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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색 → 독주폭포 → 끝청 → 중청 → 대피소(1박) → 대청 → 화채능선 → 화채봉(1256) → 칠성봉 피골 갈림길 → 피골능선 → 별을 따는 소년 정상/선녀봉 → 허공다리폭포 → 은벽길 → 비룡폭포 가는 길 → 쌍천 → 설악파크호텔' 19km 대략 13시간 코스를 탐험할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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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주폭포[獨走瀑布]
강원도 양양군의 서북쪽 서면 오색리에 위치한 폭포이다. 독주폭포는 오색리에서 서북쪽으로 약 8㎞ 정도 떨어져 있는데, 설악산의 연봉에서 흐르는 물이 독주골을 흐르다 한꺼번에 쏟아진다. 조선 시대 지리지와 고지도에는 독주폭포에 대한 기록이 나타나지 않는다. 전설에 따르면 옛날에 병풍바위로 둘러싸인 선녀탕에 일곱 선녀가 내려와 목욕을 하고 있었는데 몰래 따라 내려온 선관이 가장 예쁜 두 선녀의 옷을 숨겼다. 옷을 잃은 두 선녀는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고 한 선녀는 옥녀폭포가 되었고 다른 한 선녀는 여신폭포가 되었다고 한다. 선관은 두 선녀가 없어지자 선녀를 찾으러 대청봉으로 올라가다 힘에 부쳐 주저앉아 폭포가 되었는데 그 자리를 독주골, 폭포는 독주폭포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모두 세 폭포로 이루어져 있는데,
첫째 폭포를 백장(百丈),
둘째를 천장(千丈),
셋째를 만장(萬丈)이라 한다.
높이 약 100m에 이르는 상단의 수직폭포와 하단의 와폭을 포함한 약 200m 정도의 연폭으로 되어 있다. 외설악의 토왕성폭포, 내설악의 대승폭포와 함께 설악산의 3대 폭포로 불린다. - 한국지명유래집 중부편 지명
설악산 4대 능선이라는 서북능선, 용아장성, 공룡능선, 화채능선(서에서 동으로 순서대로) 중 봄, 여름 야생화가 다채롭게 핀다고 하여 華彩稜線이라 불린다는 동북능선에 도전한다. 모든 산꾼의 꿈이기도 하고….
독주골로 올라 서북능의 끝청, 대청을 거쳐 화채능선, 은벽길로 하산하는 코스는 몇 차례 계획했었지만, 그때마다 사정이 생겨 연기했었다. 이번도 폭염에 가물어 계곡의 참맛을 느끼기 힘들 거 같았지만, 이번까지 연기하면 다시 시간 내기가 힘들 거 같아 강행하기로 했다. 독주골에서 서북능으로 오르는 길은 봄에 이미 봉 감독이 촬영차 탐험을 한 지역이라 경험이 있었지만, 화채능은 우리 둘 모두에게 미지의 영역이라 앞서간 산꾼의 산행기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해서 미지의 영역인 화채능, 은벽길은 내가 앞선 산꾼의 기록을 토대로 코스를 연구하기로 했다.
길이 길인 만큼 화채능선에서 은벽길로 빠지는 곳을 비롯해 곳곳이 지뢰라 가능한 모든 산행기를 검토하고 지도를 비교·분석해 탐험 준비를 마쳤다.
모든 산꾼이 가고 싶어 하고, 보고 싶어 하는 절경을 주마간산으로 지나칠 수 없어 1박 2일 여유 있게 즐기기로 했다. 물론 다른 이유도 있고…. 처음에는 설악산 대피소 중 두 개가 7월 말 8월 초 화장실 공사로 예약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고 끝청이나 독주골에서 비박을 하는 것으로 잡았다. 그러다 우연히 아니 심심해서 며칠 전 공사한다는 대피소 예약을 해보니 예약이 되었다. 응? 아마 공사가 연기되었나 보다. 바로 봉에게 연락해 대피소 예약을 했다. 덕분에 비박한답시고 짊어지고 갈 배낭에 비해 무게가 많이 줄었다.
오전 8시 덕소에서 봉을 만나 오색으로 출발하기로 했다. 전날 먹거리와 반바지 등 미리 배낭을 싸 기상 후 바로 출발할 수 있도록 준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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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같이 집에서 나와 경의·중앙선을 타고 덕소에 내린 시각이 8시 8분이다. 기다리고 있던 봉 감독을 만나 바로 오색을 향해 출발했다. 휴가철이라 그런지 고속도로가 설악IC까지 정체로 거의 달리지 못했고, 가평까지도 사정은 좋지 않았다. 가평을 지나 제 속도를 내기 시작했지만, 이미 많이 늦어 인제에 도착한 시간이 11시 30분경이었다.
봉이 준비하기로 했던 1일 차 점심을 봉의 단골집 사정으로 준비를 못 해 인제에 들러 족발을 사기로 했다. 문 연 족발집을 찾아 족발을 사며 뼈는 빼달라고 했고 이것저것 주는 것은 다 필요 없고 상추나 하나 받아 차에 싣고 다시 오색으로 출발했다. 그리고 오색에 도착한 시각이 12시 9분이다. 차에서 내려 독주골을 보니 바짝 말라 물은 구경도 할 수 없었다. 모든 짐을 꺼내 각자 배낭에 맞게 짐을 분배해 배낭을 다시 쌌다. 봉 감독 배낭은 카메라와 관련 장비로 채우고 3kg이 넘는 삼각대는 손에 들어야 했다. 고로 나머지 먹거리 등은 내 배낭에 넣었다. 봉은 카메라 때문에 배낭 무게가 만만치 않았고 나는 1박 2일 먹거리에 만만치 않았다.
여름철 오색 국립공원 관리사무소 통제 구역을 통과할 수 있는 시간은 3시부터 12시까지로 이미 우리는 늦었지만, 중청 대피소에 예약한 상태라 1시간의 여유가 있었다. 관리 요원에게 중청 대피소 예약 상태를 확인시킨 후 통제소를 통과한 시각이 12시 12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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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숲에 들어가니 골짜기에 희미하게 물 흐르는 소리가 나고 조금씩 물이 고여 있는 것이 보였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땀이 쏟아지는 폭염에 계곡을 따라 올라가며 땀을 한 말은 쏟은 거 같았다. 땀으로 속옷까지 흠뻑 젖어 걷기가 불편했고 수시로 수건을 짜서 사용해야 했다.
1시 22분에 백장폭포에 도착했다. 모든 짐을 벗어 두고 땀을 깨끗이 씻고 충분한 휴식을 취한 후 1시 42분에 폭포를 떠났다. 길은 폭포 좌측 암벽을 따라 나 있었고 쇠줄을 설치해 놓아 올라가기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쇠줄이 없어도 오르기에 문제는 없었지만!
1시 55분에 천장폭포에 도착했다. 천장폭포 오르는 길은 우측으로 나 있었고 밧줄과 쇠줄을 잡고 오를 수 있도록 해 놓았다. 물론 여기도 이 줄 없이 오르는 것이 가능하다.
폭포에 올라 떨어지는 물을 온몸으로 맞았다. 봉 감독의 배낭은 카메라 가방이라 방수가 잘되어 배낭을 멘 채 폭포수를 맞았지만 내 것은 방수 기능이 없어 배낭을 벗어 두고 맞았다. 이미 땀으로 흠뻑 젖은 상태라 옷은 입은 채.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등산화를 신은 채 폭포수를 맞는 바람에 등산화 속이 물로 가득 찼다. 앞으로의 산행이 만만치 않을 거란 얘기다.
천장폭포를 떠난 지 4분 후에 독주폭포라 불리는 만장폭포에 도착했다. 가물어 바위를 부숴버릴 만한 물이 쏟아지지는 않았지만, 폭포라고 주장할 수 있을 정도의 폭포수가 떨어졌다. 백장폭포에서 씻었지만, 다시 땀 흘렀고 천장폭포에서 폭포수를 뒤집어써 옷을 벗어 물을 짜낸 후 햇볕에 말리고 만장폭포수로 땀을 씻어 냈다.
그리고 2시가 넘은 늦은 점심시간이라 봉 감독이 싸 온 밥과 인제에서 산 족발 그리고 몇 가지 반찬을 꺼내 점심을 먹었다.
아직 마르지 않은 옷을 입고 만장폭포를 떠난 시각이 3시 58분이다. 서북능선을 향해 올라가다 우회해야 하는 바위에서 앞서간 봉 감독이 보이지 않았지만, 그냥 바위를 타고 올라갔다. 바위를 타고 넘으니 산양의 똥으로 보이는 것이 많이 있었고 생태관찰용 카메라가 나무에 묶여 있었다. 이때만 해도 봉 감독과의 거리는 30여 미터로 서로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정규코스라고 부르기는 뭐하지만, 봉 감독이 가고 있는 길은 인간의 길인 정규코스이고 내가 가고 있는 길은 짐승의 길로 인간이 갈 수 없는 길이었다. 거기서 봉 감독이 있는 곳으로 내려가면 되지만, 내려가기 싫어 계속 위를 향해 올라갔다. 어느 순간 봉 감독과 거리가 멀어져 연락이 끊어지고 폰으로 대화를 주고받아야 했다.
짐승의 길은 수풀이 무성해 쉽게 갈 수 없었고 위치 확인이 불가능했지만, 등산 앱 지도로 내가 제대로 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앱상의 지도에 의하면 인간의 길은 끝청에서 1km가량 떨어진 서북능선으로 오르는 길이었고, 나는 바로 끝청으로 치고 올라가고 있었다. 무성한 수풀을 뚫고 가는 것은 힘이 많이 들어 금방 지치고 땀은 비 오듯 했다. 해서 선택한 방법이 일단 너덜을 따라 위로 올라갔고 너덜이 없는 지역에서는 바위에 올라 수풀의 상태를 보고 그나마 수풀이 적은 곳을 찾은 다음 그쪽으로 갔다. 그러면 거기에는 짐승의 흔적뿐 아니라 인간의 흔적도 있었다. 나와 같은 산꾼이 드물게 지난 것으로 보였다. 아니면 생태 조사를 위한 탐방일수도….
오늘 밤 우리의 숙소 중청 대피소 기준 내가 봉 감독에 앞서 있었지만 길을 만들며 가다 보니 시간이 오래 걸렸다. 6시 40분경 능선 위에 인간의 길이 나타나고 빨간색 노끈이 처진 것이 보였다. 그리고 곳곳의 나무에 묶여 있는 카메라가 보였다. 아마 그 길이 생태 관찰 집중 지역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그 길을 따라 올라가니 거대한 바위 군락으로 이루어진 봉우리 밑이었다. 끝청이다!
생태 관찰로든 짐승의 길이든 그 끝 지점에 - 바위 군락의 시작점 - 'CAL 30M1'이라고 각인된 녹슨 탄통이 있었다. 내 비록 군 생활을 FM대로 하지는 않았지만, 연대 탄약병으로 26개월을 보낸 사람으로서 처음 보는 구경이었다. 아무래도 6·25 때의 물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해서 다양한 각도에서 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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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사람의 말소리가 들렸다. 당연 봉 감독이라 생각해 소리쳐 불렀지만, 답이 없었다. 여러 개의 바위를 올라 머리를 드니 슬리퍼를 신은 덩치 좋은 산꾼이 나를 보고 "아니, 거기도 길이 있어요?" 하며 놀란다. 해서 "절대, 이리로 오르거나 내릴 생각하지 마쇼!"라고 답해줬다. 드디어 끝청에 도착한 것이다. 그것도 바로 치고 올라가! 그 시각이 6시 56분이다. 그 산꾼은 왜 내가 온 길로 오르거나 내려가지 말라고 했는지는 "4.5km에 불과한 거리를 6시간이 걸려 올라왔다!"는 한마디로 이해가 되는 걸로 보였다. 그리고 그 산꾼이 산에서 만난 유일한 사람이었다.
끝청으로 치고 올라오며 봉 감독과 주고받은 문자 중에 봉이 노을 찍고 갈 테니 먼저 대피소로 가라는 것이 있었지만, "야, 일단 끝청에서 보자!"라고 답했다. 해서 끝청에 앉아 슬리퍼의 산꾼과 이것저것 얘기하며 시간을 보냈다. 좀 지나 친해지자 그 산꾼이 "사람이 안 올 거 같죠?"라고 물어봐 "네, 이 시간에 오겠습니까!"라고 답해줬다. 하자 배낭을 풀어 텐트를 비롯한 숙박 장비를 꺼내 집을 만들기 시작했다. 처음 배낭의 크기와 슬리퍼 신은 걸 보고 이미 예상했었던 일이다. 혹시 지나가는 등산객에게 피해가 될까, 또는 요원에게 걸릴까 봐 시간이 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탐방로가 아닌 곳으로 올라오는 나는 야영 정도는 이해해 줄 거로 생각했을 것이다. 애초 예정대로 대피소 공사를 했다면 우리도 그 위치나 아니면 좀 더 아래에서 비박을 할 예정이었다!
봉 감독을 기다리며 가끔 봉 감독을 불러보았지만, 답이 없다가 7시가 좀 지나 대답이 들렸다. 곧 오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길쭉하게 잘생긴 애로 보이는 청년 셋이 내 덩치만 한 배낭을 메고 나타났다. 그리고 배낭에는 헬멧이 달려 있었다. 그 바로 뒤에 봉 감독이 나타났다. 그들의 배낭을 보고 궁금해 비박할 거냐고 물어보았다. 답은 오늘은 중청 대피소에서 잘 거라고…. 대구에 있는 대학 산악회인데 5박 6일 계획으로 설악산 암벽을 타러 왔다고 했다. '난 대학 시절 뭘 했나'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와중에 텐트를 다친 슬리퍼의 산꾼도 대구 사람이라 넷이 대구에 있는 대학의 산악회에 관해 얘기하기 시작했다. 일몰을 구경한 후 그들에게 인사하고 봉 감독과 내가 우리 숙소를 향해 출발한 시각이 7시 27분이었다.
8시경 대피소에 도착해 먼저 저녁 먹을 수 있는 테이블을 찾아보았지만, 우리에 앞서 도착한 등산객이 다 차지하고 있었다. 그중 여성 산꾼 홀로 있는 곳으로 가 옆에 앉아도 괜찮을지 물어보았다. 괜찮다는 답을 들은 후 나는 배낭에 있는 모든 것을 꺼내 저녁 준비를 하고 봉은 대피소로 들어가 체크인을 한 후 생수와 다음 날 아침, 점심인 햇반을 샀다. 버너와 코펠을 설치하고 가져간 삼겹살을 굽기 시작했다. 족발을 살 때 마트에서 산 소주와 내가 생수통에 넣어간 소주를 반주로 삼겹살을 먹고 그 기름에 가져간 김치볶음밥을 볶아 저녁을 먹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소주를 마시다 하늘을 보니 동서로 길게 뻗은 은하수가 보였다. 얼마 만에 보는 은하수인가? 그 은하수를 사진으로 남기고자 별짓을 다 해 보았지만, 실패! 둥근 달만 사진으로 남기고 테이블에 있던 음식과 장비를 잘 단속해 테이블에 두고 배낭도 같이 두고 카메라만 들고 대피소로 자러 들어간 시각이 11시 10분경이었다. 그때 대피소에 있던 몇몇 등산객은 침낭을 들고 데크로 가 자리를 펴고 있었다. 그것을 본 봉 감독 왈 "침낭을 가져왔어야 했는데…." 배정받은 대피소 3층 구석에 대피소에서 빌린 모포를 깔고 바람막이를 덮고 잠이 든 시각이 대략 11시 20분경이 아닐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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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피소의 모든 창문이 열려 있었음에도 춥다는 느낌이 전혀 없는 상태로 깊은 잠을 잔 후 주변 등산객의 소란에 잠을 깼다. 대청으로 일출을 보러 가거나, 더워지기 전 공룡을 타거나, 아니면 우리와 비슷한 목적을 가진 등산객일 것이다. 어차피 우리도 4시에 기상해 아침을 먹고 대청으로 올라갈 예정이었기 때문에 짜증 나거나 할 일은 아니었지만, 내가 대피소를 싫어하는 이유 중 하나가 곤하게 자는 다른 산꾼에 대한 배려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움직이는 시간은 대피소가 공식적으로 활동하기 전이다. 사실 난 일출을 보기 위해 새벽같이 일어나 어디에 올라가고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다만 이번에는 요원이 공식적으로 활동하기 전 대청을 지나야 하기에 일찍 일어나 오를 준비를 했다.
건조 된장 시래기 4덩이와 잘게 찢어진 황태포를 물이 든 코펠에 넣고 푹 끓여 봉이 전자레인지에 돌려온 어제저녁에 산 햇반과 함께 해장했다. - 참고로 중청 대피소의 전자레인지는 요원들의 사무소가 아닌 대기실에 있기 때문에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대피소에 산 햇반이 아니라 내가 가져간 것도 데울 수 있다는 얘기다. 무게보다 돈이 중요하다면 가져가도 좋다. - 아침을 먹고 대청으로 출발해
눈잣나무 군락을 지나 대청에 도착한 시각이 5시 30분이다. 기상 상태로 봐선 일출에 별 기대가 되지 않았지만, 이미 대청에는 수많은 사람이 일출을 기다리며 인증을 찍고 있었다.
일출이 지나고 시간이 지나면 인증객은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움직일 거라는 생각에 굳이 인증을 찍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기보다는 해를 배경으로 우리 나름의 사진을 찍으며 즐겼다. 그렇게 하며 대청에 올라온 등산객의 동향을 유심히 관찰했다. 우리와 같은 목적을 가지고 올라온 팀이나 산꾼이 최소 하나는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우리가 원하는 쪽으로 가는 산꾼은 없었고 비록 허접할망정 일출이 끝나니 대부분 등산객은 대피소 쪽으로 하산했음에도 불구 하고 60대 초로 보이는 남성 그룹이 대청 정상석을 점령하고 온갖 자세의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었다. 덕분에 줄 서서 기다리는 사람은 계속 늘고…. 그들도 염치가 있었던지 전용 사진사가 다른 등산객 사진을 찍어 주겠다며 핸드폰을 받아 다양한 자세를 주문해 사진을 찍어 주었다.
봉이나 나나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고 봉이 "야, 가자!"라고 했지만, 내가 "야, 내가 대청에 많이 올랐지만, 인증은 하나도 없다!"라고 모두에게 다 들리게 한소리 했다. 그리고 자리를 잡았고 봉이 내 인증을 찍었다.
5시 50분경 대청을 떠나 2일 차 목적지를 향해 가다 길을 잘못 들어 '죽음의 계곡' 쪽으로 200여 미터 속칭 알바를 한 후 이정표 덕에 들머리를 찾을 수 있었다. 들머리는 철책과 윤형철조망 CCTV로 보호되고 있었다. 애초 이럴 거라는 것을 알고 시작했으니 새삼스러울 것은 없었다. 다만, 봉이 윤형철조망을 통과하다 다리에 상처를 입은 게 안타까울 뿐이다. 대청봉이 1,708m, 화채봉이 1,328m 대청에서 화채까지의 거리 대략 3.5km. 3.5km의 거리를 가는 동안 400미터가량을 하산해야 했다. 고개에서 화채봉을 오르는 구간도 있는 만큼 그보다 더 하산했을 것이다. 어쨌든 대청에서 고개까지 거의 수직이라고 느껴질 정도의 가파른 길을 내려가야 했다.
그렇게 가고 있는데 7시 50분경 갑자기 헬기 소리가 들리고 희운각이 있는 무너미 고개쪽으로 가는 헬기가 보였다. 둘이 친구 얘기로 농담을 주고받으며 계속 지켜보았다. 무너미를 지나 오세암 쪽으로 갔던 헬기가 다시 무너미로 돌아오는 것을 보고 우리의 갈 길을 갔다. 가는 길에 주변을 유심히 살펴보니 잘 다듬은 야영터가 군데군데 보였다. 공룡과 주변의 경치를 감상하며 여기저기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며 길을 가는데 배가 고파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시간을 보니 8시가 좀 넘었다. 아니 여덟 시밖에 안 됐는데 왜 배가 고프지?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침을 4시에 먹었다. 4시간이 지났으니 소화가 다 돼 배가 고플 타이밍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점심으로 준비한 라면과 햇반 외에 먹을 거라곤 복숭아 하나가 다였다. 어제 아침에 출발하면서 뭔가를 두고 왔다는 찝찝함이 있었는데, 그것이 활동식이라 불리는 비상식이었다. 요즘 계속해 뭔가를 하나씩 빠뜨리고 다닌다.
화채봉 아래 도착해 주변을 둘러보니 곳곳이 야영터였다. 중청에서 물을 받아 온다면 얼마든지 야영이 가능한 위치였다. 물론 내가 다시 여기 올 일은 당분간 없을 테지만. 마침내 화채봉에 도착한 시각이 8시 47분이다. 대청을 떠난 지 2시간 50여 분만이다. 3.5km를…. 너무 놀았고, 너무 더웠다. 아직 9시도 되기 전인데, 이 정도면 정오를 지나면 길을 간다는 것이 자살행위가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화채봉에 자리를 잡고 봉 감독은 대청을 배경으로 잣을 찍고 나는 등산화와 양말을 벗고 어제 천장폭포 폭포수에 젖은 등산화와 양말을 말렸다. 그리고 지나온 화채능선 앞으로 보이는 공룡능선 만경대 이름 모를 바위 봉우리를 사진에 남기며 절경을 마음껏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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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 20분 화채봉을 떠나 개구멍에 도착한 시각이 9시 37분이다. 개구멍 통과 동영상과 인증을 찍고 다음 목적지인 '별을 따는 소년'을 향해 길을 재촉했다. 봉 감독은 화채봉에서 사진 찍은 후 늘 들고 다니던 삼각대를 분해해 배낭에 매달았다. 앞으로 길이 심상치 않아 두 손을 자유롭게 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 생각이 맞았다 은벽길까지의 하산길은 대청에서 화채에 이르는 길은 오히려 고속도로 같이 느껴질 정도로 험하고 힘들었다. 거기다 폭염까지 덮쳐 인간으로 감당하기 힘들 지경이었다.
화채능선에서 은벽길로 향하는 길은 여러 군데 갈림길을 거쳐야 했다. 따라서 그중 하나라도 잘못된 길을 택하면 전혀 엉뚱한 곳으로 가게 된다. 주변의 자문과 앞선 산꾼의 산행기를 통해 그것을 알고 있었던 우리는 매번 갈림길이 나오면 제삼 제사 확인을 거친 후 다음을 위해 우리만이 아는 인증을 남긴 후 길을 갔다. 그런데 더워도 너무 더웠다. 중청을 떠나며 가지고 온 물은 한 통만 남고 다 마셨고 배도 고파왔다. 빨리 '허공 다리 폭포'에 도착해 시원한 물을 마시고 싶었다. 화채봉을 떠날 때만 해도 점심은 식당에서 먹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전혀 아니었다. 앞선 선배의 산행기에서 얼마 안 되는 거리에 걸린 시간이 오랜 것을 보고 하도 경치가 좋아 절경을 감상하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내가 걸어보니 시속 0.7km 이상 넘기기가 어려운 길이었다. 물론 경치도 좋다!
자칭타칭 나름 산에서는 한가락 한다는 봉 감독이나 나나 아주 초주검이 되었다. 가던 길을 멈추고 그나마 하나 있던 복숭아를 나눠 먹고 빨리 허공 다리에 도착하기만을 바라며 걸었다. 그리고 마침내 11시 21분에 별따소 입구에 도착했다. 평소 같았으면 20여 미터 밖에 안되는 거리를 달려가 껴안고 인증을 남겼겠지만, 허기와 목마름, 폭염에 그저 시원한 물만 그리웠다. 입구에서 별따소 사진만 찍고 허공 다리를 향해 달렸다. 사실 위험하기도 했다. 그리고 가뭄이 길어 허공 다리에 물이 없을까 봐 걱정되기도 했다.
허공 다리를 향해 가는데 아래에서 물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허공 다리에 다 왔다는 기쁨보다는 허공 다리에 물이 있다는 사실이 더 고마웠다. 11시 48분에 허공 다리 폭포 상단에 도착했다. 가장 먼저 엎드려 허겁지겁 물을 마셨다. 생각보다 물이 차지는 않았지만, 우리가 중청에서 가져온 물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땀에 젖은 옷을 빨아 말리고 온몸을 깨끗이 씻은 후 라면을 끓여 햇반 하나와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물속의 가재를 사진으로 남기고자 했지만, 원하는 그림이 나오지 않아 잡아서 사진을 찍고 놓아 준 후 여기저기 살펴보니 가재가 많았다. 12시 47분에 빨아 아직 마르지 않은 옷을 입고 다시 길을 재촉했다.
은벽에 접어들어 폭염을 뚫고 길을 가는데 별따소 릿지 봉우리 중 하나의 정상에서 흰 것이 움직이는 것을 봉 감독이 발견했다. 난 아무리 봐도 바위로 보였지만, 봉은 사람이라고 우겼다. 의심스러워 봉이 먼저 갔음에도 나는 계속 지켜봤다. 그러자 위에서 아래를 향해 자일을 던지는 것이 보였다. 바로 봉에게 '야, 자일 내렸다.'라고 하자 봉이 사진을 찍겠다며 배낭에서 카메라와 망원렌즈를 꺼내왔다. 자일 타고 내려오는 모습을 보며, '야, 이 폭염에 여기 온 우리도 미쳤지만, 쟤들은 더 미쳤다!"라고 하니, 봉 왈 '우리는 걷지만, 쟤들은 타고 내려오잖아!","야, 저기까지는 걸어가야지!", "아마, 쟤들 비박했을 거다!"
몇 걸음 더 가자 남들이 '허공 다리 폭포'라고 해서 그런 줄 알고 그 위에서 씻고 먹기까지 했지만, 눈으로 폭포를 본 적이 없었는데, 그 '허공 다리 폭포'가 멀리 보였다. 폭포수가 허공에 흩뿌려져 '허공 다리'라는 이름이 붙지 않았을까 하고 둘이 얘기를 했지만, 정확한 어원은 모른다. 은벽길을 따라가다 목마름에 허공 다리 상단에서 떠 온 물을 마셨지만, 미지근한 물맛이 영 아니었다. 둘 다 어쩔 수 없이 마시는 거지 다른 대안이 있었다면 버렸을 거라 얘기하며 마셨다. 지쳐서 그늘에 주저앉아 비참한 표정의 사진을 찍어 우리 커뮤니티에 올리며 "절대 NEVER 여름에는 설악에 오지 말라"는 글을 남겼다. 그리고 둘은 시원한 맥주 한잔하는 것이 소원이었다.
그때 은벽길을 잘 아는 친구가 입구에 초소가 있고 요원이 계속 상주한다는 얘기를 해주었다. 요원이나 우리나 서로 얼굴 찡그려 좋은 일 없으니 서로 보지 않는 길을 찾을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내가 본 산행기에는 요원 얘기가 없었던 것으로 보아 그대로만 한다면 얼굴 붉힐 일은 없을 거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길 같지도 않은 하산로를 따라 내려가니 희미하게 물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밑이 계곡이었다. 아슬아슬하게 계곡에 도착한 시각이 2시 26분이다. 바로 물을 받아 마시고 물병을 채운 후 등산화와 양말을 벗고 뜨거운 발을 식혔다. 어제 폭포수에 젖은 등산화를 이틀간 신고 다닌 내 발은 퉁퉁 불어 있었고 봉 감독은 윤형철조망을 통과하느라 다리에 훈장을 달고 있었다. 이름 모를 계곡(은벽계곡?)을 따라 하산하는데, 길이 산을 넘고 있었다. 산세를 보니 그 길을 따라 산을 넘으면 요원이 대기하고 있는 초소로 직행할 거 같아 그냥 계곡을 따라 하산하기로 했다. 계곡을 따라 내려가니 멀리서 차 소리가 들리며 설악파크호텔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개울을 만난 시각이 3시 15분이다.
배낭을 벗어 두고 물에 뛰어들어 40여 분 수영과 물놀이를 즐긴 후 젖은 옷을 벗어 배낭에 넣고 만약에 대비해 늘 가지고 다니는 속옷과 반바지로 갈아입었다. 도로를 찾아 갈대를 헤치고 소나무 숲을 지나니 철책과 윤형철조망이 앞을 가로막았다. 철책과 철조망의 상태로 봐선 설치한 지 한 달이 채 안 되어 보였다. 그래서 이 좋은 수영장에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것이라 생각되었다. 혹시 사유지? 하며 나갈 길을 찾기 위해 철책을 따라 위로 걸어 올라갔다. 걸어가는 중에 다시 땀이 쏟아져 갈아입은 속옷을 적셨다. 하긴 가만히 있어도 땀이 나는 날이니.
대략 500여 미터 따라 올라가니 철책과 윤형철조망이 끝나고 목책이 나타났다. 목책을 넘어가니 "상수원 보호구역"이라는 비목이 세워져 있었다. 모르고 한 수영이었지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3
봉 감독이 앞서서 가고 내가 뒤따라가며 설악파크호텔을 향해 걸어갔다. 상·하행 양쪽에서 가끔 빈 택시가 지나갔지만, 잡지를 않고 택시를 불렀다는 말만 했다. 호텔을 지나쳐 횡단보도에 배낭을 벗어 두고 내게 여기서 택시를 기다리라는 말을 남기고 맥주를 사러 갔다. 봉이 사 온 맥주를 한입에 다 마시고 빈 캔을 쓰레기 봉지에 담고 있는데, 택시가 우리 앞에 섰다. 그런데 택시 조수석에는 어떤 여성이 타고 있었다. 합승? (오색까지 가야 하니 가능한 일이다), 아니면 기사의 지인? 내 알 바 아니고 트렁크에 배낭을 넣고 내가 먼저 택시를 탄 후 봉 감독이 따라 탔다.
그런데 택시를 탄 후 봉 감독이 그 여성에게 아는 체를 했다. 그리고 그 여성이 답하는 목소리를 듣는 순간 뒤통수가 멍했다. 아니 얘가 왜 여기 있어? 그렇게 설악 노래를 부르더니 저질렀구만! 그런데 왜 나에겐 비밀로 하고 둘이 문자를 주고받으며 계획을 세웠을까? 본인 말로는 날 놀래주려고 그랬다지만…. 정확한 내막은 수요일에 봉 감독과 내게 술을 한잔 사기 위해 봉 감독에게 연락했는데, 봉 왈 "수·목 왕과 설악산 간다. 산에서 만나는 것이 품격있지 않겠냐?"라고 했다는 얘기는 이미 수요일 봉에게 들은 얘기였다. 해서 수요일 심야 버스로 속초로 가 일박하고 새벽에 희운각을 거쳐 공룡 1275봉까지 갔다 우리를 만나기 위해 돌아왔다고 했다. 대단한 친구다!
그 친구 말에 의하면 공룡에 헬기가 뜬 것은 조난 한 사람을 찾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그리고 계속 헬기가 왔다 갔다 한 이유는 구조대원을 이동시키기 위함이었다고…. 나중에 생각해보니 헬기가 공룡 쪽으로 가고 있을 때 봉은 그 친구가 그리로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불안해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그 친구 이름을 거론하면 농담했었다. 아마 봉은 문자로 이상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안심했던 거 같다. 어쨌든 계속 오가는 헬기를 보며 희운각과 중청 대피소 화장실 수리를 한다고 했는데 그 재료를 옮기는 것이 아닌가 하고 둘이 얘기를 나누었었다.
사정 얘기를 듣고 내가 "야, 1275까지 갔으면 마등령까지 가 비선대로 내려가야지, 왜 돌아왔냐?"고 묻자 1275 앞에서 요원들이 등산객을 잡고 물을 얼마나 가졌는지 묻고 다시 돌려보냈다고 했다. 하긴 그늘로 다닌 우리도 죽을 지경이었는데, 그늘도 전혀 없는 공룡을 그냥 가게 두었으면 사고가 났을 것이다. 중청에 우리와 있던 등산객이야 5시경 희운각으로 내려갔으니, 공룡을 탔다고 해도 폭염에 노출되기 전에 하산했을 것이다.
오색에서 차를 찾아 뒤풀이를 위해 봉 감독이 한 번 간 적이 있다는 감자탕집으로 갔다. 그런데 원통에는 그가 찾는 집은 없었고 프랜차이즈 집만 있었다. 내가 프랜차이즈 음식을 싫어라 해 혹시 봉이 착각했을 수 있으니 인제로 가 보기로 했다. 맞았다 봉이 착각했다. 감자탕 안주로 소주 두 병을 마시고 취해 잠이 들었고 봉은 꽉 막힌 도로를 뚫고 간신히 10시 20분경 덕소에 도착했다. 일곱 시가 되지 않아 감자탕집을 나왔으니 3시간 이상 걸렸다. 나야 취해서 잤지만, 봉 감독이 수고가 많았다. 어쨌든 집에 도착한 시각은 12시 10분 경이다!
결과적으로 '오색 → 독주 폭포 → 끝청 → 중청 → 대피소(1박) → 대청 → 화채 능선 → 화채봉(1256) → 칠성봉 피골 갈림길 → 피골 능선 → '별을 따는 소년 정상/선녀봉' → 허공 다리 폭포 → 은벽길 → 이름 모를 계곡(은벽계곡?) → 하천 → 설악파크호텔'의 16km 코스를 탐험했다. 거리로 보면 별거 아니지만 독주나 화채나 쉬운 길이 아니다. 정확히 따지면 하루 코스지만, 절경을 감상하고 촬영을 위한 사전 답사의 의미가 강해 1박 2일을 했다.
설악 4대 능선이라는 서북, 용아, 공룡, 동북 중 동북을 했고 보이는 경치만 놓고 보면 4대 능선 중 최고가 아닐까 생각된다. 아마 봉 감독은 비 내리는 날 운해를 찍기 위해 용준을 꼬셔 다시 갈 것이다. 새벽 운해를 찍기 위해 야영도…. 혼자 가 야영을 하기에는 너무 힘든 코스다! 여름을 피한다면 최고의 절경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여름이라고 못 보는 것은 아니지만 너무 덥다!
물론 요원의 눈길을 피하는 것도 중요!
용아야, 기다려라!
이번에 한 코스가 'ㄱ'자나 'ㄷ'자를 그릴 것이라 생각했는데, 지도를 보니 일자를 그리고 있어 놀랐다!
첫댓글 올해 설악에서 보낸 날이 현재까지 22일이네.
설악의 가을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지..
올해에 30일은 넘기겠군...
사월: 4.27 신선봉(단독)/ 4.28 황철봉(단독)
오월: 5.18 대간령/ 5.19 서북능/ 5.20 백운동계곡/ 5.23 서북능2(단독)/ 5.30 독주골(단독)/ 5.31 공룡&가야동계곡
유월: 6.4 천불동계곡(단독)/ 6.5 공룡능선(단독)/ 6.6 안산&아니오니골/ 6.7 아니오니골(단독)/ 6.14 대간령2/ 6.27 공룡능선(단독)/ 6.28 천불동계곡(단독)
칠월: 7.3-5 공룡능선 일원(단독)/ 7.11 대청봉(단독)/ 7.12 독주골2(단독)
팔월: 8.2 독주골3/ 8.3 화채봉
그냥 거기서 살아라
@雲峰 언제고 때가 되면 5월 한달을 설악에서 보낼란다. 이곳저곳 안가본데 가면서..
사진은 50장만 올릴 수 있네...
그 사진 올릴까봐 노심초사했는데 안올렸네? 잘했다~~ 그건 때가 되면 너의 인생사진으로 남을터..
@우서락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