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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속으로 흩뿌려지는 공동체, 한국 CLC
세계 CLC(Christian Life Community)는 1540년 이냐시오(Ignatio)가 만든 평신도 사도직 공동체에서 비롯했다. 도중에 신심단체인〈성모회〉로 성격이 바뀐 적도 있었지만, 1960년〈제2차 바티칸 공의회〉이후 ‘그리스도 생활 공동체’로 쇄신, 재창립되었다. 한국에선 1986년 평신도들이 수련 모임을 시작했고, 1989년에 첫 서약회원 7명을 배출한 이후 현재까지 평신도 교육․양성과 시민사회운동 사도직을 실천하고 있다.
모든 것 안에서
세계를 삼킨 홍수에서 인간과 피조물들을 구해 주었다는 노아의 방주 설화를 떠올리다가, 문득 승선했던 일행이 40일 뒤에도 방주 안에서 나오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해졌다. 그리 오래지 않아 방주는 생지옥으로 변했을 테지. 노아가 까마귀와 비둘기를 초조하게 날려 보냈던 것도 그것을 두려워한 때문이었을까? 아무튼 교회를 방주로 은유할 때도 ‘방주 상태’의 지속을 기대하는 건 어리석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죄 많은 이 세상은 내 집 아니네~”를 노래하며 안전한 방주인 교회 안에만 머물고 싶어 하는 이들도 있는 것 같다. 세상은 그리스도인들이 피해야 할 악의 장소라는 오랜 믿음 탓일까? 소위 천만 그리스도인이 기도와 모임에 열심이어도 세상은 별로 나아지지 않고, 사랑을 표방하는 교회 안에 지독한 미움이 생겨나는 것은 방주 밖으로 나오지 않으려는 자폐적 고집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언약의 무지개가 걸리고 하나님은 인간의 마을로 오셨다는데, 여전히 방주의 벽을 튼튼히 하려 못질만 하고 있는 교회의 풍경이 몹시 우울하다.
이제 하느님의 집은 사람들이 사는 곳에 있다. 하느님은 사람들과 함께 계시고 사람들은 하느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친히 그들과 함께 계시고 그들의 하느님이 되셔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이다. -『공동번역 성서』요한계시록 21:3~4
교회에서 희망 찾기가 버겁게만 느껴지던 가을, 방주 밖 대양에서 헤엄치는 물고기처럼 자유롭게 생동하는 그리스도인들을 만났다.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을 발견”하려는 가톨릭 평신도 공동체 CLC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세상은 예수를 보다 깊게 만날 수 있는 하나님의 선물이기에, 세상에서 물러나 따로 모여 사는 공동체를 꿈꾸지 않는다. 저마다 세상 속으로 더 깊이 녹아 들어가 자신과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다. 그래서 CLC에는 세상을 향해 쌓은 담장이 없다.
깨어나는 평신도-양성
1960년 가톨릭의〈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바탕에는 그동안 폄하해 왔던 세상의 재발견이라는 시대적 요청이 놓여 있었다. 공의회에서 평신도 성소(vocation)를 중요 의제로 삼은 것도 세상 속에서 일하고 사랑하며 사는 이들이 바로 평신도들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교회의 관행에 젖어든 평신도들이 자기 삶을 성소로 긍정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 교구 신자가 ‘우리 지역엔 성소자가 두 분 뿐이에요’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어요. 아직도 성소라는 말을 성직자 중심으로만 사용하는 문화가 남아 있는 겁니다.” - 한국 CLC 사무국장 신광식.
신의 부름을 받은 이는 소수 성직자들뿐이라는 관념은 주로 성직자들이 주입시켰을 테지만, 한편으로는 평신도들이 자발적으로 수용한 것이기도 하다. 신부나 목사의 영적 돌봄에 모든 걸 맡기고 삶의 도전 없이 그저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신앙생활이 더 편한 까닭이다. 공식적으로 세계 CLC와〈예수회〉가 파트너쉽 관계임에도 일부에서는 ‘신심단체’이길 고집하는 수동적 모습이 남아 있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그래서 어떤 나라에는 CLC가 그 전신인〈성모회〉와 공존하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의존적인 평신도의 신앙과 삶을 쇄신하지 않고서는 교회의 변화도 기대할 수 없다고 여긴 한국 CLC는 일찌감치 1989년부터 평신도 교육을 위한〈목요신학강좌〉를 운영해왔다. ‘신학총론과정’, ‘성서연구과정’, ‘신학연구과정’ 각 1년씩 3년 간 운영하는 강좌는 하나님과 예수, 교회와 세계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있다. 지금까지 이 과정을 거친 평신도만 수천 명이다.
묙요신학강좌
물론 신학적 훈련만으로 평신도의 의식과 생활이 바뀔 수는 없다. 그래서 CLC 평신도 양성의 또 다른 중심으로 영성수련이 있다. 현재 수원, 안양, 성남, 인천, 서울 등지에서 평신도들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10주 과정의〈세상 속의 영성수련〉은 기도, 묵상, 관상, 성찰, 식별의 훈련을 통해 신앙과 삶의 간격을 좁혀가는 첫 관문이다. 이 과정 후에는 이냐시오 영성에 입각해 열 명 안팎의 평신도들이 공동체적 생활피정을 하는〈영성수련의 실제〉가 12주 동안 이어진다.
영성수련의 세 번째 단계는〈자캐오 계획〉이다. 자캐오가 예수를 만나 삶의 전환을 경험했듯이,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변화를 체험케 하는 이 과정은 약 3개월 동안의 시민운동 사도직 훈련을 포함한다. 이때 평신도들은 영성의 목적이 사적 평정과 행복이 아니라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도직의 실천임을 자각하게 된다. 현재 이 과정은 공동체의 서약회원으로 초대하는 1년 6개월 기간의〈수련과정〉에 통합되어 있다. 그 형식과 기간만 보더라도 평신도 회원 양성의 과정이 그리 녹록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인상적인 것은 이러한 교육․양성에 참여하는 평신도의 70퍼센트 이상이 주부들이라는 사실이다. 위계적 교회와 가정에 갇혀 지내며 소위 ‘의무신앙’에 익숙해진 이들에게 CLC 양성과 생활방식은 의존적 신앙관행을 뒤흔드는 도전이 되고 있다. 신앙의 열심이 있으면서도 자신의 성소에 무지한 채 세상 일과 담쌓고 지냈던 평신도들이 오랜 잠에서 깨어나듯 점차 사도적 삶에 눈을 뜨는 것이다.
CLC 사무실 한 구석에 놓인 상자에 팔뚝 굵기만한 색색의 초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수련과정을 마치고 회원으로 초대된 이들의 서약식 때 쓰는 초라고 한다. 이제 12월이면 다시 열 명의 새 서약회원들이 생긴다. 이들은 우선 2년에서 8년 간 유기서약을 해 사도적 책임을 수행하고, 그 뒤에 CLC 성소를 평생 소명으로 고백하는 종신서약을 하게 된다. 오랜 시간 동안 내적 갈등과 화해를 거친 그들이 밝힐 은은한 빛의 예감에 마음이 환해진다.
바람을 거슬러
1989년에 첫 서약을 한 일곱 명의 회원 중 두 명이 무악동에 들어가 가난한 이들과 함께 살기 시작했다. 한국 사회에서 긴급히 요청되는 사도직으로 ‘평신도 양성’과 ‘가난한 이웃에 대한 우선적 선택’을 식별한 결과였다. 이들은 무악동에〈빈민사목센터〉를 세우고 주민들을 위해〈한누리 공부방〉을 운영하는 한편, 세입자 보호와 재개발 입법 추진 활동 등을 지역 재개발이 완료된 1997년까지 계속했다.
과거 사회참여에 열심이던 종교단체들이 1990년대 이후 주춤거리는 것과는 달리, 최근 몇년 동안의 CLC의 사회참여 사도직은 오히려 활발해진 인상을 준다. 1997년 IMF 금융위기 때는 실직 노숙자 신문〈더불어 한 길〉을 발행해 위기에 빠진 이웃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고, 지금껏 시민단체들과 연대하여 국정 모니터링, 부패방지제도 입법 추진, 총선연대 활동 등 정치개혁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왔다. 뿐만 아니라 환경, 교육, 인권의 여러 분야에서도 사도직을 실천하고 있다.
부정부패 추방 퍼포먼스
이런 실천의 동력은 수련과정에서 형성되는 사도직 소공동체들의 자발적 헌신이다. 한 예로, 주부와 직장인 등 일곱 명의 회원이 힘을 합해 환경운동을 벌이고 있는〈생명 살리기〉도 수련과정에서 새만금 갯벌 살리기를 사도직으로 체험하면서 시작했다. 생명 살리기는 구호가 아니라 일상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는 이들은 ‘면 생리대 보급’ 같은 일상적 실천에서부터, 친환경적 의식 확산을 위한 교육과 연극, 유기농 장터까지 모든 일을 별도의 상근자 없이 실천하고 있다.
“용인에 함께 다녀오지 않을래요?”
볕이 따사로운 오후, 사무실에 앉아 말로 설명하기보다는 ‘공동체를 보여주고 싶다’는 신광식 사무국장과 함께 용인의〈이주노동자 인권센터〉를 찾아갔다. 그곳에는 서약회원인 김소령, 오주용 회원이 다른 두 실무자와 함께 며칠 뒤에 있을 ‘아시아문화축제’를 준비하고 있었다. 규모는 작지만 생동하는 힘이 느껴지는 이 센터의 설립 과정은 CLC 사도직의 방식을 정말 잘 보여준다.
2001년, 수련공동체 중 하나인〈가람공동체〉의 네 회원은 각자의 희망 사도직을 찾기 시작했는데, 공교롭게도 그 관심이 환경, 이주노동자 인권, 교회 내 청년의 삶, 기지촌 활동으로 모두 달랐다. 하지만 이들은 공동식별을 통해 지금의 한국 상황에서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관심이 시급하다는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공동체의 사도직을 정한 후에는 그것을 더 깊이 식별하기 위해서 네 회원 모두가 여러 이주노동자 단체로 흩어져 한 달 간 인턴 과정을 밟았다. 하지만 그들만의 힘으로는 그 사도직을 감당할 수 없었다. 이에 네 회원은 CLC 부속으로 센터를 설립해 줄 것을 공동체 전체 총회에 요청했다.
총회에 참석한 모든 회원들은 가람공동체의 요청에 대한 개인식별을 거친 후에 각자의 ‘내적 움직임’을 돌아가며 이야기했다. 총회는 그것을 공동식별한 후 부속 센터를 세우기 위한 준비위원회를 결성했고, 향후 설립될 센터에 대한 1년 간의 한시적 재정 지원까지 결의했다. 그 후 장소 선정 및 활동을 위한 준비를 넉 달 간 더 가졌고, 상근을 결심한 두 명의 회원은 다시 석 달 간 다른 이주노동자 단체에서 실무를 배웠다. 그리고 마침내 2002년 6월에 CLC 부설〈이주노동자 인권센터〉를 용인에 설립했다. 이 과정에서 전체 공동체는 회원들의 사도직을 제시하거나 사람을 배치하지 않았다. 이처럼 공동체의 사도직이 개인의 성소 식별에서 시작해 공동식별을 통해 구체화되는 것이 CLC 실천의 한 방식이다.
CLC 부속 [이주노동자인권센터]
식별의 영성
이들을 만나면서 “식별한다”는 말을 “기도한다”는 말처럼 자주 듣게 되었는데, ‘식별(discernment)’의 의미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태도와 방향을 안내하는 영의 내적 움직임에 대한 성찰로 이해할 수 있다.
“몇 살이죠?”
“스물여섯이에요.”
용인에서 대화 중에 느닷없이 김소령 회원에게 나이를 물은 것은 그의 태도에 배인 평온이 불안에 사로잡혀 지냈던 그맘때의 나를 불러냈기 때문이었다. 나이의 많고 적음을 떠나 CLC 사람들에게서는 인격적 성숙의 표시인 신념과 부드러움의 공존을 느끼게 된다. 긴장감 가득한 시민사회 영역에서 기도하듯 활동하는 CLC의 독특성은 영성의 차원을 배제하고선 이해할 수 없다. 특히 시민사회운동 사도직을 실천해 오면서 선(善) 안에 스며든 악과 무질서를 뼈저리게 경험한 이들은 ‘영성적 시민운동’의 모색을 중요한 과제로 삼고 있다.
따라서 CLC 활동은 모든 것 안에서 하나님을 찾고 발견하는 개인적, 공동체적 기도와 식별에 기초한다. 사도직을 실천하는 모든 서약회원들은 이냐시오 영성수련에 따라 매년 1월 총회 전에 8일 간 침묵피정을 하고, 다시 1박 2일 간의 연수회를 거친 후에 총회에 참석한다. 그리고 7월에도 4박 5일 간의 개인 피정을 권고 받는다. 또한 사무국을 비롯한 각 모임에서는 아침마다 복음 묵상을 통해 하나님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개인적으로도 점심 때 10분, 밤에 10분 씩 자기를 돌아보는 양심 성찰의 시간을 갖는다. 이처럼 CLC 사람들은 주기적, 일상적 영성수련을 통해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시대의 요구를 성찰하고, 그것에 임하는 자신과 공동체의 모든 것을 깊이 바라본다.
“바쁘다고 일에만 매달리다 보면 우리가 그 일을 왜 하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놓치게 돼요. 일을 더 잘하기 위해서라도 우리의 태도, 관계 맺는 방식에 대해 식별하고 나누는 시간을 정기적으로 가지려고 노력해요.” -〈이주노동자 인권센터〉김소령.
이러한 CLC 영성의 특징은 식별이 개인의 내밀한 영역에 갇히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들은 공동식별 없이 개인식별이 있을 수 없고, 개인식별 없이 공동식별도 있을 수 없다고 믿는다. 그래서 자기 안의 움직임을 공동체 속에서 함께 나누며 서로의 내적 삶에까지 관여하는 공동식별은 CLC 삶에서 자연스러운 문화이다. 물론 공동체 앞에서 자기를 식별하고 성찰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공동체는 내 안의 어둠에 대해 성찰을 요구하며 10년 동안이나 도전해 왔어요. 처음엔 왜 부족한 점만 들추려는 걸까? 하는 서운함도 있었지만, 이젠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공동체 없이 우리는 성숙할 수 없었다는 걸.” - 신광식
이런 관계적 태도로 일하다보니 CLC 사람들은 활동 자체보다는 동료의 내적 태도를 먼저 헤아린다. 하루는 다른 시민단체의 후원 제도를 알아보려고 한 회원이〈녹색연합〉후원의 밤 행사를 다녀왔다. 다음 날 아침, 동료들이 그에게 물었다.
“거기서 네 마음과 태도는 어떻게 움직였지?”
공동체의 질서-수평적 중심
소공동체 모임
공동체의 서약 회원들은 20대에서 60대까지 세대 폭이 넓고 각자의 직업도 다양하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나이나 경력이 위계적 권위 주장의 근거가 되지 않는다. 더욱이 모든 것을 평신도 스스로 해 나가기를 식별했기에 외부 사제들의 지도도 받지 않는다. 그렇다면 내부의 다양성이 두드러지는 이 공동체가 질서를 이뤄가는 방법은 무엇일까?
CLC의 정체성과 질서를 유지시키는 힘의 원천은 공동체 자체이다. 그것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회원들 각자가 공동체를 “사랑과 활동 안에서 서로의 일치를 구체적으로 체험하는 곳”(CLC『통칙』7)으로 인식하는 관계적 존재로 성숙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따라서 CLC 회원 양성이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었다. 물론 그 역시 공동체적 방식을 벗어나지 않았다.
CLC의 여러 소공동체 중 하나로, 교육 및 양성을 사도직으로 맡는 ‘길잡이’들의 공동체〈노둣돌〉이 있다. 모두 아홉 명이다. 이들 각자는 대개 여덟 명 내외로 구성되는 수련 공동체를 안내하는 책임을 맡아, 수련회원들이 각자의 성소를 발견하고 사도적 삶을 준비할 수 있도록 돕는다. 수련회원들은 생활 나눔, 기도, 복음 묵상, 질문, 세상 속에서의 적용으로 구성되는 일년 반 동안의 수련 과정을 통해 점차 내적 확신을 얻게 된다. 그만큼 특별한 영적 민감성과 안내 능력을 요청받는 길잡이들은 케이스 스터디, 태도 성찰, 이냐시오 영성수련에 열심이다. 현재 진행하고 있는 수련과정의 방식과 내용도 이들이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대안을 주고받으며 공동으로 수정하며 다듬어 온 것들이다.
이처럼 CLC 삶의 영성적 중심을 잡아가는 데는〈노둣돌〉의 역할이 크지만, 각 소공동체 대표(체장)들의 모임인〈리더쉽 커뮤니티〉와〈상임위원회〉역시 공동체의 일과 경험을 공유하며 중심을 잡아가는 구조이다. 특징적인 것은 이 모임들도 또 하나의 소공동체로 움직인다는 사실이다. 서로의 내적 움직임을 읽으며 개인적, 공동체적 식별을 함께 나누기는 다른 소공동체와 다를 바 없다. 이렇듯 더불어 성숙해 가는 구조이기에 한 개인의 카리스마적 권위에 의존할 이유도 위험도 없다. 이들이 체현하고 있는 수평적 중심의 가능성은, 공동체적 관계성 속에서 영성의 일치와 생활의 질서를 이뤄가는 데 좋은 길잡이가 되지 않을까?
물음, 경건한 사유
CLC 사무국장 신광식 씨는 평소에도 질문이 많은 이다. 한가로이 담소를 나눌 때는 물론, 심지어 인터뷰할 때도 꼭 그만큼 질문을 돌려받는 걸 예상해야 한다. “교회가 잃어버리고 있는 게 뭐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공동체를 해야 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요?” 등. 덕분에 내 쪽에서 꼬치꼬치 캐물어도 미안할 일이 없어 좋긴 하다. 아무튼 나는 그의 그런 태도가 그만의 독특한 개성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이번에 공동체의 다른 이들을 만나면서 ‘질문’이 CLC 삶의 중요한 방식임을 알게 되었다. 잠시 공동체와 떨어져 지냈던 한 회원은 “밤이 깊도록 질문을 주고받던 경험”을 잊지 못해 다시 돌아와 서약회원까지 되었다고 말하며 미소 지었다. 그렇게 각자의 삶을 낯설게 하거나 깊게 하는 질문은 이들의 모든 모임에서 빠지지 않는다. 서로의 삶에 참여하며 근원적 질문을 던지는 그들의 우애는 나를 설레게 하고, 스스로의 악 뿐 아니라 선에 대해서까지 물음을 던지는 그들의 철저함은 나를 겸허하게 한다.
물음은 경건한 사유이다. 역사는 종교적 부패와 폭력이 물음을 포기하거나 억압할 때 시작되었음을 가르쳐 준다. 그래서 물음은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CLC 사람들이 신을 향한 길을 잃지 않도록 안내하는 나침반이다. 평화롭고 나직하게 이어진 대화를 마치고 떠나올 때, 그들은 내게 물음 하나 챙겨주는 우정을 잊지 않았다.
“며칠 전 밤늦게 공동체의 한 친구가 전화하더니, 우리는 아직 한참 약하다고, 더 단단해져야 한다고 울먹이며 말했어요. 난 가끔 그런 생각을 해요. 우리가 넘으려는 건 기성교회가 아니라 세상일 거라는, 그리스도인들은 교회의 희망이 아니라 세상의 희망이 되어야 하는 거라는... ‘어떻게 생각해요?’”
한국 CLC (Christian Life Community Korea)
주소: 서울시 마포구 신수동 1번지 한국 CL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