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暴雪) / 오탁번
삼동에도 웬만해선 눈이 내리지 않는
남도 땅끝 외진 동네에
어느 해 겨울 엄청난 폭설이 내렸다
이장이 허둥지둥 마이크를 잡았다
-주민 여러분! 삽 들고 회관 앞으로 모이쇼잉!
눈이 좆나게 내려부렸당께!
이튿날 아침 눈을 뜨니
간밤에 자가웃 폭설이 내려
비닐하우스가 몽땅 무너져 내렸다
놀란 이장이 허겁지겁 마이크를 잡았다
-워메, 지랄나부렀소잉!
어제 온 눈은 좆도 아닝께 싸게싸게 나오쇼잉!
왼종일 눈을 치우느라고
깡그리 녹초가 된 주민들은
회관에 모여 삼겹살에 소주를 마셨다
그날 밤 집집마다 모과빛 장지문에는
뒷물하는 아낙네의 실루엣이 비쳤다
다음날 새벽 잠에서 깬 이장이
밖을 내다보다가, 앗!, 소리쳤다
우편함과 문패만 빼꼼하게 보일 뿐
온 천지가 흰눈으로 뒤덮여 있었다
하느님이 행성만한 떡시루를 뒤엎은 듯
축사 지붕도 폭삭 무너져 내렸다
좆심 뚝심 다 좋은 이장은
윗목에 놓인 뒷물대야를 내동댕이치며
우주의 미아가 된 듯 울부짖었다
-주민 여러분! 워따 귀신 곡하겠당께!
인자 우리 동네 몽땅 좆돼버렸쇼잉!
- 시집 《손님》 (황금알, 2016) 中에서
첫댓글 ㅎㅎㅎ
이장님의 멘트가 정말 겁나게
잼납니다....ㅎㅎㅎ
사실 눈이 많이 내리면 겁이 나는건 사실이지요..
한때 문단에 성 모럴이 인기를 끌던 적이 있었죠.
그중에서도 오탁번 시인이 탑일 겁니다. ㅎㅎ
아까맹크로~~
ㅋㅋㅋ
겁나게 웃기는 이장님
구수한 사투리가 재미나네요
웃고 갑니다
웃으시라고 올렸습니다. ㅎㅎㅎ
웃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