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바람벽이 있어 - 백석 시인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이 흰 바람벽에
희미한 십오 촉 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던지고
때글은 다 낡은 무명샷쯔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어인 일인가
이 흰 바람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이렇게 시퍼러둥둥하니 추운 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을 담그고 무이며 배추를 씻고 있다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느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지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조 앉아 대구국을 끓여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그런데 또 이즈막하야 어늬 사이엔가
이 흰 바람벽엔
내 쓸쓸한 얼골을 쳐다보며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어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찬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하는 듯이 나를 울력하는 듯이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
-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쓰 쨈'과 도연명과 '라이넬 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
백석(본명 백기행)은 1912년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났다.
1935년 8월 《조선일보》에 시「정주성」을 발표하면서 시인으로 등단했으며, 1936년에 첫 시집 『사슴』(선광인쇄주식회사)을 출간했다. 1936년에는 신문사와 잡지사를 그만두고 함흥 영생고보에서 영어 교사 생활을 시작했으나, 1939년에 직장을 그만두고 잠시 서울에 머물다 만주 신경으로 떠났다. 그때부터 광복이 될 때까지 만주국 국무원 경제국과 만주의 안동 세관 등에서 근무했으며, 소설을 번역하기도 했다. 해방 후 고향인 정주로 돌아갔다.
백석의 초기 시에는 여행시, 기행시가 많은데 이것은 여러 곳을 떠돌면서 생활했던 방랑 때문이었다. 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전체적인 시 세계는 고향 정주에서 경험한 유년에 대한 향수와 북방 의식에 기초한 민족적 정서를 환기하는 두 방향으로 요약할 수 있다. 시 「흰 바람벽이 있어」는 1941년 잡지 《문장》에 발표한 작품이다. 1941년에 발표된 백석의 이 시는 고향을 떠난 인물의 내면을 통해 부정적 현실을 이겨내려는 내적 의지를 표현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