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승면 내망리의 "선돌" 입니다. 내망리는 못망월이. 망월이. 외망. 웃골. 하내망이 있으며, 이 마을 입구에 '못'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 입니다. 또한, '삼승산' 정기를 받아 '판사'를 8명을 배출한다?.. 하여 '팔판동'이라 부르기도 한답니다. 이 마을에는 '판동초등 학교'가 자리 잡고 있으며, '판동초등학교' 운동장 한겻의 수돗가에 신라와 백제의 경계를 표시한던 "선돌"이 있 답니다. 이 "선돌"은 높이 1.7m, 최대너비 1.81m, 두께 0.34m 입니다. 아래쪽 폭이 넓고 윗변이 좀 좁으나 '방형'에 가까운 판석으로 윗면이 거의 수평 을 이룹니다. "판동초등학교'가 개교하기 이전에는 개인소유의 밭뚝에 위치하고 있었으나, "판동초등학교'가 개교한 후 학교 서편의 옛 '교실 현관'앞에 있었 답니다. 그 후 학교 증축과 보수공사로 지금의 위치로 옮겨 놓았으며, 지금은 학교 화단 경계석으로 쓰이고 있을뿐?.. 낡고 허름하게 세워진 철재간판 하나가 그의 역사를 말해 주고 있답니다. 삼국시대 신라와 백제의 '경계석'인 "선돌"은 처음 위치했던 곳?.. 의 모습과 방향, 그리고 왜 설치 했을까?.. 등이 매우 궁금 하였으나 이러한 내용을 조금이라도 알고 계시는 주민이 없어 궁금증을 더욱 증폭되기만 했 답니다. 확실하고 명확한 고증자료(역사. 학술적 가치)가 있다면, 적어도 국가에서 지정하여 관리하는 '국보'로 지정 해도 무리가 없다고 생각 된 답니다. '보은'땅은 삼국시대 신라와 백제의 '경계'지점으로, 보은의 '삼년산성'은 신라가 '노고산성'은 백제의 땅이었던 것으로 미루어 '보청천'을 중심으로 장안. 마로. 탄부면은 신라의 땅?.. 수한. 회남. 회인. 내북면은 백제의 땅?.. 그리고 양국 경계가 보은읍과 삼승. 산외면이 아닐까?.. 추측해 본답니다. 한편, '보은'땅은 식량을 대량 생산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춘 곡창지대로, 신라와 백제가 서로 차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다투었을 것으로 짐작 됩니다. 오늘도 challenge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