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마리나
프란치스코 데 수르바란
프란치스코 데 수르바란(Francisco de Zurbaran, 1598-1664)은
17세기 스페인 여인의 복장을 한 매혹적인 성녀들을 연작으로 그렸다.
그러나 그 연작 그림들이 세계 곳곳으로 뿔뿔이 흩어져
매혹적인 여인들이 가지고 있는 신비한 느낌을 부분적으로만 느낄 수 있다.
말라가 티센 카르멜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1640-50년경에 제작된 <성녀 마리나>는
스페인 여인의 복장을 한 성녀들의 연작 중 한 작품인데
모자를 쓰고 있는 반신의 성녀 마리나를 후광 없이 사실적인 얼굴과
17세기 스페인 복장을 한 여인의 모습으로 독특하게 그렸다.
비록 모든 기록이 사라졌으나
<로마 순교록>의 기록에 성녀 마리나(St Marina)는
스페인 갈리시아(Galicia) 지방 오렌세(Orense)에서 순교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녀의 이름은 바로니우스(Baronius)에 의한 순교록의 두 번째 개정에서
추가되었다.
그녀는 또한 종종 안티오키아의 성녀 마르가리타나
황금전설에 나오는 남장을 하고 수도원에서 살았던 성녀 마리나와 혼동되기도 한다.
황금전설에 따르면 성녀 마리나는
비티니아(Bithynia)의 에우게니우스(Eugenius)의 딸로 태어났다.
그녀의 부친은 홀아비 생활을 청산하고 수도원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얼마 후에 친척집에 맡겨둔 어린 딸 마리나 생각에 마음이 헷갈리게 되자,
수도원장에게 그 아이가 마리누스(Marinus)라는 남자 아이라며
자신과 함께 수도원에서 살게 해달라고 청하여 허락을 받았다.
그녀는 부친이 돌아가신 17세 때까지 아버지와 함께 살았다.
그 후에도 그녀는 수사로서 계속해서 생활했는데,
어느 여인숙 주인의 딸이 마리누스가 자신에게 임신시켰다고 소문을 퍼뜨렸다.
그래서 그녀는 수도원에서 쫓겨나 걸식을 하며 살았고,
그 처녀는 아이를 낳아서 마리누스에게 아들을 맡기고 먼 곳으로 떠났다.
성녀 마리나는 그 모든 것을 침묵으로 일관하며 끝까지 인내하였다.
5년 후 수도원장은 마리누스의 놀라운 인내와 겸손을 인정하여
5살 된 아들과 함께 수도원에서 다시금 살게 했으나 매우 힘든 일만 시켰다.
결국 마리누스는 운명하였고,
시신을 수습하던 중에 마리누스가 여성임이 밝혀졌으며,
수도원장을 비롯하여 모든 수사들과 시민들은
그녀의 위대한 용덕과 인내심을 찬양하여 엄숙한 장례를 거행했다고 한다.
수르바란은 어두운 배경에 빛나는 얼굴을 가진 매력적인 여인을 성녀로 그렸다.
그녀는 검은 모자를 쓰고 흰색 칼라가 있는 검은색 상의를 입고 있다.
아마 그녀가 세속을 끊고 수도생활을 했다는 것을 혼동해서 그렇게 그렸는지 모른다.
그녀는 오른손에 목자의 지팡이를 들고 있고,
왼손에 책을 들고 있으며,
울로 짠 독특한 모양의 스페인식 가방인 알포리야스를 걸치고 있다.
아마 그녀를 성녀 마르가리타와 혼동해서 그렇게 그렸는지도 모른다.
그녀가 여인임을 강조하듯 녹색 치마는 둥글게 퍼져 있고,
위쪽으로부터 내려오는 빛을 골고루 받아 균형이 잡힌 성녀의 모습은
자연스럽고 우아하며,
자기의 결백을 주장하듯 관람객들을 빤히 바라보고 있다.
교회미술에서 성녀 마리나는 요람에 있는 아기와 함께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모습으로 많이 그려졌는데,
수르바란이 그린 성녀 마리나는 교회전통과는 사뭇 다르다.
성녀 마리나는 지금도 스페인 갈리시아 지방에서 많은 공경을 받고 있으며,
성녀의 축일은 7월 18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