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란 무엇인가
1. 서울 중심 지역에 있는 <종묘>는 서울의 느낌을 새롭게 만들어주는 공간이다. 거대한 빌딩 숲 속에 고적하게 자리잡고 있는 ‘종묘’는 도시의 천박한 시끄러움을 잠재우는 치유의 모습으로 서있다. <종묘>는 서울이 조선의 도읍으로 정해지고 난 뒤 어떤 건물보다도 먼저 건립되었다. <종묘>는 왕과 그 조상들의 신주를 모신 장소이다. ‘신주“는 죽은 자의 혼백을 상징한다. 동아시아적 죽음에 대한 사유는 서구와는 다르다. ’사후세계‘에 대한 관념이 없으며 죽은 자는 언제나 살아있는 자와 끊임없는 관계를 유지하며 존재한다. 사람이 죽으면 육체는 땅에 매장되지만, 정신은 혼백으로 나뉘어져 ’혼‘은 하늘로 ’백‘은 땅으로 간다고 인식되었다. 신주는 죽은 자의 혼과 백을 다시 합치시키는 의미로 작용한다. 신주는 죽은 자의 정수가 집결되는 중요한 상징인 것이다.
2. 조선의 왕들을 모신 정전은 유교의 4대 봉사를 기준으로 배치되었다. 유교적 제사법은 보통 4대 봉사를 기준으로 하여 그것을 초과한 사람들은 다른 곳으로 이동하였다. 하지만 조상 중에서 중요한 인물들은 그것과 관계없이 계속 모셔진다. 일명 ‘불천위’가 되는 것이다. 현재 <정전>에 남아있는 임금들의 신주는 불천위로 모셔진 존재들이다. 불천위 대상이 많아지자 정전는 끊임없이 확장되어야 했다. 신들로 전환된 왕들의 공간은 그렇게 커져갔고 어떤 곳에서도 보기 어려운 신비한 모습을 만들어낸 것이다. 의도되지 않은 종묘 정전의 신비는 의도되지 않았기에 더욱 특별한 모습으로 남았는지 모른다. 정전에서 물러난 왕들의 신주는 옆 쪽 <영녕전>으로 옮겨졌다. 상대적으로 재위기간이 짧거나 중요성이 적었던 <정종>이나 <문종>과 같은 왕들이다.
3. <영녕전> 건물은 <정전>과 달리 미학적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지붕의 형태가 중간에 올라왔고 건물의 길이가 상대적으로 짧았기 때문에 정전과 같은 특별한 미적 대상이 되지 못한 것이다. 두 개의 건물을 보면 신성함과 아름다움은 때론 인간의 의지와는 별도의 힘에 의해 형성되고 있음을 발견한다. ‘영녕전’ 건물의 중간 부분이 높은 곳은 이 곳에 특별한 분들이 모셔졌음을 보여준다. 바로 조선의 태조 이성계의 4대 조상들의 신주공간인 것이다. <종묘>에는 조금 이질적인 건물도 발견되는 데, 바로 <공민왕신당>이다. 조선의 종묘에 고려왕의 신당이 설립된 것은 공민왕이 조선을 건국한 신흥유학자들의 존경을 받았기 때문이다. 조선건국의 주역들은 대부분 공민왕 때 <성균관>에 참여한 인물들이었다. 이들은 개혁적이었던 공민왕의 포부를 다른 방식으로 실현하면서 그에 대한 존경을 담아 <공민왕 신당>을 종묘에 건립한 것이다.
4. <종묘>의 건물 중 <공민왕 신당> 이외에 조금 특이한 것은 <칠사당>이다. 이 건물은 토속신앙에서 중시된 일곱 신을 모신 곳이다. 건물의 규모는 크지 않지만 유교적 사상과 토속적 전통의 접합되었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장소라 할 수 있다. <종묘>에는 최근 김건희와 관련된 시사적 장소가 있다. 선대왕들을 추모하는 장소인 <망묘루>이다. 그닥 미학적으로 아름다운 건물은 아니지만 얼마 전 김건희는 이곳에서 권력을 이용하여 ‘차담’을 나누는 장소로 이용했다. <망묘루 차담>은 국가유산에 대한 사적남용을 보여주는 사례였는데 특별한 아름다움이 없는 이곳에서 차담을 가졌다는 점에서 누군가는 ‘무속적 의미’를 제기하기도 하였다. <망묘루>가 선대왕을 추모하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김건희 또한 스스로 ‘왕’에 대한 욕망을 표출한 것은 아닌지 생각하는 것이다.
5. <종묘>는 가장 신성한 공간임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무시되고 공격받았다. 일제강점기 때 종묘는 궁궐과의 연결이 끊어졌고 주변 공간들은 훼손되었다. 이런 대우는 해방 이후에도 지속되었다. 대한민국의 국회의사당 신축지로 ‘종묘’를 꼽기도 한 것이다. ‘종묘’의 의미나 중요성을 안다면 절대 나올 수 없는 논의였다. 이러한 물의는 해방당시 기독교 세력의 지나친 과대화가 가져온 해프닝이었을지 모른다. 또한 종묘 주변은 소위 ‘종3’이라 불렸던 집창촌이었다. 가장 신성한 장소 주변이 한국의 대표적인 사창가였던 것이다. 오랜 시설 <종묘>의 가치는 무너녔고 역사적 의미는 무시되었다. 하지만 시간의 경과 속에서 <종묘>는 유네스코 유산으로 지정되었고, <종묘제례>에서 연주된 ‘제례악’ 또한 유네스코 무형유산에 등재되었다. 종묘 주변 공간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정비되어 공원으로 변모하였고 오래된 문화재를 발굴하고 궁궐과의 연결도 복원하여 새로운 모습으로 전환된 것이다.
6. <종묘>는 한국의 건축물 중에서 가장 외국인에게 주목받았고 칭송받았다. 종묘 정전에서 느끼는 정적과 고요 그 속에서 발견되는 거대한 신비와 힘은 특별한 매력으로 인식되었다. 이러한 외국인들의 평가가 <종묘>의 중요성을 확장시켰고 국가의 보호를 강화시켰다.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유산들은 어쩌면 외부의 시선에 의해 규정되었고 확대강화되었는지 모른다. 한국인들이 특별하게 여기지 않았던 것들이 갑자기 외부의 시선에 의해서 새로운 매력이 발견되었을 때, 그때서 일상적이었던 한국 문화에 열광하는 것이다. 최근 <국립박물관> 상품판매장이 오픈런 현상이 나고 문화상품들이 품절났다는 소식을 보면서 우리는 참으로 ‘인정’에 목마른 국민임을 확인한다. 스스로 발견하고 탐색하여 얻는 즐거움보다는 남들이 발견한 것에 동참하고 같이 열광하면서 서로서로 인정하는 즐거움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SNS에 올라온 맛집 방문을 하고 몇 시간이 되는 기다림을 기꺼이 감수하면서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행위가 문화적 열광과 확산을 가져오는 계기로 작용하지만 반면 거기에 비례하여 급속도로 식어버리는 것이다.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즐거움을 넘어, 자신만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질수록 문화적 다양성은 커지고 우리 스스로 발굴하는 문화적 가치는 중요한 의미를 지닐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 본다.
첫댓글 - "자신만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질수록 문화적 다양성은 커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