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오야!
박옥주
지난 가을 살랑이는 바람을 맞으며 충무로에 있는 극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올해로 제6회째인 ‘서울노인영화제’에서 상영한 작품을 관람하기 위해서였다. 바로 <어머니, 오야!>를 보기 위해서였는데, 셋째인 덕암 오빠가 감독 제작하여 우수상을 수상한 영화였다.
96세인 어머니를 셋째 오빠와 셋째 언니가 매주 일요일 승용차로 휴양림을 찾아 한 바퀴 휘이~ 돌면서 일상을 찍은 다큐였다.
하루 하루 쇠하여지는 어머니를 안타까워하는 자식의 시선, 그리고 노인이 되어 자식들의 전화를 기다리는 어머니의 시선을 여과 없이 잡은 영상이다. 보고 있자니 점점 가슴 한쪽이 먹먹해졌다.
노인정에서 화투 치고 놀던 친구를 하늘나라로 보낸 후 홀로 남게 된 엄마, 화장실에 갈 때도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않는 엄마, 몇 발짝 옮기지 못하고 앉고 싶어하는 엄마의 모습이 화면 가득히 클로즈업되었다.
화면 속의 엄마를 보면서 ‘내가 알고 있던 엄마가 아니야.’ 하면서 도리질해 보았다. 매번 ‘엄마, 나 힘들어요.’ 하면서 어머니에게 투정 부렸던 것이 함께 떠오르면서 가슴 한쪽이 울컥거리며 요동쳤다.
많은 문장 속에서 중요한 글귀를 밑줄 긋듯이, 기억해야 하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가슴 깊은 곳에 새겨 넣었다.
언젠가 우리 곁을 떠나실 거라 생각했지만, 화면으로 보는 어머니의 모습은 마치 첫걸음 떼는 아기가 아장거리며 넘어질까 염려하는 불안하고 떨리는 눈동자였다.
셋째 언니가 입버릇처럼 ‘엄마가 불쌍해’ 하던 말이 이제야 온몸으로 전해지는 순간이었다. 지금까지 노인들이 아니 우리 엄마가 유모차와 비슷한 수레를 끌고 다녀도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왜냐하면 10남매나 되는 형제들이 있어서 딱히 여덟째인 내가 효도하지 않아도 오빠와 언니들이 너무 잘했기 때문이었다.
그야말로 엄마에 대한 무거운 짐은 지지 않고 항상 먼산 바라보듯 하고 살았다.
‘엄마, 엄마 많이 미안하고 죄송해요.’
영화를 보는 내내 엄마를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은 내 자신이 부끄럽고 미웠다.
어김없이 영화 속에서도 언니 오빠가 “어머니” 하고 부르면 어머니는 항상 “오야” 라고 대답하셨다.
지금도 휴대폰을 열면 “어머니” 하고 부를 자식들에게 “오야”라고 대답하고 싶어한다는 내레이션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노인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다른 세대가 노인을 바라보는 시선을 한자리에 담아냈던 ‘서울노인영화제’가 어쩌면 우리의 내일을 일깨워주는 듯했다.
아프리카의 속담에 ‘노인 한 사람이 죽는 것은 도서관 하나가 불타는 것과 같다’고 했다. 긴 세월을 살아오면서 노인이 가진 삶의 경험과 지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말이다.
또한 하나님은 집집마다 천사를 보낼 수 없어 어머니를 보냈다는 말이 있다. 인생에서 가장 좋아하고 사랑하는 분은 어머니일 것이다. 하지만 툭 하면 어머니한테 속에도 없는 막말을 하여 얼마나 마음을 속상하고 아프게 했던가.
어머니는 자식들이 힘들고 지칠 때마다 그리움을 자아내게 하고, 또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게 하는 묘한 힘을 가진 존재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공한 오늘의 당신을 있게 한 존재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어머니”라고 대답하지 않는가.
오늘은 내 휴대폰에 저장된 마미라는 이름에게 전화를 해보았다. 여전히 엄마의 ‘오야’라는 대답이 들려 왔다. 만감이 교차했다. 벅찬 그 무엇이 부풀어 올랐다.
‘노인영화제’를 끝으로 얼마 후 어머니는 내 곁을 떠나셨다.
첫댓글 감동입니다! 다 읽기까지 무지개가 앞을 가려 힘들었네요. 8개월 전 여윈 제 어머님이 생각 나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