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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21:15
저희가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조반 먹은 후에-아리스타오
709 ajristavw
712에서 유래;‘정찬을 들다’,식사하다 <요 21:12>동. to break fast;
712 a[riston
730과 동일어에서 파생한 최상급의 중성형인 듯함;‘성찬’【‘혹은 조반’;아마 eri<에리>(‘이른’)에서 유래】,즉‘정찬’<마
22:4>중명. a meal;
정식/처음 것, 율법. 진리를 알아 들을 수 있는 기초가 된다.
이것을 먹고 소화시켜 진리를 깨달은 후에.
시몬이 잘 들으면 베드로가 된다.
잘 듣게 한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다.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아가폐)
이 사람들은 없다-후토스/투톤은 어떤 상황을 지칭한다.
처음 것 그 먹은 그것보다 보이는 이 세상보다
보이지 않는 천국을 사랑하느냐?
육체의 예수보다 그리스도를 더 사랑하느냐?
육체보다도 영을 더 사랑하느냐?
인생보다 영생을 더 사랑하느냐?
보이는 세계(첫 것)를 보이지 않는 진리(둘째 것)인식을 할 줄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만 있는 사랑 아가폐로 질문을 했다,
이 사랑은 우리에게는 없다.
★주여 그러하외다-나이
3483 naiv nai {nahee}
강한 확인의 기본 불변사;‘예’,꼭 그래로, 분명히, 진리, 바로, 참으로 <마 5:37;계 1:7>yes;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필레오로 대답
필레오는 형제사랑이다. 왜 이렇게 했는가?
베드로는 사실 아가폐를 알았다.
앞에 아가폐롤 질문했을 떄 그렇다고 옳다라고 답변했다.
주님은 아가폐 사랑을 하는데 아가폐라고 말을 못하는 것이다.
아가폐는 하나님께만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도 아가폐를 가지고 있습니다. 가지고 있지만
형제사랑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리스도를 형제로 받아들였다는 의미이다.
제대로 답변을 잘한 것이다.
하나님의 아가폐 사랑이 우리를 덮으면 나도 아가폐 사랑을 가지게 된다.
그러면 그리스도를 형제로 받아들이는 현상이 생긴다.
그래서 필레오로 표현될 수밖에 없다.
사실 알고 보면 아가폐나 필레오나 같은 것이다.
★내 어린 양을-알니온
721 ajrnivon arnion {ar-nee'-on}
704의 지소형;‘어린 양’ <계 5:6>중명. lamb;
704 ajrhvn aren {ar-ane'}
아마 730과 동일;‘양’(수컷), 어린양 <눅 10:3>남명. a male lamb;
★먹이라-보스코
1006 bovskw bosko {bos'-ko}
기본동사의 연장형 【977,1016과 비교】;‘방목하다’,연루된 의미로 ‘사료를 주다’,(재귀형)‘풀을 뜯어 먹다’,먹이를 먹이
다, 돌보다 <요 21:15>동. to feed;
너 나를 영과 진리로 받아들였구나 !
율법, 육신의 차원, 사람의 교훈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진리차원으로(생명으로) 받아들였구나 !
그러면 너도 양을 먹일 수 있지 !
요 21:16
또 두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양을 치라 하시고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아가폐
★내 양을 치라-포이마이노
4165 poimaivnw
4166에서 유래; 목자로서‘돌보다’(혹은 상징적으로‘감독자로서’),(양을)치다, 통치하다<요21:16>동. to tend, to
shepherd, nourish;
4166 poimhvn poimen {poy-mane'}
불확실한 유사어에서 유래;‘목자’(문자적으로 혹은 상징적으로), 목사 <요 10:2>남명. shepherd;
목양한다. 돌본다.
구약의 목축업이다.
목축은 겉과 속을 교환하는 것이다.
겉의 것/육을 죽이고 안의 것/영을 살리는 일이다.
창 46:33
바로가 당신들을 불러서 너희의 업이 무엇이냐 묻거든
창 46:34
당신들은 고하기를 주의 종들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목축하는 자이온데 우리와 우리 선조가 다 그러하니이다 하소서 애굽 사람은 다 목축을 가증히 여기나니 당신들이 고센 땅에 거하게 되리이다
★목축-미크네
4735 hn<q]mi miqneh {mik-neh'}
7069에서 유래;‘사들인’어떤 것, 즉‘재산’,그러나 단지‘가축’ 추상적으로 ‘취득’:-가축,떼, 무리, 소유, 구입, 물질
7069 hn:q; qanah {kaw-naw'}
기본어근;‘바로 세우다’, 즉 ‘조성하다’;연루된 의미로 ‘획득하다’,특히 구매함으로써(사역동사로 ‘팔다’);함축적으로
‘소유하다’:-얻다, 사다(구매자),가축을 돌보도록 가르치다, 시기심을 유발하다, 소유하다(소유자), 구매하다, 되찾다,
×확실히, ×대단히
★업이 무엇이냐 묻거든-
예수가 우리에게 오셔서 먼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가르쳐 주시면 우리가 실체가 됐는지를 하나님이
점검을 하시겠다는 것이다.
너희 정체가(직업이) 무엇이냐? 바로가 아마르로 묻는다.
일이/마하세-이 세상에서 하는일.
네가 인생의 의미를 아느냐?
진리를 모르면 대답을 못한다.
주님이 하시는 일을 보면 답이 나온다.
주님이 하신 일이 진짜 직업/일이다.
주님이 하시는 일을 너도 하고 있느냐는 질문이다.
매매해서 얻은 재산.
육신을 팔아서 영과 진리를 얻는 것.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목적이 무엇이냐?
이 세상에서 하는 진짜 일이 무엇이냐?
어떻게 하는 것이 신앙생활인지 아느냐?
겉의 것으로는 훌륭한데 네가 지금 잘 가고 있느냐?
네 안의 것이 세워졌는지 아느냐?
목축은 겉의 것을 무너뜨리고 안의 것을 받는 교환이다.
이것이 되었느냐는 질문이다.
우리가 하는 일도 주님의 일과 일치가 되어야 한다.
요 5:17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요 4: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요 17: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요 17:2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요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요 17:4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요 17:5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겉 성전이 깨어지고 안의 것이 나타나면 아버지 영광이 나타난 것이다.
육신으로 죽고 그리스도로 살아나는 일이 완성되면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다.
보이는 것/첫째 것을 폐하고 보이지 않는 둘째 것으로
세우는 것이 영생이다.
영생을 주는 것과 영광을 나타내는 것은 같다.
보이는 세상/율법, 첫 번째 것은 씨인데
알곡을 얻기 위해서 썩어야 된다.
썩어야 싹이 나고 열매(천국)를 맺는다.
이것만 창고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요 6:27
썩은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
요 6:28
저희가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요 6:29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육은 표적이다.
육을 다 가르치면 무익하므로 지워버린다.
일은 썩는 양식을 위하여 하는 일과 영생하도록 하는 양식을 위한 일이 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양치는 것이고 목축업이다.
진리의 하나님 쪽에서 보낸 그분을 믿는 것이다.
보이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면, 혈통/예수이지만,
보이지 않는 진리의 하나님으로부터 오면 그리스도이다.
주님이 가진 직업은 영생을 주는 것이다.
육을 죽이고 영을 살리는 일이다.
우리는 먼저 영생을 얻는 것이 일이다.
그리고 그 다음에 양을 먹일 수 있다. 이것이 순서이다.
★목축하는 자들: 에노쉬 하야 미크네
이쉬의 반대개념이 에노쉬이다.
씨가진 남자가 되기 전의 에노쉬.
에노쉬는 죽어야할 사람이다.
내가 목축을 했더니 살아났습니다.
에노쉬를 팔아서 살아났다.
목축을 해야 살아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목축을 합니다.
요 10:14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요 10:15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요 10:16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저희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요 10:17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선한목자는 예수그리스도를 의미.
하나님은 우리를 목자 만드는데 목적이 있으시다,
주님을 따르는 백성들이 양이다.
우리가 목자이면서 양이기도 하다.
양들을 위해 모숨을 버린다는 것은 겉의 것은 다 버린 상태라는 것이다.
육신의 기준, 나의 의로움, 내 기준이 버려진 상태여야
목자인 것이고 그래야 양을 칠 수가 있다.
겉의 것, 육의 것이 버려지지 않으면 양을 칠 수가 없다.
그래서 상징적으로 40년이 걸린다고 한 것이다.
선한목자는 보이는 것을 통해서 가르친다.
다 가르치고 나면 상대방이 알아 듣는다.
그러면 내가 죽은 것이다. 겉의 것이 죽은 것이다.
막 10:45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많은 사람은 숫자가 아니라 큰 자/장자를 말한다.
예수님은 장자로서 육신이 대속물로 죽어 주신 것이다.
요셉이 바로에게 그렇게 소개를 하면 바로가 불러서
확인을 하게 된다.
이것이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요 21:17
세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
세 번 질문은 삼일 길을 말한다.
세 번으로 완성하겠다.
휘장이 찢어져 성소와 지성소가 하나가 되면
세상과 영생이 따로가 아니다.
세 번째 질문은 필레오로 질문하신다.
왜?
네가 나를 형제로 받아들였지!
나도 너를 한 형제로 받아들일께 !
나도 너를 필레오로 한 형제로 사랑할 께 !
나도 한 영으로 해줄게 ! 하나로 !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3076 lupevw lupeo {loo-peh'-o}
3077에서 유래;‘고통하다’,재귀적 혹은 수동태 ‘슬퍼하다’,슬프게하다, 근심하다, 슬프다, 서운하게하다<마19:22;엡
4:30>동. to distress, grieve;
3077 luvph lupe {loo'-pay}
기본어인듯;‘슬픔’, 한숨, 한숨쉬는, 싫은것을 억지로, 근심, 서러움 <요 16:6;히 12:11>여명. sadness;
주님의 이 태도에 베드로가 왜 근심했는가?
하나님 자신이 나를 형제로 받아들여 나와 하나가 된다는 것,
한 영이라는 것은 놀랄 일이다.
그 무게를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라는 무게감이 짓누르는 것이다.
이 근심 속에는 기쁨이 있는 것이다.
고후 2:2
내가 너희를 근심하게 하면 나의 근심하게 한 자밖에 나를 기쁘게 하는 자가 누구냐
고후 2:3
내가 이같이 쓴 것은 내가 갈 때에 마땅히 나를 기쁘게 할 자로부터 도리어 근심을 얻을까 염려함이요 또 너희 무리를 대하여 나의 기쁨이 너희 무리의 기쁨인 줄 확신함이로라
고린도가 복음을 받았는데 바울이 근심하게 되었다.
그렇게 근심하게 한 자가 나를 기쁘게 한다는 것이다.
근심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과 같다.
베드로의 근심은 주님과 나의 관계가 하나이구나 !
내가 양을 쳐야 맞네! 라는 무게감이다.
주님이 하신 것처럼 나도 양을 치다가 죽어야 되네 !를 안 것이다.
이 근심하게 된 자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자라는 것이다.
고전 16:22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지어다 주께서 임하시느니라
★사랑하지-필레오
그리스도를 나의 형제로 받아들이지 못하면 저주.
저주를 주려면 주님이 오셔야 한다.
★주께서 임하시느니라-아람어/마라나타
3134 mara;n ajqav ajqav ajqav maran atha {mar'-an ath'-ah}
아람어에서 유래(우리 주님이 오셨다는 의미);‘마라나타’,즉 도래한 신의 심판의 선포 <고전16:22>Our Lord comes;
아람어를 쓰면 겉의 것을 의미한다.
저주를 받는 것을(깨지는 것) 표현해 주고 싶은 것이다.
엘리엘리 라마사박다니.
계22:20절 아멘 주예수여 오시옵소서 보다 여기가 더 먼저이다.
주님 오시옵소서 !
그래야 내가 저주받고 그리스도를 내 형제로,
필레오 형제로 사랑을 할 수가 있다.
결국 저주를 받아야 되는 것이다.
저주(심판)은 좋은 것이다. 그래야 살아나니까.
첫댓글 성경의 모든 사건은 결국 나 자신에게 일어나야 할 일이다 ~^^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