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O, 팩스턴 『파시즘』
‘파시즘’은 20세기 등장했던 정치 체제 중 어떤 형태보다도 열정과 광기를 동반한 폭력적인 정치 혁명이었다. 저명한 역사가 팩스턴은 오랜 기간의 연구를 통해서 ‘파시즘’에 대한 정교한 개념 및 이해을 위한 역사적 과정을 탐색한다. 그는 ‘파시즘’을 어떤 제한된 개념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복합적이면서도 모순적인 그러면서도 역동적인 선택과 과정의 유기체라고 보았다. 그렇기 때문에 파시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파시즘 운동의 탄생과 전개 그리고 급진화 과정의 성격을 파악해야 하며, 파시즘 운동의 지도자와 운동이 성공하거나 실패한 국가의 정치사회적 환경, 사회집단과의 상호작용 관계를 통해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파시즘 정권이 어떻게 작동했는지 철저히 이해하려면 평범한 사람들의 삶까지 파고들어 그들의 일상생활에서 어떤 선택을 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그런 일상생활의 선택들은 외관상 정도가 덜한 악행을 용인하거나 어떤 과잉 행위로부터 의도적으로 눈을 돌리는 것을 의미했다.”
파시즘 운동의 시작은 역사적으로 명확하게 규정할 수 있다. 비록 파시즘적 운동이 19세기에 서서히 등장하고 있지만, 본격적인 파시즘은 1919년 무솔리니에 의해 이탈리아에서 출발하였다. 파시즘 탄생의 배경은 1차 세계대전 이후 벌어진 총체적인 혼란과 대공항, 그리고 러시아의 볼세비키 혁명으로 인한 사회주의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으며 결정적인 원인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자유주의적 정부에 대한 불만이었다. “볼세비즘이 울린 화재경보는 1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자유주의적 가치와 제도가 맞닥뜨린 곤경을 더 가중시켜 비상사태로 몰아 넣었다. 의회·시장·학교라는 세가지 핵심적인 자유주의적 제도들은 이 비상사태에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했다.”
이탈리아와 독일의 파시스트들은 혼란에 불만을 품고있는 다양한 계층에게 환상적인 이익을 제공했으며 공동체와 민족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역사의 전환’을 위한 열정을 대중들에게 주입하고 공유하였다. 그들이 자행한 폭력 또한 특정 집단에게만 집중함으로써 보수주의자들과 중간계급에게 파시스트의 폭력은 좌파의 도발을 막기 위한 필요악이라는 점을 받아들이게 만들었다. 이렇듯 특정한 목적과 특정 집단에 대한 증오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폭력은 파시스트 탄생에 가장 핵심적인 현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파시스트가 권력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불법적 행위에 대한 용인이 파시즘 확산의 치명적인 원인으로 지목한다. “공권력이 공산주의자나 사회주의자에 대한 직접적 적대행위를 적당히 눈감아주는 곳이라면 어디나 파시즘이 들엏설 공간이 열려있었다. 이점에서 파시즘의 가장 큰 적은 사법 및 행정상의 엄격한 법집행이었다.”
파시즘 운동이 사회의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한다고 할지라도 실제로 그들이 권력을 잡게 된 가장 큰 원인은 보수적인 지배층의 협력때문이었다. 이탈리아의 무솔리니와 독일의 히틀러는 공식적으로 국가원수(왕과 대통령)에 의해 정부의 수장으로 임명되었다. 사회주의 확산에 대한 불안과 피시스트 세력에 맞선다면 자신의 권력이 위험에 빠지리라는 보수주의자들의 두려움이 파시스트와 협력하여 권력을 공유하게 만들었다. “자유주의 전통의 척박함, 뒤늦은 산업화, 민주주의를 용인하지 않는 엘리트층의 잔존, 혁명의 물결이 지닌 위력, 국가적 굴욕에 대항한 발작적 봉기 등 다양한 요소들이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위기를 더욱 심화시키고 선택의 폭을 기여했을지도 모른다.”
공식적인 정치체제에 진입한 파시스트들은 내부의 음모를 통해 좀더 급진적인 방향에서 ‘권력장악’을 시도한다. 특히 독일의 나치즘은 ‘독일의회 방화 사건’을 계기로 반대세력과 나치즘 내부의 급진세력을 제거하고 히틀러의 독점적 지위를 완성하게 된다. 이후 파시스트들은 공동체를 위해 사적영역을 통제하였고 전통적인 사회화 기관을 약화시켰으며 ‘개인을 공동체에 복속시켰다.’ “파시즘은 시민권, 다시 말해 개인이 공동체의 삶에 참여하는 방식에 대해 급진적이고 새로운 개념을 제시했다는 점에서는 혁명적이었다. 그러나 개인의 자유, 인권, 적법절차, 국제평화처럼 좌파가 전통적으로 추구했던 이념의 측면에서 보면 반혁명적이었다.”
파시즘은 내부의 들끓는 열정을 외부로 끊임없이 확산시켜야 하는 정치체제였다. 그것은 전통적인 독재나 권위주의 정부와는 다르게 대중들의 열정을 핵심적인 동력으로 삼고있기 때문이었다. 파시즘에게 ‘전쟁’과 ‘확산’은 필연적인 과정이었다. “파시즘 정권들은 자기 민족의 생존이 필요한 새로운 영토, 곧 생활권을 적극적으로 손에 넣지 않고는 지속할 수 없기 때문에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일부러 공격적인 전쟁을 선택했다.” 파시즘의 끔찍한 범죄인 ‘홀로코스트’ 또한 파시즘의 동력 속에서 발생한 사건이었다. 지도자의 열정과 그에 협력한 수많은 사람들의 합작품인 것이다. 파시즘 말기를 설명할 수 있는 ‘파편화, 원자화’라는 말처럼, 홀로코스트는 증오의 감정을 갖고 있던 자들이 히틀러의 의도를 깨닫고 자발적으로 행한 충성이자, 상황의 변화(식량부족)에 따른 손쉬운 문제 해결의 결과였다. “나치 행정체제의 파편화는 급진파들로 하여금 무책임하게 마음 속에 품고있던 가장 사악한 충동을 실행할 수 있게 해주었다.”
저자는 파시즘을 “1890년대의 문화적 염세주의, 최초로 나타난 대중의 국민화라는 혼란, 1차 세계대전의 임박, 전후 처리과정에서 나타난 자유주의적 민주국가들의 무능력, 그리고 무엇보다 볼세비키 혁명의 확산으로 조성된 독특하고 유일무이한 위기의 산물”이라고 말하면서 파시즘이 성공한 원인에서 핵심적인 것을 ‘적에 대한 증오심에서 도발되는 불법적이고 폭력적인 행동의 용인, 법과 질서에 대한 정부의 공정하면서도 강력한 원칙 부재, 정상적인 정치제도의 붕괴’ 등에서 찾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파시즘은 여전히 대중의 불만을 매개로 끊임없이 등장할 수 있는 위험한 정치적 선동인 것이다.
파시즘에 대한 역사적 탐색을 통해 보았을 때, 미국의 트럼프 현상은 전형적인 ‘파시즘’이다. 미국의 불만세력을 결집한 ‘퍼스트 아메리카’라는 구호을 앞세우고 대중들의 증오를 바탕으로 내부의 적과 외부의 적을 설정하고 폭력적인 행위를 부추기며 그들의 열정을 이용하는 선동적인 정치라는 점에서 파시즘의 전형적인 모습과 일치한다. 대한민국에서도 ‘전광훈 목사’와 같은 전형적인 파시스트들의 불법적 행위를 용인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그것은 파시즘의 토대를 마련해주는 위험한 현상일 것이다. 파시즘은 적에 대한 증오와 분노를 매개로하여 공동체에 대한 압도적인 중요성과 미래의 확산에 대한 분별없는 강조를 통해 자유와 인권 그리고 평등과 같은 개인의 전통적인 가치를 위협한다. 현재의 상황, 특정 집단만의 지지를 바탕으로 공동체를 강조하고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정책은 파시즘으로 향할 수 있는 위험한 선택일 수도 있다.
팩스턴의 <파시즘>은 파시즘의 역사적 전개과정과 파시즘의 정치사회적 분석을 통해 복잡하지만 명쾌한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 파시즘은 단지 20세기에만 등장했던 특정의 정치체제는 결코 아니다. 정치경제적 혼란이 가져온 삶의 폐폐 속에서 파생하는 인간의 헛된 열정과 그것을 이용하는 집단의 교묘한 의도가 있다면 언제든지 재현될 수 있는 현상이며, 만약 공정하고 합리적인 정치제도와 폭력적인 행위에 대한 명확한 반대가 없다면 사회를 위협할 수 있는 대중적 움직임으로 변모할 수 있다. 트럼프 현상과 태극기 부대를 바탕으로 한 극우세력의 확산을 본다면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결국 파시즘 현상을 막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불법적이고 폭력적인 행위에 대한 단호한 반대에 대한 합의가 중요하며,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합리적인 정치의 영역이 복원되어야 한다. 정치사회적 제도의 합리성은 단지 정치인들의 노력만으로는 달성할 수 없다. 태극기 부대 뿐 아니라 ‘개딸/양아들’과 같은 좌파적 대중운동 또한 파시즘의 위험한 요소이다. 이들은 상대를 ‘적’으로 규정하고 적대적이고 모욕적인 행위를 통해 자신들의 정당성을 주장한다. 내용의 진실이 아닌 형식의 위법성과 비윤리적인 행위가 그들의 문제를 보여주는 것이다. 과거 파시즘은 폭력에 대한 수많은 보통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서 확산되었다. 위기의 전조가 보인다면 그것에 대한 위험을 경고할 수 있는 능력과 노력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그것 또한 집단적 단일의 목소리가 아닌 개별적인 목소리의 합일을 통해 표현되어야 할 것이다.
첫댓글 - 이해할 수 없는 선동과 광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쉽게 합류하는 사람들. 떼지어 살아가는 모습들. 가장 단순한 사람들을 이용해 과격한 행동을 하게 만드는 정치........ 외로움과 두려움에 떠는 불쌍한 현대인들의 모습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