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고려 균여의 화엄사상
균여(均如, 923~973)는 나말 이래의 사상적으로 분열된
화엄교단의 내부적 과제와 교 선간의 갈등을 분명히
인식하고 그러한 과제에 대응하는 사상체계를 정립하였다.
균여는
화엄의 초기 종장들인 지엄과 의상 법장의 주요
전적에 대해 10종 65권에 이르는 방대한 저술을 이루어
신라 화엄에 대한 주석서인
『법계도원통기(法界圖圓通記)』와
『십구장원통기(十句章圓通記)』, 그리고
중국화엄의 대성자인 법장의 저술에대한 주석서들인
『교분기원통초(敎分記圓通鈔)』
『지귀장원통초(旨歸章圓通鈔)』
『삼보장원통기(三寶章圓通記)』등을남겼다.
균여는
이들 저술에서 지엄과 의상 법장의 견해를
인용하며 자신의 입론 기초로 삼았다.
균여의 화엄사상은 신라 화엄의 전통을
의상의 화엄사상에서 확인하면서
그에 부가하여 중국 법장의 화엄사상을
아우르는것이었다.
균여는 전체적인 내용 체계에서 법장의 해석을 따라
풀이하는 경우가 많지만 구체적인 해석에 들어가면
법장의 해석과 아울러 다른 견해를 함께 제시하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견해를 개진하였다.
이는 신라 화엄의 저술에 대한 태도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나는 것으로 균여는 이와 같은
독자적 사상 정립을 바탕으로 고려 초기 사회에서
화엄의 위상 확립을 의도하였다
.
균여는
화엄사상의 정리에만 관심을 두지 않고
향가 보현십원가(普賢十願歌) 11수를 지어
『화엄경』보현행원(普賢行願)의 실천을 대중에게 전파
하고자 하였다. 의상 이래 신라 화엄의 전통이 교학
연마보다 실천행을 중시한 결과로 신라말의 교학
재정비가 필요하게 되었고 이는 균여에 의해 실현되었다.
균여는 동시에 실천행에 대한 관심을 보현행의 추구로
나타내보였다. 이처럼 균여의 화엄사상은 초기 화엄교학의
기본 성격인 성상융회(性相融會)에 중심을 둔 것으로
이론면에서 약점을 보였던 신라 화엄학의 한계를
보완하면서 그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것이었다.
균여 화엄사상의 특징은 교판론에서 드러나는데
균여는『화엄경』만 이가장 높은 가르침인 원교(圓敎)이고
나머지는 그보다 낮은 하사교(下四敎)에 해당한다는
독자적인 별교일승절대론(別敎一乘絶對論)과 함께
『화엄경』이 점교에 해당하는 다른 경전과 구분되는
우월성을 갖는 것을 다시금 강조하는
돈원일승론(頓圓一乘論)을 전개하였다.
이와 같은 교판론을 해 균여는『화엄경』과 화엄사상의
정당성과 우월성을 강조하면서 화엄사상에 모든 법이
포섭될 수 있음을 주장함으로써 신라 하대 이후 크게
위축된 화엄종의 위상 강화를 의도하였다.
아울러 균여는 화엄사상의 핵심을 십현과 육상으로
설명하고 이를 체득하는 수행으로 자신의 몸을 분석함으
로써 이해할 수 있다는 관법을 강조하였다
균여가 돈원일승론(頓圓一乘論)을 강조한 것은
원교와 하사교라는 이분법에 기초하면서 동시에
근기론적동교론(同敎論)을 전개함으로써 모든 근기를
화엄의 세계로 진입시키려는 의식의 소산이었다.
균여의 이러한 의식은 법장과 징관 등 중국의 조직화 된
화엄이론을 활용하여『도신장』과 같은 의상계 신라 화엄의
구제 지향적인 사상 전통을 계승한 데서 성립된 것이었다.
도신과 징관의 영향을 받아 도입한『법화경』의 인식으로
균여는 의상계 근기론과 구별되는 논리를 마련할 수 있었다.
중하근의 중생까지 포함하는 다수의 종교를 구축하려한
균여의 화엄학은 향가를 지어 중생을 제도하였던
행동과도 통하는 것이었다.
海印三昧論 해인삼매론
明皛 명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