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극의 등장과 발전
1. ‘마당극’이라는 명칭이 사용된 것은 1976년 서울대 연극회의 <허생전> 공연 때부터였다. 마당극은 전통적인 가면극을 계승하는 것과 그러한 전통극을 재창조한다는 목적과 함께 70년대부터 시작되었으며 80년대 정치적 탄압에 저항하는 문화운동의 일환으로 폭발적으로 확산된 연극적 흐름이었다. 마당극은 70-80년대 군사독재 시대 언론기능이 압살되고 모든 정보가 왜곡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정치적 저항의 수단으로 활용되면서 점차 마당극의 특색을 갖추기 시작하였다. 전통적인 가면극의 특징과 현대적 연극의 성격을 종합한 마당극은 가면극이 지향했던 현실에 대한 풍자와 기존 권력에 대한 저항정신을 적극적으로 계승할 뿐 아니라 관람자들과의 연대를 추진하면서 문화운동의 흐름을 주도하였다. “마당극은 대게 그 공연장소를 극장이나 페쇄된 실내공간이 아닌 야외의 마당으로 설정하고 등장인물의 전형화나 장면과 장면의 연쇄적 연결, 풍자적이고 회화적인 대사와 동작, 재담·춤·노래·욕설·고함·연설·시위·마임·의식의 도입 등 전통 민속극의 공연기법을 원용한다. 이와 함께 전통연희의 축제적, 집단연희적 성격을 실천함으로써 사라져 가는 공동체 의식을 회복하고자 한다.”
2. 마당극의 정치적 성격은 마당극의 핵심적인 대상을 민중으로 설정하게 만들었으며 민중들을 위한 연극에서 더 발전하여 ‘민중에 의한 연극’으로까지 확산하게 하였다. 이러한 대중들의 삶의 생생한 현장과 직결된 연극을 추구하는 움직임은 당시의 정치적 상황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겠지만, 또 다른 요인으로 60-70년대 연극계를 지배한 서구적 모더니즘 연극에 대한 불만을 들 수 있다. 당시 한국의 연극계는 우리의 전통적인 연극을 부정적으로 보고 서구의 새로운 연극기법이나 사조를 맹목적으로 도입하고 추종하는 흐름을 보였다. 그런 이유로 연극의 구체적인 내용이나 효과적인 전달을 포기하는 대신 서구적 형식실험을 통한 예술성 확보라는 전위적인 성격의 작품이 지배하게 된 것이다. ‘마당극’은 이러한 연극적 흐름에 대항 각성의 성격을 포함하고 있으며 한국적 전통을 토대로 구체적인 현실적 상황과 개별적인 인간들의 삶을 정직하게 보여줄 수 있는 연극의 부활을 목표로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민중성은 당시 전 세계에서 이루어지고 있던 서구와 제3세계의 민중적 연극운동과도 궤를 같이 하는 움직임이었다. 억압받는 사회적 약자들의 문화적 해방과 독립이라는 이슈가 중요해진 시기였다.
3. 마당극의 핵심이념은 “상황적 진실성, 집단적 신명성, 민중적 전형성, 현장적 운동성‘으로 정리될 수 있다. 마당극이 벌어지는 현장은 초기에는 대학이었지만, 점차 확산되어 공장, 종교시설, 농촌 등의 현장으로 무대가 넓어졌다. 대학에서 공연된 마당극이 정치적 성격을 통해 한국 사회에 다양한 문제점을 보여주는 방식이었다면, 각 현장에서 벌어진 ’현장공연‘은 집단의 성격에 따라 구체적인 현실을 반영하는 내용이 공연되었다. 초기에는 공연의 주체가 집단에서 나온 민중적 성격이 강했지만, 점차 효과적인 메시지의 전달과 지속적인 연극운동의 필요성 때문에 전문적인 연희집단이 등장하였고 그들을 중심으로 ’실천적인 마당극론‘이 전개되었다. 가면극의 발달 과정에서 마을굿에서 시작한 가면극이 상업적 발달과 함께 도시가면극으로 이어졌고 전문적인 연희패들이 만들어지는 단계와 유사한 발전과정이 나타난 것이다.
4. 마당극 운동은 80년대 들어서 ‘마당굿’이라는 좀 더 새로운 형식적 실험에 돌입하게 된다. 과거 가면극이 ‘굿에서 극으로’였다면, 새로운 마당극 운동은 ‘극에서 굿으로’으로 전환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요인은 공연자와 관람자 사이에 대동적인 연대의 필요성 때문이었다. 마당극 공연이 중요한 정치적 운동의 현장으로 정립되면서 ‘굿’이 가지고 있던 집단적 신명의 창출과 대동적인 참여와 뒷풀이 형식을 통한 ‘삶의 무기로서의 연희’라는 성격이 강조된 것이다. ‘굿’이 원래 갖고 있던 아픔과 슬픔에 대한 해원과 집단적 가무를 통한 감정적 해소라는 성격을 마당굿에서 효과적으로 재현시키기 위해 시도하였다.
5. 하지만 마당극과 마당굿이 활성화되고 지배적인 문화활동이 되면서 이에 대한 비판도 등장하였다. 먼저 대학가를 비롯한 현장에서 벌어지는 극의 공연이 점차 현실적 구체성을 잃고 상투적, 도식적으로 빠져 민중의 집단적 신명 창출에는 실패하였다는 자성과 함께 상투적인 재담에만 열중하면서 문제의 전체적 구조에 대한 조감과 지배적인 허위의식 폭로에는 미흡하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이에 더하여 다양한 연희방식(판소리, 탈춤, 신파조 등)을 혼합하는 데서 오는 구성의 산만함이 극의 질적 수준을 떨어뜨리는 형식적 문제점을 제기받았다. 혹자는 이러한 도식성이 억압한 현실에 대한 정치적 비판을 목적으로 하는 극의 성격에서 오는 단호한 주장을 보여주려는 의도에서 일어났으며 현실적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측면을 가지고 있다고 옹호하기도 한다.
6. 마당극 운동은 70년대부터 시작된 전통문화의 발견과 계승 그리고 창조적 발전이라는 흐름 속에서 활성화되었고 확장되었다. 가면극(탈춤)이라는 우수한 연극적 전통을 단지 문화적 공연에만 국한시키지 않고 삶의 현장으로 도입하고 민중들의 참여를 독려하면서 수동적인 존재로 살아가던 민중의 주체적 창조 역량을 불러일으키는 효과와 함께 민주주의의 발전에 중요한 계기를 제공하였다고 할 수 있다. 마당극에는 전통적인 가면극에 담겨있는 비판정신과 현실의 고통을 극복하는 의지가 계승되어 있을 뿐 아니라 기존 질서에 대한 어쩔 수 없는 순응에 그친 가면극의 내용을 넘어서 현실을 변혁하려는 새로운 의지가 가미되면서 더욱 격렬한 언어와 행동을 통한 비판의 정신이 강도를 더해갔다. 사회의 모든 문제가 마당극의 소재가 되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마당극이라는 형식을 통해 사회의 문제에 발언하였다. 예술, 특히 춤과 노래 그리고 이것들이 종합된 연극은 언로가 막혀있는 상황에서 효과적인 전달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선동을 넘어선 진실이 펼쳐지는 공간이었던 것이다.
7. 그럼에도 마당극에 제기된 비판처럼, 모든 예술 공연은 보편성과 전형성을 확보해야 한다. 메시지의 선명성 때문에 예술적 형식을 뭉개버리면 그것은 선동도구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80년대 제기된 도식성과 작위성에 대한 비판은 예술이 항상 곰새겨야 할 정신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예술적 형상화’를 거치지 않는 예술은 결국 사라져 버리는 일순간의 외침에 불과하다. 80년대 마당극과 마당굿 운동에는 엄혹한 현실 속에서 어떻게 현실과 만나고 그것을 어떻게 예술로 전개할 것인가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 담겨있다. 당시 문화운동이 강조한 ‘전형성’ 개념은 구체적인 개별성을 어떻게 총체성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였다. 이러한 총체성에 대한 고민은 21세기 한국 사회에서는 비판받는 개념이 되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총체성과 무관한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존재의 의미이며 그것들에 대한 완전한 자유의 확보에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8. 그러나 여전히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의 문제는 현실의 중요한 갈등의 요인이 되고 있다. 개인은 무관계적인 추상적 세계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그에게 현실은 구체적인 공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 사이에서 형성된다. ‘전형성’은 결코 철지난 진부한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여전히 현실을 진단하는 중요한 방식이며 현실을 규정하는 원리이다. 다만 그것이 표현하는 방식의 독단성 때문에 거부감을 느끼게 되지만 우리는 ‘구체와 보편(총체)’의 순환적 구조 속에서 사고할 필요성은 여전히 중요하다. 80년대 마당극의 성장과 그것과 관련된 논쟁은 우리에게 구체적 현실을 어떻게 보편적인 가치적 이상으로 전개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인간의 영원한 화두를 던져준다. 이상이나 보편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도 개별적인 존재들을 부정하게 만들지만 보편을 부정하고 개별적인 것들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우리는 극도의 개별적 이기심으로 충만한 위험한 세계와 직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첫댓글 - 마당극과 마당굿 : "어떻게 현실과 만나고 그것을 어떻게 예술로 전개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