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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의 주인 [눅6:1-11] 신p.98
창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성경 첫 문장에 기록된 것처럼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7일 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첫째 날은 빛을 만드셨습니다. 둘째 날은 하늘(궁창)을 창조하시고, 물을 위, 아래로 나누셨습니다. 셋째 날은 땅을 창조하시며 각종 채소와 씨, 열매 맺는 나무를 만드셨습니다. 넷째 날은 해, 달, 별을 만드심으로 밤 낮을 주관하게 하셨습니다. 다섯째 날은 바다와 공중의 모든 생물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여섯째 날은 땅의 모든 생물을 만드신 후 마지막으로 남자와 여자를 만드시고 만물을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6일 동안 세상을 다 창조하셨구나~’ 라고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7일에는 ‘창조가 아닌 쉼을 쉬셨구나!’ 마치 인간이 열심히 일하면 쉬어야 하고, 잠을 자는 것처럼 착각을 할 수 있을 수 있습니다. 창2:2절을 보면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질문을 하나 해보겠습니다. 혹시 하나님도 열심히 일을 하시고 나시면 피곤하실까요? 우리처럼 피곤하시면 잠을 주무시면서 피로를 푸셔야 하실까요? 시121:4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하나님은 피곤과 상관이 없는 분이십니다. 졸음도, 잠도 그분에게는 없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왜 안식하셨다고 말씀하셨을까요?
안식하셨다는 말은 창조가 완성되었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즉 안식도 창조인 것입니다. 그래서 천지창조 6일이 아닌 7일입니다. 특별히 안식의 날은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는 거룩한 날입니다. 창2:3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안식을 창조하신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저와 여러분을 복 주기 위해서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쉬기 위해서 만드신 날이 아니라, 쉼이 필요 없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하나님의 자녀들과 온전한 교제를 통해 복을 주시려고 만드신 거룩한 날입니다. 그래서 4계명에는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안식은 저와 여러분을 위해 창조하신 날임을 믿으시면 큰 소리로 아멘? 아멘!
이 안식의 의미를 올바로 알고, 이해할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안식은 사실 율법이 아닌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안식을 율법으로만 받아들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 위해 구별하신 날의 인식을 마치 안식을 지키지 않으면 벌 받는 것으로 오해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유대인들은 안식일에는 하나님이 시키지도 않은 법을 스스로 만들었습니다. 그 어떠한 일도 금하는 금지령을 내려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면 율법들을 만들고 사람들이 지키도록 만들었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고신측 교회는 주일에는 이 안식의 개념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주일에는 차도 안타고, 불도 지피지 않습니다. 돈을 쓰는 것은 헌금을 낼 때 뿐입니다. 그러다보니 30분이나 되는 거리도 걸어다녀야 하고, 점심은 도시락을 전날 싸서 가지고 와서 먹습니다. 심지어 아이들도 놀이터에서 마음껏 뛰어놀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정말 이렇게 하셨을까요?
이 말씀을 준비하다가 하나님께서 재밌는 방법으로 예화로 사용할 이야기를 주셨습니다. 저희 어머님께서 누가 내용을 보내주신 것 같은데 카톡으로 이상구 박사의 회심!에 대한 유트브 동영상을 보내주신 것입니다. 40분이나 되길래 볼까 말까 하다가 보면서 ‘역시 하나님은 참 좋으시다!’ 하면서 끝까지 보게 되었습니다.
이상구 박사 혹시 아시나요? 이분은 의학박사입니다. 한때 엔돌픽 박사로서 강의를 한참 하시고 다닌 분이십니다. 연세대를 나와서 미국으로 가서 의사활동을 하면서 엄청난 부를 누렸답니다. 어렸을 때 가난하게 살았는데 미국에서는 수영장이 딸린 큰 저택을 소유하였고, 비싼 자동차를 두 대를 몰고 다니면서 정말 남부럽지 않게 살았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한 가지 생각에 사로잡힙니다. ‘만약 내가 암에 걸려서 이 모든 것을 잃어버리면 어떻게 하지?’ 이 분은 누구셨나요?
꽤 유명한 의학박사, 의사입니다. 그런데도 갑자기 암이 걸리면 이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는 두려움이 찾아온 것입니다. 부적을 몸에 지녀도 봤지만 소용이 없었고, 깨어있는 동안은 늘 불안했답니다. 그러다가 병원에 전도하러 오신 목사님이 주신 성경을 차마 버리면 벌 받을까봐 숨겨놨던 그 생각이 납니다. 그리고 모두가 퇴근할 때에 성경을 꺼내놓고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내가 믿겠습니다.’하고 30분 안에 응답을 달라고 믿음이 아닌 가정을 하고 기다렸는데 아무런 응답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성경을 펼쳤는데 그 말씀을 보고 하나님을 믿게 됩니다.
그 성경의 내용은 바로 창9:29절 ‘향년이 구백 오십세에 죽었더라’ 그 말씀은 사실 믿음을 갖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그런데 이유가 있습니다. 이상구 박사님이 고3때 서울대를 가겠다던 함께 공부하던 친구들이 사라졌습니다. 교회 수련회를 갔던 것입니다. 수련회를 마치고 와서는 하나님 믿으라고 보여주던 말씀이 창9:29절 말씀이었답니다. 그땐 ‘사람이 어떻게 구백 오십세를 사냐! 너희들 다 미쳤다!’ 하면서 찢어버렸던 그때의 그 말씀이 펼쳐진 것입니다.
그 순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고 갑자기 믿음이 생겼답니다. 그리고 대충 믿는게 아니라 하나님에 대해 열정적으로 알고, 믿기로 했습니다. 그러다가 한 목사님을 만났는데 이게 다른 큰 문제의 시작이 됩니다. 그 목사가 안식교(제칠일 안식일 예수재림교회)라는 이단이었던 것입니다. 잘못된 만남은 잘못된 신앙으로 이어져서 안식교에서 가르치는 것이 잘못된 것인지 모른채 율법 속에 갇혀져서 오랜 세월까지 안식교를 전파하는데 온 힘을 다했습니다. 오랜 기간동안 하나님을 믿었다고 생각했지만 안식을 누릴 수 없었고, 늘 불안했답니다. 왜냐하면 안식교에서는 이렇게 가르친답니다. ‘믿어야 구원 받을 것이고! 지켜야 구원을 얻을 것이다!’ 맞았나요? 틀렸나요? 맞은 것 같기도 하고, 틀린 것 같기도 하죠? 그러다가 4-5년전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을 것이 아닌 그 순간 구원을 받는다는 말씀을 보고, 회심했습니다.
따라합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면 구원을 받습니다!’ 아멘! 뭐가 다르죠? 예수님을 믿는 즉시 하나님께서는 우리는 구원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안식교는 미래형입니다. 믿어야 것이고! 지켜야 것이다! 그러니 내가 지금 잘 믿고, 잘 지키고 있는지가 불안했던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예수님을 계속 믿어야 합니다. 믿다가 안 믿다가 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왔다갔다는 것은 믿음이 온전하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아멘? 우리를 자녀로 삼아주셨다면 평안함으로 인도하십니다. 사실 율법은 문제가 없지만 그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없었기에 예수님을 만나기 전 그들은 불안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지금 저와 여러분에게 오신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저와 여러분은 안식일이 아닌! 예수님의 부활을 따릅니다. 안식일보다 더 큰 사랑과 완전한 은혜가 주어진 것입니다. 아멘!
늘 평안하지 못하고 불안한 삶을 살다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합니다. 어느 순간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안식교가 잘못되었음을 인식한 이상구 박사님은 회심하게 된 것입니다. 안식교가 잘못되었기에 난 안식교를 떠난다고 신문에 광고까지 냅니다. 그리고 2016년 ‘십자가와 조사심판’, ‘화잇이 다시 한 예언’이라는 책을 펼치면서 그들이 말하는 조사심판, 화잇이 한 예언에는 심각한 오류를 있음을 지적하고 정면으로 부정했습니다. 그리고 이 광고와 책으로 인해 안식교 안에서 혼란이 찾아왔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안식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안식이 무엇인지, 왜 안식을 만드셨는지, 안식은 도대체 무엇인지, 안식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본문을 통해 깨닫는 시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크게 두 사건이 등장합니다. 첫 번째 사건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밀 밭 사이로 지나가실 때 제자들이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비어 먹는 일명 ‘밀밭사건’입니다. 두 번째 사건은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가르치고 계실 때 오른손 마른 사람을 치유하시는 일명 ‘오른손 마른 사람 치유사건’입니다. 이 두 사건을 보고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분기가 가득하여 예수님을 해할 계획을 짜게 됩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두 사건의 공통점은 모두 안식일 날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해서는 안되는 행동들을 정했습니다. 지금도 정통 유대인 사회에서는 음식 만들기, 도마질, 세탁, 바느질, 낚시, 이발, 면도, 불 붙이고 끄는 것, 악기연주, 전기를 사용하는 모든 것 등을 금지합니다. 그때는 더 어마어마한 율법들을 만들었는데 무려 39개의 금지 목록과 234개의 부칙이 존재했답니다. 예수님의 두 사건은 모두 그들이 정해놓은 율법을 위배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시 안식일의 금기행동들을 모르셨을까요? 또 자신을 바라보고 있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시선을 모르셨을까요? 다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으셨습니다.
저는 본문을 토대로 하여 그들이 생각하고 있는 안식에 대한 개념과, 안식을 만드신 하나님의 목적을 3가지로 나눠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안식일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안식일을 만드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로 이 땅에 내려오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하나님으로서 안식일의 주인이십니다. 주인은 자신이 만든 것을 마음껏 사용할 권리가 있습니다. 안식일의 주인이 하나님이시듯이, 예수님도 안식일의 주인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눅6:1 또 가라사대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더라
안식일의 주인이 예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그 사실을 전혀 몰랐습니다. 그렇기에 자신의 생각대로 판단하고 예수님의 행동에 의문을 갖고, 나중에는 분노를 표하며, 예수님을 어떻게 죽일지 의논까지 하게 됩니다.
롬9:21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
주인이 무엇인가 만들었다면 그 만든 작품은 오로지 주인의 뜻에 따라 사용되어야만 합니다. 다른 사람이 ‘이것을 왜 이렇게 만들었냐?’ 자기 멋대로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원하는대로 사용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만드셨다면 하나님이 원하시는대로 안식일은 지켜야만 합니다. 그런데 당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을 만드신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자신들이 생각하는대로 율법을 만들고 지켰습니다.
‘주객전도’라는 말이 있습니다. 주인과 객이 바뀌었다는 말입니다. 손님이 주인 행세를 하고, 주인이 손님처럼 되어 버리는 상황이 바로 예수님께 벌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에 쉬셨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쉬는 날을 만드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 쉬는 안식일날은 하나님 안에서 쉴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쉬는 것 또한 하나님의 계획, 뜻이자 명령입니다. 왜 그러한 계획을 취하셨을까요?
말씀 초반에 읽었던 창세기 2장 3절을 다시 볼까요?
창2:3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복을 주시고,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왜요? 하나님의 자녀들이 그 복을 누리고, 하나님 안에서 거룩하게 하시기 위함이십니다. 우리는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십계명 중 4계명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를 향한 명령이지만 이것은 우리를 복을 주시며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게 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뜻, 안식일의 주인의 사랑은 전혀 알지 못한 채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안식일 자체를 주인으로 만듭니다. 그리고 수많은 율법과 금지령을 만들어서 사람들을 정죄합니다. 옭아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기 위한 안식이 아닌, 저주를 받지 않기 위한 도구로 사용할 뿐이었습니다.
원래 안식일은 토요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모든 죄를 청산하심과 동시에 율법을 완성시키셨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기억하며 일요일을 부활의 날로 기념하며 주일로 지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함께 모여 드리는 거룩한 주일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아멘! 예수님이십니다. 아멘! 그리고 그 주인께서는 주일을 지키지 않으면 저주하기 위해 만드신 것이 아니라, 복 주시고 거룩하게 하시려고 만드셨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예배할 때 어떠한 자세를 지녀야 할까요?
‘복 주기 위해 만드셨다니깐 한번 빠진다고 저주는 내리시지 않겠지? 주일 한번 빠진다고 지옥에는 안 가겠네~’ 하는 자세를 취해야 할까요? 아니면 ‘나에게 복 주시고, 거룩하게 하시려고 특별히 만드셨다고? 너무 감사합니다!’ 하면서 주일을 지키는 것을 생명을 걸고 지켜야 할까요? 그건 여러분의 믿음이 결정하게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동두천 순복음 성도 여러분~ 우리는 겨우, 억지로, 마치 인심쓰듯 예배하는 것이 아닌, 신령과 진정으로 복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그분이 우리의 주인임을 인정하는 믿음의 삶을 드리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2.안식은 생명을 살리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안식일은 말 그대로 쉼을 누리는 날입니다. 쉼을 누리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창조하시는 사역을 하신 것처럼, 우리들 또한 내게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해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우리들이 어떻게 살아갈까요?
전부는 아닙니다만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살아갑니다. 6일 동안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해치웁니다. 하기 싫은 공부를 겨우겨우 끝내버립니다. 그러다 보니 7일째는 쉼이 아니라 중독, 향락 더 나아가서는 쾌락을 쫓습니다. 요새는 주 5일 근무를 하다보니 금요일 밤은 그동안의 스트레스를 다 푼다고 하면서 곤드레 만드레, 나이트에서 술에 취한 채 춤을 추며 밤을 새고 온 힘을 쏟아붓습니다. 어떻게 될까요?
따라해볼까요? ‘노동이 건강하지 않으면 안식도 건강하지 않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 일하셨던 것처럼, 그리고 예수님께서 요5:17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도 6일 동안 내게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리고 7일이 되는 안식일, 지금 우리가 지키는 주일에는 모든 분주한 것들을 다 내려놓아야 합니다. 모든 분주한 것들을 내려놓을 때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하나님께 나아가면 우리의 육체가 쉼을 얻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도록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영이 회복되고, 더욱 새롭게 되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영혼과 육체의 쉼을 얻는 축복의 시간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영혼과 육체의 쉼을 얻는 것은 즉, 우리의 생명을 살리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아마 일부러 안식일에 제자들과 함께 밀밭을 가셨을 것입니다. 분명히 예수님과 제자들을 주목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향해 제자들이 이삭을 먹도록 놔두시면서 진정한 안식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주신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안식일은 단지 노동을 멈추는 날이 아닌 생명을 살리는 날이다! 영혼을 살리고, 육체를 살리기 위해서 구별해 놓은 날이다! 안식일을 생명을 살리기 위해 안식일의 주인인 내가 안식일을 만들었다! 안식일에는 생명을 살리는 날이다! 율법으로 정죄하기 위해 만든 날이 아닌 생명을 살리기 위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근데 유대인들은 이 하나님의 뜻을 모른 채 그저 노동을 멈추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잘못된 열심을 갖고 살아갑니다. 혹시 ‘안식일 엘리베이터’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이스라엘에 가면 빌딩마다 ‘안식일 엘리베이터’가 있습니다. 안식일에는 열림과 닫힘을 층마다 자동으로 설정을 해서 사람이 버튼을 누르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 층에 갈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내 숙소가 호텔 8층인데 안식일이 시작되었으면 안식일 엘리베이터 앞으로 갑니다. 이때 열림 버튼을 누르면 안됩니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해서 열릴 때까지 기다립니다. 탑니다. 닫힘 버튼을 누르면 안되고 그냥 기다립니다. 그러면 문이 자동으로 닫히고 출발합니다. 2층에 섭니다. 문이 열립니다. 잠시 후 닫힙니다. 이런 식으로 기계가 알아서 작동하는 것을 보면서 8층에 도착해서 문이 열릴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8층에 도착할 때까지 단 한 순간도 육체적 노동을 하지 않았기때문에 안식일 규정을 잘 지킨 것입니다.
이러한 인식을 갖고 있었기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배가 고파서 밀을 먹은 것을 보고 일을 했다고 비판했던 것입니다. 안식일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우리를 살리려고 안식일을 만드셨습니다. 복을 주고 거룩하게 하시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기에 별 것 아닌 것처럼 여기면서 한번, 두 번 주일을 빠진다면 어느순간 우리에게 부어지는 은혜, 생명이 조금씩 조금씩 사라지고 있음을 나중에 알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주일을 어떻게 지켜야 할까요? 따라해볼까요? ‘주일을 지키는 것은 영혼이 사는 것입니다. 육체가 사는 것입니다. 생명이 사는 것입니다.’ 아멘?
3.안식은 우리를 회복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안식일을 주신 또 다른 이유는 바로 회복입니다. 이 땅에 죄가 들어온 이후 온 땅이 저주를 받았습니다. 저주를 받았다는 것은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입니다. 정상적으로 작동해야 할 모든 것들이 병이 들었고, 병으로 인하여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니 결국 고통 속에 살다가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삶에 들어온 죄로 인한 질병, 문제, 고통을 치료하시기 위해 안식일의 주인은 안식일을 통하여 회복을 주시고자 하셨습니다.
우리가 쉬는 이유는 회복을 얻기 위한 것입니다. 안식은 쉼입니다. 사람은 쉬지 않고서는 살 수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현대인은 쉬는 날과 노는 날을 구별하지 못합니다. 쉬는 날을 노는 날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쉬는 날에 열심히 놉니다. 그러다보니 쉬는 다음날 쉬었음에도 불구하고 얼굴이 말이 아닙니다. 생기가 없습니다.
안식일은 쉼을 갖는 날입니다. 우리가 안식으로 지키는 주일, 오늘은 영혼이 쉼도 갖지만, 육체가 쉼을 갖는 날입니다. 현대인들에게 온전한 쉼이 없다보니 이런 병이 생겼습니다. 무슨 병일까요? 월요병! 월요일부터 힘을 내서 한주를 시작해야 하는데 주말에 너무 열심히 놀아서 쉴 수 없었고 체력이 방전된 상태로 출근한 것입니다.
본문에 등장한 두 번째 사건은 오른손 마른 사람을 예수님께서 치유한 사건입니다. 오른손이 말랐다는 것은 일종의 ‘근육마비 증상’을 말합니다. 점점 오르라들며 굳어지는 질병입니다. 이런 병을 누가 고칠 수 있을까요? 뛰어난 의사라도 고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고소하기 위해 바리새인들은 오른손 마른 사람을 예수님이 계신 회당에 보냈습니다. 그리고는 어떻게 하나 함정을 팠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나요? 눅6:8-9 8.예수께서 저희 생각을 아시고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한가운데 서라 하시니 저가 일어나 서거늘 9.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묻노니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멸하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며
오른손 마른 사람은 회당에는 들어갔지만 자신의 질병으로 인하여 회당 구석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을 것입니다. 갑자기 분위기가 조용해집니다.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고개를 들었더니 예수님께서 그를 보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의 눈빛은 어떠셨을까요? 당시 이런 질병들은 하나님의 저주라는 잘못된 판단으로 인하여 냉랭한 시선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가 질병으로 인한 고통을 불쌍히 여기시며, 사랑의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한가운데 서라!’ 사람들의 시선이 부끄러웠지만 예수님 말씀에 일어섭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멸하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사람들은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눅6:10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저가 그리하매 그 손이 회복된지라
예수님께서는 예배의 자리, 순종의 자리에 나온 오른손 마른 사람을 치유해주셨습니다. 바로 안식일을 이러한 날입니다. 안식은 우리의 고통을 치료해주시고, 우리가 잃어버린 하나님의 복을 다시 회복시켜주시는 회복의 날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T.L 오스본은 [신유의 복음]이라는 책에서 이러한 간증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뉴욕에 사는 한 여자 성도가 폐병에 걸렸는데 병원에서 회복될 가망이 없다는 선고를 받고 집에 돌아와 누워 있었습니다. 그녀는 성경을 읽다가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라는 구절을 읽고 마음이 뜨거워지면서 그 말씀이 그대로 믿어졌습니다.
그녀는 옆방에 계시던 어머니를 불러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 병이 다 나았다고 말씀하셨어요.” “얘야, 그게 무슨 소리니?” 어머니는 깜짝 놀라 물었습니다. “이것 좀 보세요. 이 성경 말씀을 읽어 보세요.” 딸의 눈에서는 눈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친히 나무에 달려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가 나음을 얻었다고 하셨어요. 이것은 저에 대한 말씀이에요. 어머니, 이것은 벌써 이루어진 일이에요. 저는 이제 나았어요. 어서 제 옷을 가져다주세요. 이제 자리에서 일어나야겠어요.”
어머니가 딸을 만류해 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딸은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입고 집 안을 걸어 다니며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 후 그녀의 병은 완전히 회복되었습니다. 2주가 채 지나지 않아 그녀의 폐는 완전히 깨끗해졌습니다. 아멘?
4복음서를 보면 안식일날 예수님은 유난히 많은 병자들을 고쳐 주셨습니다. 38년된 병자를 비롯해서 수 많은 사람들은 안식일날 치료를 받았습니다. 우리가 지키는 주일은 우리를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치료가 임하는 복된 날입니다. 아멘?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안식일의 주인이시며, 십자가에 못 박혀 우리의 모든 질병을 가져가셨음을 믿는다면 언제든지 낫고, 회복되는 역사를 경험하게 될 줄 믿습니다.
우리는 안식일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가져야만 합니다. 하나님께 벌 받지 않기 위해서, 지옥가지 않기 위해서 지키는 날이 아닙니다. 우리의 영혼과 육신, 생명을 살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날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를 육신의 고통, 삶의 문제로부터 회복시키시는 축복의 날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그 날을 만드신 분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셨습니다. 아무 흠이 없으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는 죄와 사망에서 자유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안식일을 이제는 부활하심으로 온전하게 완성하신 주일을 기념하며 예배를 드리고 진정한 안식에 참여하게 되었음을 감사함으로 믿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