를 들어 양지선은 대중성의 획득에 실패한 영웅소설의 하나로 <낙성비룡>을 든
바 있다.(양지선, 「조선후기 영웅소설의 대중화 양상 연구」, 서강대 석사학위논문,
2003.)
7) 물론 <소대성전>과의 차이점을 통해 <낙성비룡>의 개성적 면모를 살핀 김일렬의
논의는 중요한 연구사적 의의가 있다. 다만 그의 논의 역시 <소대성전>과의 차이를
바로 독자적 면모를 파악하고 있으며, 소설사적 위상에서도 지나치게 <소대성전>과의
관계를 의식하고 있다. 사실 이 점은 당대의 소설사 연구의 풍토와도 연관이 있는
바, 소설사적 위상을 살피면서 좀 더 자세히 다루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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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역시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다. 김일렬은 <소대성전> → <낙성비
룡>의 이행양상을 설정하면서 <낙성비룡>을 국내 소설로 파악한 반면8),
조희웅은 중국 원전 → <낙성비룡> → <소대성전>의 소설사적 전개과정
을 주장하였다. 전자는 객관적 근거는 없으나 정황상 유력하고, 후자는
논리적 근거가 있어 타당성을 확보하고 있다. 그러나 후자가 맞다면 원전
부터 찾아야 할 상황이고, 전자가 맞다 하더라도 여전히 <소대성전>과의
관계를 어떻게 조망해야 하는가가 문제가 된다. 요컨대 어느 쪽이라고
하더라도 새로운 접근 시각이 없는 한 연구가 진척되기 힘들다.
그런데 <낙성비룡>을 둘러싼 이와 같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낙성비룡>의 소설사적 위상을 자리매김하는 일이 시급하다.9)
서로 관련 있는 작품들끼리 비교‧분석하여 공통점과 차이점을 확인하
고, 이를 바탕으로 소설사적 층위 속에서 종합적‧입체적으로 살필 때,
작품의 실상이 보다 온전히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조희웅과
김일렬에 의해 <소대성전>과의 유사성‧차이점이 자세하게 구명되었고,
소설사적 위상 역시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다. 다만 전자의 경우 보완이
필요하고 후자의 경우 수정이 불가피한만큼, 기존 논의를 수렴하면서
소설사라는 보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論究함으로써 <낙성비룡>의 소설
사적 위상을 조망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 따라 본고에서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방향으로
논의를 전개하고자 한다. 우선 <낙성비룡>의 특징을 살피는 과정에서
<소대성전>과의 차이점이 검토될 것이다. 물론 이러한 방법적 틀 자체는
8) 그는 이후 <소대성전>에 대한 종합적 고찰 중에 다시 한 번 이러한 논의를 주장한
바 있다. 김일렬, 「<소대성전>」, 고전소설작품론, 집문당, 1990 참조
9) 예를 들어 조희웅이 <낙성비룡>을 중국소설로 상정하며 들었던 근거들이나, 김일렬이
<낙성비룡>의 독자적 면모로 파악했던 <소대성전>과의 차별성을 조선 후기(특히
18-19세기) 소설사의 다단한 흐름 속에서 조망할 때 보다 온전히 구명될 수 있을 것이다.
<낙성비룡>의 구성적 특징과 소설사적 위상 129
기존 논의의 답습이라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낙성비룡>과 <소대성전>
의 연관성이 분명하고 더불어 기존 연구의 보완이 필요한데도 마냥 도외
시할 수는 없는 일이다. 다만 이러한 분석 결과가 ‘마침표’가 아니라,
‘출발선’이 되어야 할 것임은 분명하다. 요컨대 본고에서 <소대성전>과
비교하는 목적은 차이점을 확인하는 데 있지 않고, 그러한 차이가 어떤
미감을 유발하며 지향점을 보이는가를 살피는 데 있다. 이를 통해 <소대
성전>과는 다른 <낙성비룡>의 미감과 지향점이 드러날 것이다. 그러나
<소대성전>과의 차이를 바로 <낙성비룡>의 독자적인 특징으로 볼 수는
없다. 오히려 그러한 요소들을 소설사의 층위에서 보다 총체적으로 살펴
볼 필요가 있다. 그 과정에서 <낙성비룡>이 지니는 위상을 考究하고자
한다.
현재까지 <낙성비룡>의 이본은 약 4종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본고에서는 이 중에서 善本 혹은 先本으로 보이는 낙선재본을 대상으로
함을 미리 밝힌다.10) 그리고 <소대성전>의 경우는 내용이 보다 풍부한
완판본을 대상으로 한다.11)
2. <낙성비룡>의 특징과 의미
기존 논의에 따르면 <낙성비룡>과 <소대성전>은 거의 이본 관계에
10) 4종의 이본 중 낙선재본, 고대본, 박순호본을 검토한 결과 박순호본은 낙선재본 계열
중에서 비교적 후대본으로, 고대본은 그보다는 더 후대에 나왔던 이본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본 수가 적어 선후관계를 정확하게 판단하기는 힘들다. 더불어 이본 검토가
본고의 목적은 아니므로 자세한 비교는 생략하기로 한다.
11) 서경희, 「<소대성전>의 서지학적 접근」, 이화여대 석사학위논문, 1997 참조. 기존
논의를 참고하여 완판본으로 텍스트를 정했으나, 본고에서 논의하려는 부분은 경판본
이나 완판본이나 큰 차이가 없음을 미리 밝힌다.
130 Journal of Korean Culture 18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유사하다. 무엇보다 “초년의 고난 →
조력자의 知人之鑑 → 장모의 박해 → 가출 → 군담에서의 활약 → 장모와
의 화해” 등으로 전개되는 서사단락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그 외에도
長眼과 大食家로 형상화된 이경모와 소대성의 특징, 자객담, 적선담과
같은 화소 등에서 양자는 공통적인 면모를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실제로
작품을 읽어보면 두 작품은 그러한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다른 미감을
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그것은 처가의 박해는 간소하고 군담의
양상을 길게 펼쳐지는 <소대성전>에 비해, <낙성비룡>에서는 처가로부
터의 고난이 상세하게 묘사되고 군담은 짧게 끝나기 때문이라 볼 수 있
다.12) 그런데 이러한 표면적인 차이 외에도 두 작품은 크고 작은 부분에
서 중요한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이 장에서는 이러한 차이들을 검토함으
로써 <낙성비룡>의 미감과 지향점을 고찰해보고자 한다.
1) 고난의 심화와 “현명함 - 어리석음”의 대비
<낙성비룡>의 전반부는 “부모의 구몰(고난) → 유모의 양육(구원) →
유모의 죽음(고난) → 장우의 도움(구원) → 장우 처의 박해(고난) → 양승
상의 지인지감(구원) → 장모의 박해(고난)구원”의 과정으로 진행된다.
즉 고난과 구원이 연쇄‧반복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연쇄‧반복을
통해 이경모의 고난은 점차적으로 심화된다.
먼저 부모의 구몰과 유모의 양육은 첫 번째 고난에 해당한다. 유모
열섬은 시비인 경섬과 차섬, 그리고 시노 유복과 함께 이경모를 업고
금주로 가서 이경모의 부모를 안장한 후, 다시 경사로 향한다. 그러나
“병이 발야 능히 보 일울 길히 업고 공 람의 상야 듕히
12) 김일렬, 앞의 논문, 55~58쪽.
<낙성비룡>의 구성적 특징과 소설사적 위상 131
알흐니 여러날 티료나 다시 길히 묘현”여 결국 유모와 경작은
금주 옛집에 남기로 하고, 다른 이들은 경사로 가서 기다리기로 한다.13)
홀로 남은 유모는 경모에게 모친으로 인식될 정도로 그의 양육을 전담한
다. 이는 유모가 죽었을 때 “이제 어미 죽어시니 뉘 시신을 무드며 내
장 엇지 요리오”하며 울부짖는다거나 처가를 나오면서 아내 경주
에게 유모의 무덤을 잘 보살피라는 당부를 하는 것, 훗날 영달한 뒤 유모
의 무덤에 크게 비를 세우는 것에서도 잘 드러난다.
유모의 양육과 죽음이 이경모의 상실감을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면,
장우의 구원과 장우 처의 박해는 이경모의 고난이 새로운 방향으로 진행
되는 계기를 마련한다.14) 그리고 이러한 고난은 양승상의 구원과 장모의
박해에서 더욱 강화된다. 벼슬에서 물러나 致仕閑客으로 소요하던 양승
상은 소를 돌보다 잠이 든 이경모의 잠꼬대에 지인지감이 발동, 그를
사위로 맞아들인다. 그러나 양승상의 후처로 들어와 이자 이녀를 낳은
한씨는 이경모의 볼품없는 현실적 지위에 불만을 품는다. 그녀의 불만은
양승상이 죽자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결국 이경모는 처가를 나오게
된다.
이와 같이 단계적으로 심화되는 이경모의 고난은 그러나 그 심각성이
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낙성비룡>은 유사한 고난의 패턴
13) “노야와 부인이 기셰시고 남은 골육이 소공 이라 조심야 보호야 당셩물
기다려 경사로 도라오라 우리 삼인은 촌촌이 비러도 쥬인의 졔 긋디 아니리니~”
(<낙성비룡>, 8쪽) 한편, 경사로 돌아간 이들은 주인의 옛집에서 훗날을 기약하며 한결
같은 모습으로 지내다가, 마침내 장원급제한 경모와 감격적인 해후를 하게 된다.
14) “겻마을 장위란 성이 장 요부더니, 경작이 이티 울믈 보고 참담히 여겨 려
다가 기르니 십일셰 되, 경작이 심히 게을러 자기를 됴히 너기고 밥을 만히 먹으니
장우의 처 양 지저 업 거시라 고 옷도 아니야 닙히고 머리도 빗기지
아니니 남누 거동이 걸인이 일월더라 장우 양 두호 기쳐 노시 심히 짓고
인야 소먹이기를 시기니 언덕의 올라 소 고 자니 노시 더옥 믜이너겨 마고와
뒷간을 최이고 을 리니 능히 다더라”(<낙성비룡>, 12~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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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보이는 <소대성전>과 비교된다. <소대성전>의 고난은 <낙성비룡>에
비해 분량은 소략하지만 보다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는다. 즉 소대성은
부모의 구몰과 적선을 통해 그야말로 집도 절도 없이 유랑하는 “주린
거러지” 신세가 되며, 이승상의 지인지감으로 구원을 받은 후에도 장모
에게 살해당할 처지에 놓인다. 그에 비하면 이경모는 유모의 양육과 장우
의 도움으로 적어도 유랑의 위기를 벗어날 뿐만 아니라, 장모 한씨의
박해 역시 생사존망의 문제로까지는 연결되지 않는다.15) 즉 고난의 양상
이 다양하고 상세하되 극단적이지는 않다는 것이다. 대신에 <낙성비룡>
은 이경모를 옹호하려는 측과 박해하려는 측의 대비가 작품을 끌어가는
서사동력이자 흥미의 요소가 된다. 무엇보다 이러한 점은 설생 부부의
등장을 통해 보다 명확하게 제시된다.
같은 형태의 고난(장우 처 - 한씨)이 점층 됨에도 불구하고 한씨의 박해
가 <소대성전>에 비해 그리 극단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바로 설생
부부, 특히 설부인 때문이다. 설생과 함께 친정을 찾은 설부인은 다음날
아침상을 받으면서 이경모가 천대받고 있음을 알고 “야야 시의 니랑
졉시미 이러시더니잇가”라고 말하며 한씨를 추궁한다. 설부인은
뒤에 다시 이경모의 성품이 “통달”한 “대인군자”의 기질을 갖추고 있음
을 보고 부친의 지인지감이 틀리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나아가 설부인은
한씨의 뜻에 따라 이경모를 홀대한 시비를 중책하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모친 이 변야시물 기리 탄식”기도 한다. 이러한 설부인의 면모는
15) 처가와의 갈등은 이미 <낙성비룡>의 특징으로 지적된 바 있다. 김일렬은 <소대성전>
에서 <낙성비룡>으로 변모되면서 “처가족과 결부된 사건은 <소대성전>에 비교되지
않을 만큼 무거운 비중을 지니게 되었다고 보았다.”김일렬, 앞의 논문, 5쪽. 처가족과의
갈등이 <소대성전>에 비해 더욱 구체적인 면모를 가지고 확장되었다는 그의 논의에
대해서는 동의하나 다만 이렇게 구체화되고 확장된 서사가 갖는 의미는 좀 더 면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낙성비룡>의 구성적 특징과 소설사적 위상 133
현실적 처지는 불우하나 “세군자”의 기질이 있고 “한 도량”이 있
음을 知鑑한 양승상의 혜안과 더불어서 가문의 영달함이나 부귀 등으로
인물을 따지는 한씨와 어사형제의 어리석음과 대비를 이룬다. 때문에
양승상이 “뉘 집 졔며 조상이 엇더며 그 대인이 므 벼 지낸
이니잇가”라고 묻는 어사 형제에게 “연작이 엇지 홍곡의 먼 을 알리오”
하며 어사형제를 경계했듯이, 설부인 또한 “졍이 업”서 “먹이기도 앗갑
고 심히 슬흔고로 능히 강잉티 못”는 한씨에게 “모친이 이러 박졍
시”냐며 그녀의 우매함을 우회적으로 비판한다.
이렇듯 양승상‧설부인과 대비되는 한씨‧어사형제의 우매함은 작품
의 후반 이경모가 영달한 후 작품 속에서 명확하게 드러나거니와, 특히
한씨가 대조적으로 파악했던 두 사위, 즉 이경모와 설생의 처지가 역전되
는 양상을 통해 더욱 극명하게 작품 속에서 구현된다. 설생은 장녀인
난주(설부인)의 남편 설인수로 이경모와는 서로 동서지간이다. 오 세 때
역시 부모가 구몰한 후 숙부 설경채의 슬하에서 자랐으나 “늠늠 헌아한
풍”가 “옥슈지경” 같았던 설인수는 장원급제 후 남주 추관이 되어 부
행 길에 금주에 들린다. “설생의 득의과 외임야 가물 듯고 대희야
나날 오기 기”리던 한씨의 눈에 설인수의 현실적 지위 및 배경과
이경모의 그것이 서로 대비되어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자연 설생과 이경
모에 대한 한씨의 태도 역시 눈에 띌 정도로 차별을 보인다. 심지어 온
가족이 모여 식사를 할 때에도 어사형제와 설생 및 다른 가족의 상은
“옥반금긔예 버린 그 우 공교로온 곳치 봄을 머므럿”지만 유독 이경
모의 상은 “헌 그릇과 여진 반의 즛긔 모도와 겨유 삼긔 노흔거
시 그 지 못고 버린 거시 브졍”여 “완연이 시노의 상”과 같았
다. 한편 설생이 임소로 떠나는 날 “한부인긔 보내 거시 심히 만흐니
부인이 대열야 니을 더욱 증을” 내고 “이로브터 죠셕 밥이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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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못고 답이 참혹”게 된다. 이렇듯 더욱 냉대해진 한씨의 태도
는 결국 이경모로 하여금 처가를 나오게 만든다. 두 인물의 편차는 “부인
과 비복이 마치 셜만 사회로 알고 니은 하쳔인도 능만미 참혹”한
지경에 다다른다.
두 사람의 위치는 후반부에 들어서면서 다시 역전된다. 번왕이 쳐들어
왔을 때, 이를 막지 못하고 “셰 급믈 상죠”했던 강서태수가 바로 설인
수였다. 결국 번왕을 물리친 경모가 지방을 안무하는 과정에서 강서태수
였던 설인수는 오히려 경모를 “뫼시는” 위치에 놓인다. 설인수는 원수가
자신이 그 옛날 천대를 받던 이경모라는 것을 밝히기 위해 당상으로 청해
도 小官을 운운하며 감히 사양하여 오르지 않는다. 그러다가 이경모가
친히 설인수를 당위로 올리고 자신의 신분을 밝히자 비로소 깨닫고 “심
하의 일변셰 가히 탁냥키 어려오믈 탄야 로 어린” 한다. 사실
설생은 작품 속에서 특별히 우매한 인물로 그려지지 않는데, 한씨의 어리
석음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이처럼 졸지에 무능한 인물이 된다.
<소대성전>의 경우는 왕씨의 개인적인 불만이 가족과 공명을 이루면
서 소대성을 처치하기 위해 가족 모두가 나섬으로써 소대성의 고난을
강화시키는 한편, 그 과정에서 소대성의 신이한 능력이 강조된다. 이와
달리 <낙성비룡>은 양승상‧설부인의 지인지감과 한씨‧어사형제의 어
리석음, 이경모와 설생의 처지 변화를 대비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진실된
내면을 보지 못하는 우매한 인물들을 醜聞으로 만든다. “선인가튼 자서”
는 커녕 근거도 불확실한 거렁뱅이 “귀형”이 자신의 아름다운 딸과 결혼
한다는 것도 못마땅한 그녀에게는 이경모가 밥을 많이 먹는 것도, “션
로셔 문을 아니”고 잠만 자는 행태도 그저 한심할 뿐이다. 이러한
그녀의 태도는 사위를 증오한 나머지 자객을 사주한 <소대성전>의 왕씨
에 비한다면 양호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이경모의 “영웅”됨을
<낙성비룡>의 구성적 특징과 소설사적 위상 135
알아차리지 못하고, 가문이나 부귀영달 여부와 같은 외형에 집착하는
그녀의 태도는 양승상이나 설부인의 지인지감에 비해 속물적이고 어리
석은 小人으로 치부된다.
<소대성전>에서 처가와의 갈등은 서사적 분량과는 관계없이 극단적인
양상을 통해 소대성의 능력을 드러내는 한편, 결과적으로는 처가로 대변
되는 세계와 소대성이 대립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자객을 처치한 후, 소
대성이 “칼을 들고 로 당의 들이가 니 등을 몰코져” 했던 것은
처가에 대한 분노이면서 동시에 자신을 억누르는 사회적 제약에 대한
반발로 이해할 수 있다.16) 말하자면 <소대성전>에서 처가족의 박해는
구체적으로 발현된 세계의 횡포라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낙성비룡>에서 세계는 횡포와 옹호가 맞물리면서 일방적
으로 영웅을 몰아세우지만은 않는다. 장모는 높이 날려는 대붕을 이해하
지 못하는 소인배의 인물형상을 보이며, 따라서 <낙성비룡>에서의 갈등
은 인물과 세계의 갈등이라기보다는, 우매하고 속물적인 장모로 대변되
는 어리석은 인물들(小人)과 “작은 것에 구애받지 않는”17) 대범한 인품
을 소유한 이경모를 중심으로 그의 인품을 알아챈 현명한 인물들(大人)
간의 대립이 보다 중요한 요소로 부각된다. 물론 <낙성비룡>에서의 세계
는 영웅을 고난에 빠뜨리기도 한다. 그러나 이때의 고난은 영웅소설의
그것처럼 끊임없이 영웅을 괴롭히는, 그래서 극복해야 할 성질의 것이
아니라, 합의 내지 조화를 추구하기 위한 과정으로 이해된다. 그것이 바
로 <낙성비룡>에서 영웅에게 주어진 과제이다.18)
16) 강상순, 「영웅소설의 형성과 변모양상 연구 -서사구조와 인물 형상화의 양상을 중심으
로 -」, 고려대 석사학위논문, 1991. 60쪽.
17) 김일렬, 「<낙성비룡> 연구」, 동양문화연구3집, 경북대 동양문학연구소, 1976. 10쪽.
18) 작품 후반에서 영달한 이경모가 자신을 박해하거나 비교대상이 되었던 인물들과 길다
싶을 정도로 재회하고 용서하는 장면이 제시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136 Journal of Korean Culture 18
2) 영웅 형상: 寬厚한 인품과 현실적 능력의 강조
<낙성비룡>에서 이경모의 성품이 두드러지는 곳은 역시 장모에게 냉
대를 당하는 부분이다. 장모는 낮잠을 자는 이경모를 꽁꽁 묶어놓는가
하면, 시비를 시켜 똥을 튀기게 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이경모는 속으로
는 차탄하면서도 겉으로는 늘 태연한 모습을 유지한다. 내 쫓으라는 모친
의 명을 받은 경주가 차마 경모에게 말하지 못하자, 오히려 소저의 뜻을
알고 있다고 말한 경모는 “더옥 참괴”해 하는 소저에게 “형셰 냥난면
가 사인들 므 이 이시며 니 사인들 므 슈괴미 이시리
오” 하며 담담하게 소저를 위로한다. 이와 같이 이경모는 한씨의 박해
속에서도 오히려 그 담대한 품성을 유지한다.19)
이경모의 이러한 성품은 <소대성전>의 화소를 교묘하게 재배치함으로
인해 더욱 강조된다. <소대성전>과 같은 화소이면서도 서사의 위치가
달라지면서 작품 내적 기능도 함께 변한 곳이 두 군데 있다. 하나는 이름
모를 노인에게 자신이 가진 은자를 아낌없이 주는 장면이며, 또 하나는
자객을 물리치는 장면이다. 편의상 전자를 ①로 후자를 ②로 보면, <소대
성전>의 경우 ①은 부모가 죽은 뒤에 나오며, ②는 처가에서 나오게 만드
는 계기를 제공한다. 한편 <낙성비룡>에서 ①은 처가를 나온 직후에 벌어
지고, ②는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소대성
전>에서 ①은 그의 인품을 드러내는 사례라고 할 수도 있으나 이 경우
소대성의 협심은 대책없고 충동적인 俠心이라고 할 수 있다.20) 동시에
이 화소는 소대성이 빈털터리가 됨으로써 이후 걸인으로 유랑하게 되는
19) 훗날 이경모가 성공한 후 한씨를 비롯한 처가의 사죄에 너그러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물론이다.
20) 김도환, 「<장백전>의 <규염객전> 수용과 소설사적 의미」, 고소설연구27집, 고소설
학회, 2009, 156쪽.
<낙성비룡>의 구성적 특징과 소설사적 위상 137
상황을 제공한다는 측면이 강조된다. 특히 뒤에 나오는 서사들과 관련지
어보면 자연 어린 아이가 고생한다는 사실이 더욱 긴박하게 와 닿는다.
②의 경우는 소대성의 가진 바 능력을 최초로 발현하는 계기로 작용한다.
물론 여기서의 능력은 말 그대로 초월적이고 신이한 능력이다.
<낙성비룡>의 경우는 이와 다르다. 우선 ①의 경우는 고난의 심화라기
보다는 그의 寬厚한 인품을 부각시키는 역할을 담당한다. 이는 적선 행위
가 처가에서 나온 이후, 그리고 夢事를 통해 장인 양승상의 도움을 받아
청운사에서 수학하기 직전에 발생한다는 점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즉
적선 이후 청운사에 안돈한다는 점에서 고난의 양상이 심각하게 드러나
지 않은 대신, 앞의 사건과 관련해서는 장모의 박해와 이경모의 적선이
대비됨으로써 그의 어질고 의로운 성품이 강조되는 것이다. ② 역시 능력
을 발휘하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는 <소대성전>과 같지만, 그 양상
은 사뭇 다르다. 자객의 침입을 미리 안 이경모는 요방을 기다리고, 이경
모의 풍모에 일단 기가 죽은 요방은 자객답지 않게 공손히 인사를 한다.
이어 이경모가 자신의 임금을 위해 애쓴다며 “그냥 돌아간 무류
것이니” 자신의 목을 베어가라고 말하자, 깜짝 놀란 요방은 오히려 “칼흘
버리고 업여 죽기 쳥”한다. 이에 이경모가 사람의 명과 도리를 말하
며 요방을 설득하자 감동받은 요방이 번왕에게 달려가 항복을 권유하고,
번왕 역시 “하이 이 영웅을 즁국의 내여겨시니 능히 내 을 일우
지 못 거시”라며 항복한다. 이 화소는 <창선감의록>을 비롯하여 <소현
성록>, <완월회맹연> 등의 장편소설에서 자주 쓰이는 화소인데 자객을
교화함으로써 주인공의 인품과 덕망을 드러내려는 목적성을 지닌다. <낙
성비룡> 역시 그러한 의도에서 삽입된 것으로 보인다.
이상에서 알 수 있듯, <낙성비룡>에 제시된 이경모의 영웅상은 <소대
성전>에 비해 寬仁大德의 풍모를 보여주는 데 보다 적극적이다. 말하자
138 Journal of Korean Culture 18
면 현혜경의 지적대로 “<낙성비룡>에서는 주인공의 절대적 능력이나,
비감한 내면이 그려지기보다는, 넓은 덕을 가진 현사의 이미지로 그려지
고 있”21)는 것이다.
더불어 <소대성전>과 비교해 볼 때, 장원급제와 글공부의 과정이 있다
는 점 역시 <낙성비룡>의 특징이다. 초반 이경모와 설생의 대조적 차이
는 설생의 장원 및 추관이 되면서 보다 강화되었다. 또한 청운사 유학
시절 사귄 임강수와 유백문 역시 이경모에 앞서 장원이 되는 바, <낙성비
룡>에서 급제의 과정은 현달하기 위한 실질적 방안으로 매우 중요하게
언급된다. 즉 <낙성비룡>에서는 <소대성전>에서처럼 외적의 침입에 의
한 나라의 위기가 주인공의 위치를 상승시키는 것이 아니라, 과거라는
현실적 제도를 통해 입신하는 것이다. 물론 이때 강조되는 것은 무인으로
서의 기질이 아니라 문인으로서의 자질이다.
이부샹셔 죠셕이 출반주왈 남곽이 강셔 침범야 홰 적지 아닌지라 맛당이
덕냥이 과인니 보내여 진무리니 금방 장원 니경모의 글을 보오니 문법이
비상야 하의 크고 놉흔 것과 바다 흐고 깁흠과 뫼 고 조흔 거
홀로 아사(알아) 녁냥덕이 죠신 즁 혀나니 그 사의 우인을 족히 알지라
인을 보내미 가토소이다 …… 녜부시랑 셕육이 주야 오 니경모의 글과
우인을 보오니 너고 놉흘 이오 지뫼 업서 심히 소활 션라 맛당이
지용이 가(갖춘) 쟈 취야 보내실 거시니~ 상이 오샤 녜 브터 영웅
이 출중 업니 이러므로 범이 산중수의 읏듬이로 업서 져근
즘의게 속고 뇽이 중수족의 읏듬이로 업니 니경모 인중뇽회라 위
엄을 겸야시니 그영용을 어이 좀 잇 소인의 비길배리오22)
21) 현혜경, 「지인지감유형 고전소설 연구」, 이화여대 박사학위논문, 1990.
22) <낙성비룡>, 175~176쪽.
<낙성비룡>의 구성적 특징과 소설사적 위상 139
위의 예문은 번왕의 침입에 대적하기 위해 이경모를 대원수로 뽑는
과정이다. 이경모가 대원수가 될 수 있었던 요건은 덕량과 문법의 비상
함, 그리고 지용에 있다. 즉 이경모를 대원수로 제수하는 과정에서 무인
으로서의 기질은 언급되지 않는다. 실제로 상황은 번왕이 원수에 맞서
견벽불출하는 사이에 이경모가 강서 땅을 안무하여 “셩이 구갓치
모”임으로써 번왕이 항복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게 된다.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이경모의 寬弘大德한 풍모에 형상화의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거나, 과거나 지략을 중시하는 점 등은 이경모가 저돌적이
고 무모한 일반적인 영웅소설의 주인공23)과 달리 재덕과 문식을 아울러
갖춘 영웅임을 보여준다. 이경모가 청운사 시절 유‧ 임 양인과 서로 시를
돌려보며 교유를 맺는 것, 장노와 함께 산천을 유람하며 시 짓기를 힘쓴
다는 것 또한 이러한 이경모의 문사적 면모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될
것이다.
소대성이 초월적 영웅인데 비해 이경모가 현실적 영웅이라는 점은 기
존 논의에서 말한 바와 같다. 좀 더 들어가면 소대성의 초월성은 다분히
충동적이고 저돌적인 소대성의 인물 형상과 밀접한 연관을 지닌다. 전
재산을 아무런 대책도 없이 투척하는 막무가내식의 협심도 그렇지만,
자객을 살해하는 장면에서도 노출된다. 자신을 해하려한 인물에 대한
가차 없는 응징은 장편소설과는 다른 영웅소설의 전형적인 미감이다.
그에 비하면 이경모는 소대성보다 너그럽고 여유가 있는 편이다. 그는
한씨의 박해를 받으면서도 쉽사리 감정을 드러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초월적 힘에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능력을 바탕으로 자신 앞에 놓인 고난
23) 전성운은 영웅소설의 영웅이 대개의 경우 앞뒤를 재지 않고 일단 머리에 생각이 떠오
르면 그대로 실천하고자 하는 무인형 인간형을 영웅소설의 인물 형상으로 보았다.(전성
운, 조선후기 장편국문소설의 조망, 보고사, 2002, 137~142쪽.)
140 Journal of Korean Culture 18
을 극복한다. 특히 그는 사람을 대하고 일을 행함에 있어 포용과 관용의
덕을 잊지 않는다. 말하자면 소대성의 거친 호흡에 비해 이경모는 보다
여유로운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점은 소대성과 공통된 요소들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경모의 인물 형상이 다른 지향을 보이고 있다는
근거가 된다.
3) 유흥적 분위기와 교유관계의 의미
<낙성비룡>에서 세계는 어찌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아니고, 고통의 과정
속에서도 믿을 수 있는 존재이다. 처가의 박해가 더 심각해질수록 다른
요건들을 통해 세계는 계속 낙관적인 예측을 불어넣어준다. 양승상이
이경모와 경주의 결혼을 반대하던 한씨 및 어사형제에게 “이 아 아직
이러나 타일의 명만쳔하고 셩현영웅이오 인의게 미리 업리
라~션인 셔등이 귀형 아게 비치 못리니 후일의 내 말이
올흔 줄을 리라”고 자신하는 것이나, 이경모가 처가를 나오면서 이
후 만날 수 없음을 슬퍼하는 아내에게 십년이라는 구체적인 기약을 정하
는 것을 통해 독자들은 앞으로의 서사 진행을 기대할 수 있다. 심하게
말하면 주변의 강압 속에서도 글읽기를 전혀 하지 않다가 청운사에 들어
가 비로소 글공부를 시작할 수 있는 여유 혹은 성품 역시 세상에 대한
낙관적인 믿음에서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24) 특히 위에서 말한 바, 후반
부에 보이는 유흥적이고 유희적인 분위기의 연출과 관련지어 볼 때, 이러
한 면모는 보다 명확해진다.
24) 물론 위에서 도출된 결론은 <소대성전>과의 비교를 통해서 나온 것이므로 다분히
상대적인 면이 있다. 다만 겉으로 유사해 보이는 두 작품이 세계관이라는 근본적인
시각에서조차 차이를 보인다는 것은 적어도 <소대성전>과 <낙성비룡>의 지향점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낙성비룡>의 구성적 특징과 소설사적 위상 141
<소대성전>과 <낙성비룡>의 차이는 작품 후반부 외적의 침입과 대단
원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낙성비룡>에서의 군담은 군담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매우 약하다. <소대성전>에서는 호왕이 침입하여 국가 전체
가 위기의 상황에 빠지는 순간 난데없이 등장한 소대성이 호왕 진영과
치열한 혈전을 벌인다. 이 과정에서 황제가 호왕에게 사로잡혀 항서를
강요당하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하고, 소대성과 호왕 진영의 장수들이
일기토 대결을 벌이는 등 군담의 양상은 사뭇 흥미진진하게 진행된다.
이에 비해 <낙성비룡>에서 이경모는 번왕이 강서를 침입하자 조정의
천거로 병부상서 대원수가 되어 번왕과 대적한다. 그런데 양자의 대결은
긴박한 접전이라기보다는 심하게 말하면 이경모의 일방적인 번왕 “진
압”의 양상을 보인다. 처음에 “위엄이 진동”했던 번왕은 이경모와 세
번 싸워 모두 지자 대경하여 놉흔 에 올라 이원수를 보고 “인이 이러
비상니 능히 홈을 당치 못리니 견벽불츌야 져의 곤믈 기
려 치리라”고 생각한다. 예봉을 피하며 굳게 지키던 번왕은 이경모가
덕을 베풀어 강서를 안무하여 사면초가에 몰리자 급기야 자객을 고용하
여 이경모를 암살하고자 한다. 그러나 고용되었던 자객 요방은 되려 이경
모에게 감화되어 번왕에게 항복을 권유하고, 이에 번왕은 바로 항복해
버린다. 세 번 싸웠다는 한 줄짜리 서술을 제외하면 <낙성비룡>에서 군
담은 없다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일반적으로 영웅소설에서 기대하는 군담
의 흥미성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낙성비룡>은 그 값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대신 군담과 처가족과의 화해가 끝난 <소대성전>
이 대개의 영웅소설이 그렇듯 몇 줄의 후일담을 끝으로 대단원을 맞았다
면, <낙성비룡>에서는 공명을 이룬 이경모의 후일담이 비교적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는 특징을 지닌다.
<낙성비룡>은 말한 바와 같이 장회로 구성되어 있는데, 마지막 장인
142 Journal of Korean Culture 18
“부부상합 장환락” 장에 이경모의 만년의 삶이 잘 드러난다. 수년 후
청광후가 된 이경모는 길에서 기녀들에게 귤을 받는가 하면, 유공과 술을
마신 후 술이 깨지 않아 조회를 파하기도 한다. 물론 상과 모든 조정
백관은 그의 실수를 너그러이 용납하고, 오히려 이를 즐기는 분위기까지
연출된다. 어느 날 경주부윤이 보낸 십 명의 창기 중에서 오인을 남긴
이경모는 자연스럽게 부인의 허락을 얻어25) “오일은 오창을 고 십오일
은 당의 머물고 십일은 외당의 쳐야 세월을 보”낸다. 이경모의 자식
은 총 십 오자 오녀인데 이중 오창에게 낳은 자식은 모두 오자 이녀이다.
비단 작품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고 만년의 한가로운 생활에까지 이어진
다. 그는 찾아온 벗들과 서로 바둑을 두며 농담을 주고받기도 하고, 온
가족이 모여 잔치를 벌이기도 한다. 이처럼 분량에 비해 제법 많은 화소
들이 갈등이 모두 해소된 뒤에도 계속 등장한다.
이 과정에서 특히 부각되는 것은 언어유희와 잔치 등을 통해 유희적이
고 유흥적인 분위기가 연출된다는 점이다. 분량이 <낙성비룡>에 비해
짧은 <소대성전>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분량 상으로 비슷하다고 보이는
<현수문전> 등의 영웅소설에서 유희적이고 유흥적인 분위기는 연출되
기 쉽지 않다. 특히 언어유희를 통한 농담의 교환은 영웅소설에서는 거의
드러나지 않는 요소이기도 하다.
원쉬 소왈 본 음식 즐기 손이라 어이 주 거 사양리이시리오 식냥
을 아라 큼이 장만라 내 당당이 가리라 태쉬 소왈 벼이 놉흔 휘나 그
숫 과 토미히 만히 먹 식냥을 잠간 주리미 죠흘가 노라 원쉬 대소왈
급졔 후난 더 만히 먹히더라 태쉬 소왈 소관이 십분 냥박야 풍셩치 못
25) “공이 소왈 ~부인 이 엇더니잇고 부인이 오 집안히 젹요더니 장 맛당
토소이다~부인이 무기 극진이 고 비록 창기나 이 온냥니 부인이 심히
랑나 갓가이 일이 업니 가즁이 화평더라”
<낙성비룡>의 구성적 특징과 소설사적 위상 143
니 형의 냥의 게 려 면 필연 작죄 면치 못리니 올적의 총으로 창
조리고 오라 원쉬 왈 즌 측여 더 느리고 가리라 태쉬왈 그럴진대 아이의
오지 말라 원쉬왈 국벅이 본 날 사을 각도의셔 지영고 잔야
공경고 관라 야 겨시니 젹게 못리라 이인이 대소고~26)
위의 예문은 원수가 바로 이경모라는 것을 안 후 자신의 집에 초대하는
장면의 한 부분이다. 여기에서 농담의 소재로 등장하는 것은 이경모의
長眼과 大食이다. 과거에 장모의 냉대의 이유가 되었던 장안과 대식은
이제 편안히 서로 농을 지껄이는 데 필요한 소재거리가 된 것이다. 격세
지감이라면 바로 이것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그뿐 아니라 임‧ 유 두 사람과의 농담도 매우 유흥적이고 여유로우며
길게 그려져 있다.
님뉴 이공이 잔을 로 놀려 니공을 심히 권니 공이 슌슌 바다 거훌러
임의 다 먹엇지라 슐이 반취매 쥬긔 졈졈 야 풍신을 도왓더라 님공왈
우리 쥬흥을 타 바둑을 두미 가타고 판을 내여 버릴 ~ 공이 반취
흥이 더욱 니러나니 슈단이 젼의셔 지라 ~ 님공이 슈단이 져상야 능히
이긔지 못고 판을 밀치며 대소왈 우리의 바둑슈단이 서로 양 형의
게 밋지 못므로 금일은 술을 권야 취즁의나 이기려 엿더니 술이 형의
슈단을 더욱 도으니 도로혀 뉘웃노라 니공이 대소왈 내 원간 술을 가져와 먹
이물 고이히 너겻더니 원 바둑을 지으랴 야 가져왓닷다 뉴공이 소왈 하긔
신내지말라 내 당당이 번 이긔리라 고 판을 나와 다시 두더니 뉴공이 지
당치 못야 지거 님공을 도라보와 지저 오 젼의 양 시
(간신히) 지더니 금일은 형이 됴흔 술을 만히 먹여 긔신을 도도와 더욱 지당
치 못야 를 지니이다. 형의 타시로다27)
26) <낙성비룡>, 198~199쪽.
144 Journal of Korean Culture 18
위의 예문에서처럼 이경모와 임강수, 유백문은 서로 어울려 술을 마시
며 바둑을 두는 과정 속에서도 농담과 유흥을 즐기고 있다. 뒤의 내용은
더욱 가관인데, 유백문의 책망에 임강수가 술 가져왔음을 뉘우치자 이경
모는 “내 스로 지고져 두손이 인졍이 업서 양 니긔니 실로 내
이 아니라 이 형이 만일 이긔고져 거든 나의 두손의 인졍을 만히
고 브 이긔여 달라 간졀이 빌면 혹 이긜 법이”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
며 잘난 능력을 굳이 감추지 않는다. 이외에도 이러한 유흥적이고 유희적
인 분위기를 작품에서 찾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특기할 만한 것은 이러한 유희적 분위기가 이경모의 공명이 이루어진
이후에 집중적으로 나온다는 것 외에도28), 이러한 유희적 혹은 유흥적인
분위기가 나오기 위해서는 함께 교감할 수 있는 인물들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소대성전>과는 달리 <낙성비룡>에서 교우관계가 중요한 서사
적 비중을 차지하고 등장하는 것은 이 점과 관계가 있다.
청운사에서 수학을 하던 이경모는 임강수와 유백문을 만나 서로 벗이
된다. 임강수와 유백문은 이경모와 평생 우정을 나누는 한편, 조정에서도
중신의 지위를 누림으로써, 직‧간접적으로 이경모에게 힘을 실어준다.
이들의 교우관계에 설인수도 자주 참여하는데, 말하자면 설인수까지 포
함한 이들 삼인은 이경모와 개인적인 우정을 쌓는 동시에 자연스럽게
정치적 입장을 함께 하는 당파의 성격을 지닌다. 물론 이러한 정치적
힘이 작품 내에 직접적으로 드러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잠재적인 가능
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과의 교우관계가 결과적으로 이씨 가
문의 위상을 높여주고 있다는 점은 사실이다.
27) <낙성비룡>, 252~254쪽.
28) 냉대를 당하는 과정 속에서도 이러한 분위기가 감지되지 않는 것은 아니나, 그것은
예외적이다.
<낙성비룡>의 구성적 특징과 소설사적 위상 145
한객이 누리는 유흥적이고 유희적인 분위기는 공명을 이룬 자의 권리
이면서, 동시에 여유와 흥취의 구현 방식이기도 하다. 즉 부귀공명을 이
룬 후의 구체적 삶의 모습은 지극히 평화롭고 혼란 없는 세계를 살아가는
영웅의 “느긋한 여유로움”29)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낙성비룡>이 외부
의 폭압(적대자든 세계이든)을 극복하는 것에서 나아가 극복 후의 여유
를 계속 누리는 것 역시 중요하게 인식했다는 점을 보여 준다. 이러한
후일담의 유희적 분위기는 갈등 및 고난의 해소와 극복이 서사의 중핵을
차지하는 대부분의 영웅소설, 특히 <소대성전>과 확연히 구분되는 지점
이기도 하다.
한편으로 이러한 여유로움은 영웅성만으로는 설명되지 않고, 세계가
영웅과 완벽히 일치되었을 때만이 가능하다. 즉 실제로 그것을 즐기는
인물은 영웅임에도 불구하고 유흥적 분위기가 문제 삼고 있는 궁극적
의식은 ‘세계’에 있다. 말하자면 <낙성비룡>은 세계와 일치된 자아의
권리를 비교적 상세하게 보여줌으로써 작품의 지향점이 ‘영웅’에서 나아
가 자아30)와 일치된 조화로운 ‘세계’, 더불어 여유로우며 화평한 ‘세계’
로까지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3. <낙성비룡>의 소설사적 위상
1) <낙성비룡>의 창작과정 및 개작의식
<낙성비룡>의 창작 경위에 대해서는 70년대 잠시 논쟁이 벌어진 후
29) 최윤희는 <남정팔란기>의 후일담을 언급하는 자리에서 “장황한 후일담은 일종의
느긋한 여유로움의 표상”이라고 말한 바 있다.(최윤희, 「<남정팔난기> 영웅 형상과
소설사적 의미」, 고려대 박사학위논문, 2004.)
30) 이때의 자아는 소설 속의 주인공일수도 있고, 작품을 읽는 독자일수도 있다.
146 Journal of Korean Culture 18
별다른 성과 없이 평행선을 긋고 있다. 현재로서는 원본이 확인되기 전에
는 쉽게 속단하기 힘드나 몇 가지 단서를 통해 추정은 충분히 가능하다.
첫 번째 단서는 <소대성전>의 창작시기와 이 작품에 영향을 준 <설인귀
전>의 국내 유입시기를 들 수 있다. 축적된 연구 성과에 따르면 조선
후기 영웅소설에 영향을 끼친 <설인귀전>의 국내 유입본은 <설인귀정
동>인데 이 작품은 대략 18세기 중반 어름에 국내에 유입된 것으로 파악
된다.31) 한편 <소대성전>은 주지하는 바와 같이 상서기문의 기록에
의거하여 적어도 1794년 이전(18세기 후반)에 창작된 것으로 보인다.
결국 18세기 중반 어름에 <설인귀정동>이 국내에 유입된 이후 인기를
끌다가 그 영향으로 18세기 후반에 <소대성전>이 나왔다고 추정된다.
시간적 간극으로 보아 그 사이에 <낙성비룡>과 같은 작품이 창작되어
<소대성전>에게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무엇보다 군담
이 축약된 <낙성비룡>이 군담을 강조한 <설인귀정동>과 <소대성전>의
사이에 위치했을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결국 <낙성비룡>이 <소대성
전>보다 앞설 확률은 매우 적다. 물론 <설인귀정동> 외에 그와 유사한
또 다른 작품이 있었을 것으로 상정할 수도 있으나 현재로서는 전혀 추정
의 근거가 되지 못한다.32)
한편 조희웅은 <낙성비룡> 또는 <낙성비룡>의 원전이 중국소설일 것
으로 파악하면서 그 근거로 이 작품이 한문 번역투의 문체를 보이고,
또 낙선재 고소설의 많은 작품들이 중국의 번역 작품이었다는 점을 들고
있다. 그런데 80년대 이후 장편소설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장편소설이
31) 서대석, 군담소설의 구조와 배경, 이화여대출판부, 1984, 265~312쪽.//이윤석, 「<설
인귀전> 이본고」, 연구논문집, 27호, 효성여대, 1983.// 이유진, 「<설인귀전> 이본
연구」, 고려대 석사학위논문, 2009.
32) 두 작품이 비슷한 시기에 따로 창작되었다고도 생각해볼 수 있으나, 이 경우 사위
박대담이 동시에 들어간 이유를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낙성비룡>의 구성적 특징과 소설사적 위상 147
문식을 지닌 식자층(상층의 여성을 중심으로 한)에 의해 필사되었고, 한
문 투의 어휘들이 자주 사용된다는 점이 밝혀졌다. <완월회맹연>을 비롯
한 대부분의 장편소설33)에서 한문 어휘를 찾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
다. 낙선재 소설 중 많은 소설이 중국소설인 것은 사실이나, 한 때 논란이
되었던 장편소설의 국적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현 연구의 시점에서
보면 이 역시 반론이 가능하다.
이상에서 살핀 바와 같이 <소대성전> ‧ <낙성비룡>과 밀접한 연관을
지니고 있는 <설인귀정동>의 유입시기(18세기 중반 어름), <소대성전>
의 창작 시기(18세기 후반), 문체 및 낙선재 소설의 국적문제에 대한
문제를 고려했을 때, <낙성비룡>은 <소대성전>의 영향을 받아 창작했다
는 추정이 반대의 경우에 비해 보다 설득력이 높다. 결국 <낙성비룡>은
대략 18세기 말 이후에 <소대성전>의 영향을 받아 창작된 소설이라 판단
된다. 아마도 <낙성비룡>의 창작자는 당시 전기수의 레퍼토리 중 하나였
을 정도로 높은 인기를 구가했던 <소대성전>을 접한 후 소설적 흥미를
느끼고 이를 새롭게 개작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 개작의 방향이 문제이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낙성비룡>
은 <소대성전>과 유사한 얼개를 지니면서도 그 미의식 내지 지향점은
사뭇 다른 방향으로 작품을 전개시킨다. 그래서 초월적 영웅상, 군담과
같은 <소대성전>이 지닌 영웅소설로서의 흥미소를 축소시키는 대신, 설
33) 장편소설이란 용어는 기존에 가문소설, 대하소설, 국문장편소설 등을 포함하는 용어
이다. 장편소설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된 이후로 이들 작품들에 대한 명칭 문제는 논란
의 대상이 되어 왔다. 가문소설이라는 용어는 장편소설 연구 초기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사용되고 있고, 대하소설은 가문소설의 대안으로 나온 용어이며, 국문장편소설, 장편소
설은 최근 여러 논자들에 의해 사용되고 있다. 장편소설이라는 용어는 용어의 함의가
너무 넓다는 단점이 있으나 포괄적이어서 관련된 다양한 작품을 함께 다룰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본고는 논의의 편의를 위해 다소의 무리를 감수하고 장편소설이라는 용어
를 사용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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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 부부를 등장시켜 가정 내에서의 갈등 양상을 세밀하게 그릴 뿐만 아니
라 갈등의 초점을 賢不賢의 문제로 전환하고, 주인공을 문사적‧현사적
영웅으로 변질시키며, 작품 속 세계관을 낙관적이고 여유롭게 포장한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그 이유의 단서는 바로 창작기반의 차이에서 찾을
수 있다. <낙성비룡>이 낙선재에서 발견되었다는 점을 상기하면, 이 작
품의 주된 향유층이 궁중 및 어느 정도의 소설에 익숙한 여성층이라고
상정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모두 그렇다고는 할 수 없으나 대체로 이
향유층이 지닌 미감이 영웅소설의 그것과 동일하지 않다는 점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다음의 필사 후기 역시 이를 증명한다.
임인 납월의 위시야 계묘 원월의 죵이라. 이 이 비록 언셔 니경모의
작인되미 짓짓 현인 군라 우리 누의님게셔 한번 보시 @@을 문하야
등셔야 달나실 누의님이 본 언문이 문장이시고 의 풀인시며
효열이 별다라시기로 양쇼져의 효열을 칭복시며 벗기기을 원시기 위월치
못와 @(썻)오나 필법이 심히 졍치 못 오낙셔 만흘지라 쟝찻 보시
이 눌너 보시고 우리 남 지극우를 표여씨 이 글시을 웃지말고 샹오
지 말고 앗겨앗겨 보시소셔34)
위의 필사기는 고대본 <낙성비룡>의 초권 말미에 적힌 글이다. 고대본
은 “善山桃開金參奉宅”이라고 되어 있는데, 필사연대가 1843년인지, 아
니면 1903년인지 현재로서는 확인할 수 없다.35) 그런데 예문에 나온 바
와 같이 누이가 관심을 갖고 있는 부분은 군담과 같은 요소가 아니라
바로 양소저(양경주)의 효열이다. 실제로 <낙성비룡>에서 양소저의 고
34) <낙셩비룡> 고대본, 初卷 末尾 부기.
35) 조희웅은 1843년으로 보았으나,(조희웅, 앞의 논문, 465쪽) 어투 및 문법적인 측면,
다른 이본들과의 관계 속에서 보면 1903년일 가능성이 더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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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은 <소대성전>의 이채봉과 비교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 정도에
있어 이경모에 못지않다. 그녀는 이경모와 십년기약으로 이별한 후, “다
만 듀야로 침션의 갑 바다 구고졔 극진이 ”며 절의를 지킨다.
이러한 양소저의 현숙한 덕은 죽은 시부모가 찾아와 그녀에게 감사와
위로를 하는데서 절정을 이룬다.36) 한편 그녀는 모친의 재취 권유를 죽을
각오로 맞서다가 결국 병석에 누웠다가 이경모가 번왕을 진압하고 처가
에 들린 후에야 차도를 보이게 된다. 이처럼 양소저의 절행은 필사자의
누이와 같은 <낙성비룡> 향유층에게 큰 관심과 흥미를 갖게 하는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 더불어 필사후기에는 다시 “이 시죵을 셔니 살피
니 빈한영욕이 다 가 잇시니 셰상을 엇지 일역으로 이요~”라고
하여 이경모가 박해를 극복하고 부귀영달한 것을 부각시키고 있다. 필사
기가 지극히 주관적이라는 점을 감안한다고 해도, 이와 같은 양소저의
절행과 빈한영욕에 대한 서사적 관심이 이 작품의 흥미소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말한 바와 같이 <낙성비룡>의 서사 전개가 이에 부합하는 것은
물론이다.
결국 <낙성비룡>은 당시 인기를 끌던 <소대성전>의 서사를 수용하면
서도 향유층의 성향에 따라 처가에서의 고난과 말미의 즐겁고 여유로운
삶을 중심으로 대인과 소인의 갈등 및 해소, 이경모의 인품과 양소저의
절의 등에 초점을 두고 창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2) <낙성비룡>의 소설사적 위치: 장편소설과 연관하여
<낙성비룡>이 창작된 18세기 후반~19세기는 고전소설이 이전 시기의
소설적 전통을 이으면서도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던 시기였다고 할 수
36) <낙성비룡> 139~148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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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 18세기 후반에 형성된 영웅소설은 방각본의 출간과 더불어 소설사
를 주도했고, 사대부 작가들에 의해 한문 장편소설이 본격적으로 창작되
었으며, 판소리계소설‧우화소설과 같이 민중의 의식을 짙게 담은 소설
들이 산출되었다. 장편소설 역시 18세기 장편소설의 전통을 이으면서도
자기 변화를 꾀하고 있었다.37) 더불어 각 소설의 유형들의 혼합 양상도
활발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가운데 특히 영웅소설과 장편소설은 서로
영향 관계를 주고받으며 교섭해왔다. 영웅소설의 형성에 장편소설이 지
대한 영향을 주었음은 주지의 사실이거니와, 19세기에 이르면 그 역의
과정도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낙성비룡> 역시 그러한 교섭 양상
의 결과로 보인다.
<낙성비룡>에서 나타난 미감들은 대부분 직간접적으로 장편소설과 연
관되어 있다. 우선 주인공인 이경모의 영웅 형상부터가 그러하다. 그는
충동적이고 저돌적인 영웅소설의 주인공과 달리 현사적‧문사적 영웅의
모습을 보인다. 예컨대 과거를 통한 조정 진출, 寬弘大德한 인품, 지략과
교화를 바탕으로 한 군담에서의 승리 등이 그러하다. 이러한 주인공의
형상은 초월적 세계의 개입이나 군담과 같은 서사 장치를 통해 일순간에
형상화되는 것이 아니고, 여러 인물들의 지인지감에 의해 거듭 확인되고,
과거 급제와 같이 세계의 질서 속에서 인정받는다. 寬弘大德한 인품이
초월적 신이함을 대신하고, 군담에서의 지략과 교화는 그가 딛고 있는
세계가 폭력이 난무하는 곳이 아님을 증명한다. 이러한 점은 영웅소설보
다는 장편소설의 주인공에 더 어울리는 미감들이다.
<낙성비룡>에 등장하는 화소나 대화의 방식 등에서도 장편소설과의
친연성을 살펴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자신을 해하려 한 자객의 교화는
주인공의 도덕적 인품을 강조하는 장편소설(특히 가문소설)에서 자주
37) 장효현, 「한국 고전소설의 존재 양상」, 한국고전소설연구사, 45-50쪽 참조.
<낙성비룡>의 구성적 특징과 소설사적 위상 151
등장하는 화소이다.38) 이경모가 수학시절 여러 동문들과 교우관계를 쌓
거나, 모든 갈등이 끝난 뒤 만년의 여유롭고 풍류적인 삶을 그리는 것
역시 영웅소설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옥루몽>, <남정팔난기> 등의 장
편소설에서는 빈번히 관찰되는 것들이다. 한편 영웅소설에서는 짧은 분
량 속에 다양한 서사를 전개시키므로 대화가 짧게 진행되는 데 비해 <낙
성비룡>에서는 많게는 대화로만 몇 장이 넘어가는 경우도 종종 등장한
다. 물론 거질의 장편소설에 비할 수는 없지만 이러한 점은 <낙성비룡>
의 지향이 장편소설에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파악된다. 무엇보다 이
작품이 낙선재 고전소설의 하나로 발굴되었다는 점, 고대본의 경우 <이
문성취록>과 연작관계에 있다는 점 등도 <낙성비룡>이 장편소설의 미감
을 지향하고 있다는 하나의 방증이 될 것이다.
물론 이러한 국면들은 <낙성비룡>의 소설사적 한계를 노정하는 것일
수도 있다. 실제로 <낙성비룡>에서 나타난 장편 소설적 요소는 분량의
한계로 인해 제대로 형상화되지 못하거나 관습적‧상투적 수용에 그친
부분도 없지 않다. 예를 들어 이경모의 인품은 영웅소설의 입장에서 보면
장편소설의 그것과 유사해 보일 수 있으나 정작 도덕적 인품을 강조한
장편소설(특히 가문소설)의 입장에서 보면 뚜렷이 형상화되었다고 보기
힘들다. 더군다나 장편소설 내부에도 다양한 흐름이 존재하는 만큼, 특정
요소가 보인다고 하여 바로 대입시키는 것 또한 위험한 일이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낙성비룡>이 보여준 소설사적 위상은 여전히 유효
하다. 특히 그것은 소설 유형간의 교섭이 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명확
하고 구체적인 증거를 찾기 어렵고, 이와 관련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
38) 일례로 <완월회맹연>에서는 자객 곽재화는 정인성의 풍모에 감복하여 마음을 고쳐
먹는다. 이러한 사례는 <소현성록>, <창선감의록> 등을 위시하여 대다수 장편소설에
서 자주 등장한다.
152 Journal of Korean Culture 18
지 않은 현 시점에서 더욱 그러하다.39)
물론 <낙성비룡>에서 찾을 수 있는 소설사적 위상은 다른 작품들의
연구 결과를 더할 때 보다 종합적‧입체적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18, 19세기에 이르면서 고전소설사는 장르 간 混用이 활발히 이루어지면
서 다양한 편폭을 보인다. 특히 영웅적 일대기를 중심으로 영웅소설의
미감이 드러나면서도 그 미학적 기반은 저마다 다른 작품들이 다수 존재
하는데, <옥수기>, <옥루몽>, <육미당기> 등의 한문장편소설과 <남정팔
난기>, <화산기봉>, <유선쌍학록> 등의 국문장편소설들이 여기에 속한
다. <이조양문록>의 경우처럼 양문록임을 드러냈지만 서사 전개를 영웅
소설에 더 가까운 작품도 있다. 이들 중 어떤 경우는 장편소설에서 영웅
소설로 가는 과정을 보여주기도 하고, 반대로 영웅소설에서 일정한 영향
을 받았을 것으로 짐작되기도 한다. 양자의 사이에 위치하면서 개별적
미감을 드러내는 작품도 있다.40) <소대성전>의 영향을 받았으나 장편소
설적 미감을 지향한 <낙성비룡> 역시 이러한 소설사의 풍경 속에 위치하
고 있음은 물론이다.
4. 소결
그동안 <낙성비룡>은 영웅소설의 자장-영웅소설의 변모 양상- 속에서
39) 사실 최근의 연구 풍토를 고려한다면,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에 걸쳐 있는 소설사에
서 소설 유형 간 교섭이 활발하다는 점은 계속 지적되고 있다. 심증적으로도 이 무렵
소설들끼리의 교섭 양상이 활발했을 것임은 충분히 짐작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
한 연관 관계를 명확하게 입증할 수 있는 작품이 그다지 많지 않은 것 또한 사실이다.
40) 최윤희, 앞의 논문 // 정혜경, 「<화산기봉> 연구 -갈등양상과 창작방식을 중심으로-」,
고려대 석사학위논문, 2004 // 배수현, 「<유선쌍학록>의 갈등양상과 인물형상」, 고려대
석사학위논문, 2004 참조.
<낙성비룡>의 구성적 특징과 소설사적 위상 153
이해되었다. <낙성비룡>이 “전형적인 영웅소설이 지닌 한계를 그 나름
으로 극복한 작품으로 평가”되거나, “영웅소설의 대중성을 살리지 못한
작품”으로 지적받았던 것도 여기에 기인한다. 그런데 이러한 극단적인
평가는 결국 영웅소설로는 포섭되지 않는 <낙성비룡>의 특징들을 <소대
성전>과의 연관성이 주목한 나머지 영웅소설의 자장 속에서 파악했기
때문이라 판단된다. 즉 “<낙성비룡>은 영웅소설”이라는 전제가 강하게
작용하다보니 소대성과 다른 이경모는 영웅소설의 전형을 극복한 인물
형상을 보인다거나, 소대성에 비해 약화된 영웅상-군담을 포함한-은 이
작품의 대중성을 감퇴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파악한 것이다.
그 결과 <낙성비룡>은 <소대성전>과의 연관성 속에서 연구가 시작되
어 유사성과 차이점 분석이 끝난 시점에서 사실상 소설사의 권외에 방치
되었다. 이에 본고에서는 “<낙성비룡>은 영웅소설”이라는 전제 자체에
대해 비판하면서, <낙성비룡>이 <소대성전>의 영향을 받았으되 그 미감
은 장편소설을 지향하고 있음을 밝혔다. 이와 같은 분석을 통해 결코
녹록치 않은 작품성을 지닌 <낙성비룡> 연구의 방향을 전환하고 나아가
조선 후기 소설사의 한 흐름을 해명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낙성비룡>과
장편소설에 대한 구체적인 검토가 아직 미흡하고, <낙성비룡>의 독자적
의미망은 여전히 구축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더불어 소설사의 양상
역시 보다 종합적‧입체적으로 고찰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41) 물론
이러한 문제는 <낙성비룡> 한 작품만으로 해결될 성질은 아닌 만큼, 후
고를 통해 계속 고민하고자 한다.
41) 일례로 <낙성비룡>에 나타난 장모의 박해, 영웅 형상, 여주인공의 고난, 소략한 군담
등은 <장풍운전>에서도 나타난다. 그간의 연구를 참고할 때, <장풍운전>이 “장편소설
→영웅소설”의 변모를 보여준다면, <낙성비룡>은 “영웅소설→장편소설”의 모습을 보
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관련된 연구가 더 세밀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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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성비룡>의 구성적 특징과 소설사적 위상 155
[Abstract]
Constructive way and position in novel history of
<Nakseongbiryong>
Kim, Do-whan
This study is aimed to examine the characteristics and position of <Nakseongbiryong>
in novel history. For this purpose, this study examined the characteristics of
<Nakseongbiryong> from the following three aspects in comparison with
<Sodaeseongjeon>. Firstly, as for the conflict pattern, the hardship is gradually
intensified, where the highlights are placed on the advocation for Lee, Gyeong-Mo
and the comparison between wisdom and foolishness of Bak Dae-Ga rather than the
seriousness of the hardship. In particular, the appearance of Seolsang couple is regarded
as the narrative element to emphasize the contrast between the two. Secondly, as
for the hero image, this novel is regarded as having different orientation from other
impulsive and emotional heroic novel (Sodaeseongjeon) in that the hero figure
is based on generous character and wise disposition. On the other hand,
<Nakseongbiryong> depicts the social activities of Lee, Gyeong-Mo in a poetic
and relaxed attitude on one page, which demonstrates the orientation toward harmonized
world. Based on it, the world view of <Nakseongbiryong> is seeking for optimistic
and relaxed one, which is also different from the ones of other heroic novels.
In terms of position in novel history, this study examined that <Nakseongbiryong>
was influenced by <Sodaeseongjeon>, and that nevertheless, the orientation of
<Nakseongbiryong> was at a full-length story. These features of <Nakseongbiryong>
may be understood as one of the cross-sections in the 19
th
century novels.
Key words : Nakseongbiryong, Sodaeseongjeon, heroic novel, hardship, hero image,
artistic sense, orientation
논문접수일: 2011. 7. 30 심사기간: 2011. 8. 17~ 8. 30 게재결정일: 2011. 9.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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