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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룰로이드 필름을 위한 선
‘나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지금껏 나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무진 애를 쓰며 살아왔는데 정작 좋은 사람이 어떤 사람을 말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39p) ‘나는 생각했다. 생각 후에 나는 걷기 시작했다. 걷기 시작한 후에 다시 생각했다. 걷고 생각하고, 걷고 생각하지 않고, 걷지 않고 생각하고, 걷지 않고 생각하지 않고, 다시 걷고 생각하기를 반복했다.’(41p)
-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을 몇 번 실패하고 다시 읽기를 반복했으나 지루하지 않았다. 깊이 공감되는 문구들이 눈에 박힌 덕이다. 내가 제대로 읽고 있는 게 맞나 싶어 작가 인터뷰를 보았더니, 순서 상관없이 마음대로 읽으란다.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작가의 말을 따라본다. 잘 읽는 사람이 되고 싶으나 그게 어떤 사람을 말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잘 읽는 사람이 되고 싶은지 잘 읽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되고 싶은지도 사실 조금 헷갈린다. 읽다 멈춰 생각하고 생각하지 않고 그냥 읽고 다 읽고 생각하고 의식의 흐름같기도 말장난같기도한 표현들에 대해 생각해보고 따라해보기도 한다. 이런 걸 읽기에 집중했다고 해야할까 딴짓하며 읽었다고 해야할까.
‘그런 소문을 퍼뜨리는 인간들이 얼마나 구린내 나는 시나리오를 쓰고 있을지, 혹은 구린내 나는 시나리오조차 쓰지 못해 얼마나 지독한 자기혐오에 시달리고 있을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그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자기혐오를 세상에 대한 혐오로 치환하며 세상이 잘못되었다는 말만 내뱉을 뿐 자신이 잘못되었다는 말은 해본 적 없는 인간들일거라고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44p)
- 작가가 되어보겠다고 글쓰기 공부를 함께 하던 친구들이 있다. 공부랄 것도 없이 그저 같이 공모전에 나가던 친구들이지만 수상의 기쁨을 누리는 것은 언제나 소수였고 그 소수가 모임의 주축이 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시간이 흘러 대부분 글을 쓰지도 읽지도 않지만 여전히 그들이 주축인 모임은 이어갔다. 그리고 최근 A가 책을 출판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 맞춤법도 잘 못쓰던 애? 글 좀 못쓰지 않았었나? 좀 이해하기 힘든 글 쓰지 않았나? 근데 갑자기 젊은 작가 진로특강도 한다고?, 아 맞다 걔 집 잘살잖아, 사립학교 이사장 손자니까 특강도 꽂아준 거겠지, 그래서, 제목이 뭐라고? - 순식간에 분위기가 달아 올랐다. 집에 돌아와 생각해보니 한 10년 이상 글쓰기만 했으면 출판할 때도 되었지 싶기도 했으나 샘나는 마음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치졸한 마음을 먹은 것이 부끄러워 A에게 축하한다고 DM을 보냈다. 열글자 정도 보냈으면 저도 열글자 정도로 대답할 것이지 A는 자신이 출판을 하게 된 경위에 대해 구구절절 이야기를 했다. 부럽다는 말을 원한 것일까. 그와 달리 꾸준하지도 시도하지도 않았던 나에 대한 혐오가 피어올라 괜한 심술을 부려봤다. ‘요즘은 작가로 먹고 살기 힘들텐데 힘내라’ 그는 운좋게 웹툰으로도 제작하게 됐고 강의도 나가게 되어서 글로 먹고 살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바빠서 답장은 못했다. 바빠서 그 책을 사볼 시간도 없을 것 같다. 에이 내가 바쁘지만 않았어도!
영화에 대한 기억
친구들과 영화를 찍어보겠다고 뚱땅대기 시작했던 건 UCC라는 말이 막 생겼을 무렵이었다. 낡은 캠코더와 무비메이커로 10분 남짓한 영화를 만들어보겠다고 3개월을 공들였던 것을 생각하면 나름 고생을 했다고 생각했지만, 영상 전공자들 눈에는 이 모든 것이 똥으로 보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71p) 무튼, 어쩌다 보니 이 중학생들의 어설프기 그지없는 영화가 영화제에 나가게 되었는데, 이해할 수 없는 거창한 심사평들에 헛웃음 짓던 기억이 난다. 특히 인터뷰가 인상적이었는데 우린 기자님이 물으면 ‘네’라고만 대답했고 인터뷰 기사는 한국 영화를 이끌어나갈 작은 영화인들이라고 나갔다. 그때 어렴풋이 알게 된 것 같다. 어떻게 완성만 하면, 아니 완성이라고 우기면 알아서들 해석해 준다는 것을. ( 최근 아이들과 찍은 영화도 ‘제2의 봉준호’라는 타이틀로 기사가 나간 걸 보면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구더기와 채식주의자
채식주의자가 되는 과정이 그러했듯, 실패를 떠올리게 하는 것들은 피하게 된다. 트라우마라고 하는 게 좋겠다. 소 혓바닥 냄새는 상상도 안 되지만, 수치스러운 실패를 떠올릴 때 느껴지는 구역질을 표현하기에 적합한 역겨움일 것이라 추측된다.
언젠가부터 난 묵언 주의자(?)가 되었다. 상황이 바뀌었으니, 구성원이 바뀌었으니 괜찮을 거야 하는 자기 위로는 큰 효과가 없었다. 말을 하는 것이 용기가 필요한 일이 될 줄이야. 동료들과 대화 하는 것이 불편해지다 보니 만남도 줄었다. 피하고 싶은 것을 피하다 보니 뒷말이 나온다. 그냥 과묵한 사람으로 불리는 게 편해졌다. 분명 덕지덕지 붙어있는 구더기들은 다 털어냈음에도,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음에 답답하다.
POV3
나는 항상 무언가를 하고 있지만, 그 무엇도 제대로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곳저곳 기웃거리는 모양이 다재다능하다, 관심사가 많다는 듣기 좋은 말로 포장되기도 하지만 단 한 번도 끝까지 밀고 나간 적이 없다는 사실을 떠올릴 때면 끝없는 무력감에 짓눌린다.
희망적으로 바라보자면 어느 것도 포기하지 않았다. 꾸역꾸역 글을 읽고 쓰고, 영화를 찍고 편집하고, 악기를 배우고, 교육과정을 공부하고, 상담을 공부하고 도자기도 굽고….
한솔처럼 나도 내가 당최 뭘 하는 사람인지 모르겠으므로 앞으로 무엇이 될지 전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