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살수업67 왜 이타심을 가져야 합니까 #삶을바꾸는열쇠 #보리심의열매 #원보리심
"이기심에서 이타심으로의 전환, 즉 보리심은 중생들의 고통을 해결하고 행복을 가져다주는 근본적인 열쇠"
1) 원보리심이 이익을 얻는 이치
(1) 소연(所緣)이 광대하다
1:21 겨우 중생의 머리 아픈 고통을
없애주겠다는 생각만 해도
중생을 이롭게 하려는 좋은 의도이기에
무량한 복덕을 얻게 된다면
#삶을바꾸는열쇠
모든 문에는 그에 걸맞는 열쇠가 존재합니다. 사람들은 각자의 사정으로 차별적인 문제를 겪고 있습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을 열어야 합니다. 현실에는 모든 문을 여는 마스터키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중생의 만 가지 차별적인 행복의 문을 열어주는 단 하나의 열쇠, 마스터키는 존재합니다. 바로 보리심이라는 열쇠입니다. 현실에서 불가능한 것이 왜 가능할까요? 논리를 단순화 시켜서 설명해드릴테니 따라와보세요.
일단 붓다가 제시하는 행복은 이고득락입니다. 고통을 여윈 그 마음이 곧 행복입니다. 그렇기에 행복추구란 결국 고통이라는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임을 분명히 하겠습니다. 그럼 중생이 겪는 만 가지 문제들의 차별적인 면이 아니라 동질적인 면에 초점을 맞춰볼까요? 뿌리에서 뻗어나간 만 가지 가지가 모두 다른 모습을 보이지만, 뿌리는 같다는 점을 힌트로 삼아보죠. 중생이 겪는 고통의 뿌리는 무엇인가요? 이기심입니다.
사업이 잘 안 되서 힘든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기심으로부터 파생된 어리석음으로 인해 잘못된 선택을 한 것입니다. 더불어 원인보다 더 많은 결과를 얻으려는 탐욕으로 인해 힘든 것입니다. 뜻대로 안 되니 화도 나겠죠? 사업이 안 되서 주변 지인들에게 분노 조절을 못했습니다. 그럼 고통스럽겠죠? 마찬가지로 이기심이 뿌리입니다. 공부를 못해서 고통스러운 것도, 질병에 노출되어 고통스러운 것도, 수행의 성취가 부족해서 고통스러운 것까지도 모두 다! 그 뿌리에는 이기심이 있습니다. 지말의 끝에 있는 병든 가지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천차만별이지만, 뿌리의 성질을 바꾸는 시도 하나로 모든 가지는 영향을 받습니다. 이것이 마스터키가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마스터키의 정체는 무엇인가요? 이기심에서 이타심으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는 자비심과 무아의 지혜가 모두 필요합니다. 이를 보리심이라고 합니다. 그렇기에 모든 붓다와 보살님들은 이 보리심을 강조하고 또 강조하는 것입니다. 지말에 사로잡혀 쫒아다니기보다는 그저 뿌리에 올바른 영양제를 주는 것 하나만 바라보면 되는 것입니다. 다른 모든 지말을 포기하더라도 이 뿌리의 성질을 바꿔주는 마음의 연금술인 보리심은 버리면 안 됩니다. 놓쳐도 안 됩니다.
1:22 모든 중생의 한량없는 고통을 없애주고
그들을 모두 최고의 행복으로 인도하기를 원한다면,
그 한량없는 공덕을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나이까.
#보리심의열매
말했듯 보리심의 약이 이기심에 감염된 뿌리를 치료한다면, 이로부터 비롯된 만 가지 고통이 해결됩니다. 그렇다면 건강해진 나무에서는 어떤 열매가 열릴까요? 크게 세 가지 종류의 열매가 열리나니, 이생의 행복과 내생의 행복 그리고 궁극의 행복입니다. 이생의 행복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건강과 성공 그리고 이로 인한 쾌락입니다. 붓다는 이생의 행복의 비결로 전문기술과 관계 속 자비심을 말씀하셨습니다. 그거 아시나요? 이 둘은 그저 보리심 수행의 초급 단계에서 얻을 수 있는 결과물입니다. 원보리심을 일으키고 행보리심을 실천하면 이생의 행복은 따라오는 샘플입니다.
내생의 행복을 위한 원칙을 요약하면 '시계생천'입니다. 그거 아세요? 보리심 수행의 과정에서 보시바라밀과 지계바라밀은 기본기 아닌가요? 마찬가지로 천상에 태어나 영광을 누리는 것, 극락정토에 왕생하여 지극한 안락을 누리는 것은 그저 보리심 수행의 중급 단계에서 자동으로 얻는 작은 이익입니다.
궁극의 행복을 위한 공부 주제는 계정혜 삼학입니다. 이 삼학을 조금 더 자세하게 구분하면 육바라밀이 되는 것이요, 팔정도가 되는 것입니다. 37조도품으로 세분하기도 합니다. 그 과정에서 무아의 지혜가 완성되면 아라한과를 얻게 됩니다. 이 지점에서 이타심을 원동력으로 삼아 더 나아간다면, 일체중생을 구할 수 있는 열매인 일체지자인 불과를 얻게 됩니다. 이것이 보리심 수행의 고급단계에서 얻는 열매입니다. 본래 추구했던 목적이죠.
사실 중생이 추구하는 세 가지 행복은 모두 보리심 수행이 무르익는 과정일 뿐입니다. 그렇기에 <묘법연화경>에서는 성문과 연각 그리고 보살승인 삼승이 모두 일불승의 길을 걷고 있다는 점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삼승만 그러한가요? 아닙니다! 모든 외도들도 결국 인간완성인 성불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외도 수행자들만이 아니라 범부들, 인간이 아닌 동물과 존재들, 만물이 모두 다! 성불의 길을 걷는 일대사인연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 길을 걷는 원동력은 단 하나입니다. 보리심.
(2) 비교할 데가 없다
1:23 아버지나 어머니 그 누구에게,
중생을 요익케 하려는 이토록 큰 이타심이 있었던가.
신이나 성인이나, 혹은 범천(梵天, Brahman)이라 한들
누가 이런 마음을 갖고 있겠나이까.
#원보리심
원보리심과 행보리심을 비교하면 태양 앞의 반딧불입니다. 원보리심의 공덕은 너무나도 작아보입니다. 상대적으로. 그렇다고 무시하지 마세요. 행보리심이 아니라 다른 만 가지 선업과 비교한다면 원보리심이 태양입니다. 원보리심의 공덕은 왜 이렇게 위대하다는 평가를 받는 것일까요?
'희유함+올바름'
일단 앞서 봤듯이 다른 모든 선업은 지말의 문제 하나를 해결하는 열쇠인데 반해, 보리심은 뿌리의 문제를 해결하는 마스터키입니다. 이 올바른 방향성은 광대한 공덕의 첫번째 근거입니다. 다음으로 희유함입니다. 인생을 모두 받쳐서 눈을 씻고 찾아보세요. 보리심을 일으키고, 이를 보호하며, 실천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는지 탐정놀이를 해보세요. 절대로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사바세계에서는 불가능에 가까운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논전에서는 이 보리심이 일어난 이 상황을 비유하기를 '맹인 거지가 쓰레기 더미에서 보석을 찾은 것'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희유한 확률이죠? 조금 더 상상을 이어가볼까요? 기적처럼 보석을 찾은 맹인 거지가 그 보석을 알아볼 확률은? 다시 기적이 곱해졌습니다. 그럼 그 보석의 가치를 정확히 매길 수 있는 확률은? 다시 기적이 곱해졌습니다. 그 보석을 빼앗기지 않고 지킬 수 있는 확률은? 다시 기적이 곱해졌습니다. 그 보석으로 자신의 삶을 가꾸고 바꿀 수 있는 확률은? 다시 기적이 곱해졌습니다. 무명에 휩쌓인 맹인인 중생이라는 거지가 보리심을 일으키고, 보호하며, 가꾸고 실천하여, 완성에 이르는 것은 이처럼 희유한 기적의 중첩으로 이루어집니다. 그 시작인 희유하고 희유한 원보리심의 공덕은 광대하고 광대합니다.
자! 그럼 기적이 수 없이 겹쳐서 보리심을 실천하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이것이 원보리심과 행보리심의 공덕의 차이를 벌어지도록 만듭니다. 원보리심만으로는 아직 이타심의 실천이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중생에게 이익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행보리심을 실천하고, 유지하며, 완성에 이른다면 그 과정에서 샘솟게 될 일체중생의 이익은 무한합니다. 이기심의 뿌리에서 실행되는 노력은 나에게 작은 이익을 줍니다. 반면 이타심의 뿌리에서 실천되는 행보리심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일체중생 모두에게 성불이라는 무한한 이익을 줍니다. 뿌리의 성격 하나를 바꿨을 뿐인데... 참 엄청난 변화입니다. 안 그런가요?
질문
'내 삶에서 이기심을 이타심으로 전환하는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이며, 이를 통해 주변 사람들과 세상에 어떤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요?'
공지 리마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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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내가 만나게 될 사람 한명 한명이 부처님이라는 생각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세계는 나의 상분이라는 마음
이런 생각들로 하루를 시작해보려고 노력합니다.
노력하지만 넘어지고 후회하고 때론 잘했다 스스로 칭찬도 하면서...눈앞의 한걸음 한걸음만 보고 가겠습니다
세상사람들은 전생의 내 어머니이였으므로 자비심을 가지고 대하며 공성 무아 참나의 지혜로 모두가 하나임을 자각하는 지혜로 이기심을 이타심으로 탈바꿈 하려고 합니다. 나무관세음 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