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건없는 사랑
지난 2월 17일 한국의 경주 마우나 리조트에서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하던 부산외국어대학교 학생 9명이 사망하고, 50명 이상이 부상하는 대형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의 원인은 폭설로 인해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건물이 무너져 일어난 사고였다.
이 사고로 인해 숨진 9명의 학생 가운데 미얀마어과 학생회장, 양성호(25, 4학년) 학생은 17일 밤 건물 붕괴 사건 당시 체육관 천장이 무너지자마자 창문을 깨고 후배들과 함께 탈출했다. 그러나 체육관 천장이 완전히 무너지고 곳곳에서 비명이 터져나오자 양 씨는 다시 무너진 철골 틈을 통해 사고 현장으로 다시 돌아갔다. 그는 학생들에게 “뛰어, 조금만 버텨”라고 외치며 필사적으로 구출을 시도했다. 그러나 몇 분 뒤 철골이 다시 완전히 내려앉으면서 끝내 양씨는 잔해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청년 양성호의 죽음은 참으로 값진 죽음이었다. 그는 우리에게 조건 없는 사랑, 무조건적 사랑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었다. 양군이 구하러 들어간 자들은 그의 친, 부모도, 형제도, 친척도 아니었다. 그와는 피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자들이었다. 고귀한 생명을 돌보고 살리는 일에 그 어떤 조건도 그에게는 존재하지 않았다.
사랑에는 국경이 없다고들 한다. 그러나 우리는 사랑도 넘볼 수 없는 경계선을 자신이 만들어 낼 때가 있다. 상대의 나이, 학력, 경제력, 출신지, 이념, 습관 등 외적 조건들로 사랑의 경계선을 만들어 놓고, 조건적 사랑에 빠져 살 때가 많다.
얼마 전 유튜브 동영상 하나가 화제가 되었다. 한국의 고등학교 학생이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엄마에게 뺨을 맞는 장면이 담긴 영상이었다. 그 학생이 엄마에게 뺨을 맞은 이유가 가히 충격적이었다. 자기 아들이 전교 1등이 아닌 2등을 했다는 이유였다.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조건 없는 사랑의 무풍지대였던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마저도 조건적 사랑으로 변질되어 버린 현실이 너무나도 가슴 아팠다.
솔직히 나 자신도 조건적 사랑에 2등 가라면 서러워할 정도의 사람임을 고백한다. 목사의 말에 순종 잘하는 성도, 성실하게 헌금을 잘하는 성도, 예배 출석 잘하는 성도와는 국경 없는 사랑을 나눈다. 그러나 목사의 눈에 차지 않는 자격 미달의 성도들에게는 말씀의 잣대로 국경을 만들어 놓고, 조건적 사랑을 나눌 때가 많았다.
한때 깊이 사랑의 교제를 나누었던 사람들 가운데 내가 쳐놓은 사랑의 조건에 맞지 않아 높은 담을 쌓고 사는 자들이 없는가? 참 행복이 무엇인가? 채소를 먹어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잠15:17), 그리고 마른 떡 한 조각이 있고도 화목한 것이 제육이 집에 가득한 것 보다 더 나으니라고(잠17:1) 하지 않았던가? 인기 가수 바비킴의 노랫말처럼 사랑할 수 있을 때 조건 없는 사랑을 나누자! 때 늦은 사랑은 후회의 상처만 남길 뿐이다.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만을 사랑하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는 사랑하느니라 (눅6: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