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파상풍균의 순수 분리에 성공한 키타사토 사부로우
1885년 근대화를 서두른 메이지 정부로부터 베를린대학으로 파견되어 고흐의 사사를 받아 병원균 연구에 종사하였던 사람이 쿠마모토 출신의 기타사토 사부로우(北里柴三郞)이다.
미생물은 개성이 풍부하여, 용이하게 배양 가능한 세균도 있다면, 현재도 분리나 배양도 불가능한 것이 다수 있다. 기타사토가 파견된 즈음에는 병원균 탐색이 일순하고, 보통 수단으로는 뜻대로 다룰 수 없는 병원균만 남아 있었다. 기타사토가 연구한 파상풍의 병원균은 한천 배지 상에 콜로니를 만들 수 없는 어려운 것이었다. 어느 날 한천배지의 뒤쪽에 균이 생기는 것을 본 기타사토는 파상풍균이 산소에 약한 가능성을 알아 차렸다. 그래서 배지에 산소를 접촉시키지 않는 배양장치를 독자적으로 연구하여 결국 파상풍의 순수 분리에 성공하였다. 파상풍균은 기타사토가 추정한대로 산소에 접촉하면 사멸하는 편성 혐기성 세균이었던 것이다. 기타사토에 의해 개발된 혐기성 미생물 배양법은 그 후에도 많은 혐기성 미생물의 분리에 위력을 발휘하게 되었다.
또한 파상풍 치료법의 확립을 목표로 한 기타사토는 파상풍으로부터 회복한 동물은 혈액 중에 파상풍균을 죽이는 항독소(항체)를 갖고 있다는 것을 보고, 혈청 요법이라고 하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요법을 고안해 냈다. 면역 요법에 관한 공적에 의해 1901년의 제1회 노벨상 의학생리학상의 후보에 올랐다.
1892년에 귀국한 키타사토는 후쿠자와 유키치(福沢論吉)의 원조에 의해 전염병 연구소를 설립하여 초대 소장이 되고, 전염병의 예방과 세균의 연구에 힘썼다. 1894년에는 페스트가 만연하는 홍콩에 파견되어 매우 위험한 페스트균의 발견에 성공하였다.
화내고 무서운 기타사토는 “돈넬 선생(천둥 아버지)”라고 이름이 지어지고 두려움의 대상으로서 열심히 많은 후진을 육성하고 일본 세균학의 아버지라고 칭해졌다. 후쿠자와 유키치의 사후는 케이오(慶應) 대학 의학부를 창설하고, 초대 의학부장을 맡아 다수의 의학생을 육성하였다.
요점 BOX 파상풍의 치료법을 확립 편성 혐기성균의 배양법을 고안 일본 세균학의 아버지라고 칭함. |
돈넬: 독일어로 천둥, donnern
카미나리 오야지: 걸핏하면 버럭 야단을 치는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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