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팔꽃
송수권
바지랑대 끝 더는 꼬일 것이 없어서
끝이다 끝 하고
다음날 아침에 나가보면
나팔꽃 줄기는 허공에 두 뼘은 더 자라서
꼬여 있는 것이다. 움직이는 것은
아침 구름 두어 점, 이슬 몇 방울
더 움직이는 바지랑대는 없을 것이었다.
그런데도 다음날 아침에 나가보면
덩굴손까지 흘러나와
허공을 감아쥐고 바지랑대를 찾고 있는 것이다.
이젠 포기하고 되돌아올 때도 되었거니 하고
다음날 아침에 나가보면 가냘픈 줄기에
두세 개의 종(鐘)까지 매어달고는
아침 하늘에다 은은한 종소리를 퍼내고 있는 것이다.
이젠 더 꼬일 것이 없다고 생각되었을 때
우리의 아픔도 더 한 번 길게 꼬여서
푸른 종소리는 나는 법일까
**송수권시집 <꿈꾸는 섬> 중에서
**이 시를 보면 퍽 산문적인 문투로 되어있다. 시를 능수능란하게 잘 쓰는 시인들은 이렇게 풀어쓴 듯 하면서 문장이 풀어지지 않는 것은 문장이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이렇게 쓸 수 있으리라 생각할 수도 있으나 능수능란한 수법이 아니고서는 문장이 설명적으로 되어버리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앞서 밝힌 대로 문장을 풀어쓴 듯 하면서 시인은 처음부터 무얼 읊어야겠다는 뚜렷한 주제의식을 가지고 긴장감 있게 써 내려간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나팔꽃 줄기가 힘들게 바지랑대 끝을 향해 기어오르고 있는데 바지랑대를 선택한 것도 운명인데 어쩌랴. 포기하지 않고 오를 수밖에.
그리하여 나팔꽃 줄기가 다다른 곳은 허공이다. '허공을 감아쥐고', '포기하고 되돌아올 때도 되었거니' 이런 문장이 의미있게 읽히는데 놓쳐선 안되리라.
그리고 가는 줄기에 두세 개의 종(鐘)을 매어달고는 아침 하늘에 은은한 종소리를 퍼내고 있는데 중요한 대목은 '이젠 더 꼬일 것이 없다고 생각되었을 때
우리의 아픔도 더 한 번 길게 꼬여서
푸른 종소리는 나는 법일까'인데 이게 핵심으로 읽힌다.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대목이다.
무슨 말인가. 어렵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결국 허공일지라도 자신의 종을 매달아 나팔소리를 퍼내고 있다는 것!
결국 성취감을 말하는 것이리라. 나팔꽂의 삶만 그러하겠는가. 인간의 삶도 그러하거니와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은근과 끈기로 참아내며 목적달성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최선을 다하는 것을 나팔꽃에서 배울 일이다. 이런 관점을 시인은 놓치지 않고 시로 형상화한 것이다.
알고보면 나팔꽃을 말하려고 쓴 시가 아니라 인간의 삶의 지혜를 읊은 시라는데 주목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러고 보면 산문투의 문장이 풀어지지 않고 긴장력 있는 시문장이 됨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시를 오래 열심히 하다 보면 어렵지 않은 문장으로 좋은 시를 쓸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해설: 서지월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