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인형뽑기를 썩 잘하는 편이다. 가끔씩 가는 인형뽑기방에서 지갑에 있는 2~3천원 정도로 쓰는 돈을 제한해 두고 뽑으면 두 세 번 갈때마다 하나정도는 뽑아서 가져온다. 인형뽑기의 달인정도로 잘 뽑는건 아니고, 조금의 요령이 있는 것 뿐이다. 그 요령이라는게 다른게 아니라 어떤 인형이 뽑힐만한 위치에 있는지 보는 것 뿐이다. 좋은 위치에 있는 인형이라면 2~3천원에 뽑히는 편이고 그정도 써서 안 뽑히는 인형이라면 미련없이 포기하고 돌아가버린다. 그렇다고 내가 인형을 무진장 좋아해서 집 한켠에 인형 보관함을 마련해 두고 가지런히 모아놓고 그러지는 않는다. 차 안이 허전해 하나 놔 둔 것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인형을 지인에게 그냥 줘 버린다. 아니라면 갓 돌이 지난 조카에게 선물하던가.
그래도 가지고 싶은 인형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그렇다면 인형뽑기방에 들를 이유가 없지 않은가. 개인적으로 가지고 싶은 인형은 포켓몬스터의 나옹이 인형이다. 로켓단 소속에 유일하게 말을 하는 노란 고양이 포켓몬 말이다. 초등학교 시절 좋아하던 포켓몬 만화에서 가장 좋아하던 포켓몬이었다. 그런데 성격상 가지고 싶은 물건이 있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가져야 직성이 풀리는 그런 성격은 아니라서 항상 뽑기방에 들르면 뽑힐만한 위치에 나옹이 인형이 있는지부터 살피고 그게 아니라면 뽑힐만한 적당한 인형 하나 시도해보고 오는 정도만 한다. 인터넷에서 그냥 사볼까도 싶었는데 그러면 또 재미가 없지 않은가
아이폰을 7년째 쓰고 있어서 옛날 사진들도 죄다 지금 폰에 백업되어있는데 그 중 가장 오래된 사진 하나가 그 나옹이랑 닮은 고양이 사진이다. 아버지 공장이 시골에 있어 암수 고양이 커플을 키웠는데 그 중 한 마리었다. 사람이 오면 데면데면 주위에서 맴도는 암컷과 달리 이 수컷 고양이는 사람을 좋아하고 애교가 많아 가끔씩 내가 들러도 항상 애교를 부리며 나를 반겨주었다. 내가 2층으로 올라가면 조금있다 나를 따라 올라와 문밖에서 문열어달라며 울어대는 이 녀석이 귀여워 나는 털 묻는 것도 신경쓰지 않고 한참을 안아주고 쓰담아주다 가곤 했다. 밖에 풀어놓고 기르는 녀석이라 밤에는 산이고 논이고 뛰어다니며 놀다가 배가 고프면 공장으로 와서는 사료를 먹고가고, 사료가 없을라치면 옆에서 줄때까지 한참을 울며 보채는 녀석이 이뻐 항상 사료는 내가 담당하며 챙겨주곤 했었다.
암컷이랑 새끼도 낳고 잘 살던 그 고양이는 2년 만에 어디론가 사라져 다시 볼 수가 없었다. 사람이 좋아서 또 누군가를 따라가버렸는지, 아니면 지나가던 차에 치여 죽었는지는 몰라도 지금은 암컷 고양이와 그 고양이의 자식의 자식의 자식들만 남아 공장을 지키고 있다. 여전히 고양이 사료는 내가 챙기곤 있지만 지금 있는 고양이들은 사람 손을 타지 않아 날 보면 도망가기 일쑤고 사료 줄때만 눈치보고 와서 먹고 가버린다. 오래 산 암컷도 성격이 그런건지 날 보고 아는체는 하지만 좋다고 다가오지는 않는 눈치다.
사실 2년이나 키운 그 고양이는 이름도 없었다. 6년째 살고 있는 암컷 고양이도 마찬가지로 이름이 없다. 이름을 준다는 건 마음을 주는 것이라, 줄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난 이름 같은건 짓지도 않고 그냥 야옹이라고 불렀다. 얘도 야옹이 쟤도 야옹이 왜냐하면 다 야옹거리니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내가 겁쟁이인 것일지도 모르겠다. 잃었을 때의 슬픔이 두려워 애초에 정을 적게 주니 매사가 그렇게 뜨뜻미지근해 버린 것이다. 인형도 뽑히면 그만 아님 말고, 냐옹이 인형 가지고 싶긴 하지만 아님 뽑힐만한 적당한 인형 하나 뽑고가면 되지. 인간관계도 사람들이 좋아해줄 정도만, 깊은 관계는 나중에 더 큰 상처가 될지 모르니 피해가며 살았다.
그 고양이가 있었던 그해 어느 가을날이었다. 추수가 끝난 논에 그 수컷 야옹이가 폴짝폴짝 뛰어다니던 적이 있었다. 뭘 하나 싶어 유심히 봤더니 새를 쫒고 있었다. 쟤도 심심한가 보다 하며 사무실로 가 볼일을 보고 내려와 보니 무슨 재주를 부렸는지 비둘기 한 마리를 입에 물고 자랑스레 나에게로 왔다. 몇시간이나 기다리며 쫒아가며 잡아온 비둘기를 나에게 내밀고 물끄러미 날 처다보던 그 이름없는 야옹이는 나에게 무슨 말이 하고 싶었던 것일까? 오늘도 나옹이 인형만 바라보다 옆에있던 잠만보만 뽑아온 난 문득 몇 년 전 그 고양이가 괜히 보고 싶다.
첫댓글 오~ 빨리 올리셨네요! 글 좋아요 몇 주 전에 제가 개에 대한 글 썼었는데 느낌이 비슷해서 놀랐어용~ 담에 보여드릴게용~
있었던 일을 덤덤하게 이야기하지만 자연스럽게 흘러가서 편하게 읽었습니다^^ 하지만 수컷고양이를 생각하는 마음은 덤덤하지만은 않네요~ 좋은글 입니다ㅎ
잘 읽고가요!!! 저랑 주제가 똑같네요~~ㅎㅎㅎㅎㅎㅎㅎ 내용까지도..ㅎㅎㅎㅎ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