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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5월 19일 일요일 설악산 무박산행 한계령 – 대청봉 – 천불동 - 설악동
나홀로 – 반더룽 산악회
산행코스 : 03시 한계령출발 – 04시 한계령 삼거리 – 08시 대청봉 – 10시 희운각 –
11시 30분 신선대 하산 무너미 도착 – 14:40 비선대 – 15:30 소공원
https://www.ramblr.com/web/mymap/trip/371711/1506137
거리 23.5 km
소요 시간 12h 52m 53s
이동 시간 10h 49m 15s
휴식 시간 2h 3m 38s
평균 속도 2.2 km/h
최고점 1,736 m
총 획득고도 819 m
난이도 힘듦
솜다리
양산박
온몸가득 하얀솜털 덮어쓰고서
깍아지른 절벽끝에 홀로이 앉아
먼언 태곳적 전설을 생각하느냐
나와는 어느시절에 인연이 있었던지
요정처럼 청순한 널 만나려
이른 봄 먼 길 걸어 찾아 왔노라
내 생애 단 한 번 널 보고 나면
다시는 또 볼 수 없는 운명이거늘
짧은 만남 아쉬움에 뒤돌아 선다
음력 4월 14일 보름 하루전 하늘에 뜬 달이 구름사이를 오간다.
설악산 뿐만 아니라 대부분 국립공원은 봄 가을 두 번에 걸쳐 산불방지기간을 정하고 입산을 금지한다. 통상적으로 설악산 봄철 산불방직기간은 3월 15일부터 5월 15일까지 두 달간이다. 3월 1일 입산통제가 시작되기 전에 공룡능선을 타고 이번에 산방기간이 끝나고 처음으로 설악을 찾았다.
작년에도 5월 19일에 설악을 찾았는데 산솜다리 군락지를 알지 못한터라 보지 못하고 6월에 다시 찾아갔을 때는 산솜다리가 이미 지고 있어 제대로 된 모습을 보지 못했다. 산솜다리와 함께 난장이붓꽃도 꼭 싱싱한 모습으로 만나고 싶은 꽃 중 하나이다. 여기에 금강봄맞이꽃도 같이 보면 더욱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토요일 밤에 출발하는 무박산행을 신청했다.
코스에 대해서도 고민했다. 산솜다리를 보려면 신선대에 올라야 하는데 그럴 경우 죽 이어서 공룡능선을 갈 소도 있겠지만 체력안배를 잘 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진을 찍으면서 걸으려면 공룡능선을 타는 것은 무리가 따를 수도 있겠기에 우선 산솜다리를 만나는데 역점을 두고 한계령에서 산행을 시작했다.
비옷과 바람막이 그리고 우산까지 우중산행에 대한 준비를 갖췄다. 오전 2시 30분 한계령 휴게소에서 버스를 내리니 휴게소는 이미 여러 산악회 버스에서 내린 산객들로 북적거린다. 자동차를 타고 온 사람들도 많은 듯 얼마 안되는 주차공간이 거의 다 찼다. 겨울철 같으면 추위를 피해 재빨리 화장실에 들어가 등산장구를 갖추는데, 지금은 여름철로 접어 드는 계절이다. 밤공기가 좀 차갑긴 하지만 오히려 신선하다는 느낌이 든다.
새벽 3시에 한계령을 출발하여 5시 좀 못미쳐 끝청 아래 도착할 때 먼동이 터온다.
여름철에는 오전 3시부터 입산이 허용된다. 겨울철에는 4시에 산행을 시작하는데 어떤 때는 관리인의 재량으로 조금 일찍 문을 열어 산행을 시작할 수 있다. 기다리는 동안 점봉산 방향으로 올려다 보니 구름사이로 보름달이 훤하게 비친다. 비가 내릴 것 같지는 않다. 물론 설악산의 날씨가 그리 호락호락한 것은 아니지만 일기예보도 그렇고 지금 하늘의 모습도 그렇고 내 마음속으로 바라는 것도 그러하니 비는 오지 않을 것이다.
예정대로 오전 3시가 되자 한계각 위에 있는 초소에서 관리인이 후레쉬를 비치며 계단을 내려온다. 계단 아래에서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던 수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국립공원 관리인에게 쏠린다. 리모콘으로 바리케이트를 올리고 겹겹이 잠근 쇠줄 자물쇠를 따고 문을 열어준다. 설악산에 들기 위해 먼 곳에서 새벽같이 달려온 많은 산객들의 간절한 마음이 박수소리로 터져나온다.
랜턴이 있다고 하지만 주변 사물을 비추는데는 적절치 않다. 바로 코앞에 있는 길을 비추는 것으로 제 역할을 다 할 뿐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 마음속으로 가늠하며 쉼없이 발걸음을 옮긴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오는 숨소리만이 고요한 정적에 파장을 쏱아낸다. 머리에서는 비지땀이 흐른다. 간간이 능선길에 서면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이 땀을 식혀준다. 모자를 벗어 땀을 식힌다. 근래 들어 등산을 하면서 이렇게 땀을 흘려본 적이 몇 번 없는 것 같다.
앞서 간 사람들의 랜턴 불빛이 저 멀리서 흔들리고 높은 곳에 서서 뒤돌아 보면 건너편 산에서 뒤따라 오는 랜턴 불빛이 또 길게 줄을 서 있다. 전국에서 모여든 산꾼들이 거친 숨소리를 내며 마치 마라톤을 뛰듯 설악을 오른다.
한계령 삼거리까지 2.3 km 구간을 1시간만에 올랐다. 아무것도 볼 것이 없으니 발걸음이 빠르게 마련이다. 백담사쪽으로 시선을 돌려 내려다 보니 어둠속에서도 하얀 바위가 어렴풋이 빛난다. 설악산 (雪嶽山) 이름의 유래에 대해 이처럼 설악산의 바위가 흰 눈처럼 보여서 눈 쌓인 큰 산이라는 뜻으로 불렀다는 말이 실감난다. 설악은 어디로 눈을 돌리나 이처럼 흰색 바위와 초록의 나무가 어우러진 풍경이다.
다른데는 벌써 지고 없는 진달래가 설악에는 이제 피고 있다.
대청봉까지 6 km 오른쪽으로 진행한다. 보름달은 구름에 가려졌다 나타나기를 반복한다. 위험한 곳은 나무데크로 안전하게 연결했지만 대부분 너덜 바위 지내이거나 자연석이 깍여서 생겨난 암릉이다. 그 오랜 세월 깍이고 잘려나간 돌들이 흘러내리고 우리는 그 흘러내린 돌을 밟고 지나고 있다. 내가 지나고 난 이 길을 또 누군가 매일같이 지나가겠지. 그래도 설악의 모습은 변하지 않고 앞으로 수 천년 아니 수 만년 지난 후에 이 길을 걷는 이에게도 나와 똑 같은 감흥을 줄 것이다.
끝청에 이르기 전에 여명이 밝아 온다. 주변 사물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길가에 핀 풀과 야생화가 반긴다. <두루미풀>이 이렇게 군락으로 피어 있을 줄은 기대하지 않았다. 풀잎 위로 꽃대가 올라온 모습이 두루미를 닮았는가? 풀이름을 짓는 것도 참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두루미풀 군락 - 두루미라기 보다는 오리떼 같다.
두루미풀은 꽃도 예쁘지만 열매는 마치 보석처럼 아름답다.
꽃봉오리가 검은 털로 덮여 있는 <요강나물>은 흔하게 보인다. 2년전 응복산에 갔을 때 처음 이 꽃을 보고 신기하면서도 그 꽃모양에 호감이 가지 않았었는데 지금 봐도 그리 예쁘지는 않다. 어디 꽃이 사람에게 예뻐 보이려고 난 것도 아닌데 뭘. 늦추위가 수시로 발생하는 고산지대에서 살아남기 위한 고육지책이리라.
꽃봉오리가 검은 털로 덮여 있는 요강나물이 길가에 도열하듯 피어 있다.
<풀솜대>는 남부지방의 산길에 나 있는 은방울꽃 군락처럼 무더기로 피어 있다. 옛날 헐벗고 굶주릴 때 절에서 풀솜대로 버무리를 만들어 중생을 구제했다는 사연으로 <지장보살>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지장보살은 자신이 모든 중생을 구제하기 전에는 부처가 되지 않겠다는 서원을 올리고 중생구제를 위해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고 한다.
아직 꽃이 덜 핀 품솜대 군락이다.
바쁘게 달리던 발걸음이 꽃박자에 맞춰 점차 느려지고 그만큼 눈에 들어오는 풍광이 풍부해진다. 아직 날이 완전히 밝지는 않았는데 눈앞에 선분홍 색 꽃이 우뚝 나서는데 보니 <큰앵초>꽃이다. 지난주 천마산에서 보고 올해 두 번째로 만나는 예쁜 꽃이다. 부드러운 잎이 구름처럼 넘실넘실 넓게 퍼져 있고 그 사이로 잔털이 보송보송 난 꽃대를 두 개 올리고 그 끝에 서너 개의 선분홍 꽃을 피운다. 이른 봄에 피는 꽃은 추위를 이기기 위해 몸에 잔털이 나 있는 것이 많다. 큰앵초 꽃봉오리는 마치 성냥개비처럼 끝이 진분홍 몽울이 달려 있다.
큰앵초 꽃봉오리와 만개한 꽃
어제 귀때기청을 거쳐 12선녀 계곡으로 하산한 하대감이 보내온 꽃 사진에서 보았던 <나도옥잠화>꽃을 보는 것은 기대도 하지 않았다. 설악산 서부능선길에 야생화가 많이 있다고 하지만 안산만큼 다양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갑자기 청순하리만치 하얀 꽃이 눈에 띄는데 다름 아닌 나도옥잠화 꽃이다. 넓은 이파리가 겹겹이 포개어 있고 그 위로 꽃대가 안테나처럼 올라갔는데 그 끝에 순백의 꽃이 달려 있다. 빛이 충분치 않은 이른 새벽에 바람에 하늘거리는 꽃을 사진에 담기가 쉽지 않다. 눈을 돌려 보니 나도옥잠화꽃이 여럿 보인다. 그 중에 바람을 덜 타는 꽃을 골라 몇 장 담아 본다. 보통 ‘나도’라는 말이 붙은 꽃은 아류(亞流)에 속한다는, 즉 원래것보다 좀 못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지만 나는 야생에서 그것도 이처럼 척박한 환경에서 꽃피우는 나도옥잠화가 가정집 들이나 화분에 심어진 옥잠화보다 훨씬 더 귀하고 아름답게 여겨진다.
내 생애 처음으로 만난 나도옥잠화
잎이 두툽하게 겹겹이 펼쳐지고 틈실한 꽃대가 안테나처럼 올라갔다.
끝청으로 이어지는 가파른 오르막에 이르러 비로소 날이 훤히 밝았다. 도심에서는 이미 오래전에 꽃이 지고 열매를 맺은 벚나무꽃이 만발해 있고, 내가 주작 덕륭에 가서 진달래를 보았던게 한 달이 넘었는데 설악에는 이제서 진달래가 만발했다. 참 신기한 일이다. 키가 크지도 않으면서 조밀하게 자라고 꽃빛이 유난히 진해 보이는 진달래가 곳곳에 피어 아우성이다. 기대하지 않았던 것을 보면 그 만큼 반가움은 배가 된다. 산객들은 화사하게 피어 있는 진달래꽃을 사진에 담기 바쁘고 모두 입이 함박만큼 벌어진다.
이런 멋진 풍경을 볼 수 있을 거란 기대를 안했기에 그 기쁨은 배가 된다.
설악에 오면 꼭 보고 싶은 꽃이 있었다. 이제까지 나무는 많이 보았지만 정작 그 나무에 꽃이 피는지 알지 못했던 <만병초>다. 생긴건 꼭 고무나무처럼 잎도 넓적하고 겨울에도 푸른 잎을 달고 지내는 진달래과에 속하는 상록 활엽 관목이다. 잎을 달여 먹으면 만병이 낫는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중청 아래 사면(斜面) 풀섶에 나 있는 것을 보았고 또 대승령에서 남교리로 내려가는 길에도 자라는 것을 본 적 있다. 끝청으로 올라가면서 왼편 나무숲속을 유심히 살피는 것은 만병초를 보기 위함이다. 그리고 마침내 여러 그루가 자라는 군락을 발견했다. 그러나 꽃은 아직 개화전이고 나무 줄기 끝에 미색으로 뾰족하게 꽃망울이 올라와 있다. 7월에 개화한다는데 올해는 꽃을 볼 수 있으려나.
만병초꽃을 은근히 기대했으나 시기를 잘 못 맞췄다. 한 달 정도 더 있어야 되나보다. 만가지 병을 낫게 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게 다 뻥이다.
끝청에 서서 뒤를 돌아 보면 지나온 서부능선으로 이어진 귀때기청봉과 안산자락이 보이고 그 건너편으로 삼형제봉과 주걱봉이 선명하다. 왼편 너머에는 점봉산 너머 구비구비 이름도 모르는 산들이 마치 물결치듯 푸르스름한 여명에 잠겨 있다. 오른쪽으로는 용아장성과 그 너머로 공룡능선과 황철봉이 보이는데 공룡능선쪽에서는 하얀 구름이 능선을 넘으려는 듯 모여서 전열을 정비하고 있다.
무박산행의 백미는 일출풍경이다. 오늘은 일출이 시원챦다. 두 번째로는 운무(雲霧)를 꼽는다. 작년에 설악에서 만났던 운무의 장엄한 풍경이 눈에 선해지면서 오늘 또 그런 장관을 볼 수 있을거라는 기대감이 커진다. 맑은 날씨에 아름다운 꽃을 보고 게다가 장엄한 운무까지 보는 행운을 맛볼 수 있을까. 갑자기 마음이 급해진다.
산벚나무 꽃이 아직도 피어 있다. 설악은 아직 이른 봄이다.
회리바람꽃도 아직 많이 피어 있다.
얼레지는 진작 피었어야 하는데 늦추위에 기운이 한 풀 꺽인 모양이다.
중청으로 오르면서 진달래꽃이 점점 많아진다. 기상관측소로 오르는 길에는 진달래와 눈잣나무 사이 사이 <댕댕이나무>꽃이 만발했다. 이름도 들어보지 못했던 나무다. 작년 대청봉에서 중청으로 내려오는 길에 꽃을 처음 보았고 또한 작년 가을 안산에서 푸른색 열매를 처음 보았던 나무다. 올해 이곳에 오면서 혹시 이 꽃을 볼 수 있을까 기대했었는데 의외로 쉽게 그것도 굉장히 많이 피어 있는 것을 보았다. 댕댕이나무는 이 중청 기상관측소 아래 뿐만 아니라 대청봉으로 올라가는길 그리고 중청에서 소청으로 가는 길에도 많이 보인다.
댕댕이나무 꽃이 만발했다.
열매는 진한 청색으로 식용한다. 영어로는 Edible Deepblue Honeysuckle 이라고 한다.
7시 15분 중청 대피소에 도착했다. 맑은 구름이 하늘에 떠 있고 하얀 운해가 천불동 계곡을 덮고있는 풍경이 그지 없이 아름답다. 비가 내릴거라는 걱정은 이제 머릿속에서 완전히 지워졌다. 바람이 시원하고 가슴속도 시원하다. 대청봉에 오르지 않아도 오늘 산행의 소기 목적은 다 이룬 것 같다. 중청 대피소는 여전히 많은 산객들로 북적인다. 대부분 이곳에서 아침을 먹는다. 이곳에 이르기까지 시간을 많이 소비하여 공룡능선을 타는 것은 포기했다. 나무 테이블에 앉아 토마토와 빵을 꺼내 아침을 먹었다. 윤이가 넣어준 커피와 샌드위치가 맛난다. 풍납시장에서 사온 토마토도 갈증을 해소하는데 그만이다. 모든게 완벽하다.
중청대피소에 배낭을 누고 대청봉에 올랐다. 오른쪽 경사면에는 털진달래가 밭을 이룬다. 한라산 영실 코스가 털진달래가 이만큼 아름다울까 ? 대청봉에 오르면서 뒤를 돌아보면 공룡능선을 포함한 암릉 뒤로 황철봉을 통과하는 백두대간과 그 뒤로 멀리 작은 축구공처럼 생긴 향로봉 관측소가 보이고 그 뒤로 그림자처럼 실루엣으로 보이는 것은 금강산이리라. 우리는 아름다운 풍경을 볼 때 꼭 그림같다는 표현을 쓴다. 그림이라면 보통 정선의 진경산수화를 떠올릴텐데 지금 내 앞에 펼쳐진 그림이야 말로 진경산수화의 그림을 그대로 옮겨놓은 모습이다. 구름바다가 정체된 듯 보이지만 조금씩 흩어지는 듯 처음에는 구름에 상당부분 가려있던 울산바위가 점차 모습을 드러낸다.
대청봉에 오르는 길에 뒤돌아본 중청 풍경
공룡능선과 그 뒤로 황철봉 능선 그리고 왼쪽으로 멀리 향로봉과 그 뒤로 금강산이 실루엣으로 조망된다.
점봉산 너머 구비구비 이름 모를 산들이 끝없이 펼쳐진다.
오랜 세월 비바람 맞으며 설악산을 지키고 서 있는 정상석. 앞으로 또 얼마나 긴 세월 그 자리에 서 있으려나.
대청봉에는 언제나처럼 많은 사람들이 정상석 앞에서 사진을 찍으려 장사진을 이룬다. 나도 차례를 기다려 사진을 찍고 다시 한 번 사방을 둘러본다. 남쪽으로 점봉산 방향, 서쪽으로 귀때기청 방향, 북쪽으로는 공룡능선 그리고 동쪽으로 화채능선과 그 너머로 양양시는 운해에 싸여서 보이지 않는다.
다시 중청대피소로 내려오는 길에 <바람꽃>을 찾아 보았다. 아직 잎만 무성하다. 앞으로 한 달쯤 지나면 저 줄기에서 나온 꽃대위에 하얀 바람꽃을 피우고 온몸을 흔들어댈 것이다. <범꼬리>와 <등대시호>도 지금 찬란한 미래를 꿈꾸고 있다.
짧은 여름 한 철 화려한 꽃놀이를 준비중인 바람꽃
중청에 두고 온 배낭을 챙겨 길을 서두른다. 중청에서 소청으로 넘어가는 길에서 <시닥나무>꽃을 보았다. 단풍나무과 단풍나무속에 속하는 나무인데 그 꽃이 특이해서 해마다 만나보고 싶은 꽃 중의 하나다.. 작년에 남덕유 백두대간길에서 처음 이 꽃을 보고 신기함을 느꼈고 설악산에서 두 번째 만나서는 서로 알아보는 것이 기뻤던 꽃이다.
시닥나무꽃 - 예술품 같다는 표현이 어울릴까.
귀금속 장신구도 이 시닥나무꽃만큼 화려하고 섬세하지 못할 것 같다.
계곡을 내려가다 만난 시닥나무 - 벌써 꽃이 지고 열매가 달려 있다.
희운각 대피소로 넘어가기 바로 전에 있는 나무다리 왼편에는 단풍나무과 <부게나무>가 있다. 작년에 이 나무 꽃을 처음 보았는데 그 크기는 작지만 꽃모양이 긴 원뿔형으로 일반적인 단풍나무와는 닮은 점이 없다. 그 때는 6월 중순이어서 꽃이 다 지고 하나 남은 것을 보았는데 올해는 아직 꽃이 다 피지 않아 봉오리만 작게 매달려 있었다.
희운각 대피소 부근에 있는 부게나무도 아직 이르다.
하산길에 천불동 계곡을 내려가면서 만개한 부게나무꽃을 보았다.
희운각 대피소 앞에는 <귀룽나무꽃>이 만발했다. 귀룽나무는 봄의 전령사다. 다른 풀 나무가 잎을 피우기도 전에 진한 녹색으로 피어나 계곡 근처에 봄이 왔슴을 알려주는 나무다. 야광나무가 필 즈음에 아카시나무처럼 하얀 꽃이 다닥다닥 달려서 멀리서도 쉽게 눈에 띄는 나무다. 고도가 낮은 곳에는 이미 열매가 커져 곧 까맣게 익어갈 시기인데 이곳에는 지금 절정을 이루고 있다. 물론 중청 부근에는 귀룽나무 꽃 봉오리가 아직 다 크지도 않은 상태로 달려 있었으니 산의 높이에 따라 꽃피는 시기가 크게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희운각 대피소 앞에 피어 있는 귀룽나무꽃
딱총나무꽃도 지금 한창이다.
길에서 만난 금강애기나리 - 오늘 딱 한 송이 만났다.
오전 10시가 가까와진다. 희운각 대피소에서 물을 보충하고 곧바로 무너미고개를 지나 신선대에 올랐다. 수풀을 헤치고 돌가루에 미끄러지지 않도록 조심하며 희미한 길을 따라 얼만큼 올라가다가 눈이 번쩍 뜨인다. 진한 파란색이라고 해야 할까. 남색이라고 해야 할까. 부서진 바위 위에 <난쟁이난초> 한 포기가 배시시 웃고 있다. 세 개의 넓은 꽃잎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숙여져 있고 그 사이마다 작은 꽃잎이 위로 접혀 있다. 아래로 숙여져 있는 꽃잎은 벌깨덩굴 꽃처럼 턱잎이 있고 작은 원통형 꽃 안쪽에 잔털이 나 있다. 아래 턱잎에는 흰빛이 도는 무늬가 나 있다. 풀잎의 길이가 다른 붓꽃에 비해 작아서 난쟁이난초라 부르는 모양인데 얼핏 보기에 각시붓꽃에 비해 그리 작은 편이 아니라 조금 과장된 측면이 있어 보인다.
붓꽃 중에서 키가 제일 작아서 난쟁이붓꽃이라 부른다.
키가 작다고 깔보면 안된다. 강원도 이북 높은 산에서만 볼 수 있는 귀하신 몸이다. 꽃말은 기쁜 소식, 사랑의 메시지
그리고 내가 제일 궁금해하던 <산솜다리>를 찾아보았다. 지난주에 램친이 보내준 사진에는 산솜다리가 마치 갓 알을 깨고 나온 병아리처럼 털이 보송보송 나 있었다. 작년 6월에 찾아본 산솜다리는 이미 져가고 있어 가운데 부분이 노란색에서 진한 갈색으로 변해 있었다. 올 해는 꼭 완연한 꽃송이를 보고 싶은 마음에 산방기간이 끝나자 마자 설악을 찾은 것이다. 바위를 오른지 얼마 안되어 마침내 바위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꽃을 보았다. 어떤 것은 혼자서 또 어떤 것은 무더기로 앉아 있는 모습이 갓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같다. 우리에게 에델바이스 ( Edelweiss )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꽃이다. 오스트리아와 스위스의 국화이기도 한 에델바이스는 우리나라에서도 설악산과 한라산 등 고산지역에서만 자라는 회귀식물이다.
국화과 솜다리속 산솜다리 - 온몸에 털이 나 있다. 숭고한 사랑, 잊을 수 없는 추억 - 고등학교 수학여행때 설악동 가게에서 액자에 담아 팔던 그 꽃이다.
에델바이스는 독일어로 ‘Edel 고귀하고 Weiss 희다’라는 뜻을 가진 합성어이다. 원래 신이었던 에델바이스를 인간세계로 내려보냈는데 그녀는 알프스 산의 정령이 되어 산속에 살고 있었다. 어느날 산에 올랐던 젊은 산꾼이 그녀를 보고 아름다움에 매혹되었는데 산을 내려온 후 사람들 사이에 에델바이스의 아름다움에 대한 소문이 퍼지게 되었다. 이에 수 많은 산꾼들이 그녀를 보기 위해 산에 오르기 시작했고 그녀는 그런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해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만 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조물주는 그녀를 다시 원래의 신분인 여신으로 변모시키고 천상으로 불러 올렸다. 그 후 산을 찾은 사람들은 그녀가 살던 산장에 하얗고 고귀하게 핀 꽃을 보고 그 꽃이야말로 에델바이스가 남기고 간 그녀의 정령이라 여기게 되었다.
작년에 만났고 올해 또 만났지만 내년에 다시 볼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다.
언제 요정이 되어 하늘로 날아 오를지 모른다. 그래도 인연이 있으면 또 만나겠지. 잘 있거라 솜다리야 내 다시 오리니
그 꽃을 한 번 보면 고귀한 모습에 반해 그 다음해에도 또 그 다음해에도 보고 싶은 나머지 자꾸만 찾게 될 것 같다. 그러면 그 꽃은 오염되지 않은 바위 꼭데기로 자꾸만 자리를 옮겨 피어날 것이고 마침내 우리는 더 이상 산에서는 그 꽃을 볼 수 없는 날이 올지도 모를 일이다. 사진을 찍더라도 조금 떨어져 혹여나 그 꽃이 다칠까 염려하며 조심한다. 꽃과 잎이 아직 흰 솜털로 덮여 있어 아름다움이 더욱 더 빛난다.
건너편 대청봉과 중청 소청이 거인처럼 서 있다.- 백두대간 길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난장이붓꽃과 산솜다리에 이어 <돌단풍>꽃은 보너스다. 가평 현리 맑은 계곡에 피는 돌단풍꽃을 올해는 보지 못했다. 이른 봄 화야산 계곡에서 아직 덜 핀 꽃을 보았으나 계속 시기를 맞추지 못해 활짝핀 꽃을 보지 못했는데 마침내 설악산 바위에 청순하게 핀 돌단풍을 보는 행운을 얻었다. 높은 산에서 보는 돌단풍꽃은 계곡에 피는 것보다 더 예쁘게 보이는 것은 그저 나의 감정때문인가. 예쁘다. 한낮인데도 시들지 않고 꽃대를 꼿꼿하게 쳐든채 청순함을 유지하고 있다.
돌단풍은 물기가 있는 바위틈새에서 자라는 범의귀과 돌단풍속에 속한다.
잎 모양이 단풍잎을 닮아서 돌단풍이라 부른다. 물가에서 자라는 애들을 이렇게 높은 설악에서 만나니 더욱 반갑다.
오늘 만나기를 기대했던 꽃을 다 보았다. 단 한 가지 <금강봄맞이>꽃은 아직 시기가 좀 이른 듯 눈에 띄지 않는다. 혹여 천불동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에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바위산을 내려간다. 마주 보이는 설악산 최고봉인 대청봉과 중청 소청 삼형제가 거인처럼 우뚝 서 있다. 불과 한달 전만 해도 눈과 얼음으로 덮여 있었을 터인데 지금은 한 정상까지 녹색으로 불들어 있다. 내려가는 길에 작은 소나무 그늘에 앉아 아직 남은 토마토와 커피 그리고 샌드위치로 점심을 먹었다. 옆에는 노란 <양지꽃>이 아직도 짙은 노랑색으로 눈맞춤한다.
양지꽃 한 송이가 곁에 앉아서 내가 점심 먹는걸 지켜보고 있다.
천불동 계곡으로 내려오는 길은 다른 길에 비해 편하다. 철계단이 잘 정비되어 있고 위로는 도심의 마천루 같은 암봉이 뾰족뾰족 솟아 있고 길 옆으로는 맑은 계곡물이 가끔씩 멋진 폭포를 이루며 흐른다. 이런 아름다운 산이 우리나라에 있다는 것이 정말 자랑스럽다. 아직 해외 트레킹은 가보지 않았지만 이정도 산세라면 어디에 견주어 보아도 결코 쳐지지 않을 것이다.
신선대 암봉 - 신선은 인간이 오르지 못하는 곳에 산다.
마치 천 개의 불상을 세워 놓은 듯 암봉으로 이루어진 천불동 계곡
저런 절벽에도 생명이 매달려 살고 있다.
천불동 계곡은 폭포와 소(沼)와 담(潭)으로 이루어져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낸다.
<눈개승마>가 이제 막 피어 나고 있다. 강원도에서는 고급 나물로 대우받으며 홍천에서는 승마를 밭에 재배하여 농가수입을 올린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는데 물론 나물도 좋지만 이렇게 무리지어 하얀 꽃을 피우는 모습은 화초로서의 가치도 충분하다.
눈개승마꽃이 피고 있는 중이다. 장미과 눈개승마속 - 꽃말은 산양의 수염
계곡을 내려오면서 작년 이맘때 <금강봄맞이>꽃이 피어 있던 그 자리에서 올해 처음으로 꽃을 보았다. 작년에는 단 한 송이 피어 있었는데 올해는 두 송이다. 반가운 마음에 사진에 담는다. 아래로 내려오면서 비선대 못 미쳐 어느 정도 군락으로 피어 있는 금강봄맞이를 만났다. 낮은 곳에서 피기 시작했으니 어쩌면 일주일 후면 공룡능선에도 활짝 필 것 같다.
작년에 이어 이 자리에서 처음으로 금강봄맞이꽃을 만난다.
계곡 아랫쪽으로 내려가면서 무더기로 피어 있는 금강봄맞이꽃 군락을 본다.
앵초과 봄맞이꽃속이다. 금강이란 다이아몬드란 뜻이다. 우리나라 특산종으로 금강산과 설악산에 자란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물참대> <함박꽃나무> <당조팝나무> 그리고 <참조팝나무> 등 귀한 꽃들이 이어진다. 마치 설악산 자체가 계절의 스펙트럼 같다. 산 아래는 초여름이요 산 정상은 이른 봄 풍경이다.
시간적으로 여유를 갖고 내려오면서 옥수처럼 맑은 물에 잠시 뜨거워진 발을 담가본다. 한 달 전 명지산 계곡에 발을 담갔을 때만큼 차갑지는 않으나 발의 피로를 다 씻어낼 만큼 시원한 기운이 스며든다.
오후 3시 30분 소공원에 도착하여 버스를 타고 C 지구에는 출발 15분 전인 3시 45분에 도착했다. 화장실에서 대충 윗도리를 씻고 새 옷으로 갈아 입으니 개운하다. 서울로 올라가는 길은 좀 밀리는지 버스가 양평쪽으로 돌아서 남한강을 따라 팔당대교를 넘어왔다. 오후 7시에 복정역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