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 일시: 2015년 5월 24일 (일)
o 날씨: 맑음
o 산행경로: 쾌방령 - 여시골산 - 운수봉 - 정상 (1111m) - 형제봉 - 신선봉 - 직지사 - 주차장
o 산행거리/소요시간: 12.6km / 5시간 20분
o 일행: 산수산악회
o 황악산 산행정보: 황악산
▼ 등산지도
오늘의 산행지는 황악산이다. 황악산(黃嶽山)은 충북 영동과 경북 김천사이의 도경계에 위치한 산으로 백두대간이 지나가는 산이며, 예로부터 학이 많이 날아든다 하여 황학산(黃鶴山)이라고도 불리웠다고 하는데 현재는 큰산악(嶽)을 사용하는 황악산으로 대부분 불리우고 있다.
오늘 산행계획은 교통이 불편하여 혼자 산행이 여의치 않은 '운장산 + 구봉산' 이었으나, 일행 모집이 되지 않아 취소되는 바람에 대신 급하게 황악산을 오게 되었다. 황악산은 결혼전 와이프와 연애시절에 주말을 이용하여 직지사를 구경하여 나선김에 황악산을 올랐던 기억이 있다. 벌써 25년도 지난 이야기다. 지금의 황악산은 어떤 모습과 느낌으로 다가올런지....
오늘의 산행 들머리는 쾌방령이다.
쾌방령은 충북과 경북의 경계지역으로 조선시대부터 쾌방령이라 불리고 있다. 쾌방령이라는 지명은 조선시대 때 이고개를 넘어 과거를 보러가면 급제를 알리는 방에 붙는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인근의 추풍령이 국가업무 수행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관로였다면 쾌방령은 과거시험 보러 다니던 선비들이 즐겨 넘던 과거길이며 한성과 호서에서 영남을 왕래하는 장사꾼들이 관원들의 간섭을 피해 다니던 商路로서 추풍령 못지않은 큰 길이었다. 또한 이곳은 임진왜란때 박이룡 장군이 왜군을 상대로 격렬한 전투를 벌여 승전을 거둔 격전지로서 북쪽으로 1km 떨이진 도로변에는 장군의 공을 기리기 위해 지은 황의사라는 사당이 있다. 쾌방령은 해발 300m의 낮은 고개이지만 민족정기의 상징인 백두대간의 정기가 잠시 숨을 고르다 황학산으로 다시 힘차게 뻗어 오르는 곳이며 금강과 낙동강의 분수령이기도 하여 북쪽으로 흐르면 금강으로, 남쪽으로 흐르면 낙동강으로 흘러가는 지리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다.
등산로 곳곳에 백두대간 등산로 라는 안내 표지가 많다.
여시골산에 있는 여시굴. 이곳은 여시골산의 대표적인 여우굴(여시굴)로서 예로부터 여우가 많이 출몰하여 여시골짜기라 알려졌으며, 그로 인해 여시골산이라고 불려진다.
쾌방령에서 여시골산까지 2km 이상의 오르막이 계속된다.
운수봉은 여시골산에서 멀지 않다.
황악산을 오르면서 바로본 김천 방향. 중간 오른쪽 멀리 보이는 산이 구미 금오산이다.
김천방향에서 동남쪽으로 바라본 파노라마. 왼쪽 멀리 금오산, 오른쪽 멀리 가야산 능선이 이어진다. 오른쪽 앞쪽은 황악산 신성봉 능선이다.
올려다본 황악산 정상 방향. 신록으로 이미 가득하다.
황악산 정상. 황악산은 추풍령에서 삼도봉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으로 비로봉 (1111m), 신선봉(944m), 백운봉(770m), 운수봉(740m) 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산줄기 중간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큰산岳에 한반도의 중심에 위치한다 하여 다섯방위를 상징하는 오방색의 중앙을 가리키는 黃자를 딴것으로 黃岳山이라 하며, 정상에 오르면 하는 일들이 거침없이 성공하는 吉祥之地의 산이다.
황악산 정상에서 바라본 가야산 능선. 우두산, 비계산, 수도산 등이 이어질텐데....어느 봉우리가 어느 산인지.....
황악산 정상에서 형제봉으로 향하면서 바라본 민주지산. 중간에 뾰족하게 튀어나온 봉우리가 각호산, 그 왼쪽으로 민주지산, 석기봉과 삼도봉이 이어진다.
형제봉. 별다른 표지석은 없고, 등산표지판에 형제봉이라고 매직으로 써 놓았다.
황악산 철쭉. 마지막 자태를 뽐내고 있다.
신선봉. 신선봉도 표지석은 따로 없다.
신선봉에서 직지사로 내려가면서 바라본 가야산 방향. 가운데 우뚝 솟은 봉우리가 상왕봉인가 보다....
직지사로 내려가는 길. 엄청난 내리막길이 이어진다. 어쩔수 없이 스틱을 꺼집어 들고...
하산길에 올려다본 황악산 정상 방향.
아래로는 숲속에 아름답게 자리를 잡은 화장암이 보인다.
천년의 역사와 세월을 간직한 황악산 직지사. 우리민족의 가슴속에 선현의 지혜와 자비를 심어온 직지사는 신라 눌지왕 2년(418) 이도화상이 창건하였다. 直指라는 명칭은 '직지인심 견성성불' 이라는 선종의 가르침에서 유래되었다. 신라 선덕여왕 14년(645) 지장율사가 중수하였으며, 경순왕4년(930) 천묵대사가 2차 중수하였다. 고려 태조 19년(936) 능여조사가 중창하여 큰스님들을 많이 배출하고 '동국제일가람'이라 일컬었다. 조선 정종 원년(1399) 중건이 있었고, 성종19년(1488)에 학조대사가 중수하여 조선 8대 사찰 가운데 하나로 사세를 크게 흥성시켰다. 이곳은 많은 국사, 왕사가 수도 정진하던 곳으로, 임진왜란때 큰공을 세운 사명대사가 출가한 곳이기도 하다. 벽계 정심선사가 조선조의 법난때 이곳에 칩거하여 한국 선종의 대맥을 이었다. 선조29년(1576) 왜적의 방화로 모든 전각, 당우가 소실된 것을 선조35년(1602)부터 중창하기 시작하여 약 60년 만인 현종3년(1662)에야 완전히 복구하였다. 근세에 들어서는 고종 년간에 일부 중수가 있었으며, 1963년부터 30여년간에 걸쳐 현재의 전각과 당우를 중창, 중수하였다. 사찰 내에는 대웅전(보물 1576호), 대웅전삼존불탱화(보물 670호), 석조약사여래좌상(보물 319호), 대웅전 앞 동/서 삼측석탑(보물 606호), 비로전 앞 삼층석탑(보물 607호), 청풀료 앞 삼층석탑(보물 1186호) 등의 중요 문화재와 많은 건축물이 보존되어 있다.
대웅전 앞에는 석가탄신일(내일) 행사 준비가 한창이다.
직지사 산문을 나가는 길에 '覺城林泉高致'라는 수려한 필체의 편액이 눈에 띈다. 서예 대가인 여초(如初) 김응현(1927~2007) 선생의 글씨다. "깨달음의 성(城)은 곧 절을 뜻하며 절에 와서 풍성한 불법의 진리를 깨우치라"는 뜻이란다.
직지문화공원. 2004년에 설치되었으며, 황악 정기 스린 천년 가람 그 앞자락에 '嶺南第一文鄕' 옛 기상 높이고자 문화시민의 요람인 직지문화공원을 세웠다. 과거와 미래 전통과 현대가 어루러진 萬奉大計 시민의 문화산실로 길이 빛나라...
약 25년만에 다시 찾은 황악산과 직지사. 황악산의 늠름한 자태에는 변함이 없다. 직지사는 새롭게 단장이 많이 되었고, 직지문화공원이 새롭게 조성되어 있다. 직지문화공원과 주차장 사이에는 많은 상업시설이 들어서 있다. 많은 관광객들이 쉽게 찾을 수 있는 시설과 여건을 갖추어 졌지만 고즈녁한 산사의 느낌이 아쉽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