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봉 능선을 돌아 내려오다 4분의 3 정도에서 남쪽으로 비스듬히 소나무 숲길이 이어진다. 나이가 많지 않은 나무들이건만 재선충병 때문에 많이 잘려나갔다. 1980년대 이 오름에 올랐을 때는 소나무가 송이에서 천천히 자라서인지 하나같이 정원수처럼 보기 좋았는데, 그 시기를 넘기면서 몇 해 사이에 훌쩍 자라버리더니, 이제는 언제까지 소나무가 남아날지 걱정하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오름을 벗어나면서 차밭이 펼쳐진다. 그리 넓지는 않지만 감귤나무 대체작물로 심은 것이라 한다. 신산리 마을사람들끼리 조합을 형성해 수확하면서 가공사업을 통해 판매하기도 하고, 최근 개장한 마을카페에서 이를 이용해 녹차와 아이스크림 같은 제품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차밭이 끝나는 지점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돌면 비닐하우스 단지가 나타난다. 심은 작물은 키위인데, 어떤 곳은 수종을 갱신하기 위해선지 나무를 거의 다 베어버렸다.
# 수어못을 거쳐 삼달1리로
삼달리로 접어들어 밭 사이를 걷다보면 수어못에 이르는데, 1970년대까지는 식수로 사용했을 정도로 물이 많고 깨끗했다 한다. 그러던 것이 마을에 수도가 들어와 사용하지 않으면서 쓰레기가 쌓이고 수질도 나빠져 보기 싫은 웅덩이로 변했다. 서귀포시는 2014년에 사업비 1억여 원을 들여 905㎡의 못에 돌을 쌓고, 방수시설과 조경을 해 휴식 공간을 제공하고 생태학습장으로 활용할 수 있게 했다.
삼달리(三達里)의 옛 이름은 ‘와강(臥江)’인데, 보통 ‘와겡이’로 불렸다. 그게 삼달리로 바뀐 데는 이곳 출신 강성익(康聖翊) 공의 활약이 있었다 한다. 강성익은 1783년(조선 정조7) 증광시에 급제해 승문원 검교로 시작, 병조정랑, 이조정랑, 사간원 정언 및 사천현감, 비안현감 등을 지낸 분이다. 사헌부 지평 시절 강성익은 정조에게 제주의 민폐에 대한 상소문을 올렸는데, 그 내용은 흉년에 대비한 곡물 보관과 저장법의 철저한 관리, 국둔마 상납의 감면과 마정관리에 대한 내용이었다. 정조는 이를 받아들임과 동시에 그를 사헌부 장령으로 임명해, 그 일을 직접 처리하게 함으로써 도민의 칭송을 받았다. 그런데 그때 ‘와강’이라는 마을 이름이 좋지 않다고, ‘삼달’로 바꾸게 했다고 한다. 이런 내용은 헌수단(獻壽壇)에 새겼는데, 그것은 그가 임금님의 만수무강을 기원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단이다.
# 널리 알려진 김영갑갤러리 ‘두모악’
두모악은 충남 부여 출신 김영갑씨가 제주의 자연에 매료돼 제주에 살면서 제주사람들이 잘 느끼지 못했던 중산간과 섬의 풍광을 찾아 필름에 담으며 지내다가, 루게릭병으로 인해 거동조차 불편했던 몸으로 폐교된 옛 삼달초등학교를 직접 다듬고 손질해서 만든 곳이다. 2005년에 비록 짧은 생을 마감했지만 그의 열정과 제주도 중산간의 고요와 평화를 담은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명승지만 쫓아다니며 섬의 겉모습만 보던 사람들이 느끼려 하지 않았던, 제주섬의 아름다운 속살이 그의 작품 속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오름, 초원, 바다, 안개, 바람, 하늘, 그리고 왠지 모를 쓸쓸함까지 제주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사진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 김 작가에 관한 추억
필자가 고인과 조금 알고 지낸 것은 아주 짧은 기간이었다. 그의 명성을 잘 알고 있었기에 주변에 올 때는 꼭 들러 작품을 돌아보곤 했는데, 당시 제주에선 잘 볼 수 없었던 금잔옥대 수선화와 구절초를 화단에 심어 놓아 그걸 보는 것도 큰 즐거움이었다. 그때는 이미 출사를 잘 못하던 시기여서 와보면 입구에 의자를 놓고 앉아서 생각에 잠겨 있다가 가끔씩 방문하는 손님을 반가이 맞아줬다. 그러던 2005년 5월에 그의 부음을 들었고, 31일 교정에서 가진 영결식에서 이생진 시인이 추모시, 그의 친구였던 가수 이동원이 추모가, 거기에 분에 넘치게 필자가 끼어 추도사를 했다.
‘…어쩜 당신이 제주땅과 인연을 맺은 것은 전생의 업보(業報)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당신으로 하여 많은 사람들은 제주섬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폭포와 바다, 섬과 한라산만을 제주의 참모습인 양 착각하던 눈 뜬 장님들에게 중산간 초원의 아름다움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사람의 영혼을 맑고 투명하게 하는 고요, 평화, 적막함 같은 것이 진정 보배로운 것임을…. 임이시여! 당신의 예술에 대한 열정을 부러워합니다. 가족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여 하고 싶은 작품 활동을 자꾸 뒤로 미루는 저희들의 변명이 부끄럽습니다. 모든 걸 젖혀두고 하고 싶은 일에 목숨을 걸 수 있었던 당신의 예술을 향한 자유에의 의지와 용기에 찬사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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