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김유정의 글을 접할 때 각별함이 느껴진다. 대학 4학년 때(1978년) 김유정론을 써서 고려대학교에서 실시하는 전국 학예술대회 평론부문에 응모했는데, 당선작 없는 가작에 입선되어 상패와 함께 적지 않은 상금을 받고 평론에 대한 삶의 방향이 확고해졌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는 내가 30년 가까이 재직했던 휘문고를 나온 문인이기에 더욱 그렇다.
김유정은 독자들에게 <봄봄>이나 <동백꽃>으로 알려져 있는 향토적인 농촌작가이지만, 그의 작품세계에는 <따라지>같은 도시를 배경으로 한 소설도 적지 않다. 그런 점에서 김유정이 서울에서 휘문고보를 다닐 때의 일상적 생활에 대한 흔적이 남아있지 않을까 해서 그의 모든 텍스트를 검토해 보았다.
그 결과 바로 당대의 기생 박녹주에 대한 짝사랑을 담고 있는 소설인 <두꺼비>의 내용이 휘문고보 4~5학년 때의 자전적 삶을 바탕으로 쓰여진 소설임을 깨닫게 되었다. 다음 인용은 단편 <두꺼비>의 시작 부분이다.
<내가 학교에 다니는 것은 혹 시험 전날 밤새는 맛에 들렸는지 모른다. 내일이 영어 시험이므로 그렇다고 하룻밤에 다 안다는 수도 없고 시험에 날 듯한 놈 몇 대문 새겨나 볼까, 하는 생각으로 책술을 뒤지고 있을 때 절컥, 하고 바깥에서 자전거 세워 놓는 소리가 난다. 그리고 행길로 난 유리창을 두드리며 이상, 하는 것이다. 밤중에 웬놈인가하고 찌뿌둥히 고리를 따 보니 캡을 모로 눌러 붙인 두꺼비 눈이 아닌가. 또 무얼, 하고 좀 떠름했으나 그래도 한 달포만에 만나니 우선 반갑다. 손을 내밀어 악수를 하고 어서 들어오슈, 하니까 바빠서 그럴 여유가 없다 하고 오늘 의논할 이야기가 있으니 한 시간쯤 뒤에 저의 집으로 꼭 좀 와 주십시오, 한다. 그뿐으로 내가 무슨 의논일까, 해서 얼떨떨할 사이도 없이 허둥지둥 자전거 종을 울리며 골목으로 사라진다. 궐련 하나를 피워도 멋만 찾는 놈이 자전거를 타고 나를 찾아 왔을 때에는 일도 어지간히 급한 모양이나 그러나 제 말이면 으레 복종할 걸로 알고 나의 대답도 기다리기 전에 달아나는 건 썩 불쾌하였다. 이것은 놈이 아직도 나에게 대하여 기생오라비로서의 특권을 가지려는 것이 분명하다. 나는 사실 놈이 필요한 데까지 이용당할 대로 다 당하였다. 더는 싫다, 생각하고 애꿎은 창문을 딱 닫은 다음 앉아서 책을 뒤지자니 속이 부걱부걱 고인다. 하지만 실상 생각하면 놈만 탓할 것도 아니요, 어디 사람이 동이 났다고 거리에서 한번 흘깃 스쳐 본, 그나마 잘났으면이어니와, 쭈그렁 밤송이 같은 기생에게 정신이 팔린 나도 나렷다. 그것도 서로 눈이 맞아서 들떴다면야 누가 뭐래랴마는 저쪽에선 나의 존재를 그리 대단히 여겨주지 않으려는데 나만 몸이 달아서 답장 못 받는 엽서를 매일같이 석 달 동안 썼다.>
이 글의 제목이기도 한 ‘두꺼비’는 김유정이 짝사랑하는 당대의 기생 박녹주의 남동생이다. 박녹주(1906~1979)는 김유정보다 2살 연상으로, 이 글에서 ‘옥화’란 이름으로 나온는데, 판소리의 명창으로 1964년에 인간문화재로 지정된다.
눈이 두꺼비를 닮았다하여 붙여진 ‘옥화’의 남동생인 ‘두꺼비’는 인용처럼 주인공에게 부정적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누나를 짝사랑하는 죄로 그가 하자는 대로 극장이나 카페 또는 기생집으로 끌려 다니며 밤을 새기가 일쑤인 것이다.
카페나 기생집을 다닌 것은 당시 학생신분이지만 복학 후 20살이 넘었으니 가능했던 것 같다. 김유정은 “옥화가 저의 누이지만 제 말이면 대개 들을 것이니 안심하라”는 두꺼비 말에 “학비가 올라오면 상전같이 놈을 모시고 다니며 뒤치다꺼리하기에 볼일을 못본다”고 투정거리는 것이다.
결국 소설 속의 주인공은 “답장 못받는 엽서를 석달 동안” 쓰고 “화류계 사랑이란 돈이 좀 듭니다”는 두꺼비의 교활한 말에 넘어가 백화점에서 “사십이 원짜리 순금 트레반지”를 사서 선물로 보내지만, 옥화에게 아무런 소식이 없는 것이다.
이처럼 기생에게 홀딱 빠져있는 김유정이 공부가 제대로 되겠는가. 소설 속의 주인공 ‘나’는 그러한 내적 심리를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시험은 급하고 과정 낙제나 면할까 하여 눈을 까뒤집고 책을 뒤지자니 그렇게 똑똑하던 글자가 어느덧 먹줄로 변하니 글렀고, 게다 아련히 나타나는 옥화의 얼굴을 보면 볼수록 속만 탈 뿐이다.>
이제 주인공 ‘나’는 너무나 소식 없는 상대방 때문에 마음을 크게 먹고, 직접 옥화를 찾아간다. 하지만 옥화는 ‘나’에게 연서나 반지를 받은 표정이 아닌 것이다. 그때서야 주인공은 “내가 입때 옥화에게 한 것이 아니라 결국은 두꺼비한테 사랑 편지를 썼구나” 하고 깨닫는다.
그리고 옥화와 같이 있는 다른 기생의 말을 통해 “옥화가 당신을 좋아할 줄 아우? 발새에 끼인 때만도 못하게 여겨요”라는 모욕적인 말을 듣는다. 그럼에도 주인공은 포기하지 않고 “기생이 늙으면 갈 데가 없을 것이다. 지금은 본 체도 안 하나 옥화도 늙는다면 내게밖에는 갈 데가 없으려니, 하고 조금 안심하고 늙어라, 늙어라” 하는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선 김유정 특유의 익살과 해학이 씁쓰레하게 느껴진다.
이 작품은 1970년대에 기생 박녹주가 생존해 있을 때 <문학사상>에서 그녀를 인터뷰하면서, 소설 속의 사건과 팩트를 확인하기 위해 검증을 한 적이 있었다.
그 당시 박녹주는 자신을 짝사랑하던 연하의 남자 김유정에게 “무슨 학생이 공부는 안하고 편지질이요? 학생이 기생과 무슨 연애를 하자는 말이오? 학생이 이러면 나도 가슴이 아프오. 공부를 끝내면 다시 나를 찾아 주시오.”라고 말한 적이 있다고 인터뷰 했다.
물론 소설은 허구적 자아를 상상해서 작가가 창작하는 것이니만큼 자전적 소설이라고 해서 반드시 현실 그대로는 아닐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소설 <두꺼비>와 실제 김유정의 삶이 다른 점은 무엇일까?
첫째, ‘아버지’의 존재이다. 실제로는 형이나 누나에게 학비를 받아 공부했는데, 소설 속에서는 “아버지가 보내주는 흙 묻은 돈”이란 표현이 나온다. 즉 시골에서 농사일을 하면서 서울 유학 가 있는 아들에게 학비를 대주는데, 주인공은 그 돈을 연애 자금으로 쓰는 것이다. “아버지가 돈 한 뭉텅이 소포로 부쳐 줄 수 있으면” 하고 아쉬워하는 대목은 연애에 빠져있는 학생의 순진한 마음이 잘 부각된 부분이다.
둘째, 소설 속의 주인공은 마지막 부분에서 자기의 사랑을 받아주지 않는 옥화를 포기하지 않고 “늙어라, 늙어라” 하면서 세월이 지나가기를 기다리지만, 실제로 김유정은 박녹주와의 사랑의 실패 이후,(일설에 의하면 1937년 29살의 젊은 나이로 죽었을 때 그의 방에는 “녹주, 너를 연모한다”는 혈서가 방안의 벽에 붙여있었다고 한다.) 낙심한 끝에, 고향인 춘천에 내려가 ‘들병이’들과 어울리면서, 무절제하고 방탕한 생활을 하게 된다.
‘들병이’는 일제 강점기 궁핍의 시기에 남편이 있는 유부녀들이 시골이나 농촌의 주막에서 흰 사기병에 술을 담아 술이나 몸을 파는 여인들로, 대부분 남편이 기둥서방 노릇을 한다. 이때의 체험을 바탕으로 <안해>, <산골 나그네>, <솥>같은 김유정 특유의 들병이 문학이 나오는 것이다.
-한상훈
첫댓글 박록주 명창이 타계하기전에 무슨 신문사에.회고록을 연재한적이.있어요.거기.김유정이 나와요.아마 동아일보일거에요.김유정이.보냈다는 편지내용도 있어요.
김유정 문학관 춘천력 못미처 있어요.
네. 그렇겠죠.
감사합니다.
김유정 평론으로 상을 타셨군요.
김유정에게 애착이 많겠어요.
건강하십시오~
네..당시 중대신문사에선 채만식론으로 김동리 선생이 심사하시고
상장과 상금 4만원 받았고,
고대 전국공모에선 김상협 총장이 직접 상패와 상금 3만5천원(가작이라
절반) 받아 후배들에게 인심도 쓰고 연애자금으로 잘 썼지요.
잘 나가던 시절이었어요..머나 되는 줄 알고...ㅋ