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 후각 그 이상의 가치왜 우리는 온혈동물로 진화한 걸까
21세기 과학난제 코 하면 인간의 오감 중 후각을 담당하는 기관이라는 생각이 먼저 떠오를 것이다. 그런 다음 아마도 코는 우리 몸으로 들어오려는 먼지와 각종 세균을 걸러주고, 인간이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산소를 공급하며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호흡기관이라는 사실이 생각날 듯하다.
그런데 온혈동물이라는 관점에서 코를 바라보면 어떨까? 그렇다면 코는 더없이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기관이다. 지금과 같은 코가 없었다면 온혈동물인 우리는 상당량의 물을 계속 들이키지 않은 한 탈수증상으로 살아가기도 힘들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캥거루쥐, 물 없이 사는 비결
1961년, 20세기 최고의 생물생리학자 중 한 명으로 지명되는 미 듀크대학의 크누트 슈밋-닐슨 교수는 캥거루쥐를 연구했다. 캥거루쥐는 캥거루처럼 깡충거리며 움직여서 이름이 붙여졌지만 캥거루가 아니라 쥐가 속해 있는 설치류이다.
하지만 캥거루쥐는 여느 다른 설치류와는 다르다. 건조한 지역이나 사막에 주로 서식하는데, 놀랍게도 물을 거의 마시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는 점이다. 사실상 물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고 할 정도다.
슈밋-닐슨 교수는 이런 캥거루쥐의 코에서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코 안쪽에 몇 개의 얇고 소용돌이 모양을 한 비갑개라는 부위가 있는데, 이것이 숨쉬기 과정에서 수분을 가두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었다.
다른 동물처럼 캥거루쥐는 폐를 촉촉한 상태로 유지해야 한다. 그래야만 폐로 들어온 산소가 혈액 속으로 녹아들어 간다. 그런데 사막의 메마른 환경에서 숨을 내쉬면 우리는 쉽게 수분을 빼앗기고 만다. 그렇게 되면 금세 탈수증상이 나타나고 만다.
하지만 캥거루쥐는 물도 마시지 않는데도 이런 곤란에 빠지지 않는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그건 바로 코 안의 비갑개란 특이한 구조 때문이다.
캥거루쥐는 폐로부터 따뜻하고 촉촉한 공기가 밖으로 나갈 때 비갑개의 차가운 표면을 만나면 수분이 응축된다. 그런 다음 바깥의 차갑고 건조한 공기를 들이마시면 이때는 비갑개가 다시 차가워지면서 건조해진다. 그러면서 비갑개에 갇혀 있던 수분이 들숨과 함께 다시 폐로 돌아가는 것이다.
슈밋-닐슨 교수의 연구 이후 생물학자들은 낙타를 비롯해 사막에 사는 다른 포유류를 연구하면서 이들 사막 동물들도 캥거루쥐처럼 물을 보전한다는 점을 알아냈다. 이런 연구를 통해, 당시 생물학자들은 비갑개의 특이한 구조가 동물들이 사막에서 생존하기 위해 진화한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비갑개가 온혈동물 낳았다
그런데 1990년대 미 오레건 대학에서 갓 박사학위를 취득한 윌렘 힐레니우스는 비갑개가 사막동물뿐 아니라 온혈동물만이 갖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비갑개가 온혈동물인지 그렇지 않은지를 구분하는 단서가 된다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 쥐, 다람쥐, 토끼 등 여러 종류의 포유류 동물에 대해 실험을 했다. 여기에서 힐레니우스 박사는 비갑개를 통해 포유류가 폐로부터 나온 수분의 45퍼센트를 다시 재활용한다고 발표했다. 그 결과, 포유류들이 비슷한 크기의 파충류보다 11배나 더 많이 산소를 소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거루쥐의 경우는 물을 무려 88퍼센트나 재활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결과를 통해 힐레니우스 박사는 최초의 온혈동물은 이런 비갑개를 갖고 있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비갑개 덕분에 끊임없이 산소를 들이쉬며 열을 생산하는 온혈동물이 등장하게 되었다는 얘기다.
현재 고생물학자들은 온혈동물이 언제 어디로부터 출현했는지를 알아내기 위해 화석에서 비갑개를 연구하고 있다. 그렇다면 화석을 통한 연구는 현재 어떤 얘기를 해주고 있을까? 온혈동물인 우리는 육식동물에서 진화한 걸까? 아니면 초식동물에서 진화한 걸까? 불행히도 아직까지 화석에서 결정적인 증거가 나타나고 있지 않다.
초기 포유류의 조상으로 여겨지는 포유류형 파충류인 디키노돈트와 키노돈트는 확실히 높은 유산소 운동능력을 가졌으며 2억 년 전인 중생대 트라이아스기에 온혈동물로 진화했을지도 모른다. 이들에게서 비갑개의 구조가 엿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화석에서 코는 상당히 손상을 받기 때문에 정확하게 결론을 내리기가 어렵다.
뿐만 아니라 초기 포유류의 조상들의 경우 일부는 초식동물이었고 일부는 육식동물이었다. 즉 최초의 온혈동물이 어떤 것이었는지가 분명하지 않은 것이다. 이처럼 왜 우리가 온혈동물로 진화했는지, 최초의 온혈동물은 무엇이었는지는 아직 풀리지 않은 난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