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유산 ‘엄마의 책장’ / 이정화
여고 시절 누구나 한 번쯤은 문학 소녀라는 소리를 들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워낙 감성이 풍부하고 감수성도 예민한 시기여서 그럴 법도 하다. 나 역시 그에 뒤지지 않을 만큼 감성이 풍부한 문학 소녀였다. 수업 시간은 물론 야간 자율 학습 시간에도 선생님 몰래 책을 읽다가 뺏긴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래도 또 읽고 뺏기기를 되풀이했던 기억이 난다. 수험서보다 문학서를 더 좋아했던 탓이었을까. 마지막 학력고사 세대였던 나는 전기대 시험에 보기 좋게 떨어지고 집 근처에 있는 후기대에 들어갔다. 4남매의 셋째인 나는 재수할 집안 형편이 되지 않아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열아홉 어린 나이지만 입학식 날 너무 자존심이 상했다. 뒤늦게 후회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열등감으로 시작된 대학교 1학년 시절이 떠오른다. 학교에 적응을 못 했고 그럴 바엔 재학 시절 내가 좋아하는 책이나 실컷 읽자라는 심보가 생겼다. 열등감으로 똘똘 뭉친 비뚤어진 내 자신에게 스스로 열등감 극복 처방을 했던 것이다. 4년 동안 학교 도서관에 있는 책을 다 읽으리라 다짐했다. 독서 초반에는 뒤틀린 심보 때문이었을까 문학 서적이 아닌 제목부터 과격한 철학서와 특별한 삶과 행보를 보이는 작가들의 책들이 눈에 들어 왔다. 독서의 즐거움이 얼마나 큰지 알지 못한 채 말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돌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다.
그 시절 번역가 겸 수필가였던 전혜린의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라는 수필은 너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동시대 사람들과는 너무 다른 그녀의 시선, 평범한 삶을 거부하고 끊임없이 고뇌하는 젊은 날의 그녀가 너무 맘에 들었다. 독일 유학 시절 헤르맛 헷세와 편지를 주고받는 그녀의 일상은 헷세를 좋아하던 나에게는 너무나 상식 밖의 일이었다. 그런 그녀가 너무나 멋졌고 세상에 불가능한 일은 없구나라는 생각도 잠깐 들었다. 또 오쇼 라즈니쉬의 <<춤추는 신들의 광기>>라는 철학서 시리즈도 그때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꾸역꾸역 끝까지 읽어 내며 과격한 표현에 알 수 없는 쾌감을 느꼈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다양한 책들을 빌려서 읽었다. 다 읽고 나면 책 마지막 페이지에 붙어 있던 도서열람전에 학과, 학번, 이름을 적으며 흔적 남기기를 좋아했다. 기회가 된다면 모교 도서관을 방문해서 그 책들에 도서열람전이 여전히 붙어 있는지 확인해 보고 싶기도 하다. 대학 시절 교내 도서관에서는 주로 빌려서 책을 읽고 서점에서는 주로 시집을 샀다. 그 시절 시도 참 좋아했었다. 너무나 유명한 이해인 수녀 시인, 천상병, 기형도, 정호승 등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다 아는 분들의 시도 좋았지만 류시화, 이정하, 이풀잎처럼 그 시절 유명했던 시인들의 시들도 참 좋았다.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여전히 그 시들은 감동적이다. 20대와 40대의 느낌이 다르지만 여전히 좋다.
직장 생활 3년차에 결혼을 하고 아이 셋을 키우는 때 부터 였을까. 언제부터인가 책을 멀리하게 되었다. 가끔 서점에 들러 책을 사긴 했지만 삶의 여유가 없어서 인지 예전처럼 자주 읽지 않았다. 3년 전 육아와 직장내 업무 스트레스를 수다로 풀며 가깝게 지낸 여경 후배의 죽음은 나에게 지독한 우울증을 안겨 주었다. 파출소에서 교대 근무를 5년차 하면서 몸도 마음도 지칠 대로 지쳐 있어서 충격은 더 컸다. 아이들도 다 키우고 이제 좀 살 만한데 죽어 버린 후배를 보고 웬지 나도 그렇게 될 것만 같아 그냥 현실에서 도망쳐 쉬고 싶었다. 안 그러면 내가 죽을 것 같았다. 그렇게 시작한 휴직은 나를 충분히 쉬게 해주었다. 휴직 기간 중 다시 서점 출입을 하게 되고 독서하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책을 읽으며 치유받고 꿈을 꾸게 되고 진정한 독서의 즐거움을 만끽했다. 서점에 들러 정성스레 책을 고르기도 하고 나만의 도서 목록도 만들어 가며 읽고 다 읽고 그러고 나면 마지막 쪽에 독후감을 쓰기도 한다. 읽고 난 직후에 감정이 너무 소중해 놓치기 싫어 쓰기 시작했는데 가끔 책장에서 꺼내 독후감을 읽는 재미가 있다. 책장에 하나둘씩 늘어나는 책들을 보노라면 마음이 뿌듯하다.
소확행, 그리고 비우는 삶이 최근 분위기이긴 하지만 내 책장만큼은 소확행을 실천하고 싶지 않다. 책장의 책이 늘어나는 만큼 독서량도 늘고 독후감을 쓰는 내 글솜씨도 시나브로 나아질 것만 같아서이다. 그리하여 독자에서 언젠가는 내글에 공감해 주는 독자가 생기는 작가가 될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더불어 책장의 책들을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다. 위대한 유산이 뭐 따로 있을까. 독서를 통해 물질이 우선 순위가 되어 버린 말도 안 되는 이 시대 아이들에게 물질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있다는 것을 알려 주고 싶다. 독서는 사람다움, 자존심, 선한 것과 올바른 것을 가릴 줄 아는 판단력을 자연스레 키워 준다. 우리 아이들에게 그런 위대한 유산이 될 엄마의 책장을 남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