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은 악한 행실을 본받지 말고 선한 길을 따르라고 권하며 두 사람을 언급합니다. 환대해야 할 이들을 박대했던 디오드레베와 선을 행한 데메드리오입니다.
9절 디오드레베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보다 자신이 원하는 교회를 만들려 했습니다. 섬기기 위해 낮아지는 지도력을 발휘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명예와 특권을 복음과 공동체의 일치보다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나 영광 같은 순수한 목적으로 포장된 숨은 야망이 내 안에 없는 지 돌아봅시다.
10절 장로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스스로 높아지려 하는 디오드레베는 참된 분별력을 잃어버리고 어리석고 악한 길을 따라갑니다. 그는 장로가 보낸 지체들을 환대하지 않고 거절하고 내보냅니다. 보고픈 것만 보고서 참으로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하는 것은 내적 교만의 증상입니다.
11절 악한 지도자를 이기는 길은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는 말은 디오드레베가 지시한 것을 거부하고 순회 전도자들을 영접하고 후원하라는 뜻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저버린 지도자를 맹종하는 것은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죄악입니다.
11,12절 장로는 가이오를 향해 여러 차례 반복해서 사랑하는 자라고 부릅니다. 교회의 미래를 생각할 때 신뢰하며 맡길 수 있는 한 사람이 있다면 요한에게 그보다 기쁜 일은 없을 것입니다. 가이오는 그만큼 신실한 지도자였습니다. 이 서신을 전달한 것으로 보이는 데메드리오도 진리의 말씀과 형제들 앞에서 선을 행하는 것으로 인정받은 사람입니다. 신뢰를 쌓는 것은 하루아침에 거저 이뤄지는 일이 아닙니다. 한 아기를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듯 한 사람의 지도자가 세워지기 위해서는 긴 시간과 수고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충성스럽고 신실하고 분별력을 갖춘 한 사람으로 준비되고 있습니까?
13-15절 장로는 사랑하는 형제들을 직접 방문하여 격려하고픈 마음을 전하며 평강을 빌어줍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을 다시 만나셨을 때 가장 먼저 평강이 있으라고 말씀하셨던 것처럼, 지체들의 사정을 살피고 평강을 빌어 주는 성도의 사귐이 우리 공동체 안에 있습니까? (매일성경, 2022.11/12, p.186-187, 훼방하는 자와 돕는 자, 요한삼서 1:9-15에서 인용).
① 요한은 악한 행실을 본받지 말고 선한 길을 따르라고 권하며 두 사람을 언급합니다. 환대해야 할 이들을 박대했던 디오드레베와 선을 행한 데메드리오입니다. 디오드레베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보다 자신이 원하는 교회를 만들려 했습니다. 섬기기 위해 낮아지는 지도력을 발휘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명예와 특권을 복음과 공동체의 일치보다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나 영광 같은 순수한 목적으로 포장된 숨은 야망이 내 안에 없는 지 돌아봅시다.
② 장로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스스로 높아지려 하는 디오드레베는 참된 분별력을 잃어버리고 어리석고 악한 길을 따라갑니다. 그는 장로가 보낸 지체들을 환대하지 않고 거절하고 내보냅니다. 보고픈 것만 보고서 참으로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하는 것은 내적 교만의 증상입니다.
③ 악한 지도자를 이기는 길은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는 말은 디오드레베가 지시한 것을 거부하고 순회 전도자들을 영접하고 후원하라는 뜻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저버린 지도자를 맹종하는 것은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죄악입니다.
④ 장로는 가이오를 향해 여러 차례 반복해서 사랑하는 자라고 부릅니다. 교회의 미래를 생각할 때 신뢰하며 맡길 수 있는 한 사람이 있다면 요한에게 그보다 기쁜 일은 없을 것입니다. 가이오는 그만큼 신실한 지도자였습니다. 이 서신을 전달한 것으로 보이는 데메드리오도 진리의 말씀과 형제들 앞에서 선을 행하는 것으로 인정받은 사람입니다. 신뢰를 쌓는 것은 하루아침에 거저 이뤄지는 일이 아닙니다. 한 아기를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듯 한 사람의 지도자가 세워지기 위해서는 긴 시간과 수고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충성스럽고 신실하고 분별력을 갖춘 한 사람으로 준비되고 있습니까?
⑤ 장로는 사랑하는 형제들을 직접 방문하여 격려하고픈 마음을 전하며 평강을 빌어줍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을 다시 만나셨을 때 가장 먼저 평강이 있으라고 말씀하셨던 것처럼, 지체들의 사정을 살피고 평강을 빌어 주는 성도의 사귐이 우리 공동체 안에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