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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일 (2018. 02. 12. 월) 가고시마 – 기리시마 - 미야자키
오늘은 월요일이지만 헌법기념일 대체 공휴일인 관계로 휴일이다. 일어나 가져간 컵라면으로 간단히 아침을 때우고 지긋지긋한 게스트하우스를 떠나 가고시마 역으로 가는 전차를 탔는데 도착해 9시 04분 기리시마 행 기차를 탈 수 있는 시간이 침이라도 발라야 할 듯이 아주 빠듯하다. 그러다가 전차가 신호에 걸려 아예 포기하고 다음 기차 시간까지 약 2시간을 어떻게 보내나 하여 근처 카페 같은 걸 찾았다. 그래도 역에 들어가 보자 싶어 들어갔더니 기차가 약 8분이나 지났는데도 웬일인지 출발하지 않고 서 있다. 아마 단선이라 대피하는 중이었던 모양인데 정말 우리로서는 2시간을 번 셈이었다.
< 기리시마 신궁 역에 내리니 눈발이 거세게 날린다. >
기리시마 신궁에 가기 위해 왔는데 눈이 계속 내리고 있다. 캐리어가 짐스러워 일단 코인 라커룸 2개에 가방 3개를 넣으니 1,000엔이다. 눈이 내려 움직이기 불편해 신궁까지 택시로 가기로 했는데 역무원에게 물으니 편도 2,000엔이란다. 그래서 황선생이 이것저것을 자꾸 물으니 역무원이 네가 전화해 물어보면 되지 왜 바쁜 나에게 자꾸 묻느냐고 짜증을 낸다. 아마 황선생을 일본인으로 알았던 모양이다. 지식은 가끔 오해를 낳기도 하는구나. 그래서 근처 온천에 가기로 하고 마침 도착한 버스 기사에게 온천 가느냐고 물으니 자기 차는 가지 않는다면서 친절하게 아예 버스에서 내려 택시기사에게 가더니 대신 물어준다. 택시기사 왈 오늘은 휴일이라 하지 않는다네. 휴일은 온천이 노는 날인가? 이리저리 되는 일이 없어 아예 포기하기로 했다. 괜히 가방을 맡겨 1,000엔 날렸다.
10시 49분 특급기차를 타고 미야자키 역에 도착했다. 여기서는 이틀을 머무니 마음이 좀 여유롭다. 관광 안내소에 들러 안내서를 챙긴 후 걸어서 호텔로 가기로 했다. 지도상으로는 별로 멀게 보이지 않았지만, 꽤 먼 거리라 가면서 아예 점심을 먹고 가기로 하고 인터넷에서 유명 맛집을 찾으니 치킨 난반(南蠻)을 잘하는 오구라 본점이 마침 근처에 있었다. 난반(南蛮; なんばん)이란 남만(南蠻)의 일본식 읽기로, '남쪽 오랑캐'를 의미하는데, 무로마치 시대에 네덜란드인, 포르투갈인, 에스파냐인 등의 서양인들이 동남아시아를 거쳐 일본 남쪽에서부터 들어왔기에 생긴 말이다. 그래서 난반 요리란 이들 서양인의 요리와 접목된 일본 요리를 뜻한다. 난반 요리 중에는 튀김을 파, 고추 등과 섞은 식초에 절여 먹는 난반 즈케(절임)이라는 것이 있는데, 치킨 난반의 이름은 여기서 따온 것이다. (나무위키 인용)
이 치킨 난반의 탄생 경위는 다음과 같다. 1956년에 식당 오구라는 돈가스와 햄버거, 스테이크를 메인으로 파는 경양식 집이었는데 당시 소고기와 돼지고기가 비싸고, 재료도 넉넉하지 않아 값싼 닭을 이용한 치킨 돈가스를 판매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데 퍽퍽한 닭 가슴살 고기를 어떻게 할까를 연구하다가 만들어진 요리가 치킨 난반이라고 한다. 치킨 난반은 미야자키의 향토 음식으로 제법 유명하지만 길게 줄을 서서 기다려 먹을 만큼 놀라운 맛은 아니었다. 다만 한 가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겠다고 생각한 것 중 하나가 일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70대 정도의 할머니들이란 사실이다. 카운트를 보는 주인 할머니부터 음식을 조리하는 주방 할머니, 음식을 나르는 알바 할머니까지 대부분이 70을 전후한 할머니였고 60 초반은 볼 수조차 없었다. 이런 할머니들이 하시는 일을 피 끓는 젊은이들이 하고 있고 힘이 남아도는 할머니들은 빨간색만 보면 게거품을 물고 환장을 해 설치는 이상한 나라가 한국이란 사실이 가슴 깊숙이 슬픈 아픔으로 다가왔다.
< 치킨 난반은 가슴살을 처리하려다가 만들어진 요리이지만 요즘은 닭 허벅지 살을 쓰기도 한단다. >
< 미야자키 대낮의 4차선 도로 풍경. 거리는 한산해 보이지만 실제 양옆 도로에 주차된 차가 없어 그렇게 보일 뿐이다.>
한국은 정말 주정차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결코 선진국이 될 수 없다. 교통사고 유발도 그렇고 정말 나와 상관없는 불법 주차된 차로 하여 짜증이 나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우리가 일본 사람 욕을 하다가도 주차 문제에 대해서만은 모두 인정하는 것이 바로 이런 모습 때문이다. ‘현대 자동차’에 시트를 납품하는 다스의 매출을 올리기 위해 자동차 면허시험을 완전 물면허로 만든 것이 이명박이란 소문이 있는데 나는 이런 소문을 결코 거짓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재산 관리인이던 처남 김재정씨가 건강이 좋지 않자 혹시 돈을 빼돌릴까 해서 영포빌딩에 청와대 경호원을 파견해 감시했다고 하니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쥐새끼이기 때문이다. 기사를 직접 보자.
“(전략) 검찰은 오늘 수사 경과를 발표하면서 당시 김(재정) 씨가 쓰러지기 전까지 이 전 대통령의 차명 재산 전부를 관리해온 것으로 파악됐다고 설명했습니다. 특히 현금 등 차명 재산과 각종 관련 장부를 보관한 영포빌딩 지하창고 역시 김씨가 관리한 것으로 파악했습니다. 그런데 이 전 대통령은 김 씨의 건강이 악화되자 청와대 경호처 경호원까지 붙여서 영포 빌딩을 관리했습니다. 청와대 경호는 관련법상 직계 가족이나 국내외 주요 인사들에게만 가능합니다. 하지만 차명 재산을 관리하는 민간인 처남에게 경호원을 붙여 재산을 관리한 겁니다. 검찰은 건강이 나빠진 김씨가 재산을 빼돌리지 못하도록 감시하기 위한 조치로 의심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 전 대통령은 김씨가 쓰러지자 경호원과 함께 영포빌딩 지하금고를 열어 돈이 잘 있는지 살펴본 것으로도 조사됐습니다.” [JTBC] 입력 2018-04-09 20:11
돈에 대해서는 병적일 정도로 집착을 보이는 것이 그 새끼가 아닌가! 그러다가 요즘 다시 면허시험이 원래 상태로 돌리니 불(火)면허라는 아우성이 여기저기서 나온다. 그러나 이런 씁쓸한 현실 중 웃기는 일은 중국 사람들이 면허 따기 손쉬운 우리나라에 대거 몰려온다 하니 물면허가 외화 획득에 한몫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말 나온 김에 한 마디를 덧붙여 명박이 흉을 더 보자.
“(전략) 그런데 때마침 이 전 대통령 변호인단이 새겨 들어봄 직한 조언이 나왔습니다. 이 전 대통령과 함께 BBK를 설립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던 김경준 씨의 조언, 아니 경고입니다.
[김경준 (음성대역) : MB는 돈을 지불한다고 한 후, 잊어버린 척하면서 떼어먹는 버릇이 있습니다. 2000년 BBK를 위해 열심히 일한 언론인이 있었는데 급여를 줘야하지 않냐고 물어보자 MB는 "무엇을 주는 척만 하고는, 그냥 잊어버리면 떼어먹으면 된다"는 황당한 지시를 내렸습니다. 그러니 계약을 정확하게 하고 의뢰인 수수료를 바로 바로 청구해 받길 바랍니다.]
물론 김경준 씨의 주장이라는 점 말씀드리겠습니다. 다만 이 전 대통령 측에서는 재산을 모두 사회에 환원해 변호인단을 선임할 돈이 없다라고 말한 적이 있긴 합니다. (후략)“ [JTBC] 입력 2018-04-10 18:21
하루걸러 나온 전직 대통령의 이런 디테일한 짓거리가 화창한 4월, 우리를 슬프게 한다.
일단 숙소인 도미인(Dormy inn hot spring Miyazaki)에 도착하니 체크인 시간이 덜 되어 짐을 우선 맡기고 나왔다. 1일 버스 자유이용권이 1,000엔인데 휴일은 500엔이라고 해서 3장을 산 후 아무 버스나 탔다. 가면서 일본의 버스요금체계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는데 잘 알 수가 없었다. 우리는 자유이용권이니 신경 쓸 일이 없기도 했다. 버스 기사에게 명승고적지를 물으니 “이온몰에 내려서 놀아라”고 추천한다. 이온몰은 대형 쇼핑몰이다. 마침 앞에 중학생으로 보이는 남녀학생들이 있어 그 애들이 더 열심히 우리를 가르쳐 주려고 노력했다. 이 애들은 흔히 말하는 한국 사람에 대한 거부감을 전혀 느끼지 않았고 오히려 외국인과 만났다는 걸 기념이라도 하려는 듯, 황선생과 사진까지 찍었다. 지식은 사람을 잘 생겨 보이게 하는 모양이다.
결국 이온몰에 내린 우리는 가장 먼저 주류코너에 가 ‘칸노꼬’를 찾았으나 어디에도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소주와 맥주, 안주로 먹을 회, 그리고 내일 아침 도시락까지 8,060엔에 사고 다시 버스를 타고 도미인으로 와 체크인을 했다. 일단 음식은 냉장고에 넣어두고 12층에 있는 대(大) 욕장에서 온천욕을 하였다. 목욕용품과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고 물도 아주 좋았다. 그래서 일본인들도 이곳을 신혼여행지로 삼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온천욕 후, 숙소인 도미인(Dormy inn)에서 조금 떨어진 우동 집에서 새우 우동을 시켜 간단히 먹었다. 한 그릇에 390엔 정도인데 그런대로 먹을 만하다. 이곳도 역시 일하시는 분이 전부 할머니들뿐이다. 도대체 일본의 젊은 여자들은 다 어디로 숨어버렸다는 말인가! >
버스는 한번 탈 때마다 기본요금이 약 160엔 정도였는데 우리는 오늘 2번 탔으니 아직 본전을 못 건진 상태라 배도 적당히 부르고 해서 다시 공짜 버스를 타고 미야자키 역으로 갔다. 이제 집으로 돌아갈 때 버스를 타면 140엔 이익을 보게 되겠지. 올 때는 몰랐는데 역에서 숙소까지는 네 정거장 정도여서 걷기는 조금 먼 편이었다.
< 밤이라서 조금 한가한 미야자키 역에서 예쁜 척, 요술공주 세리 포즈를 취한 황선생 >
역 구내에 마침 다이소가 있어 혹 기념품이나 사 갈만한 게 있나 해서 둘러보았다. 사기그릇이 예뻐 보였지만 무게나 운반 문제로 패스하고 보니 굳이 혹은, 별로 살 것이 없다. 황선생은 평소 사려고 마음을 먹고 있었다는 이불털이[후똥타다키]를 100엔을 주고 사서 아주 기분이 좋았다. 그 모양이 요술공주 세리의 요술봉을 닮았다. 이런 물건은 정말 생활을 하다가 문득 떠오른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물건이다. 게다가 값까지 싸고 오래 사용할 수 있을 듯하여 좋은 물건이라 생각되었다. 그런데도 내가 사지 않은 이유는 집사람이 이불을 터는 것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가끔 창을 열고 이불을 말리는 것은 보았지만 집이 이불을 털 수 있는 구조가 아니어서 그런지 아니면 옥상에 올라가 남몰래 터는지 몰라도 나는 본 적이 없다.
< 역 구내에는 미야자키에 스프링 캠프를 꾸린 구단들의 대표선수들 입간판을 세워 두고 유니폼 등을 팔고 있다. >
< 이온몰에서 사온 “모든 약의 우두머리”란 반어법적 이름을 가진 보리소주와 산토리와 에비스 프리미엄 맥주를 우리 방 의자를 술상 삼아 늘어두고 마시다 보니 어느덧 12시가 넘었다. 어제도 그렇고, 오늘도 관광 없이 관광지만 찾아 헤매다가 끝나고 말았다. >
♠제 4 일 (2018. 02. 13. 화) 미야자키
< 어제 이온몰에서 산 도시락을 아침으로 먹으며 오늘은 제발 좀 구경거리가 있기를 마음으로 빌어본다. >
< 왼쪽은 JR 규슈레일 패스인데 2월 11일부터 15일까지 5일 간 18,000엔이다. 우리 돈으로는 18만 원 정도인데 일본 교통 요금으로 보면 엄청나게 싼 편에 해당한다. 오른쪽은 미야자키 버스 패스인데 하루 무제한 사용에 1,000엔으로 이 역시 외국인에게만 판매한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한글로 적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
오늘의 관광코스는 도깨비 빨래판이 있는 청도(靑島-아오시마)로 갔다가 제호신궁(鵜戶神宮)을 구경하는 것이 주된 코스이다. 물론 이것은 계획이니 어떻게 될지 알 수는 없다. 일단 미야자키 버스 패스를 세븐일레븐(혹은 로우손 같은 편의점에서 판다)에서 1,000엔씩 주고 구입해서 시외버스를 타고 한참을 달렸다. 건너편 도로의 가로수로 심은 야자나무들이 높다란 가지 끝 잎사귀를 한 방향으로 하고 있는 걸로 보아 바람에 제법 분다는 걸 알 수 있었다.
< 그래도 오늘의 날씨는 어제와 달리 화창한 날씨이다. >
< 우리 숙소 맞은 편 정류소에서 버스표를 끊으니 22번이 찍혀 나온다. 일본에서는 버스 탈 때 승강구 옆에 있는 통에서 번호를 뽑아야 한다. >
< 우리 숙소 맞은 편 길이 귤통(橘通 : 귤나무길)인데 22번의 요금은 기본요금인 160엔이다. 22번 요금이 우리가 내릴 때 쯤 어떻게 변하는지 두고 보자. >
한참을 달리니 점점 인가가 보이고 드디어 상가와 인위적으로 조성한 느낌이 물씬 풍기는 숲이 나타나고 버스기사가 ‘아오시마’라고 했다. 정류장에 내려 상가 사이로 난 길을 걸어가니 웬 툭툭이가 한 대 서 있다. 그래서 바로 타고 아오시마 신사(神社)를 향했다.
< 도깨비 빨래판이라 불리는 청도(靑島-아오시마)의 전경(全景). 섬 주변에 일직선의 요철(凹凸)진 퇴적암 해식(海蝕) 구조가 넓게 펼쳐져 있어 정말 도깨비 조화라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런 절경이 이곳만 있는 게 아니라 해변을 따라 가다 보니 여러 군데에 보였다. >
< 옆에서 본 모양인데 단순한 요철이 아니라 켜켜이 퇴적된 바위의 성분이 하나하나가 다른 모양이며 다른 구조이되, 경도(硬度)에 따라 해식이 된 정도가 일정해 통일된 전체를 이루고 있어 감탄을 자아내었다. >
< 그 빨래판이 단순한 모양의 반복이 아니라 한 줄 한 줄은 다시 기괴한 모양의 돌을 사이사이에 넣고 시멘트로 붙인듯하여 그 생성과정이 지구과학을 배운 나로서도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았다. 하기야 이러니까 도깨비 빨래판이라 했겠지. >
< 신사 입구에 토기로 만든 인형이 둘 서 있다. 왼쪽의 풍옥희(豊玉姬)는 상당히 낯이 익어 가만 생각하니 동경의 국립박물관에서 본 ‘성장(盛裝)을 한 여인상’과 치마 형태가 비슷하여 그런 생각이 든 것 같다. >
< 아오시마 신사(神社)의 모습인데 신사는 우리나라 절의 개념과는 많이 다르다. 일본 왕실의 조상이나 국가에 공이 큰 사람을 신으로 모신 사당으로 이오시마 신사는 바다 가까이 섬에 있어 항해와 교통의 신, 그리고 결혼과 순산의 신을 모신다. 들어보니 신사 입구에 있던 진무천황의 엄마인 풍옥희(豊玉姬-토요타마히메)의 남편인 산행언(山幸彦-야마사치히코)과 몇몇 신을 모시는 사당이라 한다. 그러니 이를 괜히 우리나라 절처럼 생각해 기도를 하거나 절을 해서는 안 된다. 남의 나라 조상에게 기도하거나 전범(戰犯)에게 기도할 수는 없지 않은가 말이다.
< 신사 주변의 숲은 길 이외는 가급적 손을 대지 않은 듯 거의 원시림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쓰러진 나무는 쓰러진 대로, 부러진 가지와 마른 잎도 그대로 두었다. >
< 다시 이오시마가 보이는 입구에 와서 우릴 태워준 툭툭이 사진을 찍었다. 공짜인 모양인데 우린 봉사료라 생각하고 1,000엔을 기부함에 넣었다. 참 하늘이 맑고 공기가 깨끗하다. >
아오시마에서 큰 도로로 나오는 입구에 “미야자키 현립 청도 아열대식물원”이 있어 잠시 들러 보았다. 그리 별 다르게 볼 것도 없었는데 아열대 식물의 온실이 있어 갔더니 입관은 무료이지만 매주 화요일은 휴관이라 문이 닫혀 있다. 깨끗이 포기를 하고 우도신궁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정거장에 가니 바람이 너무 분다. 바람도 피할 겸 길가의 간이 가게에 들어가니 100엔 짜리 홍차를 판다. 따뜻한 홍차를 마시니 조금 낫다.
< 제호신궁에서 내리기 전, 22번의 요금을 보니 830엔이 되어 있다. 즉 우리나라 택시처럼 기본요금에 구간별 요금제여서 오래 타면 점점 요금이 올라가는 것이다. 1번의 경우 지금 1,480엔이니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거의 15,000원 수준이다. 내가 사는 청도 버스 정류소에서 운문사까지 거의 한 시간 가량 버스를 타도 1,500원인데 일본사람은 버스조차 요금 겁나 못 타겠으니 이런 면에서 불쌍하다. >
한 20분 기다리니 버스가 와서 해변을 따라난 도로를 40분 정도 달려 우도(鵜戶-제호)신궁에 도착했다. 이때 버스 요금을 보니 22번은 860엔이다. 우리는 다시 돌아가야 하니 1,720엔인데 1,000엔의 패스권이니 720엔×3명은 2,160엔 절약이다. 신사와 신궁은 조금 차이가 있는데 신사는 일반적 신(神)을 모시는 장소인데 일본인들은 모든 물건이나 추상적 개념에도 전부 신이 있는 것으로 생각해 “신발신”, “지우개신”, “연애신” 등을 모시는 신사도 있다고 하는데 일본 전역에 있는 신사의 수효가 편의점보다 많을 거란다. 그러나 신궁은 왕족의 선조를 모시는 곳이니 그 규모 면에서 신사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웅장하고 숫자도 몇 안 된다.
우도신궁은 일본말이고 한자로는 제호(鵜戶)신궁이라고 쓰는데, 제(鵜)는 사다새, 두견이 제(鵜)인데 바다에 가까우니까 사다새 즉, 펠리컨을 의미할 것이고 호(戶)는 구멍, 굴, 구덩이란 뜻이니 제호(鵜戶)는 ‘펠리컨 둥지’ 정도로 해석하면 무난할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신궁이 깊고 넓은 굴 안에 지어져 있다. 아마 이 굴의 원래 주인은 펠리컨이었던 모양이다.
< 신궁 가는 길에 꽃이 만개한 나무 한 그루를 보았는데 향기가 매우 강했다. 생김새는 벚꽃인데 벚꽃이 향기가 나는 종류가 있다는 건 또 처음 알았다. 그래서 안선생은 매화라고 주장했다. 아무리 규슈가 남쪽이라 해도 아직 2월 중순인데 벚꽃이 피는 것도 이상해 매화라 할만도 했다. 그래도 향기 나는 벚꽃이라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꽃을 좋아하는 제자에게 사진을 보냈더니 역시 벚꽃이란다. 그래서 향기가 진한 벚꽃 종류가 있는 걸로 결론을 내렸다. >
신궁으로 가는 길은 해안 절벽을 따라 난 길이었는데 물 안 바위도 그 모양이 신기하고 바깥의 돌들도 화산암과 퇴적암이 섞인 듯, 게다가 오랜 풍화작용을 거치는 동안 부드러운 부분은 깎여나가고 조금이라도 더 단단한 부분만 견디어내어 그 모양을 유지하고 있으니 어느 하나도 같은 것이 없고 어느 하나도 평범한 것이 없다. 오직 물리적 법칙만이 존재하는 무심한 자연이 만든 물성(物性)을 무형의 시간이 오래도록 빚어낸 의도 없는 유형의 형상이기에 유한한 시간을 가진 여행자는 그 위대한 시간의 마법에 감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 입구에 솟은 높은 대문. 아마 다른 이름이 있을 텐데 무식한 사람이라 그냥 절의 일주문 정도로 생각하고 말았다. 그런데 정문 위에 어미 개와 강아지가 그려져 있고 신앙과 신화의 무대라 적혀 있었다. >
< 우리나라 절의 경우 이런 시설은 감로수라 해 물을 마시는 용도인데 일본의 신사의 경우 정화(淨化)의 의식으로 손을 씻는 용도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이 하는 행동을 본 후 마시든 씻든 하는 것이 좋다. >
< 사암이 퇴적한 것 같은데 물결진 무늬가 대단하다. >
< 위의 퇴적암 부분의 돌은 무른 부분은 바람에 깎여 없어지고 단단한 부분만 계란껍질처럼 남아 있다. 아래쪽의 검은 돌은 화산암 같은데 이렇게 퇴적암과 서로 뒤엉켜 알 수 없는 탄생의 러시아워 때를 상상하게 만든다. >
< 이건 또 무슨 기괴한 모습이란 말인가. 이 바위는 원래 평평한 모래사장에 놓인 바위가 있었는데 화산활동이나 융기나 등의 이유로 아마 90° 전도되어 이젠 사마귀처럼 불안하게 직벽(直壁)에 붙은 모양이 되고 말았다. >
< 우도신궁은 결혼과 순산의 신사로 이름이 높다. 그래서 신혼부부가 많이 찾는다고 한다. 이 신궁은 일본 초대 왕으로 전해지는 진무천황의 아버지 ‘히코나기사타게우가야후키아에즈노미코토(彦波瀲武盧茲草葺不合尊 혹은 日子波限建鵜草葺不合命)’라는 긴 이름의 신을 모시는 곳인데 일본의 건국신화에 의하면 천손의 둘째 아들이자 산을 다스리는 신인 야마사치히코(앞 부분의 아오시마 신사 입구의 山幸彦)가 해신의 딸(豊玉姬-토요타마히메)과 결혼하여 낳은 아이가 동굴 속 바위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받아 마시며 성장했는데, 이 아이가 바로 진무천황의 아버지가 되었기에 이곳은 신궁이 되었다. 이 동굴에는 그가 흘러내리는 물을 받아 마셨다고 하는 바위가 있는데 ‘오치치이와(お乳岩, 젖바위)’라 한다.
< 해안을 따라 가면서 ‘부부바위’, ‘부채바위’ 등 기괴한 바위가 많이 눈에 띄었는데 이 바위는 부리와 꽁지 모양으로 보아 ‘새바위’인 듯하다. >
< 우도신궁에서 나와 올라오는 길에 가게 안의 토우(左)를 보니 문득 동경 국립박물관에서 본 토우(右)가 생각났다. 우리도 가게에 신라의 기마인상을 확대 제작해 진열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찾으면 아마 소재는 많을 것이다. >
< 마침 점심때도 넘겨 출출하던 차에 길가에 단팥죽 집이 눈에 띄어 1그릇에 400엔을 주고 사 먹었는데 기대 밖으로 맛이 얕다. 팥 자체가 가진 구수함과 통팥을 씹을 때 느끼는 식감이 생략되고 그냥 달큰한 맛에서 끝난 아쉬움이 있다. >
< 길가의 수선화가 정말 활짝 피었다. 내일이면 이제 시들 정도로 한껏 피어 지나가는 나그네의 눈을 끈다. >
< 아오시마에서도, 이곳에서도 먹이사슬이 탄탄한 모양인지 매 같은 맹금류가 높은 하늘을 나는 것이 자주 눈에 띈다. >
<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길가의 쑥이 벌써 이렇게 자란 걸 보았다. 2월 중순인데 떡을 해서 먹을 크기로 쑥이 자랐구나. >
< 우도신궁 입구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니치난 시의 유진역(油津驛)에 내려 시내를 둘러보았으나 사람도 없고 황량한 느낌이다. 기름 유가 들어간 것으로 보아 석유와 관계가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보니 저 멀리 큰 굴뚝이 여러 개 보인다. 아마 정유 공장인 듯 제법 공기 중 기름 냄새도 섞여 있다. >
< 유진역에서 탄 기차. 일본은 신칸센 같은 최신의 기차와 이 기차 같은 과거의 기차가 공존하고 있다. 난 이 기차가 마치 노인이 오래토록 일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일본의 모습처럼 느껴졌다. >
미야자키 역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숙소인 도미인 호텔에 돌아와 온천욕을 한 후 근처의 일번가 골목의 이자카야에서 맥주에 간을 한 후 미야자키의 명물이라는 지계(地鷄 - 닭 불고기)와 꼬치를 안주삼아 마셨다. 여기서 작은 문제가 발생했는데 중간 크기 생맥주 3잔과 안주를 주문하니 맥주를 먼저 가져 왔다. 그래서 일본 소주로 전부 간을 했는데 아가씨가 오더니 맥주가 다른 손님에게 가야할 것이 잘못 왔다는 것이 아닌가? 간을 한 맥주를 돌려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여기 소주를 섞었기 때문에 당신이 이것을 다른 소님에게 가져다주다가 맞아 죽을지도 모른다고 말하기도 무엇하고 해서 곤란한 지경이었는데 아가씨가 무슨 셈법인지 몰라도 이건 서비스로 마시고 다시 가져오겠다고 했다. 우리는 무조건 “오케이”라 말할 수밖에 없었고 덕분에 맥주 한잔씩 더 마시게 되었다.
< 숯불에 검게 탄 듯한 닭 불고기에 양배추와 레몬 한 조각을 준다. 특이하게 고추냉이를 찍어 먹는 듯 고추냉이를 가져 왔다. >
돌아오면서 편의점에 들러 안주와 맥주를 사서 방에서 한잔 더하고 하루를 마감하였다. 오늘은 그래도 아오시마의 도깨비 빨래판도 보고 우도신궁도 보아 비로소 여행다운 느낌이 들었다. 날씨는 바람이 조금 불었지만 쾌청 그 자체여서 며칠간의 불운과 불행은 이 바람에 담아 저 광활한 태평양으로 다 날려 보내고 오늘부터 행운과 행복 가득한 여행이 될 것 같은데, 이제 남은 날이 이틀뿐이다.
< 마무리로 이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